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제현이 늘어져 있는 내 것을 쥐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리저리 쓸리느라 너무 민감해진 탓에 손길이 닿자 조금 쓰라렸다.
“흐으…….”
“저는 형이 섹스할 때 냉동 참치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일 줄 알았어요. 처음에 대뜸 제 다리 사이에 자리 잡는 거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언젠가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제현이 피식 웃었다. 술김에 이러는 거니 한 발 빼고 나면 흥미를 잃으리라 생각하던 때였다. 철저한 오산이었지만.
“운동 신경은 약에 쓸래도 없는 사람이 허리 놀림 유연한 거 보면 진짜 종잡을 수가 없어요.”
한탄이라도 하듯 중얼거리며 여태 내 안에 머무르고 있던 제 것을 슬슬 빼냈다.
“아쉬워요. 아침까지 형 안에 있고 싶다.”
“읏…… 안 돼. 너 등산 가야 해…… 흐윽…….”
아쉬운지 제현이 입구에 자기 것을 문질렀다. 아직도 저릿한 여운을 즐기며 시트에 몸을 파고들었다.
숨을 다 고르고 나니 그제야 주변이 좀 눈에 들어왔다. 도로 옆 외진 공터 같았는데 나무나 풀이 무성해서 지나다니는 차들은 쉽게 우리 차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밴이라 공간도 널찍하고 차고가 높아서 다행이지 일반 세단이었으면 나나 제현이나 여기저기 부딪힌다고 혼이 났을 것 같았다. 그래도 좁은 차 안은 몸이 서로 엉겨 붙는 맛이 있었다.
제현은 앞좌석을 뒤져 찾아낸 물티슈를 뽑아 든 채로 닦아 내기 전에 한 번 더 내 몸을 감상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차 키가 너한테 왜 있어?”
“아까 장 보러 갈 때 제가 운전해서 갖고 있었어요.”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 있대.”
“아, 저 버스 타고 오면서 내내 차 세우고 형이랑 떡 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했거든요.”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상스러운 말에 동공이 사정없이 떨렸다.
“조금 더 나가면 더 괜찮은 곳도 있었는데 제가 좀 급해서.”
“차 키 계속 갖고 있던 것도……?”
“혹시 모르잖아요. 형이랑 카섹스 할 수 있을지도.”
“너 되게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소리 잘한다…….”
“그런 생각밖에 안 하는데 어쩌겠어요. 형은 여기에서 저랑 수천 번도 넘게 뒹구셨거든요.”
제현이 ‘여기’라고 말할 때 자기 머리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갑자기 포식자 앞에 알몸으로 내던져진 피식자처럼 느껴져 마른침을 삼켰다. 열어 둔 창문에서 찬바람이 들이치며 풀냄새가 났다.
가슴이며 배에 튄 것을 꼼꼼하게 닦아 주었다. 슬슬 일어나려고 상체를 기울이자 안쪽에 남아 있던 것이 흘러나오는 느낌에 몸을 바르르 떨고 있자 제현이 다시 나를 눕히고 손가락을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딱히 나를 자극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의 손길에 다시 흥분한 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아 손으로 입을 막았다.
“왜 막아요. 저 말고 아무도 없는데.”
말은 능글맞게 하면서도 내가 손가락 움직임에 사정없이 몸을 움찔거리자 조금 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제현이었다.
얼추 다 닦아 내고 목 끝까지 밀려 올라가 있는 티셔츠를 내렸다. 한바탕 흘린 땀이 식으니 점점 춥게 느껴졌다. 제현이 나를 보고 잠시 고민하다가 뒷좌석에서 잔뜩 구겨져 있는 점퍼를 꺼내 들었다. 등 뒤에 JOKER라고 쓰여 있는 유니폼이었다.
“이게 왜 여기 있어?”
“저번 경기 때 차에 두고 갔다가 까먹었어요. 까먹길 잘했네요.”
원래도 기성복을 입으면 헐렁하니 오버 사이즈가 되긴 한다지만 제현의 옷을 입으니 둘의 체격 차이가 여실히 느껴졌다.
“아빠 옷 빌려 입은 사람 같네요. 조금만 참아요. 가서 씻겨 줄게요.”
“뭐야, 됐어. 내 방 가서 내가 씻을 거야.”
이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우리만 빠져나온 터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운은 추궁해 댈 것이 분명했다. 아마 ‘내’방이라는 말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제현이 시동을 걸며 혀를 찼다.
“그냥 영화랑 방 바꾸시면 안 돼요?”
“나랑 있는다고 출국 일정도 미루고 지리산 왔다는데 어떻게 바꾼다고 해. 고작 며칠 방 같이 쓰는 거 갖고 그렇게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형이 그 인간 좋아했는데.”
“내가 좋아했지. 나만 좋아했고. 완벽한 과거형이거든? 그 형 여자 좋아해. 뭘 걱정하는지는 몰라도 네가 걱정할 일 없어.”
제현이 입술을 삐죽 내밀고 거칠게 차를 움직였다.
“삐졌어?”
뒤에서 운전석에 턱을 올리고 묻자 툴툴거렸다.
“멀쩡할 때 다 놔두고 사람이 고기 굽고 와서 바비큐 냄새날 때 고백해 놓고는 오늘 밤은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잘 거라고 하질 않나…….”
“그, 침대 두 개야.”
“우리가 언제 침대 두 개라고 두 개 다 쓴 적 있어요? 참나…….”
“그럼 네가 우리 방으로 와서 같이 자면 되잖아.”
끼익, 소리와 함께 제현이 브레이크를 밟았다. 운전석으로 굴러 넘어가는 줄 알았다.
“형은 천재인가 봐요. 저 형 침대에서 재워 주세요.”
“앞을 봐, 앞…… 알았으니까 운전에 집중해.”
기분이 다시 좋아졌는지 방긋 웃으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지난번에 고심해서 고른 거라며 들려주었던 팝송이었는데 제현의 목소리와 잘 어울렸다. 노래를 부르다 말고 내 쪽에 고정되어 있는 백미러로 시선을 옮겼다.
“형, 그런데 왜 하필 오늘이에요?”
“어……?”
“제가 형한테 작정하고 예쁘게 보이려고 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르고 골라 오늘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요.”
“…….”
잠시 이걸 말해도 되나 고민했다.
“진형이 형이랑 너랑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 찍는 것 같길래…….”
다시 출발한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급브레이크로 타이어 수명이 단축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따라 제현의 운전이 거칠어 안전벨트를 해야지, 안 되겠다 싶었다.
“뭐요?”
“아니, 진형이 형 성격상 마음에 안 들면 무시하지, 그렇게 시비 걸지 않는단 말이야. 그 형이 작정하고 사람 꾀려 들면 완전 여우야. 형은 여자 좋아한다지만 너는 아니잖아…….”
아무리 진형이 이성애자라지만 제현의 얼굴을 보면 혹할 수 있지 않나? 싶은 심정과 함께 제현이 진형과 나를 비교 대상으로 나란히 세워 놓는다면 게임이라면 몰라도 그 외의 종목에서는 아무리 쥐어짜도 승산이 없을 것 같았다.
미간을 찌푸리며 별생각을 다 하고 있으려니 운전석에서 고개를 뒤로 돌린 제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저도 남자 안 좋아하거든요?”
“어…… 저기 몰랐으면 미안한데 나 남자야.”
“아, 아니…… 아무 남자나 안 좋아한다고요. 제가 개떡같이 말해도 좀 찰떡같이 들어 봐요.”
제현이 답답했는지 핸들을 손으로 탁탁 내려치다가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그 능구렁이가 하는 여우짓이 형한테나 통하지, 저한테는 안 통해요. 애초에 그 인간이 저 꾀어낸다는 생각을 어떻게 해요? 미치겠네.”
“막상 받아 보면 흔들릴 수도 있잖아.”
“아, 그래서 지금 그 인간이 형 작정하고 꾀어내면 흔들리실 예정이시다?”
왜 또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는지. 머리를 긁으며 뒤로 몸을 기댔다.
“형은 흔들려도 돼요.”
백미러를 통해 본 제현의 눈이 웃고 있었다.
“마음껏 흔들리시고 저한테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돼요.”
***
‘어차피 나한테 돌아올 건데…….’
자기가 질투 같은 걸 왜 하냐고 웃으며 진형이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겠지.
그 천치에게는 왜인지 몰라도 찬희가 제 곁에 머무르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자기 손안에 있을 때는 귀한 줄도 모르고 함부로 대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무슨.’
비웃음이 저절로 흘렀다. 주차를 마치고 뒷좌석 문을 열자 시트에 파묻혀 잠들락 말락 하는 찬희가 보였다. 한바탕 정사로 몸에 힘이 다 빠졌는지 액체처럼 흐물거렸다.
그제야 목발을 흡연장에 그대로 두고 온 게 생각났지만, 어차피 쓰게 놔둘 생각도 없어서 상관없나 싶었다. 그냥 평생 이 발에 땅 닿을 일 없이 내가 들고 다니면 좋을 텐데.
안아 들려고 상체를 기울이자 잠에 취해 있으면서도 내 목에 팔을 감아 왔다.
평소답지 않게 눈에 힘을 주고 너 내 거 하자며 외치던 찬희가 자꾸만 떠올라 웃음을 흘렸다.
힘주어 잡으면 부러질 것같이 섬세하게 생긴 사람이 성격은 또 은근히 남자다운 갭이 있었다.
햇빛이라고는 살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같이 창백한 피부에 옅은 홍조를 띠던 모습으로 하는 고백에 얼굴이고 심장이고 터질 것 같았다. 누군 머리도 헝클어져서 부끄러워 죽겠는데 자기만 멋있고 말이야.
사람 마음고생 다 시키고 얄미울 만도 한데 도무지 그런 마음이 들지를 않으니,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살 여기저기가 붉게 물들 정도로 괴롭힌 탓에 품 안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에게 또 열기가 몰리려고 하는 걸 보면 역시 내가 미친놈이 맞는 것 같다.
산속이라 해가 지면 급격하게 날씨가 싸늘했다. 찬희를 감싸 안고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훈훈함이 감돌았다.
“형 몇 호였죠? 카드키 갖고 있어요?”
“주머니에…….”
잠깐 로비 의자에 앉혀 놓고 카드키를 찾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러니까 형도 솔직하게 생각을 좀 해 봐.”
“씹, 손대긴 했잖아.”
“찬희가 먼저 원하지 않았으면 평생 건드릴 일 없었어.”
진형과 지운의 목소리였다. 낮은 목소리로 작게 말하는데도 텅 빈 로비라서 그런지 대화 소리가 잘 들렸다.
“곁에 둘 수 있으면 뭐든지 해. 난 단 한 번도 걔한테 섹스나 몸 따위를 바라고 행동한 적 없어. 의도가 있다 쳐도 이 정도면 순수한 의도 아니야?”
“순수는 얼어 죽을……. 그게 더 잔인한 거 아니냐? 남의 진심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찬희를 안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내 발걸음 소리에 두 사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뭐야? 찬희 어디 아파?”
“아뇨. 졸려서 그래요. 반쯤 자는 중.”
지운이 뒤로 넘어가는 찬희의 뒤통수를 잡아서 내 쪽으로 기대게 했다. 지운이 찬희를 봤다가 나를 보기를 반복하더니 픽 웃었다.
“야, 얘 체력을 좀 생각해. 좀 봐주면서 해라.”
내 어깨를 주먹으로 가볍게 치더니 내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냈다. 찬희를 안고 있어서 어떻게 막을 방법도 없어 그대로 털렸다.
“담배 좀 빌린다.”
“그러세요.”
지운이 빠졌을 뿐인데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진형과 함께 올라탔다.
“내가 찬희 안고 갈 테니까 넌 바로 네 방으로 가도 되는데.”
“뭘 믿고요?”
“내 얼굴?”
반반한 얼굴로 활짝 웃는 모습이 매우 불쾌했다. 진형이 문을 열게 놔두고 찬희 귓가에 속삭였다.
“형, 일어나요. 씻고 자요.”
“응…….”
차에서 많이 찝찝해하기에 바로 일어날 줄 알았는데 많이 피곤한지 대답만 했지, 눈도 뜨지 못하고 내 품 안에 파고들었다. 나라고 이대로 재우고 싶은 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뽀송한 상태로 재우고 싶었다.
입구 옆에 바로 화장실이 있었다. 욕조가 꽤 잘되어 있는 곳이라 씻기기 편할 것 같았다. 그냥 자게 두려고 조심스럽게 욕조에 눕혀 놓고 옷을 벗기는데 뒤에서 내 어깨를 힘주어 잡아챘다.
“너 뭐 하냐?”
“그러는 그쪽은요?”
눈이 마주치자 내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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