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약속한 대로 도착한 고깃집에서는 소고기가 끊임없이 쏟아졌다. 다들 어찌나 많이 먹던지 보는 내가 다 배불러서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물려 버렸다.
앞접시에 덜어 놓은 육회나 찔끔찔끔 먹고 있으니 감독님이 나를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찬희야, 너는 진짜 그래도 꽤 오래 봤는데 네가 뭘 맛있게 먹는 걸 본 적이 없냐.”
“왜 잘 먹는 애한테 그러세요.”
쌈을 크게 싸서 입에 넣으려다 멈춘 동진이 날 두둔해 주었다.
“젊은 애가 가끔 보면 팔십 먹은 노인 같아 보여서 그래. 그래도 진형이 있을 적에는 걔가 밥은 기가 막히게 챙겨 먹였는데. 요즘 잘 먹는 거 맞지?”
“제가 챙긴다고 챙기기는 하는데 영 부실해요. 혼자 가만히 놔두면 먹는 시늉만 하고.”
갑자기 쏟아지는 잔소리에 머리가 다 아팠다.
“저 애 아닙니다. 안 챙겨 주셔도 됩니다.”
“알아서 잘하면 이렇게 말도 안 해.”
감독님이 저걸 진짜 어떻게 하냐는 표정으로 날 보다가 잔에 소주를 채웠다.
“한 잔 받아라, 찬희야.”
감독님이 건네주신 술잔을 받아들고 단숨에 털어 넣었다.
“자식, 남자답게 마시네. 찬희 쟤는 깍쟁이같이 굴 것 같아서는 주는 술은 거부하지 않고 시원하게 받아먹더라.”
“그래서 쟤 아직 미성년자일 때 진형이가 맨날 몰래 술 먹여서 애한테 술 좀 작작 주라고 저랑 지운이가 얼마나 혼을 냈는데요.”
“아, 지운이랑 진형이 보고 싶네. 팀 트라이앵글 시절에 재밌었지.”
옛날 추억의 감회에 사로잡혔는지 감독님과 동진이 동시에 말이 없어졌다. 그때 갑자기 잘 구워진 고기가 내 앞으로 불쑥 들어왔다. 제현이 손을 받치고 고기를 내 쪽으로 건네고 있었다.
“뭐야.”
“아, 하세용.”
이게 벌써 취했나.
오만상을 하고 있으니 제현이 강제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똥 씹는 표정으로 고기를 씹었다.
“야, 제현아. 너 소질 있는 거 같다. 이제 네가 책임지고 찬희 밥 좀 챙겨 먹일래?”
“제 버퍼인데 제가 안 챙기면 누가 챙겨요.”
“그런데 보통은 반대 아니냐? 하여간 우리 팀은 자기 포지션대로 생겨 먹은 사람이 나밖에 없다. 아무튼 제현아, 네가 고생 좀 해라.”
동진이 호탕하게 웃으며 제현과 술잔을 부딪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들 고기만큼이나 술도 많이 비워대서 주변에 빈 술병이 꽤 많았다. 다들 얼큰하게 취해 다음 시즌에 관한 내용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리빌딩과 팀 전력이 주 내용이다 보니 제현의 이름이 여기저기 테이블마다 거론되었다.
“우리 다 찬희한테 고마워해야지.”
감독님이 술잔을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갑자기 저한테요?”
“제현이 KJ 스노우 계약을 마다하고 우리 팀 입단 테스트 보러 온 게 체크메이트랑 게임하고 싶어서라고 그랬거든. 너 아니었으면 우리 딜러 자리 아카데미 딜러로 채울 뻔했다.”
나이츠는 아무래도 딜러 게임이라는 말을 듣는 만큼 다른 포지션이 날고 기어 봐야 딜러 하나 잘 못 키우면 소용이 없었다. 랭커가 아닌 애들도 있는 아카데미 딜러로 아무나 올리려 했다면 차라리 내가 딜러 뛰겠다고 했을 것 같다.
“제가 와서 다행이죠?”
“응.”
제현이 얼굴을 불쑥 내밀며 묻는 말에 곧바로 즉답이 나왔다. 무난하던 진형이나 성환과는 다르게 메타를 거스르는 픽도 잘해서 팀 색깔도 전무후무하게 확실해졌으니 다행도 이런 다행이 없었다.
제현은 자기가 물어봐 놓고 바로 그렇다는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입을 벌린 채 굳어 있다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내 접시 위에 잘 익은 고기를 몇 개 덜어 줬다.
***
술을 몇 잔 마셨더니 찬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져 숙소 근처를 살살 걷고 있는 참이었다.
이제 곧 봄이었다. 언제 겨울이었냐는 듯 금방 따뜻해져 나무들은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그러고 보니 숙소 근처에는 벚나무가 많아 봄이면 사진 명소로도 유명했다. 진형이 너도 한 번 가 보지 않겠냐고 벚꽃 시즌마다 물었던 기억이 났다.
“…….”
그때는 어차피 해마다 피어날 꽃을 왜 일부러 구경 가야 하는지 평생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형.”
뒤를 돌아보니 제현이도 산책을 나온 모양이었다. 손에 내 겉옷을 들고 있었다. 더운 기운에 외투도 없이 나왔나 보다. 건네주는 겉옷을 받아 들자 제현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 얘는 여기저기서 술을 많이 줘서 상당히 마신 거로 아는데 생각보다 멀쩡하다.
“너…… 많이 마시지 않았나?”
“세면서 마시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걸요.”
말끝이 묘하게 늘어지는 게 아주 맨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형.”
“왜 자꾸 불러.”
“형, 진짜 멋있어요.”
뭐라는 거야.
“원래 우상이랑 만나지 말라고 그러잖아요. 실제로 만나면 환상 다 깨 먹는다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잖아.”
“그래서 걱정했거든요. 형이랑 같이 게임은 하고 싶은데 실망하기는 싫었어요.”
진짜 내 팬이었나 보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우상이라고 해도 합류한 지 얼마 안 되고 본 게 전 딜러에게 고백하는 꼴이었으면 이미 실망으로 국밥을 말아먹고도 남지 않나?
“근데 형은 같이 지낼수록 더 멋있어요. 역시 트릭스 게이밍으로 오길 잘했어요.”
소년미가 가득한 얼굴로 내뱉는 말마다 진심이 가득했다.
“부끄러운 말을 참 잘도 하네.”
“사실 상상했던 거랑 이미지가 꽤 달라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제현이 멈춰 서서 땅을 발로 한두 번 걷어찬다.
“세상만사 다 무시하고 혼자인 자기 자신한테 중독된 나르시시스트일 줄 알았거든요.”
“너는 사람 면전에 대고 욕을 참 그럴듯하게 하네.”
“욕 아닌데……. 근데 또 자기 좋아하는 사람 천지에 깔렸는데 애먼 사람 붙잡고 좋아한다고 하는 거 보면 외골수 타입은 맞는 거 같고.”
취하긴 취했는지 이렇게까지 말이 많은 애는 아닌데 멈추지 않고 조잘거린다.
“좋아하는 걸 잘못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마요.”
“……!”
눈을 크게 뜨고 제현을 잠시 바라봤다. 땅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제현이 지금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으로 날 생각해서 해 주는 말 같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다.
“고맙다, 신경 써 줘서.”
쑥스러움에 나오는 대답은 영 상투적이었다. 주먹으로 가볍게 제현의 가슴을 툭 치고서 다시 걸어갔다.
“나는 형 좋아하는데.”
“알아, 너 내 광팬인 거.”
제현이 머뭇거리다 내 손목을 붙잡아 걸음을 멈추게 했다. 취기가 서려 있는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리더니 자기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왜 그런 사람이 좋아요?”
“안 좋아해.”
“좋아하잖아요.”
제현의 말이 맞아서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아팠다. 나는 몇 년에 걸쳐서 울다가, 웃다가,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 앓기를 반복했기에 이제는 좋아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진형은 내게 처음 생긴 집과 같은 존재였으므로 대체할 사람이 없었고 여태까지는 그럴 생각도 없었다. 마치 알에서 깨고 나와 처음 본 사람을 졸졸 쫓는 새와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평생 이렇게 어중간하게 진형에게 매달려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맞아, 좋아하는데…… 좋지 않아.”
“그럼 나로 갈아타요.”
진형이 내 팔을 붙잡고 눈을 맞췄다. 내려다보는 시선에 몸을 움칠 떨었다.
“장난치지 마.”
“형은 이게 장난으로 보여요?”
어느새 숨결이 코앞에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 다가와 있었다. 카메라를 잡아먹을 듯이 봐 달라는 촬영 감독님의 요청에 화면을 가득 채우던 날 선 눈빛의 그때보다 훨씬 더 진한 눈빛이었다. 외투를 입고 있는데도 잡힌 팔이 뜨겁게 느껴졌다.
그대로 입술이 겹쳐졌다. 입 안으로 혀가 능숙하게 파고들었다.
“……!”
놀란 마음에 밀어내자 제현은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부딪혀 왔다.
“으… 음…”
질척하게 얽히며 타액이 섞여들었다. 이렇게 농밀한 키스는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다리가 풀려 쓰러지기 직전에 제현의 입술이 떨어졌다. 거친 숨을 고르며 지금 벌어진 상황을 이해하려 했지만 입맞춤 한 번에 모든 생각이 멈춘 터라 쉽지 않았다.
여전히 제현의 시선은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선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다시 입을 맞췄다. 제현의 손이 내 등허리를 감싸 안았다. 닿는 자리마다 불에 닿은 것처럼 뜨거웠다.
“하아… 방으로 가자.”
***
더 닿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머리가 하얗게 불탄 사람처럼 급하게 방으로 돌아왔지만, 막상 방에 들어서니 점점 침착해졌다.
‘……이게 맞나?’
이렇게 별생각 없이 제현과 자는 것이 맞는지 곱씹어 생각하고 있자니 머리에 비상등이 자꾸만 켜졌다.
외투를 벗다 말고 고장 난 사람처럼 멈춰 있자 뒤에서 제현이 날 끌어안았다. 짙은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얇은 셔츠 안으로 손이 파고들어 가슴을 주물렀다.
“읏…….”
“무슨 생각 해요?”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과 왜 안 되냐는 생각이 싸우며 내가 이렇게 가볍게도 굴 수 있는 사람이었나 싶었다.
목덜미에 입술을 지분거리다 살짝 깨무는 제현을 떼어 놓자 아쉬운 듯 입술이 벌어진 채 서 있는 제현이 보였다. 여기서 멈추자고 너나 나나 술기운에 실수한 거라고 말하려 했는데 애타는 눈과 마주치니 나오려던 말이 저절로 삼켜졌다.
“너 남자 경험 없잖아.”
“아…….”
잠깐 당황이 스치던 얼굴에 다시 웃음이 서렸다.
“가르쳐 주세요. 저 배우는 거 빨라요.”
쓸데없이 긍정적이다. 한숨을 한번 쉬고 제현의 손을 잡아 이끌어 침대에 앉혔다.
어리둥절해 있는 제현의 다리 사이에 앉아 제현의 바지를 끌어 내리자 속옷 아래로 얼핏 제 형체를 갖추려는 모양이 도드라지게 보였다. 바지를 내릴 때만 해도 막힘 없던 손이 멈췄다.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큰데.’
떨리는 손으로 속옷을 내리고 입을 댔다. 혀로 감싸 올리자 제현이 몸을 움칠 떨며 내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형…….”
숨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안으로 밀어 넣자 제현이 짧게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질척한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제현의 것이 착실하게 제 모습을 찾자 최대한으로 벌어진 턱이 점점 고통을 호소했다.
“으으……”
입 안 가득 머금고 아무리 노력해도 절반 정도를 삼키는 게 전부였다. 억지로 밀어 넣다 눈물이 절로 나와 컥컥거리며 급하게 빼내고 손으로라도 쓸어내렸다.
“괜,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
혀로 뭉근하게 누르며 핥자 제현의 손이 내 목덜미를 주물렀다. 기껏 세워놨더니 개복치처럼 죽을까 연신 걱정이었다.
시선을 들자 제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미간에 주름이 잡힌 채 살짝 웃었다.
“절 가르쳐 주셔야지 그렇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겨드랑이 아래로 손이 쑥 들어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침대로 눕혔다.
“앗……!”
“제가 어떻게 배워요.”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제현이 웃었다. 내 위로 떨어지는 무게와 체온에 단숨에 몸이 달아올랐다.
사실 적당히 맞춰주고 끝내면 얘도 ‘내가 지금 시커먼 남자랑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거나 취기도 있으니 그냥 잠들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한 겹의 얄팍한 보호막 같던 그 생각들을 철저하게 무너뜨리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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