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59화 (59/100)

59화.

[KKL] 프로게이머들에게 쏟아지는 도 넘은 악플…… 고소도 통하지 않아

지난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Checkmate’ 서찬희와 ‘Joker’ 황제현의 방송이 예정보다 이르게 종료되었다.

채팅창에는 음란하거나 선정적인 채팅은 물론 비하 및 욕설로 가득했다. 참지 못한 황제현이 매니저 권한을 받아 차단했지만, 악질적인 채팅은 계속되었고 곧 방송이 종료되었다.

트릭스 게이밍측은 선수 보호를 위해 악성 시청자들을 꾸준히 고소하고 있지만, 그 수가 워낙 많고 처벌이 약하다 보니 효과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최근 KKL 프로게이머들을 향한 과도한 비난과 욕설이 늘어나고 있지만 각 구단은 또렷한 해결책이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Y 뉴스 A 기자)

감독님과 마주 앉아 기사를 내려다보았다.

“찬희야, 네가 정 힘들면 해외 시청자들이 주류인 플랫폼으로 바꾸는 것도 논의 중이거든?”

“따라올걸요.”

“그래도 수는 좀 줄겠지. 너보다 제현이가 더 충격받은 것 같더라. 애가 정신이 나가 있던데.”

“걔는 그런 거 잘 못 견디잖아요.”

제현은 은근히 한 성질 하는 바른생활맨이라 불의를 보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더욱이 내 일이니 저러다 화병 나는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휴, 진짜 골치가 아프다. 다른 팀들도 이 정도는 아니라더라.”

감독님이 곤란한 듯 머리를 볼펜으로 긁적였다. 아무리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주기적으로 고소를 진행하는 것도 머리 아픈 일인 듯했다.

한국 게임계가 거칠긴 하지만 내 방송은 기사에 뜬 대로 도를 넘었다. 어쩌다 하필 내 방송이 이렇게 쓰레기장이 되었는지는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

어두운 감독님의 표정에 죄송하다고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내가 죄송할 일은 아닌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당분간 스트리밍하지 말고 경기에 집중하는 걸로 하자.”

“네.”

상담실을 나오자 뚱한 얼굴의 제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습실에 먼저 가 있으라니까.”

“같이 가려고 기다렸죠.”

내가 걷는 속도에 맞춰서 나란히 걸었다. 원래는 뭐라도 말을 붙이며 치근덕거리는 편인데 요즘 부쩍 생각이 많아졌는지 말수가 적어진 제현이었다.

“무슨 생각해?”

“음, 권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요. 프로게이머로서는 역시 e-스포츠 협회장일까요. 그렇다면 일찌감치 정치계에 발을 담그는 게…….”

“어디까지 가는 거야. 게임이나 해.”

뒤통수를 살짝 치자 제현이 짧게 웃다가 또 생각에 잠겼다. 저러다 진짜 정계 진출한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정장 입은 건 좀 보고 싶네.”

“쉽죠. 형을 위해서라면 메이드 복도 바니걸 옷도 입어 줄 수 있어요.”

“네가 입어 준다고 한 거다?”

어디 보자. 저번에 코스프레 용품 탭이 있는 걸 봤는데. 당장 핸드폰을 들어 재갈을 샀던 성인용품 숍을 켜자 제현이 서둘러 핸드폰을 빼앗았다.

“취소……. 진짜 형 앞에서 무슨 말을 못 하겠어요.”

“남아일언 중천금이랬는데.”

“그러면 형도 입어 주세요.”

“너 그런 취향이야?”

“네, 형이 입으면 뭐든 제 취향인데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저런 말을 밥 먹듯이 해 대는 제현에게 여전히 적응되지 않았다.

“헛소리하지 말고 빨리 와. 나 오늘 3위 탈출해야 해.”

“웅이 형이 랭킹 1위 유지 토 나온다고 좀 살살해 달래요.”

“웅이 형?”

“KJ 딜러 Fanta 선수요.”

“그건 아는데 둘이 친했어?”

“아니요.”

친하냐고 물어보면 다 아니라고는 하는데 제현은 심심찮게 대기실이나 경기장에서 자주 다른 팀 선수들에게 둘러싸이곤 했다. 데뷔한 지 한 시즌 만에 어지간한 프로들과 다 친밀했고 인기도 많았다. 몇 년째 친한 사람이라고는 우리 팀 사람들밖에 없는 나와는 정말 정반대였다.

“어디 가서 사람들 홀리고 다니지 마.”

“제가 무슨 권진형인 줄 아세요?”

제현이 자존심 상했는지 인상을 팍 쓰면서 말했다.

“그 형을 언제까지 그렇게 신경 쓸 건데.”

“평생이요.”

내 허리춤에 팔을 두르더니 그대로 들어 올렸다.

“평생 이러고 살 건데요.”

“너 이러다 허리 나간다.”

“제 허리보다는 형 허리 걱정하시는 게 좋으실걸요.”

운동이라고는 강제로 시키는 재활 운동이 다인 내 걱정을 하는 게 맞아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TGT Checkmate 랭킹 1위]

얼마 만에 다시 보는 1위 타이틀인지 찡하게 밀려오는 감동에 눈물이 다 나오려 했다.

사실 최초로 탈환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2위와의 명성 포인트 차이가 크지 않아 자꾸 엎치락뒤치락해서 완전한 탈환으로 칠 수 없었다.

제현을 붙잡아 앉혀 놓고 랭킹전을 이틀 내내 돌린 지금은 2위와의 명성 포인트 차이가 굉장히 안정적인 편이었다. 하루 이틀쯤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1위 자리를 빼앗길 차이가 아니었다.

“독하다, 독해. 저 형은 시즌 중에 어떻게 랭킹전을 저렇게 많이 하는 거지.”

“내버려 둬. 찬희, 쟤 저러는 거 하루 이틀이냐.”

“그래도 무리하면 안 된다는 말 듣고 나름 자제한 거예요.”

감동에 젖어 들 새도 없이 뒤에서 팀원들이 쑥덕거렸다. 하나같이 축하한다는 말도 없이 다들 약간 혀를 차며 한마디씩 얹어 댔다.

“황제현, 너도 꽤 많이 오르지 않았어?”

“응, 나 지금 3위야.”

“와, 내가 지금 7위인데 우리 팀 10위권 랭커가 셋이야? 대박이다. 이거 질 수가 없다.”

눈치도 없는 준의 말에 아직도 30위 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진이 마치 실직한 가장처럼 어깨를 떨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동형, 괜찮아요. KJ 탱커는 그마였는데 우승했어요.”

“걔는 신인이잖아…….”

“저랑 같이 몇 판 돌려요.”

“버퍼랑 탱커랑 2인 랭킹전 돌려서 승률이 얼마나 된다고. 차라리 제현이랑 하지.”

이번엔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거하게 났다. 지금 랭킹 1위를 버리고 3위랑 하겠다는 거야?

“동형, 파티 받아요.”

목을 양옆으로 꺾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동진이 그 소리에 커다란 몸을 떨며 두 손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렸다.

“아니, 찬희야. 내 말은…….”

“파티.”

동진이 내 무덤을 내가 팠다고 울상지으며 파티를 수락했다. 저녁 시간대라서 매칭이 금방 잡혔다.

“요즘 딜탱이 유행이래.”

“우리 팀은 형까지 공격적으로 가면 위험하지 않아요?”

“그건 그래.”

첫째도 안정, 둘째도 안정이던 KKL은 노잼이라고 평가받는 일이 허다했는데 요즘은 메타가 변하고 있었다.

스피릿 게임즈에서 상대적으로 딜러의 캐리력을 낮추고 타 클래스들이 게임을 주도할 수 있게끔 업데이트하고 있어서 동진도 이를 주시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딜탱 랭킹전에서 자주 써 보세요. 손에 맞으면 스크림에서 맞춰보면 되니까.”

“내 성향은 정석적인 탱커라서 굳이 딜탱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밴픽이 마무리되고 게임 로딩을 기다리며 지뢰 찾기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연습실이 어두워졌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뭐야, 정전인가?”

태평한 준의 목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동진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찬희야!”

씨발, 좆됐다. 다급한 동진의 외침을 들으며 바로 핸드폰을 들어 감독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어. 찬희야, 혹시 거기 랭킹전 돌리는 사람 없…….

“저랑 동진이 형이요.”

- 하…….

KKL 프로게이머들은 나이츠 게임 내 불건전 행위로 제재받으면 리그 내 징계도 따라왔다. 제재 사유에 따라 경기 출전 자격 정지부터 벌금도 부과되었다.

스피릿 게임즈의 운영 정책은 플레이어의 개인 사정은 물론이고 천재지변도 봐주지 않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했다. 프로게이머라고 사정을 봐주거나 특혜를 주지 않았다.

즉, 나와 동진은 지금 게임 매칭이 잡힌 채 탈주한 상태고 탈주 상태가 지속되는 경우 운이 나쁘면 탈주 페널티를 받을 수도 있었다.

겨우 한 판 탈주했다고 해서 반드시 탈주 페널티를 받는 것은 아니었으나 우리는 이름이 팔릴 대로 팔린 프로게이머였고 랭커권에서는 프로게이머라는 이유로 허위 신고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대로 정전이 계속되어 복귀를 못 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운이 나빠 탈주 페널티를 받는다면 그야말로 이보다 시즌을 망치는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피, 피시방……!”

“제일 가까운 곳 얼마나 걸렸죠?”

“일단 뛰면서 말해!”

동진이 핸드폰 플래시를 켜며 연습실을 박차고 나갔고 서둘러 뒤따라가려는데 몸이 허공에 붕 떴다. 제현이 나를 쌀가마 들 듯 들고 동진을 따라 뛰었다.

“야……!”

“상황이 급한데 내려 달라 하지 마세요. 발목 깁스 푼 지 얼마나 됐다고 뛰려 해요. 그리고 제가 훨씬 빨라요.”

“아, 엘리베이터 안 먹지. 제현아, 비상계단으로 뛰어.”

동진도 제현도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다가 유턴했다. 제현은 나를 들쳐 메고도 너무 빠른 속도로 뛰고 있어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두 사람은 추격전이 펼쳐지는 액션 영화처럼 우당탕거리며 계단을 두세 칸씩 뛰어내려 달렸다.

“거기 위치, 차로 가는 게 빨라요? 뛰는 게 빨라요?”

“차보다 뛰는 게 나아. 10분 거리.”

“무슨 소리예요. 거기 뛰어도 20분은 걸려요.”

“10분.”

단답형으로 대답한 동진이 건물을 나서자마자 속도를 올려 뛰었다. 제현도 나를 단단히 고쳐 잡더니 속력을 올렸다.

‘아니, 미친 인간들.’

당장 태릉 선수촌 들어가도 될 것 같은 인간들이 왜 프로게이머를 하고 있냐. 속으로 경악하며 토기를 참는 와중에 감독님에게 전화가 와서 서둘러 받았다.

- 찬희야, 이거 우리 숙소 건물만 정전 난 거거든? 근데 바로 복구 안 될 것 같다네.

“윽, 허윽……. 네.”

- 뭐야? 너희 지금 밖이야?

“피, 허헉…… 피시방 가고 있, 있어요.”

제현이 엄청난 속도로 뜀박질할 때마다 몸이 덜컹거리고 있는 데다가 속이 좋지 않아 신음이 절로 나왔다.

- 잘 생각했다. 혹시 모르니까 스코 쪽에도 연락 넣고 있는데 딱히 기대는 안 된다. 탈주 페널티만큼은 막아라.

“으윽, 네…….”

스코라고 줄여 불리는 일명 스피릿 게임즈 코리아는 나이츠 한국 서비스를 주관하고 있으나 소통도 안 되고 무능하기로 유명했다.

지난번에 트릭스 게이밍 스퀘어 선수 중 한 명이 허위 신고로 억울하게 무고 제재당했는데 아무리 트롤링을 하지 않았다고 증명해도 운영 원칙에 따라 제재가 적용되었으며 정확한 제재라는 말만 반복했고 그 선수는 그대로 KKCL 1게임 출전 정지와 벌금 50만 원이 부과되었다.

이번에 나와 동진이 탈주 페널티를 받게 된다면 그대로 1게임 출전 정지일 것이 분명했다.

한 게임을 통으로 날리는 것과 초반 몇 분을 잠시 자리 비우는 것은 천지 차이였으니 최대한 빨리 게임에 복귀해야 했다.

피시방 건물에 도착한 동진과 제현은 엘리베이터를 그대로 무시하고 계단으로 3층까지 뛰어올랐다.

“헉, 허억…….”

“후우…….”

빈자리에 달려들어 컴퓨터를 켰다. 부팅되는 짧은 시간 동안 셋 다 모니터 화면만 노려보고 있었다. 제현과 동진의 가슴팍이 미친 듯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내 양 옆자리에서 거친 숨소리만 오갔다.

얌전히 제현에게 안겨서 배달된 내 숨도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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