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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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먹어. 나도 먹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정말 잘 먹는다는 걸 보여 주려 새우를 잘라 입에 넣은 권태정이 싱긋 웃었다. 이겸은 그제야 마음을 놓고 스테이크를 한 조각 더 입에 넣었다.
“우리 이제 결혼도 했고 부부잖아.”
“…부부….”
“응, 부부.”
부부라는 말을 이제 처음으로 알게 된 것도 아닌데 그 말이 저와 권태정을 지칭하게 되었다는 게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다. 이겸은 심장이 간지러운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많이 사랑하고, 또 우리 이겸이가 너무 착해서 싸우거나 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보니까 당연히 같은 걸 보고 다르게 해석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때론 그게 서운하거나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상처를 주려는 의도가 전혀 아님에도.”
“네….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걸 최대한 줄이려면 정말 서로 숨기는 거 없이 얘기도 많이 하고, 서운하면 서운하다, 속상하면 속상하다 전부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겸이 네 생각은 어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혼자 마음에 담아만 두면…. 상대는 그걸 바로 다 알 수가 없으니까….”
아니, 진짜 어떻게 말하는 게 저렇게 예쁠 수가 있지. 권태정은 이겸이 말을 하면서 입술을 달싹일 때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응, 그렇지. 난 우리 이겸이 마음 다 알고 싶거든.”
“…저도요. 실장님 마음 전부 알고 싶어요.”
“아, 그런데 그건 좀 그럴 수도 있어. 자기 볼 때마다 속으로 진짜 인간 같지 않은 생각…. 음, 우리 이겸이 도망갈 생각 많이 하거든. 그거 봐도 괜찮아?”
잠시 그게 뭘까 생각하는 듯 고개를 갸웃대던 이겸이 이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저도…. 그, 그런 생각 아예 안 하는 건 아니니까….”
“정말? 자기도 막 내 얼굴만 봐도 자지 빨고 싶고 그래?”
“…네?”
“인간 같지 않은 생각이라고 했잖아. 농담으로 한 말 아닌데.”
“…저, 저는…. 그런 정도는 아니고….”
“응, 그런 정도는 아니고.”
부드럽지만 대답을 할 수밖에 없게 몰아가는 것에 이겸은 당황해 입술을 달싹이다가 작게 목소리를 냈다.
“…실장님… 얼굴을 보면 가, 같이… 했던 게 떠오를 때도 있고…. 그게 떠오르면 그때 어땠었는지 생각이 나기도 해서….”
“그때?”
“……실장님이랑… 할 때….”
“아, 섹스할 때.”
“…네….”
이렇게 자세히 말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얼결에 말해 버린 이겸이 갑자기 열이 오르는 느낌에 손부채질을 했다.
“더 물어보고 싶은데 지금 물었다간 식사 못할 거 같으니까 참아야지.”
“…물어보셔도 돼요.”
“일단 식사 다 하고. 말하다 보면 꼴릴 거 같아서 지금은 안 되겠어. 밥도 안 먹이고 섹스만 해 대는 거 싫어.”
이번에는 샐러드에 든 과일을 먹여 주자 이겸이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권태정은 손에 포크를 든 채 아까부터 제가 주는 것만 먹고 있는 이겸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저를 따라 눈까지 접어 가며 웃는 사랑스러운 얼굴에 아예 소파 뒤로 몸을 기대고 고개까지 젖혀 눈을 감았다. 이럴 수는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단 말인가.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실장님, 어디 아프세요?”
“아픈 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우리 이겸이 사랑스러운 거야 진작 알고 있던 건데 뭐 이렇게 새삼스럽게 좋아 죽겠지?”
그 말이 좋았는지 이겸의 입술 위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부서졌다. 권태정은 간질간질한 웃음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이겸을 한 팔로 감싸 안았다. 당연하다는 듯 어깨 위로 얼굴을 대고 비비적댈 때마다 그 어떤 디저트보다도 달콤한 복숭아 향이 주변으로 퍼졌다. 권태정이 가장 좋아하는 이겸의 향이. 권태정은 진심으로 행복했다. 세상에 부러운 게 단 하나도 없을 만큼. 그리고 이겸도 그러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권태정의 누나가 선물한 입욕제는 향긋하면서도 마음이 참 편해지는 향이었다. 이겸은 연한 분홍색으로 물든 물을 손으로 몇 번이나 가두었다가 흘리는 것을 반복했다. 어린애처럼 물장난을 치는 이겸을 보며 권태정은 물이 따뜻해 여기저기 발갛게 달아오르고 상기된 귀 끝과 뺨 같은 곳을 눈에 담았다.
“이겸아. 넌 내가 뭐 고쳤으면 좋겠다 그런 거 없어?”
생각도 깊게 안 해 보고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이겸에 웃은 권태정이 다시 생각해 보라는 듯 빨간 귀 끝을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정말 없어?”
“음…. 저한테 돈 너무 많이 쓰시는 거…?”
“그런 적 없는데. 다 필요해서 쓴 거지.”
“옷이나 신발, 또…. 전에 빚 갚아주신 것도 그렇고…. 돈 너무너무 많이 쓰셨잖아요. 아, 그 전에 저한테 주신 돈도 있고….”
“나 진짜 네 눈치 보면서 최대한 적게 쓴 건데.”
“…정말요?”
“응. 옷도 자기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히 편한 옷으로 섞고, 신발도 그렇고.”
고개를 돌려 장난이 전혀 묻지 않은 권태정의 얼굴을 보며 이겸이 입술을 퐁 벌렸다. 제가 보기에는 정말 비싼 가격인데 아무래도 권태정에게는 그게 적당히 조절을 해야 나올 수 있는 가격인 모양이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또 버는 규모가 다르고 당연히 씀씀이도 다를 테니 이해하려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앞으로도 뭐든 돈으로 해 줄 수 있는 건 최고로 다 해 주고 싶은데…. 안 돼?”
“…너무 죄송해서요….”
“우리 이제 부부잖아. 내가 가진 모든 건 다 우리 이겸이 거야. 아니면 그냥 내가 가진 거 다 우리 이겸이 이름으로 바꿀까? 그게 좋겠다. 회사 지분이랑 건물들이랑…. 어, 또….”
당장 내일이라도 정말 실행할 것 같은 얼굴에 더 놀란 이겸이 얼른 손을 들어 저었다.
“그런 거 안 주셔도 돼요…. 전 그냥 실장님만 저랑 같이 계셔 주시면 되는데….”
부드러운 입욕제 향이 묻은 이겸을 뒤에서 안은 권태정이 어깨 위로 턱을 대고 귓가에 입술을 묻은 채 속삭였다.
“해 주고 싶은 게 많아. 같이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뭐든 다 할 수 있고, 해 줄 수 있는 힘이 나한테 있어서 난 좋아. 이겸이 네가 뭔가 하고 싶다고 할 때 망설이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돈으로 해결을 해 주든 환경을 만들어 주든 뭐든 다 해 줄 수 있어서 너무 좋거든, 난.”
“…….”
“원하는 건 뭐든 다 하게 해 주고 싶어. 내 옆에서 내 사랑 받으면서 또 날 사랑하면서 하는 거면 뭐든지 이루게 해 줄 거야.”
귓속으로 파고드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따뜻하고 진중했다. 묵직한 힘이 묻은 목소리가 이겸의 몸속으로 들어가 심장 위로 침잠해 사랑과 마구 뒤섞여 한 몸이 되었다. 권태정의 진심 하나가 또다시 이겸의 사랑을 더욱더 단단히 만들었다.
“내가 그럴 능력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능력 충분히 있잖아. 대신 차 사고 싶다고 수십 대씩 사서 모셔 놓고 이런 건 자제할게, 앞으로.”
“…실장님 차 좋아하시잖아요.”
“괜찮아. 우리 이겸이를 더 좋아하니까. 차 그딴 거 안 사도 돼.”
“저는 실장님께서도 좋아하시는 건 다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겸은 물 안으로 손을 넣어 제 배 위에 얹힌 권태정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그리고 단단한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얽었다.
“…제 옆에서… 제 사랑만 받아 주신다면 뭐든지….”
조금 전 제가 한 말을 따라 하는 이겸의 빨개진 목덜미를 시선만 내려 바라본 권태정이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씨발, 진짜 귀여워 죽겠네. 정말 욕을 제대로 끊고 싶은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올 때면 미칠 것만 같았다.
“그건 당연하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네 옆에서 네 사랑만 받고 살라고 해도 그럴 수 있어. 아니, 그럴 거야…. 이겸아, 제발 그러라고 해 주면 안 돼? 나 좀 가둬 주라.”
이겸의 몸을 가두듯 두 팔을 들어 손목을 붙인 권태정이 뒤에서 슬쩍 더 붉어진 귓불을 혀끝으로 건드렸다. 눈에 뜨이게 움찔대는 어깨조차 사랑스러웠다.
“평생 자기가 하라는 대로 다 할게. 우리 이겸이한테서 나오는 물만 먹고 살래도 그럴 수 있어.”
“…아….”
야하게 귓불을 핥다가 살짝 깨무는 느낌에 이겸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이겸은 제 배 위를 물 안에서 문지르는 손길을 내려다보며 입술 안쪽을 꾹 깨물었다. 귓가에 묻는 목소리와 배를 은근히 매만지는 손길만으로도 아랫배가 이상했다. 머리는 벌써 권태정이 안을 꽉 채워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아….”
요즘의 저는 확실히 조금 이상했다. 얼마 전에 그리 절제되지 않은 느낌의 섹스를 충분히 했는데도 또 이렇게 그 감각을 머금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건가 싶었다. 그것도 전에 비해 너무나 노골적인 모습의 쾌감이었다.
이겸은 등을 권태정의 너른 품으로 기대며 어깨 위로 머리를 댄 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제 얼굴 위로 쏟아지는 권태정을 마주 보며 눈을 감았다. 곧 뜨겁게 맞물린 입술 사이에서 혀가 정신없이 뒤엉켰다.
“으응….”
혀가 문질리고 빨리며 울리는 젖은 소리와 함께 몸이 움찔댈 때마다 물이 출렁이며 욕조 밖으로 넘쳤다. 열이 오른 몸에 닿는 물이 조금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출렁이며 유두를 건드리는 것도, 또 달아오른 성기가 더 뜨겁게 느껴지는 것도 기분이 너무나 이상해 다급히 권태정의 팔을 잡았다. 여기서 나가고 싶었다.
“물이…. 하아, 물이 너무 뜨거워요.”
“네 몸이 더 뜨거워, 이겸아.”
귀에 달라붙어 파고드는 물보다 뜨거운 목소리에 이겸의 허리가 비틀렸다. 목소리만 더 들어도 사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으응…. 실장님, 하아…. 나가고, 싶어요…. 너무, 흣, 물이 너무 뜨거워서….”
이대로 물에 더 있다가는 몸이 녹거나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겸은 다시 한번 권태정의 팔을 흔들었다. 잔뜩 달아올라 눈동자까지 풀린 이겸을 본 뒤에야 권태정은 이겸이 제 생각보다 훨씬 더 흥분해 버렸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