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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님 망겜에도 엔딩이 있나요-100화 (100/127)

100화

─쫘악!

“악!”

“시건방진 마족, 아니 마왕 놈. 감히 인간들 틈에 숨어 살면서 왕국을 능멸해? 이는 국왕 폐하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군.”

“크윽, 무슨… 개, 소리야…!”

“오호, 아직 말문이 개방되어 있는 것을 보니 덜 맞았나 보군.”

“무슨, 윽!”

뱀처럼 움직이는 채찍은 다시 한번 내 몸을 감고 지나갔다. 눈앞에 번개가 치는 것만 같았다. 채찍이 닿은 길은 옷이 찢어지는 건 당연지사, 살갗이 완전히 터졌다. 차마 상처에 손에 댈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여전히 미동조차 없는 리헤로스와 테네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늘 나를 도와주었던 두 남자는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또 입을 열었다간 맞을 게 뻔했지만, 할 말은 해야 했다.

“크훗… 리헤로스… 테네브부터… 치료해, 줘… 부탁해.”

“착한 척 마라. 가증스러운 놈.”

“부탁… 드립니… 다.”

칼리고는 두 사람에 대해 특별히 행동을 취하진 않았고, 대신 뒤따라온 기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리헤로스와 테네브에게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둘을 치료하지 않는 기사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나를 둘러싸 구속하는 쪽과 갈기갈기 찢긴 아킬라의 유해를 조사하는 쪽이었다.

“우욱… 피 냄새….”

“이거 완전… 미쳤는데?”

피바다 속에서 무얼 손댈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서서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내가 봐도 처참하게 짓이긴 현장을 보며 무슨 정신으로 이렇게까지 증오심을 표출한 건지 스스로가 무서울 지경이었다.

“으윽….”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렸다.

둘 중 누군가 눈을 떴다는 소식일 테니 정말로 듣고 싶었던 소리였다.

“단장… 님.”

“테네브, 일어났나?”

“아… 대체… 윽.”

“내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는데, 오전의 경고를 새겨듣지 않은 건가?”

“칼리고…!”

칼리고는 내 울부짖음에 가까운 목소리에 다가와 가슴팍을 지근지근 밟아댔다.

“누가 말해도 좋다고 했지?”

“으윽…! 테네브, 는 잘못 없어… 진짜야. 나를 감옥에 잠깐 넣어두려고 했을 뿐이야.”

“하하하하! 뭐, 체이서에도 테네브가 수상쩍은 행동을 보인 건 아니긴 했지만.”

“체이서…?”

“지하 감옥 병사가 긴급히 호출해서 체이서로 내부 상황을 녹화하고 있었거든. 몰랐나?”

아킬라가 탈출하고 난 직후에 칼리고를 호출하러 갔던 병사가 있었다. 코빼기도 보이지 않길래 도망간 줄 알았건만, 상황을 전달하고 있었던 걸까.

칼리고가 손짓을 하자 정팔면체의 물체가 공중에서 내려왔다. 가볍게 두드리니 ‘체이서’는 작은 6개의 정팔면체로 나누어졌고, 사방으로 펼쳐지면서 반투명 스크린을 만들어냈다.

‘으아아악! 나한테 달라고!’

‘큭! 이… 미친 게…!’

‘크리스!’

‘아키!’

‘체이서’란 현실의 CCTV와 다를 게 없었다. 아킬라가 내 팔을 물어뜯고 마물로 변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겨있었다.

그다음엔 리헤로스와 테네브가 당하고, 내가 직접 아킬라를 찢어발기는 장면까지도 모두 빠짐없이 보여주었다. 그것을 같이 보고 있던 기사단원 중 몇은 참지 못하고 구토를 하기도 했다.

“멋진데, 아주 극적이야.”

“이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그래야지. 네깟 놈이 뭐라고 감히 변명해? 하, 마침내 네놈을….”

“윽… 단장님.”

테네브는 단원들의 부축을 받아 상반신만 가까스로 일으키며 칼리고를 향해 말을 던졌다.

“아닙니다…. 단장님, 그는….”

“하! 쌍으로 대변을 하고 난리군.”

“그게 아니라… 아크리스는 놈을 처치하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고군분투했습니다.”

“그래서?”

“…예?”

“착한 짓 조금 한 마족은 살려주자는 관용을 베풀라는 것인가?”

“…….”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세우지?”

팽팽한 긴장감만이 흘렀다. 칼리고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모험하며 보았던 마족들의 행태를 보면 그 누구도 테네브처럼 낙관적인 말은 하지 못할 것이라. 인간에게 있어 마족이란 ‘절대 악’의 존재, 그 이하가 아니었다.

“하아아, 테네브. 너는 너무 착해서 문제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미련하게 착해 빠져선 이런 부정한 반역자에게 휘말린 게 아니겠어. 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검은 속내를 품고 있는지 모르니 말이야.”

“단장님!”

“오호라? 테네브 델 드렉티오. 지금 마족을 감싸는 것인가?”

“물론… 그가 아킬라처럼 변절한 자라면 말이 다릅니다만, 그는 태생부터 인간을 돕고자 하는, 마족의 뿌리에서도 완전히 다른 자입니다.”

“아하하하하! 마족 뿌리에서도 완전히 다르다? 아킬라가 놈의 피를 마시고 변한 건 어찌 설명할 수 있지?”

“그전에도 아킬라는 죽은 기사단원의 껍질을 입고 있었습니다. 몸을 자유자재로 구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아크리스로 인한… 부정한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하, 변론은 끝났나? 그럼 어디 한번 확인해 볼까.”

칼리고는 나를 둘러싼 기사들을 밀어두고 축 늘어진 나의 왼팔을 덥석 잡아들었다.

“이봐, 거기 너. 감옥에서 사용하고 있는 실험 쥐 한 마리를 데려와.”

“알겠습니다! 단장님!”

단장의 말이어서일까 1분도 안 지나서 작은 철창에 가두어 놓은 회색 털을 가진 쥐 한 마리를 대령해 놓았다. 칼리고는 내 팔을 잡아당겨 철장 위에 두었다.

“놈의 피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똑똑히 보아라!”

칼리고는 짧은 단도를 품에서 꺼내더니 잡고 있던 팔에 수직으로 깊게 찔러 넣었다가 뺐다. 왼팔의 고통이기보다는 온몸에 난 상처가 벌어진 상태여서 근육이 움직이기만 해도 전신에 고통이 퍼져 신음이 자동으로 터져 나왔다.

“아아! 윽!”

“아키…!”

오늘은 다른 때보다도 출혈이 오래 지속된 상태였고, 체온이 급격하게 내려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오한이 온 것처럼 덜덜 떨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칼리고는 꾹 누르며 피를 더욱 짜냈다.

피는 철창 안으로 떨어지며 죽어버린 것인지 자는 건지 모를 쥐의 입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완전히 목 너머로 넘어갔을 때 즈음일까, 쥐는 크게 진동했다.

─덜컹, 덜컹

마르고 가느다란 몸은 부풀어 오르더니 털이 후두둑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홍빛의 맨살은 점점 울룩불룩하고 기괴한 형태로 변해버렸다. 이마에 가느다란 실선이 생기면서 눈이 하나 더 생기기도 했다.

“키에에에엑!”

“저, 저게 뭐야!”

“으윽… 정말 끔찍하군.”

“…….”

순식간에 기괴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작은 쥐를 보며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놀라는 것이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보게 된 것이라면 좋을 텐데, 전혀 좋은 쪽이 아니었기에 착잡하기만 했다.

“죽은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능력. 그것이 무얼 상징하는지 아나?”

“….”

“테네브. 내가 묻고 있지 않나.”

“잘… 모르겠습니다. 단장님.”

“내 오랜 친우를 위해 친히 알려주도록 하지. 기본적으로 마족과 인간은 다를 게 없다. 무슨 힘을 매개로 마법을 쓸 수 있느냐의 차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네, 그것은 알고 있습니다.”

“강한 인간의 피를 마신다고 강해지는 것을 본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피는 신체 능력을 비약적으로 증폭시켜주지. 네가 감싸주고 있는 괴물은 그냥 어쩌다가 인간 행세를 하게 된 착한 마족이 아니라 피에 강한 힘이 있다는 말이다. 마족 중에서도 아주 고위의 마족이라는 말이지.”

“…….”

“어떤 식으로 이용하든 악용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존재해선 안 될 존재’라는 것.”

“하, 하아….”

“이제 죽여도 좋다.”

기사들은 삼삼오오 둘러싸더니 창을 높게 들어 올렸다.

‘나를… 즉결 심판하려고?’

깜짝 놀라 몸을 피하려고 했는데, 칼리고가 등을 발로 밟고 있어 구부정한 상태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카랑!

─쩍

칼리고가 던진 지시는 다행히도 내가 아닌 철장 안의 마물에 향했다. 사방에서 꽂아 내린 창은 마물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어떠한 생명체라기보다 고기 조각이라고 말하는 게 가장 어울리는 살덩이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하며 여전히 꿈틀대고 있었다.

“이제 변명 시간은 끝났나?”

테네브도 더는 나를 변호해주지 못했다. 나도 더 감싸주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괜찮았고, 그로서는 최선이었을 것이다. 그보다도 리헤로스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걸까. 설마 벌써 소멸하여 버린 것인지 걱정되었다. 그의 쪽으로 고갤 돌리고 싶었건만 몸이 자유롭지 못했다.

“어딜 보는 거냐?”

칼리고는 내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렸다.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는데, 빗장뼈 위로 묵직한 돌덩이 같은 게 내려찍은 느낌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내 팔을 찍었던 단검이 그 위치에 꽂혀 있었다.

그것을 보기 직전까진 느끼지 못했던, 온몸이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이 퍼졌다.

“아… 아아악!”

“역시 이 정도로는 치명상까진 아닌가? 흥미롭군. 내가 예상한 대로야.”

“크, 으… 우윽….”

“아크리스는! 왕국 모두가 최후를 볼 수 있게끔 공개처형을 할 것이다.”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지쳐 고개를 힘없이 떨궜다. 죽지 않을 만큼 아슬아슬하게 괴롭히는 이 상황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삐이이 울리는 이명이 ‘아크리스’로서의 사망 선고가 내려온 것이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죽일 거면 차라리 빨리 죽여….’

이명이 완전히 가실 때 즈음이었을까, 섬유가 서로 마찰하고, 신발로 바닥을 주욱 끄는 소리로 유추되는 것이 가장 먼저 들렸다. 어떤 몸짓을 하다가 나오는 소음인지 파악할 겨를도 없었다. 몸이 바닥으로 나뒹굴게 되자 마침내 왼팔이 잘렸나 싶었다.

머지않아 양옆에서 나를 포박하게 된 기사들로 인해 팔은 여전히 붙어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

“…장님!”

“…으니 …으로 보내라.”

“…디 말씀이십니까?”

“멍청하긴, 내가 말하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지 않나.”

서서히 청각이 돌아왔고, 저들끼리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징벌의 뇌옥으로 보내라.”

“네, 넵! 알겠습니다!”

“피는 호스를 연결해. 죽지 않을 만큼만 뺄 수 있도록.”

양팔을 부축한 기사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리고 떠나온 곳에서 칼리고와 기사들이 리헤로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단장님, 용사는….”

“이제 용사는…….”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희미하게 들렸다. 발 울림과 기사들의 수군대는 소리에 완전히 묻혀버려 애가 탔다.

‘리헤로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인사라도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몇 번이고 울고 싶었지만, 오늘만큼 눈물이 절실한 적은 없었다. 발을 맞춰 걷던 기사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쯧, 이 녀석은 이제 죽은 목숨이군.”

“어쩔 수 없지. 그냥 마족도 아니고 마왕이라잖아. 지금 이놈이 쌩쌩하기만 했으면 우린 눈 깜짝할 사이에 사지 분해됐을 거라고…!”

“소름이 끼쳐. 그런데… 단장님은 마왕을 단숨에 제압하신 거야? 대단하셔.”

칼리고는 운이 좋았다. 지금의 난 능력을 잃은 반쪽인데다 탈진까지 한 상태여서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래도 칼리고는 선한 역이니, 내가 악인으로 끝나는 게 맞겠지.’

착잡했다. 나는 마왕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는데 억지로 떠맡은 상황에서 사람들의 멸시와 저주를 받으며 살아왔다.

불공평했다.

서러웠다.

원망스러웠다.

“그러게 조용히 마계에 처박혀 살 것이지 왜 단장님 눈에 얼쩡거려서는….”

“이놈이야 어차피 죽을 운명이지만, 용사가 문제지. 이놈이 마족인 걸 알고 도왔으면 똑같이 처형당할 텐데 뭐.”

흐린 의식을 붙잡고 듣는 그들의 대화는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결국 나 때문에 리헤로스가….’

“혹시 용사도… 마족인 거 아니야?”

“끔찍한 소리 마…!”

“크헤헤, 혹시 모르잖아. 아까 눈뜨자마자 단장님께 덤벼드는 거 봤어? 살벌하더라.”

“이러나저러나 좋게 넘어가긴 힘들 것 같더라. 쯧쯧.”

리헤로스가 눈을 떴었단 말인가. 언제부터였나 곱씹어보았다. 혹시 이명 때문에 뒤늦게 들은 소란, 그때였을까? 어떤 표정에 어떤 말을 했는지 아무것도 담지 못했다.

상상 속에서나마 그를 떠올리려고 했으나, 그것을 방해하는 건 그 누구도 아닌 본체 ‘아크리스’였다. 자기 말이 한 치 틀림없다는 듯 비웃는 얼굴.

그래, 역시 나는 리헤로스와 이어질 수 없는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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