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진짜 오늘따라 형이 이상했다. 찬희의 영역에 내가 다가가는 것도 초반에는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일이었다. 성급하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오늘은 먼저 다가오지를 않나, 꼭 사람을 도발하듯 짓궂게 굴었다. 마치 가끔 허락해 줄 때만 쓰다듬을 수 있던 길고양이가 무릎 위로 뛰어 올라와 배를 보이며 누워서 갸르릉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찬희가 가만히 있어도 열이 오르는 사람에게는 너무 과한 자극이었다. 가라앉힌다고 머릿속으로 열심히 애국가를 불렀는데 사람은 생각보다 짧은 시간 동안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애국가를 부른 것도 부질없이 결국 참지 못하고 끌어안고 엎어져 폐부 가득 숨을 들이쉬며 찬희의 체향으로 채웠다. 별다른 향수를 쓰지도 않고 분명 나와 같은 바디 워시를 사용할 뿐일 텐데 찬희의 체향은 늘 코를 박고 오랫동안 맡고 싶게 만들었다. 내 아래 깔린 채로 괴로워하던 찬희의 버둥거림이 조금씩 줄어들었고 이내 부드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찬희의 손길은 언제 받아도 황홀해 나는 종종 사람 손길에 굶주린 강아지처럼 자주 찬희에게 머리를 들이밀곤 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다 나 쥐포 되겠어.”
찬희의 앓는 소리에 아쉽지만 틈 없이 밀착되어 있던 몸을 살짝 떨어뜨렸다. 마른 체구는 내가 힘을 조금만 강하게 주면 부서질 것 같았다.
나를 마주 보다가 시선을 피하려는지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있는 찬희를 보며 나는 내 안의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단 이렇게 몸을 맞대고 있을 때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난번에 찬희가 진형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절대 어린애처럼 굴지 말아야지, 그렇게 굳게 다짐해 놓고 다짐한 보람도 없이 어리광을 부리고 싶은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어떻게 된 게 찬희 앞에서는 자제하려고 그렇게 노력해도 제대로 자제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충동적인 감정들이 머리고 몸이고 지배해 어리석은 짓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요즘 들어 가장 나와 가장 친밀한 감정은 무엇보다 질투였다.
그래, 그놈의 진형이 문제였다. 나름대로 찬희의 팬질을 오래 하면서 진형과 남들보다 돈독한 유대감이 있다는 것은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다.
사실 찬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적잖은 쇼크였다. 자신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에 담을 수 있다니. 그 사실을 알자 저 사람이 나를 담아 준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 보곤 했다. 누군가는 보잘것없는 취급을 하던 것이었다.
‘아니다. 내가 잘못한 거야. 애초에 내가 형을 좋아한 게 문제니까…….’
찬희가 진형에게 그 말을 꺼냈을 때 내가 지금 뭘 들은 건지 이해도 안 되고 자기 귀를 의심하다가 순간 손이 미끄러져 들고 있던 음료수병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에 찬희가 핏기가 사라진 창백한 얼굴로 뒤돌았고 곧바로 숙소 쪽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와 진형은 그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새로 들어온 딜러…… 미안한데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조커 맞지?’
아연실색하며 도망친 찬희와는 달리 당황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평온한 얼굴에 기가 찼다.
‘나는 킹, 권진형이야. 네가 우리 대화를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오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하.’
‘나랑 조금 다퉜는데 찬희가 잠깐 격해져서 그런 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아 줬으면 좋겠다.’
‘…….’
인상을 쓰며 노려보자 진형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무해한 표정을 지었다. 저 족제비 같은 얼굴에 홀린 게 분명한 찬희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자기를 좋아한다고 외치던 사람이 창백한 얼굴을 하고 필사적으로 도망을 갔는데 그 사람을 챙기는 것보다 나에게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우선으로 두었다는 게 너무도 화가 났다. 왜 이런 사람을? 왜 하필 이런 뺀질이를?
‘당신 진짜 기분 나쁜 사람이네.’
‘어차피 같은 업계에서 계속 얼굴 볼 사이에 너무 그러지는 말지?’
‘다신 안 봤으면 좋겠네요.’
눈으로 진형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돌아섰다. 저 별 볼 일 없는 남자에게 무슨 매력을 느껴 그렇게까지 구차하게 좋아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찬희가 아무리 눈에 띄는 준수한 외모는 아니라고는 하나 사람 자체가 깨끗하고 단정하게 생겼다. 어디 가서 이렇게까지 찬밥 대우받을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심지어 나이츠 유저들 사이에서는 그가 벗으라고 하면 한겨울에도 알몸이 될 사람들이라든가 나가 죽으라면 당장 번지를 외치며 호기롭게 뛰어내릴 사람들도 한 트럭이었다.
그냥 외모가 한눈에 들어오는 편이 아닐 뿐이지 계속 보고 있다 보면 어딘가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풍겨 나이와는 무관하게 물가에 내놓은 애를 보는 것처럼 신경을 쓰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건 그거대로 주변에 챙기려 드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게 또 죄다 찬희보다 연상인 점은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거기다 같이 지내다 보니 의외로 얼굴에 약한 것 같았다. 그 점이 찬희가 좀 반반한 연상의 남자와 친밀하게 대화만 나눠도 내가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상상을 다 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결국, 질투에 사로잡혀 머리의 퓨즈가 나간 사람처럼 치졸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질척하고 단순 무식한 질투를 찬희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지만 참는다고 참아지는 부류는 또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워낙 게임을 잘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게임을 플레이할 줄 아니까. 이 사람 정말 마음에 들고 좀 더 친해지고 싶다. 이 정도인 줄 알았지만 철저한 오산이었다.
실제로 눈앞에 두면 좀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우상은 직접 만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정작 만나서 실망하게 된다면 그건 그거대로 상처가 될 것 같아서 마음이 복잡했다.
그래도 모르고 이대로 답답해 죽느니 만나서 상처받자는 생각에 찬희를 만나러 트릭스 게이밍에 입단 테스트까지 거쳐 곁으로 온 것이었다. 그래, 나는 찬희에게 오만 가지 실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실망의 ‘ㅅ’도 할 수 없었다는 건 유감이었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직접 찬희를 눈앞에 두니 음험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울창하게 자라서 그저 단순한 동경이라고는 말도 꺼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도대체 이 사람을 어디까지 탐해야 할까. 끝없는 갈증에 시달리듯 애가 타는데 어디까지 드러내도 되는지 선이 불분명했다. 다 쏟아 내면 무서워서 도망갈 것 같았고, 다 거두자니 내가 죽을 것 같았다.
함께 지내게 된 짧은 시간 동안 나는 하루에도 수백, 수천 번을 천국과 지옥을 번갈아 번지 점프 낙하 중인데 찬희는 이런 나를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지긋하게 쳐다보고 있을 참이면 찬희는 늘 입술을 깨물고 시선을 피하곤 했다. 깨물린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쳐 주자 말간 갈색 눈이 다시 나를 향했다. 눈이 새초롬하니 이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아 보였다.
“비켜.”
“제현이 형 비켜 주세요. 해 보세요.”
“아주 재미가 들렸나 봐? 뽕을 뽑으려 드네?”
“다시 쥐포 되실래요? 아니면 눈 딱 감고 한 번 더 하실래요?”
웃으며 물어보자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를 연거푸 한다. 나는 온종일이라도 이렇게 버티고 있을 자신이 있었고 찬희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제현이 형, 좋은 말로 할 때 비키세요.”
“진짜 너무 좋다.”
형 소리 하나에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을 건 또 뭔지. 킥킥거리며 옆으로 굴러 찬희를 해방해 주었다. 조금 풀어 줬다고 바로 몸을 일으켜 자기 영역으로 돌아가려는 찬희를 붙잡아 옆에 눕혔다. 침대는 성인 남자 두 명이 누우면 조금 비좁은 크기였다. 그 덕에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어 좋았다. 찬희가 침대 밖으로 떨어지지 않게 허리를 붙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왜.”
끌어안는 나를 힘없이 한 번 밀어내다가 쉽게 포기하고 가만히 안겨 있는 찬희를 바라보았다.
“원래 사람이 밀어붙이면 다 받아 줘요? 아니면 내 얼굴이 형한테 먹히는 얼굴인 거예요?”
내 질문에 찬희가 눈을 도르르 굴리다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 얼굴에 손바닥을 올려 가볍게 도닥거렸다.
“이게 누굴 얼굴만 보는 쓰레기로 보나.”
“그런 말이 아니고…….”
“맞아.”
지금 뭐라고 했는지 듣긴 들었는데 바로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건가?
“뭐, 너는 거울도 안 봐?”
그 말을 듣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새삼스럽게 얼굴 하나는 반반하게 잘 낳아 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렸다. 만족스럽게 웃으며 작은 머리통을 붙잡고 입술을 겹쳤다. 혀를 밀어 넣자 저항 없이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얼굴도 작고, 입도 작고, 입 안도 좁다. 혀가 얽히는 소리가 자극적으로 들렸다. 더 이상 아래쪽에 열이 몰렸다가는 멈출 수 없을 것 같아 입술을 핥으며 입을 뗐다.
찬희는 꼭 흥분하면 저렇게 몽롱해져서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사람을 쳐다보곤 했다. 그 표정에 사람 미치는 것도 모르고 무의식으로 저러는 것 같았다.
입술을 깨무는 버릇이 있어서 찬희의 입술은 자주 붓거나 붉거나 했다.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가 핥고 지나가자 그 짧은 시간에 눈 깜박이는 것조차 아까워 집중해서 감상했다. 아주 작정하고 도발을 하려는 건지. 분명히 오늘은 그냥 얌전히 끌어안고 자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영 그른 것 같다.
“형, 솔직히 모자라죠.”
“응.”
이럴 때는 또 솔직한 점이 귀엽고 야하고…… 미쳐 버리겠다. 허락이라도 떨어진 사람처럼 나는 찬희 위로 냉큼 올라타 티셔츠를 벗어젖혔다.
찬희가 내 맨몸을 천천히 감상하더니 손을 뻗어 가슴을 살짝 건드렸다가 금세 거두어 갔다. 누군가에게 만져지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을 만지는 것은 정말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바로 내 다리 사이에 앉아서 얼마나 놀랐는지. 다시 생각해도 저절로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찬희의 손을 끌어 다시 내 가슴에 대 주자 잠시 얼어 있다가 조심스럽게 만지작거렸다. 결국에는 양손으로 마음껏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면 아까도 이렇게 만지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슬쩍 옆을 보자 벽시계가 12시 46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시선을 따라서 찬희도 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것 같았다.
“형, 저희 내일 일정 뭐 있나요?”
“사전 인터뷰 촬영, 스크림, 나는 Y 뉴스 인터뷰 있고 너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몇 시 리미트?”
내 질문에 크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슬쩍 손을 내려 빨리 대답하라고 독촉하듯 마른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한 시간…….”
“한 시간?”
“반.”
극적으로 협상이 타결되었다.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경매 낙찰을 알리는 탕탕탕 소리가 들린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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