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벤은 중문을 시끄럽게 부딪쳐 오는 마물을 보며 뒷걸음질 치고만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가 험한 일을 당해도 눈꺼풀 한번 깜짝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테네브는 아니었다.
“벤!”
“으, 으흐! 흐아아아!”
“벤! 정신 차려! 우리도 전력에 보탬이 될 테니까 풀어줘!”
“그, 그렇지만…!”
“도망치지 않을게. 상황이 종료되면 알아서 돌아올 테니까! 열어줘!”
“으…으으으… 난 몰라.”
벤이라는 기사 단원은 우물쭈물하더니 고민 끝에 우리가 갇힌 철장을 열어주었다. 테네브는 나가자마자 벤의 허리춤에 꽂혀있는 검을 빼앗아 들더니 중문을 뚫고 들어온 쥐 머리의 마물을 꿰뚫었다.
“끼에에에엑!”
“크리스! 벤을 데리고 나가!”
“아니야. 나도 도와야겠어.”
“…그럼 뒤를 부탁해.”
구석에 세워져 있는 경비병의 창을 집어 들었다. 그다지 좋은 자재로 만든 게 아닌 모양인지 기존에 사용했던 창들에 비해 묵직했다. 화려한 솜씨를 뽐낼 수는 없어도 견제용으로는 탁월했다.
─서걱
“끼이이이이!!”
“흐이이익…!”
눈앞에서 입을 쩍 벌리며 떨어지는 마물들을 보며 벤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칫 잘못해 그 녀석을 찔러버릴까 봐 그것이 더 불안했다.
“야, 기사단 놈! 너도 거들든가 아니면 방해 안 되게 저리 가 있어!”
“흐으으으!”
“감옥 안에 들어가 있던가!”
벤은 체면이고 뭐고 감옥으로 허둥지둥 걸어가 문을 닫아버린다. 한숨을 푹 쉬며 다리 사이로 들어오는 마물을 찔러 앞으로 던졌다.
─촤악!
저들끼리 나뒹굴고 있는 걸 테네브가 한꺼번에 베어냈다. 그런데도 악착같이 몸부림치며 이빨을 서로 딱딱 부딪쳐댔다.
“끝도 없네!”
“여기 있으면 우리가 갇히겠어.”
“그래.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신호하듯 끄덕였고, 곧바로 도약했다. 바닥이 안 보일 정도로 징그럽게 밀집한 마물들의 등을 밟으며 감옥 밖으로 나가는 데에 성공했다. 신발 밑창에 남은 물컹한 감각은 온몸을 소름 돋게 했다.
지하 감옥의 계단 위를 빠져나오고 나서도 안도의 한숨은 나오지 않았다.
“젠장….”
마물에게 뒤엉켜 몸부림치는 기사와 이미 갑옷 껍데기만 남은 경비병의 시신이 나뒹구는 등, 지옥이 따로 없었다.
“테네브! 뒤!”
우리를 먹잇감으로 생각이라도 하는지 끈질기게 따라온 마물 무리가 있었다.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수세에서는 너무 밀렸다. 하마터면 팔에 잇자국이 날 뻔한 걸 다른 기사단원이 재빨리 달려와 날려버렸다.
“테네브! 너희! 어떻게 나온 거야!?”
“오해하지 마. 힘을 보태러 나온 거야. 상황이 정리되면 옥 안으로 돌아갈 거니까 걱정 마.”
“에이씨… 단장님이 알면 경을 치신다고!”
“내가 책임질게.”
“마음대로 해!”
“단장님께 작전 지시는 내려왔어?”
“홀에 마물을 싹 모으는 거야. 그리고서는 알지?”
“응, 그걸 사용하실 모양이군… 알겠어. 아크리스, 마물을 홀에 몰자.”
대체 뭘 사용할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물어볼 경황조차 없으니 군말 없이 따랐다.
나와 테네브는 다른 구역에 있는 마물들을 끌어오기 위해 복도를 쭉 달려 나갔다. 어쩌다가 새벽부터 달밤에 체조하듯 달리고 있는지 황당했다.
‘그래도 테네브 혼자 보낼 순 없으니 어쩔 수 없지.’
그를 혼자 보낸다는 문장 자체가 마음이 쓰였다. 다른 글라디우스 기사단과 달라서일까 나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해서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그를 도와야겠다는 집념이 이곳까지 오게 했다.
─푹, 쯔억
비교적 밝은 곳에서 마물을 찔렀다 빼니 창 날에 묻은 혈색이 낯설어 보였다. 죽은 피 같은 느낌이라고 할지, 살아있는 날 것의 느낌이 아니었다.
“테네브, 이놈들 좀 이상한 것 같아.”
“너도 느꼈어? 산 놈들이 아니라 죽은 걸 부활 시킨 부두술인 것 같아.”
“그럼 누가 대체….”
말을 잇지 못했다. 점점 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만이 나오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쩌다가 마물이 수도의 감옥에서 나타나게 된 거지. 정말로 나 때문에 이것들이 나타나는 걸까?’
그렇다기엔 나는 지금 직업도 잃은 상태인데다 무언갈 소환할 수 있는 능력도 없어 무능력의 극치였다. 머리로는 아닐 거라 확신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찝찝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철커덩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크게 무리 지어 있는 마물들을 끌고 홀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했다. 우리가 몰고 온 무리까지 완전히 홀에 들어오고 나서야 두꺼운 철문이 일제히 닫혔다.
“모든 문을 봉쇄했다! 전열 유지해!”
“저쪽을 도와! 뭉치지 마!”
“크아아악!”
기사단원들은 저마다 지휘하거나, 도움을 청했다. 홀을 가득 채운 마물들은 분열해서 머릿수를 늘리기도 했고, 여러 번 분열 당해 더 이상 소생이 불가능한 놈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굳게 닫혀있던 정문 쪽에 커다란 소음이 시작되었다.
─쿵!
─쿵!
─쿵!
긴장되는 규칙적인 소리에 모두가 대치하면서도 정문 쪽을 바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쾅!!
굳게 닫혀있던 문은 산산이 조각났고, 실내가 흙먼지로 자욱해졌다. 부서진 철문이 있는 자리엔 파성퇴로 보이는 뾰족하고 두꺼운 나무 기둥이 보였다. 머지않아 그 옆에선 익숙하고 재수 없는 목소리가 들어왔다.
“아직도 처리 못 했나? 한심하군.”
“단장님!”
“이렇게 빨리 오시다니! 믿고 있었습니다!”
뿌연 먼지 속에서 칼리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는 장비를 바리바리 챙겨 들고 온 단원들이 따라붙었다. 우리는 칼리고의 눈에 띄지 않게 그와 멀찍이 떨어져 구석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제2사단! 풀뢰고르 장전!”
그의 호령에 2사단으로 추정되는 단원들이 들어오더니, 정체불명의 장비를 분주히 조립하기 시작했다. 대포인가 싶었는데 일반적인 대공포와 다르게 세로로 쌓는 형식이었다. 가장 마지막에는 중간의 레버를 당겨서 슬롯을 열었다. 그 안에 큰 통조림처럼 납작한 원통을 집어넣는데, 옆면이 투명해서 주홍색의 액체가 들어있는 게 보였다.
“후우… 안심해도 돼. 이제 마무리되겠군.”
“저게 뭐길래?”
“기사단에서 특수 제작한 섬광 폭탄이야.”
“정말 포였다니. 실내에서 포를 쏴도 괜찮은 거야?”
“응. 특수 마법으로 만들어진 거라 우리에겐 지장 없어.”
지장이 없다고 하면 현실의 섬광탄과 비슷한 용도일까, 행동을 통제하기 위한 상태 이상 무기? 저런 거로 제압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차피 스턴에 걸리고 나면 일일이 다 잡아야 할 텐데. 그럼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비효율적인 전투를 한다고? 차라리 빨리 처치하는 게 낫지.’
칼리고 눈에 띄기도 싫었고, 범죄자의 신분이니 괜히 그의 전략에 말을 얹었다가 형량이 늘어날까 두려워 끼어들지 않았다.
─즈으으으으이잉
장비의 중앙에 있는 기둥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한계점에 다다르자 멈췄고, 칼리고는 손짓했다. 포를 다루는 단원은 소리를 질렀다.
“발포!”
─콰아아아아앙!!
솟아있던 기둥은 쾅 내려앉았고, 굉음과 함께 장비의 옆면에서 빛의 파장이 빠르게 번져나갔다.
그때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위험해.’
이유인즉슨 그 폭탄의 충격파를 맞은 다른 인간들은 넘어지는 정도라 생명에 지장 없었지만, 마물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위험을 직감했다.
‘마물뿐만 아니라 마족의 피가 흐르는 나도 저것을 맞으면 무사하지 못한다.’
피는 더욱 차갑게 식는 것 같았고 이성은 마비되었다. 어떻게든 나를 숨길 무언가를 찾는 것에만 오로지 몰두하게 되었다. 뻣뻣하게 굳어있던 몸을 가까스로 움직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어떤 것도 내 몸만 한 가림막이 될 것은 없어 황급히 몸을 돌려 우리가 들어왔던 끝 쪽 문으로 향했다.
“아크리스! 어디 가는 거야! 이쪽이 안전해!”
테네브의 부름에도 대답하지 않고 문을 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아까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쪽에서 잠근 건지 모르겠다. 문의 고리를 잡아당기고, 발로도 차 보고, 잠금쇠를 팔꿈치로 내려쳐 보기도 했지만 꿈쩍 않았다.
“제발! 제발!”
“제1사단! 풀뢰고르 장전!”
칼리고의 호령에 기사단은 내 쪽에 훨씬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앞서 발포한 섬광 폭탄의 폭발파는 내 쪽까지 오지 않았지만, 두 번째 폭탄은 내가 자리한 곳까지 영향이 있을 게 뻔했다. 뾰족한 답이 없는 상태에서 생존 욕구는 나를 재촉하기만 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나를 쫓아온 테네브는 어깰 잡으며 물었다.
“왜 그러는 거야? 열면 안 돼. 마물들이 빠져나가 버리니까.”
그 마물이 나라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끔찍한 표정을 지을까. 그보다도 죽음의 공포에 맞닥뜨린 나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나가야 해.”
“뭐?”
“나는 나가야 해.”
“너 안색이 창백해. 무슨 일이야?”
“나가야….”
급기야 바닥에 주저앉아 웅크렸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크리스?”
─콰아아아아앙!
내 행동을 심상치 않게 보던 테네브는 순발력 있게 나를 감싸주었지만, 이어진 폭발파는 우리를 밀어 넘어트렸다. 함께 굴러 넘어져 버리자 테네브의 배려가 무색하게도 내 몸의 반쪽은 빛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사아아아
내 피부 위를 덮고 있는 천 조각들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섬유를 파고든 열기는 내 몸을 모두 불태우는 것만 같았다.
“아……!”
산 채로 불에 탄다면 이런 감각일까.
리헤로스의 칼에 찔렸던 것은 고통이라 말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반사적인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내가 보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눈에 담긴 것은 곧 폭발할 것처럼 균열이 생긴 나의 왼손이었다.
‘죽는다. 죽어간다.’
뚜렷하던 의식은 힘없이 꺼져갔다.
“아…리스! …!”
까마득한 어둠 속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