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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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현준아. 난데.”
-어우, 무서워. 갑자기 왜 이래? 이름만 부르고. 무슨 일 있어?
“지금 집으로 좀 와 주라. 그때 말한 그 애, 그러니까 네가 억제제 처방해 준 그 애가 쓰러졌어. 탈진한 것 같아.”
-천천히 말해 봐. 어쩌다가 쓰러진 거야?
“상을 당해서 며칠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했거든. 이제 집에 와서 씻는다고 들어갔는데 한 시간이 돼도 안 나와서 보니까 쓰러져 있었어.”
-넘어져서 다친 건 아니야?
“아닌 것 같아, 그건. 넘어진 자세도 아니고.”
수화기 안에서 조현준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권태정은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숨 쉬는지 봤어?
“숨? 잠깐만.”
조현준의 말에 권태정은 얼른 이겸의 코밑으로 떨리는 손가락을 대 보았다. 다행히 약한 숨이 닿는 게 느껴졌다.
“어, 숨은 쉬어.”
-안 막히면 이십 분 정도 걸릴 거야. 상태 잘 보고 있고, 뭔가 이상하다 하면 바로 전화해.
“알았어.”
전화를 끊은 권태정은 세상에서 가장 긴 이십 분 동안 이겸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일 분에 몇 번씩 숨이 멎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코 아래 손을 대 보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이십 분 만에 도착한 조현준은 섬세하게 이겸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수액을 놓아 주었다.
“너무 무리해서 쓰러진 거야. 탈진한 상태로 샤워하러 들어갔다가 쓰러지는 경우 많아.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샤워 부스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확 오르면 머리가 핑 돌아서 쓰러지는 건데 그래도 다행이다. 보니까 네 말대로 넘어진 건 아닌 것 같아. 그렇게 욕실에서 갑자기 쓰러져서 죽는 사람도 있어. 조심해야 돼.”
“수액만 맞으면 되는 거야?”
“응. 한참 들어갈 거야. 무조건 쉬어야 돼. 이거 일단 다 맞고, 영양가 높은 것도 먹이고, 또 잘 재워. 내일 내가 와서 한 번 더 놓아 줄게.”
조현준의 말에 권태정은 그제야 안도했다. 그런 권태정의 얼굴을 빤히 보며 가지고 온 것들을 챙기던 조현준이 놀리듯 씩 웃었다.
“야, 닳겠다. 그만 좀 봐라. 살다가 권태정 연애질하는 걸 다 보네. 어우, 소름 끼쳐.”
“뭐.”
“닳겠다고. 그만 좀 보라고.”
잠든 이겸을 흘끔 본 조현준이 거실로 나가며 권태정의 다리를 장난스럽게 걷어찼다.
“이 새끼 이거 얼굴 존나 따지네, 진짜.”
“아, 뭐.”
“스무 살이라는 것만 들었을 때도 기함했는데 얼굴 보니까 진짜…. 내가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다들 달라붙는데도 연애 안 하더니 이렇게 고르고 골라 하려고 그랬냐?”
“내가 뭘.”
“내가 몇 년 동안 본 사람 중에 지금 얼굴 제일 쩌는데. 탈진해서 저 정도면 평소에는 어떻단 거야.”
닫힌 방문까지 돌아보며 감탄하는 조현준의 다리를 제가 당한 것처럼 아프지 않게 걷어찬 권태정이 마시고 싶은 것을 마시라며 냉장고를 열어 손짓했다.
“아, 퇴근하고 왔으면 술 한잔하는 건데. 너희 집에 술 좋은 거 많잖아.”
“하나 가져가.”
“야, 정말?”
“응.”
“진짜 가져가고 싶은 거 가져가도 돼?”
“어.”
“야, 냉장고 닫아, 닫아.”
권태정이 술을 진열해 두는 곳으로 간 조현준이 눈으로 어마어마하게 비싸고 좋은 술들을 보다가 제가 좋아하는 술을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권태정은 조현준이 고른 술과 비싼 술 한 병을 더 들어 품에 안겨 주었다.
“태정아, 넌 앞으로 더 잘 될 거야. 내일 내가 네 애인분 영양제 제일 비싼 걸로 놔 줄게. 너도 하나 맞을래? 너도 피곤해 보이는데. 야, 지금 하나 놔 줄게. 가서 누워.”
“됐고, 내일 이겸이나 한 번 더 봐 줘.”
“알았어, 알았어. 나만 믿어. 넌 진짜 더 잘 될 거야. 태성이 나라 먹은 이유가 있다. 진짜 넌 그릇이 달라.”
“이겸이 회복만 잘 시켜. 그럼 두 병 더 줄게.”
완전히 충성을 맹세한 조현준이 현관으로 나서며 술병을 들어 인사했다. 어이가 없어 결국, 숨소리처럼 웃은 권태정이 조현준을 배웅했다. 그리고 다시 조용한 침실로 들어가 이겸이 편히 잘 수 있도록 커튼을 닫아 주었다.
“…….”
이겸이 편하게 쉬려면 저도 아예 나가야 하는데 곁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당연히 함께 누워 자던 침대로 오른 권태정이 제 자리에 기대어 앉아 수액을 맞고 잠든 이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부디 자는 동안이라도 이겸의 마음이 슬픔 없이 다정하기를 바라며.
괜찮아지는 것 같았던 이겸은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됐을 때부터 다시 앓기 시작했다. 온몸에 열이 절절 끓고, 숨이 가빠졌다. 조현준은 권태정의 전화를 받고 와서 해열제와 억제제를 동시에 놓아 주었다. 정신이 없어 억제제를 먹지 못하는데 열이 나는 바람에 갈무리하지 못한 페로몬이 잔뜩 퍼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이겸의 페로몬이 잔뜩 퍼진 바람에 권태정은 오전 내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아픈 사람을 두고 그 페로몬 때문에 자위를 하는 것도 너무 쓰레기 같아 어떻게든 아래를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쉽지 않아 결국은 욕실에서 혼자 두 번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열이 많이 나면 페로몬 발산이 되니까 음, 사이클…. 오메가니까 히트 사이클 같은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 몸에 열기가 고여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페로몬이 고인 게 아니라 몸이 아파서 나는 건데 그걸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그래?”
“응. 히트 사이클 증상이야 너무나 잘 알 테니 뭐 더 자세히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뭐 그런 증상이 나타나기도 하니 알아 두라고.”
“알았어.”
“스트레스랑 과로가 한 번에 터져서 몸살이 크게 왔어. 어제도 말했지만, 충분히 휴식하게 하고 절대 스트레스 주지 말고 최대한 맞춰 줘. 열이 갑자기 막 오른다거나 이상 징후가 보이면 연락 주고. 일단은 몸살이라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큰일 치르고 나면 한 번씩 앓잖아.”
조현준의 말대로 이겸은 종일 앓기만 했다. 크게 이상 징후를 보이는 것은 아니라 따로 조현준에게 연락을 하지는 않았지만, 권태정은 이겸의 곁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고 내내 이겸을 살폈다.
“이겸아. 내 말 들려?”
아파서 깊게 잠이 들지도 못하고, 또 대화를 할 만큼 정신을 차리지도 못한 채 이겸은 내내 앓기만 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내 그 얼굴을 살피던 권태정은 가만히 손을 잡아 손가락 위로 입술을 묻은 채 빌었다. 부디 열이 내리기를, 저까지 얹어 준 괴로움을 잠시라도 잊고 편히 잠이라도 잘 수 있기를.
하지만 이겸은 오후가 다 지나도록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으음….”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눈을 뜬 이겸은 침대 옆에 의자를 두고 앉은 채 잠든 권태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릿속이 몽롱하고 몸이 너무 뜨거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숨을 쉬는 것도 뜨겁고, 이불이 주는 온기도 너무 뜨겁게 느껴졌다. 몸 안에 가득 찬 것 같은 열기를 빼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겸은 손을 뻗어 침대 옆에 앉은 권태정의 무릎을 잡았다.
“아….”
바로 눈을 뜬 권태정이 잠에서 깬 이겸을 보며 몸을 가까이 기울였다. 이겸은 권태정에게서 나는 페로몬 향에 움찔댔다. 꼭 히트 사이클이 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겸아, 좀 어때. 괜찮아? 머리 아프거나 하진 않아?”
“…너무… 더워요.”
“아, 열이 나서 그래. 해열제 맞아서 좀 떨어지기는 했는데 아직 열이 좀 있어. 저녁 먹고 약 먹으면 또 좀 나아질 거야.”
“저…. 히트 사이클 또 온 것 같아요…. 그때랑 너무 똑같아요.”
숨소리가 섞인 이겸의 말에 권태정은 조현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 말을 미리 듣지 못했다면 꽤 당황했을 것 같단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열이 높아서 그런 거래. 히트는 아닌데 비슷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하더라.”
“…하아…. 너무… 뜨거워요….”
달뜬 숨을 내쉬는 이겸을 보며 열이 오른 몸을 만지고 싶다 생각한 권태정이 침음했다. 이제 진짜 갈 데까지 간 모양이었다. 아픈 사람을 상대로 이런 생각이나 해 대는 걸 보면. 이제 어디 나가서 가정교육 잘 받았단 소리는 못 할 것 같았다.
“너무, 너무….”
열에 들뜬 이겸은 권태정과 있었던 일도, 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잘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곁에 있는 권태정에게 자꾸만 손을 뻗었다. 제발 어떻게 좀 해 달라고, 몸이 너무 뜨겁다고.
“물수건으로 닦아 줄게. 기다려.”
“…실장님….”
이겸은 아예 권태정의 손을 붙들고 가지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작게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 달뜬 숨이 흐를 때마다 페로몬이 짙게 퍼졌다. 권태정은 다시 아랫배에 고이는 묘한 느낌에 미간을 구겼다.
“재워 줄게, 그럼.”
저를 당기는 손에 끌려가듯 침대에 오른 권태정이 품으로 파고드는 이겸을 안았다. 열에 취해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다시 저에게 안겨 주는 게 좋았다.
권태정은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이겸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몸이 맞붙고, 어깨와 목덜미에 닿는 이겸의 숨 때문에 성기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잠깐, 이겸아. 잠깐만. 읏, 잠깐.”
아무리 정신을 차린다고 해도 이겸의 페로몬에 반응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권태정은 어떻게든 후회할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몸을 떼려고 했지만, 이겸의 몸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실장님…. 빨리, 으응, 해 주세요…. 저번처럼….”
열 때문에 평소와 다른 이겸을 건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제가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은 전부 하고 살았다지만, 저와 제대로 아직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고, 슬픔에 잠겨 있는 이겸에게 손을 댈 정도의 망나니는 아니었다.
“…하, 씨발.”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있는 일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권태정은 제 페로몬 향에 헐떡이는 이겸의 몸을 꽉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열이 올라 뜨겁고 말랑한 피부에서 짙은 복숭아 향이 났다. 권태정은 과일을 깨무는 것보다 더 살살 이겸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입술이 다물리며 이가 살갗을 긁는 순간 이겸의 몸이 움찔댔다.
“아…. 으응….”
아픈 애의 몸 안으로 파고들지 않는 것으로 목표를 수정한 권태정은 저에게 안기느라 조금 말려 올라간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었다. 목덜미에서 느낀 말랑하고 뜨거운 피부를 매만지며 더 깊숙하게 손을 넣자 이겸이 앓는 소리를 내며 더 깊게 안겨 들었다.
“실장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던 이겸이 안긴 채 고개를 들어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고개를 숙인 권태정이 홀린 듯 다가가 저를 향해 벌어지는 입술을 머금었다.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입 안이 너무나 뜨겁고, 또 피부가 열에 말랑해진 것처럼 혀도 말랑해서 움직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권태정은 이겸의 혀를 빨며 밀착한 몸 사이로 손을 넣었다.
“으응….”
헐렁한 바지 안, 그리고 속옷까지 단숨에 파고든 권태정이 열이 오른 이겸의 성기를 쥐었다. 일단 사정을 하면 어느 정도 열기가 빠질 거고, 이겸도 진정을 하게 될 것이었다. 지금은 그것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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