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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그날 밤 (11/30)

외전 2. 그날 밤

하찮은 거짓말을 하고,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상대와 함께하는 데이트는 예상보다 큰 즐거움이었다. 불순한 목적을 감출 복잡한 계산 따위 필요도 없을 만큼 모든 게 쉬웠다.

컴컴한 영화관. 나는 조인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거기서부터 나는 산뜻한 로션 향과 그 향이 스며든 살내를 원하는 만큼 맡았다. 성적인 어필을 조금도 느낄 수 없는 다소 유치하기까지 한 냄새였지만 도리어 흥분을 돋우는 데가 있었다.

일정의 맨 마지막, 나는 오늘 조인휘와 섹스할 생각이었다. 같은 남자에게 돼먹지도 않은 수작을 부려 가며 주변을 맴도는 기행을 더는 길게 끌 이유가 없었다.

“그럼 우리 여행 갈래?”

영화가 끝난 후, 코골이가 없다는 걸 보여 주겠다는 터무니없는 핑계로 여행 약속을 잡았던 건 그러나 빈말이 아니었다. 조인휘는 생각이 훤히 내다보이는 만큼 대하기 편한 상대이기도 했고 또 살면서 주위에 없던 타입이기도 했다. 잠자리를 가진 뒤에도 칼 같이 끊어낼 생각은 없었다.

왜 이럴 때 저런 표정을 짓는지. 어린 애도 아니고 생각이나 감정을 감추는 게 어떻게 저 정도까지 허술할 수가 있는지. 대체 어떤 사고회로를 가졌기에 이 따위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에 걸려들 수가 있는 건지.

과장을 보태자면 매 순간 궁금했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이질감이 들 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생각하고 있는 게 빤히 보이는데도 정작 그 사람을 이해하거나 납득할 수는 없다는 게 기이한 나머지 신선했다. 또래 남성에 대해 가지고 있던 나름의 스테레오 타입은 조인휘가 어째서 지금 이 순간 얼굴을 붉히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단순히 긴장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있다는 건 알아도…… 내가 정말로 궁금해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어떻게 이렇게……,

“혹시 긴장했어?”

“어? 아니? 전혀?”

뻔한데, 조금도 뻔하지 않을 수가 있는지.

“…….”

맞은 비를 빌미 삼아 모텔에 들어온 뒤로 조인휘는 눈에 띄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눈시울의 점막까지 빨갛게 젖어서는 육지로 나온 물고기처럼 뻐끔뻐끔, 불규칙하게 호흡하는 모습이 볼 만했다.

나는 일부러 박동이 크게 느껴지는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부추겼다.

“빨리 뛰는 거 같아서. 옷 위로도 느껴지네.”

“아 그거, 나 원래 심장이 좀 빨리 뛰어 어렸을 때부터 그랬는데. 하여튼, 전혀 긴장한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끊는 마디가 어색한,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에 자칫 웃음이 터질 뻔했다.

“하긴. 인휘는 경험도 많은데.”

“그렇지. 아무래도. 익숙하지.”

단내가 풍기는 입김이 끼쳐 들자 예열이라도 되듯 피부가 더워지는 걸 느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조인휘의 입안은 뜨거운 편이었고, 기교를 흉내 내는 필사적인 움직임과 딱딱하게 맞닿는 근육들은 내게 새로운 기분을 들게 했었다. 그리고 새롭다 못해 상상 이상으로 좋았던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총 두 번. 술에 취해 뒷골목에서, 그리고 멀쩡한 정신으로 차 안에서. 이렇게까지 집중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빠져들어 입을 맞춰 댔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골이 뻐근하게 울릴 만큼 좋았다. 단내 나는 점막이나 어설프지만 열심히 움직이는 혀, 빨아 당길수록 눈에 띄게 통통해지는 입술은 당연하지만 조인휘 그 자체였고 나는 그 당연함에 흥분했다.

이렇게까지 흥분할 일인가?

어떤 위화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와 뭐가 달라서 이렇게까지 좋을 일인지 객관적인 판단이 되지 않았다. 실은 남자 쪽이 더 취향이었던가, 잠시 생각했지만 스스로의 성적 지향에 대해 새삼스럽게 고민하기엔 조인휘 외에 다른 어떤 남자에게도 성적인 끌림이나 그 비슷한 것도 느끼지 못했다.

어쩌면 이제까지와는 다르다는 사실 자체에, 그 이질감에 흥분하고 있는 것이라는 게 가장 타당해 보였다.

차안에서 입을 맞췄을 때. 거기까지 할 생각이 없었음에도 뚫고 나올 듯한 흥분을 못 이겨 조인휘의 엉덩이에 성기를 문질러 댔던 걸 기억한다. 그때 느꼈던 짜릿함, 등골의 울림, 시야가 까맣게 암전하는 흥분감이 아직까지 선명하다 못해 마치 손끝으로 만져지는 요철처럼 또렷했다.

심지어 입을 맞추면서도 옷을 벗고 엉켜드는 상상이 끊이질 않았었다. 더 깊고 뜨거운 곳으로 들어가는 상상을 하면서 육체를 아주 작은 단위로 나누어 옷 아래 가려진 부위의 형태와 감촉을 떠올렸다. 도착적인 느낌마저 드는, 그 누구를 상대로도 해 본 적 없던 그러한 은밀한 망상은 섹스 전까지의 모든 순간순간들에 불을 지피는 효과가 있었다.

마침내 도달한 지점.

“키스부터 할까?”

묻는 내 목소리에는 삭이지 못한 흥분감이 묻어나 있었다.

비밀로 유지돼야 하고 친분도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한 조건으로 육체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분명 이런저런 핑계가 필요했다. 내가 댄 핑계들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분명 입구에서부터 튕겨 나갈 만한, 얼토당토않은 변명들이었다. 하지만 조인휘에게는 어이없도록 쉽게 먹혀들 수가 있었다.

여자와는 숙맥이라 남자에게 키스를 배우고 싶다는 것에서부터 더 나아가 키스 이상의 것까지. 되는 대로 지껄여 놓은 나조차 황당한데 조인휘는 조금도 의심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쯤 되면 대체 어디까지 날 믿을 수 있는 건지 궁금했다. 다 벗기고, 시커먼 성기를 저 좁은 엉덩이에 모조리 집어넣고. 다 큰 남자가 소리 내어 엉엉 울도록 흔들어 놓고 나면 그제야 내 탓을 할 건지.

성기를 애무하고 있는데도 자각하긴커녕,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가르쳐 주겠다고 쩔쩔매는 꼴을 보고 있으니 이상한 반발심과 함께 그 순진함을 시험해 보고 싶어졌다.

“손으로 어떻게 하는지, 직접 보여 주면 되잖아. 여기로.”

설마 이렇게까지 할까.

의심하면서 밀어붙이자, 조인휘는 늘 그랬듯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다 끝끝내는 수락을 했다.

“…….”

오늘 이런 일을 하게 될지 알았던 걸도 아닐 텐데 손톱은 붉은 살이 드러나도록 바짝 깎인 상태였다. 그 손가락이 이어서 좁고 작은 구멍으로 조심성 없이 쑤셔 넣어지는 걸 보고 있자니 기가 찼다.

기가 차면서도…….

“음…….”

기묘한 흥분이 일었고…….

“그리고, 주변을 부드럽게 만져 줘야 되는 것도 알지?”

“…….”

놀랍게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손가락을 집어넣어 보고는 엄두가 안 나는지 어설픈 설명과 함께 주변을 배회하기만 하는 꼴을 보면서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입술을 떼지 못했다. 흥분이 다스려질 동안 길고 축축하게 서로의 속살을 섞었다.

“힘들어?”

“어, 좀. 아무래도 내가 내 걸로 하려니까 안 되는 거 같은데, 차라리……”

“자세를 좀 바꿔 볼까?”

“…….”

맘에 든 상대를 괴롭히고 싶은 유치하고 다소 가학적인 심리는 아동기에나 유효한 것인 줄 알았다. 시험하고 싶었던 속내는 어느 샌가 그저 괴롭히고 곤란해하는 걸 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세를 바꾸고, 젤을 덧발라 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수치심으로 가늘게 떨리는 살덩이를 내 손으로 직접 잡아 벌렸다. 저기에 입을 맞추면 기겁하다 못해 자지러지겠지. 드는 생각은 하나같이 그런 것들뿐이었다.

“이렇……게, 윗쪽을 좀 먼저 만져 주고…… 읏.”

불그스름한 조명 아래 조인휘의 피부는 발긋한 분홍빛을 띠었다. 수축을 반복하는 좁은 구멍과 그것을 자극하는 어수룩한 손가락을 보며 나는 이미 발기할 대로 발기해 있었다. 조인휘가 스스로 들쑤시며 흥분하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땐 당장에라도 성기를 처박고 싶은 욕구로 눈앞이 다 어찔거렸다.

여태 그래 왔듯이 억지스러운 핑계를 대면 끝까지 할 수도 있었다. 애초에 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거였고, 충분히 뒤로 느끼는 걸 확인했으니 밤새 좋아서 울부짖게 만드는 것도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때가 되어서 나는 한발 물러섰다.

도피하듯 욕실로 숨어들어 터지기 일보 직전인 성기를 꺼내 뒤흔들기 시작했다. 순진해 빠진 조인휘가 본인의 엉덩이를 들쑤시며 헐떡이던 모습을 몇 번, 몇 십 번이고 떠올리며 힘껏. 지저분하게 수음했다. 거센 수압으로 샤워기를 틀어 놓고 연달아 세 번을 쏟아 내며, 흡사 발정기 짐승 같은 성욕에 진저리쳤다.

정상과 비정상, 상식과 비상식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서 있음을 처음으로 자각한 밤이었다.

씻고 나왔을 때 조인휘는 잠들어 있었다. 무구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세상모른 채, 입술까지 헤벌어져 있었다.

나는 잠시 그 옆에 앉아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어떠한 의도나 생각도 없이 구경 자체가 목적인 사람처럼.

발그레한 뺨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댔지만 깨지 않았다. 손등으로 가볍게 쓰다듬던 것을 뒤로 옮겨 이번엔 두피 속을 파고들었다. 따끈한 피부와 가느다란 머리칼들이 손가락 새로 얽혀 스치는 부드러움을 느끼는데,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경련하는 게 보였다. 음……, 하는 낮은 잠꼬대와 함께 조인휘가 몸을 뒤틀자 손 안의 부드러움도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린다.

“…….”

나는 갈 길 잃은 손을 내리고 박제된 것처럼 앉아 있었다.

대체 뭘 하고 싶은 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아뜩한 답답증이 일었다.

조인휘가 잠에서 깬 건 그로부터 두 시간쯤 뒤였다. 와인을 느린 속도로 반쯤 비운 뒤였고, 가라앉지 않을 것 같던 흥분도 잔잔히 사그라든 무렵이었다.

“이제 쉴까 우리?”

나는 이제 막 깨어나 어리둥절하고 있는 조인휘에게 와인 병을 흔들어 보였다. 과음만 아니라면 긴 밤을 보내기에, 그리고 서먹한 긴장을 풀어 주기에 이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아, 오늘따라 술이 잘 들어가네.”

내가 빈 잔을 채워 주기도 전에 조인휘는 스스로 잔을 채웠다. 연속해서 들이붓는 걸 보니 취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마시는 느낌이었다. 적당히 풀어진 상태에서 얘기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만취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이미 전에 한 번, 잔뜩 취한 조인휘를 상대한 적이 있었고 그건 그다지 기분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천천히 마셔.”

말리는 손길을 무시하고 잔을 넘기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갔다. 기어이 남은 반병하고도 새로 딴 한 병의 대부분을 혼자 비운 조인휘는 취기로 횡설수설했다.

“아……. 아파, 엉덩이……. 아까 너무 쑤셨나 봐.”

“…….”

“너도 차암. 안 그렇게 생겨가지고 진짜……. 여자랑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거냐……?”

고개를 주억거리는 탓에 벌어진 가운 사이로 가슴팍이 드러났다. 이렇다 할 특징 없는 연갈색의 유두가 무방비하게 노출된 걸 보자 우습게도 사타구니로 발열감이 느껴졌다.

“아니이, 나도 이해는 해……. 하는데……, 나도 한 번도 못 해 본 걸 너한테 어떻게 가르쳐 주냐고…….”

아, 이거 말하면 안 되는데……?

실수했다는 듯 조인휘는 본인의 입을 거칠게 문질렀다. 경험이 전무할 것이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기 때문에 놀라울 것도 없었으니 나는 그대로 와인 잔을 기울이며 갈수록 심해지는 주정이 어디까지 갈지를 구경했다.

“난 부럽다 네가……. 그래도…… 여자가 무서운 건 아니잖아.”

깊은 한숨이 들려왔다. 테이블에 괸 한쪽 팔에 무너질 것처럼 이마를 기댄 조인휘의 얼굴은 답지 않은 수심으로 물들어 있었다.

“여자가 무서워?”

“……어.”

대답하는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다 싶더니, 금방 미간이 구겨지며 아이처럼 우는 낯이 되어 버렸다. 조인휘는 실제로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다.

“세상 여자가 다 우리 누나 같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무섭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나는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울기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제법 심각한 스트레스였던 모양으로 조인휘는 본인과 누나의 관계에 대해서, 어렸을 때 충격 받았던 몇몇 일화에 대해 자조적인 웃음을 섞어 가며 늘어놓았다.

얘기를 들어 보니 확실히 대수롭지 않게 넘길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래서…… 누나가 한 거라고 말도 못하고 몇 시간 동안 밖에서 떨다가 쓰러지기까지 했는데……. 진짜 완전 모지리 같지 나?”

많은 것들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보호도 받지 못해 방임된 환경인 데다 더군다나 조인휘처럼 기가 약한 성격이라면 어떤 트라우마로 작용되기엔 충분해 보였다. 문제가 가정환경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여자 앞에서 나타나는 극도의 긴장과 허세 등, 부자연스러운 행동 양상들이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됐다.

훌쩍이던 조인휘는 어느 순간부터 말을 멈추고 끅끅대기만 했다.

“…….”

그렇게 서러울까.

물기로 뒤범벅된 얼굴에 하도 비벼 댄 눈 주위는 짓물러 있었다. 어째선지 입술도 부었고…… 무튼 엉망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성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몰골임에도 꼴불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구라도 안타깝게 여길 만한 사정이었고, 서러운 울음이었다.

그러니 나라도 가여운 어린애를 앞에 둔 것처럼 애틋해질 수밖에.

“눈물 많구나 너.”

옆으로 다가가 머리통을 끌어당기자 쉽게 기대어 왔다. 어쩌면 진즉 위로가 고팠는지도 모른다. 축축하고 따끈한 얼굴이 가슴팍에 닿아 문질러졌다. 들썩이고 있는 어깨를 감싸 상하로 쓰다듬는 것만으로 조인휘는 대단한 위로를 받은 것처럼 내게 매달렸다.

“더 꽉 안아도 돼.”

어정쩡하게 걸쳐진 손을 내 목 뒤로 감으며 말했다. 그러자 조인휘는 열이 도는 몸을 좀 더 바투 붙이며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 왔다. 훌쩍거리며 콧물을 들이키는 간지러운 소리가 바로 귓가에 닿고 전신으로 휘감기는 무게가 느껴졌다.

“…….”

마음이 약해져 있는 상대를 달래는 건 쉬운 만큼이나 성가신 일이기도 했다. 하찮은 말과 몸짓으로도 위로를 줄 수 있지만 자칫 감정을 거스르기도 쉬웠고, 무엇보다 진심이 들지 않은 교감의 끝은 반드시 소모적인 피로감을 느끼게 했다.

코끝이 빨개져서 어룽어룽한 눈으로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조인휘는 그러나 애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성가실 만한 무게감은 없었다.

나는 매달린 몸뚱이를 그대로 안아 올려 침대로 향했다.

가슴 위로 조인휘가 올라오도록 겹쳐 눕자 흡사 사람 하나를 실은 배가 된 기분이었다. 새끼를 품에 안고 물에 뜬 수달의 포즈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과하게 속살거린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조인휘의 얼굴을 뒤덮은 눈물 자국에 일일이 입술을 맞추며 무엇도 거스르지 않을 만한 작고 낮은 목소리로 위로를 되풀이했다.

“울지 마.”

축축이 젖은 속눈썹에 소리 나게 입을 맞추는 아래로는 등허리를 토닥여 주었다. 몸과 마음이 긴밀하게 통해 있는 연인들끼리나 할 법한 스킨십에, 울음을 그친 조인휘는 만취한 와중에도 꼼지락대며 어색한 티를 냈다.

그리고 불쑥 중얼거렸다.

“너어, 차였단 거…… 그거 거짓말이지…….”

쓰다듬던 손이 멈칫했다.

“…….”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당황하는 사이, 뜨뜻한 한숨과 함께 혀가 풀려 웅얼거리는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누가 널 차냐……? 진짜, 말도 안 돼…….”

나 같음 무조건 사귈 거 같은데…….

마지막 말은 발음이 지나치게 뭉개져 정확하지도 않았다. 얼추 의미를 파악한 내가 ‘뭐?’ 하고 되묻자 조인휘는 ‘아음……’ 하며 술기운 섞인 옹알이를 했다.

“…….”

피부 아래 혈관이 딱딱해지는 듯한 초조함이 전신으로 스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었다.

“아……!”

팔뚝을 붙잡힌 조인휘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야…….’ 그나마 살집이 있는 부위를 그러쥐었던 나는 손아귀의 힘을 느슨히 하며 재차, 인내심을 가지고 물었다.

“진심이야?”

‘어어……?’ 하는 멍청한 되물음을 향해 다시 한번 똑바로 말해 보라고 윽박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대신 만취의 영향으로 발긋하게 혈관이 팽창된 귓등을 손끝으로 훑고, 그 안으로 차분하게 음성을 흘려 넣었다.

“내가 사귀자고 하면…… 사귈 거야?”

아아…….

이제 알았다는 듯한 흐린 감탄사와, 가슴팍에 뺨을 비비며 미적대는 움직임에 신경이 곤두섰다.

“사귀어 사귀어…… 무조, 껀…….”

이번엔 똑똑히 들렸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되자 왜인지, 짧게 헛숨이 터졌다.

자꾸만 불필요한 힘으로 단단해지는 허벅지를 느끼며 한순간에 자세를 뒤집었다. 흐느적거리는 조인휘의 몸이 아래로 깔리고, 올려다보는 젖은 눈과 마주치자 명치께가 뻐근해져 왔다.

“……그럼 한번 만나 볼래?”

물론 추호도 사귈 생각은 없었으니, 이건 우발적인 호기심이라고밖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

멀뚱하게 끔뻑거리는 시선이 내게 닿았다.

“너……, 나 좋아해?”

의외로 직선적인 질문을 받았을 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좋아해.”

자고 싶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고. 그게 좋아하는 거라면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근데 너……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하지 않았, 나……?”

귀찮은 물음에는 답할 것 없이 입부터 맞췄다. 길고, 깊게. 좋아하는 부위는 특히 꼼꼼하게 문지르며 오가는 침이 끈끈하고 달콤해질 때까지 키스했다.

“나는 요즘 계속 인휘 너만 생각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눈을 마주치고, 코끝을 맞대고, 머리카락을 매만져 가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넌?”

“어…… 나도? 그런…… 거 같아.”

계속 된 키스로 숨을 헐떡이면서 조인휘는 대꾸했다.

“자주 보다 보니까 좋아진 것 같아. 인휘는?”

“어…… 나도……, 지내다 보니까 좋……아.”

멍하니 동조하는 얼굴에 가볍게 여러 번 입을 맞춰 주었다. 휩쓸리기 쉬운 단순함이 조금도 싫지 않았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사귀는 거네.”

“……으응…….”

취기 때문에 반응이 느린 조인휘가 제대로 인지하기까지 암기시키는 형태로 묻고 또 물었다. 행여 술이 깨고 나서 기억에 안 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지겹게 반복했다.

“내 이름 말해 봐.”

“고정원…….”

“……내가 누구야?”

“……어……,”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조인휘는 이미 몇 차례나 반복했던 문답의 마지막 대답을 오물거리는 입으로 내뱉었다.

“내 애인…….”

차근차근 달아오르던 몸이 단단히 뜨거워져 있음을 느낀 나는 양 뺨을 붙잡고 조인휘에게 입을 맞추었다. ‘으응…….’ 숨 쉴 틈 없이 길게 이어지자 다소 괴로워하는 코 울음이 들려 왔다.

‘너는 키스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거 같아.’

무슨 까닭에선지 유학가기 전 사귀었던 여자친구가 잠자리 도중 했던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도망가는 혀를 쫓는 도중 흐릿한 목소리는 금세 의식 너머로 사라졌고,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나는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고 맨몸으로 조인휘와 부둥켜안고 있었다.

끝까지는 가지 않았다. 내게 가르쳐 주겠다는 이유로 요령 없이 쑤셔 댄 뒤가 그새 많이 부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굳이 오늘 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사귀게 되었으니 섹스쯤이야 일상이 될 터였다.

“…….”

품안에서 내 냄새가 좋다며 중얼거리는 조인휘의 입에 단조로운 입맞춤을 되풀이하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애는 계획에 없었던 일이지만 어찌 되었든 연인 관계가 된 이상 최선을 다해 줄 용의가 있었다. 동성이라는 점, 그리고 모든 방면에서 경험이 전무한 상대라는 점에서 어떤 종류의 책임감을 느끼기도 했다.

‘첫 상대’라는 말은 생각보다 묘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처음이 된 적이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닌데 특수한 상황이라 그런지 생각이 많아졌다.

문득 작게 웃음이 터졌던 건, 조인휘가 어쩌면 여자랑은 평생 인연이 없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만.

느닷없이 튀어나온 ‘평생’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나는 스스로의 사고 과정에 아연함을 느꼈다.

“음…….”

작게 뒤채는 움직임을 느끼고 내려다봄과 동시에 인상을 구긴 이마와 눈썹이 시야에 들어왔다. 살짝 고개를 숙이자 그것만으로 입술에 부드러움이 스쳤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지나친 입술은 이마를 딛고, 콧등으로 내려와 이내 인중 위로 안착했다.

“잘 자.”

입김이 간지러운지 눈살이 찌푸려지는 게 보였다. 나는 갑작스레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숨을 죽였다. 기어이 어깨가 들썩이도록 웃음이 나더니 그 이후로는 주름진 미간을 보기만 해도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웃거나, 쓰다듬거나, 입을 맞추거나. 아주 가끔씩 튀어나오는 잠꼬대에 대답해 주거나.

그런 실없는 시간들이 천천하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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