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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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제 품에서 힘이 빠지며 다시 늘어진 이겸을 본 권태정이 길게 숨을 내쉬며 성기를 빼냈다.
제가 하도 물고 깨물어 자국이 남은 몸을 보며 이번에는 좀 제대로 재워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놓아줄 수가 없었다. 이대로 떨어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을 먹이지 못하고 까무러치게 한 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쉴 새 없이 이겸의 몸 안을 드나들었는데도 여전히 성기는 흥분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도 머릿속을 가득 채운 열기가 조금 가시기는 했지만, 아직도 인간이 아니라 짐승 쪽에 더 가까웠다.
“하….”
밭은 숨을 내쉬면서도 권태정은 다시 몸을 숙여 이겸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잡아 벌리고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해 댔는데도 흠뻑 젖은 안은 여전히 좁아 단숨에 파고드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읏….”
조금 전까지 제가 꽉 채우고 있던 곳을 다시 가득 채운 권태정이 불그레 달아오른 이겸의 얼굴을 보며 허리를 움직였다. 제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몸도, 그리고 눈도 뜨지 못하면서 아주 작게 앓는 그 소리도 전부 다 좋았다. 연이겸은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으음….”
정신을 잃어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말간 얼굴 위로 쾌감과 마주해 흥분한 모습이 언뜻 비칠 때마다 권태정은 흥분했다.
저를 걱정하고 궁금해하고 또 보고 싶어 했다는 말이 머릿속에서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이 말을 잊을 수 있는 날이 오기는 할까. 아마 내내 잊지 못할 것이었다.
마음이 없으면 걱정을 할 일도 또 상대를 궁금해할 일도 없었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일은 더더욱 없고. 제가 보이지 않는 동안 이겸이 내내 저를 떠올렸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너무 좋아서 괴로웠다. 좋아 죽겠어서 제 몸을 갈가리 찢고 싶을 정도였다. 이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까. 이겸아, 네가 좋아서, 네가 예뻐서 미쳐 버릴 것 같아.
“…아….”
퍽, 퍽 몸이 마찰하는 것과 함께 마구 흔들리던 이겸이 반쯤 눈을 떠 제 몸 위로 보이는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초점이 맺히는 순간 잠시 둔해졌던 쾌감도 허리 위아래로 확 번지기 시작했다.
“…하읏, 응…. 아…!”
손끝까지 번지는 쾌감에 이겸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한 채 권태정의 움직임을 따라 하릴없이 흔들렸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도 기분이 좋다는 생각이 더 우선이었다.
그런 중에도 권태정의 얼굴을 놓치고 싶지 않아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 올려 쾌감에 잠식된 눈동자에 기어이 제가 좋아하는 그 얼굴을 담았다.
“흣, 아….”
며칠 내내 너무나도 궁금하고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보이지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종일 그 무엇에도 제대로 집중하질 못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멍했고, 이대로 다신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권태정이 진짜 누구인지 알게 됐을 때만 해도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자연스럽게, 또 너무나도 당연하게 멀어질 거라 생각했었다. 저와는 너무나 다른 사람이니까.
또 제가 방송에 나가는 것을 막고 싶어 다가온 권태정의 목적은 이루어졌으니 더는 저 같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먼저 도망치려는 것도 있었다.
멀어진다는 것은 이겸에게 늘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제가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늘 갖가지의 이유를 대며 멀어졌었다. 철거촌에 산다는 이유로,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또 자신과 같은 마음이 아니라는 이유로.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권태정이 다르고, 또 제 마음이 달랐다. 냉장고 안에 든 권태정이 사 주었던 초콜릿을 보면서도 울고, 그가 잠시라도 보이지 않을 때면 컨테이너 근처에 가 기웃대는 저를 보며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알았다.
권태정에게 느낀 실망감이나 슬픔 같은 것이 좋아하는 마음을 조금도 뒤흔들지 못했다는 걸 마주한 순간, 이겸은 권태정이 너무나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권태정을 찾아왔다. 부끄러운 것도 잊은 채.
마지막으로 본 그 아파 보이던 얼굴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서, 지친 것 같던 목소리가, 그래도 저에게 보이던 그 웃음이 마음에 박혀서.
‘나 이제 그만 올까?’
‘요즘은 네가 나랑 같이 있을 때 계속 울기만 하는 것 같아. 이러려던 건 아닌데.’
귓가에 내내 맴돌던 상처받은 것 같은 목소리가 이제야 멀어졌다. 이겸은 제 안 깊숙이 사정하고 몸을 숙이는 권태정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았다. 시선이 뒤엉키는 순간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잔뜩 흐트러진 숨이 서로의 입술 사이로 흩어졌다.
“하….”
“…하아….”
잔뜩 뒤엉켜 있던 혀가 풀리며 살살 서로의 혀끝을 문질렀다. 이겸은 혀를 문지르는 중에도 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권태정과 내내 눈을 맞췄다. 닿으면 닿을수록, 페로몬에 완전히 잠길수록 심장이 마구 떨리고, 감정이 크게 부풀어 올랐다.
“…씨발. 짐승 새끼도 아니고.”
시선을 피하지 않는 이겸을 보기만 해도 아랫배에 감각이 고이는 것에 인상을 쓴 권태정이 그대로 몸을 완전히 내려 이겸을 뒤덮었다. 축축하고 뜨겁고 무거운 것이 몸을 뒤덮는 느낌에 이겸은 커다란 안도를 느꼈다.
제가 길을 잃지 않고 잘 찾아와 권태정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자 안도와 더불어 뿌듯함마저 마음을 간질이며 퍼져나갔다. 이겸은 가만히 제 몸을 덮은 권태정의 커다란 몸에 팔을 겨우 둘러 천천히 등을 쓰다듬었다.
“…이제 좀… 괜찮으세요?”
“아니, 안 괜찮아.”
“…….”
“하나도, 씨발. 하나도 안 괜찮아.”
이겸을 품에 안아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꽉 안은 권태정이 여린 귓가에 입술을 댄 채 미끄러뜨려 목덜미로 얼굴을 파묻었다.
“모자라…. 그렇게 해 댔는데도, 씨발. 네 페로몬 때문에, 아니, 얼굴…. 너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야.”
“…실장님 하시고 싶은 만큼… 다 하셔도 돼요.”
“내가 얼마나 할 줄 알고 그런 말을 해. 뭐 한두 번 더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 같아?”
어깨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눈을 맞춘 권태정이 그래도 이제야 조금 웃음을 보였다. 그 말에 잠시 눈동자를 굴려 생각한 이겸이 권태정의 등을 안고 있던 두 손을 떼어 열 손가락을 펼쳐 얼굴 옆으로 댔다.
“…그럼 열 번?”
씨발, 존나 귀엽네. 가만히 숨만 쉬고 눈만 깜빡여도 귀여운데 한두 번이 아니라는 제 말에 손가락까지 펼쳐가며 그럼 열 번이냐고 묻는 이겸을 보니 딱 죽을 것만 같았다. 권태정은 이겸의 손 하나를 잡아 펼쳐진 손끝 하나하나에 차례로 입술을 댔다.
“이 손가락이 내 입에서 다 녹아 없어질 때까지 하고 싶어.”
“…….”
“네가 엉망이 될 때까지. 네 어딘가가 망가져서 내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그런 상상을 해.”
“…….”
“나 제정신 아니야. 잘 보이려고 제정신인 척하고는 있지만.”
손가락에 입술을 댄 권태정을 바라보던 이겸의 마음이 잔뜩 부풀었다. 이대로면 정말 터져 버릴지도 몰랐다.
손가락이 권태정의 입 안에서 다 녹아 없어져도, 그의 말대로 제 어딘가가 망가져서 권태정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고 해도 다 괜찮을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걸 알지만,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만큼 다 해도 돼?”
아주 약간 회복한 장난기가 말에 섞였다. 누구보다 진담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 전 제가 한 말은 이겸에게 농담으로 닿았으면 했다.
온몸을 계속 빨아 전부 녹이고 싶다고 해서 정말 그럴 수는 없으니 그건 제 음험한 생각 정도로만 담아 두는 게 가장 좋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이유였다.
“…하셔도 돼요.”
“…….”
“정말 그렇게 된다고 해도…. 아프고 무섭지 않을 거 아니까 괜찮아요….”
그 대답에 권태정은 그동안 제가 이겸과 보낸 시간들이 결코 혼자만의 삽질은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이겸이 저를 아프고 무섭지 않게 할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게 좋아 몸이 다 저릿했다.
“날 너무 잘 아네.”
“…….”
“예쁘게.”
눈동자 안으로 빨려들어 간다는 생각이 든 순간 정말로 초점이 흐트러졌다. 이겸은 가볍게 닿았다가 이내 깊게 맞물리는 입술을 마주 머금으며 눈을 감아 그 안에 권태정을 가뒀다.
“…으음….”
몸에서 조금도 가시지 않는 열기와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짙어 두근거리는 페로몬. 그리고…. 조금의 불안도 허용하지 않을 거라는 듯 몸 위로 내려앉은 이 완벽한 안도감이 좋았다. 그래서 이겸은 다시 두 팔을 움직여 권태정의 몸을 가득 끌어안았다. 저 역시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권태정과 똑같으므로.
* * *
이겸이 제집에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났는지 또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조차 전혀 알 수가 없게 됐을 때쯤 시도 때도 없이 발정 나던 몸이 가라앉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겸을 보고 서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자는 얼굴만 봐도, 잔뜩 지쳐 늘어져 있으면서도 저를 보고 웃음 짓는 그 입술만 봐도 여전히 아랫배가 울렁였다. 하지만 이제 짐승에서 인간 쪽으로 더 가까워진 권태정은 이겸을 위해 그 울렁임을 혼자 견뎌낼 수 있게 되었다.
“실장님….”
잠에서 깨어나 눈을 비비는 이겸을 보던 권태정이 고개를 내려 그 보송한 뺨에 입 맞췄다.
“저 물 마시고 싶어요….”
“응, 물 가져다줄게.”
반쯤 몸을 일으킨 권태정이 혼몽해 보이는 이겸의 뺨을 귀엽다는 듯 쓸고 침대 바깥쪽으로 다리를 내린 순간, 손으로 따뜻함이 번졌다. 권태정은 고개만 돌려 제 손 위에 얹힌 이겸의 작은 손을 눈에 담았다.
“…같이… 가면 안 돼요?”
“힘들잖아. 물만 가지고 금방 올 건데.”
“…그래도….”
그게 뭐라고 간절한 얼굴을 한 이겸을 보며 웃은 권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와.”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자 무릎으로 기어 다가온 이겸이 권태정을 잡았다.
“옷….”
“옷? 옷은 왜.”
“…벗고… 나가요?”
“나 아직 안 끝났는데. 어차피 또 벗을 거잖아.”
“…그, 그래도….”
장난을 조금 치니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라 어쩔 줄 모르는 게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당장 다시 눕혀 울리고 싶은 마음을 누른 권태정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열어 제 티셔츠 하나를 꺼내 들고 다시 침대로 다가왔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겸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옷을 입고 싶다고 하면 몇 번이고 입혀 줄 수 있었다. 이겸이 원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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