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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님 망겜에도 엔딩이 있나요-66화 (66/127)

66화

“게헤나의 생물이요?”

“응… 꼭 좀 찾았으면 하는데, 내 힘으로는 무리야. 너는 마족을 구분할 수 있는 마법도 부릴 수 있잖아.”

“글쎄요. 그건 말마따나 ‘구분법’이지 사라진 걸 찾아내는 방식은 아니라서요.”

“그래…… 그렇구나.”

“그쪽의 생물을 찾는 방법이라면 마족인 본인이 가장 잘 알 것 같은데요.”

“원래는 텔레파시로 서로 부를 수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보이질 않더니 대답이 돌아오지도 않아.”

“흐음….”

녹틸은 꽤 오랜 시간 골똘히 생각에 빠져있다가 꽉 물고 있던 입술을 움직였다.

“아크리스가 꽤나 절박해 보여서 긍정적인 이야길 해주고 싶지만, 어느 순간부터 안 보이고 소식이 끊겼다… 라는 건 별로 좋지 못한 소식일 거예요.”

“그럼….”

“아마 살아있을 확률이 낮다는 거죠.”

“…….”

“일단은 일하고 계세요. 방법이 있을지 찾아볼 테니까요.”

“응… 고마워.”

녹틸은 서재 밖으로 나갔고, 나는 다시 펜대를 쥐었지만, 도무지 일을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역시 페로는… 아니야 그럴 리 없어. 하지만…….’

제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았다가, 펜대를 손에서 굴리다가 떨어트리면서 안절부절못했다.

‘내가 독약을 먹고 오랜 시간 기절한 이후부터 보이지 않았잖아. 페로도 나의 일부라고 했으니 그 영향으로 잘못된 거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했지만, 최악의 상황만 펼쳐져 있었다. 책상에 머리를 기대고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녹틸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도통 보이지 않았고, 날이 어두워질 것만 같아 이만 일을 마무리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리헤로스가 맑은 미소로 맞이해주었고, 심란한 마음 때문인지 오전에 있던 낯 뜨거운 일은 까먹은 채였다.

“왔어? 고생했어.”

“으응. 고생은 뭘.”

“내일도 이 시간에 일 끝나?”

“아마도 그럴 것 같아.”

“그럼 내일 돌아오면 같이 가구 보러 가자.”

“그러지 뭐….”

“어떤 색으로 할지 고민은 해봤어?”

“어어… 검은색?”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긴 해도 페로 생각으로 정신은 저 멀리에 가 있었다. 내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고 생각했건만 리헤로스는 눈앞으로 손을 휘휘 흔들어댔다.

“괜찮아?”

“응?”

“일이 많이 피곤하면 사러 가는 건 미뤄도 돼.”

“아… 그거 때문은 아니야. 집도 다 지었는데 빨리 가구 들이고 가는 게 좋지.”

“알겠어. 너무 무리하지 마. 알지?”

리헤로스는 내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 주었다.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니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다정한 미소로 답해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민을 토로했다.

“리헤로스. 혹시… 네가 의지하던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다가 찾으면 어떨 것 같아?”

“아주 오랫동안?”

“응….”

“나는 고마울 것 같아.”

“정말?”

“얼마나 오래 지났든 나를 떠올려 준 거잖아. 나는 그것만으로 고마울 거야.”

“필요할 때만 찾는다고 생각되지 않아? 서운하지는 않고?”

“응, 전혀. 그동안 나를 떠올리지 못할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없었겠지. 내가 의지하던 사람이면 언제든 찾아주면 고마울 거야.”

그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눈꺼풀이 뜨거워졌지만, 역시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시린 눈가를 문지르는 것으로 울컥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렇구나… 페로도… 그랬으면 좋겠어.”

“페로? 그게 누군데?”

“마왕성에 있을 때, 유일한 친구야. 지금은… 사라져버렸어.”

“…그랬구나.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응….”

“나도 함께 도울게.”

“아니야. 괜찮아… 내가 방법을 먼저 찾아볼게.”

내 어깨에 얹혀있던 그의 손은 천천히 등을 감았고 곧이어 품에 안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내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 이야기해 줘.”

“……그럴게.”

단단한 가슴팍에 콧대가 뭉개질 정도로 꾹 파묻혔고 그의 체취는 꼭 따뜻한 햇볕의 따뜻한 향기를 품고 있어 초조하고 불안했던 마음이 안정되었다.

***

‘페로가 살아있다면 내가 찾길 바랄 거야. 지금은 엇갈려서 만나지 못한 것뿐이야.’

어제저녁, 리헤로스의 위로 덕인지 긍정적인 회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여부는 모르더라도 그리 생각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유익했다.

“크리스, 오늘도 일하러 가는 거 맞지?”

“응, 분량이 많진 않아서 며칠 내로 끝날 것 같아.”

“혹시 어제 정신없어서 못 들었을까 봐 다시 이야기하는 건데….”

“가구 말이지?”

“응. 같이 사러 갈 거지?”

“할당치만 끝나면 퇴근할 수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올게.”

“정말?”

빨리 온다는 말에 그의 얼굴은 밝아졌다. 어쩜 이리도 솔직한지 이 나이대에 같은 성별에선 나올 수 없는 순수함이었다. 그래서인지 리헤로스라는 존재가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리헤로스는… 비관적인 내 성격과 정반대라 어두운 생각을 멈추는 데에 도움이 돼.’

그가 수다스러운 성격은 아니지만 짧은 문장임에도 어느 하나 가볍거나 허투루 뱉는 말이 없었다. 다정한 말속에 나를 걱정하는 무게가 느껴지니 더욱이 위로되었다. 역시 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커졌다.

‘하아아…… 게임 캐릭터를 좋아한다니… 제정신이야?’

불쑥불쑥 찾아오는 유자현의 자아가 많이 흐려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이 세계에 막 떨어졌을 때만 해도 게임 속의 감수성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완전히 ‘아크리스’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싶었다.

제자리에서 멀거니 서 있으니 금발의 미남자가 눈을 끔벅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크리스?”

“아! 일 다녀올게. 쉬고 있어.”

“알겠어. 조심히 다녀와.”

그를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 오늘은 어제보다 훨씬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

“녹틸?”

서재에 들어섰는데 녹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앉을 자리에 갓 내린 찻잔이 보이는 걸 보니 내가 올 것은 예상하는 모양이었다.

‘덩그러니 놓인 찻잔에 별로 좋은 기억이 없는데.’

마군단장 이마고를 처치했을 때가 떠올랐다. 가장 불안하고 혼란에 빠졌던 리헤로스의 모습. 환시를 보는 그의 검에 꿰뚫렸던 어깨. 아직도 생생했다. 지금의 평화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반전을 주려면 지금까지의 여정이 사실 이마고가 보여주는 환시였다-겠지.’

의자에 앉아 찻잔에 손을 대려는 순간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알았어요?”

내 생각을 꿰뚫어 본 것 같은 대답이었다.

식은땀이 쏟아지는 것처럼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납게 뒤를 홱 돌았다.

“뭘 그렇게 놀라요? 아크리스 마시라고 둔 거 맞는데 어떻게 알았냐고요.”

“어…?”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녹틸이었다.

“들어요.”

“고작 그런 거 가지고… 의미심장하게 말하지 마.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무슨 상상을 하고 있었길래요?”

“그런 게 있어.”

“싱겁기는… 한잔 들고 시작해요. 집중력 향상에 좋은 차니까요.”

한시름 놓고 차를 음미했다. 아주 평범한 허브 차였다. 녹틸은 내 맞은편에 앉아 같은 찻잔을 들었다.

“참, 아크리스.”

“또 뭔데.”

“어제 부탁한 거 찾아봤어요.”

“뭐? 설마!”

찻잔을 소리 나게 내려놓고 녹틸의 말에 집중했다. 녹틸은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손바닥만 한 상자 같은 걸 책상에 올려 내 쪽으로 쭉 밀었다.

“마계 생물인 것을 감별하긴 어렵겠지만, 특정 생물을 찾을 수 있는 나침반이에요.”

“정말… 정말이야?”

“네, 그 생물의 머리카락이든 털이든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나침반 뒤에 넣으면 그것을 분석, 추적해서 방향을 가르쳐 주거든요.”

“믿고 있었다! 진짜 고마워!”

“케케묵은 창고를 뒤져봤을 뿐이니까요. 아주 오래전에 썼던 거라 잘 작동할는지도 모르니 너무 고마워 마세요.”

“너도 은근히 솔직하지 못하네. 하여튼 진짜 진짜 정말 정말 고마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자를 소중하게 꼭 집어 들었다.

‘페로를 찾을 수 있게 됐어.’

곧장 사용해 보러 나가기 위해 서재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녹틸이 불러 세운다.

“잠깐만요 아크리스.”

“응?”

“오늘 할당량은 하고 가는 거죠?”

“아…….”

“부탁은 부탁대로 하면서 너무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거 원, 누가 갑인지.”

“아, 알았어… 하고 갈게.”

“몇 시에 퇴근하든 상관없으니 일만 제대로 해주세요.”

“알았대도!”

쉬지 않고 또박또박 꽂히는 그의 잔소리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지만 피로함이 덜했다.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고, 오늘의 할당치만 끝나면 페로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시간째 종잇장을 붙들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녹틸이 표시한 장수까지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까지 맞지?”

“손 빠르시네요. 대충 한 건 아니죠?”

“나 완벽주의자 거든? 한번 시작한 건 대충 안 해.”

“좋아요. 믿을게요. 내일도 부탁해요.”

“응! 이거… 정말 고마워.”

“별말씀을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멀리는 안 나갈게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저택 밖을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그와 동시에 작은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았는데, 나무로 깎은 나침반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예전에 내 품에서 떨어졌던 페로의 털이 있었지.’

가방에서 페로의 잿빛 털을 꺼내 상자 뒤쪽의 작은 캡슐 모양에 넣어 닫았다.

─또깍

캡슐이 맞물림과 동시에 나침반 안의 침이 뱅그르르 돌더니 어느 방향을 꼿꼿이 가리키기 시작했다.

“페로! 살아있는 거 맞지?!”

벅차오른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희망의 이정표를 따라 쉬지 않고 발을 움직였다.

얼마나 걸어왔을까, 내 위치를 가늠하기 위해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도심의 빛은 온데간데없었고, 오로지 저무는 노을만이 숲을 비추고 있었다. 중천에 떠 있던 태양이 언제 저물고 있는지도 모르게 나침반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나 보다.

‘다리 아픈 것도 모르고 이렇게 멀리 왔다고?’

어느 인적조차 찾을 수 없는 오지에 도착해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흔적을 추측해 보자면, 예전에는 길을 뚫었던 곳 같은데 사람이 왕래가 없어진 지 오래된 모양인지 수풀이 듬성듬성 자라있었다.

‘여기에서 침이 흔들거리는데, 가까이에 있는 걸까?’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정확한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페로라면 겁에 질려 나무 위에 숨어있을 수도 있었기에 사방을 샅샅이 살펴야 했다.

─부스럭

“페로?!”

기척이 나는 방향으로 황급히 몸을 돌렸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녀석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데, 기대완 달리 페로라고 볼 수 없는 거대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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