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33화 (33/100)

33화.

서찬희 17세. 절찬리 등교를 거부 중인 비행 청소년이었다.

비행 청소년이라고 해 봤자 학교에 가지 않고 피시방에 다니고 있을 뿐 이렇다 할 비행은 해 본 적이 없었다.

말릴 사람도 없고 있어 봤자 동네 형인 지운뿐이었다.

어차피 말려 봐야 더 엇나간다는 것을 안 지운은 자기 학교 근처 피시방에 충전을 가득 해 둘 테니 시간 보낼 곳 없으면 다른 곳에 있지 말고 여기에 있으라고 했다.

군대에 다녀온 후 복학한 지운은 요즘 한창 바쁜 모양이었다. 포털 사이트를 뒤적이다가 할 게 없어서 후드를 눌러쓰고 잠이나 청했다.

“권진형 존나 재수 없어. 수석 입학생이 어떻게 나이츠 랭커인 건데. 혹시 라노벨 주인공이세요?”

“그거 한국대 4대 미스터리잖아.”

“왜 놀리고 그래. 아, 우리 티어 차이 나서 랭킹전은 못 하겠다.”

“와 씨, 지금 놀리는 게 누구냐?”

시끌시끌한 걸 보니 점심시간을 틈타 대학생들 무리가 들이닥친 것 같았다.

“셋이면 좀 그런데 한 명 누구 부를 사람 없어?”

“지운이 형 학교일 텐데 전화해 볼까?”

대화 속에 아는 사람 이름이 들리자 잠이 깼다. 남의 대화를 훔쳐 들을 생각은 없는데 귀가 저절로 그쪽을 향해 쫑긋거리는 기분이었다.

“어, 형. 나 지금 피시방인데……. 아냐, 바쁘면 어쩔 수 없지.”

“뭐야, 지운 선배 못 오신대?”

“응. 바쁜가 봐.”

“그럼, 딜러 진형이가 하고 민규 너 탱커 할래, 힐러 할래?”

“음, 나 힐러 할래.”

“버퍼는 선택지에 없는 거야?”

“버퍼 노잼 노잼.”

저 사람들이 말하는 지운이 내가 아는 지운인가. 와중에 세 명 중의 한 명이 유독 잘생겨서 슬쩍 훔쳐보았다. 그 사람이 웃으며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니 관심이 생겼다. 나이츠라고 했던가.

스피릿 게임즈 제공

K n i g h t s

AOS 4:4 대전 게임

[ 단장님, 환영합니다. ]

헤드폰에서 웅장한 BGM과 함께 내레이션이 들렸다. 할 것도 없었는데 잘됐다.

***

“뭐야, 내가 하자고 할 때는 죽어도 안 하더니 이걸 왜 하고 있어?”

“어, 형 왔어요? 그냥 할 거 없어서…….”

게임을 하면서 중간중간 게임 커뮤니티도 찾아서 공략과 팁을 읽어 댔더니 어느 정도 기본기는 파악이 됐다.

나이츠는 게임 자체가 진입 장벽이 높지는 않은 편이라 이런 종류의 게임을 해 본 적이 있었다면 초반 적응이 쉬웠다.

여태 피시방에 있으면서 MMO RPG부터 AOS, FPS, 리듬 게임, 스포츠 게임은 물론 미연시까지도 종류별로 찍먹을 해 봤던 터라 금방 익숙해졌다.

“오냐, 너랑 밥 먹겠다고 과제 조지고 오는 길이다.”

“형, 이거 티어 높다고 했지 않아요?”

“엉, 나 군대 가기 전에는 랭커였는데 지금은 좀 바빠서 그래.”

“저 이거 알려 주세요. 재밌어.”

“무슨 클래스가 맘에 드는데?”

“일단은 딜러…….”

내 말에 지운이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내가 힐러 유저라 탱벞은 그래도 좀 하는데 딜러는 영 별로야. 나 아는 애가 딜러 잘하거든. 랭커인데 소개해 줄까?”

“아니요. 됐어요. 혼자 하지 뭐.”

심드렁하게 대답하고 컴퓨터를 껐다.

***

“이런, 씨발…….”

‘게임은 질병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이츠는 질병입니다.’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인성 버리는 질병 게임의 대표 명사 나이츠.

며칠 만에 나는 실력보다 욕이 더 많이 늘었다. 욕을 염불처럼 외워야지만 게임을 탈주하지 않고 끝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사람도 짐승도 아닌 것들만 모아 놓고 게임을 시킬 수 있는지 고객 지원 창을 열어 항의 문의를 쓰다가 닫기를 하루에도 수백 번이었다.

머리를 쥐어뜯다가 키보드에 머리를 쿵쿵 박는데 손이 키보드와 내 이마 사이에 쑥 들어와 쿠션 역할을 했다.

“안녕.”

고개를 들자 다른 한 손으로는 커피를 들고 있는 잘생긴 남자가 있었다.

“누구세요.”

“어, 지운이 형이 얘기 안 해 줬어? 말하면 알 거라고 그랬는데.”

눈을 가늘게 뜨고 기억을 뒤져 봤지만, 이 남자에 대해 얘기한 기억이 없었다.

“모르겠는데요.”

“그럼 알아가면 되지.”

자연스럽게 내 쪽에 커피를 주고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지운이 형이랑 같은 학교 다니고 20살 권진형이라고 해.”

“네.”

짧게 대답하고 물기가 맺힌 커피를 밀어냈다. 지운이 형과 같은 학교라고 하면 국내 원톱 한국 대학교였다. 명문대생이면 일단 안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그래도 지운이 다른 사람들이 주는 거 함부로 받아먹지 말라고 경고했으니 거절하는 게 맞겠지.

“왜? 커피 싫어해? 다른 거 시켜 줄까? 이름은 안 알려 줄 거야?”

순식간에 쏟아지는 질문들에 나도 모르게 살짝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두었다. 또래 애들이라고 잘 지내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어쩐지 더 어려웠다.

“…….”

가만히 나를 웃으며 보던 남자가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안 잡아먹을 테니까 그만 경계해.”

그 말이 더 수상하다고 말을 해 줘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핸드폰을 보는 척하며 지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후 05:18) 형 이상한 사람이 말 걸어요

[백지운]

어떤 미친놈이 (오후 05:18)

(오후 05:18) 되게 잘생기고 이상한 사람

[백지운]

아ㅋㅋ 진형이인가 보다

걔 나쁜 애는 아니야 (오후 05:19)

진짜 지운의 친구인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한결 놓이면서 동시에 지운의 친구에게 너무 예의 없이 군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서찬희.”

“이름, 찬희구나. 지운이 형한테 들었던 것 같은데 까먹었어. 나이츠 뉴비라면서?”

“예…….”

“너 여기 계속 있으니까 보이면 좀 챙겨 주라고 하더라고.”

내 단답형 대답에 머쓱할 만도 한데 진형은 친절하게 말을 계속 붙여 왔다.

“나도 오늘 부계정 돌리려고 했거든. 같이 할래?”

“예.”

“주 포지션 어디로 가?”

“딜러요.”

“음, 포지션이 겹쳐 버리네.”

턱을 괴고 고민하는 진형이었다.

“딜러 하세요. 제가 버퍼 할게요.”

“딜러 하다가 버퍼 하면 재미없을 텐데.”

“괜찮아요.”

지운이 말한 대로라면 랭커라고 했으니 같이 돌린다면 다른 클래스를 하는 것보다 세트로 몰려다닐 수 있는 버퍼를 하면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친구 추가하게 아이디 알려 줘.”

“Chanini요.”

“뭐야, 아이디는 귀엽네.”

아이디를 듣자마자 웃음을 터트렸다. 지운이 군대 가기 전에 같이 하자고 하면서 내 명의로 만들어 놓은 아이디였다. 괜히 부끄러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 Kingjin 님께서 친구 요청을 보냈습니다. ]

“사실 나도 어렸을 때 만든 거라서 어디 가서 아이디 말하기 쪽팔리긴 해.”

차니니보단 킹진이 낫지 않나. 그거나 그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오늘 배치 끝내자.”

“좋아요.”

랭커의 골수까지 뽑아먹을 생각으로 불타올랐다.

***

“아, 아깝다. 배치 다이아몬드까지 나오는데. 그래도 플래티넘1이면 나쁘지 않아. 다이아 금방 갈 수 있어.”

진형의 말에 빡빡한 두 눈을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가만히 듣고 있었다. 배치 고사 강행군에 대답할 체력도 없었다. 진형은 중간중간 주요 스킬 콤보라든가 한타할 때 데미지를 제대로 넣는 법이라든가 열심히 설명하느라 나보다 더 체력 소모가 심했을 텐데 지친 기색도 없었다. 괴물인가.

“아, 미안. 힘들어?”

“…….”

대답 대신 키보드에 고개를 처박았다.

“벌써 새벽 세 시네. 집 가까워?”

“아니요. 이따 첫차 타고 가려고요.”

“버스? 전철?”

“전철이요.”

“그럼 우리 집 와서 잠깐 자고 갈래? 바로 옆 블록에 있는 오피스텔이거든.”

평소였다면 바로 거절했을 테지만 종일 앉아 있던 허리가 좀 눕고 싶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지운이 형이 나쁜 사람 아니라고 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예.”

짧게 대답하자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었는지 진형의 눈이 커졌다.

“예의상 하신 말씀이면 그냥 두고 가세요.”

“아냐, 그런 거 아니야.”

손사래까지 치면서 아니라고 강조하더니 내 팔을 이끌고 빨리 가서 자자고 재촉했다.

반쯤 감은 채 걷다가 진형의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혼자 자취해요?”

“응.”

남자 혼자 사는 집 같지 않게 깔끔했다. 현관에서 쭈뼛거리고 있자 자기 방에 들어가다 말고 현관으로 돌아와 내 팔을 끌었다.

“거기서 뭐 해. 들어와.”

“실례…… 하겠습니다?”

“뭐 그렇게 예의를 차려. 지운이 형 집에 놀러 왔다고 생각해.”

아무리 그런 소리를 들어 봐야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진형이 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거실 구석에 가방을 내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려니 잠이 쏟아져 가방을 베고 깜빡 졸았다.

“찬희야, 일어나. 왜 거기서 그러고 자.”

“네…….”

질질 끌려서 변기에 앉아 물려 주는 칫솔에 반쯤 자면서 양치질했다. 오늘 일찍 일어났던 터라 벌써 자고 일어난 지 거의 20시간이 지나 있었다. 고개를 휘청이며 양치를 끝내고 진형에게 반쯤 기대어 침대로 갔다.

“음, 침대가 넓은 편이라 같이 자도 괜찮지? 잠버릇 심한 편은 아니지?”

뭐라고 물어보는데 대충 ‘예, 예’하고서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다.

***

잠깐 자고 일어나서 첫차를 타려 했는데 일어나 보니 벌써 점심때였다. 핸드폰이 꺼져 진형의 충전기를 빌려 켜자마자 지운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쏟아졌다.

[백지운]

어디야? 집에 갔어?

자는 거야? (오후 11:45)

뭐야 너 어제 집에 안 갔어?

어디야? (오전 07:23)

왜 전화 안 받아? (오전 07:39)

피시방에서는 세 시에 나갔다 그러는데? (오전 08:02)

(오후 12:18) 미안 잠들어 버림

[백지운]

뭐야 어디서 잤어? (오후 12:20)

(오후 12:20) 형 아는 사람 집

바로 통화를 걸어 오는 지운이었다.

“여보세요.”

- 너, 걔가 누군 줄 알고 함부로 그렇게 막 집에 따라가?

“형이 나쁜 사람 아니라면서요.”

- 그렇다고 집까지 따라가라는 소리가 아니잖아. 하, 진형이 바꿔 봐.

옆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진형을 흔들어 전화기를 귀에 대 주었다.

- 야!!! 너는 연락 한 통도 없이 애를 함부로 그렇게 데려가면 어떡해??

“음……. 형 저 한 시간만 더 자고 제가 전화할게요.”

나한테까지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로 지운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진형이 눈을 반쯤 뜨며 대답하고서 자기 마음대로 통화를 끊어 버렸다. 다시 전화가 오자 아예 내 핸드폰을 꺼 버리고 자기 옆을 툭툭 쳤다.

“너도 아직 졸리지 않아? 한 시간만 더 자자. 집까지 태워다 줄게.”

“차 있으신가 봐요?”

“응…… 그러니까 조금만 더 자자.”

피곤했는지 말을 끝내자마자 수마에 빠져드는 진형이었다. 침대 매트리스가 푹신해서 더 눕고 싶긴 했지만 훤한 대낮이라 그런지 어젯밤과는 달리 조금 부끄러워 몸을 일으켰다. 화장실에서 짧게 세수만 하고 거실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가방을 들고 진형의 집을 빠져나왔다.

“아, 알았어요. 지금 집에 가고 있다니까요.”

진형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꺼 둔 전화기를 켜자 불이 나도록 걸려 오는 지운의 전화에 잠이 다 달아났다. 오늘따라 단단히 화난 것 같았다.

- 너 진짜 혼 좀 나야 해. 내가 누누이 낯선 사람 따라가거나 뭐 받아먹지 말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말했는데 걔를 홀랑 따라가?

“낯선 사람은 아니잖아요.”

- 허, 진짜 말이라도 못하면. 집 도착하자마자 영상 통화 걸어. 알겠어?

“알겠어요.”

지운의 집을 제외하면 외박도 처음 해 보는 일이었다. 왠지 나쁜 짓을 한 것 같은 느낌에 괜히 눈을 비비며 빠른 걸음으로 역으로 향했다.

빠앙. 자동차 경적 소리가 짧게 들렸다. 소리가 들린 쪽을 보자 외제 차 한 대가 내 옆에 섰다.

“어떻게 벌써 여기까지 왔어? 놓칠 뻔했네. 얼른 타.”

말이 끝나자마자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옆자리를 가리키는 진형이었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3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