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제현과의 게임은 즐거웠다.
보통 진형과 사소하게라도 말싸움했다 하면 혼자 신경 쓰다 아무것도 못 하고 앓아눕곤 했는데 어제는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즐거웠다. 집도 학교도 가지 않고 피시방에 처박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이츠를 하던 그 시절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새벽까지 같이 게임을 하다가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점심때였다. 시계를 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가 어제 새벽에 진형이 전화하기에 핸드폰을 꺼 두었던 게 기억났다. 다시 켤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두고 연습실로 들어와 컴퓨터를 켰다.
잠 깰 겸 게임을 한판 하려고 나이츠에 접속해 게임 매칭을 돌리면서 게임 커뮤니티를 뒤적이는데 1:1 메시지가 왔다.
[MVP King : 왜 전화 안 받아?]
내가 접속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진형이 보낸 메시지였다.
[TGT Checkmate : 할 말 없어]
[MVP King : 나 며칠 뒤면 다시 돌아가는데 이렇게 굴 거야?]
사람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작정한 것인지 의심될 지경이다. 친구 차단을 누르려다가 괜히 차단했다가 신경 쓰여 안절부절못할 내가 눈앞에 선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결국 게임 매칭 취소를 눌렀다.
[TGT Checkmate : 어디야]
[MVP King : 호텔]
[TGT Checkmate : 갈게]
복잡한 마음에 머리를 박박 문지르며 외투를 챙겨 문을 열자 마침 들어오려고 한 듯한 제현과 딱 마주쳤다.
“좋은 아침이에요. 어디 나가요?”
“잠깐 바람 쐬러.”
제현이 눈썹을 들어 올리며 잠깐 무슨 생각하는듯하더니 내 머리카락을 한번 정돈해 줬다.
“바람이 차니까 너무 오래 쐬지 말고 돌아오세요.“
밤새 같이 게임을 한 사람 같지 않게 싱그러웠다. 몇 살 차이도 안 나는 게 그 몇 살이라도 어려서 그런가. 가만히 두면 계속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것 같아서 머리를 한 번 흔들어 제현의 손을 쳐내고 숙소를 나섰다.
***
단걸음에 호텔까지는 왔는데 문 앞에서 서성이기를 한참이었다.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 있으니 문이 열렸다. 아마 담배를 피우러 나가려 했는지 손에 담배와 라이터를 든 진형이 날 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언제 왔어?”
“…….”
“들어와.”
도망치듯 뛰쳐나왔던 방을 다시 제 발로 들어가고 있으니 민망했다. 오자마자 몸이 달아오른 사람처럼 붙잡고 키스해댄 것도 쓸데없이 덩달아 떠올라 뒷덜미를 긁적였다.
“그렇게 계속 아무 말 안 할 거야?”
“내가 지금 형한테 무슨 말을 더 해.”
내가 진형을 좋아하고 그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건 백날 이야기한다고 해서 변하지 않을 텐데, 도대체 무슨 얘기를 더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진형에게 시선이 곱게 나가지 않아 나도 모르게 그를 흘겨봤다.
“찬희야, 내가 어떻게 해야 해?”
“왜 안아 주기라도 하려고?”
“그러길 원해?”
여기서 내가 그렇게 해 달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 점이 오히려 더 잔인했다. 답답한 심정에 마른세수를 연거푸 했다.
“형은 뭘 원하는 건데.”
“난 네가 나 밀어내는 거 싫어…….”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그래? 다 받아 줄 수도 없으면서 어중간하게 굴지 마. 짜증 나.”
“그렇다고 아예 말도 못 붙이게 해? 연을 끊자는 거야? 뭐가 그렇게 불만인 건데? 내가 널 안 받아 주는 것도 아니잖아.”
남의 속도 모르고 나오는 말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는 형이 이럴 때마다 날 억지로 견디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찬희야…….”
“형은 그게 얼마나 거지 같은 기분인지 모르지? 알면서도 이러면 사람도 아니지.”
“그런 거 아닌 거 알잖아. 나 이번에 태어나서 우승컵 처음 들어봤는데 너부터 생각났어. 자다 깨서 너 찾은 거 한두 번도 아니야. 어떻게 내가 널 견딘다고 생각해.”
눈 아래가 거뭇한 게 제대로 쉬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아무리 사람 속 뒤집어 놓는 소리나 하고 있다지만 나 하나 보고 싶다고 저 멀리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온 양반에게 내가 너무 박하게 굴었나 싶었다.
“아니다. 네가 그렇게 느꼈으면 내가 잘못한 거지. 미안하다.”
사과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린 거지 애초에 사과가 필요한 문제도 아니었다. 진형의 말대로 날 받아 주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다가가면 다가오는 대로 받아 주지 않았던가.
내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눈치챈 진형이 침대에 드러눕더니 옆자리를 톡톡 쳤다.
“화 풀고 나 좀 재워 주라.”
그 말에 못이기는 척 꾸물꾸물 다가가 옆에 눕자 날 끌어안았다.
“…….”
이 정도에 내가 만족만 하면 될 텐데 그게 잘 안 됐다. 진형은 늘 나를 똑같이 대하는데 나 혼자서 진형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난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늘 온전한 내 것이 갖고 싶었다. 완전한 내 소유가 아니라면 그 말은 즉, 내 것이 아니라는 소리와 똑같이 들렸다. 고른 숨을 내쉬는 진형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어차피 진형은 내 것이 아니다. 몇 년 동안 가슴에 절절하게 남은 것은 고독함뿐인데도 진형을 안고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함께 지낸 시간이 촘촘하게 우리를 엮고 있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면 먼 타국으로 날아가겠지만 나는 이 온기의 허상을 끌어안고 한참을 보낼 것이다. 그래도 멀리 있는 게 더 좋았다. 떨어져 있으면 진형의 행동 하나에 하루에도 수십 번을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했다.
***
진형이 미국으로 돌아간 후 우리는 새 시즌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Joker’ 제현의 영입 기사가 뜨고 꽤 화제인 모양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프런트에서는 TGT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간단한 인사를 하자고 했다.
마침 제현의 유니폼도 제작이 완료되어 옷이 잔뜩 생겼다며 옷더미를 들고서는 방긋 웃었다.
우리 팀 컬러는 화이트와 골드였는데 그 덕에 유니폼이 하얀색 천지라 깨끗하게 입기가 더럽게 힘들었다.
“어때요?”
등 뒤에 Joker가 박힌 유니폼을 입고서 한 바퀴 도는 제현이었다. 유니폼에 별생각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멋진 걸 보니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가 보다. 프런트 팀도 저 정신 나간 비주얼에 정말 감격한 모양새였다.
“진짜 모델 같지 않아요?”
“화제성은 따 놓은 당상 아닐까요.”
“저 편집할 거 생각하니 두근거려요. 오늘 카메라 몇 대죠?”
“스트리밍용 하나, 녹화용 하나, 클로즈업용 하나요.”
“클로즈업 빡세게 부탁드려요. 어떻게 쟤는 화면발도 잘 받지.”
보통 유튜브 촬영은 아무렇게나 찍는데 오늘따라 팀원들 머리도 만져 주고 스태프 화장품을 빌려 눈썹도 그려 준다 했더니 다들 제현을 보고 신이 난 모양이었다.
“진짜 싫다…….”
각자 자리에 앉아서 방송 시작을 기다리는 와중에 김준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작은 키에 콤플렉스가 있는 녀석인데 180을 훌쩍 넘는 동진과 제현 사이에 앉으니 작은 체구가 더 작아 보이긴 했다.
보통 탱커 - 힐러 - 딜러 - 버퍼 순으로 서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김준은 계속 저 사이에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점이 딱했다. 마지막으로 명진욱 감독님이 자리에 앉으며 준비가 끝났다.
“방송 시작합니다.”
방송 시작 전부터 팬들이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맞은 편에 있는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 채팅창을 볼 수 있었는데 채팅이 올라오고 있었다.
- 삼각이들 우승할 때까지 숨참음
- 쳌메쳌메쳌메쳌메쳌메쳌메쳌메
- 쳌멘쳌멘쳌멘쳌멘쳌멘쳌멘쳌멘
- 3 등 도 잘 한 거 야 !
- 욕★받★이★무★녀★조★커★ 구경 왔읍니다★★★
- ?
- 헐
- 헐???
- 대박 사건
- 뭐임?
- 이게 무슨 일이냐
- 헐; 쟤 설마 조커임?
- ㅁㅊ
방송이 시작되어 화면이 출력되는 순간을 기점으로 렉이 걸려서 다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채팅창이 올라갔다.
보통 이렇게까진 난리가 나지 않는데 하며 옆에 앉아 있는 제현을 보자 대충 이해되면서 그럴 만하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나도 처음 봤을 때 정신 못 차리고 쳐다봤으니까.
“안녕하세요,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감독 명진욱입니다. 오늘은 새로 영입한 선수 소개 겸 이번 시즌 각오에 대해 선수들과 함께 팬 여러분께 인사드리고자 합니다. 얘들아, 앉은 순서대로 인사드리자.”
“안녕하심까. 탱커 ‘Guri’ 구동진입니다.”
“당신의 달링…… 만능 힐러 ‘Darling’ 김준 인사드립니당.”
어쩐지 풀이 잔뜩 죽어 있는데도 제 소개는 잊지 않는 김준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번 시즌부터 딜러로 함께하게 된 ‘Joker’ 황제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버퍼 ‘Checkmate’ 서찬희입니다.“
제현이 자기소개를 하고 영업용인지 미소를 지어 보이는데 마침 클로즈업이 들어갔고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제현을 찍고 있던 카메라 앵글이 내 쪽으로 오는 게 버거워 랩 하듯이 소개를 빠르게 끝냈다.
“네…… 새 친구가 좀 잘생겼죠. 합을 맞춰 보고 있고 팀의 전력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팀의 변화와 앞으로의 각오를 간단하게 정리했고 채팅창은 여전히 혼란의 도가니였다. 감독님의 말을 제대로 듣는 사람도 얼마 없어 보였다. 감독님은 아련하게 불타는 채팅창을 바라보다가 제현에게 말을 건넸다.
“제현아, 팀에 들어온 소감이라도 말해 볼래?”
“아, 네. 쭉 동경하던 선수들과 함께 게임을 하게 되어서 기쁩니다. 많은 기대를 모으던 자리에 온 만큼 팬 여러분께서 실망하시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보통 프로게이머들은 게임만 하던 사람들이 다수라서 저렇게 갑자기 말을 시키면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신인답지 않게 답변이 깔끔하고 자연스러웠다.
“아 새 친구도 온 김에 이번 시즌 공약 하나 걸겠습니다. 이번에 우승하면 애들 휴가 때 해외여행 보내 주겠습니다.”
우리에게 언질도 없이 대뜸 쏟아진 감독님의 발언에 네 명 모두 눈이 휘둥그레 떴다.
“우승 못 하면 지리산 보내서 지리는 지리산 정기 받아 오라고요? 하하, 그러죠.”
채팅 하나를 기막히게 캐치했는지 우승 못 하면 지리산을 보낸단다. 나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여행은 딱 질색인데 이기나 지나 꼼짝없이 끌려가게 생겼다.
“감독님 저는 하와이요.”
“우승만 해. 하와이든 몰디브든 다 보내 줄 테니까.”
준이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나만 죽상을 하고 있으니 제현이 손으로 미간을 쭉쭉 펴줬다.
“지리산이 그렇게 싫어요? 제가 열심히 해 볼게요.”
그러니까 나는 지리산이든 하와이든 싫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제현에 관한 내용으로 날뛰는 채팅창에서 감독님이 무던한 질문 몇 개를 골라 답변을 한 후 라이브 방송이 종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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