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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님 망겜에도 엔딩이 있나요-8화 (8/127)

8화

“…리키?”

“흐… 흐으윽…”

루미도 함께 있을까 기대에 찬 마음으로 내부를 둘러보았지만, 그 작은 공간 안에는 흐느끼는 리키뿐이었다. 우선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 겁에 질려있는 이 녀석을 데리고 나와 진정시켜야 했다.

“…일단 나와. 밖에 아무도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으…우…….”

그나마 밝은 외부로 나와 살펴본 그의 행색은 흙을 뒤집어썼는데 눈물이 뺨을 타고 길을 만드니 얼굴이 온통 얼룩덜룩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

“…루미가 사라진 건 어쩔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 같이 있던 네게 책임을 묻진 않을 거야.”

“……흐, 으흐흑…!”

그가 이야기해 준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리키는 잠귀가 밝아서 수상한 기척에 깊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는데, 잠잠해지나 싶더니 별안간 포대자루에 싸여서는 납치당했다고 한다. 납치되는 도중 발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니 험난한 산길은 벗어난 것 같아서 몸부림쳤고, 들쳐매고 있던 놈이 자신을 떨어트리니 그 길로 뿌리치고 정신없이 도망쳐 나왔다는 것이다.

“하아아…, 단서는 이대로 실종인가.”

“하,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리키는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은 지 말할 듯 말 듯 재채기가 마려운 사람처럼 입을 어물댔다.

“그….”

“….”

“….”

“그…그거….”

납치당한 본인이 가장 많이 놀랐을 거라 배려하는 마음에 불같은 성격을 참아보려고 했는데 점점 한계였다. 빨리 대답하라고 놈을 흔들어 재끼고 싶었지만, 뒤에서 낌새를 눈치챈 리헤로스가 내 허리를 꽉 붙들었고 몸에 제동이 걸린 덕분에 마음이 쑥 가라앉았다. 리키는 몸을 한껏 움츠리다가 겨우 생각난 모양인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향신료. 이 근방에서 잘 팔지 않는 향신료 냄새가 났어요…!”

“향신료?”

“네에… 제가 인신매매 당하기 전에도 주방에서 일했거든요. 그래서….”

“그래서?”

“후각이 조금 예민하거든요…. 근데… 그런데….”

“….”

고갤 옆으로 돌려 반려견 행동 지도사처럼 몸을 붙들고 있는 리헤로스를 올려다봤다. 이래도 아직 참으라는 거냔 얼굴로.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저 씨익 미소 짓기만 했다.

“암시장에서 종종 찾아오던 손님이… 소량 납품하던 특수한 향료로 기억해요….”

“뭐?”

“그거랑 똑같은 냄새였다고?”

‘그렇군. 우리가 암시장을 소탕하던 걸 밖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미행한 건가?’

“네, 네에… 그 사람들이 분명했어요. 이번에도 납품하려고 했던 모양인지 주머니를 들고 왔더라고요.”

“그래서?”

“호, 혹시 도움이 될까 봐… 놈들과 몸싸움을 할 때 떨어진 주머니에서 그 향신료를 한 움큼 집어왔는데… 동굴에 도착해 보니 아무것도 안 남아서….”

그는 허망한 듯 가늘게 떨리는 손을 폈고 손바닥 안엔 가루 한 톨도 남지 않았다.

“전… 정말 아무 쓸모도 없나 봐요…. 으흐흑….”

“아니. 그렇지 않아.”

“…예? 정말요?”

끌어안고 있던 리헤로스의 손을 척척 풀어내고 펼쳐진 리키의 손을 덥석 잡아 자세히 살폈다. 향신료라면 손바닥 온도 때문에라도 냄새가 많이 배어있을 터. 코를 박고 킁킁 맡으니 아직까지도 냄새가 코끝을 톡 쏘았다.

“리키, 잠시 실례할게.”

셔츠의 팔 부분을 찢어 리키의 손을 꼼꼼하게 문질렀다. 가루가 가장 많이 끼어있을 손톱 밑까지도. 옷 조각을 흔들어보니 은은하게 향이 났다. 이 정도면 충분해.

“리키. 아주 잘했어.”

─띵

[!][돌발 퀘스트]

[추가 조건]

남은 동료를 해가 뜨기 전까지 구출하세요.

- 남은 시간: 4시간 0분

미친. 이게 무슨 짓이야? 웬 타임 어택? 깜짝 놀라 리헤로스를 돌아보니 그도 이 불안을 직감한 듯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향료에 조예가 있거든, 한 번 찾아볼게. 리키 좀 보고 있을래?”

“혼자 가도 괜찮겠어?”

“당연하지. 금방 돌아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

원래 같으면 같이 가겠다고 고집부렸을 리헤로스도 당장은 급하니 내게 전적으로 맡기지 않았나 싶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숲에서 스킬창을 열었다. 바로 망설임 없이 하나의 스킬을 터치했다.

[보유 스킬]

케르베로스 | 일반 | 쿨타임 120초

[발동 조건: 영창 하여 스킬 시전]

영창이라, 별도의 영창문은 없으니 스킬명만 외쳐도 되는 거겠지?

“케르베로스.”

발끝에서부터 큰 마법진이 그려지더니 지면이 갈라지는 모양새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쿵

검고 큰 발이 불쑥 튀어나와 땅을 짚고 몸을 일으켜 올라온다. 머리가 세 개 달린 푸른 눈의 케르베로스는 숲의 공기가 흔들릴 정도로 그르릉대는 목 울림을 내며 위용을 뽐냈다. 이곳에 얼마나 자리 잡고 있었는지 모를 고목과 비슷한 크기의 몸집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 눈에 띄지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은 제쳐두고 녀석에게 지시를 호령하려 했는데.

“케르베…우와악!”

이 세계에서 대적할 짐승은 없을 것만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달려들어 얼굴을 사정없이 핥아댔다. 꼬리를 바람이 훙훙 불 정도로 돌리고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반려견이었다.

“그…그만, 그만!”

“끼이잉…!”

침으로 잔뜩 젖은 상태로 녀석들의 얼굴을 꾹꾹 밀어 온몸으로 거부하자, 바닥에 몸을 바짝 낮추더니 눈치를 본다. 마왕은 의외로 마계 생물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나 보다.

…이런 감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케르베로스. 이 냄새 추적 가능할까?”

케르베로스가 개과라는 것만 믿고 무작정 소환했다. 소환형 스킬이니 형태가 있을 거 아닌가. 개과의 뛰어난 후각은 탐지견으로 여러 분야에서 손을 빌릴 정도이니 케르베로스도 현실의 상식이 통하는 소환수였길 바랐다.

“웡!”

케르베로스는 천에 바짝 다가와 킁킁대다가 우렁우렁하게 짖었다. 검지를 들어 쉬이- 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가는 길에 발톱으로 표시해 줄래? 목적지에 도착하면 집으로 돌아가도 돼.”

“헥헥, 꾸웅!”

알아들은 모양인지 조용히 답한다. 기특한 것. 리헤로스가 루미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다른 종임에도 날 따라준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 이런 맹목적인 사랑은 피가 이어진 가족이 아니고서는 같은 인간에게조차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놈들의 본거지를 찾으러 간 케르베로스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에 본 퀘스트 타임 어택의 표시는 이러했다.

[남은 시간: 3시간 28분]

약 30분 거리. 바로 돌아가서 케르베로스가 남겨둔 흔적을 찾아 따라가면 될 것이다. 곧바로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둘은 기다리다가 지쳤는지 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있는 상태로 고개만 돌려 보고 있었다.

“아… 너구나. 뭔가 찾았어?”

“있잖아. 향료가 떨어져 있는 길을 발견했거든?”

“정말?”

“정말…요…?”

두 얼굴에 녹아들었던 지친 기색은 나의 말 한마디에 씻겨 내려갔다. 둘은 자리를 털고 벌떡 일어났고 일단 따라오라는 말을 따라 조금 들뜬 느낌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그리고 케르베로스가 내어놓은 손톱자국 쪽으로 다가가 설명했다.

“이렇게, 향료를 발견한 곳마다 발톱 자국이 있거든.”

“그러네?”

“그래서, 이게 놈들의 표식 아닌가 싶어서. 따라가 보면 어떨까?”

일부 원시 부족 중에는 외부의 접근을 막으려고 일부러 거대한 맹수의 서식지인 척 발톱 자국을 내어놓는다고 들었다. 나의 귀여운 충견이 해둔 표식이지만 대충 이 정도 개연성이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현실의 상식이 다시금 먹혀 들길 바랐다.

[나무의 표식]

수상한 표식. 어쩌면 동료를 납치한 범인의 본거지로 향할 수도…?

다행히도 먹혀들었다. 하지만 NPC인 내가 임의로 만든 단서라 그런가? 자세한 내용은 담겨있지 않았다. 고지능의 AI를 이용한 게임이라더니, NPC가 무슨 행동을 할지 모르니 퀘스트와 연관되기만 한다면 즉흥적으로 단서를 만들 수 있나 보다.

“가보자.”

단서를 확인하고서야 리헤로스는 앞장서 걸었다. 그 길을 따라 걷기다 뛰기를 반복했다. 뒤처지는 리키를 두고 갈 순 없어 그의 팔을 부축하며 걷기도 했다. 리키는 자길 두고 가라고 울고 불었지만 리헤로스는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기를 30분, 마침내 놈들의 본거지를 찾아냈다.

[남은 시간: 1시간 58분]

뾰족하게 깎은 통나무가 건물을 두르고 있는데 뻗친 울타리의 길이를 보아하니 어마어마한 크기의 부지로 보였다. 부지가 이렇게 크니 케르베로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더라도 언젠가 발견할 수도 있었겠지만, 케르베로스 덕에 시간을 단축했다. 충분히 잘해주었다.

‘여기를 어떻게 들어가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리헤로스는 검을 뽑아 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문지기 둘을 단숨에 베었다. 그의 검술은 참으로 자비로웠는데, 숨이 깔딱깔딱 넘어갈 정도로 베는 게 아니라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죽었겠구나 싶을 정도로 단칼에 처리했다. 당연하지만 고통스럽게 죽어가기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를 따라가려다 멈춰서 리키에게 낮게 속삭였다.

“리키, 넌 여기에 있어.”

“예…에?!”

“혹시 누군가 들어오는지, 혹은 매복하고 있는지 정찰만 해줘. 혹시라도 도망칠 생각은 마. 나는 뒤통수에도 눈이 달렸거든.”

“아, 알겠습니다….”

리키를 이용하기로 했다. 또다시 이런 돌발 퀘스트(a.k.a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매복하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니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자 이거였다.

굳게 닫혀있던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고 리키에게 재차 당부한 뒤, 리헤로스의 뒤를 따라 사주 경계했다. 수많은 통나무 건물이 줄지어 서 있고 중앙의 공간은 놈들이 전투 훈련하는 장소 같았다.

“침입자다!”

우리를 발견한 도적 떼는 순서를 가리지 않고 몰려들었다.

검에서 뿜어내는 금빛의 호선이 도적단의 몸을 관통하면서 붉은빛으로 변했다.

암시장에서의 몸짓 보다 더욱 격렬하고 분노의 찬 느낌─ 그가 흥분해서는 실수할까 조마조마할 지경이었다.

‘이번엔 내가 리헤로스를 보호해 줘야겠어.’

책임감이 생겨 더욱 기민하게 반응했다.

뒤로 돌아가는 놈, 지붕에서 활을 겨누고 있는 놈들을 쉴 새 없이 모두 맞춰 떨어트렸다. 맞춰도 맞춰도 끊임없이 생겨나는 적들을 보니 화살통만 있으면 화살이 자동 충전이 되는 무한한 구조라서 다행일 지경이었다.

“죽여라!”

놈들은 시체가 검붉은 산처럼 쌓여도 두려운 기색은커녕 시체를 밟고 달려들었다.

─어깨와 팔이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X발….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타들어 가는 듯한 어깨 통증이 고작 몇십 분의 결과는 아님을 알았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었다. 아무리 부지가 넓다지만, 이렇게까지 많다고? 심지어 던전 클리어의 상징인 보스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설마….’

시위를 놓아 한 놈을 맞추고 나서 리헤로스를 항해 소리 질렀다.

“리헤로스! 이거, 죽이는 거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

“하아… 하… 그럼?”

“…루미를 찾아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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