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식사를 다 하자 테이블 위로 근사한 디저트가 놓였다. 권태정은 커스터드 푸딩을 보고 좋아하는 이겸을 보다가 몰래 가방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실장님, 푸딩 너무너무 맛있어요."
"그래?"
제 앞에 놓인 푸딩을 한 입 먹은 권태정이 테이블 아래에서 반지 케잇를 매만졌다. 이겸을 볼 때면 늘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고 늘 떨린다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좀 심했다. 결혼 이야기를 하는 게 처음도 아닌데 목이 타들어 갈 것만 같았다.
"...실장님 혹시... 제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어? 아냐, 이겸아. 그런 거 아니야."
"제가 잘못한 게 있거나 실수하는 게 있으면 꼭 말씀해 주세요.... 잘못된 건 전부 고칠게요."
"아니야, 이겸아, 진짜 그런 거 아니야. 없어. 이겸이 네가 잘못하고 실수하는 게 뭐가 있어. 그런 건 경솔한 나나 하지, 우리 자기는 진짜 잘못하는 거 하나도 없어."
“.………계속 말씀을 못 하셔서 혹시 제가 들으면 기분 나쁠까 봐 고민하시는 건가 해서요……”
조금 시무룩해진 이겸의 얼굴을 보고 아차, 싶어 반지 케이스를 꽉 쥔 권태정이 아예 이겸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오해가 더 생기기 전에 이제는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 사실 내가 고민하는 일이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인데…. 난 이 일을 진짜 멋있게 해내고 싶어. 내가 멋있게 잘해서 상대도 절대 잊지 못하도록 그렇게 멋있게 최고의 순간을 만들고 싶거든."
"......"
"그런데 어떻게 해야 최고의 순간을 만들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어려워….”
가만히 권태정의 말을 듣던 이겸이 푸딩을 먹다가 물고 있던 스푼을 내려놓고 몸을 돌려 시선을 마주했다.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그게 뭐든 실장님의 그 마음만 보이면 되지 않을까요? 실장님은 늘 아주 작은 일, 음….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별거 아니라 생각해서 넘길 수 있는 일도 늘 다정하게 대해 주시고, 진심으로 바라봐 주시잖아요."
"내가 그래?"
“네, 실장님은 그런 분이세요. 아주 작은 일에도… 진심을 보여 주는 분. 그러니까 고민하시는 그 일도 실장님이 늘 해 오신 것처럼.… 진심을 담으시면 분명히 멋있게 해내실 수 있을 거예요.”
할 수 있다고 양손을 주먹까지 쥐어 올려 응원하는 이겸을 보고 웃은 권태정이 다시 한번 심호흡한 뒤 테이블 아래 숨기고 있던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제대로 한 번에 했으면 좋았겠지만 내 마음이 급해서 이렇게 몇 번이나 나눠서 하게 됐네.”
"......"
“아, 무릎.”
자리에서 일어난 권태정이 이겸의 앞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푸른 반지 케이스를 열어 내밀었다.
"실장님..."
“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 이겸이 널 사랑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랑에도 형체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 늘 막연하기만 하던 감정을 이제는 매 순간마다 느껴"
"......"
"사랑해. 이겸아."
"......"
“평생 나랑 행복해 줘."
한 번씩 떨림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이겸이 울먹였다. 평생 같이 행복해 달라는 말이 마음에 확 닿아 흔적도 없이 스며들었다. 이제 정말 저의 평생은 권태정의 것이었다.
“실장님도… 저랑 꼭 행복해 주세요.”
저보다 낮은 곳에서 말하는 권태정을 향해 몸을 기울인 이겸이 두 손으로 얼굴을 부드럽게 쥐고 입술을 마주했다. 가볍게 마주 물린 입술 사이에서 동시에 미소가 번졌다.
"이제 얼른 일어나세요, 실장님. 다리 아프시잖아요…”
"괜찮아. 일어나기 전에 이거 끼워 주고 싶어."
반지 케이스에서 더 작은 사이즈의 반지를 꺼낸 권태정이 하얗고 예쁜 이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네 번째 손가락에 가만히 사랑을 놓았다. 다행히 반지는 이겸의 손가락에 아주 예쁘게 맞았다.
"마음에 들어?"
"네, 너무너무 예뻐요….”
그제야 안도하며 씩 웃은 권태정이 한쪽 무릎을 구부려 끓고 있던 다리를 펴 의자에 앉았다. 마음에 드는지 손가락에 있는 반지에서 눈을 못 떼는 이겸을 보니 웃음이 났다.
"저도 실장님 끼워드리고 싶어요….”
"응, 끼워 줘."
권태정은 이겸에게 얌전히 손을 내밀었다. 반지가 반짝이는 예쁜 손이 제 손을 잡고, 제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 위에 사랑을 놓아 주는 이겸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자꾸만 부풀었다. 이겸이 너무 좋아서 정말 펑펑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요즘의 권태정은 감정이 더욱더 극에 달해 이점을 보기만 해도 사랑의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이겸과 각인해 감정이 동기화 되며 입덧처럼 나타나는 감정 기복이 아닐까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단순한 기복이 아니라 사랑을 하게 된 저의 진짜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는 중이었다.
"고마워. 우리 이겸이가 끼워 줘서 더 예쁘다.”
같은 모양의 반지가 끼워진 손을 겹쳐 나란히 보이게 놓은 권태정이 웃음 지었다.
"사진 찍을까?"
“네, 제가 찍을게요."
얼른 휴대폰을 꺼낸 이겸이 다시 손을 겹치고는 반지가 나란히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휴대폰 화면으로 봐도 같은 반지가 반짝이는 손이 참 예뻐서 몇장이나 더 찍은 이겸은 권태정이 있는 쪽으로 의자를 당겨 가까이 붙어 앉았다.
“앞으로는 사진 많이 찍자. 같이 보내는 시간 전부 남기고 싶어."
"네, 좋아요.”
소리 없이 환하게 웃은 이겸의 얼굴이 다가오는 것에 권태정이 고개를 기울였다. 이겸의 머리 위로 가볍게 머리를 기대자 화면 속 이겸이 또 웃었다. 그리고 그 웃음을 영원히 가두며 행복한 순간이 저장되었다. 결코 사라지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의 사랑이.
***
결혼을 하루 앞두고 본가에서 이른 저녁을 먹은 이겸은 권태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혼식에 참석할 하객들에게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보자는 답을 여러 개 받은 뒤에야 권태정과 함께 따뜻한 물이 가득한 욕조에 들어갔다. 욕조 안에서 나누는 하루 동안 쌓인 소소한 이야기는 마음이 간지러울 만큼 즐거웠다.
열 시가 넘어서는 침대에서 향긋한 차를 마시며 서로 가벼운 장난을 쳤다. 그리고 장난처럼 뽀뽀를 하다가 더 깊어지고 싶어 키스를 나누고, 결국은 그보다 더 깊어져 반쯤 남은 차가 완전히 식어 차가워질 때까지 조금도 떨어지지 않기도 했다.
자정이 다 됐을 땐 내일 결혼식을 위해 억지로 눈을 감았지만, 이겸은 오늘 따라 또렷한 정신에 한참이나 잠들지 못했다.
"이겸아, 잠 안와?"
이겸과 마찬가지로 잠들지 못하고 있던 권태정은 눈만 감고 있는 이겸의 뺨을 쓰다듬었다. 이제는 숨소리만 들어도 이겸이 잠들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었다.
"내일이 결혼식이라고 생각하니까…. 뭔가 긴장도 되고, 떨려서 잠이 안 와요.”
"나도, 너무 좋은데 또 그만큼 떨리기도 하고."
“실수하면 안 되는데…. 걱정이에요."
“어려운 거 없어서 괜찮을 거야. 설명 들은 것처럼 처음에 들어오라고 하면 같이 손잡고 들어가고,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그리고 실수 좀 하면 어때. 그럴 수도 있지."
이겸의 손을 잡아 반지가 있는 손가락 위에 입 맞춘 권태정이 괜찮다는 듯 웃음 지었다. 결혼식을 잘 보내고 싶어 걱정하고 고민하는 게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마음이 다 저릿했다. 이대로라면 식장이 아니라 병원에 가야 할지도 모를 정도로.
"떨리면 같이 걷는 연습해 볼까? 사람이 긴장하면 왜 걷는 것도 어색해지잖아.”
권태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얼른 몸을 일으켰다. 권태정은 빠른 움직임으로 침대를 벗어나 문밖으로 나가는 이겸을 보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얼른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입장길 입구에 서서 기다리면 진우가 사회 보니까 입장하라고 말해 줄 거야. 그럼 그때 같이 손잡고 들어가면 돼.”
본식이라 생각하며 손을 들어 내밀자 그 위로 이겸의 손이 놓였다. 권태정은 다정히, 하지만 절대 풀리지 않도록 손을 쥔 채 함께 거실로 발을 맞춰 걸었다.
"내일도 이렇게 걷기만 하면 돼. 복잡한 절차 우리 다 뺐잖아. 들어가서 읽으라는 거 읽고, 하라는 것만 하면 되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있잖아."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거실 끝까지 가 권태정과 함께 몸을 돌렸다. 그냥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긴 게 전부지만, 그와 같이 먼저 해 봤다는 이유 하나로도 마음이 많이 놓였다.
"자, 그럼 이제 다시 방으로 가자. 가서 삐약이 자리 만져 줄게. 쓰다듬어 주는 거 좋아하잖아."
침실로 돌아가기 전 몸을 기울여 내려 이겸과 가볍게 입술을 마주해 뽀뽀한 권태정이 천천히 다시 걸음을 옮겼다. 엇갈리고 싶지 않아 이겸의 걸음에 맞춰 평소보다 보폭도 좁게 하고, 속도도 줄여 걷는 이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전에는 가만히 있기만 해도 잠이 막 쏟아졌는데…. 오늘은 진짜 이상해요.”
"자야지, 자야지, 계속 생각하면 더 잠 안 올 수도 있어. 잠 올 때까지 같이놀자."
이불 안에 들어가 이겸을 보고 누운 권태정이 가만히 부드러운 셔츠 안으로 손을 넣었다. 확실히 조금은 나온 티가 나는 삐약이의 자리를 살살 문지르자 간지러운지 이겸이 웃었다. 권태정은 그대로 몸을 움직여 이겸의 배 위에 입 맞추고 얼굴을 댔다.
"삐약아, 내일 아빠들 결혼해. 그거 알고 며칠 얌전했던 거지? 이겸이 아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게 해 주고, 계속 졸리게도 안 하고, 우리 삐약이 착해. 이겸이 아빠 닮아서 다행이야."
가만히 권태정이 삐약이에게 전하는 말을 들으며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던 이겸이 손가락을 뻗어 잘생긴 뺨을 톡톡 두드렸다.
“...자기 닮아서 착한 거예요."
“.....…삐약아, 안 되겠다. 아빠는 이제 이겸이 아빠 보러 갈게. 잘 자, 우리 애기.”
다시 이겸의 배에 쪽, 쪽 입 맞춘 권태정이 얼른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이겸의 얼굴과 마주했다. 여전히 티셔츠 안에 손을 넣은 채였다.
“이겸아. 어떡해. 네가 자기라고 할 때마다 꼴려. 그 말에 뭐 있나.”
“..…아, 앞으로 계속 불러야 하는데….”
"몰라. 앞으로도 부를 때마다 꼴릴 것 같아."
"그, 그럼... 부르지 말까요?"
"아니, 부르고 자기가 나 책임져야지."
당황해 아무 말도 못 하고 눈만 깜빡이는 이점을 보며 웃은 권태정이 달착지근한 향이 나는 입술에 입 맞췄다.
"그래도 오늘은 참을게. 너무 좋아서 울면 안 되니까.”
"...그럼 저도 오늘은… 그렇게 더 안 부르고..… 내일 결혼식 끝나면 부를게요.”
"내일? 아….”
권태정은 결혼식 끝나고 갈 신혼여행을 떠올렸다. 첫날밤인 만큼 그냥 보낼 생각은 당연히 없었지만, 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 생각하니 벌써부터 단전이 울렁였다.
"우리 자기 첫날밤 기대돼서 잠 안 오는 거였구나.”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야? 그럼 첫날밤 기대 하나도 안 돼? 난 엄청 기대되는데.”
일부러 시무룩한 얼굴을 하자 이겸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는 게 보였다. 권태정은 얼른 제 얼굴을 잡고 먼저 쪽 뽀뽀하는 이겸을 마주 보았다.
“..…어, 어떻게 기대가 안 되겠어요…. 실장님이랑… 하는 건데….”
그제야 싱긋 웃은 권태정이 이겸의 배를 문지르던 손을 옆으로 움직여 허리를 느릿하게 두드렸다. 애를 태우며 천천히 안을 드나들며 자극하던 바로 그 속도로 두드리는 것을 눈치챈 이겸의 귀와 뺨, 목덜미가 달아올랐다.
"며칠 전보다 더 좋게 해 줄게.”
그리고 귓가에 닿는 달콤한 목소리에 눈을 감으며 마른 장미향이 가득한 품으로 안겨들었다. 어느 시간을 상상해도 좋은 내일을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