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2화
•
•
“…다시, 다시 할래요….”
“응?”
“사랑한다고… 다시 말해 드리고 싶어요….”
“음, 그럼 다시 하자.”
무슨 말을 덧붙이려고 이렇게 귀엽게 구나 싶어 웃은 권태정이 다시 이겸의 머리칼에 입 맞추고 눈을 맞췄다.
“사랑해, 우리 이겸이.”
“…저도… 사랑해요. 여… 여보오….”
“아….”
“…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이겸아, 미안한데 잠은 좀 나중에 자자.”
“…네?”
씩 웃은 권태정이 다시 이겸의 몸 위를 뒤덮으며 올랐다. 이겸은 짙게 퍼지는 권태정의 페로몬을 느끼며 푸스스 웃음 지었다. 그리고 잠보다 중요하고 좋은 저의 사랑을 두 팔로 가득 당기며 몸을 맞췄다.
부디 이 사랑스러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 * *
노팅을 빨리해서 쉽게 잦아들 줄 알았던 러트와 히트는 생각보다 쉽게 잠잠해지지 않았다. 결국, 토요일 밤을 거의 새다시피 하고 일요일까지 내내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몸을 맞춘 뒤에야 페로몬이 가라앉았다.
오직 서로만 눈에 담고 떠올리며 주말을 보낸 다음 찾아온 월요일 아침에 권태정은 이겸을 데리고 센터를 찾았다. 그리고 말은 안 하지만, 짐승을 보듯 보는 조현준의 시선을 가뿐히 무시한 채 임신하지 않도록 하는 약을 받았다.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한 이겸이 1년 만에 다시 임신을 해서 고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겸도 다행히 권태정의 마음을 이해하고 약을 먹었다. 아직 둘째에 대한 계획을 세운 적은 없지만, 만약 가진다면 학교를 좀 더 다니고 2, 3년 후쯤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들을 수 있겠어?”
“네, 괜찮아요. 생각보다 안 힘들고, 컨디션도 좋아요. 늘… 느끼는 건데…. 실장님이랑 그거… 그… 사랑해서 하는 거 하고 나면 컨디션도 좋아지고… 좋아요.”
핸들에 엎드려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이겸을 보던 권태정이 싱긋 웃었다.
“우리 여보 아직도 섹스라는 말 못해서 어떡해. 말보다 우리가 주말에 뒹군 게 더 야한데.”
“…그건 아는데… 그래도 말이 잘 안 나와요….”
“귀여워 죽겠어, 진짜.”
윤이 반짝반짝 나며 정말 컨디션이 좋다는 걸 보여 주는 얼굴을 만진 권태정이 뒷좌석에서 이겸의 가방을 들어 안겨 주었다.
“오늘 회의만 끝나면 오후 시간 비니까 데리러 올게. 같이 집에 가자.”
“네. 빨리 하루 보고 싶어요.”
“나도. 주말에 못 봤다고 눈앞에 아른아른하네.”
저녁에 저와 이겸을 보면 또 얼마나 좋아할지 벌써부터 기대감에 마음이 간지러웠다. 권태정은 차에서 내려 이겸이 강의가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전부 본 다음에야 학교를 떠났다.
이겸과 떨어지자마자 보고 싶어진 마음의 일렁임과 함께.
* * *
강의가 끝나고 개강총회에서 친해진 동기 세 명과 카페에 간 이겸은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제 눈치를 보는 신해수를 바라보았다.
“뭐 할 말 있어?”
“어…. 그게….”
분명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쉽게 말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떠넘기다가 결국 질문자로 당첨된 신해수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 그… 태성…. 그 폰 나오고 TS마켓 있고 한 그 태성… 권태정이랑… 결혼했어요?”
신해수의 입에서 태성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숨길 생각은 딱히 없었지만, 그래도 갑자기 듣게 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알았을지 잠시 생각해 보던 이겸은 권태정이 뒤풀이 때 저를 데리러 왔던 것을 떠올렸다. 그때 신해수가 저를 부축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권태정과 마주했을 것이었다.
“응, 맞아….”
“와, 대박. 진짜예요? 개총 뒤풀이 때 형 데리러 온 사람 권태정 맞죠?”
“응….”
“그때 저랑 얘네는 권태정…. 아니, 이렇게 부르면 안 되지…. 그 분? 형님? 정면으로 봐 버렸거든요. 설마설마 했는데 얼굴 보고 모르기 어려운 사람이잖아요. 와…. 키 진짜 크고, 몸 진짜 개좋고, 얼굴 완전 미치셨던데요? 저 우성 알파 처음 봤어요.”
권태정을 칭찬하는 것도 좋고, 자연스럽게 저와 권태정의 관계를 알리게 된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래도 역시 걱정이 아예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혹시 그날… 실장님 본 사람 많아?”
“아니요. 많진 않아요. 우리만 그때 형이랑 있어서 제대로 봤지 다른 사람들은 그때 다 취해서 각자 놀던 때라 얼굴은 못 봤을 거예요. 봤으면 지금 이미 난리 났을 걸요?”
그건 신해수 말이 맞았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권태정을 제대로 봤다면 이미 권태정을 봤다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왔을 것이었다.
“형, 걱정하지 마세요. 소문 안 낼게요.”
“결혼한 걸 숨기는 건 아냐…. 아닌데… 괜히 실장님 이야기가 여기저기에서 나올까 봐 그게 걱정이 돼서.”
“그것도 그거고 다른 사람들 알면 형 학교 다니기 피곤할 걸요. 형만 보면 다 물어볼 거 아니에요. 나중에 알려지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입학하자마자 소문나는 건 좀 그렇잖아요.”
“생각해 줘서 고마워.”
소문이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저보다 더 굳은 결의에 찬 얼굴로 비밀을 사수해 주겠다는 동기들을 보니 안심도 되고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 웃음도 흘렀다.
“그럼 형 애도 있어요? 저 전에 권태정 득남! 이런 기사 봤는데.”
“아, 응. 우리 애기 이제 막 돌 지났어.”
“와, 대박이다. 사진 보여 주면 안 돼요? 누구 닮았어요?”
“사진? 잠깐만…. 나는 실장님도 닮은 것 같은데… 실장님은 나랑 완전히 똑같다고 하시거든….”
수도 없이 많은 하루의 사진 중 삐약이 인형을 안고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있는 귀여운 사진을 고른 이겸이 동기들에게 하루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런 거에는 관심도 없을 것 같던 동기들이 일제히 고개를 내려 작은 휴대폰 화면에 집중하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자꾸 웃음이 났다.
“우와, 완전 형인데요?”
“그래? 나 닮았어?”
“네! 학교 돌아다니고 있으면 누가 보든 그냥 알아서 형한테 데려다줄 것 같이 생겼는데요? 진짜 예쁘게 생겼다. 어, 아니다. 눈이 권태정…. 아니, 그 실장님?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응, 내가 봐도 그래. 우리 실장님 눈이 정말 예쁘시거든.”
예쁘다는 말에 신해수와 다른 동기들은 그날 술집에서 봤던 권태정을 일제히 떠올렸다. 그리 작은 키가 아닌데도 턱을 올려야만 눈을 맞출 수 있을 만큼 크고 몸도 좋은 권태정과 예쁘다는 말은 잘 매치가 되지 않았다. 신해수와 동기들은 그 ‘예쁘다.’는 평가에서 이겸이 그와 굉장히 정말 가까운 존재라는 걸 실감했다.
“이건 정말 더 닮지 않았어?”
권태정과 눈이 더 비슷하게 나온 하루 사진을 보여 준 이겸은 확실히 권태정과 닮은 것 같다는 동기들의 말에 무척 기뻐졌다.
“형이랑 되게 나이 차이 많이 나지 않아요?”
“아…. 열두 살 차이 나.”
“세대 차이? 그런 거 없어요? 말 안 통하거나 그런 거.”
“그런 거 전혀 없어. 말도 너무너무 잘 통하고… 생각도 다 비슷해. 평소에는 나이 차가 그렇게 난다는 거 잘 생각을 안 하고 살아서 그런가….”
너무 과하게 파고들지 않고, 적당히 대답할 수 있는 정도만 골라 대답한 이겸이 휴대폰 속 권태정과 하루를 물끄러미 눈에 담았다. 며칠 전, 과제를 하고 방에 가니 같은 자세로 침대에 누워 잠들어 있던 두 사람을 담은 사진이었다.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맺히고, 마음 안으로는 권태정과 떨어져 있을 때면 늘 감도는 그리움이 일렁였다. 권태정의 이야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권태정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형, 결혼하니까 좋아요? 되게 일찍 한 거잖아요.”
“응, 좋아.”
“후회스러운 건 없어요?”
“하나도 없어. 다 좋아.”
조금의 머뭇댐도 없이 말한 이겸이 싱긋 웃음 지었다. 그리고 조금의 후회도 없이 사랑하는 저의 권태정을 머릿속과 마음 안에 가득 채웠다.
그 순간 시간이 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사랑과 그리움을 안은 채.
* * *
네 시쯤 마지막 수업이 끝난 이겸은 학교 앞에 와 있다는 권태정의 메시지를 보고 얼른 건물을 나섰다. 건물 앞쪽 길에는 제가 아침에 타고 온 익숙한 차가 서 있었다. 그 차를 보자마자 이겸은 달렸다. 달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실장님!”
“나 보고 싶었구나.”
“네, 보고 싶었어요.”
“나도. 우리 자기 아침에 내려 주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내 보고 싶었어. 주말 내내 붙어 있어서 그런가. 월요일에는 떨어지는 게 더 힘든 것 같아.”
“저도 그래요….”
권태정이 열어 주는 차 안으로 오른 이겸이 문을 닫기 전 쪽 입 맞추는 권태정을 보며 웃었다. 주말 내내 엄청난 열기 속에서 권태정의 사랑을 잔뜩 머금어 그런지 늘 달떠 있는 사랑이 오늘따라 더 이겸을 애태웠다.
“집에 가자.”
“실장님….”
“응?”
운전석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는 권태정의 팔을 살짝 당긴 이겸이 제 이야기를 들으러 기울어지는 권태정의 얼굴을 잡고 쪽, 쪽 몇 번 더 입을 맞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조금 더 깊게 혀를 섞었다.
“…정말 계속 보고 싶었어요….”
“……여기 어디 사람 없는 데 없나. 잠깐만.”
이대로는 운전해 집까지 갈 수 없다고 판단한 권태정은 급히, 하지만 안전하게 차를 몰아 조금 외진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랫동안 타지 않은 차가 세워진 것 같은 주차 구역 뒤로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시동을 껐다.
마지막으로 손을 내리자 달칵이는 소리와 함께 권태정의 몸을 가로지르고 있던 밴드가 흐트러지며 말려 들어갔다. 그다음에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사랑을 향해 다가가는 것.
조수석 쪽으로 확 몸을 기울이자 이겸이 다가왔다. 사실 얼굴을 다시 보는 그 순간부터 간절히 바라던 일이었다. 그 염원대로 정신없이 입술을 마주하고, 서로를 탐했다. 혀가 엉키고 서로의 입 안을 침범해 문지르며 달뜬 숨이 섞일 때마다 머릿속이 다 찌릿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