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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님 망겜에도 엔딩이 있나요-13화 (13/127)

13화

─쾅!

붕 휘두른 비스크라의 꼬리가 지면을 내려친다.

반동으로 거대한 바위 조각이 튀어 오르면서 리헤로스의 몸에 부딪혔다.

“크윽…!”

갖은 방해에도 금세 자세를 고쳐잡고는 달려들어 몸통에 검을 찌른다.

비늘에 검날이 조금 박히는가 싶더니 파고들진 못한다.

얕게 박힌 검을 툭 뽑아내고는 뒤로 물러났다.

“흐후후… 간지럽다.”

그에게로 시선이 쏠린 사이 화살 다섯 개를 한꺼번에 쏘았다.

주방장 브라가에게 잘 먹혔던 공격이었기에 비스크라에게도 먹히길 바랐다.

하지만 그마저도 단단한 비늘에 튕겨 힘없이 후두둑 떨어진다. 어이없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젠장, 고작 튜토리얼 지역 보스 주제에… 왜 이리 단단해?”

비스크라를 중심으로 나와 반대편에 있는 리헤로스는 듣지 못한 것 같지만, 비스크라는 용케 듣고선 목을 긁는듯한 낮은 목소리를 냈다.

“탈피라는 걸 아십니까?”

“뭐?”

“더 크고 강한 몸을 얻기 위해 껍질을 벗어내죠.”

“그런 거였군.”

“크크큭, 주인이 절 이렇게 만드신 겁니다. 저 비스크라야말로 완전한 피조물이지요.”

주인이라, 나를 말하는 거겠지? 과거의 마왕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잠에 빠진 지 모르겠다.

문득 서비스 종료하던 날, 프렉탈 소프트가 올린 마지막 공지를 떠올렸다.

‘권장 전투력에 맞지 않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를 가진 보스 <비스크라>’

뱀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강화까지 한다니 까다롭다.

그래봤자 데이터 쪼가리다. 반드시 솟아날 구멍은 있을 것이다.

유효타 고민을 하던 중 비스크라는 세 번 꼬리를 연속으로 찌르는 움직임을 한 후, 입을 쩍 벌리더니 보라색 토사물 같은 것을 사방에 뿌려댔다.

“크리스! 독 웅덩이 조심해!”

“알았어. 걱정 마.”

그 ‘독 웅덩이’라 불리는 건 비스크라의 기본 스킬로, 이 던전 공략의 주 요소였다. 주기적으로 바닥에 장판을 깔아 플레이어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데 그 한정된 공간 안에서 비스크라를 쓰러트려야 한다.

사실 이미 장판은 한참 전부터 밟았지만, 이 정도의 독 대미지는 나에게 치명적이지 않았다. 현실에 있을 당시 직접 플레이해 보진 못했지만, 유저들의 트라이 영상을 떠올리기로는 비스크라의 독은 총 5중첩까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2중첩부터 1틱 대미지가 x 2배 되고 최대 중첩인 5중첩은 대미지 x5 배가 들어오는 구조였다.

[잡담] 야 미친 이걸 깨라고 만든 거냐?

[잡담] 비스크라 독 4 중첩 되면 포션도 못 먹고 뒈짖하는데 어떻게 깨나요ㅠ

[잡담] 던전 클리어해도 던전 밖으로 안 나가면 독 디버프 안 풀려서 뒤짐ㅋ 그리고 던전 실패ㅅㄱ.

[잡담] 리트라이 했는데 보스 더 쎄진 것 같지 않음? 개노답;

이런 글들이 난무했었다.

‘나보단… 리헤로스가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그의 머리 위에 보라색 거품 모양 아이콘과 x2 문구가 떠 있었다.

2중첩인 지금은 버틸 만한 것 같지만, 4중첩 부터는 hp 빠지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카랑

신경이 곤두설 정도의 높은 금속음.

눈으로 좇기 벅찰 정도로 날렵하게 움직이는 검은 비스크라의 꼬리에 저지당한다.

리헤로스가 온전히 어그로를 가져가지 않도록 분산이 필요했다.

비스크라의 뒤통수에 화살을 연달아 쏘자 귀찮다는 듯 괴성을 지른다.

‘같이 오길 잘했네.’

수많은 유저들과의 전투를 겪고 탈피하며 이 지경으로 단단해진 거라면, 다음 탈피 이후엔 절대로 이 벽을 넘지 못한다. 버그로 인해 두 배, 아니 몇십 배는 공략하기 어려워진 비스크라는 서비스 당시 막 튜토리얼 지역을 벗어날 스펙의 유저들에게 통곡의 벽 일만 했다.

─훙

꼬리가 휘둘러지는 방향대로 강한 바람이 일었고 리헤로스는 유연하게 피하며 내 쪽으로 미끄러져 왔다.

비스크라가 굉음을 내며 벽에 처박힌 꼬리를 빼내는 동안 그가 말을 걸어왔었다.

“크리스.”

“응.”

“뱀의 배 부분은 등에 비해서 부드러운 것 같아.”

“아…?”

학생일 적 과학 교과서에서 봤던 뱀의 해부도를 떠올렸다. 배 쪽은 뼈도 없는 데에다 비늘도 등에 비해선 많이 약할 수도 있다. 머리 좀 썼는데? 그도 일주일 정도 이 대륙을 떠돌아보니 어느 정도 몬스터 분석 능력이 생긴 모양이다.

"그런 거라면 턱 쪽을 공략해 보는 게 좋겠는데."

“응, 그래서 말인데 그 부분을 정확히 노릴 수 있도록 도와줘.”

“알겠어.”

맡겨 달라고 고개를 단호히 한 번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 강철 같은 꼬리가 눈앞에 내려쳐졌고 뛰어올라 그곳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멀어진 리헤로스는 쉴 새 없이 비스크라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끈이 필요해. 그것도 길고 튼튼한 걸로.’

그사이 나는 주머니에서 긴 끈을 꺼내 여러 겹 겹쳐 잡았다.

그것을 화살 끝에 단단히 묶은 뒤 정확히 비스크라의 머리 뒤편의 절벽에 쏘아 맞히었다.

자신을 비껴간 화살을 본 비스크라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린다.

길게 늘어진 끈을 잡아당겨도 굳게 박힌 화살은 떨어지지 않았다.

준비 완료다. 이제 ‘그 타이밍’을 기다리면 된다.

‘꼬리로 세 번 찌르고 독 장판을 뿌리는 타이밍.’

─쾅, 쾅, 쾅!

세 번의 꼬리 찌르기가 끝나자 비스크라는 사냥감을 한입에 삼키려는 맹수처럼 입을 쩍 벌린다.

곧바로 놈의 구불구불한 몸통에 올라타 입안에 끈을 던졌다.

재갈을 물린 것처럼 끈이 걸렸고 힘껏 잡아당겼다.

벽에 박힌 화살과 잡아당기는 힘으로 비스크라의 머리는 순간 뒤로 확 젖혀졌다.

“게헥!”

“리헤로스!”

“하앗!”

기회를 포착한 리헤로스는 머리 아래의 위치로 순식간에 파고들었고 곧바로 턱 아랫부분에 검을 찔러 넣었다. 벌어진 입안에 리헤로스의 검이 관통된 것이 보였다.

“크에에에엑!”

비스크라가 몸부림을 치는 통에 몸통 위에 올라서 있던 나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낙하한 충격뿐만 아니라 바닥에 흥건히 뿌려져 있던 끈적거리는 독이 온몸에 감겨서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놈에게 유효한 공격을 한 것 같아 안도했다. 이대로 유효타를 몇 번 더 넣는다면….

“크, 켁, 당신이….”

비스크라는 검은색에 가까운 피를 뚝뚝 흘리며 내 쪽으로 머릴 돌린다.

“어떻게… 어떻게 나를!”

피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포효를 하더니 눈을 희번덕대며 달려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적개심보다는 배신감에 찬 울분으로 느껴졌다.

놈의 살기에 놀랐지만, 걱정은 달랐다. 암만 비스크라가 강해졌다 한들 나의 기본 hp나 방어력이 워낙 높아 피해를 주기엔 턱도 없었다. 그렇다. 이대로 물려도 아무렇지 않다면 리헤로스가 이상하게 여길 텐데─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도 세이브포인트 버그가 있는 그가 물리는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콰드득!

“으윽…!”

“…!”

놈의 거대한 이빨에 박힌 건 내 팔이 아니었다.

“리헤로스!”

뱀의 이빨에서부터 그의 팔까지 보랏빛의 독이 흐르는 것이 보였다.

고통에 신음하던 리헤로스는 검을 든 다른 손을 가까스로 들어선 힘껏 머리통에 깊게 찔러 넣었다. 두두둑 머리뼈를 관통하는 소리가 들렸다.

“쿠에에엑!”

그제야 굳게 다문 아가리가 열려 젖혔고, 온몸을 요란스레 비틀더니 머리를 가누지 못하고 쿵- 떨어트렸다.

이내 그 어떤 잡음 하나 없이 거칠게 색색대는 숨소리들로만 이 공간을 채웠다.

“큿… 으윽….”

아파도 내색 한 번 않던 그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다쳐본 경험이 없었기에 팔에서부터 흐르는 피가 믿을 수 없는 광경 그 자체였다. 그 모습에 얼어붙어있는 것도 아주 찰나였다.

팔의 상처보다 눈에 띄는 것, 머리 위에 뜬 독 상태 이상의 수치가 x6까지 올라있었다.

“어째서…!”

독은 5 중첩까지 되는 거 아니었나? 6 중첩이라니 말도 안 된다. 그 사실을 인지하기 무섭게 맥없이 무너져내린 그를 끌어안았다. 그의 안색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시체를 본 적은 없지만 이와 비슷할 거라 예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손끝이 픽셀 조각처럼 깨지는 것이 보였다.

“정신 차려…! 안 돼…! 죽으면 안 돼!”

공포에 질려 호흡이 가빠졌다.

‘그가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그를 만나러 가야 하나?’

‘리셋된다면 나를 기억하긴 할까?’

그간 함께 지나쳐온 수많은 사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낯익은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루미, 매그, 리키….

“…맞다. 리키!”

리키와 헤어졌을 때 받은 해독초가 생각났다. 그렇구나, 리키랑 루미와 연관된 히든 퀘스트를 깼어야 비스크라 공략에 도움 되는 해독초를 받을 수 있던 거구나. 이 사실은 아마 <알리엔토 사가>를 계속 서비스했어도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 모든 퀘스트를 완수한 리헤로스가 기특한 것은 둘째치고 서둘러 해독초를 가방에서 꺼냈다.

[해독초]

- 특수한 경로로 얻을 수 있는 약재. 섭취하면 해독이 된다.

하지만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사람에게 싱싱한 풀을 씹게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즙이 나올 수 있게 손으로 해독초를 비벼 짓이겼지만, 즙은커녕 바스락거리며 숨이 죽지 않았다.

“미치겠네, 진짜.”

급한 대로 입 안에 넣어 씹었고 머금은 약물을 그대로 리헤로스의 입으로 전달했다.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지 않게 서로의 입술을 꽉 맞물렸다. 그렇게 영겁 같던 수 초가 지난 후, 입술을 떼어내고 모두 삼켰는지 그의 입안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머리 위에 떠 있었던 독 디버프의 수치는 천천히 내려가더니 사라졌고 혈색도 돌아왔다.

“진짜… 내가 너 때문에….”

목울대가 울컥하고 코끝이 시큰했다. 무의식적으로 그의 옷자락 꽉 움켜쥐었다.

미련하게 착해선 왜 날 대신해 희생하려는 건지. 그에게 상처 줬던 지난밤이 생각나서 더 괴로웠다. 하지만 자꾸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그에게 동행자이자 파티원 이상의 마음을 품고 싶진 않으니 말이다.

“호흡도 돌아왔어.”

차갑게 식었던 리헤로스의 뺨에 손대보니 점점 따뜻한 온기가 올랐다. 그런데도 급격하게 hp가 빠져서일까 눈을 뜨지 못한다. 설마 이대로 눈을 영영 뜨지 못하면 어쩌지? 빈사 상태에 빠진 건 아니겠지. 온갖 불행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그르르륵….”

비스크라가 지금까지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는지 목 안에 액체가 가득 찬 것처럼 부그르르한 소리를 낸다. 쓰러져있는 비스크라의 얼굴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에서 검붉은 액체가 꿀럭꿀럭 흘러나왔다. 입이 느릿하니 힘겹게 움직였다.

“주인이시여… 어찌 당신이 만든 피조물을 파괴하는 겁니까….”

“…미안하게 됐다.”

비스크라 입장에선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게 배신당한 그런 느낌일까. 당장이라도 사그라들 촛불처럼 같은 목소리가 리헤로스의 생사만을 걱정한 내 마음을 짓이겼다. 현실로 돌아가겠다는 나의 이기심이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같다. 선과 악이란 것도 개인마다 가변 하는 기준 아니겠는가. 빙의하기 전의 마왕이 만든 피조물이나 마군의 처지에서는 내가 악의 편에 선 것과 다름없이 보이겠지.

“주인이 보살펴야 할… 주인에게 의지하는 자를 저버리지 마십시오….”

“아니야…. 저버리지 않았어.”

“크크큭, 아무리 주인의 눈을 가려도… 카르말록스께선 지켜보고 있습니다.”

“카르말록스…? 그게 누구지?”

비스크라는 억지스럽게 웃는 소릴 냈다.

“우리의… 위대한 신이시죠. 주인께서도 피조물이란 것을 잊으셨습니까.”

“그 말은 내 위에 창조…신이 있단 말이야?”

스토리 확장을 위해 절대 악신의 존재가 있기 마련이지만, 알리엔토에서는 소개된 바 없어 전혀 몰랐다. 당연히 마왕이 악의 세력에서는 끝판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저는 들립니다. 신의 목소리가…. 주인께서 이 세계의 이치를 부수고 있다는 사실도, 신은 알고 계십니다.”

“난… 더 중요한 일을 하는 것뿐이야.”

“흐후후… 신께서 주인의 뜻을… 이해하실진 모르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그 말을 끝으로 비스크라는 딱딱하게 굳어버리더니 점차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녀석이 남긴 말이 끈끈히 엉겨 붙어 머릿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신 카르말록스….’

“….”

“리헤로스?”

무릎에 누워있는 리헤로스가 뒤척이길래 깨어난 줄 알았건만 식은땀으로 범벅된 채 괴로운 듯 얼굴이 구겨져 있었다. 독 디버프는 해제됐지만, hp가 회복되지 않는다. 우선 리헤로스를 마을로 옮기고 조치를 취해야겠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오시튼의 골목길을 떠올리며 포탈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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