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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열 소년 외전-(18)화 (164/174)

외전 18화

잔뜩 취해서 집에 가면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게 뻔하니까. 물론 그건 핑계였다. 그냥 오늘은 취한 이겸과 둘이 있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권태정은 조수석에 기대어 저를 보고 있는 이겸과 눈을 맞추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엄마. 저예요. 이겸이 만났는데 좀 취하기도 했고, 오늘은 우리 아파트에서 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네, 네.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에요. 술을 잘 못 하는데 여기저기서 주니까 어쩔 수 없이 마셨나 봐요. 네. 네, 걱정하지 마시고 하루만 좀 부탁드려요. 내일 갈게요. 네, 고마워요, 엄마.”

엄마에게 하루까지 잘 부탁한 권태정이 졸린 듯 눈을 느릿하게 끔뻑이는 이겸의 얼굴을 쓸어 주었다.

“실장니임….”

“응, 속은 괜찮아?”

“네에…. 보고 싶었어요, 술 마시는데에…. 자기가 보고 싶어서 술잔 안에 실장님 얼굴이 아른아른….”

“그랬어? 나도 보고 싶었어. 하루한테 이겸이 아빠 보고 싶다고 계속 말했잖아. 아마 하루도 이제 보고 싶단 말은 어른처럼 할 수 있을걸.”

권태정의 말을 알아듣고 웃은 이겸이 시트로 몸을 묻으며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술기운에 자꾸 얼굴이 뜨겁고 머릿속이 말캉말캉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또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권태정에게서 나는 냄새가 너무나 좋아 자꾸만 다가가고 싶을 뿐이었다.

“실장님 냄새….”

“…….”

“너무너무 좋아요…. 우리 자기이 냄새애….”

“우리 자기 말하는 거 귀여워서 어떡해. 조금만 기다려. 얼른 집에 가야겠다.”

가는 동안 이겸이 조금 더 편하게 쉴 수 있게 페로몬을 풀어 준 권태정이 시동을 걸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오늘 집에 못 들어간다고 전화한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생각하며.

차에서 내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권태정은 제 얼굴을 따끈한 손으로 쓸며 키스하는 이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 가까워 얼굴 전부가 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 눈을 꼭 감고 있는 눈두덩과 속눈썹이 예뻐 올라가서 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솔직히 떨어지고 싶지 않기도 했고.

“우리 자기 술 취하더니 엄청 대담해졌네. 야해라.”

입술을 붙인 채 말하는 게 간지러웠는지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권태정은 다시 파고드는 이겸의 말랑하고 뜨거운 혀를 문질러 주며 깊게 빨아들였다.

“으응….”

애가 타는 건 이겸 뿐만이 아니었다. 권태정은 얼른 운전석 의자를 뒤로 조금 물리고 이겸의 몸을 안아 운전석으로 넘어오게 했다. 혹시라도 머리를 천장에 찧을까 싶어 손을 아예 이겸의 머리 위에 대고 있던 권태정은 무사히 제 허벅지 위에 안착해 바로 고개를 기울이는 이겸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제 사랑스러운 이겸을 향해 입술을 벌렸다.

“기분 좋아?”

“네, 좋아요. 실장님 봐서….”

“보기만 했어?”

“키스도….”

권태정의 얼굴을 쥔 채 쪽, 쪽 뽀뽀한 이겸이 다시 작은 혀를 입술 안으로 넣어 문질렀다. 평소에도 제 손을 잡거나 안기는 정도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먼저 제 위에 올라타 키스를 하는 경우는 잘 없어 그런지 적극적인 이겸의 모습에 자꾸만 심장이 쿵쿵댔다. 권태정은 발기하기 시작한 성기를 느끼며 이겸의 겉옷 안으로 손을 넣어 셔츠 위로 허리를 매만졌다.

“우리 애기는 술을 마셔도 복숭아 냄새가 나네.”

술에 취해 흐트러져서 그런지 페로몬은 더 강해지고 몸은 따끈해져서 복숭아 향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약한 술 냄새까지 섞여 그런지 예전에 어디선가 마셔 본 적 있는 복숭아 샴페인 향이 났다. 권태정은 자꾸 저를 보고 웃는 이겸의 귓불을 살살 손끝으로 굴리다가 손을 내려 뺨을 감싸 쥐었다.

“오늘은 사람들이랑 얘기 많이 했어? 오티 땐 많이 못 했다고 서운해했잖아.”

“저 오늘 얘기도 많이 하고… 친구도 생겼어요.”

“어떤 새끼…. 아니, 어떤 앤데?”

“신해수라는 애가 제 옆에 앉았는데에…. 먼저 말도 걸어 주고오… 먹을 것도 덜어 주고… 해수가 친해진 다른 애들도 소개해 줘서 오늘 친구 많이 생겼어요.”

권태정은 신해수라는 사람에게 고마움과 짜증을 동시에 느꼈다. 이겸에게 말을 걸고,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은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제가 없어도 되는 이겸 만의 사회에 너무 빨리 적응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같아 싫기도 했다.

“아까 이겸이 너 잡고 서 있던 걔가 신해수야?”

“으음…. 아, 네에.”

“친구 많이 생겨서 좋았어?”

뺨을 쓰다듬는 손길이 좋아 얼굴을 비비던 이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권태정은 환하게 웃는 이겸을 보며 기쁨과 안도, 그리고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불안 따위는 느끼고 싶지 않은데 저도 모르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좋았어요, 너무너무.”

좋아서 다행이라고, 역시 모두가 좋아할 줄 알았다고,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즐거운 일들을 전부 해 보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권태정은 제가 무척 꼴사납다고 생각했다. 열두 살이나 많으면서 이제 막 대학교 들어가 좋아하는 이겸을 진심으로 귀여워만 할 수가 없다니…. 이게 무슨 꼴불견이란 말인가.

하지만 나이는 나이고 이건 이거였다. 그동안 늘 저의 영역 안에만 있던 이겸이 그 밖으로 나가 제가 모르는 시간을 보낸다는 게 어색하고 낯설었다. 제가 출근해서 집에 없을 때 이겸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집에서 혼자 공부하며 저를 기다렸을 이겸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팠다.

“실장니임….”

“…….”

“자기이….”

“아…. 응.”

저를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게 서운했는지 시무룩해진 이겸이 귀여워 불안해 울렁이는 마음과 다르게 웃음이 났다. 권태정은 이겸의 얼굴을 양손으로 누른 채 살살 비벼 주었다.

“네 생각 했어. 친구 많이 생겨서 좋다니까 너무 좋은데 또 괜히 기분이 이상해서.”

“…….”

“우리 이겸이는 내 거라 당연히 나랑만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그게 아니니까. 이런 말 하는 거 좀 그렇다는 거 나도 알아. 알아서 그냥 자기 취했을 때 말하는 거야. 어쩌면 내일 기억 못할 수도 있잖아.”

“실장님, 속상하세요?”

“속상한 게 아니라…. 좋은데 불안하고, 다행이다 싶은데 또 괜히 삐딱해지고 그래. 예전에도 우리 이런 말 한 적 있었잖아. 그땐 그냥 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눈앞에 닥치니까 진짜 기분 이상해. 나도 적응 기간이 좀 필요한가 봐.”

취하긴 했어도 제 말을 다 알아듣고 있는 건지 울상이 된 이겸을 보고 놀란 권태정이 얼른 정신을 차리고 등을 토닥였다.

“그냥 그랬다는 거야. 지금은 괜찮아. 우리 이제 올라가서 잘까?”

결국 눈물이 넘치는 이겸을 가득 안은 권태정이 그대로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주차장을 지나 조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 훌쩍이는 이겸을 달랬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다 말해서 결국 이겸을 울려 자꾸 마음이 쓰였다.

“우리 애기 이제 다 울었어?”

권태정은 집에 들어가 이겸을 침대에 앉히고 겉옷을 벗겼다. 그리고 몸을 숙여 눈물에 젖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내가 잘못했어. 울지 마. 뽀뽀.”

눈물에 젖어 반짝반짝한 눈으로 보다가 뽀뽀란 말에 고개를 기울이는 이겸이 사랑스러웠다. 고개를 기울여 뽀뽀를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입을 맞추고 다시 깊게 눈을 마주하는 순간….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던 자리에 그동안 이겸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흘러들었다.

저를 철거촌 깡패로 오해했던 첫 만남, 귀가 멀어 버릴 것처럼 비가 많이 오는데도 서로의 숨소리만 들리던 그날, 허물어져 가는 철거촌과는 어울리지 않게 화사한 벚꽃 잎이 흩날리던 그 봄, 달콤 쌉싸름한 핫초코, 몸이 녹아내리던 히트와 러트, 가장 긴 새벽을 함께 나누며 결국은 마주했던 사랑.

삐약이를 처음 만난 날, 그리고 삐약이가 하루가 된 날, 하루 우유를 먹이느라 새벽에 몇 번씩이나 일어나 우유 온도를 맞추고, 먹는 걸 보며 꾸벅꾸벅 졸면서도 좋았던 날들, 하루가 처음으로 몸을 뒤집고, 바닥을 기고, 아무것도 잡지 않고 일어나 첫발을 떼던 그 순간.

이겸이 수능을 보러 가던 아주 추운 날 아침, 들어가기 전 짧게 마주했던 입술이 따뜻하다 느낀 순간, 여전히 눈만 마주쳐도 사랑이 들끓어 세상에 서로만 가득한 그 모든 때.

그 모든 시간에는 이겸이 있었다. 그리고 제가 있었다. 다른 사람은 결코 끼어들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것들이 저와 이겸 사이에 존재했다.

사라질 수도 없고, 조금도 잊을 수 없는 이겸과의 모든 시간과 마주한 권태정이 침음했다. 제가 얼마나 못나 빠진 생각을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미안해, 진짜 내가 잘못했어.”

“…….”

“친구가 아무리 많이 생겨도 우리 자기는 나만 좋아하는데 그것도 모르고 개소리나 하고 내가 미친놈이야.”

“자기 미친놈 아니에요….”

“그럼 나 뭐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며 눈을 깜빡이던 이겸이 입술을 달싹였다.

“자기이….”

“또?”

“실장니임….”

“내 이름 불러 줘, 이겸아. 태정아, 불러 줘.”

“태정아….”

아, 진짜 돌겠네. 이름을 뭐 이렇게 달착지근하게 부르지. 달콤함이 잔뜩 묻은 눈동자가 이겸을 잔뜩 가두었다.

“자기는 이름도 너무너무 잘생겼어요.”

한 번씩 톡 튀어나오는 칭찬이 좋으면서도 귀여워 소리 내어 웃은 권태정이 벌어진 이겸의 입술을 머금었다. 촉촉하게 맞물린 입술 사이로 기다렸다는 듯 두 혀가 얽혔다.

“하아….”

“그럼 난 미친놈 아니고 우리 이겸이 자기고 실장님이고 태정인 거네?”

“네, 이겸이 자기….”

취해서 지금 자기가 어떻게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기분이 좋아져 웃는 이겸을 보며 크게 웃은 권태정이 발그레한 뺨 여기저기에 마구 입 맞췄다.

“자기, 실장님, 태정이 말고 또 하나 있는데”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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