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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마이 트로피-17화 (17/100)

17화.

처음 구급차에 탔던 날은 기분이 좋았다. 나는 겨우 초등학생이었고 술에 취한 아버지가 던진 재떨이에 머리를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일단은 엄마가 내 손을 꼭 잡아 주고 있었고 둘째로는 이 정도면 내일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마치 생일날 같다고 생각했다.

‘우리 애가 부주의해서 넘어져서 다쳤어요.’ 엄마가 겨우 꺼낸 말이었다. 헤실헤실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번은 괜찮았다.

두 번부터는 마냥 좋지 않았다. 병원이나 응급실에 방문한 횟수가 쌓일수록 우리의 거짓말은 쉽게 통하지 않았다. 매번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에 나도 엄마도 한계를 느꼈다. 쏟아지는 걱정과 의심의 눈길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났다.

중학생 즈음부터는 내가 먼저 병원을 피하게 됐다. 몸도 자라면서 좀 더 내구도가 높아졌고 튼튼해져서 다행이었다. 어딘가 다치더라도 가만히 놔두고 좀 쉬면 회복했다.

갈수록 아버지의 음주는 늘었고 내 몸이 클수록 위기감이라도 느꼈는지 쏟아지는 폭력의 시간은 길어졌다. 나는 늘 사람은 적응하는 생물이라는 말이 싫었다. 평생을 쏟아지는 폭력과 함께 살았지만 나와 엄마는 늘 새롭게 고통받아야 했으니까.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는지 현관문을 부수듯 닫는 소리에 그때부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생각과는 달리 아버지는 얌전히 혼자 술을 마셨고 나는 오늘따라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술이 떨어지자 내 방으로 들어온 아버지는 내 머리통을 툭툭 치다가 싸가지 없이 대답을 안 한다며 주먹질을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잘 못 들어간 한 번의 발길질이 문제였다. 나는 배를 감싸 쥐고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렸다가 다시 기절하기를 반복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낀 아버지는 나를 그대로 두고 도망쳤고 늦은 시간 퇴근한 엄마가 발견해 구급차를 불렀다.

몽롱한 상태로 구급차의 비상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내 손을 잡는 엄마에게 꼭 처음 구급차를 탔을 때 생각이 난다고 웃으며 말하고 정신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병실이었다. 비장이 파열되어 절제술을 했다며 수술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 주던 간호사에게 엄마를 찾자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 엄마 대신 얼굴이 낯익은 형사님이 들어오셨다.

오랜만이라고는 하지만 반년 전쯤에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 꼬치꼬치 캐묻던 형사님이었다.

나는 또 이번에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형사님은 그런 나에게 어렵게 말을 꺼냈다. ‘몸이 좀 회복되면 말하려 했는데…….’로 시작하는 그리 길지 않은 말이었는데 한 번에 제대로 듣지 못하고 몇 번씩이나 되묻고, 또 되물었다.

내 물건을 챙기러 집에 돌아간 엄마는 술에 취한 몸으로 도망쳤다가 술기운이 빠지기도 전에 다시 집구석으로 기어들어 온 아버지와 마주쳤고 말다툼을 벌이다가 일이 잘못되었는지 깨진 소주병에 다쳐 자상으로 사망하고, 아버지는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했다고 했다.

애써 준비한 변명거리는 쓰일 용도를 잃었고 나는 하루아침에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

그 뒤로 경찰차나 구급차 사이렌을 듣거나 병원 근처에만 가도 공황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

병원에 온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발목 통증 때문에 느끼지 못했는데 오른손 새끼손가락도 부러져 퉁퉁 부어 있었다. 둘 다 아주 박살 난 것은 아니라 깁스만 하면 되지만 혹시 모르니 하루 이틀은 입원해서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준비된 병실로 들어가 누워 있으니 조금 진정되었다.

감독님은 내내 자리를 지키다가 당장 모레 있을 트라이앵글 경기 대책을 위해 숙소로 갔다가 다시 오신다고 하셨다. 동진에게서 내 소식을 들은 지운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와 주었다.

마냥 어린애도 아니고 스물두 살 먹고 병원에 오는 간단한 일 때문에 여러 사람을 귀찮게 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어휴, 우리 차니차니 불쌍해서 어떡해. 이제 좀 괜찮아?”

“네.”

“안 그래도 병원 싫어하는 애가 입원했다고 그러니까 나 기절할 뻔했잖아.”

“얘 병원에 데려온 나는 오죽했겠어? 그래도 제현이가 많이 도와줘서 살았다.”

온몸이 교통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욱신거렸다. 멀쩡한 왼손을 쥐락펴락해 보다가 마치 자기가 계단에 나를 떠밀기라도 한 것처럼 죄인같이 침대 옆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제현이 보였다.

내내 긴장을 놓지 못하다가 나를 병실 침대에 눕히고서야 안심했는지 바닥에 주저앉던 제현이었다.

지운이 제현을 보는 나를 한번 흘깃 보고서 음료수라도 사 오자고 동진을 끌고 나갔다. 갑작스럽게 사람 수가 훅 줄어 버린 병실에 가습기가 돌아가는 소리만 조용하게 울렸다.

“황제현.”

제현이 몸을 움찔했다. 계단에서 구르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 많이 놀랐을 게 분명했다. 제현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자 고개를 들었다.

“얘기 안 피한다고 했는데, 피한 게 되어 버렸네.”

분위기를 풀려고 한 말인데 오히려 제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 그게 뭐가 중요해요. 이렇게 다쳐 놓고 그딴 게 뭐가 중요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내가 발을 헛디딘 건데 그게 왜 네 잘못이야.”

“형 표정 안 좋은 거 뻔히 보였는데, 그런데도 제가 바보같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이 제현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손가락을 들어 눈가를 쓸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가 형한테 그러면 안 됐어요.”

내 손에 얼굴을 기대고 눈을 감는 제현이었다. 수려한 얼굴선을 타고 눈물이 연이어 흘러내리다가 턱 끝에 맺혔다. 살면서 누군가의 눈물이 떨어지는 게 아깝게 느껴지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눈물을 닦아 주고 볼을 살살 쓰다듬어 주었다. 이래 봬도 내 팬이라던 애한테 별꼴을 다 보였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요즘 계속 추한 모습만 보여 주네. 실망했겠다.”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형은 개똥밭에서 굴러도 멋질 텐데 제가 왜 실망해요.”

“그게 어떻게 멋있어.”

제현이 내 손을 감싸 쥐었다.

“저한테는 그래요. 아마 평생 그럴 거예요.”

아직도 물기 어린 눈으로 나를 지그시 올려다보는 제현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곧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다 변하더라도 이 눈빛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제현의 입술에 가볍게 내 입술을 얹었다. 짧게 맞닿았다가 떨어진 제현의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살짝 웃었다.

“어흠, 커흠흠! 아 가래가 차나. 차니차니 알로에 좋아하던가? 알로에가 의외로 호불호가 심한 음료라고 하더라고?”

“뭐야, 갑자기 왜 그렇게 큰 소리로 말해.”

요란한 소리를 내는 지운과 동진이 음료수 박스를 종류별로 잔뜩 들고 나타났다. 분명 제현과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하고 있을까 봐 저러는게 분명했다.

1인실이라지만 병실에서 환자가 무슨 짓을 한다고, 생각하다가 아주 안 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에 미치자 머쓱해졌다.

지운이 침대 옆 탁상에 음료수 박스를 놓고서 침대 위로 올라와 눕더니 나를 껴안았다.

“환자 괴롭히지 마세요.”

“아, 내가 내 새끼랑 좀 눕겠다는데 누가 뭐라 할 건데.”

“제가요.”

제현이 눈을 세모꼴을 해서는 지운을 침대에서 끌어내려고 거의 멱살잡이를 하고 있었다. 지운이 흔들리며 깁스를 한 다리에 충격이 와서 내가 살짝 신음을 뱉자 그 상태 그대로 지운과 제현이 누가 일시 정지라도 한 영상처럼 멈췄다.

“제현이 너는 숙소 가서 연습하고 지운이 형도 이만 가 보세요.”

동진의 축객령이 떨어지자 둘 다 자고 간다고 떼를 쓰다가 결국 동진의 무력으로 내쫓겼다. 원래라면 보호자가 아니라면 면회도 안되는 시간인데 KKL과 협업 중인 병원이라서 예외적으로 허락해 준 것이라 너무 많은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고 했다.

“아마 감독님이랑 프런트에서 일 끝나면 오실 거야. 그러면 나도 숙소에 돌아가야 해.”

“형도 가 보세요. 혼자 있어도 돼요. 시즌 중인데…….”

“어떻게 그래. 아픈 것도 서러울 텐데.”

동진의 시선이 부러진 내 새끼손가락에 머물렀다.

다리는 그렇다 쳐도 손가락은 게임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KKL은 한참 2라운드가 진행 중이었다. 안 그래도 연패 중이었는데 팀의 전력이 빠진다니.

한숨을 쉬자 동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일까지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어. 빨리 낫는 게 중요하지.“

***

[KKL]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버퍼 ‘Checkmate’ 서찬희 추락 사고로 골절 부상…….다음 경기 출전 불가

금일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버퍼 ‘Checkmate’ 서찬희가 와일드캣 문즈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후 경기장 건물 내 계단에서 추락 사고로 발목과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다쳐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트릭스 게이밍에서는 “병원에서 정밀 검사 후 오른쪽 발목과 새끼손가락 골절상을 진단받았으며, 현재 입원 후 치료 중이다”라고 전했다.

2일 뒤 진행될 예정인 엘리엇 엘리트와의 경기에서는 2군 트릭스 게이밍 스퀘어의 버퍼인 ‘Vold’ 박영화 선수가 콜업됐다. KKL의 경우 선수가 부상 또는 개인 사정으로 출전할 수 없다면 소속팀 2군 KKCL의 사전 등록된 정규 선수에 한해 콜업이 가능하며 콜업된 KKCL의 빈자리는 소속팀 아카데미 선수로 상시 교체가 가능하다.

트릭스 게이밍은 “손가락을 다친 만큼 현재 상황으로는 진행 중인 KKL 스프링 시즌 2라운드의 남은 경기에 출전은 불투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과를 지켜보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복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Y 뉴스 A 기자)

오늘따라 진통제가 잘 들지 않았다. 존재감을 나타내듯 이어지는 은근한 통증에 잠이 오지 않아 핸드폰을 뒤적이고 있었다.

e-스포츠 포털 메인에 관련 기사가 몇 개 떠 있었다. 2군의 메인 버퍼가 콜업된 모양이었다. 전반적인 맵리딩은 서투르지만 피지컬이 좋고 소규모 전투를 좋아하는 공격적인 성향의 버퍼라서 제현과 합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타이밍을 맞추기라도 한 듯 욱신거리는 손가락에 핸드폰을 내려놨다.

게임을 하다 보면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게임 하나를 통째로 말아먹을 때가 있다. 지금 내가 딱 그런 상황 같았다. 왜 거기서 발을 헛디뎌서는 이 사달을 냈는지.

계속 생각해 봐야 자괴감의 구렁텅이로 빨려 들어갈 것을 알면서도 결국 모든 사고의 종착지는 그곳이었다.

멀쩡한 왼손으로 이마를 팍팍 두드리다가 몸을 일으켰다. 병실 밖으로 나갈 자신은 없고 어차피 걷지도 못했다. 침대에 앉아서 하릴없이 링거줄을 툭툭 튕기는데 병실 문이 열렸다.

간호사겠거니 하고 쳐다본 곳에는 후드 모자를 쓴 제현이 있었다.

‘내가 꿈을 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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