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열 소년-96화 (96/174)

#96

저보다 체구가 작아 옷이 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저한테는 골반 정도까지 오는 티셔츠가 이겸에게는 성기를 가릴 정도로 축 늘어지는 걸 보니 또 아랫배로 감각이 맺혔다.

러트 때문에 이러는 건지 아니면 그냥 이겸을 보고 꼴리는 건지 이젠 판단도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권태정의 눈에 이겸은 여러모로 자극적이었다.

“이 정도면 되지? 가릴 거 다 가려졌는데.”

“…네에….”

속옷과 바지도 입고 싶은 눈치였지만, 적당히 타협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겸을 보고 웃은 권태정이 대충 널브러진 가운을 걸치고 침대 아래로 내려오는 이겸을 부축했다.

“걸을 수 있겠어?”

두 발에 힘을 주어 선 이겸이 잠시 휘청대다가 권태정을 잡은 채 두 발을 움직여 보았다. 내내 침대에만 있고, 잠시 어디를 갈 때도 권태정이 안고 다녀서 아주 오랜만에 두 발로 서는 기분이었다.

“걸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몇 번 두 발을 올렸다 내렸다 하니 점점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두 다리에 들어가는 힘이 아니라 일어서기가 무섭게 다리 안쪽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정액이었다.

작은 배 속을 채우고 또 채우고, 아주 줄줄 흐를 만큼 싸 놓은 장본인인 권태정은 침대 옆에 놓인 티슈를 여러 장 빼 다리를 구부려 앉았다. 이겸은 제 키보다 낮게 아래로 쑥 내려가는 권태정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런 이겸을 올려다보며 웃은 권태정이 성기를 가린 셔츠자락을 이겸에게 쥐여 주었다.

“잡고 있어.”

“…네….”

이겸의 발목까지 흘러내린 정액을 티슈 여러 장으로 닦아 올린 권태정이 허벅지 안쪽을 지나 잔뜩 젖은 입구를 문질렀다.

“…흣….”

“만지는 게 아니라 닦아 주는 건데도 느껴서 어떡해.”

“그, 그런 거 아니에요…. 갑자기 닿으니까….”

빨개져서 아니라고 도리질을 치는 이겸을 올려다보며 웃은 권태정이 흠뻑 젖은 티슈를 버리고, 다시 몇 장을 새로 뽑아 위를 문질러 닦았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겨우 묻어 나오는 게 줄어들었다.

“잠깐만. 넣을게.”

겉으로 뚝뚝 떨어지거나 흐르지는 않아도 안에 든 게 아직도 있어 티슈를 대면 조금씩 계속 묻는 게 신경 쓰인 권태정이 얌전히 셔츠를 들고 선 이겸의 안으로 손가락을 두 개 밀어 넣었다.

“…흐읏….”

“제대로 빼는 건 러트 다 끝나면 해 줄게.”

손가락만 넣어도 조이고, 또 긁어내는 움직임에도 느끼는 이겸에게 장난을 치고 싶단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다. 하지만 권태정은 이겸을 곤란하게 하지 않고 정액만 어느 정도 긁어낸 다음 정직하게 손가락을 빼냈다.

안 그래도 힘들고, 또 목이 마르다는 이겸을 몰아붙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생각을 할 수 있고, 실행할 수도 있는 걸 보니 정말 제가 사람 새끼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이제 옷 내려도 돼요?”

“응. 벗어도 되고.”

짓궂게 말한 권태정이 얼른 셔츠를 내려 성기를 가리는 이겸을 보며 일어났다. 녹진한 내벽의 조임이 아직도 손가락에 남아 있었다. 권태정은 아랫배가 저릿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 새끼로 돌아온 거 좋아하네, 씨발.

“이제 진짜 물 마시러 가자.”

멀거니 선 이겸에게 손을 뻗은 권태정은 어린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잡는 것처럼 두 손으로 꼬옥 쥐는 이겸을 가만히 보다가 방을 나섰다.

“물이면 돼? 아니면 주스 줄까?”

“주스 마실래요.”

“응.”

전에 이겸이 집에 있을 때 사다 두었던 포도 주스를 꺼내 투명한 컵에 가득 따른 권태정이 이겸에게 내밀었다.

많이 목이 말랐는지 받자마자 두 손으로 컵을 잡고 조금씩 계속 넘기는 이겸을 가만히 보던 권태정이 작게 웃음 지었다. 몸에 있는 수분이라는 수분을 위아래로 전부 쏟아 냈으니 목이 마를 만도 했다.

“더 줄까?”

“네, 조금만 더 주세요. 반 컵만….”

반 컵을 더 채워 주자 그것까지 전부 마신 이겸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권태정은 빤히 그 얼굴을 보다가 그대로 고개를 기울여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차례로 몇 번씩 빨았다. 입술에 살짝 묻은 주스가 입안으로 가볍게 번졌다.

그보다 더한 짓도 쉴 새 없이 했으면서 짧은 키스 한 번에 금세 얼굴을 붉히는 이겸의 뺨에 입 맞춘 권태정이 허리를 감싸 안아 부축하며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 시트가 축축한 침대보다는 빛이 드는 소파에 있는 게 더 나을 것 같단 생각 때문이었다.

“아…. 이제 좀 살겠다.”

이겸의 옆에 앉아 소파 뒤로 고개를 젖힌 권태정은 저에게 닿는 시선에 고개만 돌려 이겸과 눈을 맞췄다. 이겸의 눈이 제 눈에 닿았다가 슬쩍 아래로 내려갔다. 권태정은 그제야 제가 소파에 앉으며 입고 있던 가운이 흐트러져 몸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더 봐도 되는데.”

장난스럽게 말하자 금세 이겸의 목덜미가 붉어졌다. 이겸은 조심스럽게 권태정의 허벅지에 걸쳐진 가운 자락을 집어 아슬아슬하게 보일락 말락 하는 성기 위를 제대로 덮어 주었다.

“몸은 괜찮아? 아픈 덴 없어?”

“괜찮아요. 조금 뻐근하긴 한데 아프다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때 많이 아팠지.”

이겸은 권태정이 말하는 ‘그때’가 언제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권태정과 몸을 겹치고 있는 동안 아프다는 생각이 뚜렷하고 길게 들었던 건 그 순간이 유일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물론 처음보다 괜찮아지긴 했지만, 배 속에서 성기가 크게 부풀어 깊은 곳을 틀어막을 때는 정말 너무 아파 눈물이 줄줄 났었다.

“아…. 네, 그건 정말 아팠어요. 노팅… 맞아요?”

“응. 나도 노팅 처음이라 놀랐는데 이겸이 넌 더 그랬을 것 같아서. 아파서 울었잖아.”

“나중에는 처음보다는 괜찮아졌었는데 처음에는 너무 아파서 놀랐어요….”

이야기를 나누던 이겸은 권태정이 엄청난 사정을 할 때 나누었던 아기에 대한 대화를 떠올리며 괜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분위기에 휩쓸려 나온 말일 가능성이 크니 굳이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직 어린 너한테 이런 말 하는 게 미안하고, 부끄럽기는 한데 그래도 중요한 일이니까 말할게.”

“…….”

어느새 뒤로 젖히고 있던 고개를 바로 세우고 진지하게 앉은 권태정이 몸을 비틀어 저를 보고 있었다. 이겸은 조금 긴장한 눈으로 겨우 시선을 마주했다.

“노팅을 했으니까 아이가 생길 수도 있어.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고.”

“…….”

“나야 좋지만, 이겸이 넌 아직 어리고 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할 일도 많을 거라 마냥 좋은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해.”

“…실장님은… 정말 좋으세요?”

“그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 애를 가지는데 그걸 싫어하는 미친놈이 어디 있어.”

너무나 확실하게 대답하는 권태정을 보며 이겸은 마음을 쓸어내렸다. 저 혼자만 그 생각을 하고 있던 게 아니라 좋았고, 임신 이야기를 먼저 해 주는 것도 또 제 입장에서 생각해 진지하게 말하는 것도 전부 다 좋았다.

“그리고 미안하기도 해. 나야 널 집으로 데리고 들어올 때 이럴 수 있단 것까지 생각했지만, 넌 아니었을 것 같아서.”

“…….”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고. 미안한 거랑 후회하는 건 다르잖아. 내 마음 알지.”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부드럽게 뺨을 감싸는 손길이 좋아 갓 태어난 아기 동물처럼 얼굴을 비볐다.

“이겸이 네 얘기도 듣고 싶어. 어떻게 생각하는지.”

“…….”

“솔직히 얘기해도 돼. 임신하지 않게 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 내 눈치 볼 것도, 내 입장 생각할 것도 없어. 네가 싫으면 싫은 거야.”

솔직한 마음. 이겸은 지금 당장의 북받치는 감정, 그러니까 권태정에게 좋은 감정만 가득한 이 상황에서 떠오르는 긍정적인 말을 쉽게 소리 낼 가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마음이 쉽지 않고, 참 어려웠던 것처럼 아이가 생긴다는 것도 그런 거니까. 여태까지 한 번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더 그랬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고, 또 오메가로 몸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더 그랬다.

“그럼 저…. 조금 더 생각해 볼게요. 이런 일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응. 알았어.”

말간 이겸의 뺨을 만지작대던 권태정이 더 가까이 오라는 듯 가볍게 손짓했다. 그에 몸을 살짝 세우자 권태정이 그대로 허리를 안아 제 다리 위로 데려갔다. 얼결에 권태정의 다리 위에 앉은 이겸이 조금 부끄러워져 어깨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일단 뭐 좀 먹자. 도대체 며칠을 이러고 있는 거야. 짐작도 안 되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귀엽다는 듯 이겸의 머리칼을 쓸던 권태정은 휴대폰이 방에 있단 것을 깨닫고 그대로 이겸을 안아 들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폰 찾으러 가자.”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는 것에 놀란 이겸이 얼른 권태정의 목을 끌어안았다.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봐. 몸이 더 가벼워진 것 같아.”

“음….”

목을 끌어안은 채 곰곰이 먹고 싶은 것을 떠올린 이겸은 휴대폰을 찾아 다시 거실로 나온 권태정이 소파에 앉은 뒤에야 몸을 조금 떼고 눈을 마주했다.

“…그때 그 복숭아 맛 케이크… 먹고 싶어요.”

“아, 그거. 오케이. 또?”

“초콜릿….”

생긴 것처럼 달콤한 것들만 말하는 이겸을 보고 웃은 권태정이 가볍게 입을 맞춘 채 물었다.

“또? 뭐 따뜻한 것부터 먹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간지러운 소리가 입술에서 울렸다. 입술을 앞으로 살짝 내밀어 뽀뽀한 이겸이 다시 곰곰이 따뜻한 음식들을 떠올려 보았다. 머릿속으로 히트 사이클 때 먹은 부드럽고 고소한 게살수프가 떠올랐다.

“게살수프….”

“아, 그걸 생각 못 했네. 그래, 그럼 진우한테 부탁 좀 해야겠다.”

휴대폰 화면을 본 권태정은 마지막으로 제가 확인한 날, 그러니까 이겸이 온 날로부터 사흘이나 지났다는 걸을 알고 어이가 없어져 숨을 내뱉었다.

“벌써 사흘이나 지났어.”

“…사흘이나요? 저번에도 그랬는데….”

“그러게. 다음엔 닷새로 늘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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