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전부라.
……얼마나 달콤한 단어인지.
차은혁은 차은수의 콧등에 입을 맞추었다. 일방적으로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서로에게 맹목적인 상황이 환희를 일으켰다.
언젠가는 깨질지도 모를 정서적 교감이지만, 그래서 더욱 이 순간이 소중했다.
그는 차은수를 꽉 끌어안고 따뜻한 목덜미에 얼굴을 비볐다.
“배고프지.”
“아니.”
차은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기운이 들어가지 않아 흐늘거리는 몸 상태를 차은혁이 모를 리 없었다. 오래 누워 있었던 탓에 관절이 많이 굳어 있기도 했고.
마사지로 풀어 주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으나, 음식을 섭취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차은수의 손목에 두른 띠 안쪽을 손끝으로 지그시 눌렀다. 가죽과 안감 사이로 사슬과 연결되어 있던 금속이 강한 압력을 받았다. 철컥 소리를 내며 이음매가 분리되었다.
차은수는 가벼워진 손목에 다소 놀란 눈으로 차은혁을 바라보았다. 풀어 주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눈치였다.
차은혁이 한숨 섞인 웃음을 흘렸다. 애당초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풀어 줄지 말지 결정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심지어 상대가 원하는 말을 던져 살살 녹아 버리게 만들고는,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동생의 얼굴이 희었다. 무의식적으로 남을 홀리는 건 변하지 않는 천성인 듯했다.
“입맛 없어도 뭘 먹어야지.”
그는 차은수의 볼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를 안은 자세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왔다.
방에서 빠져나와 거실로 내려갔다. 차은수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규모가 으리으리하지만 고즈넉한 분위기의 저택이었다.
이내 한 가지 깨달음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묘하게 익숙하다 싶더니, 과거 그와 차은혁이 분가했던 집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때 신경을 써 준 이들과, 차은혁의 사저인 이곳을 신경 써 주었을 이들이 같기 때문일까.
……이제야 비로소 함께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차은혁은 차은수를 식탁 의자에 앉혀 두고 움직였다. 널찍한 탁상에 갖가지 음식들이 차려졌다. 이틀 넘게 잠들어 있던 차은수의 위가 탈이 나지 않도록 부드러운 음식 위주였다.
“지금은 이렇게 먹고, 저녁쯤부터 먹고 싶은 거 말해.”
“응.”
차은혁은 차은수의 앞에 앉아 그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너는 숟가락질만 하라는 듯 반찬을 얹어 주면서.
누가 보더라도 단란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연두부를 우물거리다가 삼킨 차은수가 눈을 내리깔았다. 예전 생각이 난 사람은 그만이 아니었다. 차은혁 역시 다를 바 없는 상태로, 묵묵히 차은수의 식사를 거들었다.
“…….”
“…….”
머지않아 배가 찼는지 차은수는 숟가락질을 멈추었다.
“형.”
작은 부름에, 차은혁이 젓가락을 내려 두며 그를 응시했다.
“혹시…….”
선뜻 용건을 꺼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할 자격이 스스로에게 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
차은혁은 그가 무얼 질문하려는지 단번에 간파했다.
“심태성은 무사해.”
“……!”
엷은 갈색 눈이 크게 뜨였다. 질문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알아차려 당황한 듯싶었다.
곧 차은수의 얼굴에 안도감이 퍼져 나갔다.
차은혁은 차은수가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를 떠올리는 상황이 결코 달갑지 않았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수용했다. 여유라는 건 사람을 이다지도 물렁하게 만들었다.
“장희강……. 그 사람이 나타났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차은수가 울컥한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형도 경호원님도 결국 잘못됐구나.”
“…….”
“그리고 그렇게 되니까 점점 포기하고 싶어졌어.”
처음에는 감금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발버둥 쳤을지 몰라도, 끝내 벌이라 생각하며 달게 받아들이려 했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그때 때마침 나타난 저를 보며 그토록 오열했던 것이겠지. 차은혁은 또다시 울 것만 같은 얼굴을 눈에 담았다.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는 차은수의 맑은 눈망울이 촉촉했다.
자신이 공생을 택한 뱀들 사이로 떨어진 줄도 모르고.
차은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으로 걸어갔다. 의자 뒤에서 마른 몸을 감싸 안자, 차은수가 자신을 두른 팔을 잡으며 어깨에 고개를 기대어 왔다.
“무사해 줘서 고마워.”
진심 어린 목소리가 차은수에게서 흘러나왔다.
차은혁은 가여운 동생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
형이 뒷정리를 하는 동안, 나는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했다.
그래. 드디어 혼자 씻었다고, 시발.
이게 뭐라고 감격스러웠다. 장희강 탓에 내 발로 걷는 것과 스스로 씻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지경이었었으니까.
형은 어린애에게 주의를 주듯,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당부하기는 했지만 제지하지는 않았다. 내게서 일종의 확인 작업을 마쳤기 때문인가.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게 해 주어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았다.
물론 제 영역에 한해서일 테지만.
“으…….”
이상하다. 몸이 왜 이렇게 둔해. 오래 누워 있었던 적은 이미 몇 번이나 있는데, 이번이 가장 피로한 느낌이다.
그래도 따뜻한 물로 몸을 적시니 조금이나마 나아지기는 했다. 욕조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너무 나른해져서 잠들 수도 있을 것 같아 관두었다.
양치까지 끝내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갓 태어난 송아지처럼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 씻었네.”
그리고 내가 이럴 줄 알았다는 양, 형이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흠칫한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나를 달랑 들고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거실 한가운데에 위치한 마사지 베드 위에 나를 앉힌다.
뭐야. 이게 아까도 있었던가?
“가운 벗고 누워.”
“……어?”
눈을 깜빡이면서 형을 쳐다보았다. 형이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몸 굳었잖아. 풀어 줘야지.”
그건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각 잡고 해 주겠다고.
“…….”
나는 머뭇거리다가 가운을 풀었다. 밀폐된 방이 아닌 개방감 넘치는 공간에서 탈의를 하자니 상당히 부끄러웠다. 형 말고는 누가 보는 것도 아니지만.
형은 내게서 가운을 가져가 근처 소파에 걸쳐 두었다. 그리고 손을 소독한 뒤, 미리 준비해 둔 용기에서 오일을 펌핑했다. 딱 좋게 은은한 향이 풍겼다. 무슨 냄새지.
“졸리면 자도 돼.”
씻으면서 느꼈던 나른함은 마사지 제안에 싹 가신 지 오래였다. 그래도 알겠다고 고갯짓을 하며 베드에 얌전히 누웠다.
큼직한 양손이 맨발을 쥐어 왔다. 그러고는 엄지를 사용해 주무르기 시작한다. 제대로 힘 조절을 했는지 별로 아프지 않았다.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
“어때.”
“좋아.”
진심이 튀어나왔다. 발꿈치를 안정적으로 감싸고, 아치 부분을 꾹꾹 누르는 손길은 전문가의 것이라고 해도 믿길 수준이었다. 발만 마사지했을 뿐인데도 벌써 피로감이 풀리는 것 같다.
반대쪽 발도 정성스럽게 주무른 형이 내 몸을 뒤집었다. 아주 간단하게. 나는 얼떨떨하게 엎드린 채, 순식간에 반전된 시야에 적응했다. 오일을 더 짜는 소리가 들렸다.
미끈거리는 손바닥이 내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적당한 힘을 주며 올라간다. 형의 손바닥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오일의 감촉도, 그 손길도 끝내주게 시원했다.
“으읏…….”
성적인 의도가 전혀 없는 손길이라서, 이대로라면 잠이 다시 올 것 같았다.
우리 형, 몸 쓰는 사람이라 그런가. 왜 이렇게 잘해.
“아…….”
“…….”
형이 내 위로 올라탔는지 베드가 약간 움직였다. 이어 굵은 손가락들이 꼼꼼하고 부드럽게 내 등을 누볐다. 간간이 지압도 해 주어서 굉장히 개운했다.
눈앞이 가물가물해진다. 느릿한 손길이 어깨를 풀어 줄 때쯤, 나는 거의 가수면 상태였다.
담백한 손길이 바뀌기 전까지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던 손이 내려가더니 둔부를 움켜쥐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형?”
노골적으로 주물럭거려지는 엉덩이가 미끌미끌해졌다. 이건 마사지라기보다는…….
“……! 흐읏!”
오일을 듬뿍 바른 손끝이 엉덩이골을 배회했다. 당장에라도 사이를 파고들듯 구는 손놀림은 목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간지럽고 짜릿한 감각에 어깨를 웅크렸다.
형이 내 양쪽 골반을 쥐고 잡아당겼다. 그 힘에 속수무책으로 엉덩이를 치켜들게 되었다. 베드 위를 짚은 채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좁아 죽겠는데 설마 여기서 하려는 건 아니지?
하지만 형은 침묵을 고수했다. 중요한 업무라도 보고 있는 사람처럼 내 아래를 들여다보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이내 내 골반을 놓은 손이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길고 단단한 검지가 입구를 꾸욱 누른다. 나는 파드드 몸을 떨었다. 오일에 젖어 있는 상태였기에 손가락은 수월하게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잠, 으응……!”
“……하. 은수야.”
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불러 온다. 아니, 나는 얌전히 있었거든. 멋대로 마사지해 주겠다던 사람이 누군데. 억울한 마음을 담아 엉덩이를 살짝 흔들었다.
형은 아랑곳하지 않고 중지까지 집어넣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구멍은 이를 무리 없이 받아 냈다. 내벽이 까탈을 부리듯 손가락들을 오물거렸다.
그 감각을 즐기는지 가만히 있던 형이, 빠져나올 생각은 않고 손가락 마디를 굽혔다. 둥글게 휜 채 안을 더듬거나 가위질하는 듯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손가락과 입구 사이가 간간이 벌어지며 쿨쩍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나는 작게 앓는 신음을 흘리며 베드에 이마를 기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