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경기 전에 놀린답시고 혼자 가도 되냐고 했던 말이 제현도 생각났는지 한 방 먹었다는 얼굴을 했다.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세공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나를 눕히더니 반팔 티도 마저 벗어 탄탄한 몸이 시야에 가득 찼다. 언젠가 한번 슬쩍 만져 봤다가 제현이 내 손을 끌어 마음껏 만지게 해 주었던 가슴이었다. 눈앞에 보이자 망설일 틈 없이 손을 뻗는데 제현이 그 손을 가볍게 낚아채 위로 올려 버렸다.
“오늘은 손 사용 금지예요.”
지금 눈앞에 보여 주고서, 심지어 저번에는 마음껏 만지게 해 줘서 어떤 맛인지 알고 있는 사람에게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한 처사였다.
“얌전히 누워서 제가 잘 배웠는지 검사해 주세요.”
짓궂게 웃으며 엉덩이를 콱 잡아 끌어당겼다. 맞닿는 중심부는 둘 다 이미 단단해져서 부딪힐 때마다 저절로 허리를 움직이면서 위로는 짧고 가벼운 입맞춤이 이어졌다.
내가 움직이려 할 때마다 기막히게 눈치를 채고 움직임을 막았다. 내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곳은 고작 해 봐야 고개 정도였다. 티셔츠를 한껏 끌어 올려 내 가슴에 쪽쪽 소리가 날 정도로 입을 맞추다 혀를 뾰족하게 세워 찌르듯 핥았다. 간질거리는 느낌에 거칠어진 숨과 신음이 동시에 쏟아졌다.
가슴께에서 배를 타고 골반 쪽으로 제현의 머리가 내려갈 때마다 내 숨은 점점 거칠어졌다.
제현이 내 속옷을 벗겨 내자 이미 젖은 상태의 모습이 드러나고 제현의 입가에 닿았다. 제현이 예상했다는 듯 이를 드러내며 웃더니 혀를 내밀어 끝까지 핥아 올렸다. 입 맞추듯 가볍게 입술을 댔다가 순식간에 부드럽게 삼켜졌다. 이미 터질 듯 단단해진 것을 끝까지 담아내자 쾌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자주 느끼는 거지만 제현은 뭘 하든 금방 능숙해졌다. 말 그대로 뭐든 그랬다. 처음 할 때도 남자 경험 없다는 소리가 거짓말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는데 이제는 어디서 특훈이라도 받고 온 것은 아닌가 싶었다.
입 안을 한껏 조여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는 바로 물고 있던 것을 빼냈다. 헉헉거리며 제현을 보자 타액과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자기 입술을 핥았다.
“제가 아직 부족한가 보네요. 딴생각도 할 수 있는 것 같고.”
“아니, 아니야……!”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내 반응에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조금은 짓궂은 미소를 띤 제현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제현의 손이며 몸이며 내 몸에 닿는 곳마다 불에 달군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제현이 허리를 한 번 튕기자 저절로 내 허리가 들렸다. 더 닿고 싶었다. 사이에 틈 하나 없이 빡빡하게 나를 채우던 기억이 떠오르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제현을 원했다.
“그만, 그만 애태워. 그만하고…… 으응…….”
“안 돼요. 아무래도 넣는 건 무리일 테니까 오늘은 같이 가는 거로 만족해요.“
“싫어…….”
“형 몸뿐만이 아니라 제 자제력에도 무리가 오니까 자꾸 도발하지 마세요.”
느릿한 움직임이 계속됐다. 평소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내 위로 쏟아지던 제현의 무게감이 없어서 더 애가 탔다. 제현도 그런 내 상태를 눈치채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자세를 바꿔 내가 제현의 위로 올라타게 했다. 내 무게로나마 그대로 제현과 밀착되어 아까보다는 만족스러웠다. 한숨을 돌리더니 제현이 손에 힘을 주고 빠르게 움직였다.
“아아……!”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자극이 계속되었다. 제현의 어깨 위로 손을 둘러 땀으로 촉촉해진 등 근육을 어루만졌다. 잘 짜인 근육들이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는 것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아, 형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
“하, 하아…… 넣든가…….”
“그러면 못 참을 것 같아요.”
“안, 으응…… 안 참으면 되잖아.”
파렴치한 소리라도 들은 것처럼 멈칫하고서 진짜 너무한다고 뭐라 하며 다시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크고 기다란 손이 움직이며 적절하게 힘을 줄 때마다 막힌 숨을 급하게 내뱉었다.
제현이 스퍼트를 올리다 멈춘 순간 스파크가 튀듯 시야가 흐려지며 쾌감이 척추를 따라서 흘렀다. 그저 몸을 떨면서 제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어 거친 숨을 뱉는 것이 고작이었다. 제현이 숨이 가득 섞인 거친 목소리로 낮게 속삭였다.
“잔뜩 나왔네.”
녹음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선정적이었다. 숨을 몰아쉬기 바쁜 와중에도 코피라도 터진 것은 아닌지 손등으로 코 밑을 한 번 쓸었다. 이런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현은 연신 가볍게 내 볼에 입을 맞췄다.
제현이 화장실로 가서 수건에 물을 적셔와 내 몸을 닦아 주었다. 따뜻한 수건이 땀으로 젖은 몸을 지날 때마다 쾌락의 여운이 남은 몸은 가늘게 떨렸다.
내일 랩이랑 비닐로 다리를 감싸고 샤워를 시도해 보자고 말하며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라고 했다. 오늘따라 이 정도로 만족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다.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충족된 상태는 또 아니라서 기분이 이상했다. 나를 닦아 두고 나서 짧은 샤워를 마친 제현이 물기를 닦더니 속옷만 챙겨 입고 제 침대로 쏙 들어갔다.
“잘 자요, 형.”
“……?”
보통 같이 자겠다고 떼쓰면서 어떻게든 제 몸을 밀어 넣거나 침대 옆에 기대앉아서 내가 잠들기 전까지 내 머리를 쓰다듬다가 자러 가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은 바로 자기 침대로 가더니 벌써 고른 숨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제현이 옆에 없으니 같은 침대인데도 훨씬 크고 넓게 느껴졌다.
***
지난밤 무슨 영문인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여야 했다. 눈을 감으면 오늘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게임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심 출전 못 했던 게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제현과도 어중간하게 하다만 느낌이라 심신이 불만족으로 똘똘 뭉친 덩어리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새벽이 깊어서야 겨우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아침부터 제현은 운동까지 다녀온 상쾌한 얼굴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프런트에서 준비해 줬다며 샤워하거나 씻을 때 착용할 수 있는 방수 커버를 들고 왔다.
내 다리 아래로 팔을 쑥 집어넣고는 번쩍 들어 올리는 바람에 자동으로 팔을 제현의 목에 둘렀다.
“뭐야 아침부터.”
“네? 씻는 거 도와드리려고요.”
“됐어. 나 좀 더 잘 거야.”
내려놓으란 뜻으로 어깨를 탁탁 두드렸는데 제현이 꼼짝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저 오늘 일정 있어서 지금 아니면 밤에나 시간 되는데요.”
“내가 알아서 씻을 수 있어. 목발도 있는데 왜 자꾸 사람을 번쩍번쩍 들어. 힘자랑해?”
제현이 실망한 듯 입을 삐죽 내밀며 얌전히 침대에 다시 눕혀 주었다.
“저는 연습실에서 영화랑 뭐 좀 하다가 일정 있는데 형은요?”
“이따 지운이 형 숙소에 무슨 콘텐츠 찍으러 온대서 거기 얼굴 비추래.”
팀 주치의가 매일 내 상태를 봐주고 있었는데 다음 주에 정밀 검사를 다시 받아 보고 금요일에 있을 KJ 스노우 전 출전을 결정짓자고 했다.
상황이 불확실하다 보니 들어오는 인터뷰도 거절하고 있는 상황인데 팬들이 체크메이트 죽었냐고 노래를 부르고 있어 어디서든 얼굴을 비춰 생존 신고를 해야 한다나 뭐라나.
“영화랑 뭐 하는데?”
“신기사 상대하는 연습 도와 달라고 해서요.”
제현이 내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며 웅얼거리듯 말했다.
새 캐릭터는 리그 특성상 게임 업데이트가 되고 몇 주 간격을 둔 후 늦게 적용이 되었다.
지난번에 나온 신기사인 제라는 딜러면서 광역 집단 군중 제어 스킬을 갖고 있어 밸런스를 망칠 정도로 강력해 하향 패치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향 전 버전이 경기에서 다음 주부터 적용될 테니 무조건 밴 아니면 픽이 된다는 소리였다. 미리 준비해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한참을 내 주변에서 맴돌다가 영화가 방문 앞까지 데리러 와서야 방을 나선 제현이었다. 다시 자려다가 핸드폰이 하도 울리길래 보니 아침부터 지운이 신나서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백지운]
얘기 들었어? 나 오늘 동진이랑 아침에 영상 찍는데 너도 나오래ㅋㅋ (오전 09:56)
뭐야 아직 자나? (오전 09:57)
차니차니 형 지금 숙소로 출발♥ (오전 10:32)
갔는데 자고 있으면 뽀뽀 갈겨 (오전 10:33)
한숨 더 자고 일어나려 했는데 벌써 출발했다니 더 잤다가는 정말 지운의 뽀뽀 세례를 받으며 깨어날 수도 있었다.
핸드폰을 잘 보지 않는 편이라 지운이나 회사 쪽 사람들 빼고는 알림을 꺼 놔서 몰랐는데 여기저기서 온 연락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개중에 제일 눈에 띄는 건 역시 진형이었다.
[권진형]
보면 시간 상관없이 전화해 +999
마치 내가 보고 있는 것을 진형이 눈치라도 챌 것처럼 핸드폰을 조금 멀찍이 떨어뜨려 놓았다. 어차피 바다 건너 멀리에 있는 사람인데 내가 안 읽는다고 뭐 어쩌겠는가.
***
하도 목발을 사용하지 않아 어색하고 서툴렀다. 이게 다 제현과 동진이 사람을 짐짝처럼 들어 옮긴 탓이었다. 도통 움직임에 익숙해질 짬이 없었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걷고 있으니 멀리서 지운이 양팔을 흔들며 뛰어왔다.
“오구구, 우리 차니차니 엉아 마중 나왔어?”
뒤에 카메라가 두어 대 따라오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미 촬영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오셨어요.”
“오늘의 ‘방구석 친구 소개’ 특별게스트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버퍼 체크메이트 서찬희입니다. 여러분들은 차니차니로 잘 알고 계시죠?”
“…….”
멀뚱하게 서 있자 지운이 카메라 쪽으로 눈짓을 주었다. 한 박자 늦은 자기소개가 급하게 튀어 나갔다.
“…안녕하세요.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버퍼 체크메이트 서찬희입니다.”
“원래 오늘 동진이랑만 하려 했는데 찬희가 부상 때문에 시간이 비더라고요. 원래 연습 벌레라서 이런 거 잘 안 나오는데.”
지운이 웃으며 자연스럽게 나를 안아 들었다. 목발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로 번쩍 들려 버렸다. 어떻게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목발로 걷는 꼴을 못 보니 목발과 친해지려고 해도 친해질 수가 없다.
촬영은 동진의 방에서 이루어질 모양이었다. 동진의 방으로 들어가자 방 가운데에 의자가 세 개 준비되어 있었다. 동진이 내가 들고 있던 목발부터 가져가 한쪽에 세워뒀다.
“내가 찬희 데리러 가려 했는데.”
“아냐, 나도 오다가 마주쳤어. 오늘의 진짜 방구석 친구는 구리구리 동구리! 야, 동진아. 너도 카메라 보고 자기소개 한번 해.”
동진의 자기소개가 매끄럽게 이어졌고 지운이 자연스럽게 나를 중앙의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작은 테이블을 끌고 와 그 위에 내 깁스한 다리를 올렸다.
“네가 오늘 메인 콘텐츠니까 얌전히 있어야 해.”
“예?”
그러고 보니 지운의 콘텐츠 중 하나인 [방구석 친구 소개]는 방송인이나 프로게이머들을 찾아가 어렸을 적 장래 희망이나 취미 같은 것을 함께하며 수다를 떠는 콘텐츠였다.
동진이 내 오른쪽에 앉자 멀리서 지운이 커다란 상자를 가져왔다. 색색의 유성 매직과 사인펜, 매니큐어, 스티커가 한가득 쏟아졌다.
“오늘은 동진이랑 함께 우리 차니차니의 쾌유를 빌며 깁꾸를 해 볼 겁니다. 일명 깁스 꾸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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