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코치님께서 건네주신 클렌징 티슈로 그려진 눈썹을 지우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앞머리 때문에 다 가려지는데 왜 그렸는지도 의문이었다. 그때 제현이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형 저도 지워 주세요.”
“네가 지워.”
“전 티슈 못 받았는데.”
내가 닦던 건데 얘는 참 비위도 좋다. 그러고 보니 제현이는 눈썹이 진하고 모양도 좋아서 따로 그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서너 명이 달라붙어서는 제현의 눈썹에 목숨을 건 사람들처럼 둘러싸고 있던 광경이 생각나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실없는 웃음이 더 쏟아지기 전에 손에 쥔 티슈로 제현의 얼굴을 북북 닦아 주었다.
“형 저 눈썹만 그렸는데요…….”
“네가 할래?”
아팠는지 찡그렸으면서도 내 말에 가만히 얼굴을 숙이고서 눈을 감는다. 너무 박박 문질렀나 싶어 조심스럽게 눈썹 부분을 티슈로 쓸어 주자 화장품이 닦여 나왔다.
“어차피 가서 비누칠해야 해.”
“왜요?”
“나도 몰라.”
방송 탈 땐 늘 메이크업을 받으니 주워들은 건 있지만 이유까지는 잘 몰랐다.
“엄청나게 떨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데뷔전 때도 이렇게 떨면 어떡하죠?”
“그런 것치곤 말을 너무 잘하던데.”
“진짜요? 저 잘했어요?”
꼭 칭찬해 달라는 강아지 같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쓰다듬다가 놀라서 급하게 손을 거뒀다.
“찬희야, 밥 먹으러 안 가?”
라이브 방송 때문에 조금은 늦게 먹게 된 저녁 식사였다. 동진의 재촉에 나는 제현의 눈썹을 한 번 더 닦아 주고 티슈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제현이 만족한 얼굴로 식당으로 향하는 나를 뒤쫓았다.
트릭스 게이밍에서 새로 지은 숙소는 연습실은 물론 식당과 체력 단련실까지 시설로는 KKL 최상급 티어로 유명한 편이었는데 지하 3층, 지상 4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선수들 방은 2인 1실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꽤 오랜 기간을 동진과 준이 그리고 나와 진형이 함께 썼다. 진형이 나가고 성환이와 3일인가 함께 지내다가 도저히 같이 못 지내겠기에 그 방을 나와 혼자 다른 방을 썼었다. 그런데 이번에 트릭스 게이밍에서 아카데미 유망주들을 대거 모집하는 바람에 방이 모자라 다시 원래 쓰던 방으로 돌아와 나는 제현과 함께 방을 쓰게 됐다.
제현과 며칠 함께 방을 쓰면서 알게 된 거지만 얘는 스킨쉽을 정말 좋아했다. 생활 공간이 가장 많이 겹치는 나에게 가장 많이 하지만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동진과 준이도 수시로 껴안고 기대고 치댔다.
진형도 그런 편이었는데 이게 당최 잘생긴 놈들의 특징인지 아니면 유독 이 둘만 그러는 건지 살면서 잘생긴 사람을 그리 자주 만나 보지 못해 알 수 없는 게 한이었다.
“형 준비 다 했어요?”
씻고 나왔는지 머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는 제현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물었다.
오늘은 KKL 스프링 시즌 오프닝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어제 스트리밍 하느라고 늦게까지 게임을 돌렸더니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아 침대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몇 초 등장하지도 않는데 아침부터 가서 헤어, 메이크업을 받고 촬영하는 게 너무 시간 낭비처럼 느껴졌다.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프로게이머는 게임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10분 뒤에 출발할 거래요. 이제 일어나요.”
제현이 내 침대로 펄쩍 뛰어올라 이불 위로 나를 깔아뭉갰다.
“아, 무거워…….”
쥐포처럼 납작해진 기분이었다. 내가 앓는 소리를 내자 제현은 슬쩍 옆으로 굴러 돌아누웠다. 그는 아마 까치집이 되어 있을 게 분명한 내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작년인가 스프링 시즌 오프닝에 이마 까지 않았어요?”
“그랬나?”
“그때 팬들 난리 났었는데, 몰랐어요?”
나랑 게임을 하고 싶어서 여기 왔다더니 제현은 나에 대해 정말 시시콜콜한 것까지도 알고 있곤 했다.
나도 게임 커뮤니티들을 자주 둘러보는 편이지만 내 얘기가 나오면 부담스러워서 어물쩍 넘기거나 보지 않아 잘 몰랐다.
“깐쳌메라고 치면 아직도 나와요.”
제현이 쓸어 넘겼던 앞머리를 다시 내려 주었다.
“저는 내린 게 더 좋아요.”
“내가 머리를 내리나 올리나 그게 그거지.”
“저는 어떤 머리가 더 좋아요?”
턱에 꽃받침을 하더니 눈을 댕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 어지간한 사람이 했으면 못 볼 꼴일 텐데 정말 가증스럽고 잘생겼다. 머리를 지지든 볶든 하물며 박박 밀어도 잘 어울릴 놈이 구태여 묻는 이유를 모르겠다.
“나한테 물어서 뭐 해.”
아직도 꽃받침을 한 채로 있는 제현을 두고 뻐근한 목을 주무르며 몸을 일으켰다.
***
“피부가 어쩌면 이렇게 좋아? 화장 너무 잘 먹는다. 본판이 좋으니까 별거 안 해도 빛이 나네.”
“잘해 주셔서 그런가 봐요.”
“어머 말도 예쁘게 하는 거 봐. 주변에 여자 많지? 여자 친구가 고생이겠다. 나라면 가둬 두고 집 밖에 못 보내. 어떻게 보내냐.”
“에이, 게임하느라 없어요.”
“헐, 프로의 길이란 정말 험난하구나. 이 얼굴을 하고 여자 친구가 없을 수도 있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다 아깝다.”
옆에서 하하 호호 소리가 끝없이 난다. 나는 저런 스몰토크에 쥐약인 편이라 저렇게 자연스럽게 해내는 것을 보면 새삼스럽고 신기했다.
“형, 저 어때요?”
메이크업이 끝났는지 한층 더 반짝반짝해져서 돌아온 제현이었다. 아까 김준이 저거 옆에 어떻게 서야 하냐고 경악하던 게 단박에 이해가 됐다.
“이번 오프닝 CG 완전 화려하게 들어갈 거래요.”
처음 찍는 촬영이라 그런지 들뜬 모습이 어린애 같았다. 몇 살 차이도 안 나는데 상대적으로 낡고 지친 나는 무슨 노인네가 된 것만 같다.
숙소에서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운이 달려 대기실에 있던 초코바를 우적우적 씹어 넘겼다. 혀끝에 맴도는 단맛이 불쾌해 오만상을 쓰면서도 초 단위로 당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억지로 씹어 넘겼다.
“체크메이트 선수 여기서 여기까지 천천히 걷다가 이쪽 카메라 보면서 뒤돌아 주세요.”
“네.”
그냥 몇 걸음 걷는 게 이렇게 어색할 일인지, 휘적휘적 걸어가 말해 준 위치에서 뒤돌아 카메라를 보았다.
“다시 한번 갈게요. 이번에는 돌아서서 카메라 볼 때 눈빛을 좀 강하게 해 주세요.”
다시 원위치로 돌아오는 짧은 시간 동안 깊게 생각해 봤지만 강한 눈빛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시 촬영이 시작되고 눈에 힘을 준다고 줬는데 화면을 보던 촬영 감독님이 ‘이걸 정말 어떻게 하지?’ 하는 얼굴을 하더니 그냥 아까 찍은 거로 쓰자고 했다. 머쓱해져 뒷머리를 긁적였다.
“조커 선수 들어갈게요.”
들은 바로는 지난 라이브 방송 후에 제현은 게임 커뮤니티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게임 커뮤니티는 제현에 관한 이야기로 도배라도 된 것처럼 뒤덮였다.
제현은 게임 실력이 아니라 얼굴로 주목받는 건 아쉽지만 잘생겼다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데뷔 전부터 화제성이 크니 당연히 오프닝에서도 단독 샷이 들어가나 보다. 화면 가득 들어차는 제현의 얼굴에 다들 흐뭇해 보였다.
“고개 들면서 카메라 잡아먹을 듯이 봐주세요.”
모니터에 나오는 제현과 눈이 마주쳤다. 아까 촬영 감독님께서 내게 요청했던 것이 이런 눈빛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안다고 해서 따라 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긴 했다.
“와, 잘한다. 처음 찍는 거 맞아요? 너무 잘하네. 오케이! 어떻게 찍혔는지 구경할래요?”
“네, 볼래요.”
모니터 앞에 서 있던 내 뒤에 오더니 제 자리인 것처럼 내 어깨 위에 자기 머리를 올려놓고 화면을 보는 제현이었다.
“무거워.”
“형 저거 봐요. 내 얼굴인데 내 얼굴 아닌 것 같아요.”
“화면발이 잘 받긴 하네.”
그럼 실제로는 저거 보다 못생겼냐며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엄살하고는.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촬영 끝났습니다.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동진은 오랜만에 한 화장이 못내 답답했는지 촬영이 끝나자마자 클렌징 티슈를 쥐고 보는 사람이 얼굴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힘주어 북북 닦았다.
메이크업을 해 주신 분이 ‘그거 그렇게 닦는 거 아닌데…….’ 하는 얼굴로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근처에서 그저 아련하게 동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얘들아, 고생했다. 어제 말했던 대로 오늘 회식은 소고기 먹으러 간다.”
“이게 얼마만의 소고기인지…….”
“소고기 먹으면 우승해야 하는 거 알지?”
감독님이 장난스레 말하며 김준의 등을 퍽퍽 쳤다.
“맞다, 찬희야. SNS에 올리게 제현이랑 한 장만 찍자.”
“왜 제가…….”
“동진이는 메이크업 지워 버렸고 준이는 제현이랑 같이 찍히기 싫대. 거기다 역시 딜러는 버퍼랑 페어잖아. 한 번만 해 주라, 찬희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현이 방긋 웃으며 내 옆으로 와서는 내 어깨에 자기 머리를 기댔다. 왁스인지 헤어스프레이인지 머리에 뭘 발랐는지는 몰라도 닿는 머리카락이 평소와는 다르게 까슬까슬했다.
“…….”
내 표정이 밝지 않아서인지 사진 촬영은 빠르게 끝났다.
“오케이, 너무 좋다. 이제 밥 먹으러 갑시다.”
촬영도 끝났는데 여전히 머리를 기대고 있길래 편한가 싶어서 봤는데 아무래도 나보다 제현이 한 뼘 정도는 키가 커서 생각보다 불편한 자세인 것 같았다.
“목 안 아파?”
“네.”
치우라는 소리였는데 너무 돌려 말했나.
“형 이거 봐요. 우리 팀 계정에 방금 찍은 거 올라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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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official @Triangle_Knights
오늘 삼각이들 KKL 오프닝 촬영 무사히 마쳤습니다 ✌
‘Joker’ 황제현 선수와 ‘Checkmate’ 서찬희 선수의 사진으로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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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킹처럼 서 있는 나와 내 어깨에 기대어 웃고 있는 제현의 사진이 보였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RT 수가 꽤 된다.
“형, 제 개인 계정에도 올리게 셀카 몇 장만 더 찍으면 안 될까요?”
“혼자 찍어.”
반강제로 찍힌 것도 모자라서 또 찍자는 말에 인상을 쓰며 단칼에 거절하자 제현이 바로 울상을 지었다.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표정에 내가 못 할 짓을 한 것만 같아 순식간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한숨을 푹 쉬고 어쩔 수 없이 제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 내놔.”
영문을 몰라 가만히 있는 제현의 손에서 직접 핸드폰을 뺏어다 어떻게든 둘 얼굴만 나오게끔 아무렇게나 찍은 후 다시 돌려줬다. 갤러리로 들어가 방금 찍은 사진을 뚫어지게 보던 제현이 살짝 웃음을 지었다.
“형…….”
“뭐.”
“진짜 사진 못 찍으시네요.”
하여튼 찍어 줘도 불만이다.
“가만있어 보세요. 제대로 다시 찍어 드릴게요. 제가 또 사진을 잘 찍거든요. 자, 여기 화면 보세요.”
갤러리를 닫고 카메라를 켜더니 각도를 잡는다.
찰칵.
‘역시 리치가 길어서 그런가?’
얼핏 보아도 아까 내가 찍은 것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사진 한 장 찍는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리나 해서 가만 보니 마우스 클릭 연타하듯 카메라 버튼을 마구 연타 중인 제현이었다.
엄지손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찰칵 소리가 끝도 없이 들렸다.
“그만 찍어.”
“한 장만 더요.”
“혹시 팬이세요?”
“네.”
어느 팀 딜러인지 진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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