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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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겸의 손을 잡고 고맙고 미안하다 말하면서 우는 권태정을 보며 부모님은 태정이가 이렇게 우는 걸 애기 때 이후 처음 본다면서 신기해하셨고, 뒤늦게 온 권유정과 권기정은 미래를 위해 우는 권태정을 동영상으로 찍느라 바빴다. 이겸은 저의 가족을 한 명, 한 명 눈에 담으며 웃음 지었다. 힘들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겸아…. 고마워. 내가 정말 잘할게. 널 만난 후로 그렇지 않은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더… 더 널 위해 살 거야. 나 이겸이 거야. 알지?”
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우는 권태정을 보며 권유정과 권기정은 ‘지나친 사랑꾼’ 동생을 보며 웃었고, 부모님은 넘치는 사랑이 좋아 기특해했으며, 이겸은 제 마음으로 뚝뚝 떨어지는 권태정의 진심 어린 사랑에 행복했다. 안도와 기쁨, 설렘과 약간의 걱정…. 여러 감정이 뒤섞여 뭉쳐 있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뒤덮을 감정은 단 하나, 행복이었다.
이겸은 행복했다. 권태정이 제 곁에 있어서. 그리고 그가 선물해 준 너무나 따뜻한 가족과 함께여서. 곧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과 삐약이가 만날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이겸은 다시 커다란 행복과 마주했다. 결코 멀어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을 권태정의 사랑 안에서.
* * *
삐약이는 아주 작고, 또 작았다. 처음 삐약이를 품에 안던 날을 이겸은 생생하게 기억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을 수가 있나 싶게 작은 삐약이를 안고 이겸은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이 작은 아이의 아빠가 됐다는 아직은 낯선 책임감과 마주하기도 했고,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보다도 주가 되는 감정은 역시 행복이었다. 그래서 이겸은 만지기도 겁이 날 만큼 연약한 삐약이의 손을 잡으며 웃을 수 있었다.
“안녕, 삐약아. 만나서 반가워.”
“…듣고 있을까?”
“그러지 않을까요? 실장님도 삐약이한테 인사해 보세요.”
이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권태정이 과장을 좀 보태 전체 크기가 제 손바닥 만한 삐약이를 보며 소곤댔다.
“삐약아, 안녕. 내 목소리 기억해? 매일 책도 읽어 주고, 말도 걸고 그랬는데.”
“삐약아, 기억하지? 태정이 아빠야.”
아기가 그걸 전부 알아들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꼬물꼬물 움직이고 입을 뻐끔뻐끔 거리는 게 귀여워 자꾸 말을 걸게 됐다. 이겸은 하품을 하는 삐약이를 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실장님, 삐약이 진짜 너무너무 귀여워요.”
삐약이를 귀여워하는 이겸이 더 귀엽다고 느낀 권태정이 고개를 기울여 이겸의 뺨에 쪽 소리가 나게 입 맞췄다. 그러고는 머리를 맞댄 채 눈을 떠 깜빡이다가 이내 다시 잠드는 삐약이를 보며 미소 지었다.
권태정과 연이겸, 그리고 삐약이. 단란한 세 가족의 오붓한 첫 시간이었다.
* * *
퇴원 후 권태정이 예약해 둔 아주 크고 유명한 조리원에 간 이겸은 삐약이와 동실을 할 때마다 너무 귀엽고 예뻐 조금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권태정도 그런 이겸의 옆에 붙어 앉아 이겸과 삐약이를 살폈다.
“우리 삐약이 맘마도 잘 먹네, 착해라.”
분유가 든 젖병을 기울여 물리니 쪽쪽 약한 힘으로 빨아 꼴깍꼴깍 삼키는 게 귀여워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겸은 조심조심 먹는 속도를 봐 가면서 삐약이에게 우유를 먹였다.
“이제 배불러?”
다 먹었는지 더는 빨지 않는 작은 입에서 젖병 꼭지를 빼낸 이겸이 우유가 묻은 입술을 살살 닦아 주었다.
“내가 소화 시켜 줄게.”
손을 내미는 권태정에게 조심스럽게 삐약이를 안겨 준 이겸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권태정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무척 커다란 사람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삐약이를 안고 있는 걸 볼 때마다 그게 훨씬 더 크게 다가와 자꾸 귀여워 웃음이 났다.
“나 엄청 어색해 보여?”
“어색해 보이는 건 아니고…. 삐약이는 너무너무 작고, 실장님은 너무너무 크시니까 그게 너무 귀여워요.”
한 손으로도 안정적으로 들 수 있을 것처럼 커다란 사람이 애지중지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니 마음이 간지러웠다. 커다란 손에서 힘을 완전히 빼고 등을 쓸어 주는 것도 좋고, 시선을 품에 안은 삐약이에게 주는 것도 다정해 너무나 좋았다.
“어쩜 이렇게 작지. 손이랑 발이 작은데 다섯 개씩 다 있어. 너무 신기해.”
우유 먹은 것을 소화한 삐약이가 권태정의 어깨에 늘어져 잠들었다. 며칠 새에 뽀얗게 살이 올라 통통해진 볼이 눌리며 작은 숨소리가 울렸다. 조심스럽게 삐약이를 쓸며 재운 권태정이 천천히 침대 위로 눕혔다. 우유를 양껏 먹고 얌전히 잠든 모습이 너무 귀여워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작은 코로 숨도 쉬고, 입으로 먹기도 한단 거 아냐. 우리처럼 목으로 먹은 게 넘어가고, 저 작은 배 안에 있을 것도 다 있단 거고.”
“네, 저 작은 귀로 소리도 듣고, 또 눈으로 보기도 하고….”
“내가 아빤 거 알까?”
“그럼요. 매일매일 보기도 했고, 또 배 속에 있을 때도 실장님 매일매일 삐약이랑 대화도 하셨잖아요. 우리 삐약이는 다 알 거예요.
“이겸이 널 닮아서 너무 예뻐.”
“제 눈에는 실장님 닮은 것 같아요. 코도 그렇고, 귀도 그렇고.”
“하얗고 보송보송한 게 완전 너야, 이겸아. 눈도 크고 예쁘고. 사람들이 볼 때마다 놀라잖아. 무슨 신생아 눈이 이렇게 크고 예쁘냐고. 이렇게 예쁜 아기 처음 본대.”
혹시라도 삐약이가 깰까 싶어 목소리를 죽여 말한 권태정이 이겸의 뺨에 쪽 입 맞췄다. 뽀뽀 한 번에도 사르르 예쁘게 웃는 얼굴이 좋았다.
“아…. 실장님, 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응, 뭔데? 뭐든 말해.”
“…그게….”
무슨 일인지 바로 말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는 이겸에 걱정이 앞선 권태정이 몸을 바로 세워 앉았다. 그리고 이겸의 손을 부드럽게 쥐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괜찮아.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파?”
“그게 아니라…. 남자 오메가는 모유가… 잘 안 나온다고 선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아, 응. 그랬지. 그래서 분유 먹이기로 한 거고.”
“…잘 안 나오고 해서 저도 그러려고 했는데…. 아침에… 씻으려고 하는데 옷이 살짝… 아주 살짝 젖어 있어서…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확실한 건 아니지만, 마사지를… 해 주면 더 나올 수도 있다고… 하셔서요….”
권태정은 지금 듣고 있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면서도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는지 계속 귀를 의심했다.
“…마사지?”
“네…. 한다고 다 나오는 건 아닌데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꼭 모유를 먹이고 싶거나 먹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나온 걸 보니까 혹시나 해서요.”
“아….”
“…혼자 하는 것보다는 남편이 해 주는 게 더 편할 거라고 하셔서… 실장님만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리고 싶어요.”
이겸의 입에서 나온 남편이라는 말에 잠시 어지러움을 느낀 권태정이 침음했다. 모유, 마사지, 남편, 젖이 나와 살짝 젖어 있었다는 옷까지 무엇 하나 충격적이지 않은 게 없었다.
“힘드시면 제가….”
“아냐, 힘들긴. 당연히 내가 해야지. 내가 우리 이겸이 남편인데. 어, 그런데 마사지는 어떻게 하는 거야? 내가 마음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아…. 생각 있으시면 연락 달라고 하셨어요. 선생님께서 알려 주신다고…. 연락드려 볼까요?”
“응. 내가 잘 배워서 해 줄게.”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조리원 담당 선생에게 전화하는 이겸을 보며 권태정은 어쩐지 조금 더운 것 같은 느낌에 손부채질을 했다. 아침에 제가 잠시 이겸이 먹고 싶어 하는 케이크를 사러 나갔던 사이에 이 모든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이겸의 입에 맛있는 걸 먹였으니 당연히 그 외출을 후회하지는 않지만, 젖에 옷이 젖은 걸 보지 못한 건 조금 아쉬웠다.
“실장님, 지금 선생님께서 올라오셔서 알려 주신대요.”
“아, 그래? 잘 배워야겠다. 좀 떨리네. 그런 건 한 번도 안 해 봐서.”
싱긋 웃은 권태정이 저를 보고 웃는 이겸의 뺨을 귀엽다는 듯 쓸며 조금 떨리기 시작한 숨을 내쉬었다.
마네킹을 가지고 와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을 들은 권태정은 어려운 게 있으면, 뭔가 잘 안되는 게 있으면 연락하라는 선생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마사지 방법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지만, 그걸 이겸에게 해 준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물론 성적인 의도를 가지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경건한 목표를 가지고 하는 것이니 묘한 기분이 드는 제가 쓰레기겠지만, 그래도 좀 그런 게 있었다.
삐약이까지 동실 시간이 끝나 신생아실로 돌아가고 나자 넓은 방 안에는 이겸과 저 단 둘만 남게 되었다. 둘이서만 있던 게 처음도 아닌데 마사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괜히 긴장이 됐다.
그리고 그건 저만 그런 게 아닌지 이겸도 말수가 적어지고 아까부터 제 눈치만 슬쩍슬쩍 보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게 더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면 그것 역시 제가 쓰레기여서일까. 권태정은 침대에 앉은 이겸에게 다가가 옆으로 올랐다.
“마사지… 지금 할까?”
“아…. 네….”
“얼른 손 씻고 올게.”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겸을 보며 일어난 권태정이 얼른 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가 손을 깨끗하게 씻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올라와 이번에는 이겸의 뒤쪽으로 앉았다.
“나한테 기대. 편하게.”
“…네….”
뒤에서 이겸을 감싸듯 팔을 두른 권태정이 헐렁한 조리원복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이겸은 고개를 숙여 단추가 하나씩 풀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권태정의 손끝이 아주 작은 단추를 톡, 톡 하나씩 풀 때마다 괜히 긴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