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58화 (58/100)

58화.

화이트 페이퍼 @whitepaper_trix

어떻게 루시리안 쓰면서 나한테 아무도 언급도 안 할 수 있는 거지? 배은망덕한 삼각이놈들������!! >> @dongguri1223 @Darling_jj @joker_tgt <<

-

만능힐러 달링 @Darling_jj

@whitepaper_trix 지운이 형 사랑해용♥♥♥♥♥ 제 맘 아시죵??

“아, 찬희 형만 쏙 빼놓고 혼나네.”

“난 이미 어제 전화로 털렸어.”

어제부터 세 명 모두 SNS로 제대로 삐진 지운에게 싹싹 비느라 바빴다.

“형은 왜 SNS 안 해요? 게임 커뮤니티 눈팅은 열심히 하시면서.”

제현이 핸드폰을 두들기다 말고 물었다.

“나 계정은 있어.”

“알아요. @chanini0903 근데 아예 안 쓰잖아요.”

“나 조금 소름 돋으려 그래.”

데뷔 초에 만들어서 나도 가물가물한 계정명을 줄줄 읊으니 이젠 무서울 지경이었다.

“서찬희 광팬이라고 했잖아요.”

“그 정도면 스토커 아니냐?”

“시끄러워, 김준. MVP 턱이나 내.”

“아니, 진짜로. 찬희 형 얘 계정 봤어요?”

“아니.”

“좀 봐요. 진짜 소름 끼치실걸요.”

SNS는 앱 자체가 안 깔려 있어서 가끔 인터넷으로 팀 공식 계정만 슬쩍 보는 게 다였다.

준이 다가와 자기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제현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급하게 준이를 번쩍 들어 바닥에 내동댕이쳤지만 이미 준의 핸드폰은 내 손에 있었다.

“아, 형 잠시만요……!”

나를 준이처럼 바닥에 내다 꽂을 사람이 못 되는 것을 알기에 대충 오른팔을 휘적거려 제현을 쫓으며 왼손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TGT Joker @joker_tgt

종교 ☞ @chanini0903

무슨 팔로워가 이렇게 많나 감탄하는데 팔로우는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공식 계정과 나만 해 놨다. 이 정도면 콘셉트에 잡아먹힌 게 아닐까.

갤러리로 들어가자 언제 찍혔는지도 모를 내 사진들이 와르르 올라와 있었다. 자고 있거나 게임에 열중해 있거나 어디를 보고 있는 건지 하나같이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지 않은 사진들이었다. 간간이 제현의 셀카나 숙소 풍경 사진도 있긴 했지만 거의 내 계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흐린 눈으로 제현을 보자 제현이 어색하게 눈을 깜빡이며 시선을 돌렸다.

“내가 SNS 할 필요 있냐?”

“하하…… 안 하셔도 되죠.”

어쩐지 게임 커뮤니티에서 제현을 ‘성덕’이라고 부르길래 뭔가 했더니 성공한 덕후의 준말이었다. 이러니 쳌메처돌이, 오타쿠 소리를 듣지.

“아주 티셔츠를 만들어 입지 그러냐.”

제현이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저 반응은…….

“너, 설마 이미 있어?”

“만든 건 없어요. 공식 굿즈 숍에서 파는 유니폼 정도만…….”

기가 차서 준의 핸드폰을 제현의 손에 쥐여 주자 제현이 얌전히 받아들고도 우물쭈물하며 내 주변을 맴돌았다.

“왜. 또 뭐.”

“다음에 본가 가면 들고 올 테니까 사인해 주시면 안 되나요?”

“……가져와…….”

내 사인이 뭐 별거라고 저렇게까지 좋을까 싶었다. 눈웃음까지 살살치며 방긋방긋 웃는 모습을 보면 덩치만 컸지, 어린애 같았다.

돌아서서 개인 스트리밍을 위해 방송 설정을 체크했다. 후원 잘 닫혀 있고, 채팅창 슬로 모드도 미리 걸어 두었다.

이제 방송 시작 버튼만 누르면 되는데 손이 저절로 멈추고 한숨이 나왔다. 채팅창 물이 유독 좋지 않은 편이라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초반에는 정상적인 시청자들도 있었는데 더러운 채팅창을 못 이기고 탈주하고 점점 고이다 보니 이제는 온갖 이상한 놈들만 찾아왔다. 내 방송이라기보단 그냥 자기들끼리 채팅을 치러 오는 애들이 더 많았다.

중간에 프런트에서 몇 번이나 경고하고 심한 몇 명은 고소도 했지만, 그때뿐이고 다시 돌아와 이젠 자정 불가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하기 싫어요?”

제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웹캠 각도를 맞춰 주었다. 거슬렸던 참이었는데 어떻게 알고 알아서 맞춰 주니 편안했다.

“하기 싫어. 진짜 싫어.”

“와, 형이 이렇게까지 싫어하는 건 또 처음 보는데. 여태 이랬어요?”

의자 위로 다리를 올려 무릎을 끌어안았다. 제현의 채팅창은 클린하고 유쾌한 분위기였다. 최근에는 그래도 여성 리그 팬층이 이전보다 두꺼워졌다고는 하지만 나이츠 유저 비율로 봤을 때는 아직도 남자들이 많아 보통 나이츠 프로게이머 개인 스트리밍 시청자들은 거의 9:1 비율로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KKL 입덕문으로 유명했던 진형도 시청자 비율이 6:4 정도에 그쳤었는데 제현은 지난 개인 스트리밍은 여자 시청자들이 90%에 가까웠다.

어느 여초 커뮤니티에 ‘요즘 프로게이머 얼굴 수준’이라는 게시글로 나이츠를 플레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얼굴이 알려진 덕인 것 같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후원 열어 달라고 하도 난리길래 열어 줬다가 음성후원으로 신음 소리를 녹음해 보내서 방송 경고까지 받은 전적이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주무르다가 역시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그냥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

“씨발…….”

오랜만에 듣는 걸쭉한 욕이 들리기에 게임이 그렇게 안 풀리나 하고 옆을 봤더니 찬희가 마이크도 꺼 놓고 의자에 퍼져 앉아서 쌍욕을 줄줄 읊고 있었다.

‘정말 은근히 입이 거칠다니까.’

아마도 평소에도 욕을 달고 사는 지운에게 알게 모르게 옮은 것 같았다. 그 형은 애교도 많은 편인데 그런 건 하나도 안 배웠으면서 욕만 배웠다.

“왜 그래요.”

“아, 미안. 신경 쓰지 마.”

침울한 눈으로 마우스를 다시 잡는 모습에 열받아서 화면을 보니 채팅창이 거의 천하제일 쓰레기 대회장이었다.

팬질이라 쓰고 사이버 스토킹이라고 읽는 시절에도 찬희의 개인 방송 채팅창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던 적이 많았던 기억이 나면서 그래도 무던한 표정으로 방송하기에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받는 줄은 몰랐다. 마이크를 끄고 찬희 쪽으로 몸을 숙였다.

“형, 저한테 매니저 주세요. 아이디 joker0430.”

“왜? VIP 아이콘이 더 예쁜데.”

스트리밍 매니저는 칼 모양의 아이콘이었고 VIP는 보석 모양이었다. 딱히 방송에 별 애정이 없으면서도 주변 프로게이머들에게는 일일이 VIP를 꼭 붙여 주는 찬희였다.

“빨리 줘요.”

- 쪼커 머함?

- 마이크 끄고 쳌메랑 얘기하는 듯?

- ㅁㅇㅁㅇ

- 아까 쳌메 욕하는 소리 들리던데 그거 때문인가ㅠㅠ??

- 왔다왔다

- 리하

웹캠에 얼굴을 비추자 다들 다시 방송을 시작한 것처럼 반겨 주었다.

“오늘 나이츠 보러 온 사람들은 이만 가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오늘 다른 거 할 것 같아서.”

방송 게임 카테고리를 나이츠에서 인디게임으로 바꿨다.

[TGT Joker - 솔랭]

[TGT Joker – 쓰레기 치우기]

방제도 바꾸고 화면을 띄웠다. 체크메이트 개인 방송 관리 화면이었다. 더러운 채팅들이 슬로 모드인데도 다량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서 이런 미친놈들만 모아 놨나.

- 헐 도방레전드

- 쳌하쳌하

- 매니저 달았나 보네?

- 헐 저기 채팅창 유명한 건 알았는데 진짜 장난 아니다;

- 트릭스 게이밍 관리 안 하고 뭐 하냐;;

“이제 칼부림 한번 해 보려고요.”

- 우리 방제봐ㅋㅋㅋㅋㅋ

- 가보자고ㅋㅋㅋㅋㅋㅋ

- 쓰레기 치우기 게임 ONㅋㅋㅋ

사실 하나같이 쓰레기들이라 전부 차단 먹여야 끝날 것 같지만 내가 이렇게 하나씩 썰다 보면 눈치가 있는 놈들은 그래도 자중할 게 분명했다. 내 시청자들이 가서 분위기 전환도 좀 해 줄 테고.

눈에 보이는 대로 영구 밴을 족족 먹이자 체크메이트 방송 채팅창이 술렁거렸다.

- 대깨쳌 새끼들 나가 뒤져ㅋㅋ 얘가 어떻게 한국 탑 버퍼? 버퍼 다 뒤졌냐 (차단됨)

- 형 내 엉덩이 대기중♥ 박아줘요♥ (차단됨)

- 체크메이트 좆고아련 (차단됨)

- 섹스온더비치!!섹스온더비치!!섹스온더비치!! (차단됨)

- 형 자지 냠냠 앙앙 싸는 중 (차단됨)

- 하아앙하아앙하아앙하아앙 (차단됨)

- 전방에 쳌메 정액 발싸 (차단됨)

- ?

- 머임?

- 쎾쓰쎾쓰쎾쓰쎾쓲ㅆㅆ (차단됨)

- ㅅㅂ 지금 조커가 우리 썰고 있는데?

- 헉헉 나 쌀 것 같아 (차단됨)

- 겜 안 할 거면 자살해 겜 못할 거면 자살해 (차단됨)

“진짜 쓰레기 너무 많다. 그렇죠?”

우리 쪽 채팅창에 호소하자 다들 함께 분노해 주었다.

- 진짜 저런 애들 싹 다 모아다가 고소해서 인생 설계 다시 하자

- 와 진짜 합의금만으로 한남더힐 뽑겠네

- 이걸 왜 조커가 하고 있냐 트릭스 게이밍 일해라;

- ㅠㅠㅠ저걸 어떻게 버티고 있었대

- 진짜 저러고 싶을까; 콩밥 먹이자

한참 신나서 차단을 먹이는데도 게임을 하느라 몰랐는지 채팅창을 슬쩍 본 찬희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느라 인상을 쓰며 화면에 다가왔다.

“이게 무슨……. 너 뭐 해?”

이것도 하다 보니 요령이 붙어서 1초에 거의 3명씩 차단을 먹이고 있었다.

- ㅆㅂ 좆커가 이기나 우리가 이기나 가보자고 쎅스섹스 (차단됨)

- 아앙 나도 차단줘 하앙흐앙하앙 (차단됨)

- 그만하자

- 그래 찐따 새끼들아 쟤 지금 영구 밴하고 있음 오늘은 그만하자;

- 왜 갑자기 지랄이래?

- 몰라 시발; 좆커 방송 화면 봐 손 존나 빨라

- 쟤 에임 존나 정확한 거 보니까 FPS 해도 잘할 듯 시발ㅋㅋㅋㅋ

몇몇이 내 방송에도 흘러들어와서 물을 흐리기에 1개월 이상 팔로우한 시청자들만 채팅을 칠 수 있게 하니 다시 클린해졌다. 다시 열심히 채팅창을 올리며 차단을 넣는데 갑자기 매니저 권한이 없어졌다.

“그만해. 한두 명도 아니고 차단해 봤자 소용없어.”

“그렇다고 저렇게 두고 참아요?”

“나라고 안 해 본 거 아니라고.”

방송 시작 전부터 하기 싫어죽겠다는 표정으로 축 처져 있던 사람이 이미 해탈한 표정으로 저러자 내가 다 열불이 터졌다. 그렇다고 계속 저렇게 내버려 둬?

“매니저 다시 주세요.”

“싫어.”

“빨리요.”

내 단호한 표정을 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는 방송 종료를 누르고 대뜸 연습실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저도 방종할게요.”

급하게 멘트를 쳐 방송 종료를 알리고 뒤따라 나갔다. 찬희는 자주 저런 식이었다. 할 말이 아무리 많아도 상대에게 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입을 다물어 버린다.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차곡차곡 삼키고 자리를 피하기 급급한 사람이었다. 저 뒷모습을 쫓아 달렸던 게 벌써 몇 번이었다.

“형……!”

허리를 휘감아 붙잡자 가벼운 몸이 내 품 안에 쏟아졌다. 키는 나보다 10cm보다 조금 더 작은 정도인데 체격 차이가 나다 보니 나보다 훨씬 작게 느껴졌다.

“왜 따라와.”

“그렇게 가는데 어떻게 안 따라가요.”

눈도 마주쳐주지 않고 지쳐있는 얼굴을 보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화…… 났어요?”

“내가 화낼 일이 뭐가 있어. 네가 네 시간이랑 손목 관절 시궁창에 버리겠다는데.”

“그렇지만 저렇게 그냥 놔두면 백날 저럴 텐데. 보는 저도 열받는데 형 속은 어떻겠어요…….”

내 말에 팔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린애를 타이르듯 천천히 말을 꺼냈다.

“내가 너무 하기 싫은 티를 냈나 싶다. 네가 신경 써 준 건 기쁜데 내가 말했잖아. 내가 안 해 본 거 아니라고. 차단? 어차피 계정 새로 파서 다시 와. 고소? 해 봤자 그렇게까지 센 처벌도 못 받고 효과도 미미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초연한 얼굴로 ‘어쩌겠어?’ 했다.

“속상해요.”

“그러지 마. 그럴 가치 없는 애들이야.”

찬희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이 사람의 인생에는 왜 이렇게까지 걸림돌이 많고 왜 나는 그 길을 평탄하게 해 줄 만한 힘이 없는가. 속상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5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