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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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정과 일찍 침대에 누운 이겸은 저녁 내내 보지 못했던 것을 한 번에 충전이라도 하듯 내내 키스하는 권태정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카페 마감을 할 때도, 또 끝내고 차에 탔을 때도 권태정은 못 참겠다는 듯한 얼굴로 몸을 기울여 한참을 키스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기 전, 그리고 집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씻을 때를 빼고는 내내 닿아 있는 것 같은 입술이 좋아 이겸은 제 혀를 문지르는 권태정의 혀끝을 살살 마주 문질렀다. 두 혀가 움직이며 끝이 비벼질 때마다 허벅지 안쪽으로 힘이 들어갔다.
“으응….”
티셔츠 안으로 들어온 크고 따뜻한 손이 허리를 만지다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티셔츠가 올라가며 드러난 등으로 조금 서늘한 공기가 달라붙어 이겸의 몸이 움찔거렸다.
“하…. 오늘 누나랑 형한테 말했어.”
곧바로 혀가 다시 비벼지는 것에 대답하지 못한 채 혀를 섞던 이겸이 달아오른 숨을 내쉬며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철거촌에서 일하다 만난 것도 말했고, 어린 것도 말했고, 또….”
길게 이어진 깊은 키스에 완전히 녹아 말랑말랑해진 이겸을 보고 웃은 권태정이 장난스럽게 젖은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물어 늘렸다.
“결혼하고 싶단 말까지 전부 다.”
“하아….”
흐트러진 숨을 내쉰 이겸이 권태정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두 분의 반응이 어떤지 궁금하지만, 차마 제 입으로 물을 자신은 없었다.
“너무 갑자기 말한 거라 좀 놀라기는 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일은 없었어. 너 미쳤어? 당장 헤어져! 그런 거.”
“…걱정했는데 다행이에요.”
“걱정했어?”
“네…. 저를 안 좋게 보실 이유는 많은데, 좋게 보실 이유는 없는 것 같아서요.”
혼자 카페에서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맘을 졸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권태정은 가만히 이겸의 머리칼을 쓸며 달싹이는 입술을 바라보았다.
“여태까지…. 그런 적이 많았거든요. 학교 다닐 때도 처음에는 친해지고 싶어서 다가왔다가… 제가 철거촌 사는 걸 알게 되면, 그때부터 저를 피했어요. 계속 말을 거는 애들은… 이상한 조건을 걸고….”
“조건? 무슨 조건.”
“…한 번… 하게 해 주면 같이 다녀 주겠다고….”
이겸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권태정이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당장 이겸이 다닌 학교 동창생 리스트를 뽑아 그때 그런 말을 한 놈들을 찾아 제대로 인생을 조지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얘기 불편하시면 안 할게요.”
“아니, 아니야. 얘기가 불편한 게 아니라 너한테 그딴 소리 한 새끼들 인생 어떻게 조질지 생각하느라. 이름만 알면 찾는 건 일도 아니거든.”
진지하게 말하는 권태정을 보던 이겸이 미소 지으며 다시 눕자는 듯 팔을 살살 당겼다. 그때의 저를 떠올리며 편을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이겸은 충분히 행복했다.
“진짜 존나 빡치네. 씨발 새끼들이 감히.”
욕을 마구 내뱉는데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다. 권태정이 원래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얼른 화가 가라앉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가만히 보던 이겸이 제 손에 이끌려 눕는 권태정의 머리를 다시 살살 쓸어 주었다.
“같은 반 애들도, 선생님도…. 저를 싫어하는 이유는 너무너무 많았어요. 부모님도 안 계시고, 할아버지는 그 나이까지 일 다니시느라 바쁘시고, 살던 곳은 철거촌이 됐고, 해 달라는 것도 안 해 주니까….”
“…….”
“그렇게 몇 년이나 지났는데 전 달라진 게 없어요. 오히려 그때보다 더…. 더 안 좋아졌어요. 빚도 생기고, 할아버지도 돌아가셨고…. 그래서 전 저 같은 사람한테도 잘해 주시는 실장님이 좋았어요.”
이겸은 빛이 거의 없는 골목길에서 홀로 빛나는 것 같던 권태정을 떠올렸다. 저를 보고 웃고, 잘 자라고 다정히 말하던 권태정을.
“처음이었어요…. 저한테 그렇게 잘해 준 사람은. 그래서 너무 좋았어요…. 너무너무.”
“너무너무?”
“네에…. 너무너무 많이.”
권태정은 봄이 지나도 지지 않는 벚나무 같은 사람이었다. 계절의 이름을 신경 쓸 여력도 없이 바쁘게 살던 이겸에게 봄의 이름을 알려 주던 세탁소집 옆 커다란 벚나무처럼 권태정도 날마다 이겸을 잠시 멈춰 숨을 고르게 해 주었다.
조금은 엉뚱하고, 또 조금은 과격해도 권태정과 마주하는 그 잠깐의 시간이 이겸에게는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저를 보고 환하게 웃는 그 웃음도, 거침없이 저에게 뻗는 손도, 정신을 차려 보면 숨이 닿을 만큼 가까워진 그 얼굴까지 무엇 하나 설레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실장님을 좋아하니까… 실장님 가족분들한테도 잘 보이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절 잘 봐 주실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계속 걱정이 됐어요.”
저 같은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마음을 주고, 따뜻함을 주는 권태정에게 저도 좋은 것을 주고 싶었다. 받은 것보다 더 큰 것을 주고 싶기도 하고, 저 때문에 권태정이 가족들 앞에서 곤란해지지 않기를 바랐다.
“잘 봐 줄 이유가 왜 없어. 지금부터 내가 말해 줄게.”
처음에는 눈을 마주하며 말하다가 점점 고개가 내려가더니 아예 제 품에 숨어 버리듯 말하는 이겸의 턱을 부드럽게 들어 올린 권태정이 다시 마주한 눈동자를 보며 웃음 지었다.
“철거촌에 살고, 부모님이 안 계시고… 또 뭐 빚도 있고, 이제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셔서 혼자 남은 것도 네가 맞아. 현실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지.”
“…….”
“그런데 그게 네 전부야?”
닿는 것만으로도 위로 같은 권태정의 손이 부드럽게 이겸의 얼굴을 감쌌다. 온기가 스며드는 순간 이겸의 눈동자가 일렁였다.
“따뜻하고 다정해. 멋대로 집에 쳐들어간 내가 나오면서 다리가 아프다니까 그걸 걱정하고, 내가 불편한데도 날 주려고 핫초코를 만들고, 말없이 한 시간도 넘게 늦는 나를 기다리면서도 화 한 번을 안 낼 만큼 착하기도 해.”
제가 한 아주 사소한 행동과 말이 권태정에게 어떤 의미로 닿았는지 알게 되는 순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겸은 울음을 꾹 참으며 권태정의 말에 귀와 마음을 기울였다. 조금도, 조금도 권태정의 말을, 숨소리를, 시선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아도 욕 한 번을 안 하고, 매몰차게 대한다고 하는 게 겨우 나한테서 등을 돌려 눕는 거, 그게 전부야.”
“…….”
“다신 안 보겠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나한테 일부러 피하지는 않겠다고도 해 주고, 술에 취한 널 집에 데려다준 걸 알고 왜 제멋대로 구느냐고 화를 내는 대신 내가 널 만날 수 있게 용기를 먼저 내 주기도 하고.”
가까워져 초점이 흐려지는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입술이 맞물렸다. 이겸은 권태정이 저에게 전한 말들이 남아 있는 것 같은 혀를 머금으며 몸을 더욱 밀착했다. 권태정이 좋았다. 너무 좋아서 소리 내어 엉엉 울고 싶을 만큼.
한참이나 서로의 얼굴과 귀를 매만지며 혀끝을 문지르고 입 안을 헤집다가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감았던 눈을 떠 권태정을 보는 순간 이겸은 다시 사랑에 빠졌다.
“몰래 차에서 자는 걸 알았을 때도 걱정부터 하고, 무슨 일을 당할지 알면서도 내가 러트라는 말에 나를 걱정해 달려올 만큼 날 좋아하기도 해.”
“…….”
“좋아한다는 마음을 소리 내서 전할 만큼 용기도 있고, 사랑받을 줄도 알고 또 주는 것도 알잖아.”
이겸의 손을 잡아 올려 손끝에 입을 맞춘 권태정이 미소 지었다. 제 웃음을 보고 울먹울먹하던 이겸의 눈동자에서 기어이 눈물이 넘쳐흘렀다. 권태정은 이겸이 눈물을 닦기 전에 얼른 다가가 얼굴에 묻은 눈물 위에 입술을 대고 전부 제가 머금었다.
“거기다가 우는 것도 존나 예쁘고 꼴려. 마음이 이렇게 예쁜데 얼굴은 더 예쁜 게 말이 되나. 그 어려운 걸 이뤄 놓고 왜 그렇게 자신이 없어.”
눈가에 입술을 대고 아예 넘치는 눈물을 빨던 권태정이 못 참겠다는 듯 갈급히 입술을 찾았다.
젖은 숨이 권태정의 입술 위로 닿고, 또 혀 위에서 뭉그러졌다. 이겸은 달래듯 머리칼과 목덜미, 그리고 등을 쓰다듬는 권태정에게 안긴 채 한참이나 혀를 마주 문질렀다.
“하아…. 하으, 하….”
머릿속이 멍해질 만큼 맞물려 있던 입술이 떨어지자 갇혀 있던 숨이 와르르 쏟아졌다. 흐트러진 숨이 마구 뒤섞이며 그 사이로도 한 번씩 쪽, 쪽 간지러운 소리와 함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졌다.
“하…. 누나랑 형이 같이 식사 한번 하고 싶다는데 이겸이 생각은 어때?”
숨을 고르던 이겸이 젖은 속눈썹을 들어 올려 권태정과 눈을 맞췄다. 솔직히 권태정의 가족을 만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백화점에서 잠깐 봤을 뿐이지만, 권태정처럼 좋은 분이라는 게 느껴졌기에 다시 만난다는 것에 너무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두 분만 괜찮으시다면… 저도 그러고 싶어요.”
“누나가 백화점에서 보고 궁금했는데 내가 만나는 사이라고 하니까 한번 정식으로 인사하고 싶은가 봐. 어려운 자리는 아니고 그냥 간단히 밥이나 먹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돼. 누나랑 형이 우리 편 들어 주면 좋은 거기도 하고.”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다시 저를 끌어안는 권태정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눈을 감았다.
“누나랑 형 진짜 좋은 사람들이거든. 일할 때만 자비 없지, 그 외엔 진짜 천사야.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못되고, 싸가지 없다고 하면 좀 감이 오려나.”
“실장님도… 좋은 분이세요.”
“정말?”
“네…. 전 나쁜 사람 안 좋아해요.”
이겸이 나름의 기준으로 좋고 싫고를 말할 때마다 권태정은 그게 너무 귀여워 가만히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세상에 나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뭐 얼마나 있겠냐만 그걸 소리 내서 말하는 게 지나치게 사랑스러워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이겸아, 나 진짜 착해?”
“네….”
“나 잘생겼어?”
“네….”
“나 좋아해?”
“…네에….”
부끄러운지 마지막 대답은 조금 더 목소리가 작고 끝이 길게 늘어졌다. 얼굴을 파묻고 안긴 채 빨개진 이겸의 귀를 내려다본 권태정이 은근히 번지는 웃음을 머금은 채 온몸으로 이겸을 꽉 안으며 머리칼 위로 입술을 파묻었다.
그럼 나 사랑해? 입 안에 맴도는 그다음 물음은 아주 환하고 빛이 예쁜 날 오롯이 눈을 맞추며 해야겠다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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