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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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잤어?”
자다 깨서 잔뜩 낮아진 권태정의 목소리에 이겸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이겸은 품에 얼굴을 묻은 채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아픈 데는 없고?”
지나치게 두근대는 마음에 생각도 잘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이겸의 머리 위로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생각 안 해 보고 그냥 끄덕인 것 같은데.”
“저, 정말… 아픈 데 없어요….”
“어디 보자.”
살짝 몸을 뗀 권태정이 어둠 속에서 이겸의 얼굴을 감쌌다. 보드라운 뺨을 만지다가 아래로 내려 목덜미를 쥐고, 어깨를 매만지다가 이불 안으로 손을 넣으니 이겸의 몸이 움찔댔다. 권태정은 그걸 알면서도 새벽까지 움직이느라 힘들었을 허리와 엉덩이를 쓸며 허벅지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
“…흣….”
부끄러워 이불 위로 얼굴을 파묻은 이겸을 보며 권태정은 느릿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매만지다가 통통한 회음부를 살짝 손끝으로 건드렸다. 허벅지가 꽉 조여들며 제 손을 가두는 그 압박감이 좋아 손을 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까지 이겸을 몇 번이나 깊게 안았는데 아침부터 또 몸을 활짝 열어 자지러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겸과의 섹스는 무척 좋지만, 그래도 섹스보다 이겸이 더 소중하고 좋은 이유였다. 세상에 이겸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자기야, 이렇게 예민해져서 어떡해. 큰일이네, 진짜. 집 밖에 나가면 안 되겠어. 그냥 이러고 평생 살자. 나도 회사 때려치울게.”
진지하게 말하지만, 저를 너무나 사랑하는 권태정의 장난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겸은 진지한 대답을 돌려주는 대신 그냥 고개 끄덕이는 것을 택했다. 권태정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누가 이렇게 예쁘게 굴랬어. 응? 진짜 좋아서 돌겠어. 진짜 회사 관둬야겠다. 어차피 가도 우리 자기 생각밖에 안 하는데.”
“그럼 실장님이랑 하루 종일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응. 그거 내 소원인데.”
“제 소원이기도 해요.”
제가 하는 다소 유치한 말에도 얌전히 예쁜 대답만 하는 이겸을 본 권태정이 길게 앓는 소리를 냈다. 정말이지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서 머리가 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존재가 있다는 걸 아직도 한 번씩 믿을 수가 없었다.
“고마워. 사랑해 줘서.”
“실장님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이에요. 언제 어떻게 만나든… 전 실장님을 아주 많이 좋아하게 됐을 거예요.”
“아…. 진짜 어떡해. 이겸아. 너무 좋아 죽겠는데.”
웃음 짓는 이겸을 품에 안은 권태정이 귓가와 목덜미 여기저기에 마구 입 맞췄다. 따뜻한 몸에서 나는 약한 복숭아 향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더 잘할게. 내 남은 삶은 다 널 위해 쓸 거야.”
“…….”
“그래야 나도 행복할 수 있으니까.”
“저도 더 잘할게요. 실장님 많이 많이 행복하실 수 있게.”
다시 앓는 소리를 낸 권태정이 완전히 이겸을 품에 가둬 안은 채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여기서 그냥 이러고 일주일 내내 있어도 행복할 거야.”
“저도요. 전 실장님만 계시면 어디서 뭘 하든 다 행복해요.”
“나도. 우리 이겸이만 있으면 돼.”
살짝 얼굴을 떼어 새벽까지 물고 빨아 살짝 통통해진 입술에 입 맞춘 권태정이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도 명색이 신혼여행인데 방 안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천천히 준비해서 가자. 마음 같아서는 멀리 가서 여행하고 싶은데 비행기 오래 타는 거 안 좋다니까 참아야지.”
“멀리 가는 여행은 다음에 가요. 삐약이 만난 다음에.”
“응, 그러자. 멀리 가서 길게 하는 여행은 조금만 기다렸다가 가고, 이번엔 얼마 전에 말한 리조트 가서 푹 쉬면서 놀다 오자. 풀빌라니까 수영도 하고.”
“풀빌라? 그…. 수영장 있는 거요?”
“응. 수영해 봤어?”
수영이 뭔지는 잘 알지만, 직접 해 본 기억은 전혀 없었다. 이겸은 조금 걱정이 된다는 듯 권태정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한 번도 안 해 봤어요…. 실장님은요?”
“요즘은 안 하는데 전엔 시간 나면 새벽에 가서 했어. 우리 호텔 수영장이 좋거든.”
“아….”
“걱정할 거 없어. 풀빌라에 뭐 경기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들어가서 놀면 돼. 아, 우리 자기 튜브 사 줘야겠다. 가라앉으면 어떡해.”
어린 애들이 튜브를 허리에 끼우고 물에 떠다니는 흔한 모습을 떠올린 이겸이 숨과 함께 웃음을 내쉬었다.
“실장님 계시니까 걱정 안 해요.”
“맞아. 뭐든 나만 믿으면 돼. 절대 힘들게 안 해. 잘못 되게도 안 하고.”
권태정이라면 절대 저를 힘들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프게도 하지 않을 거고, 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나게 가만히 두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이겸은 절대적으로 권태정을 믿었다.
“얼른 가고 싶어요. 실장님 수영하시는 것도 보고 싶고.”
“그럼 얼른 씻고 출발할까?”
“네에.”
“씻으러 가자, 우리 애기.”
씩 웃은 권태정이 이겸의 품으로 장난스럽게 얼굴을 파묻었다. 머리칼과 입술, 숨이 닿아 간지러운 느낌에 소리 내어 웃은 이겸이 장난기가 빠지며 지긋하게 닿는 시선을 마주했다. 스르륵 눈이 감기는 순간 다시 부드럽게 입술이 맞물렸다. 그 따뜻한 입술과 마주하고, 또 마주해도 마냥 좋은 혀를 머금으며 이겸은 행복에 폭 잠겼다. 권태정을 향한 사랑의 미열에 온 마음이 달아오른 채.
* * *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부터 이겸은 수능 준비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아 공부를 한다는 게 어색하지는 않았으나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속마음을 털어놓은 지 일주일 뒤, 권태정은 이겸에게 3개월 동안의 속성 과외를 제안했다.
이겸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은 아주 유명한 학원 강사였다. 현재 더 좋은 조건으로 학원을 옮기기 위해 그 어디에도 소속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권태정은 그 선생의 3개월을 어마어마한 돈에 샀다. 이겸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 덕분에 이겸은 일주일에 네 번씩 하루 세 시간 동안 과외를 하며 수능 준비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겸이 공부를 하는 사이 배도 점점 더 불러왔다. 처음에는 조금 헐렁한 티셔츠를 입으면 배가 부른 티가 나지 않았지만, 임신 6개월에 접어든 지금은 벙벙한 옷을 입어도 배 부분이 살짝 떴다.
그게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 몸이 평소와 점점 달라지는 게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또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저도 이런데 권태정도 이런 제 모습을 보면 낯설게 느껴질 것 같아 그것도 걱정이 됐다. 이겸은 책상에 닿는 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자기야, 공부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냐? 무리하면 안 되는데.”
“아…. 괜찮아요. 너무 힘들지 않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재미도 있고 좋아요.”
“그럼 다행이고. 선생이 뭐 불편하게 하는 건 없고?”
“네, 그런 거 없어요. 너무너무 잘해 주세요. 모르는 거 정리해 두면 설명도 다 해 주시고, 문제도 다 뽑아 주시고 너무 좋아요.”
집에 다른 사람을 들이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으나 여자에 베타,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이라 이겸의 곁에 둘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중에 뭐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었더라면 감히 이겸과 단둘이 둘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공부하는 게 뭐 그렇게 좋다고 그렇게 귀엽게 말해. 진짜 우리 자기 귀여워서 어떡하지. 그런 거 알려 주는 강사는 없나.”
“그, 그건… 실장님께서 절 좋게 봐 주시니까 그런 거예요. 다른 사람들 눈엔 안 그래요.”
“자기야. 자기는 거울 보면서 무슨 생각해?”
“…거울 보면서요? 음, 아무 생각도 안 해요. 그냥…. 내 얼굴이구나?”
“한 번도 다른 생각해 본 적 없어?”
“가끔….”
“응, 가끔.”
뭔가 바라는 답이 있어 보이는 권태정의 얼굴을 보면서도 이겸은 그가 원하는 답이 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울거나 피곤한 날 거울 보면 못생겼다고 생각할 때는 있어요.”
“어떻게 이 얼굴을 보고 못생겼다고 생각하지.”
“…눈도 붓고, 피곤해서 퀭하면 이상해 보여서….”
“내 얼굴은 어떻게 보여?”
그 질문에는 생기가 확 도는 이겸의 얼굴을 보며 권태정은 작게 웃었다. 하여튼 귀여워서 살 수가 없었다.
“실장님은 너무너무 잘생기셨어요. 처음 봤을 때도 진짜 잘생기셨다는 생각 들었고, 그 뒤로 지금까지 언제 봐도 늘… 너무너무 멋있으시고 잘생기셨어요.”
“나 잘생긴 건 아는데 너 예쁜 건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자기야, 진짜 자기가 얼마나 예쁜데. 그때 그 고양이 친구란 새끼도 껄떡대고 난리였잖아. 그것 뿐이야? 얼마 전에 카페 갔을 때도 나 전화하는 사이에 그 씨….”
제가 잠시 통화를 하는 사이에 다가와 이겸에게 연락처를 묻던 놈을 떠올리며 욕을 하려던 권태정이 겨우 진정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 웃기지도 않은 놈이 와서 껄떡댔잖아. 너무 예쁘시다면서. 진짜 죽여 버리려다가 겨우 참았는데. 하…. 또 생각하니 빡치네.”
인상을 쓰는 권태정의 얼굴을 가만히 보던 이겸이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잡고 뺨을 살살 쓸어 주었다. 권태정은 조금 더 고개를 앞으로 기울이며 키스를 졸랐다. 그걸 알아들은 이겸은 부끄러워 잠시 입술을 꾹꾹 깨물다가 고개를 기울여 권태정의 입술에 간지러운 소리가 나도록 입 맞췄다.
“온갖 새끼들이 다 꼬이고도 남을 얼굴이니까 이제 그거 알고 조심해야 돼. 대학 가면 진짜 별 새끼들이 다 있을 텐데…. 하, 우리 자기 이렇게 착하고 순해서 버틸 수 있을까.”
권태정은 조금도 장난이 아니었지만, 그것을 약간 장난스럽게 받아들인 이겸이 생긋 웃으며 다시 권태정의 입술에 쪽, 쪽 뽀뽀했다. 그 뽀뽀가 기분 좋아 책상을 짚은 채 몸을 숙여 내내 입술을 대고 있던 권태정이 못 견디겠다는 듯 이겸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