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오해라고.”
언제 들어도 좋은 저음이 내 말을 곱씹었다. 짙은 눈썹이 조금 들썩였다.
나는 문득 괴리감이 들었다.
이상하네. 묘하게 당당해.
원래 내 예상대로라면 죄인처럼 굴어야 하는데.
“아……!”
뼈대가 굵은 손가락이 내 턱을 잡아챘다. 거칠진 않지만 거침없는 태도였다.
얼굴이 치켜들려 억지로 시선이 맞춰진 상황에서, 형이 입을 열었다.
“글쎄. 난 오해 아니라고 보는데.”
“……형?”
“내가 말했지.”
형이 허리를 굽혔다. 숨결이 닿을 정도로 얼굴이 가까워졌다.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검은 눈동자가 나를 가둔다.
한 가지 확실하게 엿보이는 것은,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힐 만큼의 허기였다.
분명 가이딩을 넘치게 받아 최상의 컨디션일 텐데도.
“나한테 필요한 건 너 자체라고.”
“……!”
순간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정욕에 눈이 돌아가, 한순간의 실수를 저지른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굳어 버렸다.
와…….
이렇게 나온다고?
“더 쉬어라.”
뭐라 말을 더 꺼내지 못하는 내 이마에, 입술이 촉 소리를 내며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대로 몸을 물린 형이 뒤돌아섰다.
이윽고 침실을 나선다.
“…….”
방문이 소음 없이 닫히며, 형의 뒷모습이 사라졌다.
한동안 그곳에 눈길을 주던 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시발.
미쳤나 봐.
이편이 훨씬 좋잖아?
***
정현식은 쫓기는 사람처럼 자신이 머무는 방으로 향했다. 떨리는 손으로 다급히 문을 열고 들어온 후에는,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어 버렸다. 다리의 힘이 죄 풀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차화 그룹 일가의 전담의가 된 과정을 기억했다.
대학 병원에 근무하던 시절. 지금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에스퍼 범죄자들이 활개를 쳐, 매일같이 수많은 피해자가 응급실에 실려 왔다. 일선에서 뛰어다니며 환자들을 돌보기에 여념이 없던 여느 날이었다.
복부에 커다란 관통상을 입은 환자가 실려 왔다.
‘과장님! 이쪽입니다!’
‘들었어? 제이주 로펌 대표래.’
‘파편이 날아와서…….’
에스퍼 테러리스트와 협회 소속 에스퍼의 교전에 휘말렸다고 했다. 즉사하지 않은 것이 놀라운 치명상이었고, 안타깝게도 수술에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사망 선고를 내리는 그의 뒤에 주저앉아 있던 남자가 오열했다.
고인의 아들이었다.
‘에스퍼들은 괴물이야!’
‘…….’
정현식은 속으로나마 그의 말에 공감했다. 그리고 괴물들의 또 다른 희생양을 살리고자 분주히 달려갔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그는 은퇴했다. 비슷한 시기, 주상호라는 인물이 대선에 출마했다.
주상호는 에스퍼들을 철저히 통제하는 기관을 별도로 설립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 외에도 그들을 억압하는 취지의 내용들이 다수 존재했고, 에스퍼 범죄자의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부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해당 후보의 낯익은 얼굴을 본 순간. 정현식은 과거의 처절한 절규가 다시금 들리는 것 같았다. 에스퍼들은 괴물이라던.
주상호는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겁도 없이……. 저러다 큰일 나려고.’
국민들은 혀를 찼다. 에스퍼들이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사상을 지닌 테러 조직의 표적이 되기 딱 좋은 대상이라고, 죽고 싶어 안달이 난 인간 같다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그보다 주상호를 옹호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일반인은 흉내도 낼 수 없는 힘을 지닌 에스퍼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제 능력에 도취해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은 크나큰 사회적 문제였으니까.
그들로 인해 가족, 친구, 누구든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들. 자신들과 똑같은 아픔을 지닌 주상호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 혹은 그런 경험이 없어도 그의 의견에 찬성하는 사람들.
그리고 에스퍼들의 범죄에 덧없이 스러져 간 생명을 너무도 많이 맞닥뜨렸던 정현식 역시.
주상호의 강경한 태도를 응원했다.
그렇게 그의 지지율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대중은 주상호의 당선을 확신했다. 차츰차츰 선거일에 근접해 가던 어느 날.
‘주상호 대통령 후보가 금일 자택에서 피습을 당해 숨졌습니다.’
‘범인들은 국내 최대 규모의 테러 조직 소속으로 추정되며…….’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살이라니. 시끄럽게 입을 놀리며 비극을 예상한 사람들조차 그것이 현실이 된 상황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정현식은 주상호의 기구한 삶의 편린을 실제 직면했던 사람으로서 그를 애도했다.
하지만 보안이 철두철미한 데다가 조문객을 가려 받는다는 장례식에 참석할 도리가 없어, 주상호의 유족을 만날 일이 생길 줄은 전혀 몰랐다.
‘차화 일가 말일세. 이번 사건의 충격으로 전담의가 그만두었다는군. 그 자리에 자네를 추천할까 싶은데 어떤가.’
은퇴 후에도 종종 만나 술잔을 기울이던 병원장이 권유해 오기 전까지는.
정현식은 길게 고민하지 않고, 그리해 주면 고맙겠노라고 답했다.
전담의가 된 첫날. 참극 당일에 에스퍼로 발현했다는 첫째 아들 차은혁은 자신을 경계했다. 부친을 눈앞에서 잃는 끔찍한 일을 겪고도 공황에 빠져 있기는커녕, 잔뜩 날이 선 채 낯선 이로부터 제 가족을 지키려 드는 모습이었다.
둘째인 차은세는 실어 증상을 보여, 정신과 분야에서 권위학자인 교수에게 진료를 의뢰했다.
심리적 쇼크로 몸까지 약해진, 가장 안 좋은 쪽은 아이들의 모친이었다. 그랬기에 정현식은 초반에는 저택에 거의 상주한 채로 차 회장을 돌보았다.
그렇듯 우울함이 지배하는 저택에서도 유일하게 숨통이 트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셋째 아이를 볼 때였다. 갓난아기라 자주 아플 수 있어, 차 회장만큼이나 주의를 기울여 수시로 살펴 주어야만 했다.
‘우아, 우!’
차은수는 정말 특별했다. 조그만 얼굴이 방긋 웃을 때면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는 날에도 햇빛이 반짝거리며 비추어지는 듯한 착각이 일었고, 온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성장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괜찮아요.’
이상할 정도로 번번이 아픈데도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쯤은, 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어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린 듯이 고운 마음씨였다. 섬세하고 이타적이라 주변인들을 항상 꼼꼼히 챙겼기에, 누구라도 그를 아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아이를,
형이라는 존재가 무참히 짓뭉갰다.
아침 일찍 날아온 호출에 헐레벌떡 옷을 껴입고 가서 발견한 장면은……. 온몸이 엉망이 된 채로 침대에 눕혀져 있던 차은수였다.
누가 보아도 화간이 아닌 행위로 인한 흔적처럼 보였고, 누가 보아도 그 범인은 방금 정사를 마친 듯 가운 차림으로 침대맡을 지키던 차은혁이었다.
“괴물…….”
정현식이 버석하게 마른 입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주상호의 주장대로, 에스퍼는 괴물이 맞다.
가이드라면 제 동생도 탐하는 괴물.
아마 주상호는 본인의 자식이 그 괴물로 변할지 몰랐겠지.
“…….”
정현식은 그를 고압적으로 내려다보던 차은혁의 시커먼 눈동자를 떠올렸다. 어느 이름 모를 사내를 공격하던 살벌한 모습도. 그때의 위압감이 다시금 살아나며 저절로 전신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등급이 높은 에스퍼일수록 가이딩의 결함으로 겪는 고통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고통은 인간성을 마모시키기 마련이다. 따라서 일반인이라면 무릇, 상위 등급의 에스퍼들을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서 비인간적인 느낌을 받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정현식은 여태 그랬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려서부터 차은혁은 지나치게 과묵할 뿐. 이질감을 풍기는 법이 없었으니까. 애당초 그는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남들도 차은혁만큼은 인간적이고 절제력 강한 비운의 인재라고 여겨 왔다.
그런데 오늘 자신은, 그의 비인간성을 극단적으로 느꼈다.
“……허.”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 절제력은 무슨.
짐승처럼 본능에 굴복하지 않고서야, 도대체 어떻게 형제를 범할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차은수의 반응 또한 문제였다.
당장 저가 당한 일을 털어놓지는 못할지라도 차은혁을 감싸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이 감싸 주는 것을 넘어, 제 형이 자신에게 한 짓을 발설하지 말아 달라 부탁해 오기까지 했다.
정작 차은혁은 차은수가 가이드라는 사실을 감추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지만.
……숨겨서 어찌할 셈이지?
평생 동생을 착취할 작정인가?
정현식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하도 충격적인 일을 겪고 위협까지 당했더니 속이 괴롭게 울렁거렸다. 형제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했으나, 분명 있는 대로 티가 났을 것이다.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 세수를 했다. 냉수가 여기저기 튀며 옷까지 젖었다. 그런데도 정신이 영 맑아지지가 않았다.
그 가여운 청년을 어떻게 도와야 하나.
머릿속이 그저 차은수를 도울 생각으로 가득 찼다.
……가이드 협회에 제보를 할까.
그러면 적어도 차은혁의 손아귀에서는 풀려날 터였다.
“음, 그건 곤란한데요.”
불쑥 누군가 말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정현식이 숨을 헉 들이켜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되면 더 골치 아파져서.”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정현식은 그제야 목소리가 자신의 것임을 깨달았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내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돌린 찰나였다.
“좋은 정보 감사했습니다, 선생님.”
마주하게 된 거울 속 스스로가 한쪽 눈을 익살스레 감았다.
그러고는, 암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