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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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겸은 겨우 교통카드로 결제를 하고 내려 비틀비틀 골목으로 들어갔다. 갇혀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차에서 내려 몇 걸음을 걷자 허벅지로 뭔가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났다. 이겸은 달뜬 얼굴로 겨우 초록색 대문 앞에 서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하아…. 아, 어떡해….”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이겸은 문을 대충 밀고 겨우 몇 걸음을 더 걸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운동화가 하나는 방 바깥에, 다른 하나는 방 안에서 벗겨졌다.
‘페로몬도 돌아온 마당에 이제 히트도 올 거 아냐. 올 것 같으면 미리 가서 호르몬 주사 맞으면 되거든.’
권태정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마구 흔들렸다. 주사, 그래, 권태정이 말한 그 주사만 맞으면 다 괜찮아질 것이었다. 이겸은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얼른 휴대폰을 찾았다.
“…없어….”
하지만 휴대폰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권태정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다는 사실이 이겸을 더욱 두렵게 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뒤덮는 찌르르한 쾌감이 아랫배로 번졌다.
“…아…. 흐윽….”
뜨거웠다가 추웠다가 변덕을 부리던 몸은 이제 완전히 달아올라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겸은 겨우 기듯이 움직여 방 한쪽 구석에 놓인 이불을 끌어안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
이불에서 약하게 권태정의 냄새가 났다. 그토록 맡고 싶었던 것을 마주하자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이겸은 멍해진 눈으로 겨우 몸을 일으켜 권태정이 아침에 벗은 옷가지를 집어 들었다.
아침까지 입고 있던 옷이라 그런지 이불보다 몇 배는 강한 페로몬 향이 나는 것에 이겸이 몸을 움찔댔다.
“으응…. 어떡해….”
권태정의 향을 들이마실 때마다 아래에서 뭔가가 줄줄 흘렀다. 이겸은 권태정의 옷에 코와 입술을 파묻은 채 몸을 웅크렸다. 멈추려 해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겸은 흠뻑 젖은 느낌이 나는 바지에 감히 손도 대지 못한 채 허벅지를 붙였다.
성기를 만지고 싶은 기운이 퍼져 허벅지끼리 눌리기만 해도 미미한 쾌감이 아랫배를 타고 올랐다. 이겸은 저도 모르게 허벅지를 계속 누르며 그 작은 쾌감이라도 느끼려 애썼다. 원하는 자극의 크기는 아니지만, 아랫배를 살짝 건드리며 쾌감이 오를 때마다 권태정의 옷가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흐윽….”
생각보다 훨씬 더 노골적으로 변한 몸에 이겸은 자극을 원하는 만큼 두려움도 크게 느꼈다. 대문을 잠그지 않은 것도 떠오르고 혹시라도 누군가가 집에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몸이 더 떨렸다.
이겸은 권태정의 옷을 쥐고 페로몬 향을 맡으며 아래를 적시는 제가 너무 창피했다. 권태정이 너무 보고 싶지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이겸은 권태정의 페로몬 향이 묻은 옷 위로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제발 권태정이 빨리 와서 저를 안아 주기를, 오지 않기를, 아니, 제발 와 주기를…. 이런 모습을 보지 않도록 부디 오지 않기를 바라며.
* * *
엄마와 근사한 티타임까지 가진 권태정은 차에 타기 전 제 품에 쏙 들어오는 엄마를 한 번 꽉 안았다가 놓았다. 그리고 출발하면서도 창을 열어 인사하는 엄마에게 끝까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집에 갔으려나.”
중얼거린 권태정이 차에 오르며 이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한 번, 두 번, 세 번 울렸을 때 목소리가 들렸다.
-실장님이세요? 여기 병원이에요.
“아….”
이겸이 아니라 간병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당황한 권태정이 제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분명 ‘연이겸’이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이겸이 아직도 병원에 있어요?”
-아, 이겸 학생 아까 몸이 안 좋아서 집으로 갔어요. 그런데 전화기를 여기 두고 갔지 뭐예요.
“몸이 안 좋아요? 어디가요? 아침에 봤을 때는 괜찮았는데.”
-점심때쯤부터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춥다고 하면서 밥도 못 먹더라구요. 나중에는 식은땀도 흘리고 열도 나고 몸을 막 떠는 거예요. 그래서 집에 가서 쉬라고 했어요.
-집에 간 지 얼마나 됐어요?
“한… 한 시간쯤 된 것 같아요.”
간병인의 말에 시간을 확인한 권태정이 서둘러 시동을 걸고 레스토랑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네, 알겠습니다. 이겸이 전화는 꺼서 병실에 두세요. 가지러 갈게요. 네, 들어가세요.”
통화를 마친 권태정이 휴대폰을 대충 재킷 주머니에 욱여넣고 속도를 높였다. 분명히 아침까지만 해도 괜찮아 보였는데 몇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었다.
갑자기 체했다고 하기에는 아침에 딱히 주스 한 잔 빼고는 뭔가 먹은 게 없었다. 권태정은 차가 없어 다행인 도로를 달리며 간병인이 한 말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춥다고 하다가 또 식은땀을 흘리며 열이 났다는 걸 종합해 보면 하나 떠오르는 게 있기는 했다.
“…….”
히트 사이클. 페로몬이 나날이 짙어지다가 며칠 전에 확 터진 뒤로 혀만 섞어도 몸이 녹아 버릴 것 같은 향이 확 퍼지고는 했었다. 그리고 어제는 젖지 않던 뒤가 젖기까지 했으니 히트가 터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히트 사이클이 온 이겸을 떠올리기만 해도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고, 허벅지 안쪽으로 묘한 감각이 모여들었다. 이겸이 곁에 없는데도 코끝에 복숭아 향이 묻어나는 것만 같았다. 권태정은 힘이 들어간 손으로 핸들을 꽉 쥐며 조금 더 속도를 높였다. 저만을 기다리고 있을 이겸을 향해.
골목 어귀에 차를 대충 버리듯 세운 권태정은 서둘러 내려 부서질 듯이 문을 닫고 이겸의 집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씨발.”
권태정은 이겸의 히트 사이클을 확신했다. 골목에 그 달착지근하고 눈이 뒤집힐 것 같은 페로몬 향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었다. 연달아 욕을 내뱉은 권태정이 잠기지 않고 조금 열린 대문을 너무나도 쉽게 밀고 들어가며 다시 욕을 짓씹었다.
“…씹, 겁도 없이 문도 안 잠그고.”
대문을 닫고 단단히 잠근 권태정은 제 몸을 확 뒤덮는 이겸의 짙은 페로몬 향에 미간을 구겼다. 닫힌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엉망으로 흐트러졌을 이겸이 보고 싶었다. 이 정도로 페로몬을 흘리고 있는데 멀쩡히 앉아 있을 리가 없어 그 모습이 궁금했다.
“이겸아.”
하지만 엉망으로 뒹굴기 전 마지막 한 번의 예의는 차리고 싶었다. 권태정은 닫힌 문을 노크하고, 이겸의 이름을 불렀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권태정은 이미 발기한 자지를 느끼며 방문 손잡이를 잡아 문을 당겼다.
“…와.”
대문은 열려 있는데 방문은 잠겨 있었다. 권태정은 이겸이 신발 신을 때 걸터앉는 문 앞 마루 좁은 마루 같은 곳에 앉아 이겸이 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문을 두드렸다.
“이겸아, 나 왔어. 아…. 씨발, 진짜 죽겠다. 문 좀 열어 봐.”
숨을 쉴 때마다 이겸의 페로몬이 조금의 머뭇댐도 없이 전부 파고들어 곳곳으로 번졌다. 머릿속에는 당장 이겸의 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권태정은 가까스로 버티며 벽에 몸을 기댄 채 다시 문을 두드렸다.
“문 열어. 박아 줄게. 나 기다렸잖아.”
“…흐윽, 실, 실장님….”
문 안에서 작게 우는 소리와 함께 이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덜컥이는 것을 보니 안쪽에 있다가 제 소리를 이제야 듣고 문 쪽으로 온 모양이었다. 권태정은 제 발길질 한 번이면 쉽게 부서질 연약한 문 안에 흐트러진 이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나치게 발기해 성기가 아팠다.
“응, 실장님 왔는데 문 열어 봐.”
“…저 너무… 흐윽, 응, 이상해요….”
“응, 뭐가 어떻게 이상한지 말해 봐.”
문에 기대고 있는지 다시 작게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살짝 돌아가는 느낌이 났다. 열까 말까 고민을 하는 모양이었다. 살짝 움직이는 문고리에 혀를 대고 핥고 싶은 충동을 짓누른 권태정이 이겸이 기대고 있다면 유두가 있을 만한 위치에 손가락을 대고 둥글게 문질렀다.
“젖었어?”
“…흐읏….”
“혀 빨아 줄까? 가슴도 만져 주고.”
“으응…. 싫어, 이상해요….”
제 말만으로도 몸이 반응하는지 젖은 신음이 뒤섞인 말을 들을 때마다 권태정은 딱 죽을 것만 같았다.
“젖은 거 보고 싶어.”
“…아… 그런 말, 그런 말… 응, 싫어요….”
“싫은데 나 보고 싶잖아. 나도 보고 싶어. 키스하고 싶어. 문 열어, 빨리. 나 아니라 다른 새끼 기다린 거야? 응? 그래서 안 여는 거야, 이겸아?”
“그런 거… 하으…. 아니, 아니에요….”
“아니면 얼른 열어. 착하지. 나랑 뒹구는 게 쪽팔리면 그냥 알아서 다 해 주는 딜도 왔다고 생각해.”
더는 정말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깟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밖에서 자위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로 저질스럽고, 쾌락에 무너지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것은 권태정의 자존심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씨발, 딜도 취소. 그건 내가 너무 상처야.”
“…….”
“히트 온 거 무서워서 그래? 혼자 있는 게 더 편하면 그렇게 해도 돼. 내가 뭐 너한테 못 박아서 미친놈도 아니고, 씹…. 아니, 맞는 것 같긴 한데.”
권태정은 제 바지 위로 윤곽이 드러난 성기를 보며 인상을 썼다. 머릿속에서는 벌써 몇 번이나 문을 발로 까고 안으로 들어가 제멋대로 이겸을 짓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권태정은 문을 발로 차면 거기 있는 이겸이 다칠 것이라는 걸 알기에 다칠 일이 없는 말만 쏟아 내고 있었다.
“내가 갔으면 좋겠어?”
한계에 다다른 권태정의 페로몬이 마구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강한 오메가의 페로몬을 오랫동안 마주한 건 처음이라 권태정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숨이 가빠지고, 뒤섞이는 페로몬에 그래도 중심을 잡고 있던 이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달칵.
그때였다. 잠겨 있던 것이 풀리며 문고리가 돌아간 것은. 권태정은 문이 열리는 사이로 눈물에 잔뜩 젖은 이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많이 울어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적시며 또 눈물이 넘쳐흘렀다. 권태정은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저를 덮쳐 오는 이겸의 페로몬에 오싹한 쾌감을 느끼며 잠시간 그 얼굴을 보다가 그 안으로 몸을 기울였다.
“…가지 마세요….”
떨리는 이겸의 손이 문 바깥으로 나와 권태정의 손가락을 겨우 덮었다. 이겸이 닿는 순간 권태정의 모든 것이 뒤흔들리고 날아갔다.
“흐읍….”
급히 입술을 물며 몸을 기울인 권태정은 이겸과 함께 완전히 방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몸을 겹쳤다. 다리가 문밖으로 걸쳐져 있어도 그딴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이겸의 입술을 머금었다는 게 중요하고 정신없이 헤집어도 무엇 하나 거리낄 게 없다는 게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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