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아요.”
우리는 하녀 복을 입은 한 여성을 드레스룸으로 초대했다. 문밖에서 머뭇대던 발끝은 끝내 방 안으로 들어섰고, 문은 천천히 닫혔다.
“사라진 목걸이는 이 드레스룸을 드나들었던 세 명 중 한 명이 가져간 것을 전제로 추리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당신이었고요.”
여성은 떨리는 몸을 가누기도 힘든 것으로 보였지만 가까스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신의 진술은 일관성이 없어요.”
“네?!”
“분명 ‘계단에 깔린 카펫에 걸려 넘어졌다.’라고 했는데 우리가 추궁을 시작하니 ‘치마에 걸려 넘어졌다’라고 바꾸었죠.”
“그렇게 넘어지기도 했고 저렇게 넘어지기도 했다는 건데…!”
“거기다 우리조차 잘 알지 못했던 목걸이의 특정성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죠. 본 적이 없다면 우리가 어떤 걸 찾는지 감도 못 잡았을 텐데 말이죠.”
“으… 으읏.”
“결정적으로 목걸이 진열대가 오른쪽으로 넘어졌다는 것. 범인이 왼손잡이라는 증거입니다.”
“히, 히이….”
오른손을 비틀어 빨래를 짜던 콜린.
오른손으로 빨랫감을 고르던 티니.
왼손으로 마대를 쥔─
“멜다.”
“거, 거짓말하려던 건 아니에요! 용서해 주세요!”
멜다는 추리 만화에서 보는 범인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추리에 대한 트집을 잡지 않고 순순히 본인이 저지른 짓을 털어놓았다. 추리 게임이 아니라 RPG 게임이니 난도가 낮은 거겠지.
“진정해요. 멜다한테 해코지하려는 건 아니니까.”
“목걸이는 어디에 있죠? 그것만 있으면 큰 소란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 그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혹여 멜다가 도망갈까 걱정되어 따라가려 했지만, 리헤로스는 나를 붙잡았다.
“돌아올 거야.”
머지않아 그의 말대로 멜다는 드레스룸으로 돌아왔고 여러 가지 부드러운 천에 싸인 목걸이 알알들이 드러났다.
“헐… 이렇게 산산이 조각났다고?”
“흐으윽… 체인을 걸 곳도 없고, 접착제로 이어 붙이려고 해도 도무지 붙질 않아서… 너, 너무 무서워서…. 도와주세요….”
“멜다.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예, 예에?”
“이걸 보세요.”
리헤로스는 목걸이의 가장 큰 알을 들어 어떤 알에 가져다 댄다.
─딱!
목걸이의 큰 알에 작은 알이 딸려가듯 붙어버린다.
“어?”
“어, 어떻게 하신 거죠?!”
“이건 자철석으로 만든 목걸이에요. 이 홈 사이의 자기력이 가장 강해서 상반된 극이 닿으면 붙죠. 아마 멜다는 같은 극을 붙이려고 해서 알이 붙지 않고 밀어냈을 거예요.”
“그건 어떻게 알았어?”
“음, 산산조각이 난 것치고 알을 엮을 체인이 보이지도 않고 깔끔하게 떨어졌잖아. 게다가 홈끼리 맞물리게끔 되어있어서 추측해 봤어. 그리고…”
“그리고? 빨리 말해. 현기증 나니까.”
“이국에서 들여온 특수한 목걸이라고 하니까, 그곳의 특산물인 자석과 관련되지 않을까 싶었어.”
그러고 보니 이국을 특징짓는 모란, 자석… 모두 한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이국’이란 건 현대의 동북아시아의 컨셉인 모양이다.
‘한정적인 정보로 목걸이의 특성까지 추리했다니… 대단한데.’
진성 사기캐였다. 이 남자는 부족한 게 무엇인가? 이 정도면 인간미가 없을 지경으로 잘 났다.
“흐, 흐아아… 리헤로스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별말씀을요. 혼자 끙끙 앓느라 얼마나 힘드셨어요.”
“흑…. 제가 매일 덜렁대니까… 이번 일로 정말 잘려버릴까 봐 무서워서 그만…. 그리고 애들도 저를 무시하니까… 멍청하다고 손가락질할까 봐….”
“지금이라도 원래 자리에 돌려놓았으니 괜찮아요. 그리고 멜다는 훔치려고 한 게 아니라 원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잖아요.”
“그래도 웰라는 꽤 곤혹스러웠던 것 같으니까 사과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 주면 좋겠지만… 멜다 괜찮겠어요?”
멜다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을 한 채 끄덕였다.
“혼자 가기 무서우면 같이 가드릴 테니까요.”
“아니에요…. 제가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니까요…. 저, 정말 신세 많이 졌습니다….”
멜다는 90도 각도로 연신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는 드레스룸을 빠져나갔다. 새로운 진열대 위에서 영롱히 빛을 내는 목걸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혹시라도 추리한 게 틀렸을까 봐 긴장했어.”
“뭐? 그렇게 또박또박 잘 말해놓고.”
“아하하, 잘했어?”
“……그래그래. 잘했다!”
리헤로스의 머리로 손을 뻗어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부스스하니 까치집이 된 그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해사하게 미소 짓는다.
‘강아지 같아.’
무의식적으로 그의 머리로 다시 손을 뻗어 머리칼을 정리해 주었다. 그는 순종하는 모양새로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내 손길을 받고만 있었다. 자는 리헤로스의 얼굴을 만졌던 감촉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손끝이 떨렸다.
“으아아! 목걸이 찾았다면서요!”
“깜짝아!”
“살았다! 진짜 감사합니다! 하아아… 크레아누스시여…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웰라, 정말 다행이에요.”
“흐흐흐 정말요!”
“앞으로 웬만하면 동료들 약 올리지 말고, 착하게 살아라.”
“아, 알았어요…. 참, 백작님이 두 분 찾으셔요.”
“올 게 왔구나. 사교모임 참석 여부.”
“응, 어떻게 답변드릴까?”
원래는 빨리 스토리를 진행하게 해서 엔딩을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지금은 미련하게도 그와 마지막으로 평화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난 가보고 싶어. 너는?”
“너랑 가는 거라면 난 좋아.”
“그게 네 의견이야 아니면 내가 간다니까 그냥 따라가는 거야?”
“음… 내 의견 맞는데.”
“하여튼 김새게 만들어요.”
리헤로스의 등을 떠밀어서 앞장세웠다. 백작의 집무실까지 가서 의사를 전달했다. 스피나는 당연하게도 우리의 결정을 매우 반겼고, 곧바로 재단사를 불러 우린 이런저런 천을 몸에 대보고 걸치며 남은 하루를 모두 소진했다.
‘피곤해… 체감상 쇼핑몰 다섯 시간은 돌다 온 것 같다.’
이날은 리헤로스나 나나 잠들기 전에 잡담 한 문장도 나누지 못하고 기절 잠을 잤다.
***
“두 분은 뒤의 마차에 탑승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거요.”
“백작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돌발 퀘스트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했는데, 이게 돌발 퀘스트 보상인 것 같다. 작은 상자를 열자 붉은색 반지가 꽂혀있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린 스피나의 검지에도 같은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예쁘죠? 우리의 우정을 위해 맞춰봤어요.”
“와아. 예쁘네요. 꽤 값이 나가 보이는데 받아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옷도 맞춰주셨는데.”
“후후, 괜찮아요. 이것도 일종의 투자니까요. 받아주세요.”
“감사합니다. 백작님,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리헤로스, 아크리스. 그럼 목적지에 도착해서 봐요.”
“평안한 여행길 되시길 바랍니다. 목적지에서 뵙겠습니다.”
우리는 백작의 마차 뒤에 마련된 조금 작은 마차에 몸을 실었다. 자리를 잡고 나서 각각 상자에서 반지를 뽑아 검지에 끼웠다.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케 하는 붉은색의 보석이었다.
“이거….”
“예쁘다. 그렇지.”
“나중에 여차하면 비상금으로 쓸 수 있겠는데.”
“크리스…!”
“농담이야.”
우리의 대화가 들리는 모양인지 마차 밖의 마부는 헛기침해댄다. 꽤 오랜 시간 달려 해가 질 때 즈음 다른 백작가의 저택에 도착했다. 산중에 있어 불빛이라곤 저택뿐이었음에도 대낮처럼 밝혀져 있어 눈부셨다.
“이드랑제 백작저와는 다른 느낌으로 화려하네.”
“그러게. 멋지다.”
디즈X 프린세스 장르에서 볼법한 무도회라기보단 말 그대로 규모가 큰 사교 모임이었다. 스피나는 우리를 데리고 와서 트로피처럼 자랑할 것인 양 말했지만, 여기저기 이드랑제 백작가에 잘 보이기 위해 줄 선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했는데 다행이야. 이 모임의 주인공은 역시 백작님이지.”
“그니까. 맛있는 거나 많이 먹고 가자. 언제 이렇게 샴페인을 무한정 마실 수 있겠어.”
“그럼 짠할까?”
“짠!”
맞부딪히자 청명한 소리를 내는 글라스는 한껏 분위기를 들뜨게 했다. 그를 끌고 다니면서 먹고 마시다가 그를 알아본 유명 인사─라고 하지만 누군지는 모른다─와 인사를 나누며 사교 모임의 밤이 깊어만 갔다.
‘이 일정이 끝나면 평화도 끝이겠지.’
녹틸의 주류창고에서는 열병을 족히 마셔도 취하지 않았는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정말 그와 싸워야 하는 날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일까? 그에게 못다 한 말을 해야겠단 용기가 생겼다.
“리헤로스.”
“응?”
“…미안해.”
“어? 갑자기 왜 사과를 해?”
“평소에 툭하면 화내고, 네탓 하고… 나란 인간이 왜 이렇게 비뚤어졌는지 잘 모르겠어.”
“…….”
“인성 파탄자랑 다니느라 힘들었지? 내가 봐도 미X놈 같아.”
“난 괜찮아.”
괜찮다는 말. 그것이 내 양심을 더 아프게 만든다.
“또 익숙해질 테니 괜찮다는 얘기할 거면….”
“그게 네 진심이 아닌 걸 알아.”
“…….”
“내가 널 보호하고 싶은 것처럼 너도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걸… 그냥 표현이 서툴러서 그런 것 알아.”
“서, 서툴….”
또 습관처럼 받아치려다가 꾹 삼켰다. 서투른 게 맞긴 하다. 감정 표현의 깊이가 얕기에 고작 화내거나 웃는 것이 전부인, 사회화된다만 애어른이지 않나.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크리스.”
일순간 이성을 내던지고 그를 끌어안고 싶어질 정도로 벅차올랐다. 살면서 내가 갖은 투정 부려도 괜찮다고 말해준 사람이 있었나? 오히려 이른 나이에 뛰어들게 된 사회는 내가 빨리 철들도록, 회의적으로 변하도록 만들었다. 그가 해준 말들은 외계의 언어를 듣는 것 같은 감상을 주었다.
“이상해. 나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응?”
“그렇잖아. 좋은 얘기만 들으면서 살기에도 부족하고 네 몸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날 보호할 필욘 없는 건데.”
“이거랑 비슷한 얘기를… 언제 한 번 얘기해 주지 않았어?”
“기억 안 나는데.”
“일단, 너는 말은 거칠어도 이유 없이 화내지 않아. 상대가 너를 존중하면 너도 똑같이 존중해 주지.”
“…갑자기 분석을 해.”
“처음 이곳에 온 이래로 의지할 곳 없는 나에게 너는… 존재만으로 안정되었어. 네가 관철하는 정의의 기준도 나와 비슷했고, 같은 것에 분노하잖아. 그런 점이 편하기도 했지.”
“알았어… 그만….”
사사로운 부분까지 관찰하고 있단 사실이 미칠 듯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심지어 난 그가 말하는 대로 정의로운 사람이 아닌데, 이런 말을 듣고 있어도 되는가에 대한 추가 죄의식이 생기기 직전이었다.
“내 문제라고 여겼던 우유부단한 성격을 너로 인해 많이 바꿀 수 있지 않았나 싶어.”
“…….”
“그래서 너에게 많이 의지하고 또… 필요해.”
“필요하다… 라.”
“크리스,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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