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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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 왜 왔냐고 물은 것도 그냥 날 보러 왔다는 말 하나 듣고 싶어서 물어본 거야.”
“…….”
“키스는 후회 안 하는 충동이었고.”
“…….”
“데려다줬을 땐 예뻐서 하고 싶었어.”
“…….”
“뭐라고 계속 지껄이는 건가 싶지. 나도 그래. 씨발, 나도 내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늘 그랬던 것처럼 골목 입구에 차가 섰다. 이겸은 안전벨트를 풀고 어둠이 내려앉은 차 안에서 권태정을 바라보았다.
권태정은 자신이 지껄이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겸은 권태정이 소리 내는 두서없는 말들이 전부 좋았다. 순서도 무엇도 상관없이 그냥 마음에 있는 솔직한 말인 것 같아 들을 때마다 자꾸만 마음이 부드럽게 헤집어졌다. 꼭 따뜻하고 다정한 권태정의 손이 제 심장을 아주 살살 주무르는 것만 같았다.
“…실장님 보러 간 거 맞아요….”
“…….”
“안 오셔도 된다고 해 놓고… 오셨단 말 들으니까 반가워서….”
반갑다는 말이 이렇게 달착지근한 말이었던가. 권태정은 제가 왔다는 말을 듣고 반가웠다는 이겸의 말을 곱씹으며 고양감에 휩싸였다.
“키스할래?”
“…….”
“깡패랑은 하기 싫어?”
긴장을 풀어 주려는 듯 씩 웃으며 장난치는 권태정을 보며 이겸이 살짝 시선을 내리깔았다. 운전석에서 안전벨트 풀리는 소리와 함께 몸이 기울어져 가까워지는 느낌이 났다. 도저히 볼 용기가 나지 않아 눈을 내리감은 순간 입술이 갈급히 맞물렸다.
이겸은 달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그가 원하는 대로 떨리는 입술을 벌렸다. 혹시나 닫힐세라 성마르게 파고든 권태정이 열이 오른 이겸의 혀를 깊게 머금었다. 혀가 문질리는 것에 움찔한 이겸의 어깨가 움츠러졌다.
“…으응….”
입술을 머금다가 벌어진 입 안으로 파고들어 깊게 헤집던 권태정은 가까운 곳에서 이겸의 얼굴을 보며 혀끝을 문지르다가 다시 깊게 집어삼켰다. 이겸이 작게 앓는 소리라도 낼 때면 키스가 조금 난폭해졌다.
숨 하나도 흘러나가게 하지 않겠다는 듯 전부 목 뒤로 넘긴 권태정이 쉽게 할딱거리는 이겸을 달래듯 혀끝을 핥고 가볍게 빨아들였다. 그 상냥한 자극이 좋아 이겸은 권태정을 향해 고개를 조금 더 기울였다.
“혀 내밀어.”
흥분이 뒤섞인 목소리는 몹시 위압적으로 들렸다. 이겸은 겨우 눈을 떠 권태정을 보며 달아오른 혀끝을 살짝 내밀었다. 그런 이겸의 눈을 깊게 맞춘 채 권태정은 입술 사이에 아주 조금 나와 있는 이겸의 혀끝을 핥다가 젖은 입술을 보며 말했다.
“더.”
달래는 것 같기도 하고… 명령하는 것 같기도 한 말이었다. 이겸은 조금 더 입술 바깥으로 혀를 내밀었다. 열이 머문 혀끝으로 권태정의 혀가 닿는 느낌이 다시 나는 순간 눈이 저절로 감기고 숨이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약해진 억제제 약 기운을 뚫고 이겸의 여릿한 페로몬이 흘러 권태정을 두드렸다.
뇌까지 엉망으로 망가질 것 같은 그 달착지근한 향에 침음한 권태정의 몸이 거의 반쯤 조수석으로 넘어갔다. 커다란 몸이 다가오자 이겸의 작은 몸은 너무나도 쉽게 뒤로 밀렸다.
“…으응, 응…. 아…. 실장님, 잠깐… 아….”
이겸의 페로몬에 반응해 번진 권태정의 페로몬에 이겸은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마른 장미 같기도 하고, 나무 냄새 같기도 한 향에 머릿속이 서서히 비워졌다.
“…하아….”
“하…. 씨발.”
흐트러진 숨과 멍해진 눈동자로 저를 보고 있는 이겸을 살핀 권태정이 욕을 내뱉으며 이겸의 어깨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이겸의 입속을 헤집었던 것처럼 더 깊은 곳까지 제가 엉망으로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다.
권태정은 여기 더 머물러 있다가는 이겸의 어깨가 아니라 다리 사이에 얼굴을 파묻게 될 것 같아 차에서 내렸다. 바깥 공기를 마주하고 나니 그제야 곤죽이 된 머릿속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이성이 몸집을 키웠다.
하마터면, 정말 하마터면 정말 충동적으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을 뻔했다는 사실에 아찔해졌다. 권태정은 차에 기댄 채 눈을 감고 흥분한 머리와 몸을 진정하려 애썼다. 몸은 접촉이 없으니 식는데, 머리는 계속해서 차 안에 있는 이겸의 옷을 벗기고 있어 곤란했다.
“…….”
숨이 완전히 가라앉고 어느 정도 흥분이 가셨을 때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권태정은 차에서 내려 저를 보지 못하고 괜히 다른 곳을 보고 선 이겸을 돌아보았다.
“가자.”
“…저 혼자….”
“안 돼. 전에도 안 됐는데 이젠 더 안 돼. 위험해.”
과보호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이겸을 가장 위험하게 하는 사람이 저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권태정은 최대한 예사롭게 굴며 이겸과 함께 골목으로 들어섰다.
나란히 걸어 살짝 팔이나 손이 스칠 때마다 서로의 몸이 움찔댔다. 결국, 이겸은 두 손을 앞으로 해 손가락을 마주 걸었고, 권태정은 바지 주머니 안으로 불량스럽게 손을 욱여넣었다.
“내일 점심때쯤 올게. 아마 오전에 억제제 받을 수 있을 거야.”
“…네…. 억제제까지 챙겨 주시고 감사합니다.”
“구대범이 너 오메가인 거 알면 가만히 안 둘 거야. 막아야지, 그건. 그리고 다른 새끼들이 손대는 것도 싫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이겸이 초록색 대문 앞에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권태정은 여전히 두 손을 강제적으로 주머니 안에 쑤셔 넣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 손을 꺼냈다가는 또 얼굴이나 머리, 입술을 만지고, 또 어디론가 밀쳐 가둬 버릴 것만 같아 어쩔 수가 없었다.
“…운전 조심하세요.”
“응. 잘 자.”
“저기….”
“응?”
대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이겸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머뭇대며 다시 권태정을 돌아보았다. 권태정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상체만 숙여 이겸의 입술 근처로 얼굴을 내렸다. 작은 이겸의 목소리를 분명히 듣기 위함이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불렀나 싶어 평소에 별로 없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기다리는데 내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권태정은 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머뭇대고 있는 이겸을 바라보았다. 분명 할 말이나 행동이 있는 것 같은데 차마 못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
결국, 이겸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이겸을 본 권태정이 싱그럽게 웃으며 머뭇대는 입술에 가볍게 입 맞췄다.
“뭔지는 몰라도 다음에는 꼭 해.”
“…….”
허리를 펴려는 순간 제가 먼저 다가갔던 그 틈을 메우며 이겸의 얼굴이 다가왔다. 어색하고 어설프게 입술 위로 아주 가볍게 닿은 입술은 몹시 떨리고 있었다. 얼굴부터 목까지 전부 빨개진 이겸은 그대로 뒤돌아 대문 안으로 도망쳤다.
“…와.”
권태정은 멍하니 눈앞에서 닫히고, 잠기는 대문을 보다가 굽혔던 몸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입술에 닿았다가 떨어진 이겸의 온기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행동이 너무 귀엽고 예뻐서, 또 사랑스러워서 다리에서 힘이 다 빠졌다. 처음부터 저한테 하고 싶었던 게 키스였을 거라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허물어지는 것만 같았다.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뺀 권태정이 그대로 초록 대문 맞은편 허물어진 담 벽돌 위로 주저앉았다. 생각하지도 못한 마음이 확 다가와 안겨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겸이 저한테 뽀뽀한 것이었다. 저를 경계하던 연이겸이, 깡패는 싫다면서 단호하게 선을 긋던 그 연이겸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이겸의 온기 위로 가만히 손끝을 댄 권태정이 침음했다. 그 순간 오메가와 절대 사고 치면 안 된다던 아버지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아주 작은 위협도 되지 않았다. 권태정은 미친 듯 뛰는 심장을 느끼며 웃음 섞인 숨을 작게 터뜨렸다.
“…….”
아빠, 어떡해. 나 벌써 사고 친 것 같아.
* * *
그렇게 오라고 해도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비출까 말까 하던 권태정이 며칠 만에 다시 얼굴을 비춘 것에 조현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싱글싱글 웃는 낯짝을 보니 뭔가 부탁할 게 있어 온 것 같았다.
“야, 웃지 마. 나한테는 안 통해.”
세상은 참 불공평했다. 권태정이 저렇게 웃으면서 고개만 살짝 기울이면 세상에 해결하지 못할 일이 없었다. 남자고 여자고 서로 권태정의 말을 들으려 난리가 났고, 심지어 아주 어린애들도 권태정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울던 아기도 권태정이 눈을 맞추며 웃기만 하면 방긋방긋 웃을 정도였다. 그래서 조현준은 권태정이 저렇게 웃을 때면 너무 무서웠다. 결국, 저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아, 뭔데.”
“억제제 좀 처방해 줘.”
“억제제? 늘리는 거 안 된다고 했잖아. 늘릴 필요도 없고.”
“내가 먹을 거 아니야.”
“그럼 누가 먹는데?”
“음, 나이랑 뭐 그런 것도 필요하지? 용량 정하려면. 스물이고, 남자야. 오메가고…. 키는 내 어깨쯤 오고, 몸무게는 한 육십 되려나. 아니, 안 되겠다. 존나 가벼워.”
이겸을 떠올리며 설명한 권태정은 제 말에 놀라 입을 쩍 벌린 조현준을 보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뭔데. 전에 말한 그 머리채 잡아 꿇리고 싶었다는 그 사람 맞아?”
“하여튼 씨발, 그냥 말한 것도 다 기억하고 있지.”
“내가 머리 나쁘면 이 자리에 있겠어? 말이나 제대로 해 봐. 대답하는 거 보고 처방해 줄지, 말지 정할게.”
“야, 그냥 내놔.”
“뉴스 한 번 더 나올래? 재벌 아들의 불법 억제제 처방. 충격!”
재미있다는 듯 웃는 조현준을 노려본 권태정이 작게 한숨지었다. 그리고 대충 조현준이 듣고 싶을 만한 이야기를 전했다.
“걔 맞아.”
“와, 권태정! 너 진짜…. 너 같은 꼴통을 누가 데려가나 했는데….”
“오버하지 마. 심각한 사이 아니야. 그냥 상부상조하는 사이.”
“네가 오메가랑 상부상조할 일이 뭐가 있어? 러트 파트너야? 그래, 잘 만들었어. 호르몬 제어 오래 해 봤자 좋을 게 없다니까.”
“그런 거 아니야. 러트 파트너는 무슨, 존나 소름 끼치네. 우리 아빠한테 가서 그런 말 한번 해 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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