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30화 (30/100)

30화.

- 화하

- 백지~~~~~~~

- 5252 화페 뱅온만 기다렸다고

“안녕, 안녕. 오늘도 북미 나이츠 리그 NKL 같이 보기 달릴 준비 됐지? 시차 때문에 다들 힘들겠지만, 오늘은 무려 메가 빅토리 피닉스, MVP와 팀 빌런의 준결승전 빅 매치!”

지운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송 준비를 분주히 한다 했다. 침대 위에 나를 방치해 놓고 방송을 켰는지 방송 톤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여전히 김밥처럼 이불에 둘둘 말려 엎드린 채였다. 굴러도 보고 발버둥도 쳐 봤는데 제현이 얼마나 단단히 싸맸는지 잘 풀리지 않아 포기했다.

- ?

- 화페 침대에 뭐임?

- 사람 아님?

어리둥절한 채팅창에 지운이 의자를 밀어 침대가 더 잘 보이게 했다.

“아, 차니차니가 당분간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됐는데, 방송 시간이라 일단 저렇게 뒀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누가 사람을 저렇게 두냐곸ㅋㅋ

- 차니차니 살아 있어?ㅋㅋㅋㅋ

“아, 살아 있어. 걱정하지 마.”

- 차니차니도 NKL 같이 보자

- ㅁㅈㅁㅈ 같이 보자고 하자

- 쳌메쳌메쳌메쳌메쳌메쳌메

“어…… 일단 물어볼게. 찬희야 진형이 경기 같이 볼래?”

“싫어요…….”

“음, 그래. 좀 쉬어.”

지운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서 다시 의자로 가 앉았다.

“애가 좀 아파서 방송 나올 컨디션은 아니네. 저 애벌레 모드로 보이는 것에 만족하도록 해.”

- 아쉽다ㅠㅠㅠㅠ

- 차니차니 아파?ㅠ 빨리 낳아

- 쳌메순산기원ㅠㅠ

“자, 자. 이제 여기 꽃미남 슈퍼스타 스트리머 화이트 페이퍼에게 집중해.”

- 또 시작이다

- 어휴

- 우리 화페 근자감 어쩌면 좋지

- 누가 킹이나 조커 불러와

- 곧 킹나오면 조용해질 것임 ㄱㅊ

“진짜 너희들은 누구 팬인 거야? 자기 스트리머한테 이렇게 야박하게 구는 팬들이 어딨어.”

수다를 한참 떨다가 경기가 시작됐는지 조용해졌다.

“애들아, MVP 경기 때 관중석에서 ‘For the King’ 외쳐 주는 거 개 멋있지 않아?”

지운이 자기는 선수 시절에 그런 응원 문구가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경기를 중간중간 중계하는 지운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 벽으로 굴렀다. 당분간 나이츠는 꼴도 보기 싫다.

***

“아, 진짜 이걸 5꽉을 채우네. 이번 준결승이 사실상 결승 아니었냐고. 와, 진짜 개 재밌었다. 근데 나 내일 휴방 각 씨게 서네.”

- 우리 할아범 살려ㅋㅋ

- 휴방 인정 화페도 쉬고 우리도 좀 쉬어야 함

- 북미 리그 KKL이랑은 또 달라서 같이 보는 거 재밌긴 재밌는데 개빡세ㅋㅋㅋ

“야, 그러면 나 내일 하루만 좀 휴방하자. 애들아, 오늘 같이 경기 본다고 고생했어. 방종한다.”

거의 다섯 시간 넘게 끊임없이 말한 지운이 지친 목소리로 말하고 컴퓨터를 껐다.

“형…….”

“맞다. 너 이렇게 봉인해 놨었지. 미안하다. 좀 쑤시지?”

“나 화장실 급해…….”

5판 3선승인 게임을 3:2로 경기를 꽉 채워서 할 줄은 몰랐다. 나는 거의 두 시간 전부터 요의를 참고 있었다.

저절로 떨리는 목소리가 나가자 내 목소리에 당황한 지운이 여러 개의 이불로 둘둘 말린 나를 바닥에 놓더니 다급하게 굴리기 시작했다.

“윽, 형 살살 좀…….”

“조금만 참아 봐. 급해도 바닥에 지려라. 이불은 안 된다.”

얼마나 참았는지 허리가 다 펴지지 않았다. 방광 터진 거 아닌가.

“화장실 어디야. 빨리. 급하다고.”

“나가자마자 오른쪽.”

지운이 던지듯이 건네준 목발을 받아 들고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운동 신경이 좋지 않아 평소라면 그렇게 척척 받아내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없었을 텐데 방금의 나는 목발 육상 올림픽 경기가 있다면 금메달감이었다.

***

“미안해. 진짜 혼자 못 나와서 가만히 있는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황제현이 그렇게 공들여 싸매는 걸 눈앞에서 지켜본 사람이 모를 수도 있어요?”

“그래도 이불이니까 괜찮을 줄…….”

급한 일을 해결하고 소파에 앉아 사람을 다섯 시간 동안 방치한 죄인 백지운의 변명을 듣고 있었다.

“됐어요.”

“아잉, 차니차니. 또 왜 삐져.”

“애교부리지 마세요.”

“이이잉.”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내 어깨에 머리를 비비는 지운에게 못 당하겠기에 봐줬다.

“방송 일정 빡빡한 바쁜 사람이 왜 군식구를 사서 데려와요.”

“너도 숙소에 있어 봤자 할 일 없잖아. 눈치나 보고 있었겠지. 그래도 너 나라도 곁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감독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어. 나야 어지간하면 일도 집에서 하니까. 거기다 나 내일 휴방이라 뭐든 해 줄 수 있어.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

딱히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다. 18살 때부터 내 인생에서 나이츠를 지우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이츠를 빼면 이렇다 할 취미도 좋아하는 것도 없었다.

“경기 뛰고 싶어요.”

“…….”

말은 가볍게 나왔는데 예상치 못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황급히 손등으로 쓱쓱 닦아 냈지만, 봇물이 터지듯 눈물이 하염없이 계속 쏟아졌다.

“형, 저 경기 뛰고 싶어요…….”

“찬희야.”

울먹거리는 소리가 섞여서 나갔다. 지운을 당황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운의 앞이라서 겨우 꺼낼 수 있는 날것의 감정이었다. 한 번 꺼냈더니 쉽게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았다. 지운이 안쓰럽게 보며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저는 나이츠를 못 하면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누가 그래.”

“지금 나이츠 리그 꼴도 보기 싫어요. 나이츠도 싫어요. 그런데 나이츠를 빼면 아무것도 안 남아요.”

지운이 강하게 껴안고 토닥여 주었다.

“아이고……. 우리 찬희, 얼마나 힘들었으면 서럽게도 우네.”

한참 지운의 품에 얼굴을 처박고 울다가 겨우 진정했다. 지운이 말을 고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더니 찬장을 뒤져 양주병을 꺼내 왔다.

“뒀다 뭐 하냐. 이런 날 마셔야지.”

“형, 저 술 센 편인 거 아시잖아요.”

슬쩍 본 찬장에 양주병이 꽤 많았다. 코를 훌쩍이며 말하자 지운이 망설이다가 결국 한 병을 더 꺼내 왔다.

“먹을 거 욕심은 없는 애가 술 욕심을 다 내네. 그래, 오늘 마시고 죽자.”

간만에 술이 정말 너무나 간절했다. 어느 정도 취기가 돌 정도로만 마시는 편인데 오늘은 그냥 필름 끊길 작정으로 들이부었다.

술이 약한 지운은 얼마 마시지도 못하고 테이블에 얼굴을 박고 일어나지 못했다. 혼자 마시다 보니 속도가 더 빨라 어느새 빈 병이 바닥을 뒹굴었다.

알딸딸해져 시야가 흐려졌을 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황제현]

제현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통화 수락 버튼을 누르다가 손이 미끄러져 지운의 의자 아래로 핸드폰이 떨어졌다.

- 여보세요?

제현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들리는 걸로 봐서 통화가 시작된 것 같았다. 허공에 손을 몇 번 뻗다가 닿지 않아 지운을 흔들어 깨웠다.

“형, 일어나 봐요. 형 의자 아래에 내 핸드폰…….”

“아, 왜…….”

“아니, 나 핸드폰.”

지운이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손가락을 내 입 위에 올려서 읍읍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쉿, 차니차니 얌전히 형이랑 코 자자.”

“아니 전화가…….”

“씁, 얌전히 있어.”

혀가 꼬이는지 불명확한 발음으로 중얼거리던 지운은 잠이 쏟아지는지 나에게 기대더니 체중을 싣고 쏟아졌다. 문제는 나도 꽤 술에 취한 상태라 지운의 체중을 견딜 힘이 없어 함께 의자 아래로 뒹굴었다.

-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윽……. 형 거기 누르지 마세요.”

“응, 응. 안 그럴게.”

“아파…….”

술에 취한 와중에도 내 다리에 닿은 다리를 치워 주는 지운이었지만 바닥에 부딪힌 등짝이 아파서 끙끙 앓았다.

넘어진 술병이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보일러가 과하게 틀어진 바닥은 따끈해서 술기운이 과하게 돌았다. 아까 핸드폰 너머로 ‘여보세요’만 반복해서 외치고 있던 제현의 희미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누가 네 여보야.”

실없는 소리를 툭 내뱉고 내가 한 말에 내가 웃겨서 킥킥거렸다. 침울한 상태로 시작해서 그런지 술기운이 올라오자 점점 기분이 좋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기분이 좋아 별거 아닌 소리에 한참을 키득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

문이 부서질 듯 쾅쾅거리는 소리에 나란히 누워서 자고 있던 나와 지운이 화들짝 놀라서 깼다.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아직 남은 취기와 두통에 둘 다 머리를 쥐고 끙끙거렸다.

그 순간에도 살벌한 쾅쾅거리는 소리가 문가에서 들렸다. 쾅쾅거릴 때마다 내 머리도 같이 두들겨 맞는 기분이라 저절로 앓았다.

“아, 씨……. 누구야.”

“형, 혹시 대부업체에 돈 빌렸어요?”

“그럴 리가 있냐? 아니, 대체 어떤 미친놈이야?”

관자놀이를 주무르다가 뜨거운 바닥 때문에 땀으로 축축해진 옷이 너무 불쾌해 벗어젖혔다. 체온이 높은 편도 아닌데 온몸이 뜨끈뜨끈했다. 하여간 날씨도 그리 춥지 않은데 내가 추위를 탄다고 보일러를 내려 줄 생각을 안 하던 지운 탓이었다.

땀으로 축축해진 옷을 벗자 한결 시원하고 좋았다. 아직 술기운이 덜 빠졌는지 숨이 차서 깊게 심호흡했다.

지운도 술기운이 덜 빠진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일어서다가 한 번, 문으로 다가가다가 한 번 넘어졌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또 키득거리며 웃었다.

“웃어? 형의 고통을 보고 웃어?”

“아, 진짜 웃겨요.”

지운이 무릎을 북북 문지르며 현관문으로 향했다.

“형, 위험한 사람이면 어떡해요.”

“그, 그런가? 내 핸드폰 어딨지?”

“저기 제 핸드폰 있어요.”

지운이 의자 밑에서 내 핸드폰을 꺼내고 고개를 들다가 테이블에 머리를 찧었다.

“억……!”

“풉.”

계속해서 터지는 슬랩스틱에 무슨 <톰과 제리>와 <나 홀로 집에>를 직관하는 기분이었다. 배를 잡고 웃다가 눈물까지 나왔다.

“아, 형 오늘 몸 개그 미쳤다.”

“너, 너, 진짜 사람 그만 놀려.”

지운이 핸드폰으로 112를 쳐 놓고 문에 체인을 걸었다. 마치 일이 터지기 직전의 공포 영화나 액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누구세요……?”

지운이 문 근처에서 조심스럽게 말하자 쾅쾅거리던 소리가 순식간에 멎어 주변이 조용해졌다.

“접니다. 문 여세요.”

문밖에서 들리는 엄청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익숙했다.

“접니다가 누군데.”

“좋은 말로 할 때 문 여세요.”

“얘는 왜 농담이 안 통하냐.”

지운이 낄낄거리며 문을 열었다.

“아니, 전화는 왜 안 받아요? 문도 안 열…….”

열린 문틈 사이로 거실 한복판에 앉아 있던 나와 다이렉트로 눈이 마주치자 제현의 눈이 커졌다.

“이런, 미친……!”

지운이 깜빡하고 미처 풀지 않은 체인 때문에 문이 다 열리지 못하고 커다란 쇳소리를 내며 턱 걸렸다.

“씹…….”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를 한 제현이 짧게 욕지거리를 내뱉더니 문을 양손으로 붙잡고 두어 번 힘주어 열자 체인이 끊겼다.

“아니, 이걸 끊어 먹네. 윽, 야……!”

제현이 문을 가로막고 서 있던 지운의 가슴팍을 퍽 밀쳐 지운이 신음을 내며 신발장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졌다. 폭주 기관차처럼 내 앞으로 돌진하더니 다급하게 자기 외투를 벗어 나를 감쌌다.

“무슨 일 있었어요. 뭔 짓 당했어요?”

“어?”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외투가 맨살을 덮자 나는 몸을 조금 떨었다. 제현의 이가 부드득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현이 아직도 신발장에 주저앉아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운에게 한걸음에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야, 황제현……!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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