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산책로를 따라 한 바퀴만 더 돌까 고민했지만, 코가 얼어 버릴 것 같아 그냥 숙소로 들어왔다.
스프링 시즌 개막이 코앞인데 감기에 걸리거나 해서 컨디션을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2년 전인지 3년 전인지 열이 39도까지 오른 상태로 경기를 했던 게 기억났다.
경기장에 가기 직전까지 링거를 맞다가 진형의 등에 업혀서 몽롱한 상태로 입장했는데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무슨 뽕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정신이 명료해졌다.
어찌나 짜릿하던지 경기는 순탄하게 진행됐고 무난하게 승리했다. 짧은 승리감을 맛보고 있자니 정신은 다시 흐려졌고 다시 진형의 등에 업혀 숙소로 돌아오면서 진형은 나에게 무리를 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사과를 자주 하는 사람이 아닌데 야생과도 같은 프로계에 끌고 들어온 장본인이라 그런지 자주 사과하곤 했다. 아마 진형이 같이 팀을 꾸려 보자고 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나이츠가 좋았다고는 하나 프로게이머로 데뷔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낯선 장소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게임을 하라니.’
당시의 나에게 대뜸 시켰으면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었어도 거절했을 것이다.
첫걸음은 진형이 떼어 주었지만, 아직도 프로게이머를 하는 이유가 진형인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진형이 팀을 떠났을 때 함께 떠났거나 은퇴를 했을 터였다.
더 높은 연봉과 진형의 옆자리를 마다하고 한국에 남겠다고 한 건 국내 정상을 밟고 싶은 내 욕심이 컸다.
‘해외로 가서 내 커리어의 고점을 찍어 봐야 도망친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진형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던 윈터 시즌은 성적은 괜찮았다지만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번 스프링은 달랐다. 여태껏 가 본 적 없는 고점을 찍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였다. 그러기 위해 제현과 쓸데없는 감정 소모 따위로 게임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됐다.
……안 된다는 건 아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는 또 모르겠다는 게 문제였다.
***
마지막 게임을 마무리하고 슬슬 잘 시간이라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옆을 보자 제현이 의자에 반쯤 누워서 선잠을 자고 있었다.
‘저렇게 자면 허리 아플 텐데 방으로 가서 자지 왜 저러고 자고 있는지.’
저렇게 아무렇게나 퍼져서 자고 있어도 추레하지 않고 누군가 공들여 조각해 놓은 것처럼 근사한 것을 보면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았다.
“아…….”
생각 없이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이렇게 여러모로 잘난 애가 왜 나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으니 내 손에 잡히는 패는 역시 회피일 수밖에.
턱까지 괴고 자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제현을 툭툭 쳐 깨웠다.
“야, 방에 가서 자.”
“아…… 같이 가려고 기다리다가 잠들었나 봐요. 형은 더 하시려고요?”
“아니, 나도 이제 갈 거야.”
장비를 정리하고 의자를 책상에 밀어 넣자 제현이 부스스 일어났다.
“황제현.”
“네?”
“너 혹시 나 좋아해?”
제현이 놀란 눈을 하다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헛웃음을 지었다.
“형, 제가 생각을 좀 해 봤는데요. 그간 형이 자꾸 가벼운 사람처럼 보여서 화가 나는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게 아니고 형이 저를 가볍게 취급해서 화가 나는 건가 봐요.”
“내가 언제…….”
“저는 형이 생각하는 것보다 형을 오랫동안 좋아했어요.”
제현이 내 어깨에 머리를 툭 기댔다.
“제가 그렇게 별로예요?”
“네가 별로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내가 문제야.”
“권진형 때문에요?”
제현이 발음이 뭉개며 속삭이듯 질문을 던졌다.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형은 참 어려워요.”
***
방으로 돌아오자 제현은 제 침대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누웠다. 침대가 슈퍼싱글 사이즈라 나에겐 널찍하고 좋았는데 길쭉한 놈이 누우니 그렇게 크지 않아 보였다. 끌어 올린 이불에 가려지지 않은 맨발이 덜렁 나와 있었다.
종일 축 처진 모습만 보니 괜히 신경이 쓰였다.
‘이래서야 버퍼가 아니고 디버퍼가 아닌지.’
제현에게도 말했지만, 제현의 문제가 아니고 철저하게 내 문제였다.
몇 년간 진형을 품은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마무리를 짓고 싶어도 쉽지 않았고 덜 비워 낸 마음에 제현을 담자니 겁이 나고. 이런 건 애초에 제현에게도 못 할 짓이었다.
“황제현, 자?”
“…….”
“나 후회 안 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불이 펄럭일 정도로 제현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뭐를요.”
대답도 안 하길래 자는 줄 알았더니 엄청난 기세로 한걸음에 내 곁으로 다가왔다.
“대답해요.”
“너랑 잔 거 후회하지 않는다고.”
좋았으니까. 괜히 민망해 눈을 마주치고 있기 힘들었다.
“그럼 저는 몸만이라도 좋아요.”
“뭐?”
고개를 들자 언제나처럼 곧은 눈으로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제현이었다.
“나를 이용해요. 나는 어떻게든 킹을 밀어내고 형 안에 자리를 잡을 거예요.”
담담하지만 단호한 목소리였다.
“너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몸만이라도 좋다든가, 이용하라는 말이라든가. 도대체 자기가 뭐가 모자라서 저런 소리를 하는지.
“왜요? 내 몸 싫어요?”
“…….”
“좋았다면서요.”
거리가 너무 가깝다 했는데 어느새 제현이 내 위로 올라타 내 다리 사이에 무릎을 넣고 비비적거렸다. 기대했다는 듯 단단해지는 게 너무 민망해 제현의 어깨를 붙잡고 미는데 전혀 밀리지 않았다. 아래를 보자 트레이닝복 위로 제현의 것도 형체를 갖추고 있는 게 보였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단번에 얼굴에 열이 몰렸다. 기가 막히게 좋았지만 딱 좋은 만큼 힘들었다. 차마 못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 다급하게 고개를 저으며 도리질을 치자 제현이 물러섰다. 봐주는 건가 했더니 제 서랍을 뒤져 콘돔과 젤을 들고 돌아와 환하게 웃으며 다시 내 위로 올라탔다.
“저 준비물도 알아 왔어요.”
칭찬해 달라는 듯이 “잘했죠?” 하는 밝은 얼굴에 현기증이 다 났다.
내가 직접 한다는 것을 제현은 한사코 저번에 잘 배웠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제 손에 젤을 죽죽 짜더니 입구에 문질렀다.
“아, 으으…….”
젤은 차갑고 제현의 손은 뜨거워 기분이 이상했다.
“형 그 말 알아요?”
질문을 던지며 한 손으로는 내 엉덩이를 콱 쥐고서 다른 손으로는 손가락 하나를 쑥 밀어 넣었다. 갑작스러운 진입에 잔뜩 긴장한 몸이 손가락을 물듯 조여 댔다.
“으응……!”
“앞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될 것 같은데…… 하, 형 안 너무 좁다. 진짜. 몸정 드는 게 그렇게 무섭다던데, 알아요?”
질문을 하면서 손가락 하나를 더 집어넣어 나는 숨을 들이켰다. 마디가 굵은 제현의 손가락은 부드럽게 움직였지만 좁은 안은 빠듯하게 느껴졌다. 젤이 쿨쩍거리며 엉덩이를 타고 흘렀다.
“아, 앗……! 거기……!”
“여기예요? 좋아요?”
“아응……. 좋, 좋아…….”
나도 모르게 몸을 바르작거리며 떨었다. 제현이 짓궂게 웃으며 포인트를 뭉근하게 눌러댔다. 내가 쾌감에 떨고 있을 때를 노려 손가락을 늘렸다. 이물감보다 쾌감이 앞서 늘어나는 것도 눈치채기 힘들었다.
아래에서 질퍽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절로 튀어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한참을 끙끙거리고 있는데 한순간에 제현의 손이 빠져나갔다.
“……?”
제현을 바라보자 제현이 한숨 쉬듯 웃었다.
“급하게 하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보면 제가 어떻게 참아요.”
제현이 언제 봐도 적응되지 않는 크기의 제 것을 몇 번 쓸다가 이내 콘돔을 말아 씌웠다.
“으…….”
손가락으로 풀어놓았던 데다가 젤 덕분에 저번보다 훨씬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쿡쿡 짧게 쑤시듯 뿌리 끝까지 완전히 밀어 넣자 온몸이 다 뚫리는 기분에 압박감마저 느껴졌다. 압박감이 마냥 나쁘지 않았고 완전히 품은 느낌에 은근한 만족감이 들었다.
“아…… 진짜 정신을 못 차리겠네. 형 그 사람이랑 할 때도 이랬어요?”
“무슨, 읏, 으응……!”
허벅지를 붙잡고 강하게 허리를 튕기자 나오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신음이었다.
“미안해요. 다른 사람 침대에 끌어들이는 거 아닌데, 그렇죠?”
“아, 아읏! 으응, 아!”
올려 쳐질 때마다 눈앞에 스파크가 튀며 시야가 점멸되었다.
다리로 제현의 허리를 감자 제현이 나를 일으켜 자기 위에 앉게 했다. 중력으로 한층 더 깊게 박혀와 저절로 제현을 끌어안으며 쾌감에 떨었다.
“너무, 너무 깊어…… 아아…….”
“형이 움직여 봐요.”
헉헉거리며 숨쉬기도 바쁜데 여기서 움직여 보란다. 신음을 줄줄 흘리며 고개를 강하게 저으니 낮은 웃음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내 엉덩이를 주무르며 내 목덜미를 핥고 깨물었다.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자 진정한 보람이 없게 호흡이 거칠어졌다.
“으, 으응…….”
“하, 너무 좋아…….”
허리를 조금씩 움직이고 있자 제현이 내 허리를 붙잡아 강하게 내리며 동시에 자신의 것을 밀어 올렸다. 강렬한 쾌감이 함께 내려쳤다.
“아흣!”
제현은 참을성이 다한 사람처럼 내 허벅지를 붙잡아 마음대로 움직여 댔다. 제현이 안을 찔러올 때마다 튕겨 나갈 것 같아 제현을 더 강하게 껴안았고 그게 맘에 드는지 더 강하게 쑤셔 박아 왔다.
“하아, 나, 으흣… 갈 것 같아…….”
이미 한계였던 나는 고개를 저으며 제현을 밀어내려 했다.
“형, 흐으……!”
끝없이 밀려드는 쾌감에 뇌가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짧은 신음을 내고 제현이 내 안에서 몸을 떨었다. 제현을 끌어안은 채로 참았던 숨을 몰아쉬고 있자 제 것을 빼내 콘돔을 벗겨 냈다.
그리고 콘돔 하나를 더 가져와 손에 쥐더니 입으로 뜯어냈다.
“어……?”
“한 번만 더해요.”
내가 버티지 못하고 먼저 가버린 게 신경 쓰였었는지 두 번째 할 때는 손으로 내 것을 틀어쥐고 막는 바람에 제현을 붙잡고 울며 불며 난리를 쳐야 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 이번에는 내가 씻겠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제현은 날 안아들어 샤워실로 들어갔고 결국, 샤워 부스 안에서 제현에게 거의 안긴 채 씻겨지다가 한번을 더했다.
“너는 정도를 모르냐?”
머리까지 보송보송하게 말려지고 침대에 몸을 엎드리자 좀 살 것 같았다. 쾌락에 미쳐 있던 정신이 돌아오자 만족감에 차 있는 제현을 보고 괜히 심술이 났다.
“저도 나름대로 참은 거예요.”
“참아?”
“어디 안 참아 볼까요?”
더 말해 봤자 내가 손해 보는 장사라서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제현이 내 등을 손가락으로 쭉 쓸었다.
“미운 정 고운 정보다 몸정이래요.”
“…….”
“나한테 맘 못 줄 것 같으면 몸정이라도 들어 주세요.”
쟤는 정말 저 잘난 얼굴로 못 하는 말이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제멋대로에 발칙한 놈이랑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뭐. 아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도 같고.’
물론 조금 피곤하고 노곤했지만, 그보다 그간에 이렇게까지 쾌락을 맛본 적 없었던 몸은 생전 처음으로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것처럼 만족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날이 서 있던 신경도 누그러져 마음이 편했다.
제현이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고 그 손길을 즐기며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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