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
“저기…….”
가벼운 것부터 무거운 것까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막상 말하려니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내 팔을 잡은 손을 놓고 흐른 눈물 자국을 무성의하게 슥슥 닦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 애틋한 마음을 갖게 하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한 편으로는 계속 붙들고 있고 싶었지만 붙잡고 있는 손에 힘 조절이 잘 되지 않아 팔을 부러뜨리기 전에 놓아주었다.
“그러니까…….”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서 머릿속에서 말이 자꾸만 부딪혔다.
“음, 아니에요.”
급기야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라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도망치듯 뛰면서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저런 상태인 사람을 혼자 둘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수도 없는 이 상황이 그저 막막했다.
그 짧은 사이에 땀을 얼마나 흘린 건지 젖은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고 있었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옮겨 자판기 앞에 섰다. 염탐하던 SNS에서 찬희가 마시는 모습이 자주 보이던 이온 음료를 뽑았다. 음료수병에서 느껴지는 냉기에 몸을 살짝 떨었다.
음료수병을 들고 서둘러 다시 주차장으로 뛰어갔는데 찬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갔나 싶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자 아까 내가 퍼질러 앉아서 시간을 보냈던 구석 자리에 가만히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작은 머리가 보였다.
‘진짜 저런 사람을 어떻게 혼자 두냐.’
저대로 주머니에 넣고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나는 스토커로 시작해 무난하게 납치범으로 각성했다. 더한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좀 더 다가갔다.
“이거 드세요.”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무더운 한여름 날씨의 주차장은 땀이 저절로 줄줄 흘렀는데 내가 건넨 음료수병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는 찬희의 얼굴에는 땀이 한 방울도 맺혀 있지 않았다.
새하얀 목선을 따라 시선을 내리자 얇은 여름 유니폼에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조금 불순한 생각이 떠오를 것만 같아 급하게 손을 잡아끌어 직접 음료수병을 쥐여 주었는데 맞닿은 손이 매우 차가웠다.
“감사합니다.”
“왜 우셨어요?”
바닥에 내려앉은 시선은 어쩐지 올라오지를 않았다. 젖어 있는 눈가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참으며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울지 마세요. 잘하셨으니까.”
충분히 잘했고, 당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다만, 팬이라기엔 조금 음험한 부분이 없잖아 있었기에 민망해져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돌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녹아내리기 직전의 상태였고 그 뒤로 꼬박 이틀을 열감기로 앓아누웠다.
열이 걷히고 나자 전에 없이 정신이 명료해졌다. 한결 가벼워진 몸을 벌떡 일으키며 생각했다. 프로 데뷔해야겠다. 역시 내가 딜러를 하는 수밖에 없겠다.
합법적으로 그 사람의 최측근이 되어 근처에 머물 방법은 역시 그거밖에는 없겠다 싶었다.
아버지가 보양죽을 끓여 차려 주셔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평소 이렇게 아픈 적이 없이 튼튼하던 막내아들이 앓아누웠던 것이 신경 쓰였나 보다.
“아버지.”
“왜.”
“저 프로게이머 하려고요.”
상견례 자리로 유명한 고급 중식당 ‘황제연화’를 자식들이 이어 주길 바라며 요리 공부를 삼 남매가 어렸을 때부터 부단히 시켰지만 첫째 형은 갑자기 양식을 하고 싶다며 자기 멋대로 프랑스로 유학을 가 버리고 제대로 중식의 길을 걷나 싶었던 둘째 누나는 스타 셰프의 아래에서 배우고 싶다며 서울로 상경. 남은 것도, 믿을 놈도 나 하나라고 생각하던 아버지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다. 한참 동안 내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렸다.
“안 된다고 해 봤자 할 거 다 안다. 네가 말린다고 말려지는 애도 아니고.”
“네.”
“할 거면 제대로 해라. 어설프게 하지 말고.”
격하게 반대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단번에 순순히 허락해 주실 줄은 예상하지 못해 수저를 든 채로 굳어 있었다.
“밥 두고 뭐 하냐. 식기 전에 먹어라.”
“넵.”
엄하고 딱딱한 분인데 하염없이 측은하게 나를 보는 모습이 어쩐지 앓다가 일어난 내 꼬락서니가 영 불쌍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릇 가득 있던 죽을 깨끗하게 비워 냈다.
***
“뭐?”
“나 다음 윈터 시즌에 트라이앵글 딜러로 들어간다고.”
성환이 아이스크림 하드를 한입 크게 베어 물며 말한 소리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팀 트라이앵글부터 딜러였던 킹이 이번 시즌에 북미로 이적한다는 소식은 공공연하게 돌았다. 그 자리를 성환이 채울 줄은 몰랐다.
“계약서 찍었어? 아니면 다시 생각해 봐.”
“왜? 너 트라이앵글 팬 아니었어? 내가 네 최애팀 간다는데 반응이 왜 그래?”
수비적인 성향이 강한 딜러인 성환은 와일드캣 문즈에 있을 때는 강점으로 두드러졌지만, 트라이앵글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얘를 영입하려는 프런트도 미친놈들 아닌가.
“진짜 아니야.”
“야, 너 요즘 딜러 열심히 하더니 내가 체크메이트랑 합 맞춘다는 게 부러워서 그래?”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거의 최종 목표쯤으로 잡은 자리에 벌써 덥석 들어간다는 소리인데 당연히 부러웠다.
“근데 진짜 너 다시 생각해.”
“황제현, 질투하지 마.”
여름도 끝물이라 바람이 찬데도 매미가 큰 소리로 울었다. 손에서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줄줄 떨어지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성환이 잔뜩 풀이 죽어서 전화를 건 것은 몇 달이 지나고 나서였다.
- 네 말이 맞았어. 내가 진짜 미쳤다고 이 팀에 들어와서…….
솔직히 복에 겨운 소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성환은 게임 커뮤니티부터 해서 생중계 채팅창, 기사 댓글 가리지 않고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고 있기는 했다. ‘욕받이 무녀’라는 별칭도 생겼다.
초반에는 그래도 무던하게 했는데 욕을 하도 먹다 보니 애가 더 의기소침해져 본 실력이 다 나오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야, 울어?”
- 안 울어. 시발……. 내가 진짜 무슨 죽을죄라도 지었냐? 캐리하면 나댄다고 욕 처먹고 못 하면 못 한다고 욕 처먹고 진짜 서럽다.
핸드폰을 통해 들리는 목소리는 축축했다.
“욕먹어도 좋으니까 그 자리 나 줘.”
- 가져. 제발 너 가져. 독이 든 성배를 좋다고 퍼마신 내가 등신이다.
욕이라면 얼마든지 먹어도 좋았다. 애초에 나는 체크메이트를 옆에 두고 지는데 그 정도 욕은 들을 만도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종종 하는 진성 체크메이트 악개였다.
“맞아. 나 이제 랭커 달았어.”
- 하, 몇 위인데?
“지금 78위.”
- 그 정도면 슬슬 컨택 들어오지 않아? 너 게임 커뮤니티에도 자주 올라오던데.
“음, 들어오긴 하는데…….”
프로 데뷔의 이유가 오직 체크메이트 옆자리 하나라서 트릭스 게이밍이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좀 더 해 보려고.”
2군의 트릭스 게이밍 스퀘어라도 좋으니 딜러 자리가 비면 좋겠는데 쉽지 않았다. 한숨을 크게 푹 쉬었다.
- 너는 나 같은 실수하지 마. 진짜 팬심에 체크메이트랑 합 맞추고 싶어 하는 거 아는데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글쎄.”
성환의 투정을 조금 더 들어 주다가 통화를 종료했다.
‘팬심에 합 맞추고 싶어 한다’라니 단순히 팬심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불순한 감정이 섞여 있는데 이렇게 팬심으로 대충 뭉뚱그려도 되는 걸까.
진형과 합을 맞추는 찬희를 볼 때도 느꼈지만 성환과 함께하는 경기를 보면서 확실하게 느꼈다. 내가 더 높이 보내 줄 수 있다.
오직 나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느꼈다.
***
“그러니까 형이랑 저랑 처음 만난 건 그 주차장에서였어요.”
“그럼 그 음료수 준 사람이 너였어?”
“네.”
“아니,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제현이 쑥스러운 듯 볼을 긁었다.
“좀 무서울까 봐…….”
“뭐가? 네가?”
“솔직히 좀 그렇잖아요. 데뷔 전부터 알던 사람인데 경기장까지 찾아온 적 있고 팀까지 자기 하나만 보고 왔다 그러면 좀 크리피하지 않아요?”
“왜 나는 좋은데.”
“예?”
제현이 멍청한 표정을 했다.
“너는 직선으로 오잖아.”
누구보다 곧게,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고 직선으로 오는 데다가 정면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무서울 리가 없었다. 거기다 애초에 저 얼굴이면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다가와도 프리 패스였다. 턱을 괴고 제현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네가 중딩 꼬꼬마 때부터 나한테 빠져서 한눈 안 팔고 나한테 다이렉트로 왔다는 소리를 내가 싫어할 이유가 있나?”
제현이 내 말을 듣고서야 멍청한 표정을 지우고 해맑게 웃었다.
“근데 저 중학생 때도 180 넘었는데요.”
“꼬꼬마 취소.”
고개를 내 쪽으로 숙이나 싶더니 짧게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졌다.
“저 그때 형 우는 거 보고 무슨 생각 했는지 알아요?”
프로 생활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는데 그때 딱 한 번 참지 못하고 울었다. 하필 그때 만났나.
미간을 좁히자 제현이 손가락으로 내 미간을 꾹꾹 눌러 펴 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형은 인상 쓸 때 섹시하니까 밖에서 그러지 마시라고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아무튼 제가 그때 든 생각이 사람이 미치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거였어요.”
제현이 손가락으로 내 눈가를 쓸었다.
“그때 그냥 제 주머니에 넣고 튀고 싶었어요.”
“내가 주머니에 어떻게 들어가.”
“몰라요. 제가 괜히 저더러 미쳤다고 하겠어요? 저는 형 한정으로 상식이라는 게 하나도 안 통한다고요.”
제현이 이틀간 산책하러 못 나간 대형견처럼 달려들어 연습실 바닥을 뒹굴었다. 때마침 연습실 문이 열렸다. 엉겨 붙은 자세로 고개를 젖히자 동진, 준과 눈이 마주쳤다.
“너네 뭐 하냐?”
“하, 하하. 한판승!”
“뭐야, 제현아, 너 유도도 좀 하냐?”
각종 운동에 관심이 많은 동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뇨.”
“진짜? 자세가 좋은데. 배울 생각 없어? 찬희랑 준이는 운동이라면 질색해서.”
“하하, 글쎄요.”
슬쩍 일어나 제현 뒤에 숨었다. 영업 모드일 때의 동진은 조금 피곤했다. 유도뿐만이 아니고 권투, 주짓수로 시작해 요가, 필라테스까지 각종 장점을 늘어놓으며 언젠가 같이하겠다는 소리를 들을 때까지 붙잡고 놔주질 않았다.
숨는다고 숨었는데 동진의 팔이 쑥 들어와 무슨 횟집에서 생선들 듯 나를 건져 올렸다.
“서찬희, 너는 오늘 병원 다녀온 거 아냐? 게임해도 된대? 벌써 하려고?”
“의사 선생님이 해도 된다고 하셨고……. 형, 저 그마에요.”
“뭐?”
“그마라고요.”
동진과 준의 입이 쩍 벌어졌다.
“형, 저 마딱이 체크메이트 사진 찍어도 되나요?”
이미 핸드폰을 들어, 내 모니터에 떠 있는 클라이언트 화면을 잔뜩 찍어 대는 준이었다.
“레전드다. 그랜드 마스터 체크메이트.”
“김준, 너 찬희 형 그만 놀려.”
“놀리는 게 아니고 신기해서 그러지.”
만능힐러 달링 @Darling_jj
달밑쳌 달링 밑 마딱이 쳌메ㅋㅋ
그마래요 에베벱베
(사진)
“이런데도 놀리는 게 아니라고?”
제현이 준의 핸드폰과 멱살을 함께 쥐었다. 손이 얼마나 빠른지, 벌써 SNS에 올린 모양이었다. 허허, 헛웃음을 지었다.
“황제현, 황제반점 계정 데려와.”
“네, 형님.”
“나 오늘 랭커 복귀 못 하면 은퇴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형,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건 좀…….”
“누가 농담이래?”
진심이 가득 담긴 내 희번득한 눈빛을 본 제현이 몸을 움칠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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