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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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소년>
결혼식이 끝나고 가족들을 배웅한 뒤 호텔 스위트룸으로 올라간 이겸은 권태정이 룸서비스를 주문하는 동안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권태정의 배려로 딱히 크게 힘든 건 없었지만, 긴장이 풀려 그런지 너무나도 쉽게 머릿속이 멍해졌다.
“이겸아, 내가 미리 말해 둔 메뉴들이 있는데….”
혹시라도 못 먹겠는 음식이 있을까 싶어 물어보려 고개를 돌린 권태정은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겸을 보며 작게 웃음 지었다. 그리고 통화 중이던 레스토랑 지배인에게 말한 대로 준비해 방으로 올려 달라 조용히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결혼을 앞두고 잔뜩 긴장해 며칠이나 잠을 설쳤으니 졸린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권태정은 앞으로 기울어지는 이겸의 고개를 살짝 밀어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작게 앓는 소리와 함께 권태정에게 편히 기댄 이겸의 몸에서 느릿하게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우리 애기는 어떻게 자는 것도 이렇게 예쁘지. 이렇게 예쁜 애가 나랑 결혼했다니…. 너무 벅차올라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참은 권태정이 이겸의 머리칼에 가볍게 입 맞췄다.
룸서비스가 오기 전에 깨서 맛있는 걸 좀 먹고 자면 좋겠지만, 혹시 깨지 않고 이대로 아침까지 잔다고 해도 굳이 깨우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깟 룸서비스야 내일 아침에 다시 준비해 먹이면 되기 때문이었다. 권태정은 다시 이겸의 머리칼에 입 맞추다가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진동에 놀라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돌팔이에게 온 메시지가 떠 있었다.
[돌팔이 : 태정아 나 오늘 네가 쓴 편지 내용 듣고 울었잖아]
[그걸 내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돌팔이 : (동영상)]
조현준이 보낸 8분 조금 넘는 동영상은 제가 이겸에게 쓴 편지를 읽고 있는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권태정은 영상 속에 보이는 편지를 읽는 제가 아니라 제 앞에 서 있는 이겸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아까 글을 읽으면서도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글자를 보느라 잠깐씩 표정을 놓친 게 아쉬웠는데 이렇게 보니 놓치는 거 없이 쭉 이겸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물론 결혼식을 예쁘게 담아 준 영상이 나중에 편집되어 오면 이것보다 더 예쁘게 볼 수 있겠지만, 어쩐지 지금은 조금 흔들리기도 하고, 훌쩍이는 소리도 같이 녹음이 된 제 친구의 영상이 더 마음에 들었다.
“…….”
화면 속 이겸은 내내 저를 보고 있었다. 잠시도, 정말 잠시도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제가 이겸아, 안녕. 인사를 할 땐 놀란 얼굴로 보다가 점점 울먹이는 게 보였다. 아, 저 때 저런 얼굴을 했었구나.
펑펑 울고 싶은 얼굴로 저를 보다가 울음을 꾹 참고 입술을 올려 웃는 얼굴을 볼 땐 권태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사실 저도 아까 편지를 읽으면서 몇 번이나 울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종이에 두었던 시선을 들면 저를 보고 있는 이겸과 눈이 마주치는 게 너무나도 좋아서, 저를 보고 울지 않고 웃는 이겸이 사랑스러워서. 마주한 채 서 있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해서.
“으음….”
어깨 위에서 따뜻함이 움직이는 느낌에 놀란 권태정이 얼른 고개를 기울여 느릿하게 눈을 뜨는 이겸을 바라보았다.
“우리 애기 일어났어?”
“실장님…. 저 얼마나 잤어요? 아침이고 그런 건 아니죠?”
권태정은 혹시 제가 너무 오래 잤을까 봐 잔뜩 걱정하는 얼굴을 한 이겸을 보며 웃음 지었다.
“얼마 안 됐어. 삼십 분도 안 됐을걸?”
“정말요? 아…. 다행이에요. 너무 오래 잤을까 봐 걱정했는데….”
“며칠 잠 설치기도 했고, 긴장도 풀려서 피곤할 거야. 잠 오는 거 당연하지. 졸리면 자도 돼.”
“그래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요. 실장님이랑 결혼한 날이니까…. 얘기도 많이 많이 하고, 또….”
“또? 얘기 많이 하고 또 뭘 하고 싶을까, 우리 자기는.”
장난기가 번진 소년 같은 얼굴을 본 이겸의 뺨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이겸은 권태정의 어른스러운 모습에도 약하지만, 종종 보이는 싱그러운 소년 같은 웃음을 볼 때면 마음이 녹아내리는 걸 느끼곤 했다. 꼭 심장이 버터로 만들어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첫날밤이니까 그냥 자면 아깝긴 하다, 그치. 우리 이겸이 오늘 엄청 기다렸잖아.”
“…그, 그런 이유로만 기다린 건 아니에요….”
“아, 다른 이유도 있구나.”
완전히 달아오른 얼굴 가까이로 온 권태정이 쪽, 쪽 소리가 나게 이겸의 뺨과 입술 여기저기에 마구 뽀뽀했다. 눈에만 담기에는 이겸이 지나치게 사랑스러웠다. 당장 입 맞추고, 또 당장 만지지 않으면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자기야, 섹스하는 게 그렇게 좋아?”
조금도 돌려 말하지 않고 노골적으로 확 꽂히는 말에 이겸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동안 섹스를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권태정과 하는 그 따뜻하고 다정하면서도 기분 좋은 것들을 좋아하는 것도 맞지만…. 섹스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용기는 솔직히 없었다.
“결혼까지 했는데도 부끄러워?”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는 이겸을 보고 소리 내어 웃은 권태정이 입술 앞으로 귀를 대 주었다.
“좋으면 뽀뽀.”
“…….”
그 정도 표현이야 어려운 일이 아니기에 이겸은 얼른 고개를 기울여 권태정의 귓가에 살짝 입 맞췄다. 귓속으로 파고드는 간지러운 울림에 권태정이 어깨를 움찔댔다. 장난으로 시작한 건 전데 조금만 더 했다가는 장난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조금 자제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밥도 맛있게 먹여야 하고, 또 오늘을 위해 준비한 아주 향긋한 입욕제를 푼 욕조 안에서 따뜻하게 몸도 풀어 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분 좋은 시간을 섹스 하나와 바꿀 마음은 없었다. 몇 시간 뒤로 미룬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권태정은 제 앞에 놓인 모든 행복을 이겸과 누리고 싶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곧 저녁 올라올 거니까 맛있게 먹고 씻자. 여기 욕조 크고 좋아.”
“네, 좋아요.”
순해서는 제가 하는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이겸이 지나치게 사랑스러웠다. 권태정은 못 견디겠다는 듯 이겸을 아프지 않게 끌어안고 얼굴 여기저기에 쪽, 쪽 입 맞췄다.
“씻은 다음에는 우리 자기가 좋아하는 섹스도 하고.”
장난스러운 목소리와 시선에 놀라 멍하니 보던 이겸이 놀리지 말라는 듯 권태정의 입술 위를 손바닥으로 살짝 막았다.
“오늘 우리 첫날밤이잖아.”
손바닥에 눌린 채 움직이는 입술은 무척 간지럽고 뜨거웠다. 괜히 묘한 기분이 들어 어깨를 움츠린 이겸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내려 숨겼다. 손바닥 위에 아직도 권태정의 입술이 닿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어쩐지 오늘따라 자꾸 눈을 마주치는 것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떠오른 순간 벨 소리가 들렸다.
“저녁 왔나 봐. 내가 문 열어 줄게.”
이겸의 뺨을 부드럽게 만진 권태정이 일어나 멀어졌다. 이겸은 물끄러미 멀어지는 권태정의 뒷모습을 보며 달려가 안고 싶다 생각했다. 저를 두고 어디론가 가 버리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히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세팅은 어디로 해 드릴까요?”
“거실에 해 주세요.”
이겸이 있는 스위트룸 거실로 와 인사한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음식과 꽃을 세팅했다. 곧 이겸이 앉아 있는 소파 앞 커다란 테이블 위로 먹음직스러운 음식들과 예쁜 장식들이 가득 찼다.
“고맙습니다.”
“결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실장님. 두 분 행복한 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권태정과 이겸에게 모두 인사한 직원들이 조용히 거실을 빠져나갔다. 문이 멀리서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권태정은 이겸의 옆으로 앉아 커틀러리를 들었다.
“배고팠지. 저녁도 못 먹고. 요즘 잘 먹는 걸로만 준비했는데 먹을 수 있겠어?”
이겸은 테이블 위에 놓인 스테이크와 랍스터, 새우 요리와 파스타, 수프 같은 것을 바라보았다. 그 옆으로는 5단으로 된 예쁜 그릇들에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도 있었지만, 일단은 따뜻하고 맛있어 보이는 메인 음식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결혼식을 하느라 긴장을 해 뭘 제대로 먹지 못하기도 했고, 또 권태정의 말대로 요즘 제가 늘 자주 먹고 싶고, 맛있게 먹는 것들 뿐이라 더 그랬다.
“네, 다 맛있을 것 같아요.”
“뭐부터 먹을까? 먹여 줄게.”
“제가 먹을게요. 실장님도 오늘 뭐 못 드셨잖아요. 아침에도 저 챙겨 주시느라 거의 안 드시고….”
“우리 자기 먹여 주고 나도 먹을게. 뭐 줄까?”
포크를 들고 가볍게 흔드는 권태정을 가만히 보던 이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웃고는 스테이크를 가리켰다. 그에 얼른 스테이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썬 권태정이 이겸의 입에 넣어 주었다.
“너무 맛있어요. 실장님도 드세요.”
“응, 나도 먹을게.”
제가 먹나 안 먹나 보고 있는 이겸이 사랑스러워 스테이크가 아니라 이겸의 입술과 눈물, 그리고 다리 사이에서 나오는 물 같은 것을 먹고 싶었지만, 권태정은 일단 이겸을 위해 저도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이겸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픈 이유였다.
“이번에는 뭐 줄까?”
“음…. 파스타 먹어 보고 싶어요.”
“네, 파스타.”
이겸이 먹기 좋도록 적당하게 포크로 둘둘 말아 올린 권태정은 혹시 떨어질까 싶어 밑에 손까지 받친 채 이겸에게 먹여 주었다. 이겸은 배 속에 있는 삐약이보다도 더 애기처럼 저를 대하는 권태정을 보며 웃었다.
“이제 제가 먹을게요. 실장님도 편하게 드세요. 저만 먹으면 속상해요…. 전 실장님도 잘 드시는 게 좋아요.”
“알았어. 우리 이겸이 속상하면 안 되지.”
어쩔 수 없이 이겸에게 새 포크를 쥐여 준 권태정이 스테이크를 마저 먹기 좋게 다 썰었다. 그리고 먹기 좋게 껍질이 다 까진 새우 요리도 꼬리까지 자른 다음 이겸의 앞으로 놓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