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Dawn
새벽에 전화가 왔다.
잠든 조인휘의 옆에서 소리 죽여 수음하고 난 뒤였다.
어두운 방 안. 홀로 밝아진 화면에 뜬 저장명에 시선이 머물렀다. 정확히는 학번을 뜻하는 숫자 옆에 붙은 이름에.
‘이희운’
휴대폰은 무음이었다. 몇 달 전, 늦게 걸려 온 전화 때문에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게 된 이후 조인휘의 휴대폰은 자정부터 ‘방해 금지 모드’가 작동되고 있었다.
곧 화면이 꺼졌다. 암전된 휴대폰을 지켜보던 나는 가만히 그것을 집어들었다.
“…….”
부재중 기록을 열자 이희운의 이름과 시간이 찍혀 있다. 삭제시키기 위해 선택했다가, 문득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휴대폰을 들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조인휘가 자고 있는 방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방이었다. 문을 닫고 나서 통화 버튼을 누르자 득달같은 신호가 걸려들었다.
―네, 형.
고작 세 번의 연결음이 이어졌을 뿐이었다. 대기하고 있다 받은 것처럼 재빠른 응답이 들려왔다. 얼마간의 망설임과, 무수한 기대감이 느껴지는 목소리.
전신으로 뻗은 맥들이 요동을 쳤다.
―……여보세요?
“희운아.”
목소리를 내자 꽤 긴 침묵 끝에야 대답이 들려왔다.
―네.
“누군지 알겠어?”
―……고정원 선배님, 맞으시죠.
“응.”
대답하자 단절된 듯한 정적이 깔렸다.
“다른 게 아니라 지금 인휘가 자고 있거든. 통화 못 한다는 거 알려 주려고.”
―……네. 죄송합니다, 늦은 시간에.
“시간이 많이 늦기는 하다.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거야?”
묻자 또다시 입을 다문다.
그 침묵을 뜯어 발기고 싶은, 고역 같은 충동을 느끼며 나는 책상에 놓인 장식물을 쓰다듬었다.
―아뇨. 그냥 알바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었는데, 다음에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내일 시간 돼?”
―네?
“만나서 밥 한 끼 같이 하고 싶은데.”
―아…… 네.
마지못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간 내도록 하겠습니다.
어찌 됐든 승낙을 끝으로 통화는 끝났다.
용건이 사라지고 나서도 나는 방을 나서지 않았다. 구석에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깊숙이 등을 기댔다. 눈을 감고, 습관처럼 손끝으로 목제 테이블을 두드렸다.
탁, 탁, 탁, 탁, 탁……. 규칙적인 간격을 유지하며 두드리기를 수차례.
잠이 든 건 아니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뜨자 통화를 끝낸 시각으로부터 한 시간가량이 훌쩍 지나 있었다.
“…….”
목이 탔다.
어떤 목소리를 기대했는지. 어떤 상황을, 어떤 진전을 기대했는지. 어떤 상태로 어떻게 달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만큼 거세지는 충동을 느꼈다.
* * *
예약해 둔 음식점은 한정식집이었다. 별실이 따로 마련된, 조용하고 사적인 장소.
“인휘랑 작년에 처음 왔었는데 맛이 괜찮아서 종종 들러. 입에 맞는지 모르겠다.”
“맛있네요.”
이희운은 등장할 때부터 지금껏 경직돼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가늠 중이거나, 아니면 이미 어떤 방향으로 짐작하고 있는 듯했다. 대화는 거의 없었다. 이따금씩 눈이 마주치면 이희운 쪽에서 거북한 기색으로 피했다.
“실은 내가 고민이 있어.”
“……예?”
앞뒤 자르고 꺼낸 말에 상대가 멍청한 얼굴을 했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도입이었지만 타이밍이야 어떻든 알 바 아니었다.
“남자랑 사귀고 있거든.”
“…….”
“그건 전혀 문제가 아닌데…….”
나는 손에 든 젓가락을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제대로 이야기에 몰입하려는 것처럼.
“누가 내 애인을 좋아해. 귀엽게도, 우리 과 후배야.”
“…….”
“혼자 속앓이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우면서도.”
눈앞의 목울대가 울렁이는 게 보였다.
“계속 거슬리네. 내가 질투가 좀 많은 편인지.”
물을 한 모금 넘겼다.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긴 듯한 간격을 두고서 말했다.
“차라리 그냥 공개적으로 밝힐까 싶어.”
“……사귀는 사이라고, 학교 사람들한테 알린다는 말이신가요?”
“응.”
대답하자 동공이 흔들린 이희운이 입가를 굳힌다.
“애인분도 동의하신 거예요?”
“글쎄. 물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는 듯, 이희운은 다소 산만하게 굴었다. 물을 들이켠 후에야 경직된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사 동의했더라도, 그건 아니라고 보는데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밝힐 문제가 아니잖아요. 사람들 편견 많아요, 생각보다. 소문 때문에 어떤 안 좋은 일 생길지 모르는 거고, 나중에 사회생활 할 때 더 큰 문제 생길 수도 있고요.”
진지할 대로 진지해진 눈을 쳐다보다가 이내 질문했다. 부드러워 보일 만한 웃음을 머금고.
“너는 꿈이 뭐야?”
뜬금없는 질문에 이희운은 인상을 찌푸렸다.
“좋은 직장 가고, 좋은 남자 만나서 조용히 살기. 뭐 그런 건가.”
“…….”
혼란함이 섞여 있던 눈빛이 매섭게 일변했다. ‘남자’라는 단어에 강하게 반응했음을 알았다.
“질문하는 의도가 뭐예요?”
“고립되고 싶거든, 나는.”
“……네?”
다시 한번 말해 보라는 듯 이희운이 인상 썼다.
“밤낮으로 섹스만 할 것 같긴 한데.”
“…….”
“솔직히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런…… 본능적이고 비생산적인 일들만 하면서 단둘이 종일 시간 보내는 거. 스케줄 없는 기간에는 실제로 그렇게 지내기도 했고.”
침묵, 그리고 또 침묵이 이어졌다. 그사이 나는 눕혔던 젓가락을 들고 식사를 재개했다.
“정확히 무슨 뜻이에요? 고립되고 싶다는 게.”
“……아.”
육회를 집어 들던 젓가락을 멈추었다. 그리고 선선히 설명했다.
“그게 가능한 공간은 있어.”
“…….”
“장소도 있고, 가기만 하면 되는데…….”
말미를 두다 눈을 들자 시선이 마주쳤다.
“언제가 될지 몰라서 혼자 마음 졸이고 있어. 나는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데 인휘가 바쁘잖아. 너도 알다시피.”
“…….”
눈앞의 안면이 흥분감으로 핏기가 도는 게 보인다.
“그러니까 거기에 고립시키고 싶다는 거에요? 인휘 선배를?”
“그렇게 표현하니까 어감이 좀 무섭다.”
나는 웃고 있었다. 하지만 웃음기도 서서히 걷혔다.
“사실 새벽에 네 전화 오는 거 보니까 잠깐 그런 생각도 들더라.”
움직이는 법을 잊은 것처럼 이희운은 가만히 있었다. 나는 홀로 식사를 이어 갔다. 와중에 조인휘에게 온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고, 어디쯤인지 잠시 위치를 확인하기도 했다.
“사람 휘두를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하신 거 같은데.”
“…….”
“본인 비정상적인 건 알아요?”
도발적으로 쏘아보는 눈빛이 보였다.
나는 혀끝으로 입술 안쪽을 쓸었다. 알고 있다고 말해야 하나. 단순히 ‘알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만으론 모자라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인휘와 붙어 있는 걸 봤던 처음부터 지금 현재 이 순간까지였다. 그렇게 묻고 있는 상대를 향해 나 자신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비도덕적인 생각을 품고 있는지 고백하고 싶었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거기까진 내가 생각해도 정말 병증에 가까웠으므로.
“이번 술자리, 굳이 안 나와도 돼.”
이희운을 포함한 후배들과의 술자리 약속이 주중이었다.
“비정상적인 사람이 사는 술 마시기 싫을 텐데.”
오늘로서 경고가 앞당겨졌으니 더는 볼 이유가 없었다.
“……그건 그렇네요, 확실히.”
이희운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제가 먹은 건 제가 계산하고 가겠습니다.”
“내가 부른 거니까 그냥 가.”
“아뇨. 내고 가겠습니다.”
“그럴래?”
이희운은 허리를 숙이는 인사 후 방에서 떠났다. 가볍게 코웃음이 났던 건 과할 정도로 예의 바른 인사법이 운동부 출신다워서였다.
적당히 식사를 마무리하고 나왔다. 차로 돌아오자 시동을 걸기 직전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아까 식당에서 보냈던 답장에 조인휘가 다시 회신을 한 모양이었다.
거치대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밥을 맛있게 먹었느냐고 묻는 말풍선이 보였다. 그 아래 실시간으로 메시지가 뜨고 있었다.
[나는 이제 팀플 가는 중]
[배고파서 라떼 사 먹음 ㅠ]
[이따 끝나고 전화할게~~]
나는 입력 칸을 응시했다. 하지만 끝내 답신을 보내는 일 없이 좌석에 등을 기댔다. 감은 눈으로 오늘 일정을 되짚었다. 지금 당장은 학교로 가서 들을 수업이 하나 있었다.
출발을 지체시키기 몇 분째. 문득 상반신이 갑갑하게 조여 와 목까지 채웠던 셔츠를 느슨하게 풀었다. 길고 깊은 숨이 목 밖으로 새어 나왔다.
“후…….”
이건 의심할 여지없이 확고한 분노였다. 그것도 표출되도록 내버려 두면 안 되는 종류의.
이희운의 수척한 얼굴을 떠올리며 흐리게 웃었다. 열병을 앓는 얼굴. 몸이 달아 잠들지 못하는 티가 역력한 얼굴을 떠올리자 불쾌감으로 비위가 뒤집혔다. 조인휘가 갑자기 왜 거리를 두는지 알고 싶겠지. 밤새 생각을 반복하다가 저 혼자 절절해진 감정을 참지 못해 새벽녘 전화했으리라는 건 불 보듯 뻔했다.
‘이희운이랑 거리 둬.’
‘…….’
‘내가…… 정말로 못 참겠어서 그래.’
얼마 전 차 안에서 했던 부탁이었다. 감정적으로 굴고 있음을 알면서 말 그대로 참을 수 없었다. 놀라서 굳어지던 표정과 황급하게 안아 주던 팔의 떨림을 기억한다. 오롯이 내게만 주어져야 할 다정함을 그 순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
모순이 맞았다. 특정 순간들에 한하여 나는 조인휘가 조인휘가 아니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무르고 연한 속살은 나한테만 드러내길 원했다. 그 끔찍이 부드러운 안쪽으로 파고들려 하는 타인을 어느 때보다도 완고한 태도로 거부하기 원했다. 그래서 아무도 조인휘의 냄새를 알지 못하기를. 오로지 나만 맡을 수 있기를. 실상 그건 소유하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이미 삼키고 내 것이 된 것들에 대한 권리였다.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켰다. 학교 근처 카페에 다다라선 잠시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샌드위치나 베이글, 케이크를 종류별로 포장하고 탄산수를 여러 병 추가했다. 묵직해진 봉투를 받아 그곳을 나왔다.
학교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앱으로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찍힌 곳을 보니 공학관이었다. 팀플 할 때 많이들 이용하는 곳이었고, 세미나실에 있으리라 추정할 수 있었다.
세미나실 앞에 도착해 메시지를 보냈다.
[아주 잠깐이면 되는데 나올 수 있어?]
몇 초만에 답이 왔다.
[??? 무슨 말이야?]
[너 지금 어딘데?]
물음표 가득한 말풍선 밑으로 답장을 입력했다.
[너 있는 데]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인휘가 나왔다.
“……왜 여기 있어?”
눈이 크게 뜨여 있었다.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봉투를 곧장 건넸다.
“먹으면서 해.”
“……어?”
얼떨떨해하는 조인휘에게 낮춘 목소리로 말했다.
“이만 갈게. 수업 들어가야 해서. 끝나면 연락해.”
“어? 어어……! 얼른 가.”
말하면서도 어정쩡하게 서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 기다리겠다, 말하자 퍼뜩 들어가는 듯싶더니 다시 내 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나도 자리에서 마주 흔들어 주었다. 그제야 어설프게나마 웃는 낯을 보인 조인휘는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출입구를 빠져나와 뒤편을 향하는 중이었다.
“정원아!”
멀리서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자 방금 헤어진 얼굴이 보였다.
“어흐, 죽겠다.”
전력으로 뛰었는지 숨이 거칠었다. 허리까지 굽혀 헐떡이고 있었다. 와중에 손에 들고 있는 건 가루형 비타민과 피로 해소제였다. 고작 이걸 주고 싶어서 쫓아왔다는 게 뻔히 보였지만 에둘러 말했다.
“왜 나왔어, 바쁠 텐데.”
“이거, 헉, 주고 싶어서.”
내민 것들을 한 손으로 받아 들었다.
“나, 이제 얼른 가 봐야 돼서.”
조인휘는 엄지손가락만 빼내 뒤를 가리켰다.
“후우……. 그럼 저녁에 만나.”
“……”
얼굴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걸 보며 말없이 한 발짝 다가섰다. 허리 부근을 감싸려는 순간이었다. ‘헤헤’ 허술한 소리로 웃은 조인휘는 뒤돌아 달려가 버렸다. 손 안으로 잡힐 듯했던 열기가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
남은 건 비타민과 음료수뿐이었다. 거기엔 아직 미지근하게 체온이 배어 있었다. 달콤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홀린 것처럼 선 채로 나는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