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52화 (52/100)

52화.

“응, 너 커뮤니티 안 보냐? 차니니식 버퍼 운영법으로 맨날 메인 떴는데.”

딜러를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왜 굳이 버퍼를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는 나도 버퍼를 잡고 있었긴 하지만 이 사람은 다르지 않은가.

나이츠 공식 아마추어 대회에 나갔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인터넷을 쥐잡듯이 뒤져서 겨우 관련 게시글을 찾을 수 있었다.

[나이츠 게시판]

이렇게 생긴 놈이 왜 나이츠 하는 거임?

(사진)

이번 공식 나이츠 아마추어 대회 나온 딜러인데 어이없음; 키도 존나 커

댓글 25개

ㅇㅇ : 거기 차니니 팀 아님?

ㅅㅅ : 맞음 얘네 이번에 KKCL 올라올 것 같던데ㅋㅋ 아 얼굴 ㅈㄴ 어이없네

ㄱㄱ : 근데 무슨 남자 사진을 걸그룹 홈마처럼 찍어놨음?

└ㅁㅁ : 아나운서 찍으려고 대포 들고 갔다가 인생샷 찍어 버림ㅋㅋ

└└ㄱㄱ : 개웃기네ㅋㅋㅋㅋ

멀끔한 인상의 남자가 주로 찍혀 있었다.

[Team Triangle 딜러 King]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었다. 이 사람이 딜러라면 탱커-힐러-딜러-버퍼 순으로 착석하니 이쪽이…….

주로 초점이 딜러에게 맞춰져 있어 흐리게 찍혀 있었다. 흐린 사진으로 봐도 곧 쓰러질 것 같은 파리한 안색으로 앉아 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좀 더 사납게 생겼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한 인상에 놀라면서도 곁들이로 찍힌 사진들을 저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머리를 거치지 않고 손이 저절로 하는 짓이었다.

아마추어 대회는 관련 게시글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서울에서 열리기에 미성년자 신분으로 수원에서 서울까지 올라가기도 힘들었다.

팀 트라이앵글이 KKCL에 오르고 나서야 내 스토킹은 한결 수월해졌다. 경기 일정도 사이트에 나와 있는 데다가 경기가 있는 날은 공식 중계를 통해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제일 좋은 점은 공식 프로필이 올라와 있다는 점이었다.

[Team Triangle 버퍼 Checkmate 서찬희 18세]

“서찬희라니. 이름까지 멋있을 필요가 있나…….”

최단기간 나이츠 1부 리그 입성에 성공한 기적의 아마추어팀. 딜러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몰아주는 딜러 원맨팀이 많은 나이츠 리그에서 버퍼가 가장 유명한 독특한 팀. 팀 트라이앵글을 수식하는 말은 대체로 이랬다.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다른 팀원들과는 다르게 흔한 SNS 계정도 하나도 없고 나이츠 리그에 오기 전까지는 뭐 하고 살았는지도 인터넷에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른 팀원들의 계정을 전부 뒤져 가며 곁들이로 찍혀 있는 사진을 저장해 두곤 했다.

사진이 찍힌다는 걸 모를 때는 참 자연스럽게 찍히는데 유독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을 때는 뚝딱거리고 있었다. 사진 찍히는 걸 별로 안 좋아하나. 프로필 사진도 어정쩡한 포즈로 세상 어색하게 찍힌 것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메마른 흰 얼굴을 보는 것도 익숙해졌다. 다른 애들이 걸그룹이며 여배우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나는 찬희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 나이츠에 접속해 있는 찬희를 보며 ‘잘 보고 있어요.’라고 보내려다가 그런 나 자신이 크리피하게 느껴져 그만두곤 했다.

***

시간은 부지런하게 흘렀고 찬희는 정글과도 같은 프로 신에서 나름대로 인상적인 경력을 쌓고 있었다.

창단 이래 최저 성적 3위, 최고 성적도 3위라는 이례적인 성적을 내고 있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솔직한 팬의 심정으로는 한 경기라도 더 보고 싶어 제발 결승전 가게 해 달라고 빌고 빌었지만, 준결승에서 번번이 무너졌던 트라이앵글이었다.

무던하고 안정적인 성향의 경기들을 보며 최근에 딜러 계정을 새로 만들어 플레이하고 있었다.

초반에야 신들린 듯이 경기를 펼치는 찬희를 보고 배우는 것은 좋았지만 보면 볼수록 그런 찬희와 함께 플레이하면서도 패배하는 딜러에 대한 분노가 커졌던 탓이 컸다.

[Chanini : ㄴ]

[Chanini : 닌ㅁ]

[Chanini : 님ㅁ아]

그래도 가끔 1:1을 보내와서 함께 플레이를 몇 판 했지만 근래에는 나도 찬희도 다른 계정을 새로 키워서 동접 시간이 길지 않았던 터였다. 평소에 오타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오타가 가득하게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 당황했다. 해킹이라도 당한 건가.

[황제반점 : ?]

[Chanini : 님 잘살ㄷ조]

[황제반점 : 네ㅋㅋ 무슨 일 있어요?]

쿵쿵거리는 심장을 무시하며 평온한 척 채팅을 쳤다.

[Chanini : 앚니 갑자기 생갇나서]

[Chanini : 겜ㅁㄱ?]

대뜸 음성채팅을 걸어와 받자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숨을 푹푹 내뱉는 소리만 들렸다. 스프링 시즌을 3위로 시즌을 마무리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황제반점 : 취했어요?]

- 응……. 아니.

[황제반점 : 취한 것 같은데]

평소와는 달리 목소리가 나른했다. 취한 사람들은 보통 텐션이 높아지던데 이 사람은 눈에 띄게 변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 왜 매칭 안 돌리지.

자기가 파티장이라 본인이 돌려야 하는데도 바로 매칭을 잡지 않는 나를 탓하는 목소리였다.

- 나 진짜 안 취했는데…….

[황제반점 : 술 좀 깨고 해요]

- 깰 술이 없다니까……. 내 말 듣고 있어? 매칭 돌려.

[황제반점 : ㅋㅋㅋㅋㅋ]

- 왜 웃지. 하, 나 졸리니까 빨리 잡아 줘.

조르듯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귀여웠다.

- 졸려…….

[황제반점 : 그냥 주무세요]

- 너, 나랑 게임 한번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모르지? 나 그래도 꽤 유명한데…….

[황제반점 : 알아요]

- 알긴 뭘 알아.

평소엔 딱딱하기만 하던 사람이 웃음을 흘렸다. 느릿한 목소리가 끝으로 갈수록 흐려지더니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들렸다. 키보드에 올려져 있던 손을 꽉 쥐었다.

“나 진짜 미쳤나 봐.”

곤히 잠든 숨소리를 듣고 있었을 뿐인데 천천히 고개를 쳐든 중심부에 당황스러웠다. 같은 남자한테 설 수도 있는 건가? 심지어 색기가 있다거나 유달리 예쁘게 생긴 사람도 아니었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가라앉으라고 눈을 감고 주먹을 다잡았다.

***

그 뒤로 은근한 죄책감에 핸드폰 배경 화면으로 되어 있던 찬희의 뒷모습 사진을 기본 화면으로 바꾸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이버 스토킹을 완전히 접지는 않았다.

마치 숨기기라도 해야 하는 일처럼 핸드폰이 아닌 외장하드에 차곡차곡 저장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괜히 밋밋해진 핸드폰이 거슬렸다.

“황제현.”

“어, 성환아. 프로 데뷔하고 학교 잘 안 나오더니. 오랜만이네.”

“최소 출석 일수는 채워야 하니까. 아, 맞다. 너 아직도 트라이앵글 팬이냐?”

“어, 어…….”

“나 이번 트라이앵글이랑 KJ 스노우 준결승전 직관 티켓 받았는데 못 갈 것 같아서 너 줄까 하고.”

“대박 좋아. 나 줘.”

고급스러운 봉투에 담긴 실물 입장권이었다.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은 유독 여자 팬들이 많아 티켓팅이 빡센 편이라 한 번도 티켓팅에 성공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좋아?”

“응, 고마워.”

종이 한 장에 웃음이 실없이 계속 흘러나왔다.

“내 경기 보러 오라고 그렇게 부를 때는 한번을 안 오더니.”

“가려고 했어.”

“트라이앵글이랑 붙을 때 말이지.”

“응.”

사람을 앞에 놓고 빈말도 없이 대놓고 저렇게 나오니 할 말이 없다며 성환이 구시렁거렸다.

***

8월 말의 날씨는 무더웠다. 간밤에 에어컨을 너무 강하게 틀고 잤더니 아침부터 열이 올라 몽롱했다. 아침 조깅도 건너뛰고 먹히지 않는 밥을 억지로 위장에 욱여넣고 서울로 향했다.

“아…….”

목이 부었는지 목소리가 잔뜩 갈라져 나왔다. 그냥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결국 무거운 몸을 경기장으로 끌고 왔다.

혹시나 이번 경기에서 이기게 되면 체크메이트가 데뷔 이래 최초로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는 건데 그 순간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항상 지친 것처럼 힘없이 무표정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이 잘 안 됐다. 상기된 얼굴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리그 관계자를 통해 받아 낸 표라서 그런지 운 좋게 트라이앵글 쪽과 무척 가까운 자리였다. 입장 때부터 내 시선은 단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으로 봤을 때도 무척 마른 사람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몸이 무슨 종잇장 같아서 옆에서 숨을 좀 크게 쉬면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입도 다물지 못하고 눈앞에서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진짜 숨 쉬고 움직이는 실제 사람이라는 게 이제야 실감이나 눈을 깜박이는 시간도 아까웠다.

“찬희야, 핫팩 이거 하나밖에 없대.”

“괜찮아요. 저한테 하나 있어요.”

내 거의 근처까지 다가와 핫팩을 받아 갔다.

‘와, 걸어 다니네.’

당연한 소리지만 너무 놀라워 입을 벌린 채 멍청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늘 KJ를 이기고 결승에 간다면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나도 거기에 보러 갔었다고 말해 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첫 세트부터 전황이 좋지 않았다.

-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조금 더 섬세한 전투가 필요합니다.

- 네, 아까부터 달링 선수의 포지션이 아쉬운데요.

- 양쪽 모두 이제는 더 물러날 곳이 없어요!!! 싸워야 합니다! 한판 붙자. 다 나와!!!

그 순간 화면이 회색으로 변하면서 퍼즈가 걸렸다. 나는 이미 피 칠갑이 된 찬희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안 그래도 허여멀건 얼굴이 파랗게 변한 것 같았다.

손으로 막 닦아 내서 흰 얼굴에 코피가 아무렇게나 번져 있었다. 심판이 건네준 휴지로 거칠게 얼굴을 닦으며 인상을 쓰는 모습이 어딘가 선정적이라 당황스러웠다.

내가 한참 그 모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경기는 재개되었고 퍼즈 전에 위치 파악이 가능했던 KJ는 빠르게 대응했다.

1세트 패배였다. 게임이 끝나기가 무섭게 찬희는 벌떡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다음 경기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장 저 뒷모습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아쉬워 다리만 덜덜 떨었다.

도저히 4세트 경기를 끝까지 볼 수 없어 주차장 쪽으로 나와 있었다.

나이츠는 누가 뭐래도 팀 게임인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경기였다. 혼자 애쓰는 데도 정도가 있다.

아침에 먹고 나온 약이 효과가 떨어졌는지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냉방이 센 편도 아닌데 열이 나는 몸은 경기장 내부가 너무 춥게 느껴졌다.

한참을 푹푹 찌는 주차장 구석에 앉아 있다가 어차피 질 경기라면 이대로 집에 돌아갈까 싶다가도 몇 초라도 실물을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에 건물 안으로 향했다.

“어.”

앞을 제대로 보지 않고 걷다가 누군가 내 몸에 부딪혀 튕겨 나가는 것을 잡았다. 가냘픈 팔이 한 손에 들어올 것 같았다. 내 팔을 붙잡아 오는 흰 피부가 익숙했다. 맙소사 세상에. 서찬희였다. 바로 눈앞에 그것도 실물이었다. 꿈만 같았다.

“괜찮으세요?”

“……네, 죄송합니다.”

찬희의 손은 매우 차가웠다. 그래서 아까 핫팩을 그렇게 쥐고 있었나.

찬희가 벌써 여기에 있으니 내가 바깥에서 냉방을 피하는 동안 경기가 그대로 끝난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기에 몽롱했던 시야가 또렷해졌다.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지만, 꼼꼼히 살펴보니 운 사람처럼 눈가가 발개져 있었다.

놔 달라는 말 대신 팔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그 사이에 눈가에 차오른 눈물이 얼굴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모습이 영화 속 슬로 모션 장면처럼 느릿하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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