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미열 소년-80화 (80/174)

#80

“아…. 하읏, 응….”

달뜬 신음이 품 안으로 퍼졌다. 권태정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애쓰며 이겸의 성기를 매만졌다. 열과 쾌감이 고여 단단해진 것을 쓸어 주다가 손가락을 뻗어 회음부를 문지르니 이겸의 몸이 크게 떨렸다.

“…으응, 좋아….”

속삭이듯 작게 흐른 목소리에 권태정은 돌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냥 몸 위로 올라타 멋대로 박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이겸의 페로몬에 절여지고 싶었다. 제발 이제 그만하라고 애원해도 놓아주고 싶지 않을 만큼 마구, 엉망으로 해 대고 싶었다.

“…씨발.”

손가락을 더 뻗어 젖은 구멍 위를 문지르던 권태정이 안간힘을 쓰며 빨려들어 가려는 손가락을 거뒀다. 그리고 빠르게 성기를 흔들어 사정을 도왔다.

“흐윽…. 아, 아아…!”

크게 떨며 사정한 이겸의 몸이 권태정의 품으로 축 늘어졌다. 정액이 묻어 축축해진 손을 꺼낸 권태정이 손가락을 벌려 그 사이로 늘어나고 흐르는 이겸의 정액을 보다가 혀끝을 댔다.

“…….”

이보다 더한 짓을 하고 싶은 열기를 머금은 혀끝으로 이겸의 뽀얀 것이 묻어났다.

혀끝에 묻은 것을 머금은 권태정이 침대 옆으로 손을 뻗어 티슈를 몇 장 꺼내 손을 닦았다. 빨리 이 상황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잠든 이겸을 상대로 제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몰랐다. 아직 저를 믿고 안심하기는 일렀다.

조금 더 여기저기 만지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순간적으로 확 터진 충동에 휩쓸린 권태정은 달뜬 숨을 내쉬는 이겸의 입술을 다시 파고들었다.

턱을 눌러 입술을 벌리게 하고 혀를 넣어 말캉한 혀끝을 문지르고 빨았다. 그리고 이겸의 뺨과 귓가, 목덜미를 입술로 지분거렸다. 다시 입을 벌리게 해 깊숙하게 혀를 넣어 헤집자 신음이 길게 흘렀다.

“하….”

전처럼 좁은 배 속을 저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제 성기를 물어 윤곽이 드러난 마른 배를 만지고 싶기도 하고, 마구 헐떡이며 매달리게 만들고 싶었다.

제 손길에 녹진하게 녹은 몸을 뒤덮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솔직히 가지는 것보다 가지지 않는 게 더 어려웠다. 페로몬 따위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이겸이 저에게 매달리게 할 수 있었다. 제가 아니면 안 되도록, 저를 떠올리면 몸이 저절로 다가와 안기도록.

“…….”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겸이 좋았다. 이겸의 몸이 좋은 게 아니라 연이겸이라는 존재가 소중해져 버렸다. 누군가는 저에게 생긴 이 감정을 두고 패착이라 말하겠지만, 권태정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예쁘고, 따뜻한 이겸을 향한 감정에 그딴 말은 절대 붙을 수 없었다.

“…하아.”

부서지지 않게 지켜 주고 싶고, 곁에 두고 싶었다. 이겸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래서 권태정은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짓누르며 맞물려 있던 입술과 몸을 모두 떼어 냈다. 그리고 돌아보고픈 마음을 누른 채 욕실로 향했다.

아직도 몸에 달라붙어 있는 이겸의 체온과 숨결 때문에 자위 한 번으로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하…. 읏, 씹…. 후우, 윽….”

저에게 먼저 안기던 이겸을 떠올리며 한 번,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던 느낌에 또 한 번, 그리고 ‘실장님….’하며 저를 부르던 목소리로 한 번 더 자위했을 때에야 아랫배에 고인 쾌감의 일렁임이 가라앉았다.

권태정은 다시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고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가 몸에 묻은 이겸의 흔적들을 씻어 냈다. 그냥 이대로 더 있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욕실을 나가는 순간 다시 이겸에게 달려들 것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

세 번이나 연달아 자위를 하고, 말끔히 씻기까지 하니 이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아파서 겨우 잠든 이겸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다짐한 권태정은 이겸의 몸을 닦아 주기 위해 말든 물수건을 가지고 침대로 다가갔다.

“…….”

이겸을 보자마자 조금 전 한 다짐이 무색하게 다시 달려들고 싶은 마음이 샘솟았다. 애써 그 마음을 강제로 누른 권태정이 새근새근 잠든 이겸의 흐트러진 다리 사이를 정리해 주었다.

체액으로 젖은 곳들을 볼 때마다 수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지만, 그래도 참았다.

더는 후회할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열이 내리고 정신이 돌아온 이겸에게 원망을 듣고 싶지 않기도 하고,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그래서 권태정은 이겸의 몸을 깨끗이 닦아 옷을 갈아입히고 이불을 덮어 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손을 뗐다. 그리고 깊게 잠이 든 이겸의 얼굴을 하염없이 내내 바라보기만 했다.

아픈 것은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제 앞에서, 제가 볼 수 있는 곳에서 아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 * *

이겸은 사흘을 앓은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열이 내리고 몸살 기운도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머릿속이 멍했다. 침대에 누운 채 어둑한 방 안을 보던 이겸은 하나씩 천천히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되짚어 보았다.

여기는 권태정의 집, 다람동 집에서 간단히 짐을 챙겨 여기로 온 기억이 났다. 편안하고, 늘 좋은 향기가 나고, 또 계속 권태정과 함께 있을 수 있어 하루하루가 좋았던 것도 떠올랐다. 가끔 자다가 새벽에 깼을 때도 포근한 침대가 기분 좋았고, 저를 향해 누워 잠이 든 권태정의 얼굴이 보이는 것도 좋았다.

“…….”

그리고…. 그리고 할아버지의 장례식. 마주 앉아 며칠 만에 같이 먹은 밥, 물이 적어 진하고 달았던 커피. 그리고 또….

장례식장에 와서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던 구대범이 떠올랐다. 이겸은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지었다. 어쩌다가 제가 아직까지도 권태정의 집, 그것도 침대에 누워 있는 건가 싶었다.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킨 이겸이 띵한 머리에 눈을 감았다.

“어? 일어났네? 이겸아, 좀 괜찮아? 왜 그래. 머리 아파?”

문이 열리고 갑자기 쏟아지는 목소리에 이겸은 눈을 떠 저에게 다가오는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보니 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제 괜찮아요.”

“열 있나 좀 볼게.”

커다란 손이 불쑥 다가와 이마를 짚자 놀란 이겸이 어깨를 움츠렸다. 이마에 닿았던 손이 뺨으로 내려와 감쌌을 때는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었다.

“다행이다. 이제 좀 따끈따끈한 정도네. 어젯밤까지는 절절 끓더니.”

웃는 얼굴은 여전히 이겸의 마음을 아플 만큼 설레게 했다. 웃음이 머문 얼굴을 따라 시선이 가는 것도 막을 수가 없었다.

“죽 좀 먹자. 가져올게.”

“…저… 이제 집에 갈게요.”

죽을 가지러 방을 나서려던 권태정이 다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꼭 가야겠어?”

“…네…. 죄송해요. 진작 갔어야 하는데 아파서 폐만 끼치고….”

“죽만 먹고 가. 데려다줄게. 괜찮다고 하지 마. 너 안 괜찮아. 어제보다 나아진 것 같단 거지 멀쩡해졌다는 거 아냐. 핏기도 없고, 아직 아파 보여. 그러니까 죽 먹고, 약까지 먹고 내 차 타고 가.”

“…….”

“안 가면 더 좋고.”

권태정의 말을 거절할 힘은 애초에 없었다. 이겸은 수긍의 의미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을 확인한 뒤에야 권태정은 방을 나섰다.

“…….”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권태정의 말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죽을 먹고, 약을 먹는 짧은 과정이 늘어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권태정을 기다리며 멍하니 앉아 이제 다시 할아버지를 보지 못한다는 것까지 떠올린 이겸이 쉽게 차오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았다.

“울었어?”

갑자기 들리는 목소리에 이겸은 눈가를 마저 문질러 닦고 고개를 저었다. 트레이를 들고 들어온 권태정이 침대 옆으로 내려놓고 죽 그릇을 들어 이겸에게 내밀었다.

“너무 뜨거우면 못 먹을 것 같아서 좀 식혔어.”

“…….”

“천천히 먹어. 다 못 먹겠으면 남기고.”

“…감사합니다.”

사실 이겸은 저를 좋아한다던 권태정의 그 말을 믿고 싶었다. 방송에 나가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한 저에게 여전히 잘해 주는 이유가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권태정이 저에게 바라는 게 있어 말을 걸고 다가왔다는 것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고, 다람동이 아무런 문제없이 조용히 철거되는 게 그의 최종 목표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제가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는 것도, 그래서 방송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것도 이미 다 알고 있었기에 그냥 제가 좋은 쪽으로 생각해 버리고 싶기도 했다.

방송 때문에 저에게 접근을 했을지는 몰라도 그건 그저 아주 작은 시작의 단계였을 뿐이고, 지금은 아니라고, 아주 많은 것이 쌓이면서 전부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또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싶었다.

좋아하니까. 좋아하게 되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다람동에서 일하는 깡패 실장이 철거에 차질이 없게 하려고 저에게 다가온 것과 이 공사의 주인인 태성그룹의 아들이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적으로 짜고 저에게 다가온 것은 너무나 다르게 느껴졌다.

서로 나누었다고 생각하는 이 감정조차도 그가 짠 계획의 한 과정이었을 것만 같아서, 목적 달성을 하면 이 감정도 전부 끝일 것만 같아서 너무나 무서웠다.

제가 알던 권태정과 조금씩 꿈을 꿀 수 있던 내일이 완전히 사라진 것만 같았다. 이제 저와는 너무나 다른 위치에 있다는 걸 알아 버린 이상 그와의 내일을 감히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제자리는 어디일까. 권태정이 없던 그때로 돌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면 되는 걸까? 권태정이 없다는 건 뭐지…. 이제 웃는 걸 볼 수 없는 거? 따뜻한 목소리도, 품도 더는 마주할 수 없는 거? 그게 없이 버틸 수 있을까. 생각만으로도 무서워져 마음이 마구 흔들렸다.

하지만 작은 것이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을 품기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저도 알 만큼 어마어마한 대기업 회장의 아들과 저는 어울리지 않았다. 태성이 무너뜨려야 하는 다람동 철거촌의 마지막 주민이 어떻게 권태정과 어울릴 수 있겠는가.

차라리 권태정이 정말 깡패였다면, 철거촌 용역들을 관리하는 그런 실장이었다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깡패는 싫다고 줄줄이 이유를 대던 제가 이제 와서 차라리 권태정이 깡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죽을 숟가락으로 조금 뜬 이겸이 작게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내내 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실장님이 진짜 깡패였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저 정말 최악이지 않아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깡패만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니라니까 이제는 차라리 깡패였으면 좋겠단 생각이나 하고….”

눈을 감을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이겸을 보며 괴로움에 인상을 쓴 권태정이 손을 뻗어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깡패는 싫다고 한 거, 또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말씀드린 거…. 재밌으라고 한 말 아니었어요.”

“알아.”

“…아니요. 실장님은 모르세요. 아시면 깡패라고…. 계속 속이지 못하셨을 거예요. 저는요. 실장님을 자꾸 의지하게 될 때마다 너무 무서웠어요. 실장님을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도 했어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웃어 주시는 실장님 볼 때마다 괜찮지 않을까 자꾸 합리화도 하고 그랬어요.”

목소리는 떨렸지만, 담담한 말투였다. 이겸은 해야 할 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소리 내지 못하는 바보 같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눈물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제가 실장님 좋아하는 거… 좋아하게 된 거…. 다 아셨으면서….”

이겸의 마음을, 좋아한다는 그 말을 언젠가 꼭 듣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이런 식으로 듣게 될 줄은 권태정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아픈 채로 웃음이 아니라 눈물을 보이면서, 그것도 시작이 아니라 끝에 서서 겨우 소리를 내고 있는 이겸을 보며 권태정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깡패는 싫다더니…. 실장님이 하자는 대로 다 하고… 안 좋아하려고 노력할수록 좋아하게 되고…. 그걸 실장님한테 다, 전부 다 보였는데…. 이젠 깡패 아니라니까 차라리 깡패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이나 하고…. 너무, 너무 창피해요.”

“…….”

“저도 제가 이상한데…. 실장님 눈에 제가 얼마나 우습고 이상해 보일지… 짐작도 안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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