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급한 손길에 콘돔 포장지가 벗겨지지 않는지 제현이 입술을 떼고서 혀를 찼다.
“급하게 막 산 거라 그런지 콘돔이 영 별로네요.”
“아, 제현아. 빨리……!”
“기다려 봐요. 좀 풀어 줘야 할 텐데.”
“싫어……. 으응, 지금…….”
이미 머리에 한 줌의 이성도 남아 있지 않았던 터라 제현을 재촉하며 허리를 흔들어 제현의 몸에 내 것을 비벼 댔다.
“미치겠네.”
제현도 오늘은 그리 여유가 있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나대로 흥분해 있어서 서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냥 넣어 줘…….”
“저도 죽겠는데 겨우 참고 있으니까……. 형도 조금 참아 봐요.”
제현의 손가락이 유연하게 진입해 쾌감이 터지는 곳을 지분거리다가 빠져나갔다. 재진입할 때는 빠져나가는 속도보다 빠르게 진입했다.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당장 제현의 것을 몸 안에 가득 채우고 싶어 안달이 나 자꾸만 허리가 움직였다. 손가락만으로는 부족했다. 더 깊게, 더 닿고 싶었다.
“제발……. 제발, 응?”
울먹이며 제현의 팔을 쓰다듬자 제현이 붙잡고 있던 연약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아윽, 으으……!”
제현이 단번에 내 안을 꿰뚫는 것처럼 들어찼다. 그 감각에 제현도 움직임 없이 거친 숨을 뱉어 냈다.
“하…… 잘리겠네.”
내 얼굴을 살피며 깊은 한숨을 쉬던 제현이 자기 손가락을 제 입으로 가져가 핥았다. 손을 떼고서 혀를 한 번 찼다.
“쯧. 하……. 진짜 형은 정도를 모르고 야하고 그러세요.”
그건 내가 할 말 아니냐고 대답하고 싶었는데 그저 막힌 숨을 겨우 뱉으며 헉헉거릴 뿐이었다. 제현은 쉴 틈을 주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쏟아지는 쾌감에 녹아내린 것 같은 몸은 제현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제는 모든 사고가 멈춰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제현이 뭐라고 물어보든 네 말이 모두 맞고, 무엇을 제시하든 모든 내용에 동의한다고 할 수 있었다.
“형은 게임할 때만 사람이 달라지는 줄 알았는데…….”
“아, 으응…… 읏, 아흑……!”
“지금은 또 다른 사람이네요.”
제현이 거의 완전히 빠져나갔다가 한 번에 콱 찔러 넣자 저절로 허리가 휘었다. 잠시 숨을 고르는지 뭉근하게 안을 휘저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맨날 달라요.”
“아……. 제현아, 제현아……!”
“네, 저 제현이에요. 좋아요?”
“조, 좋아…… 아아, 응……! 좋아……!”
결국, 쾌락을 원하는 몸이 참지 못하고 허리를 움직여 스스로 제현을 받아들였다가 뱉었다 반복했다.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느릿하게 들렸다. 조금 더 격렬하게 타의로 흔들리고 싶었다.
정신이 나가 버릴 것 같이 쾌락에 절어 짐승처럼 신음을 뱉고 싶었다. 내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제현이 머리를 넘기고 내 골반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누구한테 하, 이런 거 누구한테 배웠어요?”
반쯤 돌아 버린 것 같은 눈을 하고 여태 기다렸던 보상을 주듯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격렬하게 움직였다.
“아아, 몰라……. 앗……! 흐응, 앗 제현아, 으응……!”
“맞아요, 저 제현이에요……. 더 불러봐요. 제 이름 불러봐요…….”
“아…… 아, 제현아……!”
연신 제현의 이름을 앓으며 부르다 이젠 더 이상 숨이 부족해 아무 소리도 제대로 뱉지 못하고 고개를 뒤로 젖혔을 때가 되어서야 제현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배 안에 뜨끈한 것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잔뜩 젖혔던 고개를 숙여 아래를 봤다.
“아, 찢어졌네…….”
낭패라는 듯이 말하며 제현이 찢어진 콘돔을 빼냈다.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것인지 격렬한 움직임을 견디지 못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너덜너덜해진 상태의 콘돔을 손에 쥔 제현의 얼굴이 당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연신 내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굴었다.
반면에 나는 오히려 묘한 만족감이 들어 그 만족스러움을 즐기며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제현이 내 손 위로 제 손을 겹쳐 쥐었다.
눈빛을 박아 넣을 듯 뚫어지게 보던 제현의 시선이 천천히 훑듯이 올라와 내 눈과 마주쳤을 때 나도 모르게 몸을 조금 떨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들끓는 눈이 흔들림도 없이 나에게 내려앉고 있었다.
“형은 제가 형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얼마나 눈이 뒤집힐 것 같은지 아셔야 해요.”
제현이 손에 힘을 살짝 주자 다리를 타고 흐르는 느낌에 몸을 움찔거렸다.
“아니다. 알고 도망치면 내 손해지. 도대체 형이 날 미치게 하는 건지 제가 미친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제현이 흥분이 가시지 않는 눈을 하고서 나를 바라봤다.
“역시 제가 미친놈인 게 맞는 것 같아요.”
결론이 났는지 그렇게 말하며 제현은 내 안쪽 허벅지에 이를 박아 넣었다.
***
“하…….”
반바지를 끌어 올려 붉은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허벅지를 보았다. 제현이 못 본 척하며 눈을 허공으로 돌렸다.
“네가 개야? 사람을 막 물어?”
아프지는 않았지만 요즘 펑퍼짐한 반바지만 입고 다녔던 터라 혹시라도 바지가 말려 올라가면 보일 수도 있는 위치라서 난감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당분간 긴바지를 입으려고 옷장 앞에 주저앉아 서랍을 뒤적거리고 있으니 제현이 헛기침해 댔다.
뒤를 돌아 애써 나를 무시하고 있는 제현을 보니 제현의 등짝도 만만찮게 내 손톱자국이 박혀 있어서 조금 마음이 풀렸다. 내가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군.
“이리 와 봐.”
내가 부르자 또 슬금슬금 다가왔다. 뒤돌아서게 하고 등에 난 손톱자국을 매만지자 탄탄한 등 근육이 움찔거렸다.
“아파?”
“아니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오른손은 붕대를 하고 있어서 한 손으로만 긁었는지 한쪽 편에만 몰려 있었다. 긁은 줄도 몰랐는데 붉게 부어오른 모습이 물에 닿으면 좀 쓰라릴 것 같아 갑작스럽게 미안해졌다.
“다음엔 내 손을 묶을래?”
나름대로 괜찮은 생각이라고 생각해 말해 본 건데 제현이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봤다. 누가 보면 내가 미친 소리라도 한 것 같았다.
“함부로 그런 얘기 좀 툭툭 뱉지 말아 줄래요?”
“그냥 말해 본 건데…….”
생각해 보니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안심해. 나 변태는 아니야.”
“형이 아니라 제가 문제예요. 제가 형 한정 완전 변태라고요.”
제현이 자기 머리를 마구 쥐어뜯으며 괴로워했다.
“하, 아무튼 별로 큰 상처도 아니고 신경 쓰지 마세요.”
“그래? 나는 좀 크게 났는데.”
반바지를 들추며 아직도 선명한 잇자국을 보여 주자 제현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당황하는 모습에 꽤 즐거웠다.
“아…….”
뭔가 생각이 났는지 제현이 볼을 긁적이며 다시 조심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형, 저한테 재갈이라도 물리실래요?”
“윽.”
이번에는 내가 놀라서 머리를 뒤로 빼다가 옷장 문에 쾅 소리가 날 정도로 크게 머리를 박았다.
“괜찮아요?”
다급하게 다가와 박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정말 평범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며 여태 살아왔는데 제현의 저 말 한마디 때문인지 머리를 박아서인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순간 머리에 스쳐 지나간 재갈을 물린 제현의 이미지가 강렬해 얼굴이 다 붉어졌다.
예전에 안경도 그렇고 이 녀석, 은근히 이상 성욕을 불러일으키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너, 너는 진짜…….”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제현도 재밌는지 빙긋 웃는 모습이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분명히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저런 말을 한 게 틀림없었다.
“네가 먼저 말 꺼냈으니까 나중에 말 바꾸지 마.”
“어……?”
자위 기구나 성인용품을 사 본 적은 없었지만, 오늘 재갈만큼은 꼭 하나 구매해야겠다는 욕망이 피어올랐다. 당장 핸드폰을 손에 쥐고 성인용품 숍을 검색하자 제현이 당황하며 핸드폰을 뺏으려 들었다.
“형, 잠깐만요. 타임, 타임.”
“무슨 타임이야.”
다친 손을 방패 삼아 휘두르자 제현이 난감해하며 뻗는 손을 멈췄다. 타임이고 나발이고 나는 아까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그 재갈을 지금 당장 결제해야 했다. 제현에게는 역시 검은색이 잘 어울릴 테지만 빨간색도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만 역시 검은색이…….”
“형…….”
“분홍색도 있긴 해.”
깜찍한 디자인의 베이비핑크 색은 또 언밸런스한 맛이 있을 것 같았다.
“이거 어때?”
뒤로 목줄도 연결할 수 있는 깔끔한 디자인의 검은색 재갈이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과 인체에 해가 없는 재질로 만들어 안전하고 착용감도 좋다고 했다. 후기를 보니 별 다섯 개가 가득했다.
보관 시에 용이한 가죽 파우치도 준다고 하고 택배도 문구류로 표시해서 배송해 준다며 안심하라고 강조되어 있었다.
제현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바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음, 만족스럽다.
“형이 실행력 좋은 사람이라는 걸 깜빡했어요.”
상상 속의 완벽한 재갈을 구매했더니 음흉한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허망한 표정으로 주문 완료 페이지를 보던 제현이 말했다.
“어, 잠깐만요.”
갑자기 손을 뻗어 관련 상품 페이지의 상품을 클릭했다. 같은 디자인의 수갑과 구속구였다.
“…….”
구속구를 허벅지에 채워 수갑과 연결할 수 있는 상품인 것 같았다.
“형, 저는 이거요.”
“싫어.”
단칼에 거절하자 제현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아까는 묶어도 된다면서요?”
“묶으라고 했지, 누가 수갑을 채워도 된다고 했어.”
“묶는 거보다 안전하잖아요. 이거 봐요. 사이즈 조절도 가능하고 안쪽에 쿠션감도 있어서 다칠 걱정도 없대요.”
“그거 조금 긁히는 거 상관 안 하니까 묶고 싶으면 마음껏 묶어. 이건 안 살 거야.”
“형 다치는 건 제가 싫단 말이에요.”
내 단호한 태도에 제현이 시무룩한 얼굴로 자기 침대로 뛰어들었다. 이불을 끌어 올려 머리끝까지 덮자 맨발이 덜렁 나왔다. 덩치는 산만해서는 저럴 때마다 어쩐지 6살 먹은 어린애 같아서 귀엽단 말이지.
“야, 삐졌어?”
“…….”
다가가 제현의 위에 겹쳐 눕자 움찔거렸다. 이불 속으로 손을 넣어 제현을 움켜쥐자 바르작거렸다.
내 몸 핑계를 대며 아까 한 번밖에 하지 않아 놓고 그만둬서 그런지 몇 번 주물럭거리지 않았는데 제현의 것이 제대로 모양을 갖춰갔다. 묵직하게 잡히는 것이 잡는 느낌이 남달랐다.
결국, 참지 못한 제현이 이불을 벗어 던지고 나를 돌아 눕혔다. 마주한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다친 곳을 신경 쓰기라도 하는 건지 나와 제현 사이에 공간이 있어서 자유롭게 제현의 중심부를 만지작거릴 수 있었다.
“형…….”
“왜? 너 삐진 것 같아서 달래 주려는 건데.”
제현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가 내 목에 고개를 파묻었다.
“형이 시작한 거예요. 말 바꾸기 없어요.”
바라던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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