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61화 (61/100)

61화.

“뭔데 호들갑이야?”

모두 의아한 얼굴로 멀뚱히 준이를 쳐다봤다. 그거 잠깐 달렸다고 헉헉거리며 한참 말을 못 하는 것을 보니 얘도 나만큼이나 운동이 시급한 멸치였다.

혹시 우리 제재라도 당했나 싶어 나와 동진이 안색이 파랗게 변하며 바로 모바일 로그인으로 제재 내역을 확인했는데 둘 다 멀쩡했다.

“그, 허 죽겠네.”

“뭐야, 빨리 좀 말해. 정전 복구 안 되기라도 한대?”

“아뇨, 그건 돌아왔는데. 우리 냉방 조졌어요.”

“무슨 소리야?”

“에어컨이요. 시발…….”

가뜩이나 더위를 많이 타는 제현이 입을 벌리고 굳었다. 이제 6월 말인데도 숙소는 에어컨이 거의 24시간 돌아가고 있었다. 특히 제현은 에어컨으로 모자라 선풍기까지 끼고 사는 애라서 더욱 충격인 모양이었다.

“언제 고쳐지는데?”

“모른대.”

“…….”

제현의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

- 전국적으로 때 이른 불볕더위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례적인 무더위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건강에 주의…….

연습실에 제현이 틀어 놓은 뉴스의 아나운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열어 놓은 창문 밖으로는 매미 소리가 시끄럽게 들렸다. 온 건물의 창이 다 열려 있는데 오늘따라 바람 한 점이 불지 않았다.

“죽겠다…….”

준이 연습실 바닥에 엎드린 채 중얼거리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월드 시리즈 직행 티켓이 걸린 서머 시즌 1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우리 팀의 사기는 최악이었다. 7월이 되자마자 낮 기온이 30도 아래로 내려온 적이 없었고 컴퓨터 4대가 종일 돌아가는 연습실에 있자면 체감 온도는 더 높은 것 같았다.

오죽했으면 나마저도 땀을 줄줄 쏟으며 열을 내뿜는 것 같은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감독님. 이번 주에는 에어컨 고쳐질 거라고 하셨잖아요.”

“야, 나도 너네랑 같이 살잖아. 나도 죽겠어. 예약이 밀려서 다음 주는 되어야 한다네.”

다음 주면 벌써 7월 중순이나 다름없었다. 이러다 다 열사병으로 앓아눕는 게 먼저일 것 같았다. 경기장에 가면 사시사철 추워서 핫팩을 달고 다니던 나도 요즘은 에어컨의 인공적인 냉기가 주는 쾌적함에 매료되어 경기가 끝나고도 한참 대기실에서 팀원들과 뭉개다가 죽상을 하고 숙소로 복귀하곤 했다.

스프링 시즌은 1라운드 끝나고 설날이 껴있어서 휴가라도 있었지 서머 시즌은 그냥 바로 2라운드 돌입이라 어디로 대피도 못 하고 숙소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래도 아직은 해가 지고 나면 시원하니 몇 시간만 더 버티면 될 것이었다.

폭염주의보가 완전 한여름에 터진 것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하며 티셔츠를 펄럭이고 있는데 머리 위로 차가운 것이 얹어져 몸을 잔뜩 움츠렸다.

“왜 그렇게 놀라요. 얼음 배달 왔어요.”

돌 얼음 봉지를 여러 개 들고 있는 제현이 돌아다니며 하나씩 머리 위에 얹어 주었다. 가만히 있어도 피가 줄줄 다는 상황에서 조금 힐을 받은 기분이었다.

얼음을 봉지째로 껴안고 있다가 하나를 꺼내 입에 물 생각으로 지퍼를 열었는데 생각보다 덩어리가 컸다. 제일 작은 걸 골라냈는데도 내 손바닥 반만 해 한입에 털어 넣을 수 없어 입에 걸쳐서 물고 있으려니 얼음이 녹아 물이 턱 아래로 줄줄 흘렀다.

물이 흐른 자리가 시원해서 닦지도 않고 그냥 두었다. 왜 동진이 양동이에 물을 받아 놓고 발을 담그고 있었는지 단박에 이해가 갔다.

얼음을 입에 문 채로 의자에 몸을 기대자 옆자리에서 제현의 시선이 느껴졌다. 얼음 봉지를 끌어안은 채로 가만히 있는 게 더위라도 먹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제현이 멍한 눈으로 손을 뻗어 내 입에 물려 있는 얼음을 채가더니 제 입에 넣었다.

“미, 미친…….”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자 아무도 본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만족스럽게 얼음을 입 안에 굴리고 있는 제현의 등짝을 야무지게 때리는데도 신나서 웃고 있었다. 땀 때문에 들러붙은 티셔츠 덕에 등 근육이 다 느껴졌다. 사람 돌게 만드네.

“야, 더워죽겠는데 너네 싸우지 마.”

“저희 먼저 방에 갈게요.”

“랭킹전 한다며?”

“더워서 집중 안 돼요. 해 지고 다시 올게요.”

제현의 멱살을 잡아끌며 연습실을 박차고 나왔다.

“너는 도대체가 밖에서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냐는 얼굴로 얼음 빠는 소리만 내는 제현이었다.

“하여간 말을 안 들어.”

“저만큼 말 잘 듣는 딜러 어디 없지 않아요?”

얼음을 와그작거리며 씹어 먹더니 항변했다.

“말은 진형이 형이 잘 들었지.”

진형은 군말 없이 내가 시키는 대로 척척 움직이는 편이었다. 제현은 자기 주관이 워낙 뚜렷한 데다가 애초에 내가 제현을 아직도 다 파악 못 해서 행동반경 예측을 못 할 때가 많았다.

“아, 그래서 인생 최고의 딜러 JH는 권진형이시다?”

“너 또 그 소리야?”

지난 지리산에서 인생 최고의 딜러 꼽으라는 곤란한 질문에 적당히 이니셜로 얼버무렸더니 그걸로 아직도 토라져 있었다.

“치사해요. 저는 형 생각만 났는데.”

“거기 진형이 형도 있는데 사람이 예의라는 게 있잖아. 그 형이랑 합 맞춘 세월이 얼마인데. 너는 합 맞춰 본 버퍼가 나밖에 없으니까 날 써내도 되지만.”

“저도 잠깐이지만 영화랑 맞췄는데요.”

“배 맞춰 본 버퍼는 나밖에 없잖아.”

더워서 그런지 말이 함부로 나왔다. 제현이 내 말에 미간을 좁히며 인상을 썼다.

“지금 그 인간이랑 잤다고 자랑이라도 하시는 거예요?”

“그런 말이 아니잖아…….”

이놈의 입이 문제다. 입술을 씹으며 제현의 눈치를 살피는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얼음 봉지에서 얼음을 꺼내 팝콘 먹듯 와작와작 퍼먹는 제현이었다.

“다음엔 네 이름 적을게.”

“됐어요. 말도 잘 안 듣는 딜러 이름을 왜 적어요. 말 잘 듣는 사람 적으세요.”

원래는 이쯤이 되면 풀리는 편인데 오늘따라 심통이 났는지 방에 돌아올 때까지 눈에 준 힘을 풀지도 않았다.

쿨매트가 깔린 자기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운 제현이 벽 쪽으로 돌아누워 넓은 등짝만 보였다. 저걸 어떻게 달랠지 머리가 아팠다.

다가가 앉자 쿨매트 때문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근처에 앉았을 뿐인데 제현의 몸에서 열기가 뿜어지는 것 같았다.

티셔츠 안으로 손을 들이밀자 무슨 몸이 불덩이 같았다. 제현은 항상 열감기라도 걸렸나 싶을 정도로 뜨거운 몸이었다.

“하지 마세요.”

“시원하고 좋잖아.”

등허리를 어루만지는데 말로는 하지 말라고 하면서 싫지는 않은지 가만히 있었다. 체온이 낮은 편이라 다행이었다. 제현이 슬쩍 돌아눕더니 티셔츠를 끌어 올리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표정이 한결 좋아져 있었다.

“그래, 여기도 만져 달라는 거지?”

“아니요. 안아 달라는 건데요.”

나를 부드럽게 잡아당겨 자기 몸 위로 눕게 했다.

“죽부인이 된 것 같아.”

“죽부인 말고 그냥 제 부인하세요.”

실실 웃던 제현이 내 목에 얼굴을 파묻고 한숨을 푹 쉬었다.

“왜 이럴 때마다 몸으로 해결하려 드세요.”

“신기하게 너한테는 내 몸이 제일 잘 먹히더라고.”

말라빠진 볼품없는 몸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매번 잘 통했다. 이렇게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다른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나?

제현의 손이 내 몸 여기저기를 더듬거렸다. 하도 붙어 있다 보니 점점 더 더워져서 일어났다. 항상 찬 편인 손도 그새 따끈따끈해져 있었다.

에어컨이 그리워졌다. 그간 제현이 하도 더위를 많이 타서 강하게 틀고 자니 추워서 제현을 인간 난로처럼 껴안고 잤었는데 요즘은 너무 더워서 강제로 개별 취침 중이었다. 옆을 보자 제현이 말은 안 했지만 더웠는지 아예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많이 더워?”

“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턱을 괴고 헐벗고 누워 있는 제현을 구경 중이었다.

‘저걸 그냥 잡아먹을 수도 없고.’

내 시선을 느꼈는지 일어나 품에 껴안고 있던 얼음 봉지에서 얼음을 하나 꺼내 물더니 느닷없이 입을 겹쳤다. 얼음이 서로의 입 안을 오가며 녹아내렸다. 얼음 조각이 다 녹자 나를 자기 침대에 눕혔다.

분명 쿨매트인데 제현이 누운 자리는 무슨 핫매트 같았다.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는 것을 보고 당황스러웠다.

“덥다며?”

“이열치열이라는 좋은 말이 있죠. 만세 하세요.”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얌전히 팔을 들자 티셔츠를 홀라당 벗겨 냈다.

“한 판하고 씻고 나면 해 떨어져 있을 테니까 개운하게 연습실 복귀하자고요.”

“너나 개운하겠지. 내 허리는…….”

“싫으면 말고요.”

진짜 미련 없이 몸을 일으키려는 모습에 다급하게 다리로 허리를 감싸 끌어와 중심부를 맞댔다. 제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얼음을 하나 물어 입에서 굴리더니 그대로 내 몸에 입을 맞췄다. 차가운 느낌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얼음을 뱉어 내 내 유두 위에서 살짝 굴렸다.

“으으…….”

자극에 뾰족하게 솟은 유두를 손가락으로 지분거렸다.

“그, 그만!”

“왜요.”

“…….”

맨날 이런 식으로 전희가 길다 보니 시작도 하기 전에 가버리거나 몰리는 상황이 태반이었다. 제현이 한두 번 하는 동안 나는 서너 번씩 가버려 체력고갈이 심했다.

‘이번엔 그렇게 안 되지.’

제현을 눕혀 놓고 그 위에 올라타 바지와 속옷을 밀어 내리자 이미 발기한 것이 튕겨 나오며 얼굴을 때렸다. 살다 보니 저걸로 내가 죽빵을 다 맞네. 언제 봐도 적응이 안 되는 사이즈의 물건을 내려다보며 굳은 다짐을 했다. 오늘은 반드시 입으로 한 발 빼고 거사를 치르리라.

“뭐 하세요?”

“가만히 있어 봐…….”

진형과는 삽입까지 이어지는 일이 거의 없어서 거의 펠라가 기본형이었는데도 아직도 제현을 입으로 가게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은 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심지어 평생 내 것만 물어본 제현이 펠라를 더 잘했다. 제현은 재능충이라 뭘 하든 수준급으로 금방금방 해내는 부류의 인간이라지만 펠라까지 잘할 필요가 있나?

생각하다 보니 더 억울했다. 뿌리 끝부터 핥아 올리자 만족스러운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형…….”

앞부분을 혀로 누르듯이 핥다가 천천히 입에 머금었다. 입이 작은 편이라 입을 완전히 벌려도 빠듯했고 아무리 밀어 넣어도 반절도 못 삼켰다. 내 입 안보다 제현의 것이 훨씬 뜨거웠다. 목구멍을 좀 더 열어 조심스럽게 더 받아들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하면 다 머금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제현이 내 엉덩이를 움켜쥐어 놀라서 뱉어 냈다.

“허, 헉…… 아, 황제현, 하지 마…….”

“눈앞에 두고 참으라고요? 혹시 이거 무슨 인내심 테스트예요?”

제현이 내 바지를 끌어 내려 엉덩이를 깨물었다. 숨을 몰아쉬며 내려간 바지를 끌어 올렸다.

“이 자세는 안 되겠다.”

입을 문질러 닦으며 자세를 바꾸려는데 제현이 허벅지를 당겨 막았다.

“잠깐만 있어 봐요.”

겨우 끌어 올린 바지를 아예 벗겨 내더니 내 것을 입에 물었다.

“아……!”

허리에 힘이 들어가 제현의 것을 손에 쥔 채 머리를 떨어뜨렸다. 제현이 내 엉덩이를 쥐고서 일부러 더 소리를 내 빨아당겼다.

“흐응…….”

펠라를 할 생각으로 잡은 자세인데 제현에게 잔뜩 빨리면서 흥분하는 바람에 입에 넣지도 못하고 그냥 얼굴을 비비는 게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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