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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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이겸을 보고 놀란 백 비서가 크게 숨을 터뜨렸다. 이겸이 오메가라는 사실을 알고 다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의 대화가 모두 이해가 갔다.
“태정이도 알아요?”
“…네에….”
“와….”
“…….”
“아, 죄송해요. 오메가이신 줄 몰랐어요. 어, 말씀하신 것처럼 오메가랑 같이 보내면 러트를 좀 더 빨리 안전하게 보낼 수 있긴 하지만…. 이게 생각하는 거랑 직접 보는 거랑은 다르거든요. 지금 정말 눈에 보이는 게 없을 거예요. 쉽게 가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쉽게 허락해 주지 않는 백 비서의 말에 이겸의 마음이 급해졌다. 히트 사이클이 왔을 때 정말 눈에 보이는 거라곤 권태정의 얼굴이 전부였다. 그 외에는 전부 뜨거움으로 변해 온몸을 물들이며 스며들었다.
정신이 제대로 맺히지 않아 그저 눈앞에 있는 권태정만 내내 끌어안고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매달리고 또 매달렸었다.
그 며칠 동안 저를 조금도 놓지 않고 내내 끌어안아 준 권태정의 온기를 기억하기에 어떻게 해서든 권태정에게 가고 싶었다. 이겸은 다시 용기를 내어 백 비서에게 부탁했다.
“…그래도…. 가고 싶어요. 부탁드릴게요. 네? 제가 가고 싶어서 간다고 하는 거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제가 실장님이랑 같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같이… 있고 싶어서 부탁드리는 거니까… 도와주세요. 네? 비서님….”
간절히 말하는 이겸을 더는 외면하지 못한 백 비서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 제가 알지 못하는 아주 긴밀한 무언가가 있으니 이런 말도 하는 거겠지 싶었다.
“타세요. 모셔다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조수석 문을 열어 주는 백 비서에게 인사한 이겸이 차에 올라 작게 한숨지었다. 그날 제가 너무 딱딱하게 말하고 서운하게 말해서 저에게 러트라는 이야기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겸은 잔뜩 속상한 얼굴로 다시 폭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정말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지금 거기 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시는 거죠?”
“…네…. 알아요. 제가 그랬을 때도 실장님께서 전에… 와 주셨거든요. 그래서 저도… 실장님 혼자 계시는 게 싫어서 그런 거니까 정말 괜찮아요.”
“아….”
며칠 권태정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잠수를 탔다가 이겸의 집에서 나타났던 것을 떠올린 백 비서가 더는 걱정을 얹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둘은 이미 제가 걱정을 하고 말려야 할 단계를 지난 것 같았다.
그게 다행이기도 하고 또 다른 걱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냥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생각한다고 해서 베타인 제가 알파와 오메가의 그 긴밀한 사정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
* * *
평소에 가지고 있는 비상키로 아파트에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오른 백 비서는 권태정의 집이 있는 층을 누르고 초조한 듯 선 이겸을 바라보았다.
“이런 거 여쭤도 될지 모르겠는데 태정이랑 사귀시는 거예요?”
“아…. 그게…. 사귀는 건 아니고….”
사귀는 건 아니라면서 귀와 목덜미는 빨개지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이겸을 본 백 비서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애는 취향이 아니네, 뭐네 하더니 아주 제대로 어린애 마음을 뒤흔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어느새 도착해 열리는 문을 잡고 이겸이 먼저 내리도록 한 백 비서가 그 뒤를 따라 내려 닫힌 문 앞에 섰다.
“전 태정이 나오는 것 같으면 갈게요. 제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아서요.”
“…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앳된 티가 잔뜩 묻은 말간 얼굴을 내려다본 백 비서가 이겸의 부모가 된 것처럼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벨을 눌렀다. 그리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벨을 연달아 두 번 더 눌렀다.
“…….”
다시 적막이 내려앉았을 때쯤 인터폰에 불이 들어오며 낮은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뭐야.
“어, 태정아 나야. 진우. 문 좀 열어 주라. 할 말이 있어서 왔어.”
-건드리지 말라고 했지.
“미안해. 워낙 급한 일이라.”
신경질적으로 목소리가 뚝 끊겼다. 백 비서가 이겸에게 꾸벅 인사하고는 도망치듯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안으로 올랐다.
“그럼 전 먼저 가 볼게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과 거의 동시에 등 뒤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얼른 뒤로 돌아선 이겸은 문이 열리는 사이로 보이는 예민한 표정의 권태정을 올려다보았다.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곤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차가워 보이는 얼굴이 조금 무서워 저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실장님.”
피곤한 것 같기도 하고, 화가 난 것 같기도 한 눈동자에 순간 이채가 돌았다. 이겸은 권태정에게서 나는 엄청나게 짙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만큼 강한 페로몬 향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썼다.
얼마나 페로몬이 강한지 두 발로 바닥을 딛고 서는 자체가 힘들 정도였다. 이겸은 주저앉지 않으려 노력하며 자꾸만 힘이 빠지는 다리에 힘을 주었다.
“…네가 여기 왜 있어. 가.”
감정을 완전히 억누른 것 같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한 권태정이 가차 없이 문을 닫으려 당기며 몸을 반쯤 돌렸다. 이겸은 얼른 닫히는 문 사이로 팔을 하나 넣어 권태정을 잡았다.
“실장님…. 들어가게… 해 주세요.”
권태정의 몸은 몹시 뜨거웠다. 손으로 쥔 팔에서 열기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이겸은 욕을 짓씹는 권태정을 보며 반쯤 닫힌 문을 다시 열었다.
“험한 꼴 당하지 말고… 씨발, 가랄 때 가.”
협박이기도 하고 또 부탁이기도 한 말을 겨우 뱉은 권태정이 괴로운 얼굴로 제 팔에 닿은 이겸의 손을 떼어 냈다.
“…씹….”
떼었으니 이제 놓아야 하는데 오므린 손가락 다섯 개를 벌리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이대로 더 힘을 주어 안으로 당겨 제멋대로 굴고 싶었다. 몸이 달아올라 어쩔 줄을 모르겠던 며칠 전부터 단 한순간도 이겸을 떠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겸의 냄새가 나서 갈지 못한 시트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자위를 하면 할수록 이겸은 더욱 선명해지고, 갈망도 심해졌다.
괴로움에 지쳐 잠시 잠이라도 들 때면 어김없이 꿈에 이겸이 나타났다. 놓치고 싶지 않아 그 작은 몸을 끌어안고 미친놈처럼 굴며 함부로 박아 대다가 잠에서 깨면 또다시 성기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른 채 권태정은 완전히 이겸에게 갇혀 있었다. 간절히 손에 넣고 멋대로 굴고 싶으면서도 이겸이 이곳에 없어 다행이라 여겼다. 이겸을 울리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그렇게 버텼는데 지금 눈앞에 이겸이 있었다. 그것도 제 발로 저를 찾아온 이겸이.
제가 가지 않으면 저를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이겸이 저를 보고 있었다. 권태정은 뿌리치지 못한 이겸의 손을 잡은 채 점점 짙게 배어 나오는 달착지근한 페로몬을 들이마셨다. 순간 머리가 확 돌고, 또 눈깔까지 도는 느낌이 났다.
제 아래에서 엉망이 될 때까지 마구 가지고 싶었다. 울어도, 싫다고 해도 봐주지 않고 제 욕구가 채워질 때까지, 제가 보고 싶어 혼자 괴로웠던 만큼 한참이나 아주 엉망으로.
“…하, 씨발.”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이겸이라는 걸 알기에 그렇게 굴 수 없었다. 저 예쁜 애를 엉망으로 만들면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권태정은 32년 동안 크게 발휘하지 않았던 모든 인내를 끌어모아 지금 이 순간에 쓰기로 했다.
그 인내는 겨우 이겸의 손을 쥐고 있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펴는 것에 다 쓰였지만, 그것은 권태정에게 있어 모든 것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는 엄청난 선택이었다.
“가.”
“…저 안 가요.”
“씨발, 좀 가라면 가! 여기가 어디라고 와. 무슨 꼴을 당하려고 와서 가라는데도 안 가고…. 진짜 밑바닥까지 보고 싶어서 이래?”
“실장님도 저랑… 저랑 같이 있어 주셨잖아요. 히트 사이클 온 게 너무 무서워서 혼자 있기 싫을 때 실장님이 저한테 와 주셨잖아요.”
권태정과 눈을 맞추며 이겸은 조금 더 문을 힘주어 열었다. 온몸에 페로몬이 뒤덮이는 느낌이 좋아 꼭 꿈만 같았다. 이겸은 저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권태정을 내내 바라보며 문 안으로 반쯤 몸을 넣었다.
“…실장님도 그때 저처럼…. 혼자 있는 건 싫으실 것 같아서 왔어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할게. 가.”
“…….”
멀어지지 않고 조금 더 가까워지는 이겸을 보며 권태정이 입술을 달싹였다. 이제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이겸에게서 나는 달착지근한 페로몬도, 두 눈에 담긴 너무나 보고 싶던 그 얼굴도, 저와 같이 있으려 여기까지 이겸이 직접 왔다는 사실도.
“난 분명히 가라고 했어.”
“…….”
“나한테 온 건 너야.”
그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완전히 현관으로 들어선 이겸의 몸 뒤로 문이 닫혔다. 잠금장치가 맞물리며 문이 잠기는 소리와 함께 권태정이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이겸은 권태정의 무게에 밀려 뒷걸음쳐 문에 몸을 기댔다.
맞물린 입술의 어마어마한 열기에 제 정신마저 가물가물해지는 느낌이 났다. 이겸은 제 턱을 눌러 입을 열게 하고 단숨에 깊게 혀를 넣어 헤집는 권태정에게 매달리듯 두 팔을 감았다.
“…으응…. 흣….”
히트 사이클이 왔던 때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조금 달랐다. 권태정의 페로몬 때문에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고, 정신이 혼몽해지는 것은 비슷하지만, 저보다 훨씬 더 흥분해 초점이 나간 눈으로 달려드는 권태정은 분명 그때와 달랐다.
숨을 쉴 틈을 전혀 주지 않고 키스하는 것도, 또 제 사정을 조금도 봐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도 그때와 다르고, 다른 때보다 훨씬 더 급하다는 것도 달랐다.
이겸은 바지와 속옷이 발목까지 내려가고, 바로 손가락이 파고드는 것에 놀라 권태정의 어깨를 조금 밀었지만, 권태정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흐읏…. 음, 으응, 응!”
아래에서 질척한 소리가 울렸다. 제 손보다 굵고 긴 권태정의 손가락 몇 개가 단숨에 젖은 안으로 들어와 깊은 곳을 확확 찔러 댔다.
이겸은 여전히 입 안을 잔뜩 헤집는 권태정의 혀를 마주 머금으며 신음했다. 권태정은 그런 이겸의 신음마저 전부 제 입으로 모아 목 뒤로 삼켰다.
“…하으읏, 아아…! 하아, 하으….”
한참 만에 떨어진 입술 사이로 가쁜 숨과 신음이 마구 뒤섞여 엉망으로 터졌다. 손가락이 안을 빠르게 헤집으며 파고들 때마다 물이 튀는 느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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