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25화 (25/100)

25화.

- 매일 역대급 경기가 펼쳐지고 있는 KKL 스프링 시즌 2라운드도 점점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 오늘 경기도 정말 역대급 경기죠?

- 천적 또는 앙숙 관계로 유명한 KJ 스노우와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이 맞붙습니다!

- 그동안 핫한 이슈도 하나 있었죠.

- 아, 1일 천하! 체크메이트 선수가 데뷔 후로 시즌마다 1위를 놓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KJ 스노우에서 1위 등극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단 하루 만에 1위 자리를 빼앗겨 ‘1일 천하’라는 말이 붙었다네요.

- 그 뒤로도 1, 2위 자리를 두고 KJ 스노우와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딜러 버퍼 듀오들이 치열하게 경쟁했었습니다. 랭킹 순위표가 엎치락뒤치락했지만 결국 1위 자리는 체크메이트 선수의 손에 들어갔으며 현재까지도 1위를 유지 중이라고 하네요.

- 말씀하시는 순간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아니?

- 체크메이트 선수가 조커 선수 등에 업혀서 등장합니다!

보통은 카메라 앞에 열 맞춰서 서 있을 테지만 나는 지금 제현의 등에 업힌 채였다. 공주님 안기로 들어가겠다는 걸 차라리 그냥 참고 걷겠다고 하자 업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 체크메이트 선수가 발목 골절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시청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 네, 그런데 정말 편안해 보이지 않나요?

- 하하, 맞습니다. 저도 한번 업혀 보고 싶은데요?

내 자리에 나를 앉혀놓고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드는 제현이었다.

- 지난 와일드캣 문즈와의 경기를 2:1로 간신히 승리하고 2라운드 연패의 고리를 끊은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인데요.

- 맞습니다. 이게 참, 연패의 고리를 끊자마자 만나는 게 하필 바로 숙적인 KJ 스노우와의 경기라니 부담감이 크겠네요.

- 경기 준비를 하면서 사실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경기가 있는 날은 팬분들이 이걸 더 기대하시곤 하시죠?

- 항상 폭풍을 몰고 다니죠, 하하. 사전 인터뷰 영상 보고 오시죠!

김준 : 아, 제가 또 스타트 끊어요?

인터뷰어 : 지난 경기에서는 KJ 스노우에게 2:0 완패당하셨는데 이번에는 어떤가요?

김준 : KJ 분들에게 1라운드 때 기억을 다시 살려 드려야죠. 만능 힐러 달링은 죽은 기억도 되살려 드려요.

인터뷰어 : 체크메이트 선수 몸은 좀 괜찮나요?

서찬희 : 팬분들께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인터뷰어 : 손가락에 감긴 붕대가 눈에 띄는데 경기력에 지장은 없나요?

서찬희 : 네, 괜찮습니다. 아까 준이가 이 말을 꼭 해 달라고 했는데…….

인터뷰어 : 어떤 말이죠?

서찬희 : …….

김준 : 한 손만으로 충분하지. 찬희 형이 이거 했어요? 제가 꼭 해 달라고 했는데.

인터뷰어 : KJ 스노우와 랭킹 1, 2위 자리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오갔는데요.

황제현 : 진짜 열심히 하시더라고요. 결국, 저의 2위 자리는 뺏겼습니다만.

김준 : 열심히만 하면 뭐 해요? 결국, 1위는 누구? 아, 누구였더라?

구동진 : 쟤는 맨날 자기가 랭킹 1위인 것처럼 얘기하더라고요.

김준 : 형은 누구 편이에요? 아군 팀킬 고의 트롤로 신고합니다.

인터뷰어 : 이번 패치 적용으로 제라가 기용 가능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황제현 : 다방면으로 좋은 딜러라고 생각합니다.

구동진 : 100% 밴 아니면 픽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어 : 천적 KJ 스노우와 맞붙는 오늘 경기의 각오 들어 볼 수 있을까요?

황제현 : 재밌는 경기 보여 드리겠습니다.

김준 : 찬희 형의 손가락을 봉인한 붕대의 무게는 20kg! 한. 손. 만으로 끝내주지!

- 하하하! 달링 선수는 항상 유쾌하네요.

- 사전 인터뷰로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 이어서 밴 픽 들어갑니다.

- 어? 어어? 제라가 열릴 것 같은데요?

- 픽 우선권이 KJ 스노우에게 있는데요. 트릭스 게이밍 제라 밴 안 하나요? 이거 너프 전 제라거든요?

- 마지막 밴 카드 5, 4, 3……. 열어 줬어요!!!

- 이걸 이렇게 쉽게 열어 주나요?

- KJ 스노우 입장에서는 ‘어이쿠, 이게 웬 떡이지? 감사합니다.’죠?

- 저희는 혼돈의 카오스인데 카메라에 잡힌 조커 선수는 웃고 있어요! 트릭스 게이밍 도대체 무슨 생각이죠?

[ 게임이 곧 시작됩니다. ]

전략대로 KJ 스노우에서 제라를 픽했다. 6레벨에 배우는 광역 스턴을 무력화할 수 있다지만 그 전까지가 고비였다. 워낙 스킬셋이 사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정신 놓고 있다가는 초반에 다 말아먹을 수 있어서 다들 정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어야 했다.

-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이 제라를 열어 준 것에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무난하게 밀리고 있죠?

-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만 보자면 밴 픽 단계에서부터 지고 들어간 거거든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 조합이 받아치는 데 좋다고는 하나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질 거로 보이진 않는데요. 곧 제라가 6레벨이 되면 더 열악해지면 열악해졌지,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라가 6레벨을 찍자마자 각을 보며 나와 제현을 에워싸는 KJ 스노우였다. 예상된 일이라 동진과 준이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 이번 경기 KJ 스노우가 계속 한발 빠르죠?

- 아,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지금 조커 선수는 아직 5레벨이에요. 초반부터 싸움을 피하느라 성장이 느릴 수밖에 없었어요.

“아, 조금만 더하면 레벨업인데.”

“어쩔 수 없어.”

이 정도 성장 차이는 예상했던 바였다. 아쉽긴 하지만 이대로 한타를 열어야 했다.

상대 딜러가 이동기를 사용해 우리 쪽으로 파고들었고 마침 도착한 동진이 급하게 방패를 들며 가로막았지만 가볍게 동진을 지나치고 자리를 잡았다.

궁극기 모션과 함께 준을 제외한 나머지 팀원이 궁극기 스킬 범위 내에 잡혔다. 나와 제현은 타이밍에 맞춰 회피기를 사용해 스턴을 피했지만, 동진은 연습이 무색하게 조금 타이밍이 빨랐던 것 같았다.

“아, 못 피했다. 미안.”

“괜찮아요. 제현아, 사리면서…….”

제현이 제라에게 데미지를 넣으려는 순간 화면이 회색으로 변하며 멈췄다. 경기 일시 중단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 KJ 스노우 측에서 스킬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것 같다고 퍼즈 요청을 한 것 같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던 적팀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 어? 어어??

- 퍼즈가 걸렸는데요. 자세한 상황에 대해서는 전달이 되면 말씀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분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 방금 제라의 스킬이 들어가지 않은 것으로 보였거든요?

- 구리 선수에게만 들어갔죠?

- 세 명 전부 스킬 범위 안에 있었는데 구리 선수에게만 들어간 것으로 보였는데 이게 무슨 일이죠?

퍼즈 동안 경기와 관련된 얘기는 할 수 없어 우리는 서로 얘기하지 않고 잠시 의자에 기대어 휴식을 즐겼다. 경기장은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나는 사계절 내내 수족냉증을 달고 사는지라 짬이 난 김에 손으로 핫팩을 만지작거렸다.

- KJ 스노우의 스킬 적용 이슈가 잠시 있었는데요. 판독 결과 정상으로 확인된다고 하네요? 해당 장면 다시 보기 영상 함께 보시죠.

- 아, 세 명 다 회피기를 사용했네요?

- 조금 빨랐던 구리 선수에게만 히트 적용이 되고 조커 선수와 체크메이트 선수에게는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제라가 본 서버에 등장한 지 꽤 됐는데 저 스킬이 회피 가능하다는 건 아무도 몰랐을 것 같네요.

- 트릭스 게이밍! 밴픽에서 너무 허무하게 열어 줬던 것 아닌가 했는데 이런 발톱을 숨기고 있었군요.

- 어허허, 체크메이트 선수가 잘 웃는 선수가 아닌데 퍼즈되고 웃음을 짓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경기 정상 재개됩니다!

1세트는 가볍게 승리로 끝났다. 딜러의 주요 스킬 하나를 반쯤 무마시키니 경기 난이도 자체가 내려간 기분이었다.

김준이 경기 결과표의 딜 그래프를 보며 ‘KJ 스노우 딜러가 누구죠? 데미지 딜량이 처참합니다!’ 해설위원 성대모사를 하며 까불거렸다.

1세트는 예상대로 흘러갔지만 2세트는 1세트처럼 날로 먹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제현이 내 의자를 빼고 내 앞에 등을 보이며 쪼그려 앉았다.

“뭐 해요. 안 업히고? 안아 줄까요?”

“아냐, 업힐게.”

서둘러 등판에 기대 업히고 있으니 동진이 뒤에서 목발을 들고 오다가 다시 제자리에 세워 뒀다.

목발을 가져다 달라고 하면 됐는데 마치 선택지가 안기는 것과 업히는 것밖에 없는 것처럼 생각한 게 어이가 없었다. 혼자 헛웃음을 짓고 있으니 제현이 내가 내려 달라고 하기라도 할 것처럼 서둘러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이게 더 빠르잖아요.”

맞는 말이었고 심지어 편했다. 다 낫고 나서 내 발로 걸어야 할 때 지금이 그리워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편안한 승차감이었다.

“이 이상 게을러지면 곤란한데.”

“형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말을 해요.”

“나는 단 한 걸음도 내 의지로는 걷고 싶지 않은 편이야.”

“제가 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하시지. 제가 평생 안고 다녀 드릴 수 있는데.”

제현이 일부러 나를 한번 튕겼고 놀란 나머지 제현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렇지만 운동 부족은 좀 걱정되네요. 더 빠질 근육도 없는데.”

깁스 풀 때쯤 되면 다리 굵기가 차이가 날 정도로 근육이 빠진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원래 근육량도 한없이 부족한 멸치라서 이대로 가다간 뼈와 껍질만 남게 생겼다. 그러고 보니 손가락이며 발목이며 재활 운동이 줄을 서서 제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피곤해져 지금의 안락함을 즐기기로 마음먹고 얼굴을 제현의 어깨에 푹 기댔다.

“이번 세트 MVP 찬희 형이네.”

아마도 전투 중에 4인 궁이 몇 번 나왔던 게 컸던 것 같았다. 이번 MVP 포인트 적립으로 Top 10안에 들긴 했지만, 차라리 제현이가 독식하고 연패 중에 밀린 등수를 올리는 게 나았는데 아쉬웠다.

“자, 이제 2세트도 시원하게 이기고 가서 발 뻗고 자자고.”

명진욱 감독님이 간만에 신이 나셨는지 수첩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우리는 제라를 한 번 더 열어 줄 거야. 이번에 완전 바보 만들어서 다시 픽을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쪽에서도 파훼법을 알았으니 열어 줄 수도 있어. 그러면…….”

“그러면 제가 해야죠.”

감독님의 말씀에 제현이 눈을 빛내며 웃었다.

- 이번 세트의 캐릭터 우선 선택권은 트릭스 게이밍에 있습니다. 아직은 제라가 밴이 되지 않았는데, 과연 KJ 스노우의 선택은?

- 열어 주네요! 100% 밴픽을 예상하긴 했지만 두 세트 모두 열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이 픽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설마 저걸 열어 줄까 싶었는데 무슨 생각인지 궁금했다.

“쉽게 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보지?”

지난 세트 내내 회피에 실패한 동진이 억울한 목소리로 씩씩거리며 말했다.

- 역시 픽을 하네요!

- 패치 적용이 되자마자 두 세트 연속으로 얼굴을 비추는 제라!

“가라, 황제현! 너만 믿는다!”

사람을 무슨 포●몬을 부르듯이 외치는 김준이었다. 혹시나 저쪽에서도 스킬을 씹어 먹을 수 있으니 초반부터 공격적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듯했다.

“제현아.”

“네?”

“시작하자마자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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