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제현의 환영회 다음 날 아침 쭈뼛거리며 김준이 사과를 해 왔다. 술이 과해 실수한 것 같다며 연거푸 사과하더니 그 이후로 내 눈치를 보기 바빴다. 사과를 한 건 동진이 시킨 것 같았지만 진심으로 미안해 보였다. 하도 사람 눈치를 보기에 고개를 한번 끄덕여 주고 스크림 준비에 들어갔다.
약간의 강박증처럼 게임 전 매번 자리 세팅을 철저하게 하는 편이었다. 마우스나 키보드의 위치가 달라지면 거슬려서 게임이 안 됐다. 익숙한 것을 좋아해서 키보드, 마우스 같은 장비들도 늘 같은 것을 사용했다.
데뷔 때부터 사용하던 마우스가 단종되어 난감하던 차에 스폰서인 트릭스 게이밍에서 거의 똑같은 마우스를 제작해 제공해 주었다. 팀 스폰서가 게이밍 기어 회사라서 살았지 아니었다면 다른 마우스에 적응한다고 태초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을 느꼈거나 진지하게 은퇴를 고려했을 수도 있겠다.
슬쩍 옆자리를 보자 제현도 본인이 가져온 장비를 주섬주섬 꺼내고 있었다.
“어…….”
마우스가 낯이 익었다. 예전에 쓰다가 단종되어 더는 구할 수 없는 그 마우스였다. 깨끗한 게 관리 상태도 좋아 보였다.
“너 이거 써?”
“네, 저 이제 이거 아니면 컨트롤 이상해요.”
“단종된 모델인데?”
“단종 전에 쟁여 뒀죠.”
슬쩍 제현의 손을 보자 제 키만큼 길쭉하다.
‘저 손 크기에는 너무 작아서 불편할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마우스가 반가워 뚫어지게 구경하고 있으니 제현이 은근슬쩍 내 시선 밖으로 마우스를 치웠다.
‘아, 혹시 탐내는 것처럼 보였나?’
머쓱해져 시선을 거두고 남은 세팅을 빠르게 끝냈다.
웅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중세 배경의 성들이 지나갔다. 상대 진영의 성을 먼저 함락하는 팀이 이기는 단순한 게임. 그 단순한 게임에서 다양한 기사들과 전략이 나오는 게 나이츠의 묘미였다.
[ 게임이 곧 시작됩니다. ]
번쩍이는 황금빛 갑옷으로 둘러싸인 제현의 캐릭터가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최근 나이츠 리그의 메타는 첫째도 안정, 둘째도 안정이었는데 제현의 주력 기사들은 운용하기 까다롭고 모 아니면 도인 캐릭터들이 많았다.
시작 전부터 불안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팀원들의 극진한 보호 속에서도 제현이 자꾸만 죽어 나가 제일 중요한 딜러가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패배였다.
[패배]
같은 트릭스 게이밍 소속 2부 팀인 트릭스 게이밍 스퀘어와 꽤 오랜 시간 연습 경기를 하고 있었다.
연달아 몇 번을 진 건지 이제는 헤아리는 것조차 힘들었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손발이 안 맞을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아….”
동진조차 한숨을 푹 쉬었다. 김준은 원래가 똥강아지같이 밝은 성격이라 첫날인데 이럴 수도 있지, 하며 허허 웃었지만 멘탈이 터져 있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제현의 피지컬은 확실히 좋았다. 게임을 하다 보면 피지컬로 난다 긴다 하는 애들 한둘 만나는 것이 아닌데 그중에서도 톱급이었다.
하지만 프로와 아마의 차이란 손발 쿵짝에서 나온다. 그게 맞지 않는다면 개개인이 아무리 잘나도 팀 게임은 질 수밖에 없다.
“하아…….”
나도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제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방금 게임의 결과표를 뒤적이고 있었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내가 한참을 쳐다봐도 모르고 있었다. 팔을 뻗어 쓰고 있는 헤드폰을 톡톡 두드리자 그제야 내 쪽을 봤다.
“네?”
“너 말 못 해? 브리핑 안 해?”
조금 신경질적으로 말이 나가자 제현이 슬슬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특유의 느긋함을 몸에 두른 듯 차분한 녀석이라 이런 모습이 낯설었다.
“아, 그게, 음….”
뭐라 말을 하려다 말다 반복하기에 답답해서 속이 터지기 직전에 제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요.”
“뭘.”
“형이 전반적인 오더, 브리핑 다 하시는데 제가 입 열면 오더 갈릴까 봐요. 그래서 어디서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 생각해 보니 그거 때문에 제 상황 브리핑도 잘 안 한 건 제 실수예요.”
자신이 들어와서 처음 하는 연습 경기에서 패배만 연달아서 하니 풀이 죽을 만도 한데 그런 모습은 없었다. 오히려 제 실수를 드디어 알았다는 듯이 막힌 게 뚫린 사람처럼 후련해 보였다.
“이번엔 그냥 제 맘대로 해 볼게요.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아요.”
아직 데뷔전도 못 치러 본 게 건방지게 ‘해 봐도 될까요.’가 아니고 ‘해 볼게요.’다. 의욕이 가득 찬 눈동자가 반질반질 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러던가.”
“이번엔 잘할게요.”
그렇게 호언장담을 한 것에 비해 첫판은 개망나니 놀음이었다. 스퀘어 쪽에서는 지금 던지는 거냐고 기분 나쁜 티를 냈고 감독님과 코치님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졌다.
나와 제현이 서로 오더가 갈리면서 준과 동진이 갈팡질팡했고 각개격파 당한 탓이었다.
[ 게임이 곧 시작됩니다. ]
분위기가 흉흉해진 와중에 우리 넷만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다.
“한 번 더 가죠.”
분명 의견이 갈리고 맞부딪혀 불협화음을 내면서도 게임을 할수록 그 속에서 뭔가 느껴졌다.
“……!”
막연히 안 맞는 것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합을 맞추는 과정이라고 느껴지는 확신.
나뿐만이 아니라 네 명 모두 느꼈던 모양이었다. 빠르게 다음 게임이 시작되었고 은근한 흥분이 몸을 감쌌다.
“미쳤다.”
준의 감탄과 함께 게임이 끝났다.
[승리]
두 글자가 번쩍였다. 언제 완패했었냐는 듯 게임이 술술 풀렸다.
제현이 미쳐 날뛰었다. 무조건적인 서포팅이 아니라 적당히 서로를 믿으며 필요할 때 쿵 하면 옆에서 짝 하고 소리를 내주자 제현이 날개를 펼친 듯 훨훨 날아다녔다.
게임 내내 손발이 척척 맞는 쾌감이 척추를 따라 찌르르 흘렀다.
“진짜 장난 아니야…….”
“미친 나이츠 딜러 게임 맞다니까. 동형 우리 이번에 진짜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동진이 넋이라도 나간 것처럼 승리 표시를 끄지도 않고 의자에 널브러지자 준이 울 것처럼 말했다.
2부 팀을 상대로 한 연습 경기였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경기력이라면 1부 팀들도 충분히 상대할 만했다.
지금 같은 컨디션만 이어진다면 창단 이래 이긴 적이 손에 꼽는 천적 KJ 스노우가 상대라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저 잘했죠?”
제현이 칭찬해 달라는 강아지처럼 눈을 빛내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
너무 가까이 다가온 제현의 얼굴을 밀어냈다. 이래서 잘생긴 애들이란. 자기들 얼굴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잘 먹힐 거라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어디 보자. 예전에 진형의 얼굴에 면역력이 생기는 데 한 달쯤 걸렸던가. 수준이 올라갔으니 한 3개월은 잡아야 하나?
‘저놈 얼굴에 익숙해지다가 시즌 하나 날리겠네.’
오늘 진행한 게임 분석표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
[MVP King : 찬희야.]
혼자 랭킹전을 돌리고 있었는데 진형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매일매일 붙어서 온종일 같이 게임하고 생활하던 사람이 북미팀으로 이적을 가고 나서는 거기 적응한다고 시차 때문에 연락이 뜸해졌다.
처음에는 뜸해지는 연락에 서운하기도 하고 연락이 오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이제는 오히려 연락이 오면 어색했다. LA는 이른 아침일 텐데 진형이 일찍 일어난 건지 잠을 안 잔 건지도 모르겠다.
[TGT Checkmate : ㅇㅇ]
[MVP King : 통화할래?]
[TGT Checkmate : ㄴㄴ]
[MVP King : 간만에 목소리 듣고 싶어]
[TGT Checkmate : ㄴ]
게임 하나가 끝나도록 답장이 없더니 내가 게임을 끝내고 대기실로 나온 것을 봤는지 대뜸 영상 통화를 걸어 왔다.
“뭐야.”
-보고 싶어서.
자려고 누운 건지 이제 일어난 건지 진형이 침대에 파묻혀서 중얼거렸다.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영상 통화는 왜 건 거야?
“안 잤어?”
-좀 자다가 깼어.
숙소에서 함께 지낼 때도 자기 침대에서 얌전히 잘 자다가 내 침대로 한밤중에 기어들어 오곤 했다.
너는 얌전하게 자니까 안고 자면 잠이 잘 온다면서.
-딜러 새로 들어왔다며?
“응.”
-잘해?
“응.”
-잘한다고?
예상치 못했던 대답인 듯 진형은 당황을 감추지 못한 표정이었다.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성환이 새로 팀에 들어왔을 때도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그때는 잘하냐는 말에 어물쩍 대답을 피했다. 실제로 성환이나 나나 억지로 합 맞추는 기분을 게임을 하면 할수록 절절하게 더 느꼈으니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한 번은 술에 취해서 진형에게 형 아니면 안 될 것 같다고 지나가듯 말한 적도 있었다.
“잠이나 자.”
-아니, 잠깐만 찬희야.
부끄러운 기억이 더 선명하게 기억나기 전에 통화를 끝내려고 했는데 진형이 붙잡았다.
-나 다음 주에 일주일 정도 휴가받아서 한국 갈 것 같거든.
“응, 알았어.”
-너도 며칠 정도는 받을 수 있잖아.
“하루.”
진형은 뭐라고 더 말을 하려다가 그냥 한숨을 한 번 크게 푹 쉬고는 알았다고 했다.
-일정 보내 줄 테니까 너도 거기 맞춰 봐.
“알았어, 잘 자.”
-우리 오랜만에 얼굴 보는데 뭐가 그렇게 급해? 너 나 안 보고 싶었어?
“끊어.”
여기서 붙잡히면 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통화를 이어 나갈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진형이 예매한 비행기 티켓 스크린 캡처를 보내왔다. 캘린더에 진형의 입국 일자와 공항 도착 예상 시간을 입력했다.
“뭐예요?”
옆에서 게임하고 있는 줄 알았던 제현이 헤드셋을 벗으며 말했다.
“왜?”
“킹 한국 온대요?”
“알아서 뭐 하게.”
차갑게 나오는 대답에 제현이 고개를 홱 돌리고 다시 헤드셋을 썼다. 연습실을 나오면서 보니 마우스 질이 거칠다.
‘아무리 봐도 저 손에 저 마우스는 너무 작은 것 같은데.’
프런트에 진형의 입국 일자를 알리고 이틀의 휴가를 받았다.
이야기를 길게 끌고 싶지 않아 그냥 주는 대로 받았지만, 하루만 쉬고 다음 날 숙소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다시 연습실로 들어오니, 안 그래도 진형이 한국에 온다는 소리를 SNS를 통해 말한 모양인지 프런트에서는 진형과 유튜브 촬영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조회 수는 잘 나오겠지만 아직 새로 영입한 신인 딜러 얼굴도 공개 안 한 상태에서 팀의 터줏대감 딜러 역할을 해 다음 딜러를 욕받이 무녀로 만든 사람을 나오게 해도 되는지가 주요 관건인 모양이었다.
“제현아, 신경 쓰이냐?”
“조금요.”
‘진형과의 촬영이 잡힌다, 만다,’ 하는 소리에 동진은 제현이 심란할까 봐 걱정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웃으면서 대답하는 제현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찬희야, 이번에도 공항에 마중 갈 거야?”
“네.”
“아, 그럼 밖에서 자고 오겠네. 나도 김에 본가에 가서 효도 좀 하고 와야겠다. 제현아, 너는?”
“저는 그냥 숙소에 있으려고요. 안 그래도 집중력 부족하다고 혼나서요.”
보통 프로게이머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잠자는 시간보다 긴 사람이 훨씬 많은데 제현은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유독 못 견뎌 했다.
게임을 몇 판 하다가도 스트레칭을 하거나 체력 단련실에 갔다 오거나 산책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하도 그러길래 집중 좀 하라고 한마디 했더니 시위라도 하듯 종일 옆에 붙어 앉아 있더니 저렇게 말한다.
그새 애를 혼냈냐는 동진의 매서운 눈초리에 한숨을 푹 쉬었다. 제현이 의자 팔걸이 높낮이를 이리저리 만져 보더니 묻는다.
“형은 엉덩이 안 아파요?”
“엉덩이가 왜 아파.”
“저 살면서 이렇게 오래 앉아 있어 본 적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네 랭킹이 그 모양이지.”
나이츠에서는 승패에 따라 명성 포인트를 받는데 퍼센트 별로 브론즈-실버-골드-플래티넘-다이아몬드-마스터-그랜드마스터-랭커로 티어가 나뉘었다.
그중 랭커는 서버 포인트 랭킹 100위까지라서 딱 100명의 자리만 존재했다. 대부분의 랭커는 프로게이머나 유튜버들이었는데 최상위권인 1위에서 20위 사이에는 프로들만 있었다.
제현도 랭커였지만 최상위권은 아무래도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해서 제현의 판수로는 절대 무리였다.
사실 랭커인 게 용할 정도였다. 핵 유저가 아닌지 의심받을 정도로 압도적인 승률이 아니었다면 보통 저렇게 적게 해서는 랭커로 못 올라온다.
게임을 잘하는데 왜 더 하지 않는 건지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게임만으로 생활을 꽉 채우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보통 내가 잘하면 더 오래, 더 많이 하고 싶지 않나.’
“형은 언제 쉬어요?”
“은퇴하면.”
“와 대기 중에도 게임을 하네.”
새로 큐를 잡는 막간 타임을 이용해서 지뢰 찾기를 틀어 이리저리 클릭하고 있으니 제현이 징하다는 표정으로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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