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비 마이 트로피-1화 (1/100)

1화.

스피릿 게임즈가 개발 및 서비스하는 전 세계적으로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는 AOS 4:4 대전 게임 나이츠.

중세 판타지 배경의 탱커, 힐러, 딜러, 버퍼 총 4종류의 클래스가 있고 각 종류의 다양한 기사 캐릭터 중 하나를 선택해 상대편 진영의 성을 차례로 공성에 성공하면 승리하는 단순한 게임이다.

하지만 각 캐릭터 스킬 및 특성을 이용한 피지컬 싸움이나 맵 지형을 이용한 전략적인 움직임 등 다채로운 매력으로 e-스포츠 또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국내 리그에는 8개의 프로 구단이 운영 중이며 1부 리그와 2부 리그로 나뉜다.

한국 나이츠 1부 리그 통칭 KKL 서머 시즌의 대단원이 조금 전 끝났다. 월드 시리즈 직행 티켓이 걸린 결승전이었다.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 창단 이래 최초로 KKL 우승컵을 거머쥡니다!

-아 매번 결승전 문턱을 넘지 못하고 번번이 넘어졌던 것을 만회라도 하듯이 깔끔한 승리입니다!

-트라이앵글 삼각형이라서 만년 3등 ‘만년삼이다’ 이 소리 정말 많이 듣던 팀인데 드디어 우승합니다! 야 누가 만년삼이래? 삼각이도 1등 할 줄 알아!!

[승리]

화면에 승리라는 두 글자가 뜨자마자 키보드에 얼굴을 처박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아…….”

옆에서 동진이 준이와 얼싸안으며 괴성을 질러 댔다. 나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거친 숨을 내뱉으며 흐느끼기 바빴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뚝뚝 떨어졌다. 그때 제현이 내 의자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더니 이마를 맞부딪혔다.

“내가 더 높은 곳까지 데려가 준다고 했잖아.”

제현의 얼굴이 자꾸만 흐르는 눈물때문에 흐려졌다. 입술을 깨문 채로 제현을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내 뒷덜미를 움켜쥔 제현의 손이 아주 뜨겁고 축축했다.

태어나 처음 해 보는 우승이었다. 데뷔 이래 매번 3등이라는 등수에 그쳐야 했던 지난날들이 뼈에 사무치는 듯해 더욱 벅차올랐다.

“야, 너희 뭐 해? 빨리 따라 나와!”

동진의 재촉에 눈물을 닦고 있으니 제현이 내 손을 덥석 붙잡아 끌고 나섰다. 제현의 손이 오늘따라 더욱더 뜨겁게 느껴졌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커다란 팬들의 환호성과 카메라 셔터 소리가 무수하게 들렸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조명과 흩날리는 꽃가루 속에 정신을 못 차리고 나는 술에 취하기라도 한 것처럼 비척비척 걸어서 우승 트로피 앞에 섰다.

모두 내가 트로피를 들어 올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러 힘주어 손등으로 얼굴을 쓸어 눈물을 닦아 내고 손을 뻗었다.

손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덜덜 떨렸다.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트로피를 들어 올리자,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제현에게 트로피를 넘겨주자 환하게 웃으며 건네받은 트로피를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내가 후들거리는 팔을 감추며 힘겹게 들어 올렸던 트로피를 참 가볍게도 들었다. 그리고 제현은 연인에게 키스하듯 부드럽게 눈을 감아 트로피에 입을 맞췄다. 카메라 셔터가 시끄럽게도 터져 나갔다.

제현은 트로피를 동진에게 건네고 다시 나에게 달려와 내 목 언저리에 고개를 파묻더니 언제 웃었냐는 듯 서럽게도 울었다.

“좋은 날 왜 울어.”

“형도 울고 있잖아요.”

“……안 울어.”

거짓말이었다. 제현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고생했다.”

그 한마디가 뭐가 그렇게 감동인지 제현은 기어이 오열하며 엉엉 울었고 덩달아 슬퍼진 준이와 꾹 참던 동진이 형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트릭스 게이밍 트라이앵글의 최초의 첫 우승 인터뷰는 전원 대성통곡 대잔치로 시작됐다.

***

“이번에 새로 들어온 딜러랑 인사들 해라. 얘가 그 유명한 조커야. 신인이고. 쉬는 동안 맞춰 보고 다음 시즌에 데뷔전 치를 거야.”

게이밍 기어 회사인 트릭스 게이밍의 스폰이 있기 전 팀 트라이앵글 시절부터 함께한 감독인 명진욱의 짤막한 소개였다.

창단 때부터 함께한 딜러인 ‘King’ 권진형이 북미팀인 MVP로 이적한 후 맞는 두 번째 딜러였다.

첫 번째 딜러는 중상위권 팀의 메인 딜러로 활약했던 ‘DDuru’ 나성환이었는데 한 시즌 만에 다시 나가 버렸다.

사실 성환이는 들어오자마자 나갈 때까지 어마어마한 욕을 먹어서 나갈 때도 다들 그러려니 했다.

성환이 팀을 나가면서 자조적으로 했던 말이 한 시즌 동안 먹은 욕으로 벽에 황금 벽화 그릴 때까지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할 정도였다.

진형은 나이츠 리그의 입덕문으로 유명했고 팬도 다른 사람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많았다. 거기다 이적 후에 폼이 오르고 있는 마당이라 사실 성환이 아니라 누가 들어왔어도 그 정도 욕은 먹었을 터였다.

독이 든 성배 같은 저 트라이앵글의 딜러 자리를 누가 채울 것인가는 나이츠 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트라이앵글의 팬이 아니더라도 꽤 큰 이슈였다.

팬들은 그 성배를 드는 자에게 [욕받이 무녀]라는 타이틀을 선사해 주었고 오늘 우리는 2대 욕받이 무녀를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황제현이라고 합니다.”

모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훤칠한 녀석이 성우 뺨치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감독님 혹시 딜러 얼굴로 뽑았어요?”

“심했다, 진짜.”

제현의 인사가 끝나기 바쁘게 동진과 준이 차례로 반응했다. 아이돌 시켜 준다고 사기 계약이라도 한 것 아닌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이번 2대 욕받이 무녀는 외모가 빼어났다.

진형도 얼굴로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았다지만 제현은 차원이 달랐다. 당장 충무로에 데뷔해도 어색함이 없을 것 같은 애가 프로게이머로 데뷔를 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저 정도 얼굴이면 성환만큼 욕먹지는 않으리라 생각해 영입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와, 동형보다 큰 것 같아. 내가 너처럼 생겼으면 연예인 하지 프로게이머 안 한다.”

준이가 옆에 섰다가 키 차이가 나는 게 싫은지 멀찍이 떨어진 내 옆으로 왔다.

팬 페이지나 홈페이지 메인에 자주 등장하는 녀석이라 닉네임이 익숙했다.

‘조커라니.’

조커는 최근 나이츠에서 제일 유명한 일반인 랭커로 급부상 중이었다. 랭킹전에서 1:1로 붙는 상황이면 프로를 만나도 항상 몇 대 안 맞고 다 조져 버리는 희대의 미친놈.

정신 나간 피지컬에 난다 긴다 하는 프로 구단에서도 데려가고 싶어 난리였다. 연달아 시즌 우승에 월드 시리즈에서도 여러 번 우승한 국내 최고의 팀이라 불리는 KJ 스노우에서도 조커에게 파격적인 연봉으로 입단 제의했는데 거절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런데 입단 테스트까지 거쳐서 여기로 오다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야, 너 진짜 KJ에서 입단 제의 왔었어?”

“네.”

“뭐야, 우리 동갑이야. 그냥 말 놓자. 그런데 왜 여기 왔어? 메인 딜러 하고 싶어서?”

“그것도 있고…….”

궁금함을 참지 못한 준이 질문을 우르르 쏟았고 그 덕에 나와 동진의 궁금증도 차례로 풀리던 차였다.

‘입단 제의가 있긴 있었구나. 하긴 아무리 파격적인 대우라 해도 서브 딜러로 벤치행이면 영 모양이 안 좋긴 하겠지.’

제현이 머쓱한지 목덜미를 긁적이며 슬쩍 나를 봤다.

“저는 여기서 게임하고 싶었어요.”

제현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며 슬쩍 웃었다.

우리는 진형 덕분에 어지간한 미남에게는 면역이 생겨 그러려니 하는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저게 정말 같은 종족이 맞나 싶은 제현의 웃음 한방에 단체로 넋이 나갔다.

‘쟤는 도대체 저 얼굴로 왜 프로게이머 하는 거지.’

“그 정도로 여기 오고 싶었으면 다 알 것 같지만, 그냥 한번 소개해 보자면 나는 트라이앵글 주장을 맡은 탱커 구동진이고 26살.”

“나는 20살! 당신의 달링, 만능 힐러 김준!”

“야 진짜 안 쪽팔리냐. 요즘엔 아이돌도 그렇게 소개 안 한다. 제현아, 쟤는 쳌메 알지? 버퍼 체크메이트. 22살 서찬희. 원래 낯을 좀 가려. 너 전에 있던 딜러…….”

“아…… 뚜루요? 지금 중국 갔다던데요.”

“엥? 걔랑 친하냐? 아직 기사 안 떴을 텐데. 아무튼 걔랑도 한 시즌 내내 게임 오더 내릴 때 빼곤 한마디도 안 하더라. 네가 그러려니 해라.”

“동창이라서 알아요. 같은 팀 되어서 기뻐요. 동진이 형.”

“그냥 동형이라 해, 다들 그렇게 불러.”

동진은 고향이 구리라서 닉네임이 Guri인데 팬들은 이름이랑 합쳐서 동구리, 동구리 형이라 부르곤 했다. 체구가 거대한 살집이 있는 근육맨이라서 잘 어울렸다. 팀 내에서나 친한 프로들은 동형이라고 불렀다.

팀의 멘탈은 동진이 잡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서 흔들릴 때면 때론 다정하게 감싸 주고 때론 엄하게 다그쳤다. 어딘가 어색하게 굳어 있던 제현도 서서히 녹아드는 것을 보면 참 태어나길 리더로 태어난 사람이다.

“자 그럼 치킨이나 시켜 볼까. 동형 고추 바사삭? 아니면 뿌링클?”

“네가 바사삭 나고 싶지 않으면 뿌링클 시키렴.”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동진이었고 김준은 치킨을 시키고 오기도 전에 술이며 안줏거리 과자들을 착착 세팅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술판을 벌이려는 듯해 절로 미간이 좁아졌다. 참지 못하고 한숨을 푹 쉬자 동형이 내 등짝을 퍽퍽 쳤다.

“아 진짜 한숨으로 압박하지 마! 오자마자 연습하리? 새 멤버 왔잖냐 환영회, 환영회는 해야 할 거 아냐!”

나름대로 힘 빼고 치는 걸 텐데 뭐 그리 강한지 맞을 때마다 내장을 뱉어 낼 것 같다.

“시간 부족하잖아요.”

“내일 해 그냥. 앞으로 허구한 날 해야 할 연습 오늘 하나 내일 하나. 어차피 내일 스퀘어랑 스크림 해 보기로 했잖아.”

“옳소, 옳소! 하루 더 한다고 뭐 좋아지나. 난 오늘 마시고 죽으려니까.”

“김준, 너 적당히 마셔.”

동진이 으름장을 놓았다. 동진은 건달로 오해를 많이 받는 외모라서 그런지 성격도 양아치 같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은근히 고지식하고 잔소리도 많았다.

내가 데뷔를 18살 때 했는데 그때 한팀이었던 ‘King’ 진형은 나에게 자주 술이나 담배 따위를 권했다. 그럴 때마다 매번 미성년자한테 그러지 말라고 동진과 진형은 살벌하게도 싸웠다. 그런데도 진형은 동진의 눈을 피해 몰래 술잔이나 담배를 물려 주곤 했다.

새삼 그런 나날들이 한 시즌 만에 너무나 먼 과거같이 느껴져 입 안이 썼다.

***

“내가 누구냐, 나 김준이야. 처음 나이츠 잡았을 때부터 힐러 랭킹 한 자릿수 밖으로는 나간 적도 없어. 그러니까 여기 와서 이렇게 버티고 있지.”

“준아, 취했다.”

“아 동형 나 안 취했다고. 나는 이해가 안 돼. 쟤가 뭐라고 그렇게 눈치 봐? 씨발 체크메이트면 다냐? 게임 잘하면 다야? 왜 다 쟤 눈치를 봐야 해?”

“그만해.”

“씨발, 서찬희 너 까놓고 말해서 그렇게 권진형 찾을 거면 오퍼 들어 왔을 때 같이 손잡고 가지 괜히 남아서 시즌 내내 팀 분위기 흉흉하게 만들고 좋냐? 너 말고 버퍼가 없는 줄 알아?”

“야, 김준. 너 그래도 찬희가 형인데 버릇없이…… 야, 안 되겠다. 찬희야, 가서 바람 좀 쐬고 와라.”

술이 좀 과했는지 내게 손가락질까지 하며 소리치는 김준을 동진이 가볍게 들어 올려 방으로 끌고 가면서 말했다.

오늘은 나도 오는 술이 잘 들어가기에 잔을 여러 번 비웠더니 술기운이 도는 것인지 얼굴이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듯했다.

‘그래, 찬바람이라도 좀 맞고 와야겠다.’

패딩을 쥐고 일어나려는데 몸이 저절로 흔들거렸다. 이렇게 마신 것도 오랜만이라 처음 취한 사람처럼 기분이 이상했다.

“괜찮아요?”

비틀거리며 외투를 입는데 부축해 주는 얼굴이 낯설었다.

‘아 맞다, 새 딜러 황제현.’

아까도 느꼈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겼다. 괜히 부담스러워 손바닥으로 가까이 다가온 얼굴을 밀어냈다.

“따라오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제현에게 반쯤 기대 있는 채였다. 애써 밀어내고 마음껏 비틀거리며 숙소를 빠져나왔다.

숙소 밖 비상계단에 쭈그려 앉았는데 어느새 따라 나왔는지 제현이 옆에 기대섰다.

칙. 칙.

라이터를 신경질적으로 여러 번 돌렸는데 취한 손길로는 불이 제대로 붙질 않았다. 몇 번을 더 시도하다가 손을 떨구자 제현이 내 입에 물려 있는 담배를 뺏어다 제 입에 물고 능숙하게 불을 붙여서 다시 내 입에 물려 주었다.

“…….”

너무 순식간이라 뭐라고 할 틈도 없었다. 담배를 태우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길래 눈싸움이라도 하듯 한참을 마주 보다 결국 내가 먼저 시선을 내렸다.

“너 왜 여기 왔냐.”

“게임 하려고요.”

“그 게임 KJ에서 하지 왜 여기 왔냐고.”

“형이랑 하고 싶어서요.”

나이츠 랭킹 1위 체크메이트와 게임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님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파격적인 역대급 연봉을 거절하면서 선택한 게 고작 나란다.

어둠 속에서도 끈질긴 시선이 느껴졌다. 어쩌면 저렇게 곧은 눈빛일까. 저 눈빛이 형체가 생긴다면 자로 그은 듯 반듯한 일자일 것만 같았다.

그런 제현은 나에게 피곤함으로 먼저 다가왔다. 기대는 실망을 부르기 마련이라서일까.

“그 게임, 형이랑 하고 싶어서 왔어요.”

내려다보면서 말하는 얼굴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올려다보자 내 앞으로 다가와 쭈그려 앉으며 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팬심이나 동경일까.’

나는 늘 처음 데뷔했을 때의 무관심과 조롱이 편했다. 팬이 늘어갈수록 관심이 커지니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음식을 과하게 먹어 체한 것처럼 속이 불편했다. 내 굳은 표정을 눈치챘는지 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래요. 부담스러워요?”

“응.”

“즉답은 좀 상처인데.”

제현이 총이라도 맞은 것처럼 가슴을 움켜쥐고 과하게 리액션을 취했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제가 더 높은 곳으로 보내 줄게요.“

“게임 해 봐야 알지.”

“나 잘하는데.”

물기 어린 시커먼 눈동자가 나를 뚫어지게 봤다.

“두고 봐요. 진짜 잘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어린애처럼 해맑게 웃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벌린 채 어버버하는 사이에 제현은 비상계단을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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