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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님 망겜에도 엔딩이 있나요-114화 (114/127)

114화

“…….”

테네브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어떤 모습에 가장 약한지 아는 것만 같았다. 그 마음이 흔들리기 전에 잡힌 손을 뿌리치고 달려 나갔다.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해야만 한다. 이 이상의 후회는 사양이다. 마지막 의지까지 짜내야 했다.

상태 창을 떠올렸단 자각을 마치기 전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캐릭터 스킬]

...

데스페란도 | ✖ LOCK

페르체로 | 단일 | 쿨타임 450초

데보티오 | 단일 | 쿨타임 360초

공간이동 | 일반 | 쿨타임 240초

공격용 스킬은 단 두 개뿐, 게다가 분 단위로 늘어나 버린 스킬의 쿨타임을 잘 사용해야 했다.

또 하나, 잊어선 안 된다. 이 세계의 던전은 도전자들이 실패할수록 던전의 주인이 경험을 습득하고 절대 격파하지 못할 수준으로 강력해진다. 광폭 화 이전에 처치하는 것을 전제로 두어야 했다.

결국엔 15분 안에 두 가지의 공격 스킬을 각각 두 번 쓸 수 있다는 소리다. 가장 쿨이 긴 것을 먼저 사용해야 했다.

어떤 능력인지 사용해본 적은 없었으나, 그것까지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페르체로.”

파란 불덩이가 양 손바닥 위에 이글이글 타오르며 몸집을 불렸다. 럭비공만 한 크기가 되었지만,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두 불덩어리를 맞부딪혔다. 각각의 덩어리가 발산하는 힘이 밀어내려는 것 같았지만, 더욱 짓눌러 압력을 가하자 합쳐지며 농구공 크기가 되었다.

그것을 든 팔을 한계치까지 뒤로 젖혔다. 이내 체중을 실어 놈을 향해 힘껏 투척했다.

“칼리고!!”

놈은 내 부름에 돌아보려 했다. 이를 먼저 눈치챈 리헤로스가 내 쪽을 상대할 수 없도록 몰아치듯 검을 휘둘렀다. 그 덕분에 내던져진 불덩어리는 칼리고의 등에 명중했다.

푸른색 화마는 놈을 순식간에 뒤덮더니 금세 사그라들었다. 불쾌할 정도로 번들대던 껍데기의 윤광이 빛을 잃고 그을렸다.

“귀찮은 피라미 새끼가….”

칼리고는 눈빛에 살기를 머금은 채 어깨너머로 노려보았다.

그러고 보니 원래 같은 마족에게는 어떤 공격을 하든 유효하지 않았는데, 칼리고에겐 먹혔다. 그가 완전한 마족이 아닌 반 인간인 상태여서일까? 사실이 어떻든 잘된 일이었다. 집중력이 분산된 틈을 타 칼리고의 목을 향해 백금색의 검이 휘어지듯 지나갔다. 반사 신경이 어찌나 빠르고, 또 허리는 얼마나 유연한지 뒤로 휘어지며 가볍게 피하는 것이었다.

“쌍으로 발악하는군. 그래, 덤벼봐라. 날벌레 두 마리 정돈 상대해줄 테니.”

허리가 꺾인 채 멈춘 칼리고는 한쪽 무릎을 차올렸다. 두꺼운 피부를 뚫고 나온 날카로운 뿔이 그를 향해 솟구쳤다. 멀쩡히 서 있던 리헤로스 또한 칼리고와 비슷한 모양새로 몸을 기울였고, 중심을 잡지 못해 비틀거리다가 뒤로 물러났다.

“데보티오!”

무방비해진 그가 위험해질 것만 같아서 곧바로 남은 스킬을 사용했다.

두 개의 거대한 가시가 공중에서 생겨나더니 교차하는 모양새로 칼리고의 몸통을 관통했다. 그것은 몸을 꿰뚫은 것처럼 보임에도 어떠한 선혈이나 상처 따위를 남기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게 아니라 내부에 충격을 주는 스킬일까? 오히려 그렇다면 좋은데.’

머지않아 가시는 신기루처럼 스르륵 사라져버렸다. 육중한 몸통은 바닥으로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이번에도… 먹혔나?”

“크흐흐….”

간절한 바람과 달리 검은색 몸뚱이는 붕 떠오르더니 굴기했다.

“버림받은 실패작 주제에 아직도 잔재주를 부릴 수 있다니. 하지만 이 정도로는 내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해.”

“젠장….”

“차라리 도망칠 수 있을 때 도망치지 그랬나. 정말 눈물겨운 사랑 이야기군.”

움직임만 잠시 통제하는 스킬인 모양이다. 이로써 내가 가지고 있는 공격 스킬은 한 개로 줄었다.

내 비루해진 스킬도 문제였지만, 리헤로스의 ‘상성’이 더 큰 피해를 주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보다도 그의 공격이 얼마나 유효하며, 정확히 들어가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리헤로스! 엄호할게!”

“부탁해!”

리헤로스는 검을 고쳐잡고 다시금 약진했다.

칼리고는 땅에 양손을 박아 넣더니 힘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점점 보도블록의 균열을 따라 검보라빛이 발산되더니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미친 듯이 솟구치며 진로를 방해했다.

날카로운 돌멩이들은 그의 몸에 부딪히며 얕은 상처를 냈다. 위협적인 덩어리들을 회피하며 솟아오른 돌을 발판 삼아 뛰어올랐다.

‘그대로 머리를 내려치면 성공이야!’

리헤로스의 눈이 금빛으로 빛나자 땅에서부터 체인이 여러 갈래 솟구쳐 오르더니 칼리고를 옭아맸다.

‘이제 영창 없이도 스킬을 사용할 수 있나?’

감탄을 마치기도 전에 백금색의 검은 격렬한 전류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몸부림을 치며 가까스로 한쪽 팔만 속박에서 벗어난 칼리고는 손톱을 휘둘렀다. 음속에 가까이 공기를 가르기 때문일까 반투명한 검기 같은 것이 보이는 착각을 일으켰다. 그것을 가로 베어 무력화했지만, 내 바람대로 머리를 내려치진 않았다.

착지한 후, 안으로 더욱더 깊게 파고들려고 했다.

칼리고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어느새 완전히 속박을 풀어내 버린 반대쪽 팔로 그를 내려치기 직전이었다.

“조심해!”

주위에 굴러다니는 가장 큰 바윗덩어리를 잡아 던졌다.

다행히도 놈의 날카로운 손은 바위를 먼저 바스러트렸고, 그로 인해 아주 잠깐의 지연이 생기자 기회를 포착한 리헤로스가 공격을 마칠 수 있었다.

칼리고는 가소롭다는 듯 비소를 짓더니 곧바로 양 손톱을 내려찍으려 했다. 재빨리 검으로 올려 막으며 버티었다.

“크윽!”

리헤로스의 무기는 장검이다. 너무 붙게 되면 오히려 불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페널티를 자체 부과하면서까지 근접하는 행위가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 분명 어떠한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은 했다. 그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들어봐야 했다.

“리헤로스!”

날카로워진 목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을 것이리라. 내 쪽을 돌아보더니 끄덕이고는 칼리고와의 교전을 멈추고 뒤로 뛰어올라 안전한 곳으로 착지했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정말 이해가 안 돼. 당장 온 힘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판에 속닥거리고 자빠졌다니.”

칼리고는 비아냥대며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아직 매우 버틸만하다는 소리이겠지. 우리에게 느긋하게 시간을 내어 주면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이 느껴져 짜증스러웠다.

또 제멋대로 날뛸 것 같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리헤로스 옆으로 바짝 다가가 속삭였다. 경계의 시선은 칼리고로부터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파훼법 찾았어?”

“응.”

“좋아, 어떻게 할 생각이야. 도와줄 테니 말해봐.”

“부위 파괴를 해야 해.”

“부위… 파괴?”

“아킬라의 잔해를 가지고 조사했었어. 그때와 같은 실수가 벌어지면 안 되니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땐 그의 생사가 어찌 되었는지 불명확할 정도로 크게 다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후에 있을 전투를 대비해 공략법을 학습했다는 점이 대견했다.

그렇다면 아킬라 땐 맨손으로도 갈기갈기 찢어발겼었는데, 한 곳만 집중적으로 깨트려서였을까. 아니다. 분명 부드러운 부위가 있었다.

“내가 아킬라와 대치했을 땐 약점이 있긴 했었어.”

“처음엔 그걸 집중적으로 찾아봤는데, 칼리고에게 치명적인 약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젠장… 역시 급이 다른가?”

“그래서 말인데, 한 부위를 파괴하는데 십 분 정도 걸릴 것 같아.”

“뭐…?”

부위 파괴에만 10분이 걸린다면 15분이라는 시간이 더욱 짧게 느껴졌다. 부지런히 유효타를 만들어야 했다.

“그래도 지금까지의 공격으로 생긴 균열은 사십 퍼센트야. 그래서 정확히 급소가 될 수 있는 곳만 집중해서 파괴할 거야.”

“급소… 그럼 심장이겠네.”

리헤로스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으며 단호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하면서까지 안쪽으로 파고든 이유를 이해했다.

“네가 공격하기 쉽도록 상황을 만들어줄게.”

“응, 고마워.”

“고맙다는 이야기는 끝나고 받을 거야.”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 앞장서 튀어 나갔다. 칼리고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쉴 새 없이 도발했다.

“고기 방패로 나서는 건가?”

“네놈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 알 바 아니야.”

중수골이 도드라질 정도로 꽉 쥔 주먹을 겨눈 채 놈에게 돌진했다.

나와 맞부딪힐 생각인지 몸을 앞으로 한껏 기울이더니 나와 똑같이 주먹을 가로 세우고 있었다.

가까워진 순간, 주먹을 지르는 대신 힘껏 뛰어올랐고 무릎으로 놈의 턱뼈를 가격했다.

“크윽!”

예상치 못한 공격에 놈의 목이 뒤로 꺾였다.

어깨를 밟고 너머로 착지하자,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리헤로스는 빛을 그리며 가슴 정중앙을 베어 나가 약한 생채기를 낼 수 있었다.

“오십 퍼센트.”

“무슨 소릴 지껄이는 거냐?”

나에게 부위 파괴 카운트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사이 날카로운 주먹이 리헤로스의 얼굴로 순식간에 뻗어나갔다.

리헤로스는 간신히 검을 쥐고 있는 손등으로 막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퍽 하는 파열음과 함께 세게 밀려났다.

‘부족해…!’

리헤로스는 10분가량을 정석대로 묵직하게 파훼할 생각인 듯했지만, 나는 그저 초조했다.

나라도 유효타를 한 방 더 넣을 수 있도록 뒤돌아 칼리고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가슴을 노렸지만, 그쪽까진 닿을 수 없어 왼 주먹이 갈비뼈 쪽에 부딪히는 데에 그쳤다.

그러자 칼리고는 기계적으로 고갤 돌리며 낮게 중얼거렸다.

“간지럽다.”

내 손목을 잡더니 한 손으로 휙 던져버린다. 워낙 넓은 광장이었기에 어딘가에 부딪히기 전에 몸의 중심을 잡으며 착지할 수 있었다.

“젠장…! 맨손으로는 전혀 안 되겠어.”

리헤로스가 말해준 대로 아킬라완 비교하지 못할 수준의 고강도의 껍데기였다.

주위를 둘러보며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바닥으로부터 불쑥 튀어나와 있는 벽돌을 쥐어보았으나, 가볍게 박살 내던 걸 생각해보면 이 정도로는 칼리고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진 못한다.

더 단단하고 날카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렇지, 그게 있었어.”

그 조건에 딱 맞는 무기가 기적처럼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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