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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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컥 넘친 것이 회음부까지 적신 것에 젖은 위를 미끌미끌하게 문지르자 이겸이 긴 신음과 함께 다시 사정했다. 권태정은 잔뜩 느끼는 이겸의 얼굴을 보면서도 회음부 문지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이겸은 또다시 허리를 움찔대며 극에 달했다. 권태정도 제 손길에 두 번이나 연달아 가 버리는 이겸의 얼굴을 보며 사정했다.
“하…. 후우….”
떨리는 숨을 이겸의 목덜미에 뱉어 낸 권태정이 헐떡이다가 이내 조용해진 이겸을 바라보았다. 땀에 젖은 채 눈을 뜨고 있을 힘도 없어 축 늘어진 얼굴이 예뻐 더 짓궂은 짓을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참기로 했다.
권태정은 달아오른 예쁜 뺨에 쪽 소리가 나게 입 맞추고, 제가 하도 빨아 조금 부은 입술에도 쪽 소리가 나게 뽀뽀했다. 그게 간지러운지 입술을 움직이는 게 귀여워 한 번 더 입 맞추는 것도 머뭇대지 않았다.
“잘까, 이제?”
잠이 달아나지 않게 작게 묻는 소리에 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태정이 웃으며 그런 이겸의 어깨 위로 이불을 올려 덮어 주었다. 온몸에 가득 찼던 열기가 식으니 저도 쌀쌀하게 느껴지는데 이겸은 아마 더할 것이었다.
“그래, 자자. 잘 자.”
그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며 권태정은 못 견디겠다는 듯 작은 이겸을 완전히 제 품으로 가둔 채 몸을 구부려 가득 끌어안았다. 가지고 싶었다. 완전히, 오롯이 제 것으로. 또 제가 아니면 안 되게 만들고 싶었다. 제가 없으면 살 수 없도록. 숨도 쉴 수 없도록.
그리고 권태정은 원했던 것을 한 번도 이루지 못한 적이 없었다.
* * *
권태정은 먼저 도착해 차 안에서 엄마를 기다렸다. 약속 시간 지키는 것을 너무나 중요히 생각하는 권태정의 엄마이자 태성그룹 장학재단의 이사장, 그리고 최고의 아트 갤러리 TS갤러리의 관장 안미연의 차가 약속 시간 십 분 전에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권태정이 까만 차로 다가가 기사가 내리기 전에 먼저 뒷좌석 문을 열었다.
“엄마.”
“우리 막내 벌써 왔어?”
“엄마랑 데이트하는 거 설레서 빨리 왔지.”
의젓한 권유정, 권기정과 달리 권태정은 막내라 그런지 유독 애교가 많았다. 집에서 키는 제일 크고, 애교라고는 전혀 없게 생겨서는 늘 마음이 살살 녹는 말만 하니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살 빠진 것 같아. 잘 못 먹고 다니는 거야? 재개발 일 힘들어?”
“내가 직접 하는 일도 아닌데 뭐. 안 힘들어. 나 요즘 완전 좋은데. 먹는 것도 잘 먹고, 힘들 것도 없어요. 걱정하실 일 하나도 없어.”
“집에도 자주 오고 그래. 엄마가 맛있는 거 해 줄게.”
“우리 엄마 손에 물 묻으면 안 돼. 내가 맛있는 거 사 드려야지.”
한참 큰 권태정의 등을 두드린 안미연이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온 지배인이 깍듯하게 인사하며 자리로 안내했다. 볕이 잘 들어 환하고 따뜻한 룸으로 들어가자 직원이 들어와 의자를 빼 주고, 가방을 받아 주었다.
자리에 앉은 권태정은 평소 엄마가 좋아하는 것으로 알아서 주문을 했다. 이십 년 가까이 단골인 프렌치 레스토랑이라 메뉴를 보지 않아도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뭔지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태정아. 재개발 일 끝날 때까지는 본가에서 지내는 거 어때? 너 나가고 엄마, 아빠 적적해.”
“에이, 유정이 누나랑 기정이 형 있는데 뭐가.”
“유정이랑 기정이는 워낙 바쁘잖아. 요즘 회사가 너무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 엄마 일어나기 전에 나가고, 자면 들어오고. 이럴 때 우리 막내라도 있어야지.”
권태정은 그 말에 가장 먼저 이겸을 떠올렸다. 제가 본가로 들어가면 지금처럼 이겸의 집에서 자기는 어려워질 것이었다. 이겸을 알기 전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였겠지만, 확실히 지금은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나도 좀 신경 쓸 일들이 많아서 요즘 바빠. 기껏 들어갔는데 엄마, 아빠 자주 못 보면 그건 그거대로 더 속상하잖아요. 대신 자주 들를게요. 내키면 나중에 막 한 달씩 본가 가서 있기도 하고.”
“정말이지?”
“그럼, 정말이지.”
“엄마는 네가 좋은 사람 만나서 본가 들어와 살면 좋겠어.”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권태정은 이겸을 떠올리며 슬쩍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엄마를 바라보았다. 너무 앞서가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떠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하면 결혼 바로 허락해 줄 거지?”
“그럼. 엄마는 누구든 허락할 거야. 우리 태정이가 좋아하는 사람을 반대할 이유가 없잖아. 그런데 그건 왜? 우리 막내 만나는 사람 생겼어?”
눈을 빛내는 엄마를 보고 고개를 저은 권태정이 싱긋 웃었다. 뭐 아직 만나는 것도 아니고 서로 좋아한다고 말을 한 것도 아닌 채 몸만 비비고 있으니 뭐라 말을 하긴 일렀다.
“그냥. 무조건 정략결혼 바라시나 해서요.”
“안 그래. 그렇게 만나서 정붙이고 사는 것도 쉽지 않고, 결혼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해야지.”
“음, 그럼 좀 가난해도 괜찮아?”
“네가 가진 게 많으니까 채워 주면 되지. 제일 중요한 건 인품이야.”
32년을 살며 봐 온 것을 토대로 했을 때 엄마는 한 입으로 두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상황을 대충 좋게 만들기 위해 일단 말을 뱉고 보는 사람도 역시 아니었다. 그런 엄마의 대답을 듣고 나니 그래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
물론 저 혼자 엄청 앞서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리 알아 놔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사람 생긴 것 같은데? 전에는 결혼 이야기만 나와도 싫어했잖아. 말도 못 꺼내게 하고. 평생 결혼 안 한다 그러고.”
“그냥. 나도 생각이 좀 바뀌었어.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만 한다면 한번 해 봐도 좋겠다 싶은 쪽으로.”
“엄마는 우리 막내 연애 응원해.”
“아, 그런 거 아니야. 연애 안 해, 아직.”
“응, 그래도 응원해.”
밝게 웃는 엄마를 보며 더는 부정하지 못한 권태정이 그 웃음을 보며 아침에 잘 다녀오라면서 저를 보고 미소 짓던 이겸을 떠올렸다. 그리고 저를 보는 엄마와 눈을 맞추며 싱긋 웃었다.
엄마, 그런데 있잖아. 열두 살 어린애도 괜찮아? 어쩐지 혼날 것 같은 말을 겨우 목 뒤로 삼키며.
* * *
할아버지와 함께 병원 밥을 먹으려던 이겸은 어쩐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추운 기운에 밥 대신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 겨우 몇 모금을 넘겼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권태정이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간 다음부터 뭔가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체한 것처럼 속이 울렁이는 느낌이 나기도 했다.
감기 기운인가 싶기도 했지만, 평소 감기에 걸릴 때 느낌과는 분명히 뭔가가 달랐다. 으슬으슬 떨리는 것과 동시에 몸으로 오싹한 쾌감 같은 것이 짧게 스치고, 한 번씩 단전이 울렁이기도 했다. 어지러운 느낌에 병실 소파에 앉아 있던 이겸은 저를 보고 놀란 얼굴로 다가오는 간병인을 올려다보았다.
“세상에, 땀 좀 봐.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네. 아까도 춥다더니 체한 거 아니야? 아니면 몸살 기운 있어?”
“그런 것 같아요…. 약 먹고 하루 자면 괜찮아질 거예요.”
“얼른 집에 가서 오늘이랑 내일 푹 쉬어. 할아버지 편찮으셔서 왔다 갔다 하고 걱정하다가 긴장 풀려서 그런가 보다. 사람이 긴장 풀리면 크게 앓잖아. 그러기 전에 얼른 가서 쉬어.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네, 감사합니다. 가서 좀 자고 괜찮아지면 올게요.”
“오늘은 오지 마. 알았지? 몸 정말 괜찮아지면 와. 할아버지께는 내가 잘 말해 둘게.”
평소라면 이 정도로 집에 가지 않았겠지만, 오늘은 정말 몸이 이상했다. 이겸은 간병인에게 인사를 하고 주무시는 할아버지를 보다가 병실을 나섰다. 어지럽고 자꾸 식은땀이 나는 걸 보면 정말 몸살이 크게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으로 내려가 버스 정류장이 있는 쪽으로 나가려는데 도저히 병원 바깥까지 몇 분을 걸어갈 힘이 나지를 않았다. 이겸은 저도 모르게 문 바로 앞에 선 택시에 올라 다람동이라는 이름을 겨우 말하고 뒤로 몸을 겨우 기대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가빠지고, 몸이 뜨거워지는 게 느껴질 만큼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몸살은 아닌 것 같은데. 이런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오싹한 기운이 자꾸 남방 안으로 파고들어 몸 안쪽을 스치고 지났다. 이겸은 기대고 있던 몸을 앞으로 숙여 앞 좌석 등받이를 겨우 붙잡은 채 이마를 댔다. 심장이 쿵, 쿵, 쿵 빠르게 뛰는 소리가 들렸다.
“손님, 어디 아프세요? 다시 병원으로 갈까요?”
“아…. 아니에요. 다람동으로 가 주세요.”
겨우 대답한 이겸은 어깨를 움츠렸다. 열은 나는데 몸은 너무 추워서 뭐라도 끌어안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겸은 지난밤 제가 잤던 권태정의 품을 떠올렸다.
“…아.”
권태정을 떠올리자 떨림이 더 심해졌다. 권태정이 없는데도 코끝으로 그 향기가 나는 것만 같았다. 저를 만지던 손길도 떠오르고, 혀를 문지르던 감각도 날카롭게 몸 여기저기를 스치고 지났다. 이겸은 다리를 오므리며 입술을 꾹 아프게 깨물었다. 아무래도 몸살이 아닌 것 같았다. 몸살이 아니라….
‘몸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말해. 페로몬도 돌아온 마당에 이제 히트도 올 거 아냐.’
히트 사이클. 권태정의 목소리와 함께 히트 사이클이라는 이겸에게는 낯선 것이 머릿속으로 가득 차올랐다. 발현한 이후 독한 억제제를 먹어 모든 것이 짓눌리는 바람에 이겸은 히트 사이클을 겪은 적이 없었다.
당연히 말로 들어서만 알뿐,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짐승처럼 발정이 나서 이성을 잃고 알파만 원하게 된다고 해서 속된 말로 ‘발정기’라고도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권태정을 한 번 떠올린 뒤부터는 내내 그 페로몬 향이 떠오르고, 품에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어제처럼 몸을 만져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 너무 괴로웠다.
아직 수치를 느낄 수 있는 이겸은 최대한 권태정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미 권태정과 처음으로 닿아 쾌감을 경험해 본 몸은 착실하게 달아오르며 이겸에게 권태정을 부추겼다. 떠올리라고, 간절히 원하라고, 당장 불러 그 알파에게 매달리라고.
“…하아….”
페로몬이 흘러나와 피부가 화끈화끈한 느낌이 나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면 다행히 택시 기사는 알파가 아닌 모양이었다. 이겸은 안도하며 창밖으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곧 포장이 되지 않은 다람동 안으로 들어간 택시가 이겸이 말하는 골목 어귀까지 가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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