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비밀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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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밀

성인이 되도록 여자 한 번 못 사귀어 봤다. 쪽팔리지만 키스건 그 이상이건, 그쪽으론 경험이 전무하다고 봐야 한다. 흔히 말하는 모태솔로라는 건데…… 문제는 내가 솔직한 성격이 아니라는 데 있다.

대학 입학 후 술자리에서 허세로 입 한 번 잘못 놀린 게 사달의 시작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하나의 이미지로 틀어박힌다는 게 참 무서운 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여자깨나 만나 본 놈으로 알려지게 된 뒤로, 나는 연애 상담에서부터 성 상담까지 바쁠 땐 하루에 세 명도 넘게 상대를 해 줘야 했다. 특히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상담해 오는 몇몇 동기 때문에 갈수록 환장할 노릇이었다. 간접 지식과 허풍으로 대충 때워 넘기는 것도 한계가 있지, 여간 곤란하고 기 빨리는 게 아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내가 외모는 솔직히 좀, 놀게 생겼다고 해야 하나. 실제로 여자들한테 먼저 번호를 따이거나 대시를 받는 일도 왕왕 있었다. 그런 첫인상 때문에 거짓말이 더 잘 먹혀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순진해 빠진 속과 다르게 겉만은 그럴싸하게 보이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랐다.

그런데, 그렇다면 왜?

이성에게 인기 없는 외모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연애는 고사하고 썸씽조차 만들어 내지 못했는지. 누군가 이유를 묻는다면 나도 댈 만한 변명이 있기는 했다.

실은, 사춘기 무렵부터 증세가 있었다. 여자와 단둘만 남게 되면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어지는, 여자 울렁증 같은. 성적인 긴장은 아닌데, 막 뛰쳐나가고 싶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마디로 병신같이 굴게 되는 증상이었다.

갈수록 악화되면서 내가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머리 빠지게 고민해보기도 했다. 이성에 관심도 있고 야한 것도 해 보고 싶고 신체 건강한데 대체 뭐가 문젠가 싶어서. 고민을 거듭하다 보니 자꾸 찜찜하게 걸리는 게 하나 있긴 했긴 했다.

내 친 누나.

어려서부터 두 살 연상의 누나는 내게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살 차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원래 어릴 적엔 한 살 차이만 나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짬밥처럼 여겨지곤 했으니. 뭐든 나보다 많이 아는 데다 언제 어디서나 거침없는 언행은 어린 마음에 따를 수밖에 없는 카리스마로 느껴졌었다.

누나는 전형적인 골목대장 스타일이었고 나는 소심한 쫄보였던 관계로, 우리 사이에는 상명하복의 질서가 철저했다. 나는 누나 밑에서 거의 20년 가까이 굴렀다. 군대는 제대라도 하지 이건 뭐…….

내가 배고픈 누나를 위해 라면을 처음 끓였던 게 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여섯 살 때였다. 빨래, 청소, 요리 등 각종 살림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이미 완성형으로 하게 되었고. 자질구레한 것들에서부터 민망한 여성용품까지, 심부름은 당연한 일상이었다.

누나는 물욕도 왕성했다. 우리 집에 들어오게 되는 모든 물건들의 실소유주는 누나였기 때문에 나는 누나가 쓰고 버린 것들만 온전히 내 것으로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무슨 심술인지, 그 버려진 것들마저도 내가 가지게 되면 누나는 샘을 내며 다시 빼앗는 형국이었다.

더 나아가서 인간관계도 그런 식이었다. 누나는 꼭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동네 친구들을 마음에 들어 했다. 같이 놀면 될 텐데 빼앗듯이 둘이서만 놀거나 나를 제외시켜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어린 마음에 그게 제일 상처였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누나의 입으로 들어갔고,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물건들은 누나의 방에 장식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은 누나의 절친이 되어 떠나갔다. 나는 점점 좋아하는 걸 티내지 않는 이상한 습관이 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활동 범위가 달라지자 인간관계는 더 이상 겹치지 않게 되었고 더 이상 누나도 내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나는 그 이후로도 마음에 든 친구들은 절대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그냥, 불안해서.

몇 가지 예시만 들었지만 누나와 얽히면 매일매일이 수난이었다. 그런 수난들을 겪어 낸 지금까지, 내게 여자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게 어찌 보면 대단한 일이라고 할 정도로.

사실 거기에는 부단히 노력한 내 마음가짐의 영향도 있었다. 나는 편협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누나를 기준으로 세상 모든 여자들을 섣불리 일반화시키지 않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통 넓은 사고와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내겐 쉽게 극복하지 못할 트라우마가 생겨 버린 모양인지, 여자와 단둘만 남겨지게 되면 불편하고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게 돼 버렸다는 게 서글픈 현실이었다.

“상담 받아 볼까…….”

“왜, 안 서냐?”

푹,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어깨를 친다. 놀라서 돌아보니 동기인 김강우가 실실 웃으면서 나를 보고 있었다.

“뭐야!”

“상담, 무슨 상담? 발기부전 상담?”

이 새끼는 정말 대화의 시작부터 끝이 모두 여자, 섹스인 놈이었다. 지겨워서 고갤 절레절레 흔들며 무시하자 난데없이 손이 가랑이 사이로 들어와 화들짝 놀랐다.

“미친놈아! 어딜 손 대!”

“안 선다며. 서게 해 줘야지 우리 인희.”

정확한 이름은 인희가 아니라 인휘였지만 여자 이름처럼 부르는 데에 재미가 들린 놈들은 꼭 이렇게 불렀다.

“아, 꺼져!”

진짜 바지 속으로 들어올 기세로 파고드는 놈의 손을 저지하느라 엎치락뒤치락하는데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이 뭐 해?”

의외의 상대에 놀란 나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웃으며 다가와 있는 얼굴은 같은 과의 고정원이었다.

“어어, 그냥 장난.”

떨어져 나간 김강우가 실실거리던 표정을 지우고 눈에 띄게 어색하게 굴었다. 이유를 알고 있는 나로선 같이 어색해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김강우가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동기 여자애가 공공연하게 들이대고 있는 상대가 바로 지금 나타난 고정원이었다.

솔직히 고정원은 누가 봐도 훈남이었다. 훈남……이란 표현도 틀리지는 않지만, 정확히는 우리 과는 물론이고 캠퍼스 전체에서 ‘남신’이란 명칭으로 통했다. 남신이라니. 다소 오그라드는 표현이긴 한데 고정원의 얼굴을 보면 그 표현 외에는 대체할 만한 게 없다는 걸 인정하게 됐다.

“아, 인휘야. 저녁에 너도 오지?”

“응? 아, 어!”

“그래. 이따 보자.”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돌아서는 고정원을 보며 나는 홀린 듯이 고갤 끄덕였다. 매끈한 볼우물이 패이며 미소가 더 짙어진다 싶더니, 정신이 들었을 땐 어느새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크흠.”

나는 괜히 멋쩍어져서 헛기침을 했다. 이번에 조별 과제를 같이 하면서 자주 봤던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웃는 얼굴을 마주하면 가끔 넋을 놓게 되곤 했다. 쌍꺼풀이 없는데도 깊은 눈매라든가, 이마에서 콧대까지 이어지는 매끄러운 선이라든가, 특히 군더더기 없으면서도 남자답게 발달된 하악은 비좁은 얼굴형을 하고 있는 나로선 볼 때마다 부러운 부분이었다.

“아 고자원 새끼, 진짜 존나 나대네.”

고정원이 가고 나니 김강우는 혼자 열이 올라선 씩씩댔다. 좋아하는 여자애의 관심을 빼앗긴 뒤로 고정원을 아니꼬워하는 김강우는 뒤에서 ‘줘도 못 먹는 놈’ 혹은 ‘고자원’이라고 불렀다.

“씨발, 인기 많으면 뭐하냐? 고자라서 줘도 못 먹는데.”

고정원은 입학한 뒤로 한 번도 누구와 사귄 적이 없다. 때문에 다들 뒤에서 고정원의 속내를 유추하느라 바빴다. 고정원이 어마어마하게 눈이 높다는 소문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고, 여자애들끼린 차라리 그가 졸업할 때까지 캠퍼스 커플만은 참아 주길 바라는 분위기였다.

저런 애는 연애 때문에 골머리 앓는 일은 없겠지.

씁쓸한 기분과 함께,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가 한 번도 여자를 사귀어 본 적 없다는 걸 알면 고정원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마 어마어마하게 한심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잘난 놈은 다시 태어나도 이해가 안 될, 더럽게 하찮은 고민일 테니까.

* * *

“인휘야, 취했어?”

평일 저녁, 소란스러운 술집의 소음들 사이로 다정한 목소리가 귓전에 감겨들었다. 멍하니 눈을 들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고정원이 보였다.

테이블이 이렇게 좁았나. 까딱하다간 서로의 손끝이라도 스칠 만큼 거리가 가까웠고, 그 탓에 상대방의 향수 냄새까지도 은은하게 풍겨 오고 있었다.

따뜻한 술기운이 돌면서 전신이 다 녹녹했다. 헤실헤실 풀린 나는 난데없이 픽,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고정원은 가만히 내가 웃는 걸 보더니 소리 없이 따라 웃으며 물었다.

“왜 그래?”

취하긴 취한 모양인지 대수로운 이유도 없이 실없는 웃음이 터졌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마주 본 고정원의 눈썹이 웃겼다. 단정한 모양새로 뻗은 눈썹이 쓸데없이 완벽해서.

“넌 어떻게 눈썹도 잘생겼냐.”

“……어?”

내 말에 고정원은 슬며시 고갤 돌리더니 공연히 손끝으로 제 미간을 쓰다듬었다. 대놓고 칭찬받은 게 쑥스러운 모양이다. 이 정도로 잘생긴 놈들은 매일 질리도록 칭송받는 게 일상일 텐데, 순진한 반응을 보이니 이런 부분마저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실제로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외모와 다르게 소탈하고 괜찮은 성격이었다, 고정원은.

“근데…… 다른 애들은?”

“인휘 취하긴 취했구나. 준영이는 알바 때문에 갔고, 용우랑 연지 선배도 일찍 들어가 봐야 한다고 갔잖아.”

“아, 그랬지! 맞다 맞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고정원이랑 단둘이 남게 된 과정이 생각나면서 고갤 주억거렸다. 취하면 꼭 이런 식으로 기억이 띄엄띄엄 휘발되는 게 주사라면 주사였다.

오늘 술자리 멤버는 교양 수업 조별 과제로 인해 모이게 된 조원들이었다. 과제하면서 친해지기도 힘든데 이번엔 얼굴 붉힐 일도 없었고 다들 무난하게 마음이 맞았다. 오가며 인사 정도만 할 뿐이었던 고정원과도 이번 기회에 가까워진 것이었다.

“응……?”

갑자기 뺨을 스친 부드러움에, 나는 안주를 집어 먹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볼에 뭐가 묻었길래.”

“아…… 땡큐.”

괜히 낯부끄러워져서 한 번 더 스친 부위를 쓸었다.

만날 때마다 느끼는 바였지만, 얘는 정말 쓸데없이 서구식 매너를 몸에 갖추고 있었다. 어쩔 땐 정말 상상치도 못한 데서 세심하다 못해 자질구레한 배려를 해 오는 바람에 내가 여자였으면 이건 이백 퍼센트 수작질이라고 느꼈을 만한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출입문을 잡아 주거나 찻길 안쪽으로 걷게 하거나 테이블 세팅을 해 주는 정돈 기본이고 일상이었다.

“근데 너는…… 원래부터 그랬어?”

“나? 뭐가?”

“막, 방금도 그렇고. 약간 미국 사람 같다고 해야 되나…….”

“미국 사람?”

고정원이 내가 했던 표현을 따라하며 웃었다.

“그러니까 뭐라고 하냐…… 서양 사람들 매너 같은?”

아니 그쪽 사람들도 남의, 그것도 같은 남자 볼에 뭐 묻은 걸 손으로 닦아 주거나 하진 않을 것 같은데.

“아아……. 하하, 그런 게 좀 이상해 보였나 보네.”

“아, 아니, 이상해 보인 건 아니고. 쫌 신기해서.”

“음…… 뭐라고 하지?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이것저것 챙겨 주고 싶어져서. 확실히 과한 습관이긴 하지.”

곤란하다는 듯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웃는 얼굴을 보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대답한 내용 때문이 아니라, 순간순간 바뀌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새삼 놀라워서.

같은 과 여자 동기 하나가 했던 ‘고정원은 얼굴만 봐도 재밌다’는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그냥 보기만 했을 뿐인데 잘 만들어진 작품을 감상하듯 빨려든다고 해야 할지. 같은 남자인 나도 이렇게 가까이 마주 앉아 있으니 싱숭생숭한데, 여자애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인휘야,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고정원이 환하게 웃는다.

너무 빤히 들여다봤나 싶어서 민망해진 나는 거품이 다 죽은 맥주를 들이켰다. 몇 모금 더 넘긴 뒤 잔을 내려놓고, 여전히 기분 좋게 웃고 있는 고정원에게 슬쩍 떠보듯이 물었다.

“근데…… 넌 왜 아무하고도 안 사귀어?”

“……이제 우리 연애 얘기 하는 건가?”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고정원이 나를 보면서 또 한 번 웃었다. 조금 은근하게 느껴지는 웃음이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올랐다.

“뭐, 술 마시면 하는 얘기 뻔하지 않냐.”

“하하하, 그러게. 좋은데.”

얘가 대충 여자애들한테 어떤 식으로 수작을 걸지 알 것 같다고 하면 좀 오버인가. 나는 괜히 민망해져서 조금 열이 배어난 뒷목을 쓸어내린 뒤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이미 충분히 취한 줄 알았는데 자꾸만 술기운이 날아간다.

“인휘는, 마지막 연애가 언제야?”

컥. 명치에 걸리는 느낌에 잔을 내려놓았다. 조금 역류하여 입가에 묻은 술을 티슈로 닦아 내고 아무렇지 않은 척 목을 가다듬었다.

“한, 세 달 전쯤. 근데 난 연애보단, 그냥 가볍게 두루두루 만나는 게 더 편해서……. 너는?”

“그렇구나. 난 고등학교 때 이후로 없네. 어려서 사귀었던 거라 그런지, 사실 되게 별거 없기도 하고…… 별로 기억도 잘 안 나.”

아마 그 여자애는 평생의 추억으로 삼고 있을 텐데. 얘도 알고 보면 죄 많은 놈일 거 같다.

“그으래……. 큼, 근데 짧게 사귀었나 봐. 별거 없었다고 하는 거 보면.”

“일 년 정도. 시기가 애매해서, 거의 만나지도 못했어.”

그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어떤 궁금증이 고갤 들이밀었다. 거의 만나지도 못한데다가 별거 없었다고 하니…… 혹시, 혹시 고정원 얘도 아직 한 번도 안 해 본 거 아닐까? 하는 궁금증. 워낙 눈이 높다 보니 첫 경험의 상대도 까다롭게 고르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고1 때 처음 했는데. 여친이랑, 어쩌다 보니. 하하.”

이런 식의 화제는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꺼리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선수 쳐서 미끼를 던져 보기로 했다. 물론 경험이 없으니 거짓말로.

“……부끄러운데 나는 좀, 말하기가.”

설마. 점점 가까워지는 생각에 목이 탔다.

“야, 뭐 어때 남자끼리. 언제가 처음인데?”

아님, 언제 처음으로 할 예정인데?

“그게……. 중학생 땐데…… 1학년 거의 끝나갈 때쯤인가.”

“…….”

에라, 이…….

그럼 그렇지 싶어서 인상을 팍 쓸 뻔했는데, 이어지는 고정원의 말이 꺼진 불씨처럼 사그라들려 하는 내 흥미에 재차 불을 지폈다.

“근데 처음이 너무 빨라서 그랬는지……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안 해 봤어. 사실 나도 이게 고민이야. 사귀면 진도를 영 못 나가거든.”

키스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마무리 도장까지 꽝 찍은 고백을 듣고 나니,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방금 들은 말들이 다 사실인가 싶어서.

키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니? 참고할 만한 영상들은 널렸고, 그런 것들을 보고 본능 따라 하면 되는 거잖아 그거. 아니, 안 해 본 나도 입 하나는 자신 있게 털 수 있는데.

“네가 부러워.”

“뭐?”

“인휘는 정말…… 잘 할 거 같아. 경험도 많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도 부끄러운데 그걸 또 하필이면 입술을 보면서 말한다. 민망해서 그대로 터져 버릴 것 같은 걸 꾹 참고, 가까스로 태연하게 입을 뗐다.

“아니…… 꼭 그렇지도 않은데.”

근질거리는 입가를 꾹 눌러 내리며 안주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이렇게 완벽한 놈이 날 부러워한다니. 그게 아무리 거짓말에서 비롯된 허상 같은 거라고 해도 기분이 으쓱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도, 곧 잘 할 수 있게 돼. 괜찮은 경험 한두 번만 생겨도.”

“그럴까?”

“그럼. 나도 처음엔 되게 못했어. 근데 본능대로 하다 보니 좀 알겠더라고.”

“와…… 그렇구나.”

아, 이 맛에 사람들이 쥐뿔도 없으면서 뻥을 치는구나.

대선배라도 되는 마냥 입을 털 때마다 전엔 몰랐던 희열이 느껴졌다. 전엔 많이 사귀어 본 척, 경험 많은 척하면서도 영 찜찜하고 불편하기만 했는데, 내 말을 고분고분 들어 주고 대단하단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상대—그것도 나보다 훨 잘난—를 앞에 두니 술도 잘 들어가고 입도 잘 돌아갔다.

“정말 잘 안다.”

순수함 가득한 선망의 눈빛이었다.

그 후로 기분이 한껏 들뜬 나는 키스는 어떻게 하는지, 스킨십은 어떻게 하는지, 분위기는 어떨 때 어떤 식으로 잡고 어떻게 밀어붙여야 하는지 따위를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집중하는 눈빛과 곧은 자세로 강의를 경청하는 고정원은 아주 성실한 수강생이었다. 이따금씩 고갤 주억거리거나 내 빈 잔에 술을 따라 주면서 눈꼬리를 접어 예쁘게 웃기도 했다.

주량을 넘긴 지는 이미 한참 전이었다. 내 허풍은 그 어느 때보다도 크고 높게 부풀었다.

“인휘야, 일어서야지. 조심히…….”

뜨문뜨문. 의식이 돌아왔다.

먹고 마신 것들로 난잡한 테이블이 보였다. 나는 물미역처럼 고정원한테 푹 감겨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있었다. 히히히히, 그냥 웃음만 나왔다. 야, 정원아! 앞으로 나만 믿어! 내가 너 진짜 끝내주는 키이서-로 만들어준다 내가……! 똑바로 걷지도 못하면서 뿌듯함에 큰소리를 뻥뻥 쳤다.

그러다 미칠 듯이 밀려드는 요의에 허리가 고꾸라졌다.

“어어, 오줌 싸고 싶어어…….”

두 번째로 의식이 돌아왔을 땐 화장실 안이었다.

어떻게 볼일을 보긴 봤는지 시원한 배출감이 들었고, 내 손은 나의 열렬한 수강생인 고정원이 씻겨 주고 있었다.

어어, 근데 나 쌀 때 본 거 같은데……. 고정원 거 되게 컸던 거 같은데……. 아주, 무시무시하게, 꿈에 나올까 무시무시하게…….

계산을 하는 고정원을 뒤로 하고 가게를 나가 휘청, 휘청, 걷다가 빠앙! 고막이 떨어지게 큰 경적 소리와 함께 몸이 기울었다. 깜짝 놀랐던 건 뛰쳐나와 내 팔을 붙든 고정원이 무서운 얼굴로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너 미쳤어?!”

미간이 한껏 좁혀진 게 보였다. 맨날 웃고 다니는 얼굴만 보다가 화내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했다. 잘생긴 애들은 화내도 섹시해 보이는구나, 처음 알았다.

“오. 고정원 화낸다.”

“하…….”

한숨을 쉬는데 뭔가 심각해 보였다. 뭘 해도 드라마 주인공 같네 이 자식.

“큰 소리 내서 미안. 괜찮아?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역시나 지나치게 다정하고 말이야.

“으응…….”

나는 고갤 주억거리고, 내키는 대로 널찍한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아까 가게 안에서 맡았던 은은한 좋은 냄새가 더욱 진해졌다. 더 듬뿍 맡고 싶어서 얼굴을 있는 대로 밀착시켜 비비다가, 나도 모르게 이를 세워 깨물었다.

부드럽기도 하고 딱딱하기도 한 무언가를 잇새로 야금거리는 사이 한껏 고양된 기분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졸음이 쏟아졌다.

세 번째로 의식이 돌아왔을 땐, 처한 상황이 금방 파악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믿기지 않게도 나는 키스 중이었던 것이다. 컴컴한 뒷골목이었다. 거리의 네온사인 빛이 은은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는 깊숙하게 들어와 있었다.

“인휘야, 이렇게……?”

입술이 잠시 떨어진 순간이었다. 달콤하게 젖은 목소리가 말했다. 아랫입술을 느릿하게 머금던 입술이, 이내 뜨거운 힘으로 연한 살을 빨아 당겼다. 요추가 찌릿 떨리는 쾌감이었다.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섞인 입술 사이로 뱉어 내며 상대를 끌어당겼다.

“아……! 우응, 응…….”

좋은 냄새가 나는 품은 여름밤의 공기 속에서 적당히 따스했다.

나는 생전 처음 해 보는 키스에 정신없이 빠져들고 있었다. 약하고 예민한 혀끼리 얽히고설키며 만들어 내는 자극들이 온몸을 녹이는 듯했다. 단단한 어깨와 뒷목을 매만지며 상대를 끌어당길 때마다 서로에게 더 깊숙이 맞물렸다.

아, 나 처음인데…… 너무 잘하는 거 같다…….

“여기, 빨면 돼……?”

“으응…….”

귓불을 물고 목선까지 이어지는 달콤한 농탕질이 이어졌다. 조급해질 때쯤 다시 맞붙는 입맞춤은 절로 몸이 달아오를 만큼 뜨겁고 능숙했다.

‘입술만 빨아 댄다고 키스가 아니야. 주변도 꼼꼼하게 애무해 주고, 그게 진짜 잘하는 키스거든.’

술집에서 나불대던 소리가 얼핏 스쳐 지나간다.

“인휘야……. 조인휘. 좋아? 응?”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애무 같았다. 습기 가득한 낮은 목소리가 자꾸만 온몸을 뒤틀리게 했다. 으으, 이상한 소리를 내며 고갤 끄덕였다. 좋다고 해야만 그만 둘 것 같아서.

가볍고 깊은 키스가 번갈아 이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달콤한 쾌감 속에서 울 것 같은 기분을 참고 있는데, 그때였다.

‘툭’ 부딪힌 무언가.

어떤 고체 형태의 물건에 쓸리기라도 한 것처럼 단단한 감촉이 중심부에 사고처럼 부딪힌 순간, 나는 아래가 녹을 것처럼 저며 드는 쾌감과는 반대로 정신이 확 들고 말았다.

“…….”

이게 뭐지?

“어……?”

왜, 지금, 나랑 고정원이 여기에서…….

“지금, 우리, 뭐……해?”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충격 속에서 올려다본 고정원의 얼굴은 이상스럽게 태평했다.

“키스.”

방금 전까지 느끼던 달콤함이 일시에 증발하는 순간이었다.

“……어?”

“잘 할 수 있게 가르쳐 주기로 했잖아.”

또 잊어버렸어?

촉촉하게 젖어 있는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그건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다정한 고정원의 웃는 얼굴이었다.

“어어……. 그, 그랬나 내가…….”

미쳤지. 가르쳐 줄 게 없어서 어떻게 키스를 가르쳐 준다고 했을까.

“…….”

불편한 침묵이었다. 나는 차마 고정원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자꾸만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진땀을 뺐다. 스륵, 허리께를 받치던 온기와 힘이 사라진 순간 나는 새삼스럽게 고정원과 어떤 자세로 밀착해 있었는지를 깨닫고 어둠 속에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아주 새삼스럽게, 불현듯이, 내가 술집에서 먹었던 안주들이 떠올랐다.

“저기…… 괜찮아?”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고정원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가?

“……나, 양파랑 부추 넣어서 보쌈 엄청 먹었는데…… 술이랑, 냄새 쩔었을 텐데…….”

고정원은 갑자기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뭐지, 냄새가 이제 올라왔나?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에 나는 소심해져서 사과했다.

“미안. 많이 났나 보네.”

한 발 물러난 고정원이 갑자기 허리를 숙여 놀랐다. 도대체 왜 이러나 했다가 잘게 들썩이는 어깨를 보고 뒤늦게 웃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뭐야.”

“아, 미안. 웃으려던 게 아닌데.”

얼마나 웃었는지 심지어 눈꼬리에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다행이다.”

“뭐, 뭐가?”

“네가 취해서 실수한 거라고 말할까 봐 걱정했어.”

나 진짜 키스 잘 하고 싶거든.

낮게 덧붙인 말에 뜬금없이 심장이 덜컥거렸다. 아니, 지금도 충분히 잘 하는 것 같은데…….

“그, 근데, 나도 참 나지만, 너도 참 너다! 아무리 연습이라도 남자끼리 좀…… 기분 나쁘지 않아?”

내 말에 갑자기 고정원은 진지한 눈을 했다.

“음……. 난 정말 하나도 안 나빴는데. 인휘는 기분 나빴어?”

이건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 걸까. 좋다고 대답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고, 그렇다고 나쁜 건 절대 아니었어서 할 말이 애매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말로 가르쳐 줘도 충분할 거 같아서…….”

발기한 아래끼리 부딪혔던 극렬한 감각을 생각해 내자 새삼 등줄기로 오싹 소름이 올랐다. 그건, 확실히 이상했다.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들고.

“내가 좀 그런 쪽으론 둔해서…… 실전이 아니면 잘 못 배울 거 같은데. 인휘 네가 곤란하다면 굳이 부탁하진 않을게. 미안.”

“아…… 아니야, 내가, 나야말로 못해 줘서 미안하지.”

맨 정신으로 고정원에게 키스를 가르쳐 줄 자신은 솔직히 없었다. 무엇보다 실전이 되면 경험 없는 게 탄로 날까 봐 걱정이었다.

“…….”

거절해서 기분이 상했나 싶어 고정원의 눈치를 보게 됐다. 갑자기 분위기가 엄청 어색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딸꾹! 하고 가슴께가 경련하기 시작했다.

“아, 딸꾹질…….”

“그만 가자.”

고정원의 손에 이끌려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이런 으슥한 데는 또 어떻게 알았대. 괜히 민망해져서 남은 손으로 뒷목을 쓸었다.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취기가 몽땅 날아가 있었다.

“마셔.”

편의점에서 나온 고정원이 뚜껑을 딴 물병을 내게 건넸다. 딸꾹질은 이미 멈춰 있었지만 벌컥벌컥 들이켜 반 이상 마셨다. 입가에 흐른 물기를 대충 손등으로 닦아 내자, 고정원이 어디선가 꺼낸 손수건으로 손등에 묻어난 물기를 한 번 더 닦아 주었다.

“괜찮은데…….”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매너였다. 게다가 진한 접촉을 하고 난 탓인지 평소보다도 어색했다. 별거 아닌 스킨십에도 어깨가, 손끝이, 저도 모르게 움찔움찔 떨렸다. 상대가 알아채지 못하길 바랄 뿐이었다.

“택시 타러 가자.”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걸었다. 취한 양복 차림의 아저씨들이 서로의 허리에 팔을 감고 고주망태로 지나치는 모습을 보며, 우리도 저렇게 보이겠지 싶어 부끄러워졌다. 스쳐 가는 여자들이 힐끔거리며 이쪽을 쳐다보는 것 같아 고개가 푹 수그러들었다.

얜 부끄럽지도 않나.

나는 취했다 치더라도, 고정원은 지나치게 멀쩡했다. 평소의 곧고 단정한 모습 그대로였다. 슬그머니 손을 빼려다가 결국 그대로 걸었다. 손바닥은 건조해서 기분 좋았고, 커다란 손 안에 붙들려 있자니 안락했다. 걷다가 중간중간 확인해 보듯 나를 내려다보는 행동엔 간지러운 기분마저 들었다.

입술과 그 언저리로 쏟아지던, 몸서리쳐지게 다정하고 능숙하던 애무의 감각이 떠올랐다. 첫 키스인데, 남자랑 한 게 억울하단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솔직히 좋았다.

“너 키스 잘하던데…….”

중얼거린 소릴 들었는지 고정원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정말?”

“어, 어.”

“난 하라는 대로 한 거뿐인데. 인휘 덕분에 금방 늘었나 봐.”

매끄럽게 올라가는 단정한 입꼬리가 일순 야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다, 다음에도, 한 번 정돈, 더 가르쳐 줄 수 있는데.”

치켜세워 주는 분위기에 휩쓸려 아무 말이나 내뱉은 순간이었다. 붙잡힌 손에 꽉, 힘이 더해졌다.

“정말?”

그 힘에 놀라 고갤 들자, 고정원은 여전히 예쁘게 웃고 있었다.

“그럼, 조만간 한 번 더 부탁해도 될까?”

“어? 어어…….”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나는 불안감인지 기대감인지 아니면 죄책감인지, 복잡해진 심정으로 공연히 먼 곳을 내다보았다. 고정원의 다감한 눈 대신, 오가는 차와 사람들, 건물들 따위를 시야에 담으며 등줄기에 오른 열기를 식혀야 했다.

* * *

다음날, 숙취 때문에 점심쯤에야 느지막이 일어났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화장실로 가서 가득 찬 오줌부터 갈겼다. 얼마나 부은 거야 대체. 눈이 무거워서 제대로 떠지지도 않았다.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찬물을 틀어 열심히 세수를 했다. 그리고 고갤 들어 거울을 마주했을 때, 깜짝 놀라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게 뭐야.

거짓말 안 보태고 입술이 터지기 직전까지 부풀어 있었다. 윗입술이고 아랫입술이고 할 거 없이 명란젓처럼 통통해져선, 이건 뭐 사람 입술 같지도 않았다.

“와, 미치겠다. 왜 이래 이거?”

거울에 가까이 붙어 얼굴을 이리저리 확인해 보았다. 어제 내가 어디에 부딪혔던가? 막판부턴 거의 술에서 깬 상태였기 때문에 귀가하기까지의 기억이 또렷했다. 멀쩡히 집에 들어와서 잤는데 혹시 자면서 부딪힌 걸지도 몰랐다.

그러다 문득 도달한 하나의 생각에, 불붙은 것처럼 얼굴이 벌게졌다.

“말도 안 돼 진짜…… 진짜로?”

그러니까 이거, 어제 키스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씨발…….”

너무 쪽팔려서 끓어오르듯 절로 욕이 나왔다. 양쪽 머리를 움켜쥐고 주저앉자 설상가상으로 부어오른 입술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그렇게 수치심에 몸을 떨어야 했다. 키스 한 번에 명란젓 입술이라니, 회복하기 힘든 크리티컬 데미지였다. 간신히 일어난 후엔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입술에 얼음찜질을 했다. 이따 수업이 있는데 이 꼴로 가면 무슨 소릴 듣게 될지 몰라서였다.

차라리 솔직하게 주위에 모솔이라고 밝혔다면, 그리고 키스한 상대가 같은 학교의 ‘남자’만 아니었다면 누구라도 붙들고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어제 술 처먹고 첫 키스를 했는데, 보통 이렇게까지 부을 일이냐고. 대체 이게 일반적인 일이냐고.

거울 앞에 서서 얼음 팩을 입술에 문대다가 떼어 냈다. 그리고 거의 울 것처럼 되어선 ‘으아아……!’ 안타까운 신음을 내질렀다.

입술이 막 일어났을 때보다 더 뚱뚱해져 있었다.

“감기 걸렸냐? 여름에 웬 마스크?”

강의실에 들어서자 동기 하나가 놀리듯이 물었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햇볕이 쨍하고 뜨거운 고기압의 전형적인 여름날이었다. 답답한 마스크 안으로 삐질삐질 땀이 흐르고 있었다.

“어어. 감기 옮길까 봐…….”

어색하게 둘러댄 뒤 자리에 앉았다. 불안한 시선으로 앞자리를 훑어본 것은 고정원이 어디 있나 해서였다. 하필이면 전필이라 시간표가 겹쳤다. 오늘만큼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대였기 때문에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졌다.

“야, 보는 사람이 답답하다. 그냥 빼.”

“아 내가 추워서 그래!”

마스크를 건드리려는 행동에 식겁하여 팔꿈치로 쳐냈다. 목소리를 너무 크게 냈는지, 꽤 많은 인원이 뒤돌아보는 바람에 화들짝 놀라 고갤 숙였다. 강의실엔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긴 했으나 겨우 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이 여름에 춥다고 외치는 병신이 누군가 다들 궁금했을 것이다.

죽겠네 진짜.

결국 수업 중반쯤 참지 못해 마스크를 내렸다. 습기 가득 찬 입가에 바깥 공기가 닿자 살 것 같았다. 핸드폰으로 살짝 얼굴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입술이 아침보다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눈에 띄게 뚱뚱한 상태라 한숨이 나올 따름이었다.

“인휘야!”

수업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자리를 뜨려는데 뒤에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꽤 가까이서. 못 들은 척 갈 수도 없는 거리라 마스크를 낀 채로 천천히 돌아보았다.

“감기 걸렸어?”

혹시나 했지만 고정원의 입술은 평소와 다를 게 하나 없었다. 붓기 하나 없이 미끈한 입술을 보고 있자니 괜히 더 민망하기도 하고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정말 내가 ‘처음’이라 이렇게 부은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어어. 어제 더웠는지 옷 다 벗고 찬 바닥에서 잤더라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콜록! 감기가 들어서.”

억지로 기침을 하며 변명하자 사람 좋은 고정원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다.

“약은 먹은 거야?”

“당연 먹었지. 여름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하하. 개만도 못하네 내가.”

어색해서 쓸데없는 소릴 지껄이고 있자니 점점 열이 올랐다.

“어, 인휘야 열나는 거 같은데?”

커다란 손이 이마에 닿았다. 부드럽게 감싸 오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눈이 음미하듯 감겼다 뜨인다.

“아니…… 괜찮은데…….”

이상하게 목이 멘다. 하필이면 지금 이 때, 고정원과의 키스가 떠오를 건 뭔지. 녹을 듯이 달콤했던 감각들과, 공유하던 은밀한 분위기 따위가. 왜 하필 지금.

게다가 그 술이 다 깰 정도로 짜릿하던, ‘아래’끼리 부딪히던 감각이라니. 취해서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 키스에 나도 살짝 발기하긴 했지만, 고정원의 것 같은 경우엔 정말 완전히 돌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그 느낌이 아직까지 고스란했다.

근데 얘 별로 취하지도 않지 않았나? 나랑 키스하면서 그렇게까지 흥분한 거라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지기 시작하는 열 때문에 결국 얼굴을 푹 숙이고 말았다.

“뭐 하냐 둘이. 연애해?”

화드득 놀라 고갤 들자, 분명 자리를 떴던 동기가 무언가 놓고 간 게 있는지 다시 돌아와 히죽거리는 게 보였다. 방금까지 옆자리에 앉아 같이 수업을 들었던 놈이었다.

“그래 보여?”

누군 당황스러워서 눈앞이 다 어질어질한데 고정원은 능글거리며 웃기만 했다. 이마를 감싸던 손이 떨어져 나간 자리가 후끈했다.

“어, 조인휘 감기 걸렸다더니 진짠가 보네.”

나는 지금 분명 우스울 만큼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어…….”

“아, 너 근데 입술은 왜 그렇게 부은 거야? 아까 수업 시간에 보니까 장난 없던데.”

씨발.

“어제 뭘 했길래 입술도 붓고 감기도 걸렸대?”

얼굴 근육이 통제되지 않고 무너졌다. 폭탄 던져 놓고 웃으면서 짐을 챙겨 유유히 나가 버리는 동기의 뒷모습을 보며, 다 끝났단 생각만 들었다.

“…….”

고정원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시선이 마치 마스크를 투시하고 부어오른 내 입술에 닿아 잇는 것만 같았다.

“그…… 나, 수업 있어서. 이만 갈게!”

바삐 돌아섰다. 그리고 등 뒤로, 차분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인휘 너 다음에 영화의 이해 듣지? 휴강 알림 왔던데.”

“뭐?”

아. 뒤늦게 교양도 몇 개 겹친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수를 다 간파당한 패잔병처럼 서 있는데 고정원이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 이끌었다.

“잘 됐다. 카페 가자. 내가 살게.”

이게 아닌데. 환하게 웃는 얼굴을 올려다보며, 마스크 아래의 둔한 입술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 * *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다. 학교 근방 카페들 중에서는 가격대가 높은 편이라 평소엔 한가한데 날씨가 좋아서인지 오늘따라 손님이 많았다.

안으로 들어서자, 앉아 있는 여자들이 죄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물론 고정원을 향한 시선이었다. 여름날에 마스크를 쓴 내게도 이상하단 눈빛이 쏟아지긴 했다. 민망함이고 뭐고, 당장 마스크를 벗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었지만 고정원의 시선이 신경 쓰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땀띠가 다 날 지경이었다.

“이제 6월인데 꼭 한여름 같다. 인휘야, 안 더워?”

“어어, 괜찮아…….”

“감기가 많이 심한가 보네. 그럴 땐 차가운 거 마시면 안 되는데…….”

더워 죽을 것 같다 진짜로.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생각만 간절한데, 내가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고정원이 대뜸 알바생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차 중에서 뭐가 감기에 좋아요?”

“아, 감기에는 여기 허브티 종류가 좋구요, 제일 인기 많은 건 루이보스인데 루이보스로 드릴까요?”

알바생과 고정원의 시선이 동시에 나에게 꽂혔다. 어어……, 당황해서 말을 더듬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나름 센스 있는 배려라고 생각했는지 고정원이 흐뭇한 얼굴로 웃는 게 보였다.

“……고맙다.”

“뭘.”

그래놓고 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킨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얄미워서 마스크 벗어던지고 네가 만든 내 입술 좀 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결국 쪽팔린 건 나라서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주문을 마치고, 화장실에 간단 핑계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슬쩍 맨얼굴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 땀띠는 나지 않았지만 입술의 붓기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였다.

“아 진짜 더워서 못 참겠네…….”

그렇잖아도 후텁지근한데 이게 무슨 뻘짓인가 싶었다. 5월 중순부터 갑자기 찾아온 이른 더위가 이어져 어제 오늘 올해 최고 기온을 갱신하는 중이었다.

결국 마스크는 주머니에 접어 넣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새 주문이 나왔는지, 테이블 위엔 음료 두 잔과 케이크가 올라와 있었다.

“케이크도 시켰어?”

“응. 당근 케이크 혹시 싫어해?”

“아니, 좋아해.”

“다행이다.”

짧은 대화 이후, 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도 그럴 게, 나는 한 손을 들어 입술을 가린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고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정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모른 척했다.

나는 한 손을 들어 입가를 가린 채 차를 한 모금 마셨고, 이어서 케이크를 한 입 찍어 먹었다.

“인휘야.”

“어, 어……?”

어색함을 꾹 참고 있는데 말을 걸어와 사레가 들릴 뻔했다.

“입술 많이 부었어?”

켁! 결국 목구멍에 걸려서 기침이 터졌다. 정말 제대로 걸렸는지 성대한 기침이 쏟아져 나와 주변의 시선이 다 몰릴 정도였다. 놀라서 일어난 고정원은 내 등을 토닥여 주거나 물을 따라 주었다. 기침도 기침이지만, 필사적으로 입술을 가리느라 더 힘들었다.

힘겹게 버티던 나는 멎지 않는 기침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엎드렸다. 등 뒤로 얹어진 손을 느끼며 기침을 잦아들게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하…….”

겨우 멈추었을 때 눈가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좀 괜찮아졌어?”

숙였던 등을 펴고, 끄덕이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했다. 고정원의 시선이 왠지 애매하게 아래쪽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나는 그제야 손으로 눈물을 닦느라 퉁퉁 부은 입술을 그대로 노출시켰다는 걸 깨닫고 후다닥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막 가린 순간, 예상치도 못하게 손목이 붙들렸다.

억누르는 힘에 의해 가리고 있던 손이 아래로 치워지고, 나는 드러난 입술이 부끄러워 반사적으로 고갤 숙였다.

“…….”

고개를 숙여도 뚫어지게 쳐다보는 눈길만은 감지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서툴러서.”

“……어?”

답지 않게 강제적인 행동을 한 고정원은 손목을 잡아 내렸던 억센 힘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는 힐끔 눈을 들었다.

“나도 모르게 힘 조절을 못했나 봐.”

두 눈은 계속해서 흔들림 없이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힘 조절이니 뭐니……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지난밤 우리의 ‘키스’ 얘기였다.

“어…… 아니 뭐, 내가 원래 피부가 좀, 약해 원래……!”

벌건 대낮에 공공장소에서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만큼 대담한 성격은 아니었던지라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얼굴에 또 열이 오르는 것을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며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그, 넌 잘 모르겠지만 보통 이렇게 잘 붓고 그러는 거거든? 내가 가르쳐준 건 좀 쎈, 심화 단계라, 다음날 후유증이 좀 있어. 신경 안 써도 돼!”

돼먹지도 않은 소릴 주워섬기며 필사적으로 상황을 모면했다.

“……응. 그래도, 다음엔 더 살살 해야겠네.”

뒷덜미로 오싹, 소름이 올랐다. ‘살살’이라고 말하는 고정원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살살거렸던 탓이다.

“…….”

‘다음’이니 ‘살살’이니,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하는 고정원은 생각보다 뻔뻔한 성격일지도 몰랐다. 괜히 듣는 사람만 민망해져서 주위의 눈치를 보고 숨을 죽이게 된다.

눈에 띄게 어색해진 공기 속에서 나는 차를 홀짝이거나 케이크를 먹는 데만 집중했고,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시간이 더디게 흘렀다.

“하…….”

그리고 어느 순간 낮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순간적으로 내가 낸 줄 알았는데, 그건 생각지도 못한 고정원의 것이었다. 고민이 있나. 걱정 같은 게 있어도 티내지 않을 성격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행동조차도 의외로 느껴졌다.

눈이 마주치게 되자 반사적으로 피해 버렸다. 느닷없이 분위기가 확 가라앉은 고정원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 종강하고 나면 뭐 계획이라도 있어?”

“글쎄……. 아직 기말도 안 봤는데 뭘.”

껄끄러움을 몰아내기 위해 할 말을 지어내 이것저것 운을 띄워 봤지만 오히려 더 불편해지기만 했다. 고정원은 내내 대화에 집중을 못했고, 가끔 눈이 마주칠 때면 평소와 다르게 무표정하기만 했다.

할 말이 없으면 그냥 가자고 하면 될 텐데. 그렇다고 핸드폰을 만지는 것도 아니고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자꾸만 입술을 짓씹게 됐다. 이따금씩 고정원이 여길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

그런 식으로 꾸역꾸역 시간을 채운 끝에, 결국 백기를 든 건 나였다.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일어나자 고정원도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어지럽힌 자리를 능숙한 몸짓으로 정리한 고정원은 내가 가져가려던 빈 그릇들이 담긴 트레이까지 본인이 반납하겠다며 대신 들고 갔다.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건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매너 있는 모습에 그나마 안심이 됐다. 뒷모습부터 계속 기색을 살피던 나는 트레이를 반납하고 돌아온 고정원과 눈이 마주치자 눈치 보듯 씨익 웃어 보였다.

눈이 마주친 고정원이 빤히 쳐다보며 멈춰 서기에 뭐가 잘못된 건가 했다.

“……왜? 뭐 두고 왔어?”

우두커니 서 있던 고정원은 아니, 하고 대답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젠가 싶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때였다. 기다란 손이 코앞까지 뻗어 나오더니 뺨에 닿았다. 닿은 감촉은 뺨을 지나 부어오른 입술에 살짝 스치며 떨어져 나갔다.

“…….”

뭐지.

“아, 뭐 묻었어?”

급히 눈을 내리깐 나는 고정원의 손이 스쳤던 부위를 손등으로 문질렀다.

“아니……, 응.”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고정원은 애매한 대꾸를 하더니 앞서 나갔다. 어리둥절해져서 그 뒤를 따르며 나는 닿았던 뺨과 입술이 따끈하게 달아오른 걸 느꼈다. 정말 뭐지. 방금 왜 그렇게 만진 거지? 고정원은 썸 타는 남녀 사이에나 할 법한 스킨십을 남자끼리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썸이라니.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가 자꾸 떠올라서 스스로도 곤혹스러운 감이 있었다. 하여간 잘생긴 놈들은 저도 모르게 주변에 무언가를 흘리고 다니는 유전자를 타고난 걸지도 몰랐다. 지금 같은 경우도 그랬다.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안쪽으로 걷게 하고 자기는 차도로 걷는 이런 매너가, 내가 여자였다면 필시 설렜을 부분이다.

“…….”

툭, 툭.

나란히 걸으면서 이따금씩 가볍게 어깨가 부딪혔다. 손등이나 팔이 스치기도 했다. 덥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피하지는 않았다. 멀찍이 떨어지는 것도 좀 이상한 거 같아서. 다만 뒤처질 요량으로 조금 더 천천히 걸었는데, 고정원이 내게 보폭을 맞추는 건지 우리의 걸음은 계속해서 평행선이었다.

“저기……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학교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고정원의 옆얼굴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걷다 말고 멈춰 선 고정원의 표정은 여전히 어딘가 가라앉아 보였다.

“아……. 아파 보였어?”

“아니, 너 이렇게 말수 없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아서.”

그 말에 고정원은 잠시 입을 다물더니,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쓸어내렸다. 내 기분 탓인가 했는데 확실히 뭔가가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뭐 잘못했어 혹시?”

“……그런 게 아니라.”

보기 좋게 정리한 머리를 쓸어 올리는 손짓이 어딘가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어?”

“……내가 자꾸, 딴 생각이 들어서.”

미안.

눈이 마주친 순간, 고정원이 말하는 ‘딴 생각’이라는 게 뭔지 눈치채고 말았다. 내 머릿속은 어느새 고정원과 얽혀 있었던 어젯밤의 비좁은 골목으로 끌려 들어가 있었다.

고정원이 눈을 내리깔자 길고 촘촘한 속눈썹 아래로 음영이 졌다. 거스름 하나 없이 단정하고 보기 좋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는 게, 화면에 가득 찬 클로즈업 컷처럼 보였다.

“그때 남은 한 번, 오늘 써도 돼?”

아…….

나는 홀린 사람처럼 미련한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 * *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는 알 수 없는 법이다.

모델 같은 외모에 머리 좋아 대인 관계 좋아, 여자들을 대할 때도 깔끔한 태도와 선을 지키는 매너로도 유명해 모두가 인정하는 우리 학교 남신이, 고작 키스 수업 하나 받겠다고 자정이 다 된 밤까지 나를 기다릴 줄, 대체 누가 알았겠느냔 말이다.

고정원은 자가용을 몰고 나타났다. 그것도 꽤 비싼 차로. 집도 잘 산다는 소문이 헛소문은 아니었나 보다.

살짝 아파 오는 배를 느끼며 조수석에 올라타자 이제는 고정원의 냄새라고 각인된 특유의 향수 냄새가 풍겼다.

“미안, 많이 기다렸지?”

나는 수업을 마치고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오는 길이었다. 고정원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영 일이 손에 안 잡혀서 전에 안 하던 계산 실수까지 저질렀다.

“아냐 나도 이제 막 왔는데 뭘. 배는 안 고파?”

“일하면서 이것저것 먹어서 괜찮아. 너는?”

“나도 저녁을 많이 먹어서 괜찮아.”

여느 때처럼 웃어 보인 고정원은 시동을 걸며 물었다.

“자취하는 곳 학교 뒤쪽이랬지?”

“아, 응.”

예상치 못한 질문에 심장이 두근, 요동쳤다. 설마 집에 들어와서 하고 가겠다는 건가 싶어서였다.

“인휘야 혹시 또 열 나?”

“어? 아니 좀 더워서.”

내 말에 고정원은 바로 에어컨을 틀어 주었다. 서늘한 바람이 후끈 달아오른 공기를 밀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고정원이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혼자 머릿속으로 오늘 수업 내용을 되짚어 보았다.

알바하면서 틈틈이 검색해 보긴 했다만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라는 게 어쩔 수 없이 추상적이었다. 슬라이딩 키스니 인사이드 키스니 햄버거 키스니 뭐 쓸데없이 이름만 그럴싸하게 붙여 놓고 뭐가 어떻게 다른지도 모르겠더라. 어젠 알콜도 들어가고 취해서 흥이 나니 어찌 어찌 한 거지, 오늘 같은 경우엔 멀쩡한 정신으로 전혀 모르는 분야를, 심지어 실습으로 가르쳐 줘야 하니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기서 어디로 가면 돼?”

벌써 차는 학교 근방에 도착해 있었다.

“어어, 여기서 좌회전하고 편의점 나오면 그 골목으로 꺾으면 돼.”

꿀꺽. 긴장이 다 침으로 모였는지 쓸데없이 입안이 축축하다.

“쭉 올라가서 세 번째 집.”

비좁은 골목을 지나가느라 속도가 더뎠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골목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고 가로등을 제외하곤 거의 점멸된 상태였다.

차는 집을 지나쳐 좀 더 깊숙하게 들어갔다. 인적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공사 구역 근처의 외진 곳에서 멈추었을 때, 나는 그제야 오늘 수업장소를 눈치챘다.

“…….”

말이 오가지 않아도 분위기만으로 상대의 다음 행동을 유추할 수 있었다. 멋쩍어서 옆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는데 순간 차 내부의 조명이 꺼지면서 어둠이 찾아왔다.

고정원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살짝 눈을 들자 코앞으로 다가온 가슴팍이 보였다. 안으려는 건가, 싶었는데 의자가 뒤로 젖혀지며 내 위로 올라온 고정원의 얼굴이 보였다.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웠다.

“잠깐!”

나는 옆으로 홱 얼굴을 돌린 채로 외쳤다.

“왜 그래?”

고정원의 목소리가 한껏 잠겨 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자, 자세가 좀…….”

“불편해?”

“어어, 좀. 이거는 내가 여자 위치 같잖아. 가르쳐 주는 입장이니까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가.”

조금 고민하는 듯하던 고정원은 내 말이 제법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의자를 다시 원위치시켰다.

“그럼, 인휘 네가 이리로 올래?”

다시 운전석으로 돌아간 고정원은 의자를 살짝 뒤로 젖히며 제안했다. 아까처럼 내가 밑으로 깔리느니 차라리 그게 나을 듯싶어 바로 수긍했다.

“어…….”

그러나 막상 고정원의 위로 올라타고 나니, 영 내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었다.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후회가 들기 시작하는데, 뜨거운 입술이 맞닿은 순간 깜짝 놀라 생각이 다 휘발됐다.

“아직도 부었네…….” 

“…….”

“이번엔 부드러운 키스 가르쳐 줘 인휘야.”

살살 혀로 핥으며 말하는 고정원의 말이 필요 이상으로 야하게 들렸다.

“잠까마…….”

혀끼리 부딪히고 뭉개지며 발음이 샜다. 나는 고정원의 가슴팍을 밀어내고 거칠게 터지려는 숨을 참으며 말했다.

진정하기 위해 애썼지만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지면서부터 코를 파고드는 고정원의 냄새가 자꾸 정신을 흩뜨리며 방해했다.

“일단, 가만히 있어 봐 내가 먼저 할 테니까…… 따라해.”

어두운 차안에서 순순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이는 고정원이 보였다. 얘도 남자긴 남자구나 싶은 게, 표정은 고분고분한데 눈빛은 음험하게 번들거린다.

선행하려니 조금 난감하긴 했지만 상대도 뭘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냥 살살, 조심스럽게만 하면 부드러운 키스 기술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딱 감고 눈앞에 놓인 잘생긴 입술을 감쳐물고 혀를 써 가며 대충 비비고 핥기를 반복했다.

“이번엔 내가 할게.”

고정원은 내가 했던 대로 착실하게 스킬을 따라했다. 스킬이랄 것도 없긴 했지만…… 묘하게 더 유연하고 능숙한 감은 있었다.

젖은 살끼리 맞물렸다 떨어지는 척척한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간지럽게 입안이 쓸릴 때마다 자꾸만 어깨가 떨리고 허리가 움찔댔다. 눈을 감아서인지 촉각과 청각이 훨씬 민감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리드하는 것처럼 보여야 하는데, 혼자서 너무 느끼는 거 같아서 불안해진다.

중간 점검을 위해 슬며시 눈을 떠 보니 눈을 감은 채 집중하고 있는 고정원이 보였다.

아, 얘 진짜…… 잘생기긴 잘생겼다…….

점점 숨이 흐트러지고 가빠진다. 그렇지만 여전히 천천한 속도의 거칠지 않은 키스였다. 선을 넘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덕에 그만 둘 타이밍조차 두루뭉술해지고 있었다.

나른한 감각에 한껏 몸이 이완되는 걸 느꼈다. 엉덩이 사이에서 어떤 위화감을 느꼈을 땐, 이미 눈꺼풀도 흐리멍덩하게 풀려 있는 상태였다.

“저기…….”

응? 낮게 되묻는 고정원의 목소리가 무슨 어린 애를 다루듯이 다정하다. 나는 민망함을 꾹 참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너 섰……어?”

“……신경 쓰여?”

부끄러워야 할 건 고정원인데 왜 내가 이렇게 움츠러드는지 모를 일이다.

“어어……, 쫌.”

“신경 쓰지 마.”

뒷목이 끌어당겨지며 좀 전과 같은 녹녹한 키스가 이어졌다. 하지만 모른 척 넘어가기엔 자꾸만 부딪히고 비벼지는 게 문제였다. 다른 엉덩이도 아니고 내 엉덩이에 닿고 있는데 신경을 어떻게 안 써?

“으……!”

이쯤에서 그만두려고 단단한 가슴팍을 밀어냈다. 하지만 허리께로 올라온 고정원의 손이 힘 있게 끌어당기자 오히려 밀착되며 입맞춤이 깊어졌다. 다른 한 손은 내 뒷머리를 헤집고 있었다.

호흡이 모자라지면서 눈앞이 어룽졌다.

“아, 이제 그만……! 야 고정, 원……!”

턱에서부터 목까지 뜨거운 입술이 미끄러져 내려갔다. 빨아올려진 순간, 짜릿함에 허리가 들썩이며 어젯밤의 감각이 되살아났다. 서로에게 완전히 취해서 나누던 키스는 지금처럼 거리낄 것 없이 진득했다.

“응…….”

안타까운 신음이 샜다. 계속해서 각도를 달리하여 맞물리는 입술을 중심으로 몸 전체가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자꾸만 발가락이 꼼지락거리면서 엉덩이가 들썩였다. 슬슬 반응이 오며 형태를 바꾸려는 중심 때문에 미칠 노릇이었다.

열에 들떠 끙끙거리던 중, 한쪽 둔부가 아플 만큼 세게 쥐여지는 느낌에 전기가 통한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팍, 맞닿은 몸을 뿌리치듯 밀쳤다. 입술이 떨어지고 거리가 생겨나면서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을 한 고정원과 눈이 마주쳤다.

“…….”

가쁜 숨이 오갔다.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눈만 깜빡이는 게 다였다. 차창을 통해 들어온 미미한 빛이 고정원의 얼굴에 뚜렷한 음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갈까?”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 짜내 말했다. 고정원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다시 조수석에 안착하자, 그제야 에어컨에서 나오는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삐죽 솟아오르고 헝클어진 뒷머리를 정리하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동안에도 양 뺨에 오른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고 싶어.”

그때였다.

“뭐?”

낮게 내뱉어진 목소리에 놀라 고갤 들었다.

“원래 키스 안 좋아했는데…… 인휘 너랑 하니까, 계속 하고 싶어.”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발언에 순식간에 엉켜드는 머릿속을 느끼며 아무렇게나 대답했다.

“어어, 그래? 내가 좀, 잘하긴 하지. 나랑 사귀었던 애들이 다 막, 나 키스 너무 잘해서 좋다고 그랬거든 하하.”

“……그러게. 나도 원래 키스만으론 안 이러는데.”

영락없는 하반신 얘기였다. 힐끔 고정원의 아래를 훔쳐 본 나는 고갤 푹 숙여 버렸다. 엉덩이 사이로 느껴지던 감촉이 아직도 빌어먹게 선명했다.

“너, 너도 이제 잘하던데 뭘!”

이대로 가다간 분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해질 거 같아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에이, 너랑 비교하면 한참 멀었는데.”

“야 정말, 이제 그만 띄워라…….”

“띄우는 게 아니라 사실인데. 인휘가 너무 잘해서…… 사실 어젯밤부터 계속 생각났거든.”

아, 얘 왜 자꾸 이래. 제발 그만하라고 입이라도 틀어막고 싶은 기분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니까 아쉽네, 정말…….”

딱 한 번만 더 가르쳐 주기로 했으니, 이제 이런 비정상적인 키스 수업은 오늘로 끝이었다. 그때 술김에 저지르고 뒷수습 차원으로 한 번 더 늘린 거긴 하지만 해 놓고 나니 괜히 더 후회가 들었다. 오늘의 감촉들이 금방 잊히지 않을까 봐 걱정되기 시작했다.

집까지 다시 되돌아가는 짤막한 시간 동안, 차 안에선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조금 심각해져 있었다. 집 앞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는 내게 고정원은 잘 자라고 말했고, 연락하겠다고도 말했다.

내일은 고정원의 얼굴을 볼 일 없는 주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하며 고정원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 * *

“여자들은 왜 이렇게 날 싫어하냐? 씨발, 나 못생겼어 조인휘?”

배달앱으로 시킨 늦은 점심을 먹고 뒹굴면서 한가로운 주말을 만끽하고 있던 오후였다. 느닷없이 불청객이 내방했다. 깜빡 졸았는지, 현관문이 쾅쾅대며 울린 순간 깜짝 놀라 선잠에서 깼다. 인희야아! 쪼인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박살난 평화로움을 아쉬워하며 현관문을 개방하자 잔뜩 취한 몸뚱이가 떠밀리듯 안겨 왔다. 뒤늦게 확인한 메세지창엔 지금 가겠다는 말과 함께 실연당한 남자의 자기 연민이 서른 개 가까이 쌓여 있었다.

“야 임지원이 뭐랬는 줄 아냐? 내가 씨, 와…… 말하기도 쪽팔리네…….”

이미 맛이 갈 만큼 마신 주제에 술을 또 한 아름 사 와선 실패 연속인 제 연애 사업에 대해 한탄을 늘어놓는 이는 김강우였다.

“……뭐랬는데.”

솔직히 조금도 흥미가 생기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어 영혼 없는 맞장구로 대화를 이어 가고 있었다.

“내가, 어? 내가 지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 자체가, 지가 자존심 상한대. 푸하…… 이거 진짜 존나 나쁜 년이지 않아?”

김강우의 얼굴에 술기운 때문만은 아닌 홍조가 진해졌다.

“그러면서 무슨, 씨-발, 나보고 자기 객관화? 그걸 좀 했으면 좋겠대나?”

“…….”

나는 차마 뭐라 대답할 수도 없어서 캔 맥주를 하나 땄다. 푸쉭, 정적을 가르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 그러니까 그게 그 말이잖아. 지랑 나랑 급이 다르단 거잖아. 아니냐?”

김강우가 학기 초부터 열렬하게 관심을 보이던 임지원은 얼굴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키가 크고 얼굴이 화려한데 성격은 털털했다. 나 같은 경우엔 처음 본 순간부터 왠지 우리 누나가 생각나서 호감을 갖기가 어려웠는데, 남자 동기들 사이에선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했다. 다들 사귀고 싶어 안달이었으니.

주제 파악을 하고 지켜만 보거나 김강우처럼 무모하게 찔러 보다 피를 보거나 둘 중에 하나였다.

“야 씨발, 그럼 지가 쫓아다니는 고정원은 지랑 뭐 급이 맞는단 얘긴가? 근데 존나 웃긴 건 너도 뭔지 알지? 고정원 그 새끼는 임지원한테 진짜 모기 좆만큼도 관심 없다는 거. 옆에서 봐도 안쓰러울 정도던데 지는 뭐 걔랑 급이 맞는 줄 아나 봐? 존나 전혀 아닌데? 고정원 그 새끼 정도 되면 연예인급을 만나지 뭐가 아쉬워서 임지원을 만나냐고 에이씨……!”

학기 초엔, 다들 임지원과 고정원이 사귈 거라고 떠들어 댔었다. 이제 와선 다 식어 빠진 흥밋거리가 됐지만 아무튼 당시 제일 눈길을 끌었던 건 그 둘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여자애들 사이에선 고정원이 훨씬 아깝다는 평이 나오던 모양이었다. 임지원을 여신이라고 치켜세우는 남자 동기들조차 그 부분에선 딱히 반박하질 못했다.

“하, 고정원이 잘나긴 했지. 인정한다. 줘도 못 먹는 고자 새끼긴 하다만…….”

낄낄대며 웃는 김강우를 옆에서 나는 갑자기 목이 타서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니까 ‘고자’란 말 한마디에 역풍처럼 들이닥친 어제의 기억들 때문이었다.

“고자는 무슨…….”

“뭐? 방금 뭐라 했어?”

“아니. 암 것도.”

늘 단정해 보이고 무심해 보이는 인상인데, 그렇게 열에 들뜬 눈을 하고선 잡아먹을 듯이 입을 맞춰 대는 열정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직도 고정원이 움켜쥐었던 엉덩잇살이 얼얼한 것만 같다.

“하아. 진짜 방학하고 여자 존나 만나고 다닐 거야……. 임지원 필요 없어…….”

한참을 취해 떠들어 대던 김강우의 목소리가 점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낙하해 갔다. 대낮부터 이렇게 취할 정도면 적어도 좋아하는 마음이 어설픈 정도는 아닐 터였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남은 캔을 홀짝였다. 평소에 별로 친근하게 여기는 놈은 아니다만, 엉망으로 취해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덩달아 우울해지는 것 같았다.

사실 모종의 책임감도 없잖아 있었다. 내가 심심하면 여자를 갈아치우는 놈으로 알고 있는 김강우는 나한테 연애 상담을 가장 많이 요청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내 허세에서 시작된 사기극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도 볼 수 있었다.

‘여자들은 남자가 좆도 없어도 당당하게 굴면 끌리는 법이거든. 찌질하게 굴지 마 매력 없어.’

‘타이밍은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다.’

맨 정신에 하기엔 민망한 헛소리들을 소주 기울여 가며 설파하곤 했는데 지금에 와선 깡그리 흑역사로 남았다.

“내가 죄인이지…….”

나는 다 늙은 노인처럼 중얼거리며 잠든 놈의 머리 사이로 쿠션을 끼워 넣어 주었다.

주말엔 보통 집에서 혼자 있는 편이다. 학기 초엔 떼 지어서 우르르 놀러오던 동기들도 발걸음이 끊긴 지 오래고, 술자리 약속도 슬슬 버겁게 느껴져 요즘 들어 자제하고 있었다. 할 게 없으면 그냥 늘어져서 노트북으로 다운 받은 영화나 드라마, 예능을 몰아 보는 게 근래의 여가 생활이었다.

벽에 기대 누워 발끝으로 선풍기를 켜고, 과자 한 봉지 뜯어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다운 받은 드라마를 재생시켰다. 옆에서 술 냄새 풍기며 실신해 있는 놈만 아니면 보다 완벽하게 행복한 주말이었을 테지만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아 연희 씨, 오늘 회식 오죠?’

‘네? 아, 네!’

‘그래요. 이따 봐요.’

남자주인공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배우 특유의 정돈된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반듯하게 잘 생긴 남자였다. 군살 없이 날렵한 선을 가졌으면서도 단단해 보이는 턱선을 보자, 자연적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

직시해 오는 눈. 보기보다 훨씬 부드러운 입술. 길고 깨끗한 손가락.

다정을 지나쳐 달콤으로 녹아드는 목소리.

순간 플래시백처럼 몇몇 장면들이 스쳐 갔다. 어떤 감촉들도 스쳐 갔다. 그것만으로 다리 사이가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나는 당황하여 몸을 꼼지락댔다.

“뭐 보냐?”

“아이 씨, 깜짝이야!”

언제 일어났는지 게슴츠레하게 눈을 뜬 김강우가 옆에 다가와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뭐야 이거 드라마냐? 난 또 뭔 야동 보고 있나 했네.”

그저 드라마를 보다 잠시 딴 생각을 한 것뿐인데 나쁜 짓 하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고간의 저릿저릿한 열기는 일시에 가라앉았으나, 당황스러운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하필이면 고정원과의 키스를 떠올리며 신체적인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는 게 부끄러웠다. 아무리 내가 처음이라고 해도 남자랑 키스한 걸 가지고 곱씹는 건 정말 아니지 않나.

“너도 이거 보냐? 나도 가끔 보는데.”

“어, 어…….”

“야, 근데 여주도 이 정도면 어리바리한 게 도를 지나치지 않냐? 어떻게 저렇게까지 개수작을 거는데 모를 수가 있어.”

어느새 앉아서 드라마를 함께 보기 시작한 김강우가 심드렁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저게, 개수작이야?”

나는 간신히 진정된 가슴을 느끼며 되물었다. 극중에서의 남자 주인공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데다 모두에게 친절한 성격으로, 여자 주인공에게도 아직 특별할 것은 없어 보였기 때문에 김강우의 수작이란 표현에 의문이 들었다.

“남주가 원래 딴 사람들한테도 다 친절하니까 눈치 못 채는 거 같은데.”

“그냥 친절해서 잘해 주는 거랑, 자고 싶어서 잘해 주는 거랑 같냐? 왜 이러세요 조 선생님. 연애 한 번도 안 해 보신 분처럼.”

촌철살인에 심장이 또 한 번 들썩였다.

“어어, 알지 나도. 그냥 여주 입장에서 그렇다는 거지.”

흠, 목을 가다듬으며 변명했다.

다시 드라마에 한참 집중하고 있는데 지잉, 핸드폰이 짧게 연속으로 울렸다.

[인휘야]

[쉬고 있어?]

액정에 뜬 메시지의 발신인명에 깜짝 놀라 입안으로 넣던 과자를 떨어뜨렸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 화면을 숨기고 슬쩍 옆에 있는 김강우의 눈치를 봤다.

“여자냐? 부럽다 씨.”

뭐라고 대답도 못하고 그렇다고 고정원의 메시지에 답장도 못 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지이이잉, 길게 울리면서 통화 모드로 바뀌었다. 메시지를 보낸 이와 동일한 발신인의 이름을 본 순간 초조함이 더해졌다.

“뭐해? 전화 안 받고.”

“어…….”

사실 어젯밤 헤어지고 나서도 전화가 왔었다. 그건 받지 못했다. 여러모로 기분이 이상했던 탓이다. 헤어질 때 연락하겠다는 말을 하긴 했었지만 그렇다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헤어지자마자 바로 전화를 할 줄은 몰랐어서 더 당황스럽기도 했다. 오늘 일어나서도 생각은 났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씹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먼저 연락해 올 줄이야.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

“와, 나가서 받네, 여자 맞네.”

놀리는 김강우를 뒤로하고 집밖으로 나와 말소리가 안 새어 들어갈 만한 곳으로 굳이 자릴 옮겨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여보세요.”

-인휘야. 집이야?

귀 가까이에서 들리는 상냥한 목소리에 어쩐지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어, 스피커폰으로 교체한 뒤 전화기를 멀리 떨어뜨렸다.

“아, 응 집이지.”

-그렇구나……. 근데 바쁜가 보네 전화도 늦게 받고.

“미안. 그 집에, 친구가 와서 정신이 없네.”

-친구?

“아, 김강우가 술 마시자고 놀러왔더라고 하하.”

-그래? 언제?

“글쎄 한 세 시쯤 왔던 거 같은데.”

-……그때부터 계속 같이 있었던 거야?

“…….”

묘하게 파고드는 듯한 질문에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자 고정원은 아쉽다는 듯이 이어 말했다.

-나도 오늘 인휘랑 놀고 싶었는데.

“아……. 미안. 너한테도 연락을 해 볼 걸 그랬네.”

-그럼 지금 가도 돼?

“어?”

당황해서 되물었다. 지금 가다니? 어딜?

-사실 근처라서.

“어, 근처?”

-약속이 있어서 나왔다가, 학교 근처야.

가까운 곳에 있는 데다 이미 김강우가 집에 와 있는 상황에서 안 된다고 하는 건 확실히 핑계처럼 보일 터였다. 나는 내키지 않는 마음을 티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목소리를 밝게 하며 답했다.

“아아 그래, 그럼. 너도 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사 갈게.

“아냐 그냥 와. 술 많아.”

-알았어. 그럼 이따 보자 인휘야.

뚝,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나서도 나는 괜히 황망해져선 들어갈 생각도 못하고 제자리를 왔다 갔다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 앞에서 머릿속이 어수선했다.

“하아…….”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냥 친절해서 잘해 주는 거랑, 자고 싶어서 잘해 주는 거랑 같냐?’

이 상황에서 방금 김강우가 했던 말이 떠오른 건 왜일까. 주먹을 쥔 손으로 가슴팍을 턱, 턱, 세게 두드렸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중압감을 느낄 때처럼 심장 언저리가 꽉 막힌 기분이 들었다.

* * *

“너는 왜 연애 안 하냐?”

비좁은 자취방엔 남자 세 명이 앉아 다소 불편한 술자리를 이어 가고 있었다. 김강우의 낯은 술로 벌겋게 익었고, 말투는 늘어지고 삐딱했다. 고정원이 찾아와 술판이 벌어진 지 약 30분 만에 다시 꽐라가 되고 내내 이런 식이었다.

“안 하는 건 아니고. 기회가 안 돼서.”

고정원은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상냥하고, 잘 웃고.

그렇지만 차분한.

평소 고정원을 시기하고 깎아내리려 하는 김강우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서 조마조마했지만, 고정원은 둔한 건지 아니면 속이 넓은 건지 다행히 아직까진 조금도 기분 나빠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임지원은? 걔가 너 좋아하는 거 알지? 근데 씨발, 왜 안 사귀는데…… 어?”

“야 그만 해 김강우. 너 너무 취했어. 자든가 그만 가든가.”

시비를 거는 목소리는 점점 고조되며 험악해지고 있었고, 이렇게 열을 내다 깽판이라도 부릴 기세라 나는 삿대질하는 김강우의 팔을 끌어내리며 말렸다.

“아 왜 이래, 나 할 말 덜했다고!”

하지만 말린 게 오히려 역효과였는지 취한 김강우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평소 고정원의 면전에선 말 한마디 못 하던 놈이 술이 들어가니 대담해지는 모양이었다.

“야 네가 존나 잘나서 눈 높은 건 알겠는데, 걔가 씨발, 그렇게 무시당할 만한 애는 아니거든?”

아, 내가 이래서 얠 안 좋아했다. 동기들 중 술만 마시면 추태를 부리는 몇 놈들이 있는데 김강우도 그 중에 하나였다.

“잠깐만, 조인휘 놔 봐, 쫌.”

제 몸 하나 제대로 못 가누는 주제에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군다.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 고정원이 최대한 원만한 투로 말했다.

“강우야, 취한 거 같은데 그만 하자. 술 깨고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었으면 하는데.”

“하……!”

차분한 상대의 반응에 더 약이 오른 건지, 기어이 몸을 반쯤 일으킨 김강우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고정원의 어깨를 밀치기 시작했다.

“까는 소리 하네. 야 고정원 너 고자지? 어? 말 해 봐, 고자니까 여잘 못 사귀는 거 아냐!”

나는 날뛰는 놈의 양어깨를 뒤에서부터 붙들어 말렸다. 혹여 몸싸움으로 번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아!”

갑자기 눈앞이 핑 돌았다. 세게 휘두른 김강우의 팔꿈치에 광대 부근을 맞고 바닥으로 떨쳐진 것이었다. 울컥, 화가 나서 다시 몸을 일으켰을 땐 김강우가 이미 고정원에게 제압당한 상태였다.

“아이 씨, 놔! 놓으라고!”

바닥에 처박힌 채 팔을 뒤로 꺾여 몸부림을 치는 김강우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새빨갰다. 흔들림 없이 김강우를 붙들고 있던 고정원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나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

고정원의 말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 김강우 또한 몸부림을 멈추었다.

“때 되면 알아서 잘 연애 할 테니까, 신경 꺼 줬으면 좋겠다.”

끝까지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단호하게 선을 긋고 있었다.

한바탕 난동을 부리자 조금 취기가 가셨는지, 구속에서 벗어난 김강우는 바닥에 앉아 제 양 팔을 주무르며 스트레칭하듯 움직였다. 가라앉히지 못한 흥분 탓에 아직도 가슴이 들썩이고 씩씩대는 숨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미안하다, 시끄럽게 해서. 먼저 갈게.”

웅얼거리는 소리로 사과의 말을 전한 김강우는 그대로 나가 버렸다.

쾅, 소리와 함께 좁은 방안에 정적이 찾아왔다. 어지럽혀진 방안을 한번 둘러본 나는 조금 지친 듯한 얼굴로 앉아 있는 고정원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

그냥 오지 말라고 할 걸. 김강우가 고정원에게 평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중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거 같아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인휘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괜히 온다고 했나 봐.”

“아니야…….”

긴장이 가시자 탈력감이 들어 침대 위로 털썩 주저앉았다. 조악하게 만들어진 간이침대는 스프링 삐걱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까 다친 데 괜찮아?”

삐걱, 소리를 내며 침대 매트가 한 번 더 들썩였다. 바닥에 앉아 있던 고정원이 침대로 올라와 앉자 시선이 나란해졌다.

“어……, 괜찮아. 별로 안 아팠는데.”

눈가가 반사적으로 움찔댔다. 부드럽게 주변을 쓸고 지나간 고정원의 손가락 때문이었다.

“멍들겠다.”

나는 급히 얼굴을 돌리고 딴청을 부렸다.

“근데, 너…… 좋아하는 사람 있었어?”

괜히 어색해서 나온 말이기도 했지만, 사실 아까부터 계속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다. 바로 대답이 없자 나는 조심스럽게 고정원의 얼굴을 살폈다. 어딘가 곤란해 하는 듯한 옆얼굴을 캐치한 순간, 이상하게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빈 것처럼 허무해졌다.

“아…… 하하, 그랬구나 와……, 몰랐네.”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는 감정의 변화가 행여 겉으로 드러나기라도 할까 봐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속으론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럼 얘 좋아하는 사람 있는데도 나랑 키스한 건가? 아니, 정확하겐 키스 연습이긴 했지만 그래도 그건 쫌 그렇지 않나? 아니, 좋아하는 상대가 있으니까 미리 연습하려고 했던 건가……?

웃으려 해도 자꾸만 입꼬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혹시, 우리 학교 애야?”

“……응.”

고정원은 부끄러운 듯 희미하게 인상을 찌푸리곤 손을 들어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런 작은 움직임을 나도 모르게 낱낱이 쫓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홱 돌려 버렸다.

“와, 대박! 진작 얘길 하지, 내가 도와줄 수도 있는데! 너도 알겠지만 내가 연애 경험이 많잖아. 척하면 척인데 내가.”

최대한 밝게 올린 톤으로 아무 말이나 쏟아 냈지만 그럴수록 안 그래도 허한 속이 더 허해지는 느낌이었다.

“벌써 도와줬잖아 인휘가.”

“어?”

되물으며 올려다보니 부드럽게 웃고 있는 고정원과 눈이 마주쳤다. 아아. 한 박자 늦게 상대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 또 한 번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그거야 뭐, 별 것도 아닌데.”

어색했다. 뒷골목에서, 차안에서. 둘이서 공유했던 은밀한 감각들이 순식간에 아득해졌다.

“그럼…… 정말 도와줄 수 있어?”

“어?”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갤 들었다.

“나 좀, 도와줄래?”

조금 절박해 보이는 듯한 눈으로, 고정원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뜬금없이 도와달라니. 당황스러워서 할 말을 찾고 있는데 고정원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사실, 이미 한 번 차였었어.”

“뭐?”

“……키스 한 번 해 보더니 나랑은 못 사귀겠다고 하더라고.”

그린 것처럼 단정한 얼굴이 조금쯤 시무룩해졌다.

“나한테, 성적인 매력이 없대.”

“…….”

듣고 있으면서도 귀를 의심할 만한 내용이었다. 고정원을 보고 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여자가 존재한다는 게, 그것도 가까이 우리 학교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도 이해 가. 키스도 서툴고, 그 이상으론 전혀 숙맥이라…… 내가 여자였어도 싫을 것 같긴 해.”

……그게 서툰 거라고?

나는 고정원과의 키스를 되짚어 봤지만 살 떨릴 정도로 기분 좋았던 기억밖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사실 나도 첫 키스였기 때문에 뭐라고 평가를 내리기가 애매하긴 했다. 애초에 비교 대상이 없으니 잘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인휘한테, 배우고 싶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어…… 끝까지? 뭘, 끝까지……?”

이상한 의미로 곡해하기 쉬운 단어 선택에 잠시 혼란을 느끼며 되묻자 고정원은 별 말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냥. 키스부터…… 다른 것들도, 내가 배울 수 있는 건 다 너한테 배우고 싶어.”

다? 키스 말고 내가 가르쳐 줄 게 또 있나?

동공이 흔들리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키스도 버거워 죽겠는데 그 이상 지어내서 가르쳐 준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성인이 되도록 여자 손 한번 잡아 본 적이 없는 나였다.

“그…… 근데 아무래도 좀, 음, 힘들지 않을까? 어, 그런 건 말로 암만 설명해 줘 봤자…… 실제로, 사귀면서 늘어 가는 거랄지…….”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고정원이 말을 이으며 조금 곤란한 모양으로 눈을 찌푸렸다.

“인휘 네가 한번 봐 주면 안 될까?”

“……뭘?”

나는 순간 벙 쪄서 물었다. 대체 뭘?

“내가 뭐가 문젠지.”

“어, 어떻게……?”

고정원은 설명하기 힘든 것처럼 보였다. 비스듬히 고갤 비틀며 입술을 축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보기 좋은 입술이 살짝 젖고, 남들보다 유난히 불거진 목울대가 한 번 크게 울렁이는 게 보였다.

이상하게 나까지 목이 타는 기분이 들었다. 꿀꺽, 마른침이 넘어가며 목에서 커다란 소리가 났다.

“인휘야.”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고정원이 내 이름을 불러 왔다.

“어?”

젠장. 삑사리 난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순식간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는데 그 때문인지 오히려 긴장이 조금 풀린 듯한 고정원은 조심스러우면서도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다음 주 토요일에, 시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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