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14화 (14/100)

14화.

[인터뷰] 1라운드 전승 행진 중인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Checkmate’ 서찬희 “팀 스타일이 바뀐 것에 대해 호평을 많이 듣고 있어 감사해…… 이번엔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어”

이번 KKL 스프링 시즌에 들어서서 기세가 가장 무서운 팀으로 꼽힌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은 지난 20일 천적이라고 불리던 KJ 스노우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이날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은 초반부터 상대 탱커를 압박하며 빠르게 첫 세트 승리를 따냈고 2세트에서도 상대를 압살하며 완벽한 승리를 쟁취했다.

딜러 ‘Joker’ 황제현 선수의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이 돋보였는데 인게임 보이스를 통해 팀의 딜러를 조련하듯 세밀하게 컨트롤하는 서찬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세트의 MVP 표는 딜러 황제현에게 6표 버퍼 서찬희에게 6표로 동률이었으나 캐스팅 보트의 표가 황제현에게 나와 황제현 선수가 단독 MVP로 선정되었다. 뒤에서 든든하게 아군을 지휘하던 서찬희의 인터뷰를 듣지 못해 아쉬울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의 팬분들을 위해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Checkmate’ 서찬희의 인터뷰 전문]

A 기자 : 천적인 KJ 스노우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는데 소감이 어떤가?

서찬희 : 물론 기쁘다. 리빌딩 후 처음 맞붙는 경기라서 걱정도 많았지만, 팀원들을 믿고 경기를 치렀던 것 같다.

A 기자 : 전승으로 1라운드를 끝마칠 수 있을 거라는 예상이 많다. 다만 본인의 MVP 순위는 그리 높지 않은데 아쉽지는 않은가?

서찬희 : 저희 팀 딜러가 워낙 화려한 플레이 스타일을 갖고 있다 보니 그보다 눈에 띄기는 쉽지 않다. 아쉽긴 하지만 말을 잘 못 하는 편이라 MVP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은 기쁘다.

A 기자 : 그렇게 피하던 인터뷰를 잡아서 미안하다. (웃음)

서찬희 : 팬분들이 원한다면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

A 기자 : 지난 KJ 스노우 전에서 2세트가 끝나고 다른 팀원들이 얼싸안고 기뻐하는데 혼자서 차분하게 경기 결과표를 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기쁘지 않았나?

서찬희 : 다른 팀원들만큼 기쁘지 않았던 게 아니다. 성격상 부대끼는 게 그리 유쾌하지 않다.

A 기자 : 낯가림이 심하다고 들었다. 지난 윈터 시즌을 함께한 ‘DDuru’ 나성환과는 다르게 황제현과는 아주 친밀해 보이는데 어떤가?

서찬희 : 황제현이 워낙 치대는 성격이라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동진이 형이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성격이 유해지고 있는 것 같다고 해 주기도 했다.

A 기자 : 데뷔했을 때는 막내였는데 이제 조금씩 든든한 큰형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하나?

서찬희 : 잘 모르겠다. 게임에서 서포팅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현실에서는 주로 강제로 챙김을 받는 편이라 든든한 편은 아닌 것 같다.

A 기자 : 이번 스프링 시즌 지금까지의 소감과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서찬희 : 팀 스타일이 바뀐 것에 대해 호평을 많이 듣고 있어 감사하다. 이번엔 꼭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싶다.

A 기자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서찬희 : 팬서비스가 박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으로서 죄송하고 성적으로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해 주고 싶다.

(Y 뉴스 A 기자)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벌써 기사가 나와서 읽고 있던 참이었다.

어제 한 시간 반을 꽉 채워 제현과 뒹굴었더니 아침에 일어났을 땐 당장 죽어도 기쁜 마음으로 요단강을 건널 수 있겠다 싶었는데 요즘 그래도 체력이 붙었는지 점심을 먹고 나서는 근육통이 살짝 남아 있지만 컨디션 자체는 완전히 괜찮아졌다.

그래서인지 기사 사진도 잘 찍혀서 매번 쓰이는 프로필 사진보다 잘 나왔다. 애초에 프로필 사진 촬영 때마다 멀뚱하게 서 있으면 팔짱을 껴 봐라, 더 자신감 있는 포즈를 취해라 등 여러 주문이 쏟아져서 어색하게 포즈를 취하면 포토그래퍼님이나 디렉터님의 표정이 ‘아, 이건 아닌데…….’ 하는 표정으로 바뀌어 몸이 더 굳은 탓도 있을 터였다.

차에서 내려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숙소 앞에 뭔가 하얗고 길쭉한 인영이 눈에 익었다.

“지운이 형?”

“차니차니!”

백지운이었다. 원래는 숙소에 자주 놀러 오고 빈방이 있으면 하루 자고 가기도 하고 연습실에서 스트리밍하기도 했는데 바쁜지 한참을 안 오다가 요즘엔 그래도 시간이 나는 모양이었다.

“인터뷰 올라온 거 봤다. 곧 온다길래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지.”

“바쁘다면서 잘도 시간을 냈네.”

예전에는 숙소에서 종일 붙어 있던 형이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가물에 콩 나듯 보다 보니, 볼 때마다 반가웠다.

“나 요즘 방송에서 북미 리그 같이 보기 콘텐츠 하는데 진형이 북미에서 날아다니더라.”

“그러더라고요.”

“챙겨 봐?”

“그런 건 아니고, 가끔 경기 하이라이트 뜨면 보는 정도예요.”

지운이 은근하게 날 쳐다봤다.

“이제 진짜 좀 괜찮은 건가?”

“뭐가요.”

“아니야. 저녁은 먹었어?”

“제현이가 같이 먹자고 기다리고 있어요. 형도 같이 먹어요.”

“오, 좋아. 안 그래도 저번부터 시청자들이 걔 얼굴 좀 찍어 오라고 난리야.”

잘됐다고 나를 이끌고 바로 식당으로 돌진하는 지운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식당에는 제현만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제현이 나를 보고 방긋 웃으며 일어섰다가 시선이 내 옆에 지운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자주 뵙네요.”

“그래? 난 오랜만인 것 같은데. 너랑 같이 유튜브 영상 각 보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거든.”

“언제든지요.”

오늘은 그래도 분위기가 괜찮나 싶었다. 지운이 카메라 설정을 만지고 핸드폰으로 라이브 방송도 하려는지 이것저것 설정하고 삼각대에 고정하는 동안 밥을 떠 왔다.

“차니니, 너도 얼굴 나가는 거 괜찮아?”

“예, 뭐.”

“안녕 얘들아. 나 오늘 트릭스 게이밍 숙소에 밥 얻어먹으러 왔어.”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대고 말을 하는 게 이젠 천상 인터넷 방송인이다. 화면에 빠른 속도로 채팅창이 올라가고 있는 게 보였다.

“찬희야, 애들이 너 보니까 좋아한다.”

어제도 경기하면서 방송 탔는데 뭘 또 좋다고 해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한 마음에 숟가락을 입에 문 채 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얘들아, 너희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조커도 있어.”

각도를 약간 틀어서 내 옆에 앉은 제현이가 화면에 잘 잡히도록 했다. 얘는 저 조막만 한 화면에서도 잘생긴 게 보이네. 제현이 제대로 나오자 채팅창이 좀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뭐 먹는지 보여 달라고? 자, 개쩔지. 트릭스 게이밍 밥 진짜 잘 나와. 나 숙소 나오고 살 빠진 이유가 있잖아. 더 빼라고? 잔인한 녀석들. 내가 지금 차니차니 옆에 있어서 그렇지, 동진이 옆에 있어 봐. 나 완전 멸치야.”

말없이 밥을 퍼먹는 제현과 나와는 달리 지운은 먹으면서도 끊임없이 소통을 이어 나갔다. 나는 게임 개인 방송을 할 때도 말을 잘 안 해서 자주 한 소리를 듣는 편이라 그게 너무 신기했다.

청양고추를 우적우적 먹고 있으니까 그걸 보던 지운이 웃었다.

“찬희가 다른 거는 몰라도 매운 거는 좋아해. 제현아, 너는 잘 먹냐?”

“저도 좋아해요. 너무 매운 건 좀 그렇지만.”

“삼각둥이 님 5만 원 후원 고맙습니다. 애들 디저트 꼭 사 줄게요.”

그 뒤로 애들 반포자이도 사 줘라, 한남더힐도 사 줘라, 하며 후원이 마구 쏟아졌다. 잘 번다더니 진짜 들숨에 만원 날숨에 만원을 버는구나. 하긴 제현이도 저번에 개인 방송하는데 숨 잘 쉰다고 10만 원 받는 걸 보고 김준이 옆에서 입을 못 다물고 있긴 했다.

나의 경우 채팅창 물이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서 후원을 닫아 놓고 방송할 때도 많았다. 신기한 기분에 아예 숟가락을 내려놓고 채팅창 올라오는 것을 구경하고 있으니 이쪽 채팅창은 되게 클린하고 좋아 보였다.

“형네 시청자분들은 되게 착하네요. 부럽다.”

“아까 나보고 살 빼라고 하는 거 못 봤어?”

“형 건강 걱정해 주는 거 아니에요?”

“야, 우리 애들이 착하다는 소리도 다 듣네. 쳌메 팬들아, 듣고 있지. 너희 벽보고 반성해라.”

채팅창이 ‘차니차니 불쌍해ㅠㅠㅠㅠㅠ’를 비롯해 우는 이모티콘으로 도배되었다.

***

방송을 종료하고 약속했던 디저트를 사 준다며 카페로 우리를 데리고 나온 지운이었다.

“뭐 마실래?”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늦었는데 카페인 먹지 말지.”

“저 카페인 잘 안 듣는 거 아시잖아요.”

“알았어, 제현아, 너는?”

“화이트 모카요.”

자신과 정말 안 어울리는 메뉴 선정에 나와 지운의 시선이 저절로 제현에게 향했다.

“휘핑크림도 올려서?”

“네.”

와, 진짜 언밸런스했다. 우아하게 에스프레소 잔이나 홀짝이는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은데 휘핑크림 잔뜩 올린 화이트 모카라니.

음료가 나오고 지운은 너희 후식 챙겨 준 거 인증샷을 SNS에 올려야 한다며 나와 제현에게 음료를 손에 들려주고 핸드폰으로 사진을 잔뜩 찍어 댔다.

“이번에는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는 밖에서 비싼 거로 사 줄게.”

“좋죠.”

제현이 빨대로 휘핑크림을 퍼먹으며 방긋 웃는다. 오늘은 그래도 기분이 좋은가 본데.

패딩을 벗다가 컵을 후려쳐 쏟아지는 걸 잡는다는 게 반쯤 내 몸에 쏟아 버렸다. 지운이 곧바로 휴지를 들고 닦아 주려고 일어서는데 내 옆에 앉아 있던 제현이 더 빨랐다. 일어난 김에 지운도 같이 닦아 주려고 내게 손을 뻗는 걸 제현이 쳐냈다.

“됐어요. 제가 할게요.”

지운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뜨거운 거였으면 큰일 날 뻔했네. 운동 신경이 좋은 편도 아니면서 그걸 왜 잡으려 들어요.”

“너도 됐어. 그만해. 내가 할 테니까.”

“우리 옷은 죄다 하얘서 이거 지워지려나. 가서 바로 물에 담가 놓으세요.”

또 내 말은 하나도 안 듣길래 어깨를 툭툭 쳐 밀어냈다.

지운이 언제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는지 말끔한 새 잔을 다시 내 앞에 놔주었다. 축축한 상태로 대충 테이블과 바닥을 정리하고 보니 또 저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역시 딜러라 그런가? 손이 맵네.”

“죄송해요. 이 정도로 아프다고 하실 줄은 몰랐는데, 아프셨어요?”

“엉, 많이 아프네? 밥같이 먹으면서 그래도 가드가 내려간 줄 알았더니 아주 내린 건 아닌가 봐.”

“밥 한 끼에 다 내리긴 좀 그렇죠?”

둘 다 잘도 웃으면서 온화한 톤으로 얘기를 주고받는데 듣는 사람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질린 얼굴로 번갈아 가며 둘을 쳐다보자 둘 다 나를 보고 해맑게 웃는데 순간 기가 쭉 빨렸다.

“내가 우리 차니차니 반의반쯤은 업어 키웠거든. 그래서 약간 그런 거 있잖아. 우리 아들이 나쁜 친구를 사귀면 어떡하나 하는 그런 걱정. 그게 좀 있거든.”

“형, 제가 맘에 안 드세요?”

“아냐, 아냐. 오해하지 마. 난 너 맘에 들어. 근데 그거랑 걱정하는 거랑은 별개라서.”

왜 갑자기 분위기가 드라마 속 ‘따님을 제게 주십시오!’ 장면 직후의 분위기가 된 건지 도통 모르겠다.

“찬희가 말해 줘서 너희 관계 어느 정도 알고 있어.”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넌 또 어떻게 눈치채고 있는 건데. 무슨 테니스 경기를 보는 관객이 된 것처럼 둘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마다 지운을 봤다가 제현을 봤다가 나 혼자 허상의 공을 쫓는 것 같았다.

“우리 애가 성격이 모나 보여도 이래 봬도 한번 정 주면 정 떼는 법을 모르는 그런 순진한 애거든.”

“알아요. 제가 그래서 그 미운 정, 고운 정, 오만 정 한번 받아 보려고 발악 중이라서요.”

“그럼 내가 이렇게 걱정하는 건 좀 이해해 줘야 하지 않나?”

“조금 과보호 아닌가요? 본인이 나이 많으신 건 알겠는데 찬희 형을 무슨 다섯 살 먹은 어린애로 보시는 건가?”

분명히 대화 주제는 나인데 철저하게 내가 소외되어 있었다.

“둘 다 지금 뭐 하는 거야.”

테이블을 두드리며 기분 좋지 않은 티를 내자 두 사람도 멈칫했다.

“찬희야 화났어? 오구구, 우리 차니차니 이리 와.”

테이블을 가로질러 지운이 머리를 마구잡이로 쓰다듬고 볼을 꾹꾹 눌러 댔다. 으으 거리며 짜증을 내자 제현이 막아 준답시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순식간에 지운의 주먹이 내뻗던 제현의 진행 방향을 가로막으며 테이블을 쾅 내려쳤다. 두 사람 사이에 살벌한 눈빛이 오갔다.

“내 말은 어린 마음에 한 번 건드려 보는 거면 지금 손 떼라고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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