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댕그랑
고통 속에 근육을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 단검을 손에서 놓친다.
“악…! 크윽…! 하아… 하….”
“크리스!!”
“이… 바보가! 이 사람은 마을 주민이잖아!”
“그럴 리가, 분명히 군단장인데.”
리헤로스는 내 어깨에 박혔던 칼을 거두었지만, 마을 주민을 향한 경계를 풀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물러서면 찌를 듯한 저돌적인 태도였다. 검을 굳게 쥔 손을 내어줄 것 같지 않으니 양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자! 봐봐. 아직도 군단장으로 보여?”
“…….”
“어떻게 보이냐니까!”
“내가… 무슨 짓을….”
“이 바보 멍청잇… 크윽… 아…! 하아….”
“상처가!”
환각이 풀리기 전에는 상처가 눈에 들지 않을 정도로 환시가 심했던 것 같다. 뒤늦게 나의 상처를 발견한 리헤로스는 아연실색했다.
‘미친… 다른 몬스터에게 입었던 상처는 가소로울 정도로 아픈데…. 살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고통은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시켜주는 장치였다. 이렇게 아픈데 꿈일 리가 없다. 과감하게 환부를 지혈할 생각은 못 하고 피가 흐르는 것을 막듯이 손을 대고만 있으니 금세 손과 팔뚝은 붉은 피로 축축해졌다. 리헤로스의 표정은 거의 울 것처럼 변했다.
“크리스… 미안해… 미안해….”
“…너 환각 속에서 나는 알아볼 수 있는 거, 맞지.”
“나한테 중요한 건 네가 심하게 다쳤다는 거야. 심지어 널 다치게 한 게… 나라는 사실이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더 깊게 생각하지 마. 내 질문에 답이나 해. 맞아, 아니야?”
“……그건 맞아. 너만은 선명하게 보여.”
내가 마족이라서 환각술에 안 통하는 건 아닐 것이다. 그 논리라면 용사 솔로 플레이는 불가능에 가깝고, 마왕이나 마족과 친해져야만 던전을 깰 수 있다는 소리 아닌가. 프렉탈 놈들 스타일에 절대 그럴 리 없었다.
‘이마고가 자신이 이끄는 군단도 환각에 취한다고도 했지.’
분명히 이 던전을 들어오기 전에 파훼할 수 있는 힌트나 보상을 주었을 것이다.
‘설마 망할 칼리고 때문에 퀘스트를 지나온 건 아니겠지.’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려서일까? 일순간 익숙해지던 팔의 통증이 찌릿해져 몸이 휘청댔다. 옷 앞섶에서 하얀 물체가 툭 튀어나오더니 무게추처럼 천천히 흔들렸다.
“목걸이….”
“미치겠다…. 상처 만지지 말고 가만히 있어. 출혈이 심해! 지혈해야겠어.”
“그래. 목걸이 때문인 것 같아!”
“목걸이…? 목걸이가 왜?”
“나 홀로 환각을 보지 않는 이유이자, 네가 날 제대로 볼 수 있는 이유. 이… 목걸이 덕분이었던 거야.”
─띠링
[시스템]
‘하울라이트 조각 목걸이’의 상세 정보가 해금되었습니다.
[아이템]
하울라이트 조각 목걸이
- 부정적인 기운을 흡수하고 정신을 가다듬게 해주는 원석. 목걸이로 만들어 휴대에 용이하다.
맞췄다. 본래 리헤로스가 받아야 했을 보상인데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그가 그 마을에서 워낙 경계한 탓에 화기애애하게 보상을 받을 겨를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하, 하하… 내 말이 맞지?”
“크리스! 지혈해야 한대도! 제발!”
그는 참다못해 목소리를 높인다. 더디더라도 어차피 아물 상처를 지혈하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실랑이하고 있다간 이마고가 마을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갈지도 모른다.
“이거, 네가 매는 게 좋겠어. 어차피 난 놈을 죽이지도 못하고… 여기에 있는 수밖에 없는 것 같으니까.”
“너 진짜 이럴 거야?”
“제발… 더 묻지 말고 받아. 그리고 난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을 해. 지혈 정돈 혼자, 으큭… 할 수 있어.”
목걸이를 힘껏 잡아당겨 끊었고, 리헤로스의 목에 묶어주기 위해 팔을 뻗었다. 팔을 타고 흐르는 피는 그의 옷 위에 떨어져 번져갔다. 힘을 주니 어깨의 통증이 점점 심해져 괴롭긴 했지만, 이 악물고 그의 목에 걸어주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목에서 빛나는 흰 원석은 더욱 빛을 발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걸로 됐어.’
리헤로스 입장에서 의문투성이인 이 상황들을 설명해 줄 여유도 없을뿐더러, 리헤로스와 싸우게 되면 백 퍼센트 확률로 죽는다는 공포감이 몰려와 두려웠다.
‘이렇게 아픈데, 또 칼을 맞으라고?’
그가 자리를 뜨면 도망칠까 생각도 했다.
“이제 가.”
“…….”
“가라니까!”
“…돌아왔을 때. 얼굴 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거지?”
“…….”
“기다려줘.”
어떤 말도 내뱉기 버거웠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배당해있던 내 생각을 꿰뚫어 본 것 같았다. 그는 미련으로 가득 찬 시선을 잔뜩 남기고서 가까스로 발을 떼었다.
“갔지…?”
아득히 멀어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옷을 찢어서 검에 찔린 상처를 보았다. 확실히 여태껏 봐온 다른 상처에 비해 더디게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소위 말해서 회복되지 못하게끔 어떤 힘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었다.
“으읏… 큭, 아악… 아파…! 저 검으로 죽음에 이르는 일격을 맞으면 얼마나 더 아픈 거야….”
27살 인생을 살면서 살이 찢긴 고통이라 하면 날카로운 종이에 베인 정도가 최대치였다. 진짜 칼에 맞은 건 표현 못 할 고통에 가까웠다. 번번이 마왕의 최후에 대해 생각을 해왔건만 막상 피부에 와닿으니 두려웠다.
‘무서워… 정말 내가 죽지 않으면 엔딩을 볼 수 없나?’
어째서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건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았다. 내 생에 어떤 원한을 사서 이렇게 됐는지 돌이켜보다가 그만두었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낯선 곳에 소환되어 죽임을 당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른 건 없었다.
‘오히려 이쪽으로 데려오고 싶은 놈이 있다면 모를까.’
로브를 북 찢어 팔을 묶었다.
“으긋…! 후욱, 후….”
어른스럽게 참고 싶어도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잇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무사히
‘맘 같아선 도망가고 싶지만…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아.’
어차피 그와 할 이야기는 정해져 있고, 내 대답도 정해져 있다. 그냥 사라져버려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진 않겠지만, 늘 회피하고 살았던 내 행동 방식을 바꿔보고자 마주 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도 많이 바뀌었나… 리헤로스와 있어서?’
─대앵
점점 초탈한 기분에 가까워졌고 그간 쌓여온 불안과 걱정은 점점 증발했다. 계속해서 종소리를 쫓아 발걸음을 옮겼다.
─카앙!
서로 다른 재질의 금속이 맞부딪혀 제각기 소음을 만들어낸다.
“흐에, 헤! 어떻게 나를 찾았지!”
“그것이 궁금한가?”
“저, 저건 하울라이트 목걸이?”
“이것이 바로, 크리스의 의지다.”
“주인님이…? 그, 그럴 리가!”
─카드드득, 쨍!
이마고가 쥐고 있던 금속 스틱이 리헤로스의 검에 쓸리자 힘없이 회전하며 바닥에 떨어져 버린다. 그런데 어쩐지 이마고는 어떤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고 이제 막 도착한 내 쪽을 보고 있었다.
“그게 사실인가요? 저를 제거하기 위해 용사에게 선물을 주신 게?”
“…….”
“제 온몸을 꿰뚫으실 때도 주인님을 믿었는데, …그것이 주인님의 진심이었나요?”
이상했다. 가슴속이 토할 것 같이 울렁거렸다. 이마고의 말이 흉금을 휘젓는 것만 같았다.
“왜죠?”
“…….”
“왜, 왜 저를 버리신 건가요? 제가 다른 마족과 달리 약해서…?”
“이래야 끝나……. 그래서 그런 것뿐이야.”
“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해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뜻이야. 이렇게 되어야 해.”
“으…으으윽….”
이마고는 머리를 감싸고 괴로운 듯 몸부림을 쳤다.
“크이잇… 키으윽, 모르겠어….”
“그만 포기해…. 이제 끝났어.”
“몰라, 몰라… 모르겠다고!! 알아듣게 설명해 봐!!”
날카롭게 포효하는 놈의 머리에서 뿔이 돋아나고 짐승처럼 주둥이가 길게 벌어졌다. 등뼈가 살갗을 뚫고 나와 구부정해져 인간의 형태가 아닌 크리처 그 자체였다.
울부짖는 이마고는 푸르고 매캐한 마기를 뿜어냈다. 그것은 인근의 생명감이 넘치는 식물들을 모두 시들게 만드는 지독한 기운이었다.
─쩌적
“목걸이가…!”
하울라이트 원석이 갈라지고 있었다. 저 목걸이가 부서지면 상대하기 까다로워질 수 있다. 리헤로스도 눈치챘는지 검을 세워 들었다.
“싫어어어어!!”
이마고는 검고 날카로운 손톱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주변의 울타리와 나무들이 부서져 쓰려진다. 놈은 리헤로스가 아닌 내 쪽으로 달려들어 몸을 낚아챈다. 분노로 점철된 손짓에 상처가 짓이겨져 고통스러웠다.
“큭…!”
“싫어!! 싫어!! 싫어!!”
기괴하게 갈라지는 목소리에는 울분이 느껴졌다. 비스크라 때에도 그랬었다. 왜 일면식도 없는 마군의 울화에 가슴 한쪽이 아팠는지, 죄책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떠오른 것은─
‘그래… 비스크라나 이마고는… 칼리고에게 배신당한 아킬라와 같은 입장 아닌가.’
리헤로스의 성장 구조에 필요해서 이용하고 버리는 나는, 칼리고와 다를 바 없는 최악의 인물이다.
인간의 형태에 가깝지 않다고 해서, 악역으로 설계되었다 해서 그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게임이고 이들은 게임 속 AI, 그저 데이터일 뿐이니까 괜찮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나 홀로 선역인 척 정체를 숨기고 있던 게 비겁하게 느껴졌다.
‘마왕의 역할인 내가, 누구보다 나서서 악역을 자처했어야 했어. 그래서 내가 벌을 받는 걸까.’
놈은 나를 쥐고 있는 손을 번쩍 들어 내던지려 했다. 그래봐야 골절 정도일 테니 눈을 질끈 감았다. 화풀이는 충분히 받아 줄 생각이었다.
─꽈드드득
─촤아아아악!
“키에에에엑!”
가슴 정중앙을 꿰뚫은 리헤로스의 금빛 검기는 빗장뼈 바깥쪽으로 호선을 그리며 베어 나갔다. 힘없이 손에서 빠져나와 떨어졌고, 이마고의 몸에서부터 분수처럼 뿜어지는 붉은 선혈은 비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지면을 흔들듯 큰 굉음을 내며 몸통이 쓰러진다.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어떻게든 쉬어보려는 듯 입을 벌리지만, 가슴이 오르내릴 때마다 핏덩이를 울컥울컥 토해낸다.
“그륽, 주인님…… 주… 인님…….”
‘자현아.’
“미워요… 주인…님, 아파요….”
‘많은 거 안 바라. 그저 건강하고 착하게만 자라라.’
“저는 실패작인가요…….’
‘그게 아빠 소원.’
“아버지… 아파……요.”
이마고의 말 사이사이로 아주 까마득히 어린 시절, 잊힌 줄로만 알았던 아빠의 목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내가 칼리고를 욕할 자격이 있어?’
모두를 위한 좋은 결말로 가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현실의 나, ‘유자현’만을 위한 결말이었다.
‘그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지 않았으면, 그냥 나 홀로 목을 내놓았으면… 이렇게 많은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됐는데!’
감정의 파도는 이미 통제할 수가 없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검에 베인 것과 맞먹는 고통이 몰려왔다. 무릎을 꿇고 숨을 꺽꺽 힘겹게 쉬다가 괴성을 질렀다.
“으아아…… 아아아악…!!”
“크리스…!”
“아아아… 흐으윽… 아아아…!!”
눈물이라도 흘리면 이 고통이 덜어질 것 같았는데 흐느끼는 소리를 내도 도무지 눈물이 나지 않았다. 가슴만 쥐어뜯으며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의식은 있는 채로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았다.
불에 태워지는 것 같았다.
살가죽을 벗겨내는 것 같았다.
“아, 아으윽…! 괴로워…! 괴로워!! 어떻게… 해줘!”
─쿵
‘최후의 날이 도래했다.’
─쿵
‘나의 피조물 마왕이여.’
그래 이제 모든 게 끝났다. 내 소임을 다할 때가 왔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오자 나를 산 채로 찢는 것 같은 고통도, 두려움도 멎어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돌던 피가 그 어느 때보다 차가워져 들끓던 머릿속이 잠재워진다.
“크리스, 괜찮아?!”
“하… 하하하….”
“…….”
“그래… 나는.”
몸을 천천히 일으키자 푸른 불꽃이 온몸을 감쌌다. 그 불꽃은 낡은 로브와 옷가지를 모두 불태웠고. 이곳에 내려왔을 때 입고 있던 검푸른 의상으로 변했다.
몸을 돌려 리헤로스를 마주했다. 그를 보니 다른 결의 고통이 밀려왔지만, 끝내 말을 이을 수 있었다.
“나는 게헤나의 왕. 아크리스다.”
─띵
[!][긴급 퀘스트]
개벽 - 마왕 아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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