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바닥에 굴러다니는 심장은 현실감이 없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체들도.
“일단 여기부터 치워야겠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그리고 협회에도 황청진에 대해 보고하고 하수구 아래 시체도 치워야 되고 또 학교에 이미 퍼진 부정도 정화해야 하고. 그러고 보니 애들한테도 이미 상당히 스며든 것 같은데 다들 괜찮을지 걱정이네. 이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협회에 먼저 전화……, 아!”
중얼중얼 해야만 하는 일들을 읊조리던 선생님은 핸드폰을 꺼내다 말고 크게 휘청이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선생님!”
맥없이 쓰러진 선생님의 낯빛은 새하얬다. 선생님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팔 한쪽이 날아간 것도 모자라 여기저기가 묵의 손톱에 베인 듯 옷과 살갗이 심하게 찢겨 출혈이 상당했다. 나는 서둘러 선생님의 옆에 앉아 몸 상태를 살폈다. 그의 입술이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새파랬다.
“큰일났군…….”
선생님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피를 많이 흘려 핼쑥해진 얼굴은 말 한마디 잇기도 벅차 보였다. 선생님의 잘린 왼팔 팔꿈치에서 피가 자꾸만 쏟아졌다.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어쩔 줄 모르고 식은땀을 흘리는 그의 이마를 닦아 주느라 바빴다. 개 같은 이예경. 개 같은 황청진. 어느새 눈두덩이가 시큰했다.
“도욱아, 119. 119 부르자. 얼른.”
도욱이의 얼굴도 이미 딱딱하게 굳었다. 걔는 내 말에 별 대꾸 없이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귀에 댔다. 나는 다시 선생님을 쳐다봤다. 응급처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팔이 잘리면, 팔이 잘리면 뭘 해야 하더라? 머릿속이 표백된 것처럼 새하얬다. 십구 년 살면서 이런 경우에 할 수 있는 방법 하나 안 배워놨더니. 빌어먹을 강채승!
그는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안색은 새하얗다 못해 점점 입술과 비슷한 색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체온은 급속도로 떨어졌다. 끔벅끔벅 느려지는 눈꺼풀이 사람을 급박하게 만든다.
“야, 이거 참……. 어지럽네…….”
“주무시면 안 돼요! 도욱아, 119는?”
“금방 올 거예요.”
통화를 끊은 도욱이가 자꾸만 누우려는 선생님의 등을 손으로 받쳤다. 걔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도욱아, 혹시 싶어서 미리 말하는데…….”
“말하지 마세요.”
“너도 만나 봐서 알겠지만 살아있는 묵, 그러니까 산묵은 보통의 묵과 달라…….”
선생님이 띄엄띄엄 말을 이어나갔다.
“보통의 묵은 지성이 없어 단순한 패턴만 반복했다면……. 이것들은 인간의 기억과 지능이 남은 채로 머리를 써서 공격해……. 내 심장에 손을 대면……. 본인들이 죽을 것을 아니까……. 일부러 심장은 손도 안 댄다고…….”
“삼촌이 조종하는 거예요. 무슨 방법을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삼촌은 부정이 깃든 모든 묵의 오감을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요. 아까 저를 공격했던 그 남자도 삼촌처럼 말했거든요.”
방금 보건실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 나는 침울하게 고개를 떨어트리며 선생님의 안색만 살폈다. 제발 119가 올 때까지 무사하셔야 하는데.
“조심해……. 황청진은…… 이제 너라도……. 죽일지 모르니까…….”
황청진.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도대체 그 남자는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걸까. 어째서 그렇게 소중했다는 조카까지 위험에 빠트리면서 그런 일을 하는 걸까. 황청진이 이예경의 얼굴로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어차피 지옥에 갈 영혼이라면 억울하게 죽은 사람 한 명 정도는 살려 놓고 가도 괜찮지 않겠냐던.
설마, 그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어머니인가.
“선생님, 조금만 참으세요. 사람들 금방 올 거니까.”
“응, 그래. 난 괜찮아…….”
선생님이 쓰게 웃었다. 차라리 곧바로 업고 병원까지 달릴 것을 그랬나. 도욱이도 나도 어떻게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며 옆을 지킬 때다. 교문 앞에 웬 새까만 고급 세단 한 대와 대형 SUV 한 대 그리고 구급차가 줄줄이 와서 섰다. 그러더니 세단에서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 두 명이, SUV에서는 검은 작업복을 입은 일단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게 아닌가.
그 무리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익숙한 듯이 들것 몇 개를 챙기더니 우리 주위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 다섯 구를 잽싸게 챙겨 차에 실었다. 그리고 그들이 바닥에 남은 피를 지우는 동안 검은 요원둘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대체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 경계를 하는 나와는 달리 선생님과 도욱이는 익히 아는 얼굴인 듯 고개를 까딱 숙이며 인사를 하는 것이다.
“바로 병원으로 옮기겠습니다.”
“예에, 부탁합니다…….”
선생님은 이제 거의 기절한 얼굴이었다. 구급차에서 내린 듯한 사람 두 명이 들것을 갖고 와 그 옆에 섰다. 나는 그들이 선생님을 옮기기 쉽도록 자리를 터 주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난장판이었던 교정이 그들의 등장 이후 빠르게 원상 복귀 되고 있었다. 눈 깜박할 사이에 모든 것이 말끔해진 공터를 보면서 나는 울던 것도 잊고 입만 벌리고 섰다.
“학생이 강채승 씨입니까?”
그 요원이 나를 보며 물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상황 돌아가는 걸 보니 이들이 협회의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뭐야, 일손 달린다더니!
“반갑습니다. 저는 환상 그룹의 이웅이라고 합니다. 이쪽은 저희한테 맡기시고 우선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은요?”
“바로 병원으로 모실 겁니다.”
“선생님 팔이, 팔이 잘렸는데, 괜찮, 괜찮을까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상황에서 침착함을 유지하기란 참 쉽지 않다. 나는 훌쩍거리면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지는 선생님을 응시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마음 같아서는 병원으로 따라가고 싶었다. 지금 집에 가 봤자 속 편히 누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분명히 오늘의 일과 병원에 있을 선생님의 얼굴이 계속 떠오르며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 거다. 선생님을 쫓아가기로 마음을 굳힌 나는 도욱이에게도 의견을 묻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걔는 나도 이웅 씨도 아닌 다른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도욱아?”
“하수구.”
“하수구?”
도욱이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아직 요원들이 하수구의 시체까지는 모르는 듯 이예경이 밟고 있던 하수구 뚜껑은 닫힌 그대로였다. 참, 저것부터 제거해야 되는 거지.
“아, 저기, 하수구 아래 시체가 또 하나 있어요. 그게 지금 학교에 어떤 저주 같은 걸 내린 거라…….”
“네?”
“하여튼 지금 당장 치워야 해요!”
설명이 너무 어렵다. 내가 무슨 개똥 같은 말을 해도 그는 찰떡처럼 이해하겠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몰라도 ‘하수구 밑에 시체 하나가 더 있다.’라는 말만큼은 확실히 이해한 요원이 작업복 입은 두 사람을 부르며 들것 하나를 더 들고 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들이 들것을 가져오는 것보다 황도욱이 움직인 게 먼저였다. 걔는 잔뜩 굳은 얼굴을 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와 요원님들을 성큼성큼 지나쳐 하수구 뚜껑 앞에 섰다. 황도욱은 누가 말리기도 전에 하수구 뚜껑을 벌컥 열었다.
“우엑. 이게 무슨 냄새야?”
뚜껑이 열리자마자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코를 틀어막았다. 아주 시큼하고 불쾌한 냄새였다. 조린 고등어가 썩는 냄새 같기도 했고 까나리 액젓이 500년 동안 방치된 냄새 같기도 했다. 하여튼 굉장한 악취였다. 헛구역질이 쏟아졌다.
“시체 냄새입니다. 부패가 상당히 많이 진행됐나 보군요.”
요원이 대답하면서 서둘러 황도욱의 옆으로 달려갔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들의 뒤로 바짝 붙었다. 냄새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독해졌다. 이게 시체 냄새구나. 묵의 냄새와 비슷하게 심한 악취다.
“도욱아, 괜찮아? 냄새가 너무…… 욱!”
황도욱은 꿋꿋하게 서 있었다. 누구보다 냄새에 민감한 주제에 뒤로 한 발 물러서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 그대로 쪼그려 앉더니 안쪽을 살폈다. 요원이 도욱이에게 말했다.
“잠깐 물러 서세요. 저희가 내려가서 시체를 수거하겠습니다.”
요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두 명이 들것을 들고 왔다. 그러나 그 아래를 한참 보고 있던 도욱이는 자리를 피하는 대신 갑자기 주저앉더니 그대로 하수구에 두 다리를 밀어 넣는 것이다.
“도욱아?”
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저 아래가 얼마나 더럽고 위험할지도 모르는데 지금 맨몸으로! 나도 요원들도 황도욱의 기행에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도욱이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지 꾸물꾸물 하수구 아래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뭐 해!”
“도욱 씨, 시체 수거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나오셔도…….”
“아니요.”
도욱이가 이웅 씨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 그러면서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은 걔는 기어이 몸의 절반을 하수구에 담았다.
“민간인이 접촉하기에는 위험해요. 제가 가서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말을 끝낸 도욱이가 쑥 사라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얼굴은 지면 위로 나와 있었는데 그마저도 들어가고 만 것이다. 나는 악취를 이겨내며 급히 그 옆에 다가가 얼굴을 내밀었다. 코를 막았는데도 불구하고 시체 썩은 냄새와 하수구 냄새가 섞여 도통 견딜 수 없는 악취를 만들어 냈다.
나는 결국 도욱이가 묵을 수거할 때 하던 기도를 암송하는 소리를 들으며 멀찍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심한 부패 냄새가 어떻게 지금까지 학교를 드나드는 동안 아무도 맡지 못했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뚜껑이 닫혀 있었어도 그렇지…….
머릿속에 드는 의문을 해소하랴, 악취 때문에 코를 틀어막으랴 고생한 지 몇 분 뒤, 드디어 몸에 오물을 잔뜩 묻힌 황도욱이 올라왔다. 그리고 동시에 코를 찌를 듯 괴롭히던 악취도 한층 정갈해진 듯했다. 그러니까 시체 썩은 냄새가 역하도록 남은 건 마찬가지인데, 이제는 좀 인간 세상에 있을 법한 냄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까는 정말이지, 세상에 이런 냄새가 실존한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을 후벼 파는 악취였다.
작업복 입은 사람 몇 명이 도욱이에게 수건과 물을 넘겨 주었다. 도욱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묻은 오물을 슥슥 닦아내면서 말했다.
“시체가 묻힌 땅을 밟기만 해도 부정이 옮겨 붙는 형태의 저주예요. 본래 마음이 악하면 악할수록, 검으면 검을수록 더 쉽게 감염되죠. 지금은 제가 시체에 남은 부정의 근원을 정화해서 괜찮지만……, 이미 감염된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폭력 성향이 극대화되는 건 물론 심하면 살인까지 저지를 거예요.”
황도욱이 말을 하는 동안 사람들 몇 명이 하수구 아래로 들어가 시체를 밖으로 꺼내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도욱이 옆에 붙어서 얼굴과 손 등에 묻은 구정물을 닦는 것을 도와주며 물었다.
“이미 감염된 사람들? 학교에 출입한 사람들 다?”
내가 기겁하며 물었다. 황도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해결할 방법은 있는 거야? 학생들, 선생님들 그 외 교직원들도 생각하면……. 아, 잠깐만. 학교에 출입한 사람들 다?”
문득 나는 아주 끔찍한 상상을 했다.
“그거 학교에서 벗어난다고 괜찮아지고 그런 거 아니지.”
“네.”
“폭력 성향이 심해진다고?”
황도욱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다급한 얼굴을 하냐는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근래에 아주 갑자기 폭력이 심해졌다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매일 방과후 학교에 딸을 데리러 왔다던.
“소영이.”
소영이가 언제부터 부모님의 폭력에 시달렸다고 했더라? 화해했다고 다시 돌아갔던 소영이는 왜 연락이 끊겼지? 개학했는데도 불구하고 왜 학교에 출석을 하지 않았을까?
“소영이한테 가자.”
그대로 놔두면 폭력 성향이 극대화되는 건 물론 심하면 살인까지 저지를 거예요. 믿고 싶지 않은 문장이 자꾸만 소영이의 멍든 얼굴과 겹치며 눈앞에서 빙빙 돌았다.
차창 밖으로 불 꺼진 건물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소영아, 별일 없어?]
사라지지 않는 1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전화도 몇 번 걸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부재중으로 넘어가고 만다.
“얼마나 남았어요?”
“10분만 더 가면 됩니다.”
“제발요. 죄송한데 조금만 더 서둘러 주세요.”
내 부탁에 운전대를 잡은 요원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영이의 이름을 꺼내자마자 무슨 일인지 눈치챈 요원님들이 먼저 데려다주겠다고 나서서 다행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손에 꽉 쥐고 발만 동동 굴렀다. 선생님의 잘린 팔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소영이도 벌써 그만 한 부상을 입었다면? 그 정도면 오히려 다행이고 사실 이미 죽었다면?
“…….”
온갖 끔찍한 가설로 혼란스러운데 도욱이가 그 넓은 손바닥으로 핸드폰을 쥐고 있던 내 손등을 살며시 덮었다. 손바닥과 손등 틈으로 온기가 닿았다. 그제야 나는 머릿속을 온통 뒤덮고 있던 불안에서 조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고개를 들고 도욱이를 봤다. 무난한 표정에 평범하지 않은 얼굴이다.
“…….”
침묵. 도욱이는 내 손을 맞잡았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동그랗고 선한 눈으로 올곧게 나만 응시했다. 호들갑스러운 위로도 없고 대책 없는 단정도 없다. 이 협소한 공간에 오직 침묵만이 존재했다. 두근두근. 박동하는 심장 소리에 귀까지 새빨개지는 동안 이것보다 더 다정한 위로는 없을 거라고, 나는 자신했다.
***
“도착입니다.”
“감사합니다!”
자동차가 낯선 아파트 단지에 주차하자마자 나는 스프링처럼 튀어나왔다. 412동 1203호. 아까부터 붙잡고 있느라 외워 버린 주소를 주문처럼 읊조리면서 412동을 찾아 쏜살같이 달려갔다. 한층 꺾인 여름밤의 눅눅한 공기가 휘청거리는 사지에 달라붙었다.
412동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단지의 오른쪽 외곽에 서 있는 세 개의 아파트 중 한 개의 아파트 벽면에 파란색 페인트로 커다랗게 412라고 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냅다 달렸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뛴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우소영. 따지고 보면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뭘 이렇게까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건 어떤 깊은 우정에서 기인한 마음이라기보다는……, 같은 지옥에서 살았던 경험자의 동질감에 더 가깝다. 우리 아버지도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의 모습은 개막장이었으니까. 그 지옥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있으니까.
제발, 제발 아직 무사하길. 나는 빠르게 뛰어 412동에 입성했다. 양쪽으로 복도가 길게 난 복도식 아파트였다. 현관문 바로 앞에 엘레베이터가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가 버튼을 연타하며 계기판을 확인했으나 고장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런 씨발! 나는 욕설을 뱉으며 재빨리 계단으로 몸을 틀었다. 서두르는 내 뒤를 따라 도욱이와 요원님들도 쫓아오고 있었다.
“12층이야! 1203호!”
나와 도욱이, 그리고 이웅 씨를 포함한 요원님 둘까지 포함하여 대략 4명이 겅중겅중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최선을 다했으나 대략 3층 만에 현저하게 속도가 느려진 나와는 다르게 나머지 세 명은 나를 젖히고 쑥쑥 위로 올라갔다. 단 몇 분 사이에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지는 걸 눈으로 보며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 공부만 하지 말고 운동도 좀 할걸.
소영이에 대한 걱정과는 별개로 호흡마저 벅차기 시작한 폐와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는 도저히 더 이상의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세 명이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소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마음은 급한데 몸은 움직이지 않는 기분은 거짓말로라도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헥헥거리면서 겨우 8층까지 올라갔을 때다. 위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도 안 계십니까?”
크게 목소리를 내는 건 요원님인 듯했다.
“저기요. 문 좀 열어보세요.”
문을 몇 번 더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쿵쿵. 나는 아직 9층이었다. 계단을 하나씩 밟아가며 올라가는 도중에도 문은 열리지 않고 있는 건지 요원님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우소영 학생, 집에 없어요? 문 좀 열어봐요. 채승 학생이랑 도욱이 학생도 같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이름까지 팔았는데도 반응은 없고 조용했다. 설마 벌써 무슨 일이라도 난 거 아닐까? 아니면 집에 없나? 도저히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어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잘 움직이지 않은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면서 겨우 11층까지 도달했을 때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이시죠?”
낯선 성인 남자의 목소리였다. 잠긴 듯한 목소리에 기력이 유난히 없는 것 말고는 딱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특색 있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어우, 계단 오르기 진짜 힘들군. 나는 난간에 몸을 반쯤 의지하며 계단 틈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나 딱히 보이는 건 없었다.
“우소영 학생이 따님 맞으십니까?”
“그건 왜 물어보시죠?”
“학생이 학교에 결석했다고 해서요.”
“……소영이 담임 선생님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만.”
두 남자의 대화가 빠르게 이어졌다. 겨우 12층의 마지막 계단을 밟았을 때였다. 전신에서 줄줄 흐른 땀이 옷을 흠뻑 적셔 축축했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도저히 한 걸음조차 뗄 수 없었다. 이러다 소영이 아버지가 묵으로 변해 쫓아오기라도 하면 좆될 것 같았다.
그래도 소영이는 괜찮은지 얼굴이라도 확인하고 쉬어야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온전히 12층에 두 발을 딛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1203호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1203호의 문은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는 처음 보는 남자가 상체만 조금 뺀 채 세 명의 남자와 대치 중이었다.
“소영이 학생은 어디 아프기라도 한 겁니까?”
요원님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뭔가 수상한 낌새라도 느낀 건지 다른 요원님은 문이 닫히지 않도록 한 손을 꽉 잡고 있다. 소영이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남자의 행색은 그렇게 깔끔해 보이지는 않았다. 입고 있는 옷도 다리지 않은 건지 구깃구깃했고 상하의에는 검붉은 얼룩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자국으로 흘린 음식물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여간 수상해 보이는 게 아니다.
“잘 있습니다. 열이 나서 며칠 집에서 쉬기로 했을 뿐이니 이제 가세요.”
그 남자는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단호하게 일축하더니 문을 닫으려는 듯 몸을 뒤로 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요원님이 문을 잡고 있기도 했거니와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도욱이가 갑자기 남자를 밀치며 집 안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돌발행동이었다. 멀리서 본 도욱이의 얼굴은 표정이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기 힘들었으나 안면근육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긴장인가. 아니면 분노?
“지금 어딜 들어오는 겁니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에 이어서 요원님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도욱이는 소영이 아버지를 개무시하는 듯 어떤 대꾸도 들려오지 않았다. 문 앞에서 옥신각신 거리고 있던 네 명의 남자가 금방 모습을 감췄다. 상황을 지켜보는 동안 체력을 조금 보충한 나는 다시 힘껏 일어나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다행히 문이 완전히 닫히기 전에 겨우 문틈 사이에 발을 밀어 넣을 수 있었다.
“경찰도 아닌 것 같은데. 무단침입으로 신고하겠습니다.”
소영이 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졌다.
“여기는 왜 자물쇠를 걸어두었습니까?”
네 명의 남자가 들어찬 집안 내부는 꽤 넓었다. 도욱이 집만큼은 아니지만 돈 좀 있는 집인 듯했다. 아니, 이렇게 잘 사는 사람들이 뭐가 부족하다고 애를 괴롭히지? 우리 아버지는 허구한 날 돈 먹는 식충이들이라고 욕을 하며 그 염병을 떨어서 나는 모든 문제가 돈 때문에 벌어지는 건 줄 알았다. 물론 모든 일의 이유가 돈의 유무로만 갈라지는 게 아니란 걸 머리로는 알지만…… 실상 대부분의 불행이 돈 때문에 벌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확답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자본주의 사회다.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돈 때문에 사람을 살리는 시대.
“자물쇠에 손 대기만 해 봐.”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갔다. 네 명의 남자가 안쪽에 있는 어떤 방 앞에 서서 대치하고 있다. 문의 소재는 그저 평범한 합판으로 보였는데 특이한 것은 자물쇠가 걸려 있다는 거였다. 누가 봐도 원래 있던 자물쇠가 아니다. 어떤 아파트가 방문을 밖에서 걸어 잠글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든다는 말인가?
소영이 아버지는 방을 지키듯 문 앞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섰다. 흥분이라도 한 듯 그의 얼굴은 새빨갰다. 두 눈도 흉흉하게 부릅뜨고 도욱이와 요원님들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세 남자는 그의 위협스러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욱이가 그의 어깨를 밀치며 손에 든 망치를 힘껏 쳐들었다.
“이 씨발!”
순식간이었다. 갑자기 푸른 날이 번쩍한 걸 봤다고 느꼈을 때, 푹 살이 찢어지는 소리가 귀로 날아들었다.
“도욱아!”
“도욱 학생!”
깨끗했던 황도욱의 옆구리 위로 붉은 선혈이 물결처럼 퍼져나갔다.
“아…….”
황도욱의 얼굴이 구겨졌다. 힘껏 찡그린 미간과 콧잔등은 당황스러워 보였다. 침묵은 찰나였다. 나는 사지를 휘적거리며 도욱이에게 달려갔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다. 좁아진 시야에는 점점이 퍼지는 핏자국만 보였다.
“씨, 발! 내, 가 내, 딸, 로, 뭘, 하든…….”
소영이 아버지, 아니, 그 범죄자 새끼가 뱉는 문장이 드문드문 끊겼다. 그놈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 칼을 쥔 손을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요원님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두 사람이 빠르게 그 남자의 양팔을 잡고 바닥에 넘어트렸다. 칼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도욱아, 도욱아. 괜찮아?”
눈물이 차올랐다. 몸에서 자꾸만 힘이 쭉 빠졌다. 선생님의 없어진 팔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 허겁지겁 달려가 꿀렁꿀렁 피가 솟아오르는 도욱이의 옆구리를 두 손으로 막았다. 어림도 없었다. 솟구치는 핏물이 열 손가락을 금세 흠뻑 적셨다. 축축하고 뜨겁고……. 심장이 타 버릴 것 같은 고통이었다. 이걸, 이걸 어떻게 막지? 뭘, 뭘 해야…….
“1, 119부터 부르자. 잠시만, 잠시만 도욱아.”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핸드폰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니까 누가 칼을 맞으면 119부터 부르는 게 맞는 거니까.
“으읍…….”
“금방, 금방 부를게. 아프지. 어떡하지. 이거 진짜 어떡하지. 너무 아파서, 이거, 진짜 아플, 아플 것 같은데.”
횡설수설했다. 도욱이의 앓는 신음을 들으니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덜덜 떨리는 손은 급기야 꺼낸 핸드폰도 놓쳐 버렸다. 어느새 바닥에 고인 아주 작은 피 웅덩이에 핸드폰이 잠겼다.
“형.”
“응, 응. 알았어. 잠깐만. 얼른 구급대 불러 줄게. 잠깐만. 형이, 형이 불러 줄 테니까, 조금만…….”
더듬더듬 문장을 잇는데, 황도욱이 조용하게 말했다.
“제가 낸 소리 아니에요.”
“응?”
칼에 맞은 사람치고는 놀랍도록 침착한 목소리였다. 나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걔를 올려다봤다. 낯빛이 새하얗다. 금방이라도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다. 그러나 걔는 여전히 부릅뜬 눈으로 문 너머를 쳐다보고 있다. 황도욱이 망치를 번쩍 치켜들었다.
“소영이 누난가 봐.”
퍽.
자물쇠가 떨어졌다.
단단하게 물려 있던 자물쇠가 망치 한 방에 우습게 떨어졌다. 기능을 잃은 자물쇠가 바닥에 뚝 떨어지자 요원님들에게 붙잡혀 있던 소영이 아버지가 비명을 질렀다.
“씨발! 이 갈기갈기 찢어 죽일 놈들아! 네 배를 갈라 내장을 뽑은 다음 그 내장으로 다시 네 목을 졸라 죽일 것이다!”
그것은 비명보다는 저주와 욕설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문법에 맞을 것 같긴 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그를 힐끔거리며 곁눈질했으나 도욱이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자물쇠가 사라진 문은 문고리를 돌리자마자 열렸다.
“으읍! 으으읍!”
소영이가 있었다. 침대 헤드의 두 손목과 두 발이 케이블 타이에 묶인 채 감금되어 있던 걔가.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건지, 머리도 오랫동안 감지 않은 듯 기름이 번들번들했고 갈아입지 못한 옷에는 검붉은 얼룩으로 엉망이었다. 그리고 옷 밖으로 보이는 곳에는 폭력의 흔적이 완연했다.
“소영아!”
아니, 애한테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도욱이 때문에 내려앉은 심장이 급기야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숨이 턱 막혔다. 소영이의 입을 막고 있는 청테이프와 얼마나 운 건지 퉁퉁 부어 있는 빨간 눈이 참혹했다. 정신이 없었다. 그러자 황도욱이 내 손목을 살며시 잡으며 거두었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걔가 소영이 쪽으로 내 어깨를 툭 밀었다.
“누나…… 먼저.”
“아, 응, 응.”
도욱이의 뜻을 알아챈 내가 서둘러 움직였다. 책상 위에 있던 연필통에 꽂혀 있던 가위를 들고 소영이에게 가자 흐느끼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걔가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테이프를 떼 주고 케이블 타이도 잘라냈다. 툭툭, 쉽게 끊긴 검은색 타이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소영이의 손목과 발목에 흉하게 남은 붉은 선들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가, 아, 아빠가…….”
“괜찮아. 이제 괜찮아.”
소영이가 말을 더듬었다. 나는 걔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침대에서 이불 하나를 걷어 어깨에 둘러주었다. 동공이 진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하긴 나 같아도 가족이 날 죽이려고 했다면 제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거 놔! 놓으라고! 다 죽일 거야! 내가 못 할 줄 알아? 이 칼로 니네 사지를 스무 조각으로 도륙 내서 개밥으로 줘 버릴 거다!”
밖에서는 계속 그 남자의 악에 받친 고함이 들려왔다. 어디서 저런 말을 배운 건지 내뱉는 문장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잔혹했다. 요원님이 제압을 하고 있는 건지 갑자기 이 방으로 쳐들어 오지는 않는 듯했지만 남자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흠칫흠칫 떠는 소영이가 자꾸 신경 쓰였다.
우선 빨리 119를 부르자. 도욱이도 칼에 맞았고 소영이도…….
그때 갑자기 풀석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핏기가 사라져 창백해진 도욱이가 옆구리를 쥔 채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힘이 빠진 듯 걔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고 있다. 허공에서 우리 둘의 눈이 마주쳤다. 이 와중에도 걔가 씩 웃었다.
“울지 마요.”
미친놈이. 자기 몸부터 걱정할 것이지. 울컥, 이유 모를 서러움이 터져 나오고 만다.
***
몇 분 되지 않아 119 구급대와 경찰들이 도착했다. 요원님이 부른 듯했다. 그들은 사건 현장을 보자마자 빠르게 대처했다. 소영이의 아버지는 바로 수갑이 채워져 경찰서로 이송되었고, 소영이와 도욱이는 구급차에 실렸다. 증언을 위해 요원님 한 분은 경찰을 따라갔다. 이웅 요원님은 나 대신 그들의 보호자 노릇을 해 주기 위해 함께 병원으로 갔다.
도착한 병원은 환상 그룹 소유의 병원으로 선생님도 이곳으로 이송되었다고 했다. 그의 수술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는 것과 동시에 옆구리에 칼을 맞아 피를 많이 흘린 도욱이도 곧장 수술실로 옮겨졌다. 소영이는 수술까지 필요하지는 않았으나 지금까지 폭력으로 인한 부상이 너무 많은 데다가 충격으로 불안정한 상태라 요원님의 도움으로 독실에 입원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도욱이는 병원 싫어하는데. 굳게 닫힌 수술실 앞에서 끊임없이 서성거리며 생각했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가 없다. 묵한테는 그렇게 강하면서 사람이 휘두르는 칼에 맞아 수술실까지 들어간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죽지는 않겠지. 아니다, 부정 타게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고개를 휘휘 저으면서 끔찍한 생각은 단어조차 떠올리지 않도록 혀를 깨물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벌써 새벽 세 시입니다만.”
“아, 요원님.”
안절부절못하고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부른 건 이웅 요원님이었다. 소영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내려온 듯했다.
“소영 학생은 지금 잠들었습니다. 휴식을 좀 취하고 진정이 되면 경찰서에서 조사하러 올 거라고 합니다.”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저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담백하게 대꾸한 요원님이 나를 지나쳐 수술실을 힐끗 눈짓하며 물었다.
“도욱 군은 아직 소식이 없습니까?”
“네……. 수술이 잘못된 건 아니겠죠.”
“괜찮을 겁니다. 그나저나 채승 군도 좀 쉬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안색이 안 좋은데.”
나는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휘저으며 애써 웃었다. 지금 애가 칼 맞고 수술 중인데 나만 혼자 편하게 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한숨을 푹 쉬며 쓰러지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손바닥으로 푸석푸석한 얼굴을 쓸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있는 꼴이라 피부가 영 거칠다.
“재우 씨는 방금 수술 끝났습니다.”
요원님이 내 옆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를 응시했다. 참혹하게 잘린 팔의 단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주인을 잃고 덩그러니 뒹굴던 그 팔도. 씨발, 내 인생 그냥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인 줄 알았더니 판의 미로다. 그냥 소년 판타지인 줄 알고 티켓 끊었더니 고어 호러를 목격하고 정신적 충격을 입은 7세 아동이 된 꼴이다.
“선생님은…… 괜찮으세요?”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그가 말을 잠깐 끌었다.
“팔은 봉합하지 못했습니다. 묵의 공격으로 잘려 나간 팔이 너덜너덜해서…….”
탄식을 뱉었다. 허리를 숙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들리는 소식마다 괴롭다. 고통스러워 죽겠다. 차라리 내가 몸이 아픈 게 덜 힘들 것이다. 정작 나는 멀쩡한데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줄줄이 다치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이유도 온전히 나 때문이다. 나 때문에……. 모든 건 나 때문에. 나를 지키려다가 혹은 그저 나와 엮였다는 사실만으로 최악의 불행을 겪는 그들을 견딜 수가 없다.
심장을 조여 오던 죄책감은 곱씹을수록 분노가 됐다. 황청진이라는 그 남자. 아무리 나를 죽이려고 하는 남자라고 할지라도 도욱이의 삼촌이라는 그 명칭 하나 때문에 나쁜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내가 도대체 그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날 죽이려는 것인가? 죽은 엄마랑은 무슨 연관이 있길래 나까지 엮인 거냐는 말이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불빛이 꺼지지 않는 수술 중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이 지지부진한 일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나 자신을 미끼로 쓴다 하더라도.
***
있지도 않은 신에게 기도하며 몇 시간을 보낸 건지 알 수가 없다. 잠을 자지 못한 눈은 새빨갛게 핏발이 섰고 두통으로 관자놀이가 쑤실 때 즈음이었다. 드디어 굳게 닫혀 있던 수술실의 문이 열렸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파란 수술복을 입은 의사와 뒤를 이어 간호사 두 명이 따라 나왔다. 나와 요원님이 벌떡 일어나 간절한 표정으로 그의 앞에 섰다. 의사가 담백하게 말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다행히 급소는 피해서 생명에도 지장이 없습니다. 안정만 잘 취하면 금방 회복할 겁니다.”
다행이었다. 나는 그제야 숨을 크게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맙다고 몇 번이나 허리를 굽히며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런 건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봤는데 내가 그 매체의 등장인물처럼 행동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이제 그들의 마음을 알겠다. 수술이 잘 됐다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은 말 그대로 머리 뒤에서 후광이 보이는 듯했다.
수술이 끝난 도욱이는 곧장 1인 병실로 옮겨졌다. 선생님이 입원한 병실도 바로 옆이라고 했다. 협회의 입김, 그러니까 회장님의 손이 닿은 듯 병실도 VIP 전용이었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입이 떡 벌어졌다. 내 방보다 넓은 평수는 기본이고 바닥은 대리석에 테이블과 소파도 있다. 심지어 TV와 컴퓨터도 구비되어 있으며 인테리어에 사용된 가구들은 죄다 고급 브랜드의 수입 가구였다. 돈이 좋긴 좋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돈 없는 소시민은 그런 생각부터 하고 만다.
푹신한 시트 위에 누워 있는 황도욱은 아직 마취제의 기운으로 얌전히 잠들어 있다. 손가락으로 뺨을 찔러도 미동조차 없다. 평소 밤에는 나를 안지 않고는 잠도 제대로 못 자는 주제에 지금은 아무리 건드려도 한쪽 눈도 뜨지 않는 게 괜히 얄밉다. 사람을 그렇게 걱정시켰으면 금방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 되지도 않는 억지로 툴툴거렸다.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는 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눈을 뜨는 걸 보기 전까지는 그래도 온전하게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탓이다.
이불 밑으로 손을 넣어 도욱이의 손을 꽉 잡았다. 다행히 차갑지는 않다. 곧게 뻗은 다섯 손가락 사이로 온기가 은은하게 감돈다. 심장이 멈추지는 않았구나. 맞닿는 살갗으로 이 아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다시 얼굴을 본다. 평범한 삶이었다면 분명히 연예계로 진출했을 게 분명한 얼굴이다. 길게 솟은 속눈썹도 그렇고 미끄러지듯 오똑한 코도 그렇고 뚜렷한 티존에 그러면서도 아직 나이가 어려 앳된 티가 물씬 나는 말랑한 뺨 같은 것들.
그래도 그중에서도 제일 예쁜 것은 햇빛을 받으면 더욱 찬란히 빛나는 그 연한 다갈색 동공인데. 감은 눈이 무정하다. 나는 시트 위에 상체를 반쯤 엎드리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빨리 보고 싶다.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나는 문득 내가 지금 옷장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꿈인가? 좁은 공간 속에 구겨진 팔다리와 뺨 위에 닿는 옷들의 감촉, 그리고 깜깜한 시야 속 빛이 들어오는 아주 작은 틈. 심지어 코를 간지럽히는 나프탈렌 냄새까지. 익숙한 옷장이다. 왜 익숙한지는 알 수 없는데도. 이곳이 옷장이라는 것을 직감하자마자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긴장과 불안이 척추부터 타고 올라와 전두엽을 점령하고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눈동자뿐이다. 내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마 저 작은 틈뿐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저 밖을 볼 수가 없었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인지도, 바깥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알 수 없는 경고등이 머릿속에서 시끄럽게 울려댔다. 보지 마. 보면 돌이킬 수가 없는 길을 걷게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무시할 수가 없어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고역인 상황이 저절로 깨지지 않겠는가. 타인에 의해 옷장이 열리거나 혹은 내가 꿈에서 깨거나.
5분, 10분, 1시간. 경과된 시간은 체감으로만 몇 시간이었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좁은 공간에 웅크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손발은 저리지 않았고 덜 닫힌 옷장 문이 갑자기 열리는 일도 없었다. 꿈에서 깨지도 않았다. 좁은 틈에서 쏟아지는 작은 빛만 점점 선명해졌다. 빛이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를 봐. 밖을 봐. 괜히 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이 증폭됐다.
나조차도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이건 미지의 공포인가? 마치 데자뷰처럼 아주 옛날에 꾼 적이 있는 꿈에 갇힌 기분이었다. 시간은 멈췄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저 틈에 눈을 대는 것. 그리하여 내가 보아야 할 것을 보는 것.
다시 시간이 경과했다. 보자. 보고 끝내자. 그 다짐만 수백 번을 되새겼다. 천천히 움직여 본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억지로 참으며 아주 느리게 작은 틈에 눈을 댔다. 그러자.
그러자.
그러자.
“엄마가 숨어서 절대 밖을 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자.
그러자.
보이는 건.
“이 망할 년. 괴랄한 년. 죽여 버릴 년.”
퍽. 퍽. 퍽.
살이 짓이겨지는 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핏물에 잠겨 숨을 멈춘 엄마의 두 눈과 먼저 마주쳤다. 그의 부릅뜬 시선이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감지 못한 두 눈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나? 나는 그저 공포에 질렸을 뿐이다. 지금까지 잊혀져 묻어 왔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내 숨마저 멈춰 버릴 듯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혀를 씹으면서 멀거니 그 잔혹한 광경을 응시했다.
이미 미동도 없는 엄마의 시체 옆에 쪼그려 앉아 하염없이 욕설을 내뱉으며 둔기를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 아니, 사람인가? 괴물이 아닌가? 저토록 잔인한 짓을 사람이 저지를 수 있나? 그의 손에 들린 것은 장식장 서랍에 진열되어 있던 청둥오리 모양의 나무 모형이었다. 그 사람이 한 번 손을 휘두를 때마다 오리의 뾰족한 부리와 둥근 머리통 그리고 납작한 꼬리가 머리를 깼다.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피. 감지 못하는 눈. 반복되는 소리와 행동.
너무 놀라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얼어서 그 모든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본다. 우리 엄마를 죽인 그 사람. 잡지 못했다던 그 범인이다. 새까만 모자이크로 덧씌인 듯한 얼굴은 형태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두 눈을 뜨고 모자이크 뒤를 파헤치려고 애썼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거다. 이건 꿈이고 지금 저 장면은 내 무의식에 숨겨 놨던 기억을 일깨우는 거라고.
그러니까 제대로 눈을 뜨고 봐라.
엄마를 죽인 저 자가 누군지 똑바로 봐라.
“감히, 감히, 감히, 나를 두고, 감히…….”
서서히 드러나는 남자의 윤곽. 나는 그가 누구인지 깨닫는 순간 혼절하고 말았다.
“망할 놈의 여편네…….”
아버지였다.
***
“…….”
퍼뜩 눈을 떴다. 발작하듯 몸을 떨면서.
“형, 괜찮아요?”
멍한 시선을 둘 곳 없이 배회하다가 소리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황도욱이 있었다. 몸은 괜찮은 건지 아직 앳된 티가 많이 남은 양쪽 뺨은 혈색이 돌고 나를 보는 다정한 다갈색 눈동자도 변함이 없다. 환상 병원의 로고가 찍힌 병원복조차 맵시 있게 소화해내는 걔가 손을 뻗어 내 뺨 위에 얹는다.
“땀을 많이 흘렸어요.”
“…….”
“악몽이라도 꿨어요?”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뺨에 닿는 온기에 얼굴을 기대면서.
아직도 방금 본 광경이 생생했다. 죽은 어머니와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 방을 흠뻑 적신 흥건한 피. 정신없이 둔기를 휘두르는 아버지는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는 분명히 내게 강도 살인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장례는 금방 끝났고 우리는 도망치듯이 이사를 갔다. 아버지는 직장도 그만두고 이름도 바꿨다. 좁은 반지하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이후로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간혹 대화의 물꼬라도 틀려고 하면 화를 길길이 내며 성을 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손찌검도 했던 남자가 그 이후로는 마치 개과천선이라도 한 듯 조용히 살았다. 그런데 개과천선이 아니었던 거지. 그저 자신이 한 살인 행위가 드러날까 봐 모습을 숨기고 산 것뿐이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는 꿈을 꿨어.”
느리게 말을 뱉었다. 망상으로 의심했던 꿈은 발화와 함께 구현되어 진실이 되었다.
“내가 잊고 있었던 일인가 봐.”
“…….”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엄마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는데. 나는 왜 그걸 잊었을까? 어떻게 잊은 채 살인자와 아무렇지도 않게 살 수 있었던 걸까?”
두서없이 웅얼거리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죄책감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가 그때 느꼈을 고통을 감히 짐작도 할 수가 없어서 나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옷장 속에 숨어 나오지도 않는 자식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그 끔찍한 참상을 다 잊어 버린 아들이 얼마나, 얼마나…….
“형.”
아버지는 왜 어머니를 죽였을까. 뭐가 그렇게 미웠길래 그토록 잔인하게 죽였을까. 이 기억은 왜 하필 지금 떠오른 걸까. 지금까지 잔인한 걸 너무 많이 보았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는 그 모습, 그것과 유사한 장면들이 결국은 트리거가 된 걸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 것과 동시에 모든 생각이 뒤섞였다. 황도욱이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강채승.”
걔가 다시 나를 불렀다. 엄하고 힘이 있는 목소리였다. 미친 것처럼 끊임없이 과거를 회상하며 독백을 중얼거리던 내가 곧바로 입을 다물 정도로. 눈이 마주쳤다. 황도욱이 내 손을 잡고 침대 위로 끌어올렸다.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나는 걔의 강제성이 담긴 손길에 맥없이 따랐다. 환자의 침대를 뺏은 꼴이었다. 병실의 침대는 2명이 눕기에는 좁은 터라 걔가 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단단한 가슴이 뺨에 닿는다. 따뜻한 온기와 푹신한 시트가 몸을 감쌌다. 따가웠던 마음이 점점 안정을 찾는다.
“저는 병원이 무서워요.”
대답하지 않았다. 두 팔을 벌려 걔를 안을 뿐이었다. 옆구리의 상처를 건드려 아프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병원이 무섭다고 고백하는 황도욱을 보면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얼굴이 새파랗게 돼서 숨도 못 쉬고 헐떡거리던 황도욱.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차마 물어볼 수가 없던 트라우마.
“오늘도 눈을 떴는데 병원이라서 울고 싶어졌어요.”
“…….”
“그런데 안 울었어.”
“…….”
“형이 내 손을 잡아 주고 있길래.”
느리게 이어지는 문장이 나를 보듬는다. 아직도 머릿속에는 어머니의 핏물 젖은 눈이 또렷한데도 그 애의 말과 마음이 그 장면을 조금씩 덮었다. 조금씩 거리를 두며 물러섰다. 너무 가까이 있었기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병원을 왜 무서워하는지 알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말해 주려던 청하 누나의 입을 막는 걸 보고 물어보려던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숨기고 싶은 일이겠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 굳이 캐물어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했다.
황도욱이 다시 말을 잇는다.
“아주 어렸을 때 병원에 오래도록 입원한 적이 있어요.”
“왜?”
“맞았거든. 아버지한테.”
걔가 워낙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서 나는 순간 그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맞았다고? 아버지한테? 움찔하는 내 몸뚱이를 느낀 건지 황도욱이 내 등을 가만히 토닥여 주었다.
“너무 흠씬 두들겨 맞아서 전치 8주가 나왔어요. 그래서 입원했죠.”
“아동 학대 신고는? 의사가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 경찰들이 왔던 것 같기도 한데, 전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사고로 다쳤다는 말만 해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은 더 맞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삼촌이 와서 마냥 좋았던 것 같아요.”
그 모든 일을 별일 아닌 듯 이어나가는 도욱이다. 그렇게 무서웠던 일들을 어떻게 울지도 않고 회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곧 걔가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다. 나를 안고 있는 황도욱의 손이 미세하지만 아주 잘게 떨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절대 병문안을 오지 않았지만 가끔 그와 비슷한 체격의 남자를 볼 때마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무서웠는데…….”
걔가 갑자기 이불을 쥐더니 단숨에 머리 위까지 덮어썼다. 순식간에 좁아진 공간 속에 나랑 도욱이만 맞붙은 채 서로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묘한 기시감.
발끝부터 시작해서 찌리릿 타고 올라오는 강렬한 기억.
“그때마다 병원에서 만난 형이 옆에 있어 줬어요.”
“…….”
“이불을 뒤집어쓰고 이렇게 있으면 여기는 아무도 쳐들어 올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이라고.”
“…….”
좁지만 아늑한 공간. 이불 안에 가둔 온기는 빠져나가지 않고 공포로 차가워진 체온을 한껏 데워주었다. 잊었던 기억이 자꾸 파도처럼 몰아쳤다. 내가 이렇게까지 모든 걸 잊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자기가 나를 지켜주겠다고.”
나보다 한 뼘이나 작았던 아이. 늘 심드렁해서 세상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아이. 작은 몸 곳곳에 선연했던 멍 자국. 아주 드물게 나를 보고 웃어 줄 때마다 참 예쁘게 웃는다고 생각했던 아이. 처음에는 머리도 길어서 여자아인 줄 알았던.
“원망 같은 거 안 하셨을 거예요.”
“너…….”
“그분은 늘 형을 걱정하셨거든.”
언젠가 홀연 사라져 버린 걔.
“나를 알고 있었어?”
“눈치챈 건 얼마 안 됐어요. 그날 병원에서 알았지.”
잠깐 침묵했다. 그 애에 대해 생각했다. 어느 날 갑자기 깨끗하게 정리된 시트, 심각한 얼굴로 웅성거리던 간호사들.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도 이야기를 꺼리던 어른들의 얼굴. 분명히 사라지기 전까지만 해도 그 애는 병원 자체에 대한 공포심은 없었다.
내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한 템포 늦은 대답.
“아버지가 기어이 절 죽였어요.”
뒤늦은 후회.
한때 어머니가 툭하면 쓰러져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원인은 불명이었다. 기면증과 비슷하나 증세는 달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종류의 수면 장애 아니냐는 이야기를 언뜻 들었던 것도 같다. 하여튼 온갖 약을 썼는데도 차도는 없었고 늘어나는 병원비는 아버지의 화를 나날이 돋우고는 했다.
그 무렵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여덟 살 즈음이었다.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들떠 친구들을 사귀느라 여념이 없던 시절에 어머니가 입원했다. 나는 허구한 날 화를 내며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와 단둘이 있어야만 하는 집이 싫었다. 하교 후 집이 아닌 병원으로 직행한 것은 생존을 위해 택한 길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사교성은 꽤 괜찮았기 때문에 병실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어른들의 예쁨을 독차지하고 또래 애들을 모아 우르르 몰려다니고는 했다. 나는 애들이랑 잘 놀아주는 편이었다. 특히 미취학 아동들은 내가 오는 날만을 기다린다고 목을 빼느라 보호자들에게 우스갯소리를 듣고는 했다.
그러나 예수도 안티가 7천이라고 했다. 아무리 내가 사교성이 좋다 한들 병원 모두의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몇몇 성질 나쁜 어른들은 내가 애들을 데리고 우르르 다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넉살 좋게 히죽거리며 과일 몇 개 얻어먹는 것도 거지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기분은 좋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기가 죽지는 않았다. 아파서 그런가 보지. 원래 아픈 사람들은 마음에 여유가 없대. 똑같이 욕 듣고 씩씩거리는 애들한테 내가 줄곧 해 주는 말이었다.
어른들이란 원래 그런 사람들이니까 욕 좀 먹어도 괜찮다. 어차피 큰 의미도 없다. 내가 궁금했던 건 표정 없는 얼굴로 창가 구석 침대에 늘 혼자 있는 여섯 살짜리 꼬마였다. 누가 말을 걸어도 목소리를 내는 대신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는 게 전부인 애다. 놀자고 찔러 봐도 무심히 보고 말 뿐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나중에는 오기가 생겼다. 어떻게든 내가 좋아서 졸졸 따라다니는 걸 보고 싶어진 거다.
“너 이름 도욱이지.”
“…….”
“내 이름 안 물어봐?”
“…….”
“안 물어보면 안 알려 준다.”
집요하게 걔 옆에서 얼쩡거렸다. 습관처럼 갔다. 하교하자마자 어머니께 달려가 안부 인사와 하루 있었던 일을 말해 준 다음 곧장이었다. 걔는 늘 거기 있었다. 다른 애들처럼 말썽을 부리며 병원을 헤집고 다닌 적도, 약 먹기 싫어서 빽 운 적도 없다. 입을 닫아 버린 그 애를 두고 주변 어른들이 불쌍하다며 혀를 차는 소리도 다 들었다.
“좋아하는 게 뭐야?”
“…….”
“나는 밖에서 애들이랑 축구하는 거 좋아하는데. 넌 축구 해 봤어?”
“…….”
“안 해 봤구나. 하긴 아직 애기라서 축구공 차다가 넘어지겠다.”
맹세하는데 난 그 애를 놀린다는 비슷한 의도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 여섯 살의 황도욱은 영양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듯 또래보다 왜소했고 빼빼 말랐기 때문이다. 축구공을 찼다가는 걔 발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도욱이가 네 살밖에 안 되는 애인 줄 알았다. 그만큼 작았다는 소리다.
그런데 내 말이 그 애의 심기를 거슬린 건지, 걔가 돌연 눈썹을 치켜뜨면서 앙증맞은 주먹으로 침대에 걸터앉은 내 허벅지를 야무지게 쥐어박는 게 아닌가. 퍽 소리가 났다. 크기는 도토리만 한 주제에 꽉 쥔 주먹은 아주 옹골차서 꽤 아팠다. 나는 펄쩍 뛰면서 악 비명을 질렀다. 병실 안의 사람들이 모두 이쪽을 쳐다봤다. 마침 밖에서 소리를 들은 간호사 선생님도 득달같이 쫓아와서 나한테 말했다.
“아픈 친구를 괴롭히면 못 써.”
“제가 괴롭힌 거 아닌데요!”
“씁, 거짓말하는 것도 못 써.”
나는 억울했다. 황도욱은 해명은커녕 모른 척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만 독박을 썼다. 지금까지 내가 이 병원에서 어떻게 인지도를 쌓아왔는데. 단숨에 어린 동생 괴롭히는 무뢰배 초등학생이 된 내 심정은 참담했다. 간호사 선생님은 몇 번이나 더 내게 신신당부를 한 후 황도욱에게 말했다.
“형이 또 괴롭히면 언제든 말해, 알았지.”
걔는 고개만 끄덕였다. 말을 안 하면서 무슨 말을 하겠다고. 마치 진짜로 내가 가해자라도 된 것처럼 뻔뻔한 얼굴의 황도욱이 얄미웠으나 나는 걔보다 몇 살이나 더 연상이었으므로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애초에 내 말을 믿어 주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 일 이후로 나는 황도욱을 찾아가지 않았다.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강채승은 황도욱의 매정한 태도에 토라졌기 때문이다. 날 그렇게 싫어할 수 있다니!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친해지고 싶었던 꼬마에게 당한 배신은 굉장히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상처받은 마음을 수습하려면 꽤 시간이 필요했다.
며칠 동안이나 황도욱이 입원한 병실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걔도 걔지만 어머니의 유사 기면증 증세가 심해질 때마다 체온이 시체처럼 차가워졌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응급 코드가 울리면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몰려왔다. 나는 그때마다 매번 병실 밖으로 쫓겨났다. 그들에게서는 그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아직 어리다는 게 이유였다. 어른들은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코흘리개보다 아버지를 더 찾았다. 나도 그 남자가 지금 어디서 술 먹고 뻗어 있을지 아니면 노름판에서 굴러다니고 있을지 모르는데도.
나는 직감했다. 어머니는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하루가 다르게 창백해지는 얼굴은 시체 같았고 가끔 정신을 차릴 때마다 나를 보는 눈은 절망으로 가득했다. 그는 뻣뻣하게 굳어가는 손가락으로 내 손가락을 얽을 때마다 음울하게 말하고는 했다.
“채승아, 채승이는 절대, 절대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마.”
지금 생각해 보면 괴상한 당부였다. 위험한 일에 휘말리지 말라니. 죽어가는 사람이 자식한테 할 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당장 여덟 살짜리는 위화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그 정체를 구체화할 수는 없다. 다만 어렴풋하게 느낀 것은 딱 하나 있다. 어머니가 자신이 죽어가는 이유를 안다는 것. 의사도 모르는 그 이유를 당신은 안다는 것.
기절하듯 다시 눈을 감는 어머니의 곁을 도망치듯 떠났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것을 보면서 걸음을 재게 놀렸다. 뒤통수에 달라붙는 공포와 불안을 떨쳐내려는 몸부림이었다. 갈 곳은 딱히 없었다. 애초에 병원이었다. 여덟 살이 안정을 찾을 수 있을 법한 공간은 전무했다. 어딜 가든 알코올 냄새가 났고 어딜 봐도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꾸 죽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것은 낯선 공포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지상 최대의 공포.
정처 없이 병원을 떠돌던 발은 어느새 그 애의 병실 앞에 다다랐다. 문 옆에 붙어 있는 6인의 이름표 중 “황도욱”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문지방을 밟았다. 걔는 바로 문 옆 침대에 있었다.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앉아 책을 읽고 있던 황도욱이 나를 쳐다봤다.
“…….”
“…….”
우리는 서로를 응시하며 짧게 침묵했다. 황도욱의 미간이 조금 구겨졌다.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려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내가 물었다.
“옆에 가도 돼?”
“…….”
여전히 대답은 없었으나 눈치로 허락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슬금슬금 걸어가 간이침대 위에 올라섰다. 황도욱은 여전히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시트에 엉덩이까지 살짝 올려놨다. 시트가 조금 출렁거리자 황도욱의 작은 몸도 흔들렸다.
“뭐 봐?”
묻자 도욱이가 책을 덮어 표지를 보여 주었다. <강아지똥>이다. 꼭 자기 같은 걸 읽네. 작은 손으로 꼭 쥔 책은 꽤 새것처럼 보였다.
“재미있어?”
대답도 없는데 계속 묻는다. 황도욱은 귀찮은 눈치로 나를 흘깃 곁눈질했을 뿐이었다. 팔랑팔랑 다음 장이나 넘기는 것이다. 너무하다. 그렇다 아니다 정도는 고개 끄덕이는 걸로 표현해 줄 수도 있으면서. 치. 입술을 삐죽거리면서도 걔 옆에 바짝 붙어 앉아 같이 책이나 봤다.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잊기 위해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였다.
“에이, 씨발. 며칠 입원했다고 병원비가 이렇게 나와?”
웬 아저씨가 걸죽한 욕설과 함께 등장했다. 그는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약주를 거하게 한 사발 했는지 술 냄새가 풀풀 났다. 짧게 깎은 머리와 제멋대로인 이목구비는 험상궂게 보였다. 그 남자는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거침없이 죽죽 들어오더니 맞은 편 창가 쪽 자리의 아줌마에게 직진했다. 나는 그를 보면서 다소 긴장했다. 내 경험상 한낮에 저렇게 술 냄새 풍기는 어른 남자 중 제대로 된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고주망태의 오십 대 남자는 자주 손을 들고 폭력을 휘두른다. 여자와 아이를 가리지 않고.
가까워지는 중년의 남녀를 보면서 앞으로 있을 일을 예상했다. 남자는 주먹을 휘두를 거고 여자는 비명을 지를 것이다. 바짝 긴장했다. 몸이 다소 굳었다. 그러나 상황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내가 못 살아. 술 마시고 병원 오지 말랬지!”
“자기가 아프다니까 내가 속이 상해서 먹었다, 속이 상해서! 그러게 왜 아파서 신랑 술 마시게 만들어, 왜.”
“이 인간이 술 마시는 것도 내 탓을 하네.”
“아프지 마, 아프지 마. 다음부터는 자기 마음대로 아프지 마.”
“그게 뭐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두 사람은 난데없이 연애를 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거친 욕설을 뱉던 남자는 어디 가고 한껏 애교 섞인 목소리로 아주머니의 손을 꼭 잡고 칭얼거리는 것이다. 아주머니는 그게 익숙한 건지 어색한 기색도 없이 얌전히 잡혀 있다. 둘은 잉꼬부부처럼 닭살을 떨었다. 부부 사이인 중년 남녀가 저렇게까지 사이가 좋을 수도 있구나! 나는 마치 새로운 세상을 목격한 개척자라도 된 것처럼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여섯 살 황도욱에게는 그들의 모습이 다르게 다가온 듯했다.
“왜 그래?”
야무지게 쥐고 있던 동화책을 놓아 버린 도욱이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중년 부부 쪽으로는 시선도 돌리지 않은 채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고 듣고 싶지도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작은 얼굴에 만연한 공포를 나는 기민하게 눈치챘다. 익히 아는 감정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무언의 폭력을 예상했던 내가 느꼈던 그거.
황도욱의 몸 여기저기에 드러난 보라색 멍과 중년 남성의 등장에 사시나무 떨듯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여덟 살이어도 눈치는 빨랐던 것이다. 나는 그 애의 시야를 차단해 주기 위해서 같이 이불을 뒤집어썼다. 삽시간에 좁아진 공간 안에서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나와 황도욱밖에 없다.
“무서워하지 마.”
“…….”
“여긴 너만의 공간이야. 아무도 널 볼 수 없고 찾을 수도 없어.”
“…….”
“괜찮아.”
걔가 나를 봤다. 소리도 없이 눈물이 차오르던 그 순한 눈으로. 새초롬하게 흘겨대던 눈초리는 어디로 가고 훌쩍거리는 황도욱은 그저 겁에 질린 여섯 살 꼬마였을 뿐이었다. 아무리 말을 붙여도 눈길도 안 주던 걔가 손을 뻗어 내 옷깃을 움켜쥐었을 때,
나는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여섯 살이었던 너를?”
“여섯 살이었던 나를.”
여전히 순한 그 눈을 마주 보면서.
간혹 어른들의 불행을 아이들이 짊어질 때가 있다. 그 불행은 작은 몸의 아이들이 견디기에는 너무 버거워서 갖은 상흔으로 남는다. 상처는 부위를 가리지 않았다. 마음과 몸이 너덜너덜 찢겨질 무렵에는 기어이 아이가 죽는 걸로 그 불행은 끝이 난다.
“나는 그다음 날 병원에 오지 못했어. 아버지한테 붙잡혀 있었거든.”
다행히 어머니는 그날 고비를 넘겼다. 아버지는 망할 년 죽어도 안 죽는다며 깡소주를 깠다. 나는 그가 입에서 쏟아내는 수많은 구정물을 묵묵히 주워 삼키면서 밀린 숙제를 했다. 귀가 썩을 것 같았고 속이 울렁거렸으나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 남자는 내가 또 병원에 가면 어머니가 죽든 말든 퇴원시켜 버릴 거라고 윽박질렀기 때문이다. 하여튼 개자식이었다.
꼬박 하루를 술 취한 남자한테 시달리다가 다음 날 하교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의 생존을 확인해야만 했다. 다행히 그때까지 어머니는 살아있었다. 아니, 살아있는 게 다가 아니었다. 푹 꺼졌던 두 뺨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살이 생생하게 차올랐고 퀭하게 그늘이 졌던 눈 밑도 밝아졌다. 어머니는 언제 죽을병에 걸렸냐는 듯 기운 게 움직였다. 곧게 앉아 식사를 했고 퇴원 수속도 밟았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옥의 문 앞에서 돌아섰는데도 썩 기쁜 얼굴은 아니었다.
그리고 황도욱도 사라졌다. 어머니의 무사를 확인하고 한달음에 달려간 침대는 어느새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쉽게 퇴원할 상처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는 불문이었다. 아무도 제대로 된 대꾸를 해 주지 않았다. 퇴원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분명히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도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무방비한 간호사들의 수다를 몰래 엿들었으나 기껏 주워들은 것은 “하여튼 난리가 났대.”가 전부였다. 어머니는 퇴원하면서 내 손을 꽉 잡았다. 그는 건강해 보였다. 맞닿은 손바닥의 온기를 만끽하면서 원인 불명의 미궁은 그대로 묻었다. 그렇게 황도욱도 함께 묻혔다.
“돌아오니까 네가 없더라.”
“…….”
“내가 없던 그날이었어?”
“…….”
“네가 죽은 날이.”
황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걔가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손장난을 쳤다. 좁은 이불 속 안에 둘이나 갇혀 있으려니 숨을 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말이 느려졌다. 체온은 줄어드는 공기와 반비례로 치솟았다.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걔가 나지막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과거를 묻어 버렸던 나와는 다르게 도욱이는 모든 것을 기억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무뎌진 눈으로 평이하게 말을 하다가도 간혹 찡그려지는 콧잔등에는 악몽이 숨 쉬고 있었다.
***
황도욱은 겨우 여섯 살이었다. 어머니는 일찍 집을 나갔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아버지는 인간이 덜됐다. 젊은 시절부터 인생 한 방을 외치며 도박에 목매더니 모든 돈을 꼬라박고 빚쟁이가 됐다. 인생을 비관하고 남 탓을 하며 술이나 찾는 남자가 아들이라고 잘 챙겼을 리가 만무하다. 황도욱은 방치됐다.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먹지도 못했고 놀지도 못했다. 장난감은 아버지가 마시고 버린 소주병이 다였다.
그 날은 보다 못한 그 남자의 동생이 생활비로 쓰라면서 기껏 구해 준 돈을 도박으로 한순간에 날려 버린 날이었다. 돈이 없는 도박꾼은 도박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법이다. 거지 취급을 받으면서 쫓겨난 남자는 분개했다. 문제는 그 화를 엄한 곳에 표출했다는 것이다. 강약약강의 표본이다. 정작 제 팔을 붙잡아 질질 끌고 나간 깡패들한테는 찍소리도 못해 놓고 집에 와서 반항조차 못 하는 어린 자식한테 분풀이했다. 도욱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얻어맞았다. 그 작은 몸에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주먹으로 발로 씨발 씨발 욕을 짓씹으면서 그렇게 자꾸.
20년이 넘은 낡은 철문이 철컹하고 열린 것은 도욱이가 의식을 잃기 일보 직전의 순간이었다. 불도 켜지 않아 컴컴한 방 안에 노을이 짙게 새어 들어왔다. 작은 아이는 퉁퉁 부어 뜰 수 없는 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를 응시했다. 역광을 등에 진 남자의 실루엣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잔뜩 성난 얼굴로 광분하는 아버지의 어깨를 밀치고 도욱이를 안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먹지 못해 또래보다 왜소한 도욱이를 안은 남자는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의 상태를 본 의료진들이 몰려 왔다. 도욱이는 아직 그때의 형광등 불빛을 기억했다. 눈을 찌를 듯이 밝은 불빛. 전신의 신경을 저미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이대로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결과만 따졌을 때 황도욱은 살아남았다. 부정할 수 없는 학대의 흔적에 경찰이 출동했다. 그러나 황도욱의 아버지였던 남자는 이미 자취를 감췄다는 것이다. 여섯 살짜리 꼬마는 졸지에 보호자를 잃었다. 퇴원을 하든 하지 않든 갈 곳이 없었다.
혼자 남은 도욱은 병실 침대 위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모든 감정이 소멸된 것처럼 하루의 절반 이상을 멍하니 앉거나 누워서 보냈다. 눈만 깜박일 뿐 입은 꾹 다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혀를 차며 아이를 가엽게 여겼다. 저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래? 글쎄. 가족이라고는 아버지뿐이었다던데 국가 기관에 넘기겠지. 그런 말들이 가십거리처럼 떠돌았다.
황청진은 오전 열 시 삼십일 분에 왔다. 단정하게 옷을 입고 아버지와 닮은 얼굴을 하고서.
“퇴원하면 삼촌이랑 같이 살까?”
도욱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텅 빈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그가 시야에 담긴 순간 남자는 가방에서 동화책 한 권을 꺼내 내밀었다.
“이거 봐라. 책을 사왔어. 글은 읽을 줄 아니?”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도욱이는 갑자기 경기를 일으켰다. 팔과 다리를 퍼뜩거렸다. 몸을 납작 엎드리며 웅크리는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꾹 닫혀 있던 입에서 사죄의 말이 쏟아져 나왔다. 우울한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문장은 마치 척수 반사 같았다. 뇌를 거치지 않고 토해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도욱이는 겁에 질려 울지도 못했다. 황청진이 착잡한 얼굴로 멀거니 그 아이를 응시했다.
“다 나으면…….”
“죄송해요, 죄송해요. 때리지 마세요. 죄송해요.”
“……우리 집에 가자.”
삼촌은 조카를 조용히 안아 주었다. 환자복 아래로 하도 말라 툭 불거진 날개뼈가 잡혔다. 얇은 팔뚝은 성인 남자의 손가락 세 개만 한 두께밖에 되지 않았다. 괴로운 일이었다. 당장 해결될 감정이 아니었다. 황청진은 동화책 한 권을 두고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웬 천방지축의 형아가 근처에서 얼쩡거리기 시작한 건 그 무렵이다.
“내 이름 안 궁금해?”
“…….”
“난 네 이름 안다.”
꼬질꼬질했다. 하도 험하게 놀아서 그런 듯했다. 손과 무릎에는 늘 흙이 묻어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누가 빗어 주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자신과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 애는 도욱이의 무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허구한 날 찾아왔다. 가끔은 병원 꼬마들을 꽁무니에 달고 우르르 찾아올 때도 있었다. 도욱이는 만사가 귀찮았다. 맞은 곳이 아직 다 낫지 않았다. 팔을 들 때마다 옆구리가 아팠고 몸을 뒤척거릴 때마다 엉덩이의 멍이 눌렸다. 가끔 지나다니는 아버지 또래의 성인 남자를 볼 때마다 악몽이 마음에 불을 질렀다. 숨을 쉬는 것도 버거운 날이 지속되던 터라 저 형이 무슨 이유로 맨날 자신을 찾아오는 건지 생각을 헤아릴 수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그 형이 기어이 오지랖을 떤 거다. 같은 병실 환자의 보호자였던 남자의 술 취한 언성에 다시 밀고 올라오는 악몽에 잠식당했을 때. 얼굴까지 덮었던 이불, 포근한 온기 속 밀려오는 다정. 괜찮다고 속삭여 주던 목소리. 그러나 도욱의 기억에 제일 깊게 남은 것은 그 얼굴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그렁그렁하던 눈. 자기도 똑같이 겁을 먹은 주제에 두 살 형이라고 도욱이를 애써 안심시키려고 애쓰던 미소.
이름을 묻고 싶었다. 그다음 날 그 형 대신 아버지가 찾아오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달이 뜬 밤이었다. 당직을 제외하고는 병원 내부에서도 깨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적막한 복도. 황도욱의 아버지는 그 틈을 노려 휘적휘적 걸어왔다. 어디서 얻어터졌는지 꼴이 엉망이었다.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골절된 다리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절뚝 절뚝 절뚝. 휘적휘적. 절뚝 절뚝 절뚝. 비틀비틀. 어딘가 기묘한 그 남자는 목적지로 직진했다. 자신의 아들이 입원한 병실이었다. 단 한 번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붉게 변해 버린 흰자가 번뜩거렸다. 손톱이 뾰족하고 길게 자랐다. 그가 아들의 병실 문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더 이상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잠든 도욱이의 얼굴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괴물이 목표를 취했다. 그는 끝까지 아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손톱이 순식간에 작은 가슴을 갈랐다. 푹. 살 찢기는 소리가 났다. 격렬한 통증으로 황도욱이 눈을 번쩍 떴다. 새빨간 눈과 눈이 마주쳤다. 비명은 지르지 못했다. 심장의 중앙에 손톱이 꽂힌 탓이다.
고통은 길지 않았다. 서서히 의식을 잃었다. 심장이 고장 나면서 혈액의 공급이 중단됐다. 도욱이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가 금방 귓불 아래로 흘러 내렸다. 이렇게 죽는구나. 여섯 살이지만 죽음이 뭔지는 알았다. 언젠가 죽을 줄 알았어. 이제 하늘나라로 가면 행복할까. 그런 생각도 했다. 도욱이는 너무 일찍 알지 않아도 될 것을 알았다.
기적은 그때 일어났다. 이것을 기적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이것은 단죄다.”
체구가 작은 중년의 여성이었다. 바짝 말랐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서 있는 것조차 겨우였다. 그러나 빙글 돈 그의 눈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흉흉하게 뜬 눈깔이 괴물에게 꽂혔다. 여자가 앙상한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손에는 링겔대가 들려 있었다. 그걸로 사정없이 괴물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나는 건지 여자가 링겔대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괴물의 두개골이 푹푹 함몰됐다.
번쩍 빛이 솟았다. 아니, 불이다. 도욱이는 이제 정신을 잃었다. 갈라진 그 애의 작은 가슴에서 불이 피어올랐다. 그 거대한 화마는 여자의 공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괴물을 집어삼켰다. 끔찍한 비명이 모두의 잠을 깨웠다.
그렇게 길지 않은 순간이었다. 도욱이의 몸은 언제 너덜거렸냐는 듯 멍 하나 없이 깨끗해졌다. 가슴에 긴 흉터 하나만을 남긴 채로. 여자는 얼굴에 피를 묻힌 채 링겔대를 붙잡고 멀거니 서 있었다. 병실의 불이 켜졌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의사와 간호사가 달려왔다. 혼란이 들이닥쳤다. 묵이 된 형을 쫓던 황청진이 뒤늦게 병실로 뛰어 올라왔다. 수습할 수조차 없이 엉망이 된 현장을 본 황청진은 결국 협회장에게 연락했다. 그러자 불과 한 시간 만에 모든 것이 빠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목격자들의 입은 돈으로 막았다. 환으로 각성하면서 전신이 깨끗해진 도욱이는 곧바로 퇴원했다. 불치병으로 죽을 위기에 처했던 여자도 돌연 건강해져서 퇴원 수속을 밟기로 했다. 모두의 함구 속에 불온한 소문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
이야기는 끝났다. 도욱이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잠자코 있었다. 그렇게 몇 분 뒤, 걔가 말했다.
“형.”
“응.”
“왜 울어요?”
“네가 안 우니까.”
훌쩍훌쩍. 걔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두 팔을 벌려 묵묵히 나를 끌어안을 뿐이었다.
나는 원래 눈물이 없다. 먹고 사느라 바빠 감성 낭비하며 애꿎은 에너지를 소모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바싹 말라 황무지가 된 지 오래였다. 박강수를 위시한 애들의 불링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지쳤다. 눈물은 사치였고 웃음은 환상이었다. 그런 내가 존나 운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새끼의 삶도 나 못지않게 비참해서. 눈물 한 방울 없이 마치 제 삼자마냥 덤덤히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은 상처가 나은 게 아니라 신경마저 다 잘려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너는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울지도 않고 하냐. 꼴사납게 훌쩍거렸다.
“기분 이상하다.”
“뭐가.”
“형이 나 대신 울어 주니까.”
가느다란 검지가 얼굴 위로 올라오더니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나는 투정을 부리듯 고개를 흔들었다. 걔가 나지막하게 웃었다. 웃어? 웃냐? 웃음이 나와? 눈을 치켜뜨고 힘껏 노려봤다. 어리게만 보였던 얼굴이 다르게 다가온다.
“나도 난데 너도 참 너다.”
“제가 왜요.”
“됐어. 일어날래.”
오래 누워 있었다. 나가서 세수나 하고 와야겠다. 오는 길에 선생님 상태도 확인해야지. 괜찮으실까. 팔이 잘렸는데 괜찮지는 않겠지. 부스럭거리면서 상체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불발됐다. 내 허리를 감싼 두 팔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목만 조금 까딱하고 말았다. 어이가 없군. 황당한 얼굴로 팔의 주인을 돌아본다.
“뭐야.”
“나 아직 무서운데.”
입술에 침도 안 묻히고 그런 말을 하면 누가 믿겠냐고. 걔는 이제 벌벌 떨지 않는다. 과거의 이야기를 다 털어 놓은 것과 나를 안고 있는 것 둘 중 어떤 게 더 도움이 된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여튼 걔는 나를 놓고 싶지 않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눈만 도륵도륵 굴렸다.
“그럼 좀 더 이렇게 있을까.”
“응.”
일어나려고 부스럭거리던 몸을 얌전히 눕혔다. 황도욱의 품은 사실 꽤 편안했다. 으스러지게 안아 주는 팔과 비비적거리는 뺨, 맞닿은 가슴. 나도 슬쩍 그 애를 끌어안으면서 가만히 기댔다. 좋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온 힘을 다해 안긴 적은 유년 시절 말고는 없는 듯했다. 아니, 사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없다고 봐야 옳다. 그깟 포옹 같은 거 해 줄 사람 없다고 징징거릴 정도로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냥……. 받아보지 못한 애정의 맛보기 같은 거다. 한 입 먹어 본 애정은 만족스럽다. 자꾸 탐이 난다. 통째로 삼키고 싶은 욕구가 치솟는다.
그게 문제다. 차오르는 욕심. 원래 욕심이 드글드글 끓는 인간이긴 했는데, 단 한 번도 인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대부분의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야비하고 이기적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판국에 어떻게 선하게만 살겠는가. 이해는 한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신의 또한 이해와 반비례로 뚝뚝 떨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황도욱은 다르다. 야비하지도 않고 이기적이지도 않다. 자기 몸 다칠 게 뻔한데도 타인을 생각하고 행동한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나 자신한테 물어봐도 야비하고 이기적인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선생님 팔, 봉합 안 된대.”
“…….”
내가 말했다. 황도욱은 말이 없다. 나는 걔가 입은 환자복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 산묵이라는 것들은 환조차 위협이 될 정도로 강한 거지.”
“…….”
“그리고 너희 삼촌은 나를 잡을 때까지 내 주변에 해를 끼치는 것을 그만두지 않을 거야.”
부정할 수 없다. 아직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날 노리는 배후가 황청진이라는 남자인 것은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가 어디 있는 건지, 이유는 뭔지, 어머니와의 관계 또한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머리를 맹렬하게 굴렸다.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에 젖은 뇌라도 추론 정도는 합리적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대하면서.
“환도 실종되고 있다고 했지. 그 실종 사건과 황청진이 나를 노리는 것은 분명 연관이 있어. 그리고 그가 살리고 싶다는 사람은 우리 어머니일 확률이 높아. 그게 아니라면 굳이 엄마의 시체까지 빼돌릴 일은 없었을 테니까. 실종된 환에게서 엄마의 머리카락이 나왔다고도 했어. 우리 엄마와 너희 삼촌은 분명 그날 병원에서 처음으로 조우했을 거야. 그 뒤로 둘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퍼즐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가이드는 없다. 흩날린 조각들을 모아서 모양을 맞춰야만 했다. 아직 찾지 못한 조각도 있고 불필요한 조각도 있어 걸러내는 것도 난관이다. 우리는 지금부터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그것부터 알아야 했다.
“청하 누나한테만 맡겨 놓을 게 아니야. 도욱아, 그 남자에 대해서는 네가 가장 잘 알지.”
아무리 미워도 너희 삼촌이잖아. 굳이 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황청진이라는 그 존재가 도욱이에게 어떤 감정으로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오롯한 증오일지도 모르고 미련 같은 애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제까지고 끌려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서서 파헤쳐야만 했다. 황청진이라는 그 남자에 대해서.
“그가 사라지기 직전의 모든 발자취를 훑어야 해. 너만 알 수 있는, 너만 알아볼 수 있는 뭔가가 분명히 있을 거야.”
황도욱이 나를 올곧게 응시하고 있다. 나도 그 애의 눈을 마주 보았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산전수전을 겪었을지 도통 짐작도 할 수 없는 눈. 순하다가도 돌연 뒤집힌 눈으로 망설임 없이 묵을 응징하는 행위. 그러나 절대 나에게는 해를 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좋아요.”
허락이 떨어졌다. 걔가 나를 다시 품에 안으면서 조심스럽게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열일곱 살 주제에 두 살 연상 형을 막 이렇게 애 취급하듯 달래도 되는 거냐. 나도 막상 밀어내고 싶지 않다는 게 참 웃기다.
“삼촌이 살던 집부터 데려가 줄게요.”
옆구리에 칼 맞아 놓고도 움직이긴 잘 움직이는구나. 나는 혹여 그 애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팔을 오므렸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처음과 끝도 알 수 없이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은 고역일 것이다. 그래도 해내야만 했다. 언제까지 도욱이의 등 뒤에 처박혀 누군가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이다. 괴물이 되어 버린 숱한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갔다. 팔이 잘려 기절한 선생님 그리고 엉망이 된 소영이까지. 눈을 감았다. 이상한 세계에 빠진 엘리스도 이렇게 고달팠을까. 괴이의 세계에 빠진 내가 할 수 있을까.
“좀 더 자요.”
도욱이의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귀를 살랑살랑 간지럽혔다. 마치 마법 주문 같다.
“나아가기로 한 이상,”
“…….”
“쉽지는 않을 테니까.”
***
우선은 도욱이의 상처 회복이 먼저였다. 도욱이도 없는데 나 혼자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다가 허망하게 죽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개죽음은 없을 테니까.
협회는 입원한 회원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물심양면으로 재원이 되어주었다. 덕분에 황도욱은 빠르게 기운을 회복했다. 입원 후 불과 10일밖에 경과하지 않았는데 걸어다니다 못해 뛰어다녔다. 식겁한 나만 뒤를 쫓으면서 애를 자리에 앉히는 개고생을 하느라 바빴다.
“망아지냐? 아직 다 낫지도 않았는데 뛰긴 왜 뛰어. 그러다 상처 터지면 어떡하려고.”
“거의 다 나았는데. 보여 줄까요.”
타박하는 내 면전에 대고 걔는 환자복을 훌렁 들어 올렸다. 꿰맨 자국이 아직 진하게 남아 있는 상처 부위 주위로 붉은 새살이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이거 맞냐? 이 가공할 치유 속도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건 네가 어린 탓이냐, 환의 특성이냐?”
얼빠진 얼굴로 묻자 얘가 옷을 끌어내리면서 평이하게 대꾸했다.
“저만의 특징이죠.”
“너만의?”
“모든 내 또래가 이런 것도 아니고 모든 환의 회복 속도가 빠른 것도 아니니까. 나만 이래요, 나만.”
“어째서?”
나는 도욱이를 올려다봤다. 이 신기한 인체의 비밀이 개인에게 특정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내가 되묻자 걔는 생각 안 해 봤다는 듯 멀뚱한 표정을 하고 뒷머리를 긁었다.
“모르면 됐다. 그래도 조심해. 환이라고 무적은 아니잖아.”
“네에.”
걔가 말꼬리를 길게 늘렸다. 나는 얘가 이럴 때마다 꼭 애 같아 보였다.
“선생님은 그래도 의연하려고 노력하시더라.”
“음.”
“요즘 기술 좋다고 의수 쓰면 된다고 농담도 하셨어.”
마취에서 깨어난 선생님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였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았다면서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라고 했다. 다행히 환상 그룹이 자신의 뒷배인 만큼 첨단 의수로 메꿀 수 있다며 시니컬하게 웃었다. 나만 미안해서 고개를 못 들었다. 결국 이것도 나에 대한 증오심으로 부정에게 먹혀 버린 이예경 탓이 아닌가. 한쪽 소매가 비어 나풀거리는 선생님의 환자복을 보면서 눈시울이 시큰해지고는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갑자기 왜 우리를 부른 걸까.”
한쪽 팔이 없는 삶에 적응해가던 선생님은 10일의 시간 동안 따로 우리를 부른 적은 없었다. 애초에 그가 부르기 전에 종종 놀러가고는 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선생님이 몇 분 전에 갑자기 우리를 호출했다. 짧게 나눈 통화에서 선생님의 목소리는 지극히 불안해 보였다. 여기로 와 줄 수 있어? 아니,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니야.
타인의 불안은 전이된다. 그렇지 않아도 도욱이가 낫자마자 뒤져보려고 받아놨던 황청진의 옛 주소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심심해서 거리뷰도 찾아봤다. 사람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조용한 동네의 작은 아파트였다. 그 시절의 환들은 돈이 없었나. 도욱이가 사는 고급 아파트를 떠올리면 그 안에 뭐가 있을지 전혀 짐작조차 안 됐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될 것인가.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만약 우리의 계획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라면?
고개를 젓는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다. 뭐든 이 반복되는 참상을 빨리 매듭지을 수 있는 길을.
어느새 선생님의 병실 앞에 도착했다. 익숙하게 드르륵 문을 열었다.
“선생님.”
“어, 들어와.”
호명하자마자 병실의 사람들이 보였다. 침대에 앉아 있는 선생님과 그 옆에 서 있는 회장님, 그리고 처음 보는 낯선 남자. 그는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 낡은 가죽 잠바를 입고 있었다.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게 척 봐도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엉거주춤 들어섰다. 도욱이가 내 뒤를 따르며 문을 탁 닫았다. 세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쏟아졌다. 이미 한 번 만난 적 있는 회장님이 먼저 웃으며 인사했다.
“도욱이랑 채승 군 왔구나.”
“선생님이 부르셔서…….”
말끝을 흐렸다. 익숙한 불안의 전조다. 나는 낯선 남자를 자꾸만 힐끔거렸다. 왠지 그가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았다. 이것은 직감이다. 사람은 원래 불운만 기가 막히게 맞힌다.
내 시선을 눈치챈 낯선 남자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가 거리를 좁힐수록 도욱이가 기민하게 반응했다. 슬그머니 내 옆을 차지하면서 언제라도 공격에 방어할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또박또박 걸어오더니 나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섰다. 그 남자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지갑이었다. 펼친 지갑.
“강력계 서동원 형사입니다.”
지갑에 달려 있는 경찰 마크. 와, 나 이런 거 처음 본다. 근데 경찰? 경찰이 여긴 왜. 나는 눈을 끔벅거리며 자신을 형사라고 소개한 남자를 멀뚱히 응시했다.
그가 말했다.
“이청하 씨가 실종됐습니다.”
네?
“목요일 밤 10시 이후로 소식이 두절됐습니다. 벌써 3일째입니다.”
씨발, 또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나가 실종됐다니?”
이 염병할 고난과 역경은 도대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사람이 다치는 일은 더 이상 없게 만들겠다는 결심은 하자마자 무너져 내렸다. 최근 일어났던 일들이 하도 사람 정신을 갉아먹은 통에 청하 누나까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 그 누나가 위험에 빠질 거라는 상상 자체가 망상이었다.
누나는 강인했다. 삐죽 치켜 올라간 눈꼬리라거나 나를 덮친 묵을 한 번에 제압하는 모습 같은 것들을 보다 보면 부딪히는 상대방을 걱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누나는 마음만 먹는다면 손에 닿는 것들을 족족 파괴할 만한 그런 배포가 있는 여자다. 그런데 실종이 됐다고. 그것만큼 어폐가 느껴지는 문장이 또 없다.
그제야 선생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이 영영 팔을 잃어버렸다는 선고를 들었을 때보다 더 상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쉬지 않고 흘러나오는 한숨 사이로 고통스러운 신음이 섞였다. 당장 뛰어나가겠다고 난리라도 친 건지 이불도 잔뜩 구겨진 채였다. 회장님도 불안으로 잠식된 얼굴로 그 옆에 바짝 붙어 서 있다. 혹시라도 선생님이 돌발행동을 할 경우 막으려는 듯 한쪽 손을 침대 위에 올린 채였다.
“핸드폰 신호가 마지막으로 잡힌 곳은 경기도 파주의 어느 야산이었습니다. 근처에 사는 사람도 없고 드나드는 인적도 드물어서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는데도 흔적이라고는 버려진 핸드폰 말고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형사 아저씨가 가죽 잠바 안쪽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액정은 박살이 났다. 거미줄처럼 갈라진 틈 사이로 군데군데 낀 흙먼지가 보였다. 더러워진 액정의 표면으로는 내 굳은 얼굴조차 비치지 않았다.
“찾을 수는 있는 거예요?”
내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닌 척해도 날 걱정해 주던 청하 누나의 얼굴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말투가 좀 틱틱대고 불친절한 모습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나쁜 사람은 아니란 말이다. 도욱이 없이 혼자 밖에 나갔다가 묵을 만났을 때도 누나가 때맞춰 오지 않았다면 그대로 절명했을 것이다. 하여튼 그렇다. 누나의 실종 사건은 이해할 수가 없다. 게다가 아직까지 실종된 환들이 살아서 돌아온 적이 없다는 말까지 들어버렸으면 말이다.
“노력은 하겠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환들은 죄다 시체로 발견된 데다가 사망 시기가 실종되고 약 일주일 내외였거든요.”
“실종되고 일주일이요?”
“청하 씨는 벌써 3일이 지났습니다. 길게 잡아도 4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불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의 남은 손이 주먹을 쥐며 하얗게 질렸다.
“저도 찾겠습니다.”
말리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기세였다. 회장님이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사람들 풀어서 찾고 있으니 무리하지 말게.”
“찾을 수야 있겠죠. 하지만 지금 너무 늦어버릴 게 걱정인 거 아닙니까.”
“아직 회복이 덜 된 상태로 움직였다가 자네한테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어쩌려고 고집을 부리나! 여긴 우리한테 맡겨 놓는 게 좋아.”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자네가 이럴까 싶어 도욱이랑 채승 군을 부른 거네.”
회장님과 선생님의 눈이 우리에게 향했다.
“그렇게 됐으니 청하 쪽은 우리에게 맡기고 자네들은 재우 좀 봐주게. 유해 보여도 애들 관련된 일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어 부탁 좀 하려고 불렀네.”
그렇군. 나는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 회장님의 얼굴에 서린 근심은 적지 않다. 줄줄이 실종되는 환들도 그렇고 영구 부상으로 한쪽 팔을 잃은 선생님과 옆구리에 칼을 맞아 입원한 도욱이까지. 협회원들의 희생이 컸다. 애초에 몇 명 있지도 않은 회원들인데 이 정도면 활동 가능한 사람이 절반조차 되지 않을 게 뻔했다.
“최선을 다해 찾고 있지만 쉽지 않군.”
침음을 흘리는 회장님이 한숨을 푹 쉬었다. 형사님도 딱히 뾰족한 대안을 떠올리지 못한 듯 침침한 얼굴로 핸드폰을 품 안에 갈무리했다.
4일이면 정말 짧은 시간이다. 아직 황청진의 거주지에 대한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판국에는 더욱 그렇다. 지역도 특정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전국에 사람을 푼다고 하더라도 그 남자가 어디 산 깊은 곳에 처박혀 있는 거라면 시간은 더 배로 걸릴 것이다. 뾰족한 묘수를 찾아야 했다. 이를테면 나를 미끼로 던지는 일 같은 것.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필요한 건지는 몰라도 그는 분명히 내가 필요하다. 나를 무방비하게 물가에 내놓는다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채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도욱이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조카마저 해하겠다고 선포한 이상 내가 어리버리하게 행동하면 도욱이마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넙죽 내 목숨을 줄 생각도 없다. 뭔가 기가 막힌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 아주 기가 막힌 뭔가가.
회장님과 형사님이 돌아가고 분개하는 선생님을 달래 다시 눕힌 다음 우리는 병실로 돌아왔다. 이제 혼자서 멀쩡하게도 걸어다니는 황도욱은 침대에 눕는 대신 소파에 털석 앉아 나를 품에 끌어안고 목에 코를 박았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자세에 나도 곰돌이 인형에 빙의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재차 머리를 굴리는 일에 집중했다.
“생각해 보니까 이상하다.”
“뭐가요?”
“나를 죽이고 싶다는 의지치고는 너무 노력이 덜하지 않아?”
“노력이 덜해요?”
도욱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의아한 말투로 되물었다. 얼핏 듣기엔 개소리이기는 했다. 날 죽이겠다고 묵이 덤벼든 횟수만 족히 서너 번이다. 그 일들 때문에 죽거나 다친 사람들도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도 없다. 정작 내가 진짜 죽을 뻔했던 건 도욱이가 옆에 없을 때 단 한 번뿐이었다. 그마저도 살았다. 몸이 좀 엉망이 되기는 했어도.
하여튼 따지고 보면 내 옆에 환이 최소 두 명은 붙어 있는 꼴이니 황청진의 입장에서는 날 죽일 수 있는 확률이 지극히 낮다. 그 남자가 그걸 모를 리가 없다. 애초에 단순히 나를 죽이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묵을 이용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사람한테 청부 살인을 맡긴다면 오히려 그것보다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하게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가게의 손님으로 위장해 독약을 탄 음료수만 건네줬어도 나는 벌컥벌컥 마셨을 것이다. 고아인 나를 찾거나 나에 대한 죽음을 의심할 사람도 없을 테니 경찰도 대충 고독사 처리했을 거고. 그렇다면 제법 무난하게 나를 처리했겠지. 굳이 학교에 시체를 묻는 둥 그런 번거로운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지금 나를 지키는 건 너야. 환이라고. 묵한테는 천적이나 다름이 없지. 그런 나한테 계속 묵을 보내는 건 계란으로 바위 깨기야. 살아있는 묵은 위험하다고 하지만 그렇다면 왜 애초에 처음부터 그것들을 보내지 않았지? 아니, 그냥 묵이 아니라 사람을 썼다면 나는 훨씬 더 쉽게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정체불명의 뭔가가 자꾸 심기를 긁어댔다.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속이 답답했다. 뇌를 맹렬하게 굴렸다.
“이 정황들로 보면 한 가지의 가설을 세울 수 있어.”
엄연히 가설이었다. 증거가 없으므로 확신도 없었다. 끊임없이 달려드는 묵. 내 옆에는 황도욱이 있으므로 그저 모닥불로 날아드는 불나방밖에 안 되는 짓인데도 불구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무데뽀 들이박기로 날 죽이려면 수십 번의 실패가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방법을 바꾸지 않았다. 그것은 곧 한 가지를 뜻한다.
“나는 오로지 묵에게 죽어야만 하는 거야.”
도욱이가 상체를 조금 세우면서 나를 내려다봤다. 시선이 의식됐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갔다. 심장이 빠르게 박동했다. 두려움인가? 공포인가? 아니면, 아니면,
“황청진은 나를 환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 남자에게 한 방 먹였다는 것에 대한 쾌감?
“삼촌이, 형을, 환으로요?”
영 납득이 안 된다는 듯 도욱이의 말이 드문드문 끊겼다. 얼떨떨해 보이는 표정이 아주 가관이다. 귀여운 자식. 나는 어깨에 두른 팔을 떼어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욱이의 눈이 나를 쫓았다.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영 모르겠다는 눈이다.
“나가야겠어.”
“네?”
“누나를 구할 수 있는 시간이 4일밖에 안 남았다며. 여기서 얌전히 있을 수는 없어. 그때 내가 말했던 거 기억하지. 너희 삼촌의 전반적인 인생을 알아야 한다고. 지금부터 그거 하러 갈 거야. 예전에 살던 집 주소가 어디라고 했지?”
빠르게 말을 뱉었다. 결심한 이상 움직여야만 했다. 누나는 지금 어디서 고통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황청진이 나를 환으로 만들기로 했다면 정말 내가 ‘죽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닐 확률이 높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는 내가 ‘살아있어야만’ 한다. 환으로서 말이다.
하지만 아직 의문인 건 여전히 남아 있다. 황청진은 내가 환이 될 거라는 걸 어떻게 아는 걸까? 찔러 보기 식인가? 죽여 보고 살아나면 좋고 아니면 말고?
하여튼 직접 움직여서 눈으로 볼 수 있는 증거들을 찾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게 없다. 방에 틀어박혀 추론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다. 나는 주섬주섬 겉옷을 찾아 걸치며 핸드폰을 꺼냈다. 도욱이는 아직 다 낫지 않았으니 같이 가자고 하는 건 아무래도 미안하다. 그래서 요원님들한테 동행을 부탁할 셈이었다. 계속 차를 타고 이동한다면 아무리 황청진이 보내는 묵이라고 해도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파주요.”
도욱이가 나를 따라 일어났다. 그러더니 나를 슬쩍 보고 갑자기 상의를 훌렁훌렁 탈의했다. 액정에서 요원님의 번호를 찾아 헤매고 있던 나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행위에 고개를 들고 걔를 봤다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시야에 열일곱 살의 군살 없는 탄탄한 몸이 한 번에 들어왔다. 운동을 따로 하는 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배에는 선명한 복근이 잡혀 있다. 옆구리에 붙어 있는 손바닥만 한 거즈는 그 애의 몸에 거슬리기는커녕 한층 더 자극적으로 보이도록 한몫했다. 가슴 중앙을 가르는 커다란 흉도 마찬가지다. 아니, 아직 열일곱 살의 몸이 이렇게 선정적이어도 되나?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네.
“가, 갑자기 오, 옷을 왜 벗어?”
하도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나는 핸드폰을 쥔 채 동공만 도륵도륵 굴리면서 황도욱을 곁눈질했다. 걔는 어디서 자기 사복을 찾아 꺼내더니 냉큼 몸 위에 걸쳤다. 진한 파란색 후드티였다. 구멍으로 얼굴을 쑥 내민 황도욱이 태평하게 대꾸했다.
“환자복 입고 나갈 수는 없잖아요. 밖에 추운데.”
그래, 춥지. 춥긴 춥지. 어느새 여름이 훌쩍 지난 계절은 가을이었다. 무더위는 전부 죽었고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통풍이 지나치게 잘 되는 환자복으로는 실외에서 활동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난 너 데려갈 생각 없었는데?”
황당해서 반문했다. 나를 무슨 다친 애도 끌고 다니는 극악무도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그러자 마침 바지마저 벗고 있던 도욱이도 당황스럽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안 데려가면 누구랑 가려고요.”
“요원님이랑.”
즉답했다. 걔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금붕어처럼 입만 끔벅거렸다. 바지를 올리는 손이 잠깐 멈췄으나 마치 결사 항전이라도 하는 듯한 각오의 얼굴을 하더니 금방 완전하게 착의했다. 황도욱이 말했다.
“형, 말했잖아요.”
“뭘.”
“나 없으면 형 죽는다니까.”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말을.
우리는 우리의 불가피한 탈출에 대해 선생님께 고지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안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게다가 본인도 협회장님의 감시 아래 꼼짝없이 갇힌 판국인데 우리를 보내 줄 리가 없었다. 극구 결사반대할 선생님의 얼굴이 뻔했으므로 탈출은 몰래 감행하기로 합의했다.
도욱이의 완강한 반대에 요원님을 부를 수도 없었다. 걔가 말하기를 요원님한테 연락하는 순간 회장님의 귀에도 직통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회장님은 곧장 선생님께 콜을 때릴 거라고. 이제 감시의 눈길은 우리에게 꽂혀서 안전을 위해 병실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청하 누나의 목숨이 겨우 4일밖에 남지 않았다는데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얌전히 있을 수는 없었다.
“도욱아.”
“네.”
“그래도 네가 젊은 부르주아 설정인데 지금까지 할리킹 면모가 너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돈 지랄 좀 하자고. 카드 내놔.”
하여튼 도욱이는 웬만하면 내 말을 잘 듣는 편이라 다행이다. 걔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면서도 얌전히 카드를 꺼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한도 없는 블랙 카드를 손에 쥐고 기세등등해진 나는 다른 쪽 손으로 도욱이의 손을 꼭 쥐고 병원 탈주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다행히 병원의 정문을 나설 때까지 사복을 입은 우리 둘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혹 몇몇 사람들의 눈이 이쪽으로 쏠리긴 했으나 그건 대한민국 성인 남성의 평균 키를 훌쩍 뛰어 넘은 데다가 와꾸도 연예계 지하 연습실에서나 볼 법한 다이아몬드 원석이 걸어다니고 있으니 필연적으로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그 시선들도 냉큼 부른 택시에 탑승하자마자 자취를 감췄다.
“어디로 가세요?”
“파주, 여기 주소로 가 주세요.”
나는 말을 하다 말고 아예 주소를 기사님에게 내밀었다. 장거리인 것을 확인한 기사님은 거침없이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한 다음 버튼을 눌렀다. 말 한 마리가 고독한 평야를 질주하며 기본요금부터 시작하는 금액을 견인했다.
“그런데 거기서 뭘 찾을 수 있을까요? 이미 십 년도 더 됐는데.”
도욱이가 반신반의한 얼굴로 물었다. 나는 등받이에 상체를 기대면서 대꾸했다.
“아직 처리는 안 했다며.”
“처리할 사람도 없었죠. 삼촌이 사망 처리되면서 유산이 전부 저한테 넘어왔으니까……. 그때 당시에는 경황도 없었고 옛날 집을 처분할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어요.”
“황청진은 갑자기 사라졌어. 실종이었든 사망이었든. 그리고 그건 예정에 없던 일이었을 거야. 누가 따로 치우지 않았다면 어떤 흔적이든 아직 그대로 남아 있을 확률이 높아.”
그리고 나는 그 확률이 구십 퍼센트에 육박한다고 봤다. 황청진은 지금까지 본인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어떤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황청진은 자신의 모습을 꽁꽁 숨겨놨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여기저기 활보하는 사람이었다면 협회에서는 진작 그 남자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추격자들의 뒷배로 환상 그룹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몇 달 동안 그깟 남자 한 명 찾지 못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힘들다. 그렇다는 것은 즉 어딘가에 숨어서 밖으로 나오는 것은 지극히 꺼렸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었다.
“눈 크게 뜨고 찾아야 해. 소홀히 넘길 수 있는 것들도 단서가 될 수 있는 거야.”
어릴 때 무수히 탐독했던 셜록 홈즈 시리즈를 떠올렸다. 불세출의 천재!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사람의 신발에 묻은 흙만 보고도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0.1초 만에 추론해내는 19세기 최고의 탐정! 그의 경이로운 추리력은 놀라울 정도로 세심한 관찰력을 기반으로 한다. 사소한 것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모든 건 이유가 있다.
“셜록 홈즈 아냐?”
“아니요. 형 친구예요?”
“됐다.”
내 친구겠냐고.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셜록 홈즈도 모르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측은하다. 이 일만 모두 끝내면 셜록 홈즈 전권이나 선물해 줘야겠다고 결심했다.
여기서 파주까지는 대략 두 시간이었다. 다행히 가는 동안 도로 교통 상황은 원활했던 터라 10분이나 단축해서 그 남자가 10년도 더 전에 거주했다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택시에서 내린 후 처음 맞닥뜨린 그곳은 작은 아파트 단지였다. 건축된 지 족히 30년은 됐을 법한 낡은 아파트는 가장 높은 층수도 고작 10층이 다였다. 아파트 벽면의 도색도 다 벗겨졌다. 인적도 드물었다. 노을마저 지던 때라 그런지 단지 전체가 우중충하고 기묘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깜박거리는 가로등 중 하나는 아예 전구가 나간 건지 불도 들어오지 않았다.
낯설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나와 다르게 도욱이는 망설이지도 않고 쭉쭉 길을 따라 앞장섰다. 말마따나 십 년도 더 전의 일인데 잊지도 않은 건지 걔는 단 한 번도 걸음을 주저하지 않았다. 길쭉한 다리는 보폭이 컸다. 성큼성큼 황새처럼 걸었다. 나는 뱁새마냥 쫓아가느라 아파트 단지에 음산한 기운이 깃들었든 말든 신경 쓸 새도 없었다.
도욱이의 뒤를 따라 빠르게 도착한 낡은 현관이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5라는 숫자가 적힌 페인트는 오랜 세월에 벗겨져 그 형체조차 흐릿했다. 낮은 계단과 퀘퀘하게 묵은 냄새들이 시각과 후각에 스며들었다.
“여기야?”
내가 먼저 물었다. 도욱이는 대꾸하는 대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영 알 수 없는 얼굴이다. 복잡하고 미묘하다. 삼촌 생각을 할까. 어떤 과거를 곱씹고 있을까.
계단을 밟아 올라간 우리는 곧 어느 문 앞에 도착했다. 502호라고 적힌 평범한 철문이었다. 사람이 드나들지 않은 지 오래된 듯 손잡이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 있어 잡는 것조차 찝찝해 보였다. 그러나 도욱이는 개의치 않았다. 망설임 없이 키패드 뚜껑을 열더니 여섯 자리 번호를 꾹꾹 눌렀다. 몇 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배터리는 방전도 안 됐는지 띠리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변한 게 없네요.”
그렇게 크지 않은 집이었다. 작은 거실과 두 개의 방이 달려 있는 평범한 중산층의 집. 연식이 오래된 구식 텔레비전과 바닥에 굴러다니는 오래 묵은 먼지 냄새가 집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안면으로 훅 끼쳤다. 천장의 구석마다 거미가 집을 쳤고 바닥은 장판이 다 일어나 한 발 내딛기도 찝찝했다.
“좀 많이 더러워진 거 빼고는.”
도욱이가 신발을 신은 채 거실로 입성했다. 다행이다. 맨발로 이 집의 바닥을 밟아야 했으면 나는 차마 이 집 안에 들어설 수 있는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엉망이네.”
“십 년 동안 이 집이 아직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보지도 못했어요.”
“둘러봐도 돼?”
“마음대로 하세요.”
집주인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며 주변을 훑었다. 여기서 황청진이 남긴 흔적을 찾아야만 했다. 아니, 흔적은 널려 있었다. 정말 매우 더러운 것 빼고는 생활의 손때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던 탓이다.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수많은 고지서와 영수증들, 단정하게 정돈된 싱크대 위의 그릇들, 그리고 소파 위에 뒹굴고 있던 몇 권의 책. 상당히 깔끔한 성격이었던 듯 전체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우선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고지서와 영수증부터 살폈다. 십 년이나 지난 종이는 노랗게 변색되어 구겨져 있었으나 내용을 살피는 것은 그닥 어렵지 않았다.
고지서는 주로 관리비였다. 가스비와 전기세 그리고 수도세까지. 얼핏 보기에는 별로 특이할 건 없어 보였으나 뭉텅이로 쌓여 있는 고지서들 중 유난히 눈에 띄는 것 몇 개가 있었다. 1인의 생활비로는 고작 몇천 원이면 될 것들이 분명한 관리비는 많아봤자 최소 5만 원 이내에서 왔다갔다거렸는데 갑자기 몇십만 원씩 뛰는 용지가 있었다. 이상해서 종이를 뒤집어 적힌 주소를 확인했다. 달랐다. 심지어 양산시로 시작했다. 양산이라고? 양산이면 부산 옆 아닌가? 언제 거기까지 가지.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봤다. 그곳은 도시의 중심에서도 차로 한 시간은 더 떨어진 외곽이었다. 근처는 허허벌판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을 듯했다. 딱 봐도 수상하다. 나는 작은 방을 헤집고 있는 도욱이를 불렀다.
“너 여기 어디인지 알아?”
“어디요?”
“여기.”
핸드폰 액정 위에 띄워 놓은 지도를 도욱이의 눈앞에 보여 주었다. 걔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물끄러미 찍힌 위치를 보더니 곧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모르는 곳이에요.”
“이곳에서 발생한 고지서들을 황청진이 갖고 있었어. 전기세만 해도 최소 몇십만 원씩이야. 이건 성인 남성 1인이 일반적으로 혼자 생활했을 때 나오는 금액이 아니지. 여기가 어떤 사람들의 단체 합숙소라거나 그 남자가 대마를 키우고 있던 게 아니라면 분명 뭔가가 있었을 거야. 그때 네가 봤다던 그 연구소가 여기는 아니야?”
도욱이는 다시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걔가 말을 덧붙였다.
“거긴 삼촌이 그렇게 된 이후 바로 정리됐어요.”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끔찍한 참상들로 이루어진 그곳을 별 조치 없이 방치했을 리는 만무했다. 이곳은 평범한 가정집에 불과했으니 뒤져봐도 대충 발만 들였다가 나갔을 거다.
“여기를 가 봐야겠다.”
뇌까리면서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다섯 시. 저녁을 먹고 바로 이동한다고 하더라도 도착하면 깜깜한 밤일 거다. 그 야심한 밤에 뭐가 있을지 모를 적의 은신처에 간다는 게 굉장히 위험해 보였으나 달리 방도는 없었다. 이렇게 고뇌하는 와중에도 시간은 흐른다. 누나의 목숨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고 있다는 소리다.
“넌 뭐 찾은 거 없어?”
내가 물었다. 거실을 샅샅이 뒤집으며 서랍장에서 돈 오만 원과 소파 밑에서 오백 원 그리고 고지서에서 단서를 찾아내는 동안 황도욱은 작은 방에 틀어박혀 한 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걔가 손에 쥐고 있던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것도 오래된 사진처럼 보였으나 보관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두 명의 어린애가 있었다. 초등학생 즈음의 나이로 보이는 남자애 두 명이었다. 검은 머리를 한 남자애는 갈색 머리의 남자애보다 몇 살 위 연상인 듯 키가 한 뼘 정도는 더 컸고 개구장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보다 키가 작은 남자애는 검은 머리 남자아이의 팔을 어깨에 걸친 채 다소 심통 맞은 표정이었다.
이 두 남자애가 누구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이건 나야.”
나는 도욱이를 올려다봤다. 사진 속 남자애와 똑같은 얼굴이다. 이때보다 표정은 다소 유해졌으나 오목조목 잘 주차되어 있는 선명한 이목구비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미인은 싹수부터가 밝았구나.
“얘가 너인 건 말 안 해도 알겠다.”
중얼거리면서 사진을 들여다봤다. 참 귀엽군. 내가 입고 있는 파란색 후드티를 보면 열 살 때인 듯했다. 후드티에 그려진 저 캐릭터를 워낙 좋아해서 허구한 날 입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그만 좀 입으라고 질색을 해도 꾸역꾸역 입고 나가고는 했지.
그런데 갑자기 문득 의문이 드는 거다. 이 사진은 내가 열 살 때다. 내가 도욱이를 만난 건 여덟 살 때다. 심지어 나는 그 당시 얘랑 사진을 찍은 기억도 없다.
뭐지?
나는 도욱이를 쳐다봤다. 걔도 같이 사진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고 나를 봤다. 우리 둘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우리가 또 만난 적이 있나?”
그런 의문.
친한 척 작은 아이의 어깨 위에 팔을 두르고 있는 건 분명히 열 살의 강채승이고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건지 입을 꾹 다물고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는 꼬마가 여덟 살의 황도욱이라는 것은 사진을 백 번이나 다시 살펴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조작의 가능성은 없을까 싶어 사진을 픽셀 단위로 뜯어봤으나 전문가도 아닌 내가 눈 좀 크게 뜨고 살핀다고 합성 여부를 알아볼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이게 조작 및 합성이라고 해도 맥락을 납득할 수가 없다. 굳이 열 살과 여덟 살의 남자애 둘을 억지로 붙여놓은 듯한 사진으로 뭘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거 어디 있던 거야?”
도욱이가 대답했다.
“책상 서랍에서 나온 사진이에요. 난 그냥 형이 귀엽길래 가져왔지.”
본인이 더 귀여운데 이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 나는 그 말에 반박하는 대신 사진을 뒤집어 뒷면을 살폈다. 짧은 메모라도 적혀 있기를 바랐으나 노랗게 변색된 면은 그저 깨끗하기만 했다. 이 사진이 거짓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내 머릿속에 이날의 기억은 없는 것인가? 사진을 찍은 곳은 어떤 건물의 내부처럼 보였는데 내가 도욱이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기억하는 병원은 아닌 게 확실했다. 병원 내부에는 이렇게 새까만 벽이 그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너는 이날 기억나?”
내가 묻자 걔는 고개를 저었다. 도욱이도 영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잘 모르겠어요.”
“나도. 이 사진은 내가 열 살 때야. 내가 너를 처음 만났던 건 여덟 살이었고. 그 뒤로 2년이 지난 시점의 사진이라는 건데, 너도 나도 기억이 없어. 이건 도대체 뭘 뜻하는 거냐?”
얼굴을 구겼다. 오리무중에 빠진 사건들이 답답해서 한숨만 샜다. 사진도 사진인데 황청진이 왜 이 사진을 간직하고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다. 그저 조카 사진이라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나는 사진을 잘 접어 주머니에 욱여넣었다. 아직 모든 정황을 알아낸 건 아니지만 적어도 황청진이 나를 진작 알고 있었다는 건 이 사진으로 확실해졌다.
“양산으로 가자.”
대충 찾을 것을 다 찾은 내가 결연히 선고했다. 양산까지 가는 길은 최소 여섯 시간. 서둘러야만 했다.
***
울퉁불퉁한 길은 인적이 드문 산으로 이어졌다. 가로등도 없고 달마저 구름이 가린 탓에 의지할 수 있는 불빛이라고는 고작 택시의 헤드라이트가 다였다. 기사 아저씨는 가는 내내 경상도 특유의 억센 사투리로 뭐하러 이런 험한 곳을 가냐며 툴툴거렸으나 따따블을 외치는 내 권유에 입을 다물고 연신 엑셀을 밟았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길이 소실되었거나 뜬금없이 나타난 귀신에게 홀려 절벽에 목숨을 꼴아박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는 녹슨 컨테이너 박스가 수십 채 엉켜 있는 곳 앞에 내렸고 택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 산을 내려갔다.
돌아가는 택시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손에 카드를 쥐고 선 채 나는 새삼 새로운 감회를 맛봤다. 처음에는 시내에서 택시 한 번 타는 것도 덜덜 떨었는데 파주에서 양산까지 가는 일에 망설임 없이 카드를 긁게 되다니 말이다. 몇십만 원이 훅 빠져나갔다. 따따블이라 거의 백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물론 내 잔고는 아니다. 도욱이는 핸드폰에 도착한 결제 문자를 확인하지도 않았다. 그깟 몇십은 티도 안 난다 이거지. 금액의 자릿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그 여유로운 태도가 가히 재벌다웠다.
“여기 와 본 적 있어?”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욱이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수십 개의 컨테이너가 널려 있는 이 부지 주변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나무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산의 중앙을 뭉텅 도려내 만든 것처럼 보이는 괴상한 공간이었다. 풀벌레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 기괴한 곳은 보기만 해도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스산한 공기가 부유했다. 싸늘한 바람이 뺨과 손등을 훑고 지나갔다. 이 깜깜한 밤에 사위에는 암흑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걸음 한 번 떼는 것조차 공포를 조장했다.
“함정 같은 건…… 없겠지?”
침을 꼴깍 삼켰다. 보긴 봐야 할 것 같아서 오긴 왔는데 막상 눈앞에 미친 또라이의 아지트를 마주하니 무서워 죽겠다. 이 안에 뭐가 있을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어서 더욱 그렇다. 문득 옛날에 봤던 수십 편의 잔인한 영화들이 떠올랐다. 집에 온갖 함정들을 깔아두고 침입자들의 목을 사정없이 썰어버리는…… 황청진도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어떤 미친 과학자보다 더 흉흉한 짓을 깔아놨을지도 모른다. 이런 거 경각 없이 나섰다가 그대로 죽는 사람을 하도 많이 본 탓이다.
그러나 도욱이는 겁도 없는지 내 말에 대꾸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는 뒤에 홀로 남겨질까 싶어서 그 뒤를 바짝 붙어 쫓았다. 저벅저벅 걷는 발밑으로 나뭇가지나 나뭇잎 밟는 소리만 아스라히 들렸다.
제일 먼저 열어본 컨테이너는 색깔도 불길하게 하필 붉은색이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 페인트칠이 다 벗겨져 군데군데 녹슨 부분이 보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까지 맞은 풍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뚝 서 있는 컨테이너의 문은 그 어떤 보안 장비조차 걸려 있지 않아 문고리를 잡아 돌리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열렸다.
벽면을 더듬어 스위치를 눌러봤으나 불은 들어오지 않았다. 전기는 끊긴 듯했다. 나는 핸드폰의 플래시를 켜 방 안을 밝혔다. 딱 컨테이너 크기만 한 방이 일시에 시야에 들어왔다. 황청진이 여기서 먹고 자고 살았구나 싶었다. 한쪽 벽면에 붙은 싱크대가 있었고 가로 면에는 낮은 매트와 이불이 있었다. 작은 냉장고와 테이블도 있다. 게다가 그 외 자질구레한 생활용품들이 눈 닿는 곳마다 있었다. 컵라면 한 박스까지 한쪽에 비치되어 있는 걸 봤다. 이 남자는 여기서 살았다. 아예 자리 깔고 산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여기서 밤을 지새울 일이 많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 시점이다. 언제까지 여기서 살았을까? 아직도 이곳을 드나들까?
“형, 여기.”
방 안을 둘러보던 도욱이가 냉장고를 열었다. 비위가 상할 정도로 고약한 썩은 냄새가 풍겼다. 내가 미간을 구기며 서 있자 도욱이는 그 안에서 포장된 소세지 하나를 꺼내 내밀며 말했다.
“제조 일자가 올해 초예요.”
“올해 초?”
나는 걔가 한 말을 그대로 되물으며 소세지를 들고 포장지를 살폈다. 그 말대로다. 포장지 겉면에 찍힌 제조 일자가 올해 2월로 찍혀 있었다. 그렇다면 최소 2월까지는 여기를 들락날락거렸다는 거다. 올해 2월이라.
“다른 컨테이너들도 둘러보죠.”
도욱이가 덤덤하게 말했다. 냉장고를 닫은 걔는 망설이지도 않고 방을 나갔다. 나는 도욱이의 뒤통수를 플래시로 비추면서 잠깐 서 있다가 조금 늦게 그 뒤를 쫓았다. 황도욱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떤 마음으로 이 컨테이너를 둘러봤을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도욱이는 아버지라는 칭호를 붙일 수조차 없을 인간 말종의 남자가 그렇게 된 이후 몇 년 동안 처음 만난 삼촌과 같이 지내게 됐다. 그 시절은 도욱이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주워들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쁜 관계는 아니었을 텐데. 그러나 그 행복이 크면 클수록 이 아이가 느낄 배신감도 배로 뛸 것이다.
우리는 그 바로 뒤에 있는 검은색 컨테이너의 문을 흔들었다. 앞에 있는 붉은 컨테이너와는 다르게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문고리를 돌리는 것만으로는 열리지 않았다.
“잠겼네. 열쇠는 못 본 것 같은데.”
낭패군. 다시 가서 열쇠를 찾아봐야 하나. 플래시로 문고리를 비춘 채 머리를 굴렸다. 창문을 깨고 넘어갈까 생각해 봐도 컨테이너에 달린 창문에 달린 철창은 차치하고서라도 고등학생 남자가 몸을 욱여넣기에는 상당히 협소했다. 얼굴이나 겨우 들어가는 정도일 것이다. 창틀에 어깨가 턱 걸려 바둥거릴 모습이 눈에 뻔했다.
“상관없어요.”
그러나 보통 나의 모든 고민은 두 살 연하의 거침없는 행보에 속절없이 우스워지기 십상이다. 내가 얼빵하게 되묻기도 전에 도욱이는 품에서 망치를 꺼내더니 문고리를 퍽퍽 내리쳤다. 야심하고 조용한 밤에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망치를 단 두 번 휘둘렀을 뿐인데 문고리가 파삭 부서졌다. 손잡이가 떨어지면서 바닥을 굴렀고 잠금장치가 사라지자 문이 스르륵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았다. 빛이 없는 탓이다. 아까처럼 플래시를 비추면 뭐라도 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저 안에서 속이 뒤틀리는 불쾌한 냄새가 나고 있기 때문이다.
“피 냄새야.”
참지 못한 내가 결국 뱉었다. 도욱이가 나를 봤다가 다시 컨테이너로 시선을 돌렸다. 냄새만 맡아도 저 문을 열고 펼쳐질 풍경이 어렴풋하게 예상이 됐다. 살점은 이미 다 부패되어 녹아 없어졌을 거고 백골만 굴러다닐 그 참혹한 광경이 말이다. 내가 망설이는 걸 알았는지 도욱이가 손을 내밀었다. 핸드폰을 달라는 뜻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 애에게 핸드폰을 쥐여 주는 대신 침 한 번 꿀꺽 삼키고 한 발을 내디뎠다.
문을 손바닥으로 밀며 활짝 열며 핸드폰 불빛으로 안을 비추었다.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문 바로 앞에 굴러다니는 시체가 보였다. 예상대로다. 백골이었다. 머리 하나가 데구르르 구르면서 발치에 닿았다. 나는 흠칫 놀라면서 어깨를 한 번 떨었다. 망치에 두개골이 박살 난 묵의 시체가 더 무서운지, 살점이 다 녹아 버린 백골이 무서운지 우열을 가릴 수가 없었다.
도욱이가 나를 옆으로 밀며 컨테이너로 입성했다. 나도 그 뒤를 따르며 핸드폰으로 사방을 비추었다. 이곳은 붉은 컨테이너와 확연히 달랐다. 바닥에는 해골이 즐비했다. 피일 게 분명한 검붉은 얼룩이 곳곳에 있었다. 지네 같은 벌레들이 벽과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게 포착됐다.
그러니까 이곳은 창고였을 것이다. 묵을 가둬둔 창고.
“열 마리.”
“응?”
“총 열 마리예요. 여기 갇혀 있던 묵.”
아, 그렇군. 뻣뻣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바닥의 시체를 살폈다. 도욱이는 이미 시체를 하나씩 뒤집고 있었다. 맨손으로 그러면 안 돼. 뒤늦게 말해 봤으나 걔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삼촌이 어디서 이렇게 많은 묵을 포획할 수 있었을까요?”
즐비한 시체의 중앙에 선 도욱이가 주변을 둘러보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도욱이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미간을 좁혔다. 나는 잠자코 서서 그 애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지네 하나가 신발로 기어오르길래 놀라서 팔짝 뛰었다.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의 플래시가 사방으로 난사했다. 고민을 끝낸 도욱이가 긴 다리로 시체를 겅중겅중 뛰어넘으며 단 두 발자국 만에 내 앞으로 왔다.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온 걔가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내 손에서 핸드폰을 가져갔다.
“설마.”
조용하게 뇌까리는 황도욱의 얼굴은 청천벽력의 소식을 들은 것마냥 굳은 채였다.
검은 컨테이너에서 나온 도욱이의 태세가 조금 변했다. 얼굴 근육은 죄다 경직됐는데 빠른 속도로 컨테이너를 헤집기 시작한 것이다. 잠긴 문은 거침없이 망치로 후려갈기면서 박차고 들어가는 도욱이는 어딘가 다급하고 초조해 보였다. 마치 처음 본 시체 더미에서 뭔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걔가 한 시간 동안 스무 개 내외의 모든 컨테이너 문을 박살 내고 다닐 동안 나는 차마 왜 그러냐고 묻지도 못했다. 착실하게 그 뒤를 따라다니면서 도욱이가 흉흉한 눈깔로 시체를 훑는 길을 플래시로 비춰 주는 일에 집중했다. 대부분은 두 번째 컨테이너처럼 이미 백골이 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고 그 외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제일 뒤쪽에 컨테이너 세 개를 붙인 크기의 판자 건물이었다.
모든 컨테이너를 박살 낸 도욱이가 다시 문 앞에 섰다.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잠금장치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 컨테이너 안에 우리가 찾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가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끼이익. 녹이 슬어 경첩이 마찰하는 소리가 불쾌하다. 진짜 귀신 나올 것 같아. 들이닥친 컨테이너마다 시체가 10구씩 있었으니 지금 여기 근방에만 해도 200구가 있는 거다. 게다가 곱게 죽었을 것 같지도 않다. 만약 귀신이라는 존재가 진짜 실존한다면 적어도 성불하지 못한 귀신이 200마리나 떠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정인지 뭔지 사람 시체를 조종하는 영이 있는데 악귀가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도 못하겠다.
무서워 죽겠군. 등골이 오싹해서 핸드폰을 꽉 쥐었다. 도욱이가 먼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되고 낡은 퀴퀴한 냄새가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플래시로 주변을 빙 둘러보았으나 다른 곳처럼 백골이 바닥을 빽빽하게 덮고 있지는 않았다.
“여기는 깨끗하네.”
먼지가 휘날리는 것 말고는 비교적 깔끔하다. 주변을 샅샅이 탐색한 결과 이 공간은 실험실을 연상하게 했다. 몇 개씩 놓여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흰색 탁자와 그 위에 놓여 있는 각종 실험 자재들. 진열장 안에는 위험해 보이는 약물 용기들이 줄 맞춰 나열되어 있고 한쪽에는 수술용 베드가 있었다. 다만 평범한 베드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사지를 구속하는 용도의 쇠사슬이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뭘 한 걸까?”
나는 침대 옆에 서서 중얼거렸다. 여기저기 핏자국이 낭자했다. 트레이 위에는 수술 도구로 보기에는 살벌한 공구들이 있고 바닥에 넓게 깔 만한 비닐도 한 박스가 쌓여 있었다.
“실험한 거겠지?”
대상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바깥의 컨테이너들을 생각하면 이곳에서 일어났을 일들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묵을 실험해서 뭘 얻을 수 있다는 말이지? 내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그것들이 이용하는 몸은 이미 죽었다. 생체적 반응을 얻어내기에는 용이한 실험체가 아니라는 말이다.
“영과 혼 그리고 체의 분리…….”
도욱이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베드를 비추던 플래시를 돌려 도욱이의 얼굴을 향해 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불빛 탓에 걔가 눈을 찡그리며 손으로 가렸다.
“미안.”
아차 싶은 내가 머쓱하게 사과를 중얼거리며 손을 내렸다.
“괜찮아요.”
담백하게 대꾸한 걔가 뒤돌더니 책상을 차분히 뒤집기 시작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영과 혼과 체의 분리?”
“삼촌이 종종 하던 말이었어요.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루 종일 그 말만을 중얼거리면서 종이에 뭔가를 낙서하거나 천장을 쏘아보고는 했어요. 묵이랑 관련이 있기는 한 것 같았는데……. 이것들 좀 봐줘요.”
도욱이의 손이 닿는 곳마다 수북이 쌓인 서류들이 한 뭉치씩 나왔다. 나는 그 옆에서 도욱이가 꺼내는 것마다 한 장씩 집어 무슨 내용인지 자세히 살폈다. 대부분은 고등학생 3학년의 수준으로 이해하지 못할 수식과 용어들이 난무한 탓에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여튼 뭔가를 실험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종종 같이 붙어 있는 사진만 봐도 실험체는 묵인 게 확실했다. 침대에 사지가 묶인 채 발버둥 치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렌즈에 담겨 사진으로 인화되어 있었다.
헛구역질이 났다. 이미 죽은 시체들이라는 것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깨진 두개골, 반쯤 잘려 달랑거리는 목, 칼에 찔린 수많은 자상 등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요원한 흔적들은 사진으로도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이미 죽은 사람이다. 부정에 먹혀 묵이 된 것도 억울한데 실험체로까지 이용할 이유가?
그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싶길래 이런 짓을 자행한 것일까. 의문이 자꾸 치솟는다. 복잡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꼬였다.
울렁거리는 속을 꾹 참으며 수십 장씩 넘겨본 끝에 나는 드디어 이해할 만한 문단 하나를 찾았다. 날짜를 확인하니 거의 실험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의 내용인 듯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플래시로 글자 하나하나를 비추며 세심하게 문장을 읊었다.
“부정은 혼이다. 굳이 구분하자면 혼에서 떨어져 나온 찌꺼기다. 이것은 홀로 생존할 수 없다. 영도 혼도 육도 없는 이것은 살고자 하는 본능만 남은 미련이며 기생충이다.”
내가 거기까지 읽었을 때 도욱이가 옆으로 다가왔다. 걔가 내 옆에 얼굴을 들이밀자 나는 조금 비켜 주면서 계속 글을 낭독했다.
“9년에 걸친 실험은 기어이 실패했다. 죽은 육체의 뇌에 달라붙은 부정은 무슨 짓을 해도 분리할 수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숙주의 두개골을 팔십 퍼센트 이상 파괴하여야만 소멸했으며 그 소멸은 필연적이다. 두개골을 파괴하거나 파괴하지 않거나 기생충은 숙주와 함께했다. 마치 혼과 육이 불가결의 관계인 것처럼 부정과 시체도 필수불가결의 조건을 만족한다.”
무슨 말이냐? 나는 읽다 말고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묵을 죽이기 위해서는 머리를 부수어야 한다는 말을 왜 이렇게 장황하고도 근엄하게 해 두나 싶었다. 그러나 그 의문은 그다음 문단을 읽는 순간 해소됐다.
“영혼과 육이 불가결의 관계인 것처럼 부정과 시체도 불가결의 관계다. 그리고 환 또한 생존하기 위해서는 묵의 존재가 필연적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묵의 숙적은 환이다. 묵을 죽이고 잡아먹는 것은 환이다. 환은 숙명처럼 그런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환은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모든 묵을 말살해서는 안 된다. 묵이 멸종하는 순간 환 또한 멸종하기 때문이다.”
잠깐 침묵. 나는 도욱이의 나지막한 숨소리를 들으며 계속 읽었다.
“그러나 나는 비록 시체라고 할지라도 여섯 살 아이의 손에 무기를 들려주며 폭력을 행사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
“나는 실패했다. 우리는 계속 핏길을 이어 밟아가야만 할 것이다. 심지어 아주 작은 어린아이마저도.”
그렇군. 글을 전부 읽은 나는 황청진의 생각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그는 환이 된 자신의 삶을 원하지 않았다. 평생을 그랬을 것이다. 다만 그의 연구욕을 불태운 것은 아마 갑자기 책임지게 된 자신의 어린 조카 탓일 것이다. 언젠가 도욱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것은 저주라는 말. 죽이지 않으면 죽는 숙명. 아무리 그래도 여섯 살에게 사람을 죽이라며 무기를 들려주는 것은 비참하다.
도욱이가 처음 환으로 각성한 것은 여섯 살, 병원에서다. 심지어 친부한테 죽었다. 그때부터 황도욱은 그런 삶을 살아온 거다. 고작 여섯 살짜리 남자아이가 묵의 머리를 부수는 게 쉬웠을까? 아무리 죽었다고 할지라도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그 괴물의 머리를 직접 박살 내고 피를 온몸으로 맞으며 흘러내리는 뇌수를 밟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나는 곁눈질로 도욱이의 눈치를 살폈다. 걔는 입술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돌연 내가 읽던 종이를 북 찢어가더니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손톱만 한 크기로 조각난 종이들이 바닥에 흐트러졌다.
“난 이런 거 바란 적 없어요.”
“도욱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에요.”
걔는 감정을 꾹꾹 누르는 듯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컨테이너에 갇힌 시체들을 봤어요.”
“…….”
“사인들이 뭔 줄 알아요?”
“…….”
“하나같이 목뒤를 찔렸어요. 굉장히 특이한 모양의 날붙이에. 아마 톱니가 뾰족뾰족하게 솟은 송곳 모양의 칼이었을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 묻고 싶었던 말은 그대로 혓바닥 아래 묻혔다. 지금까지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던 한쪽 손을 도욱이가 들어 올린 순간 그 대답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칼자루가 있고 그 위로 날이 길쭉하게 솟았다. 그것은 길어봤자 성인 남성의 한 뼘만 한 길이였다. 날도 굉장히 특이해서 납작하게 날카로운 게 아니라 송곳처럼 둥근 모양에 톱니가 뾰족하게 박혀 있었다.
도욱이가 말했다.
“삼촌이 쓰던 무기예요.”
“…….”
“사람의 머리에 박은 다음 한 바퀴만 돌려도 반파는 우습죠.”
그 애가 말하고 싶은 바를 모를 리가 없었다. 나는 입을 딱 다물었다. 해 줘야 할 말이 있을까? 뭐라고 할까? 네 탓이 아니다? 그런 진부한 말을 해도 되는 걸까?
“삼촌은…….”
“…….”
“자기 손으로 그들을 죽인 거예요. 그게 사람이었든 묵이었든.”
“…….”
“그런 짓을 나 때문에 한 거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어느새 시무룩하게 처진 목소리에는 물기가 묻어 있다. 송곳을 들고 있던 손이 아래로 툭 떨어졌다. 송곳도 그대로 수직으로 낙하하며 바닥을 굴렀다. 도욱이의 괴로운 침음이 암흑 속에서 퍼졌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고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한 발자국씩, 아주 천천히.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한 그 애가 놀라지 않도록.
“황도욱.”
이름을 불렀다. 걔가 고개를 살짝 들고 나를 응시했다. 우리는 아주 조금 거리를 두고 섰다.
“네가 저번에 말했지. 나는 좀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라고.”
도욱이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침울하게 젖은 갈색 동공. 저렇게 순박한 사슴 같은 눈이 세상천지 어딘가에 또 존재라도 할까.
“그거랑 같아.”
“…….”
“인생이 꼬인 게 네 탓인 건 아니잖아.”
마침 도욱이의 동그란 뒤통수 너머로 보이는 창문 밖으로 구름이 걷히기 시작했다. 몇 시간째 잠자코 숨어 있던 달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고 둥근 달이다. 원형의 보름달. 이 기괴한 땅 위에 흩뿌려진 수많은 피를 정화라도 시키려는 듯 휘영청 쏟아지기 시작한 달빛이,
“죄는 그 남자에게 물어.”
그 아이에게 흠뻑 쏟아졌다.
“네 잘못은 없으니까.”
걔가 나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이거 참 부끄럽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나니 몰려오는 건 민망함이었다. 괜히 멋진 척이라도 한 것 같다. 게다가 쏟아지는 달빛을 받고 서 있는 황도욱은 마치 신이라도 된 것처럼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내가 초라하게 비견된다.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남은 단서마저 찾아야겠다. 아직 황청진의 현재 거주지는 미궁 속이니까…….
그때 뭔가가 내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 쥐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묵이 어딘가에 숨어 있던 게 아니라면 이건 도욱이의 손일 것이다. 하도 어릴 때부터 망치를 휘둘러 굳은살이 딱딱하게 배긴 손바닥이 나를 잡아 돌려세웠다. 바로 눈앞에 그 애의 얼굴이 있다. 숨 쉬면 호흡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지근거리에 도욱이의 눈이 나를 그대로 직시하고 있었다.
“…….”
침을 꿀꺽 삼켰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달빛이 그 애의 콧대 위에서 녹아내리듯 흘러내렸다. 긴 속눈썹 위에 노란빛이 방울방울 맺혔다. 턱 아래 짙게 진 그늘이 이목구비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했다. 시간이 멈췄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고 그 애의 얼굴을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목구멍 밖으로 쏟아낼 것처럼 요동쳤다.
나를 물끄러미 보던 걔가 천천히 움직였다. 내 허리 위에 느리게 팔을 두르고 목에 코를 박았다. 은연중에 그런 의문이 드는 거다. 이 새끼는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각이 없나?
“고마워요.”
“응.”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나는 어설프게 팔을 들어 그 애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러면서 새삼스럽게 다짐하는 것이다. 아, 황청진을 기필코 잡아야겠구나. 그 남자가 본래 어떤 심성의 남자였든 자신의 어린 조카에게 죄책감을 심는 짓을 한순간 모든 면죄부가 박탈됐다. 그는 그저 어느 순간부터 돌아버린 미친 싸이코패스에 불과할 뿐이다.
도욱이를 안아 주고 있는 동안 완연히 드러난 달빛이 실험실 전체를 비추었다. 이제 굳이 플래시를 비추지 않더라도 컨테이너 박스 안의 모든 것들이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플래시만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건 뭐지?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도욱이의 등 뒤 너머에 있는 진열장을 유심히 응시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어둠에 잠겨 잘 보이지 않던 곳이었는데 달빛이 반사되면서 작은 빛이 강렬하게 반짝거리며 눈을 찔렀다. 빛은 용도조차 알 수 없는 용액이 담긴 비커 틈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잠깐만.”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설령 별것 아닌 야광별 스티커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나는 안겨 있는 도욱이를 잠시 밀어두고 진열장 앞까지 한걸음에 도달했다. 도욱이가 그 뒤를 종종 쫓아왔다. 내가 뭘 발견한 건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나는 진열장을 열고 약품들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혹시 잘못 건드렸다가 깨져서 피부에 닿기라도 하면 큰일 날 것 같아서. 홍해처럼 갈라 놓은 용액들 사이로 벽이 보였다. 그리고 작게 돋아난 스위치도.
“눌러도 되나?”
내가 중얼거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도욱이가 음 하고 애매모호한 침음을 냈다. 괜히 눌렀다가 함정에 빠지는 거 아냐?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액션 영화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도욱이의 눈을 봤다. 걔는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순박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발견하지 못했으면 모를까 여기 이렇게 있는 걸 찾아버렸는데 무시하고 지나칠 수는 없는 법이다. 혹시 중요한 단서일 수도 있는 거고. 진짜 함정이라면 이렇게 찾기 어려운 곳에 버튼을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달빛이 쏟아졌다. 버튼을 꾹, 눌렀다.
“…….”
“…….”
그리고 잠깐의 침묵.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서 있다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진열장을 보면서 두 눈을 깜박거렸다. 뭐지? 변화가 없었다. 몇 번 더 버튼을 연달아 연타해 봤으나 반응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눈을 끔벅거리면서 잠깐 지켜보고 있자 도욱이의 손이 눈앞으로 쑥 들어왔다. 걔가 방금 내가 누른 스위치를 똑같이 꾹 눌렀다. 다만 나와 다른 것은 손을 금방 떼지 않고 10초 동안 유지했다는 것이다.
달칵.
어디선가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변화는 진열장의 뒤에서 발견됐다. 벽에 딱 붙어 있던 진열장이 앞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나오더니 뒤에 작은 공간이 생겼다. 도욱이가 진열장을 앞으로 힘껏 당겼다. 맥없이 열린 진열장 밑 바닥에 손바닥만 한 작은 문이 달려 있었다.
문을 연다고 해도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무슨 비밀 지하실이라기보다는 금고라고 추정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도욱이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쳤고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작은 문을 연 건 나였다. 또 다른 자물쇠가 걸려 있지는 않을까 잠깐 고민한 것도 무색하게 문은 참 쉽게 열렸다.
손바닥만 한 검은 사각형 안에는 수억 원의 수표도 어떤 중차대한 문제의 서류도 없었다. 있는 것은 달랑 사진 한 장이었다. 내가 집어 들었다. 두 사람이 있었다.
어떤 남자와 어떤 여자.
“삼촌이에요.”
도욱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야.”
그리고 내가 말했다.
겹치듯 이어지는 두 사람의 발화에 나는 흠칫 몸을 떨며 사진을 떨어트렸다. 독이 묻어 있는 것도 폭발물이 달린 것도 아닌 그저 단 한 장의 종이일 뿐인 사진이 팔랑팔랑 바닥에 굴렀다. 도욱이가 금방 그 사진을 주웠다.
두 남녀는 어떤 골목 앞에서 나란히 서 있었다.
황청진은 도욱이를 참 많이 닮아 있었다. 연한 갈색의 모발이나 순둥하게 생긴 눈매 같은 것들이 말이다. 입꼬리가 둥글게 호선을 그리면서 한없이 순박해 보이는 모습까지 닮았다. 그는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단정하게 서 있었다. 겉모습만 봤을 때는 그렇게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를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우리 엄마였다. 내 기억 속에 남은 몇 안 되는 조각들과 똑같이 생겼다. 어깨를 살짝 덮는 갈색의 중단발, 조용히 띄고 있는 미소 아래로 연보라색 롱치마를 입고 있다. 엄마는 황청진과 나란히 서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따뜻한 봄날 내리쬐는 햇살 아래 기분 좋게 한 컷을 찍은 것처럼 보였다.
“둘이 같이 있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고작 그게 다였다. 왜 황청진과 엄마의 사진이 이 작은 금고 속에 담겨 있는 걸까? 의문은 길지 않았다. 지금까지 들었던 이상한 기시감이 해결되는 듯했다. 바로 엄마를 보고 있는 황청진의 눈빛에서.
봄처럼 따뜻한 눈이었다. 카메라 말고 엄마를 응시하는 눈. 그마저도 똑바로 볼 수 없어 힐끗 곁눈질하던 그 찰나가 사진에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숨길 수 없이 번지는 미소와 둥글게 휘어지는 눈꼬리만 봐도 그의 만면에 담긴 감정이 어떤 감정인지 깨닫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좋아했나 봐.”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지나가는 개가 봐도 알겠다. 황청진은 우리 엄마를 좋아했다. 어쩌면 아직도 좋아하고 있을 거다. 문득 그가 말했던 의문의 문장이 떠올랐다. 어차피 지옥에 갈 영혼이라면 억울하게 죽은 한 명은 살려 놓고 가도 괜찮지 않겠니. 상당히 자기희생적인 말이다. 극악무도한 살인범이 할 말이라고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그 대상이 우리 엄마라면.
황청진은 알고 있었나? 우리 엄마를 죽인 진범을?
“도대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힘 빠진 한숨을 내쉬며 뇌까렸다. 알면 알수록 미궁이었다. 나는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익숙한 담벼락과 담벼락 위로 길게 늘어진 봄꽃 가지가 보였다. 담벼락에는 낙서 같은 게 그려져 있었는데 두 남녀의 모습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어린아이의 그림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보기 충분했다.
“잠깐만.”
사진을 천천히 훑어보던 나는 뇌리를 번뜩 스치는 생각에 도욱이의 손에서 사진을 뺏었다. 너무 오래돼서 가물가물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익숙하다 싶더니 담벼락에 그려진 낙서들은 아직 친구가 있던 어린 시절 내가 그린 그림들이었다. 그때 한참 새 크레파스를 선물 받고 여기저기 낙서를 하고 다니다가 종종 혼났던 것이다.
“여기 우리 집 앞이야.”
“우리 집?”
“내가 어릴 때 살던 집.”
어쩐지 눈에 익다 싶었다. 하도 어릴 때라 바로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엄마가 강도 사건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았던 그 집이 틀림없다. 심지어 하도 가난해서 셋방살이를 했었다. 1층은 주인집이 살았고 2층의 창고 딸린 방에서 살았는데 주인 내외가 정이 많고 친절한 노부부라 도움을 많이 받고는 했었다. 담벼락에 엉망진창 낙서를 해도 그들은 오히려 허허실실 웃어 넘겨 주고는 했던 게 나와 골목 일찐들의 기세가 득세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왜 이 사진을 보관해 뒀을까?”
오래된 사진이다. 나는 엄지로 사진의 표면을 문질렀다. 먼지가 조금 묻어 나왔을 뿐 보관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이 사진이 우연히 금고에 들어가 있을 리는 없다. 황청진에게 이 사진은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마치 우리 엄마처럼.
“도욱아.”
“응.”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곳을 버리기 힘들겠지?”
“네?”
“여기 가 봐야겠다.”
“어디를요?”
“여기. 옛날 우리 집.”
검지로 사진의 두 남녀를 꾹 눌러 짚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는 그들은 그저 행복해 보이기만 했다.
둘은 무슨 관계였을까. 어떻게 알게 됐을까. 우리 엄마가 황청진에게, 황청진은 우리 엄마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최근에 시작된 일이 아니다. 적어도 십 년도 더 전부터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눈과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다. 이것을 그저 싹둑 자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모든 것을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어쩌면…… 이곳이 모든 일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미 심야였다. 공터의 새벽은 어두컴컴하다 못해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컨테이너를 뒤질 때만 해도 밝았던 달빛은 어느새 흘러나온 구름 뒤에 가려져 그 빛을 잃었다. 더 이상 조사할 곳을 찾지 못한 우리는 황청진이 방으로 썼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컨테이너로 돌아왔다.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은 이불을 털고 차가운 바닥 위에 대충 널브러졌다. 컵라면 몇 개가 있었으나 유통기한이 지난 터라 먹기에는 찝찝했다. 핸드폰은 언제부터 배터리가 닳은 건지 까맣게 죽어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나는 황도욱의 팔에 머리를 대고 누워서 꺼진 핸드폰을 응시하며 뇌까렸다.
“선생님한테서 부재중이 몇십 통은 와 있겠지?”
“흠.”
“경찰에 신고했을지도 몰라.”
“그럴까요.”
“어쨌든 돌아가면 죽을 거야.”
“그건 그럴지도.”
우리를 보자마자 성을 낼 선생님의 얼굴이 보지 않아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정작 자신은 움직이지 못하는데 우리 둘은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졌으니 화를 내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부처다. 아직 경찰이 여기까지 들이닥치지 않은 게 요행이라면 요행이다.
“너 핸드폰은.”
“놓고 왔어요.”
걔가 담백하게 대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핸드폰을 머리맡에 두고 잘 채비를 했다. 피곤하다. 내일은 일어나자마자 여수까지 내려가야만 했다. 선생님이 경찰에 신고해 그 전에 잡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서둘러 모든 일을 끝내고 싶었다. 청하 누나의 안위에 대한 걱정도 컸다.
“자요.”
도욱이가 말했다. 심란해하는 날 눈치챈 모양이다. 걔가 이불을 끌어 올려 목까지 덮어 주었다. 저릴 텐데도 내 머리를 지탱해 주는 팔이 단단하다.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아 허공에 부유하는 퀘퀘한 먼지가 호흡기에 흡착되면서 기침을 유발했다. 콜록콜록, 몇 번 기침을 내뱉자 나를 안은 팔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도욱이가 말없이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다. 어둠에 묻혀 거의 실루엣밖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지만 나를 직시하는 그 눈만은 또렷했다.
나를 감싸 안은 두 팔에 의지하면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피로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정리하다가 천천히 잠이 들었다.
***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손을 뻗어 핸드폰을 찾으려다가 사지가 묶인 감각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내 뺨에 코가 닿을 정도로 붙어 있는 황도욱의 얼굴이 보였다. 해가 이미 중천인지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빛도 밝아 컨테이너 내부가 훤했다. 도욱이의 잠자는 얼굴도 눈, 코, 입 하나 빠지지 않고 시야에 담겼다. 잘 자는구나. 세상 순한 아기처럼 새근새근 잘만 자는 걔의 얼굴을 하염없이 봤다. 지금 이렇게 시간을 지체할 때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들이치는 햇살 아래 누워 있는 도욱이가 마냥 좋아서 조금이라도 더 쳐다보고 싶었다.
“…….”
“……깼어?”
멋쩍게 웃었다. 걔가 돌연 눈을 떠버린 바람에 괜히 자는 애 얼굴 두고 감상한 변태만 되어 버렸다. 타이밍도 구린 새끼. 황도욱은 변태한테 대꾸하는 대신 팔에 힘을 주고 나를 더욱 끌어안았다. 뺨이 뭉개질 정도로 말이다.
“이제 일어나야 돼.”
“…….”
“누나도 구해야 하잖아.”
그렇게 말하자 나를 안고 있던 두 팔에도 서서히 힘이 빠졌다. 도욱이가 부스스한 눈으로 상체를 일으켰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일어나면서 흘러내리는 이불을 정리했다. 딱딱한 바닥에서 잔 것 치고는 몸이 썩 괜찮았다. 팔과 다리를 사방으로 쭉 펴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멀뚱히 서 있는 도욱이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 내려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러서 세수부터 좀 해야겠군.
“가자.”
“응.”
가타부타 덧붙이는 말없이 우리의 결연한 목표는 단 한 가지였다.
그러나 이 웅장한 결심은 컨테이너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누구…… 세요?”
너무 늦었나 싶을 정도로 밝은 대낮이었다. 우리 앞에는 검게 선팅되어 있는 봉고차 여러 대와 작업복을 입고 있는 일단의 무리들이 서 있었다. 대략 잡아도 족히 열 명은 넘어 보였다. 첫인상으로 이런 말을 하기는 좀 그렇지만 얼굴만 봐도 흉흉한 게 범죄자 관상이다. 심지어 그들의 손에는 연장도 하나씩 들려 있다. 각목이나 쇠파이프나 칼 뭐 그런 것들.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챈 건 도욱이도 마찬가지였는지 걔는 반사적으로 내 어깨를 감싸 쥐며 앞으로 나섰다. 미친놈이. 저들이 적이라면 위험한 건 마찬가지면서.
“그, 뭐냐, 둘 중에 채승이가 누구냐?”
그 아저씨들 중 제일 대가리로 보이는 남자가 나서면서 말했다.
“작은 놈이라고 하긴 하던데. 그럼 이쪽인가?”
짧게 깎은 머리에, 얼굴에는 오돌토돌한 흉터들이 자잘하게 많았다. 딱 봐도 깡패 인상이다. 그는 눈썹을 치켜뜨면서 위협적으로 몸을 부풀리며 말했다.
“너희 아저씨들이랑 좀 갈 곳이 있다.”
“어딜요?”
나는 다소 불손하게 반박하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하는 꼬라지를 보면 우리 팀은 아니다. 황청진이 보낸 놈들일 것이다. 사람인가? 묵인가? 썩은 우유 냄새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살아있는 묵이라면 어차피 내 코로는 알 수 없다. 도욱이를 곁눈질하며 눈치를 살폈으나 얘도 별 반응은 없었다. 그렇다면 사람인가. 사람이라면, 왜 사람을 보냈을까.
“그런 건 물어볼 필요가 없어요. 가면 다 알게 돼 있어.”
남자가 느끼하게 웃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남자들의 포위가 한 걸음 가까워졌다. 다급하고 초조해졌다. 어쩌면 황청진에게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물론 거기까지 간 다음 산 채로 해부라도 될지 묵에게 먹힐지 알 수 없다는 게 큰 문제이기는 한데…….
하지만 싫다고 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었다. 당장 열 명이 넘는 남자들을 어떻게 뿌리치고 도망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여기는 산속이고 저들은 차도 있다. 아무리 황도욱이라고 하더라도 굳이 위험한 일을 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저만 필요하죠?”
내가 다시 물었다. 아까 굳이 나를 콕 찝어 말한 걸 보면 도욱이는 부수적인 요소다. 몇 년 전부터 황청진이 필요했던 건 바로 나, 강채승이다.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답은 하나밖에 없다.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제가 갈게요. 도욱이는 놔 주세요.”
“형.”
도욱이의 당황한 음성이 머리 위에서 들렸다. 걔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이런 거 영화에서 많이 봤는데. 사랑하는 연인 대신 죽겠다고 앞으로 나서는 주인공 혹은 히로인. 별 세기의 사랑이 다 있다고 낄낄거리며 비웃고는 했었다. 먹고 사느라 바쁜데 남 생각할 시간이 어디 있냐면서 대수롭지 않게 채널을 넘겼다. 그때 잘 봐둘 걸 그랬다. 그 뒤 어떻게 되는 건지 미리 알아뒀으면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았을 텐데. 주인공 이야기니까 행복하게 끝났겠지. 잘 풀렸겠지. 그렇겠지?
“내가 갈게.”
결단에 필요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문제는 도욱이었다. 걔는 얼굴 근육을 죄다 딱딱하게 굳혀 놓고서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난감하네. 이 쇠고집을 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뻗댈 수도 없다. 저 남자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봐라. 저쪽이든 이쪽이든 아무 상처 없이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황도욱이 아무리 강하다고 하더라도 연장 든 성인 남성의 무리를 혼자 다 제압한다고? 무협 찍냐?
“너 이 사람들 다 죽일 거야?”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도욱이의 손을 잡은 채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물었다. 이기려고 한다면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도욱이가 저 남자들을 묵을 처치할 때처럼 머리통 박살 내기에 집중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은가? 황도욱은 아직 열일곱 살이다. 몇 달 지나 봐야 열여덟 살이다. 민증도 안 나왔다. 어릴 때부터 애한테 망치 손에 쥐여 주고 휘두르게 한 것도 기가 막히는데 괴물도 아니고 진짜 사람을 죽이게 놔둘 수는 없었다. 지금이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에 봉착한 것도 아니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끌려가도 살아날 방도가 있을 거다.
나는 다시 한번 도욱이의 손을 조심스럽게 떼냈다. 이번에는 걔도 뭔가를 이해한 듯, 그러나 여전히 탐탁지 못한 표정으로 힘을 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핸드폰 충전이나 꼬박꼬박해 둘 것을 그랬다. 황청진이 묵이 아니라 사람을 쓸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것도 이렇게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
“이야기 끝났나?”
그 남자가 말했다. 보란 듯이 하품을 쩍쩍해대는 게 사람에게 모욕을 주려고 작정한 모양이었다. 다리 한 짝을 달달거리면서 건들거리는 본새까지 깡패 그 자체였다.
“힘 안 써도 돼서 좋군. 채승 군이 꽤 현명해.”
대꾸하지 않았다. 깡패한테 칭찬 들으려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니다. 나는 말없이 두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남자 두 명이 내 양쪽 팔을 거세게 잡아당기면서 끌었다.
“아파요!”
“그럼 뭐 공주님처럼 편안하게 모실 것 같았냐?”
씨발, 그건 그렇지. 나는 팔을 억세게 쥐는 손길에 괜히 반항하듯 몸을 뒤틀면서 고개를 돌려 도욱이를 쳐다봤다. 걔는 내 악소리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멈칫거렸다.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도욱이가 얼른 이곳을 나가서 어른들한테 연락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늦지 않게 나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야지.
“차에 태워.”
거의 쑤셔지듯 들어간 봉고차에서는 쓰레기 냄새가 났다. 청소도 안 하나. 우웩. 그들은 내 양손에 손목을 묶고 눈에는 안대까지 씌웠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걸까. 나한테는 도욱이처럼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툴툴거리면서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만을 잠재우려고 애쓸 때다.
“우리 의뢰인이 학생 삼촌이랬나?”
그 남자의 목소리다. 누구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건지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나를 잡았으면 됐지, 저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앞이 보이지 않아 깜깜한 세상 속에서 귀를 바짝 세웠다.
“의뢰인께서 누구보다 학생을 조심하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다리 하나만 손 좀 댈게.”
뭐라고? 나는 상체를 번뜩 일으켰다. 이게 무슨 헛소리야.
“지금 도욱이한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버럭 소리부터 질렀으나 돌아온 것은 조용히 하라는 윽박과 뒤통수에 닿는 둔탁한 고통이었다. 나는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아래로 처박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소리로만 바깥의 상황을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내 머리채를 쥐고 들어 올리더니 입에 뭔가를 욱여넣었다. 손수건이나 천 같은 거겠지. 덕분에 입이 막힌 나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게 됐다.
“그 망치 내려놔. 반항하면 채승 군부터 죽는 거야.”
도욱이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건지 모르지는 않았다. 킬킬거리며 숙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빡! 하고 뭔가를 부러트리는 소리, 그리고 풀석 쓰러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속이 쓰렸다. 내 판단이 틀렸나? 죽을 때 죽더라도 도욱이랑 같이 있는 게 맞았나? 혼란스러웠다. 도욱이에게 달려가고 싶어서 온몸을 흔들었으나 꽁꽁 묶인 재갈과 결박은 절대로 풀리지 않았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러나 운다고 상황이 변하는 것은 없었다.
몇 시간이나 붙잡혀 있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단단히 묶인 몸뚱이는 사지가 쑤셨다. 손목의 혈관은 벌써 막힌 것 같고 종일 가려진 시야 덕분에 시간 감각도 다 잃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어디로 가는 건지 방향이라도 잡아 볼까 했는데 고작 시동 걸린 지 10분 만에 허튼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방향은 무슨,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들다. 머릿속에서는 다리가 부러져 차가운 흙바닥 위에 누워 있을 황도욱의 모습이 자꾸만 생생하게 돌아다녀서 그게 더 문제였다. 얼굴에 자꾸 눈물이 흐르는 통에 안대마저 축 젖었다. 축축한 천이 광대 위를 쓸면서 살갗도 쓰라렸다.
가는 동안 그들은 시답잖은 대화나 떠들었다. 여자 얘기, 약 얘기, 유흥 얘기 등 그런 게 다였다. 황청진이 일회성으로 고용한 남자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굴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관심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듯했다. 종종 내 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밀면서 고딩 두 명 납치하는데 뭐하러 이렇게 떼 지어 오는 거냐고 투덜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나는 우는 와중에도 황도욱을 걱정했다. 걱정하면서도 앞으로 할 일을 생각했다. 훌쩍거리는 내가 시끄럽다고 뒤통수를 몇 대씩 처맞아도 그때만 잠깐 소리를 멈췄을 뿐, 꿋꿋하게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내 선택이 틀렸을까, 어른들한테 연락은 하고 나와야 했을까, 죽더라도 도욱이와 함께 튀었어야 했을까. 이미 늦은 후회가 자꾸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도 꾹 참고 모른 척했다. 후회할 때가 아니었다. 도욱이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죽일 거였다면 진작 죽였을 것이다. 이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그 남자도 그렇게 말했다. 다리 한 개만 못 쓰게 하겠다고. 이들은 돈 받고 시킨 일만 하는 청부 집단이다. 이 시키지도 않은 살인을 하겠다고 일을 번거롭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도욱이 걱정은 그만하자. 지금 문제는 걔가 아니라 나다.
끊임없이 움직이던 차가 멈추면서 시동이 꺼졌다. 부산스러운 소리가 나면서 내 양옆에 앉아 있던 남자들도 움직였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나 돼지들인지 자리가 좁아 불편했는데 드디어 숨통을 트나 싶었다.
드르륵. 봉고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찬바람이 훅 들어왔다.
“내려.”
담배를 많이 피워 가래 낀 목소리가 험악하게 말하면서 내 목덜미를 잡더니 거칠게 당겼다. 종일 내 오른쪽 옆에 앉아 툴툴거리던 남자였다. 나는 그의 손에 이끌려 내리면서 비틀거리는 몸이 앞으로 허물어지지 않도록 하체에 바짝 힘을 주었다. 차가 아니라 아스팔트에 두 발이 닿는 것을 느끼면서 오감을 잔뜩 기울였다. 씨발, 눈을 얼마나 꽁꽁 가려놨으면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이 안 된다. 낮이겠지? 아침에 일어나서 끌려 온 지 몇 시간 안 됐을 테니까. 시간 감각이 거의 소멸되기는 했어도 적어도 열두 시간이 지나지는 않았을 테니까.
“형님, 여기 그냥 두고 가면 됩니까?”
“어, 담벼락 위로 해서 던져두고 가래.”
“별 희한한 의뢰인이 다 있네.”
“그 새끼 몇 년 동안 지금까지 계속 그랬잖아. 하여튼 인상도 음침한 게 나도 거래하면서 찝찝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면서 선수금도 두둑하게 줬으니 우리야 좋지. 빨리 던지고 가자. 애들은 이미 다 빠졌다.”
“넵.”
두 남자의 대화가 한차례 이어졌다. 해석할 틈도 없이 내 두 발이 허공으로 번쩍 들렸다. 앗 할 틈도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붕 날아서 어딘가에 처박혔다. 그들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어서 바닥에 척추가 거꾸로 꽂히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만 했다.
떨어진 곳은 아스팔트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흙과 풀이 깔려 있었다. 뒤로 묶인 손으로 바닥을 더듬거리면서 어설프게 몸을 움직였다. 떨어지면서 어깨를 강하게 부딪친 바람에 통증이 좀 있었으나 별것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따로 있었다.
“이 냄새는…….”
공간 하나를 넘자마자 영혼을 푹 적실 듯 그 지독한 냄새가 넘실거렸다. 손가락 끝까지 긴장해서 바짝 굳었다. 우유 썩은 냄새였다. 지금까지 맡아본 적 없는 아주 강렬하고 독하며 천지를 진동하는. 도대체 몇 구가 있는 건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어마어마한 냄새.
그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뭔가가 굴러가는 소리였다. 조금 먼 거리에서 다가오던 소리는 귀 바로 옆에서 끊겼다.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구속을 끊기 위해 몸을 꿈틀거렸으나 그것도 헛된 몸부림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내 눈을 가린 안대에 손을 댔다. 내가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새까만 천을 치웠다. 내장까지 뒤틀릴 정도로 썩은 냄새가 코를 먼저 후비고 그다음 듣기 불쾌할 정도로 가라앉은 목소리가 고막을 두드렸다.
“채승 군.”
“…….”
천천히 눈을 떴다. 아직 중천에 떠 있는 태양보다 먼저 보인 것은 얼굴의 피부가 삭아 안쪽의 광대뼈가 보이는 흉측한 몰골의 남자였다. 그다음은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하체다. 통이 넓어 헐렁거리는 바지 아래 새까맣게 썩은 발목이 드러났다.
“내가 황청진일세.”
황도욱의 삼촌. 결국 그와 이렇게 대면해 버리고 말았다.
***
나는 다시 눈이 가려진 채 어딘가로 질질 끌려갔다.
황청진은 인질에 대한 배려도 없었다. 리무진에 태워서 데려가는 것은 기대도 안 했지만 그래도 구르마 정도는 탑승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바닥에 몸뚱이가 마찰되면서 자갈인지 흙인지 모를 것들이 살갗을 스치고 심지어 옷 안까지 들어왔다. 치사하게 자기만 바퀴 달린 걸 타고 말이야. 개새끼, 나중에 도욱이한테 다 일러주마.
아직 여기가 어디인지 짐작할 수 없다. 안대가 벗겨졌을 때 황청진의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느라 미처 주변을 둘러볼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내 동공이 움직이려는 찰나에 다시 씌워 주변을 살피려는 내 시야마저 차단했다. 얼핏 잿빛의 담벼락과 정원에 수북하게 쌓인 흙더미들만 봤을 뿐이다. 이곳이 우리가 짐작했던 ‘그 집’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도욱이가 알아서 잘 찾아주기만을 바라는 게 할 수 있는 모든 최선이었다.
황청진과 나는 곧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중간에 계단 몇 개를 오르느라 뼈가 부딪치면서 아팠지만 꾹 참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드디어 바닥에 장판이 깔린 어떤 집안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사방에 고약하게 깔려 있는 우유 썩은 냄새였다. 정말 코는 물론이고 오장육부까지 뒤틀릴 정도로 고약한 냄새에 나는 헛구역질이 나 제대로 된 반항도 할 수 없었다.
황청진은 나를 데리고 다시 어딘가로 내려갔다. 지하인가? 내리막길이 길었다. 옆에서는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그 길은 장판이 깔린 길이 아니었다. 아스팔트라도 부은 건지 울퉁불퉁하고 살갗을 마구 긁어 댔다. 나는 바닥에 닿을 때까지 등과 허리와 팔꿈치 등의 피부가 벗겨지는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아프다고요!”
참다못한 내가 꽥 소리를 내질러도 그는 반응이 없었다. 충실하게 나를 묶은 줄을 쥐고 질질 잡아당겼다. 머리통도 이미 찢어진 것처럼 따가웠다. 이러다 내가 목 꺾여 죽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함부로 구나 싶어 억울할 지경이다. 내가 필요한 거 아니었어? 이러다가 도욱이 올 때쯤엔 시체로 남겠네. 아이고, 씨발. 개쌍욕을 씹으면서도 고통스러운 하강의 길을 인내한 결과 드디어 안대가 벗겨졌다.
“여기가 어디인지 감이 오나?”
황청진의 탁한 목소리가 고막으로 쳐들어왔다. 나는 그의 손에 반항하듯 한 차례 고개를 휘저으면서 눈을 부릅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곰팡이가 잔뜩 슨 축축한 벽지였다. 온통 새까맣게 물들어서 처음에는 원래 검은색으로 도색한 건 줄 알았다. 이토록 심하게 곰팡이가 뒤덮은 벽은 생전 본 적이 없던 터라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이곳은 실험실이었다. 컨테이너에서 봤던 실험실과 구조 자체는 다르지 않았다. 책상과 서재들, 그리고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져 있는 서류들. 정리는 잘 안 하는 모양이지. 그런 쓸데없는 감상들 사이, 방의 중앙에 놓여 있는 거대한 기계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흰색의 캡슐처럼 보이는 그것은 딱 성인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그리고 가느다란 전선들이 가닥가닥 엮여 바닥을 죄다 덮고 있었는데 그것들이 전부 어디로 이어져 있는 건지, 사방으로 퍼져 있어 끝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모르겠는데요.”
나는 불퉁하게 대꾸했다. 어른 앞에서 보일 태도는 아니다. 하지만 납치범에게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투다. 나는 몸을 꿈틀거리면서 손목과 발목을 묶은 끈을 어떻게든 풀어 보겠다고 용을 썼다. 하여튼 의미 없는 발악이었다.
“그래, 뭐. 네가 알 필요는 없지. 준비할 게 많으니까 넌 좀 잠을 자두는 게 좋겠어.”
“네?”
눈을 끔벅거렸다. 무슨 말인가 했다. 그러나 그가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는 순간 쌍욕을 지껄였다. 묶인 채로 팔딱 뛰면서 도망가려는 헛된 시도를 했다. 마치 고등어라도 된 것처럼 뛰어올랐지만 그의 축축한 손에 뒷목을 덥석 잡혔다. 황청진은 그대로 나를 바닥으로 찍어 누르면서 목에 주사기를 찔러 넣었다. 따끔한 통증을 느낀 순간, 나는 흐려지는 시야 속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며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눈앞이 형형색색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신경을 긁는 시끄러운 소음이 귓가에서 떠돌아다녔다. 잊고 산 지 오래됐던 엄마 얼굴이 스쳐갔다. 잊고 살고 싶었던 아버지의 얼굴이 스쳐갔다. 잊지 못할 선생님의 잘린 팔이 스쳐 갔다. 잊어서는 안 될 지금의 목적과 함께 청하 누나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리고 보고 싶은 황도욱의 눈이, 황도욱의 코가, 황도욱의 얼굴이 자꾸, 자꾸, 자꾸.
- ……채승, 채승아!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번쩍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눈앞이 핑 돌면서 머리가 깨질 듯한 편두통이 관자놀이를 쑤셨다. 속이 울렁거려 헛구역질까지 났다. 뿌옇게 일렁거리는 시야의 초점을 맞추려고 눈을 여러 번 깜박였다.
“누나?”
청하 누나가 보였다. 오래도록 제대로 먹지 못했는지 피골이 상접했다. 뺨은 홀쭉하고 눈 밑은 퀴퀴하게 어두웠다. 누나는 사지가 쇠사슬로 꽁꽁 묶인 채 차가운 바닥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군데군데 보이는 핏자국과 상처들이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는지 한눈에 보여 주었다.
죽었나? 설마 벌써 늦은 건 아니겠지? 문득 솟구치는 두려움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날 부른 것을 보면 아직 죽은 건……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나를 부른 것이 누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야 당연하다. 누나의 입은 청테이프로 감겨 막혀 있으니까.
그렇다면 날 부른 건 누구지? 고개를 쳐들었다. 그제야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제대로 살펴볼 수 있었다. 희미한 백열등만 깜박거리는 캄캄하고 협소한 직사각형의 공간이다.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나고 한쪽 벽은 감옥처럼 철창으로 단단히 막혀 있다. 그 밖으로 정신을 잃기 전 내가 봤던 전선들과 이상한 기계들이 보였다. 아까부터 자꾸만 들리던 소리는 벽 위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5대의 모니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제 찍힌 건지 알 수 없는 영상은 모두 같은 장면을 송출 중이었다. 화면을 꽉 채우는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맹렬하게 솟구쳐 올라 파랗게 넘실거리는 그 불꽃의 발화점은 의식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작은 아이였다. 잘 봐줘야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아이의 가슴에서는 불꽃이 크게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가리를 커다랗게 벌려 어떤 형체를 잡아먹고 있었다. 사람인가?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정체불명의 장면에 집중했다.
“저게 무슨…….”
눈을 끔벅거렸다. 내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감도 안 잡혔다. 불꽃은 너무 밝았고 그 외의 모든 것들을 가렸다. 보이는 것은 없고 끔찍한 절망의 비명만이 귓속을 가득 메웠다. 그때 이미 들은 적 있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나의 상념을 깨고 들어왔다. 기괴하게 갈라지는 두 개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내 의문을 해소했다.
“아름답지? 환이 묵을 태우는 장면이란다.”
화면은 멈추지 않았다. 일렁거리는 불길은 꽤 오래도록 그 형체를 태우고 있었다. 나는 모니터에 두었던 시선을 떼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철창 바깥에서 다섯 개의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검게 녹은 피부와 휠체어. 황청진이었다. 비록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그 얼굴의 윤곽만큼은 분명히 황청진이 맞다.
왜 저런 모습이 되었을까? 추론은 어려웠다. 그는 너무나 기괴했다.
“묵은 환의 심장을 절대로 먹을 수 없어. 그것은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과도 같은 짓이니까.”
그가 리모컨의 버튼을 조작하자 영상이 빠르게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정을 태우고 훼손된 심장을 봉합하는 환의 생명력은 경이로울 정도지. 그중에서도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은 이미 죽은 사람마저 살릴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보겠니? 도욱이가 일으킨 기적을.”
나는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는 소리가 족족 무슨 사이비 종교를 연상하게 했다. 환이 묵의 천적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 두 존재가 어떤 방식의 알고리즘으로 작용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하여튼 내가 모르는 어떤 자연의 섭리 같은 방식으로 그들은 서로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기본 골조가 그렇다.
분명 그들의 존재는 평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살린다는 건 진짜 개소리 아닌가. 내가 지금까지 들은 환 이야기 중에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썰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또다시 피어오르는 의문을 해갈할 틈도 없이 거꾸로 돌아가던 영상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정방향으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황청진은 말을 멈추고 화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기괴하게 변한 모습 사이에서도 형형하게 부릅뜨고 있는 눈은 뭔가를 추억하는 듯 혹은 어떤 뜻을 강렬하게 염원하는 듯 반짝거렸다. 그것은 매우 기묘하고도 음습하게 보여서 등골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정도로 비이성적으로 보였다. 자꾸만 사람을 홀리는 듯한 그 모습에서 겨우 시선을 떼고 조용해진 모니터를 응시했다.
화면은 종일 검은 벽의 방을 비추고 있었다. 익숙한 가구와 그것들의 위치 등을 보건대 저곳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있었던 컨테이너 실험실인 게 분명했다. CCTV를 설치해 두었을 정도면 저 음침한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기상천외한 실험을 자행해 왔던 게 틀림없을 거라고 봤다.
황청진은 여전히 부동이 없고 대신 조용했던 스피커에서 남녀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반응 있어요?
얇은 니트와 청바지를 입은 단발머리의 여성이 화면 중앙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물었다.
- 없습니다. 실험체들은 시체와 다를 바 없어요. 어떤 생체 반응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죽은 피를 뽑아낸다고 하더라도 그건 썩은 액체에 불과할 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어떤 성분이나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나 목소리만 들릴 뿐, 그의 모습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았다. 무엇을 감시하는 건지도 모를 CCTV 영상은 고요한 화면과 함께 두 남녀의 질답으로 이어졌다.
-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잖아요. 이들은 숙주에 불과해요. 머리에 기생해서 몸을 움직이는 환의 숙주. 마치 인형의 팔다리에 실을 매달고 억지로 조종하듯 그렇게 움직이는 거라고요. 숙주의 영향에서 벗어난 신체는 그 부위가 어디든 힘을 잃을 수밖에 없죠.
여자가 태연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로 빠르게 읊조렸다.
- 처음부터 따져 봅시다. 엄밀히 말하자면 환에게 필요한 건 부정입니다. 지금까지 숱한 실험의 연구 결과로 알다시피 시체 조각 따위로는 우리를 충족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머리여야만 하고, 그 머리에 기생하고 있는 부정을 뽑아 먹는 게 핵심 조건이죠. 하지만 그러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폭력의 행위를 거듭해야만 합니다. 손에 피를 묻히고 산산조각 부서지는 살점들을 헤집어야만 한다는 말입니다. 자경 씨도 알다시피 그건 매우 불결하고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입니다. 심지어 비효율적이기까지 하죠.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의 머리를 깨지 못하는 심약한 환들도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기어이 묵을 잡지 못해 굶어 죽거나 우물쭈물하다가 도리어 반격을 당해서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 그런 건 저도 알아요. 손에 피 묻히기 싫어서 굶어 죽을 뻔한 건 저도 마찬가지니까. 그래서 우리가 묵의 육체를 훼손하지 않고도 부정을 뽑아 정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거잖아요.
잠깐 말이 끊겼다. 여자가 곧바로 이어 말했다.
- 당신이 걱정하는 게 도욱이인 건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지금 각성한 지 벌써 2년이 지나지 않았나요? 그 아이가 익숙해졌는가 아닌가를 떠나서 어린아이에게 시체를 들이미는 것은 좋지 않죠. 하지만 그 애는 생존하기 위해서 계속 피를 묻히고 살아가야겠죠……. 저도 안타까워요. 저도 더는 그런 일을 하기 싫고 어릴 때부터 폭력에 희생당하며 살아온 애한테 그런 폭력적인 삶을 이어가도록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 연구를 돕는 거예요. 아무리 드물다고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각성하는 환이 앞으로도 도욱이일 뿐일까요? 죽은 피를 손에 묻히면서 괴로워할 환이 당신과 나뿐일까?
- …….
- 일어나세요, 청진 씨. 길이 막힌 것처럼 다 포기하고 쪼그려 앉아 있지 마세요.
- 자경 씨.
- 저도 이대로 그냥 콱 죽고 싶은 거 겨우 버티고 있는 거니까.
그것은 다정한 위로였다. 엄마는 단단한 어조로 황청진을 일으켜 세웠다.
- 도욱이는 어디 있어요?
도욱이, 도욱이, 도욱이.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듯한 이름에 괜히 심장이 뭉클거렸다. 걔는 지금 어디 있을까. 다리는 괜찮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텅 빈 공간만 보여 주던 화면 속에 그제야 두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아는 그 모습 그대로의 그들이었다. 이자경과 황청진. 우리 엄마와 도욱이의 삼촌. 두 사람은 오물이 군데군데 묻은 더러운 가운을 어깨에 걸친 채였다.
- 밖에 있을 겁니다.
황청진이 시무룩한 어조로 대답했다. 엄마가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으면서 황청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 손길에는 동료로서의 애정 그 외의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나가서 도욱이랑 밥이라도 먹어요. 환이라고 해도 아직 어린애니까…….
조용했던 공간을 느닷없이 꿰뚫으며 엄마의 말을 끊은 것은 익숙한 한 남성의 괄괄한 욕지거리였다.
- 이자경! 이 씨발년, 어디 있어! 나와!
두 남녀는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문밖을 바라보는 듯했다. 엄마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고 황청진은 그런 엄마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이미 수 년은 지났을 그 장면에서 놀란 것은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묶여 있는 몸이 파뜩 떨렸다. 집중하느라 가늘어졌던 두 눈이 단숨에 확장됐다.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가 났다. 컨테이너의 문은 어떤 성난 남자의 발길질 몇 번에 쉽게 열릴 정도로 얇고 허술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남자가 화면의 구석에 등장했다. 그는 머리가 삐죽삐죽 솟을 정도로 단단하게 화가 나 있었다.
- 요즘 밖으로 돌아다닌다 싶더니 이 새끼야? 이 어린 새끼랑 뒹구느라 이 시골에 처박혀서 씨발 지금 어?
어쩌면 비극은 그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 이 좆같은 년!
아버지가 엄마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것을 말리지 못한 그때부터.
듣기 싫을 정도로 저급한 욕설과 높게 갈라지는 비명이 뒤섞였다. 세 명의 남녀가 얽혔다. 억센 남자의 손아귀에 잡힌 얇은 머리카락이 금방이라도 뽑힐 것처럼 거침없이 흔들렸다. 그 장면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폭력적이었으며 눈시울이 시큰할 정도로 낯익었다. 아버지는 가끔 종종 저렇게 엄마에게 손찌검을 하고는 했다……. 내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돌아가시던 그날까지.
- 놔! 놓으라고!
새삼스럽게 다시 그날의 기억이 섬뜩한 잔영처럼 눈앞을 스쳐갔을 때다. 둔탁한 소음이 스피커를 찢으며 고막을 강타했다.
- 청진 씨!
- 이, 이 새끼가 지금……?
아버지의 왼쪽으로 돌아간 오른쪽 뺨이 금방 발갛게 부어올랐다. 그가 희번뜩하게 눈깔을 치켜뜨며 엄마의 앞을 가로막은 황청진을 매섭게 쏘아보았다. 황청진은 주먹을 꽉 쥔 채 물러서지 않고 남자의 앞에 서서 정면으로 맞섰다. 엄마는 산발이 된 머리를 정리하지도 못하고 당황한 얼굴로 서서 황청진의 팔꿈치를 잡아당겼다.
- 청진 씨.
- 왜 말립니까. 맞고 있을 생각입니까?
황청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대꾸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절망의 독백을 중얼거리던 목소리와는 딴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아버지의 분노를 극심하게 유발했다. 그는 검지를 쭉 뻗으며 황청진의 얼굴에 대고 삿대질을 했다. 다른 손으로는 뒷목까지 잡았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그저 황청진에게 맞은 부위가 부어올랐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 둘이 씨발, 허, 참, 씨발, 내가, 느그들, 그럴 줄 알았어. 어?
그가 꽥꽥 고성방가를 질렀다. 주변이 허허벌판인 공터만 아니었다면 옆집에서 경찰이라도 불렀을지도 모른다. 육두문자가 쏟아졌다. 성질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갑자기 뒤로 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지르며 황청진에게 달려들었다. 남자의 폭력은 사람을 가리지 않았다. 황청진의 고개가 속절없이 돌아갔고 몸뚱어리가 크게 휘청거렸다.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아버지의 어깨에 힘껏 매달렸으나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일 기세로 황청진의 멱살을 틀어 쥐었다.
그쯤 되자 황청진도 눈이 뒤집힌 듯했다. 두 남자 사이에 주먹이 오고 갔다. 서로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승기는 더 젊고 묵과의 전투로 경험이 쌓인 황청진이 위인 듯했으나 분노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아버지의 집요함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사실 내 눈은 그들보다는 지친 기색으로 밀려나 두 남자 사이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멀거니 서 있는 엄마에게 향해 있었다. 망연자실해 보이는 얼굴. 자세히 보니 오른쪽 눈두덩이 밑이 조금 멍이 든 것처럼 새파랗다.
누구 한 명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 싸움을 멈춘 것은 어떤 아이의 등장이었다. 어른 세 명이 모두 싸움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반대편 구석에서 작은 덩어리처럼 보이는 형체가 불쑥 등장했다. 그 아이는 겁도 없이 두 남자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엄마가 말릴 틈도 없었다. 냅다 아버지의 오른쪽 다리에 달라붙은 그 애가 작은 입을 한껏 벌려 종아리를 깨물었다.
- 아악!
난데없는 아버지의 비명에 황청진도 당황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아버지의 얼굴이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졌다. 그는 자신의 다리에 매달린 작은 꼬마 괴물의 정체를 확인하자마자 거칠게 뒷목을 잡아 떼냈다.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듯했지만 성인 남성의 힘을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애가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 이 애새끼는 또 뭐야! 그새 애도 낳은 거야, 씨발년놈들아?
- 우리 삼촌 때리지 마!
남자의 손에 잡혀 허공에 덜렁 들린 아이는 기죽지도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와 황청진도 거의 동시에 그 아이의 이름을 비명처럼 질렀다.
- 도욱아!
- 황도욱!
맹랑한 작은 꼬마 황도욱을 아버지의 손에서 낚아챈 것은 엄마였다. 그는 심지어 혈육인 황청진보다 빨랐다. 눈을 홉뜨며 빠르게 도욱이를 빼앗은 엄마는 품에 가득 그 애를 꼭 끌어안았다.
- 정신 차려, 강재형. 애한테까지 주먹 휘두르는 쓰레기였어?
- 하, 그래. 나 쓰레기다. 쓰레기랑 결혼해서 후회해? 그래서 이런 시골에서 음침해 보이는 새끼랑 밀회를 가지는 건가?
- 강재형!
아버지는 끝까지 비아냥거렸다. 어린아이 앞에서 못 하는 말이 없다. 하긴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않고 하는 놈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직후, 그는 얌전해지다 못해 새사람이 된 것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술은 마시지만 손찌검을 하거나 욕설을 지껄이지 않았다. 그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평화라고 생각했던 나날들이 있다. 아버지가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실종됐다고 알려진 그 순간부터 모든 일상이 뒤집어졌지만.
그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구나. 이런…… 고약한 일이.
- 아빠……, 엄마…….
잠시 소강상태가 된 상황 속에서 또 다른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욱이보다 머리 한 개 정도는 더 큰 아이가 화면에 등장했다. 이로써 등장인물은 총 다섯 명이 되었다. 우리 엄마 이자경, 아버지 강재형, 황도욱의 삼촌 황청진과 황도욱, 그리고.
- 너, 채승이를 여기까지 데려온 거야?
- 지네 엄마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자식 새끼도 알아야 되는 거 아냐?
나, 강채승.
- 진짜 최악이다.
- 최악은 너야, 이자경.
-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해. 애들 들어.
둘은 잠시 옥신각신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나가서 얘기하자는 엄마와 꿀리는 게 있냐며 비아냥거리는 아버지. 황청진은 언제라도 다시 그 사이를 막을 듯 주먹을 움찔거리며 서 있고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어정쩡하게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의 말씨름 후 엄마는 품에 안고 있던 도욱이를 내려 놓은 후 내 손에 그 애의 작은 손을 꼭 쥐여 주며 말했다.
- 채승아, 어른들끼리 잠깐 나가서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밖은 아직 추우니까 너희는 나오지 말고 여기 꼭 얌전히 있어. 알았지.
- 엄마……. 괜찮아?
내가 울먹이면서 물었다. 엄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대답했다.
- 괜찮아. 채승이가 형이고 도욱이가 동생이니까 잘 보살펴야 돼.
- 응, 알았어.
한 번 더 나와 도욱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의 팔을 잡아끌며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황청진이 질 새라 쫓아가자 결국 그 컴컴한 실험실에는 나와 도욱이만 남게 되었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들이다. 머릿속이 깨끗하게 표백된 듯 눈앞에 선명하게 재생되는 장면들을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저 난장판에 내가 있었다고? 저렇게 충격적인 일을 아무리 어릴 때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잊을 수가 있나?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삐그덕거리는 고개를 돌려 황청진을 쳐다봤다. 그는 화면 속 황청진과 다를 바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 극심한 분노에 차서 검게 변색되고 녹아내린 피부에도 불구하고 잔뜩 일그러졌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돌려 화면을 응시했다. 아직 영상이 끝나지 않았다.
성난 고성들이 지나가고 적막한 공간 안에 덜렁 서 있는 두 아이들. 걔들은 어른들이 나가고 난 뒤에도 맞잡은 서로의 손을 놓지 않았다. 바짝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나였다.
- 너…… 병원에 있던 애 맞지.
뭐야, 나 도욱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데?
-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어. 건강해져서 퇴원한 거야?
대답 없음.
- 이름이 도욱이었구나.
대답 없음.
- 괜찮아?
반응조차 없음.
- 어른들은 괜찮을 거야. 원래 어른들은 잘 싸우잖아.
또 대답 없고.
나도 할 말 없고.
침묵이 이어지다가.
- ……춥다. 넌 안 추워?
자기도 불안할 거면서 꼴에 형이라고 동생한테 말 거는 모습이 퍽 애잔하다. 도욱이는 대답 없이 어른들이 나간 문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어서 그 애잔함이 이제 비참하기까지 했다. 아니, 도욱아. 넌 형이 저렇게 노력하는데 대답 한 번만 해 주지……. 나쁜 놈.
- 너 몸이 차다.
도욱이의 손을 주물럭거리던 내가 겉옷을 벗어 그 애 몸에 걸쳐주었다. 허, 참. 어릴 때의 나는 저렇게 배려심 깊고 착했나? 지금은 왜 이 모양이 된 거지? 인간을 미워하고 타인의 호의를 의심하며 팍팍하고 까칠한 성질머리가 됐는데. 천성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선의 마음을 어릴 때 저렇게 낭비하다가 재고 다 털린 건가.
우리는 잠시 그렇게 서 있었다. 대답 없는 황도욱은 문밖에만 시선을 두고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매정한 자식. 지금은 자기가 먼저 달라붙지 못해 안달인 것처럼 굴면서 어릴 때는 참으로 비싸게도 굴었구나. 여기서 살아 돌아간다면 저걸로 잔뜩 놀려줘야겠다.
- 심심하지. 사진이라도 찍을까?
중얼거리던 내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핸드폰을 하나 꺼냈다. 맞다, 저 때 엄마가 처음으로 나한테 핸드폰을 사 줬다. 그때쯤 자주 나가는 일이 생겨서 혹여 나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이 되니 사 주는 거니 게임은 적당히 하라고 엄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났다.
- 자, 브이!
씩씩한 내가 도욱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고 멋대로 셀카를 찍었다. 내가 예상하건대 저 구도는 황청진의 집에서 발견한 바로 그 사진이랑 똑같을 것이다. 파란 옷의 강채승과 불퉁한 표정의 황도욱. 그렇군. 바로 저 날이었군.
어린아이답지 않게 몇 분을 얌전히 서 있던 도욱이를 움직이게 한 것은 밖에서 난 큰 소리 때문이었다. 작지만 분명히 화가 난 듯한 목소리 몇 개가 뒤엉키면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무슨 말인지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으나 또 한바탕 싸움이 난 듯 욕설과 비명 같은 것이 섞여 들려왔다.
가만히 있던 도욱이가 갑자기 나에게서 벗어났다. 걔는 뭔가를 결심한 표정을 짓더니 말릴 새도 없이 한쪽 벽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나는 무슨 일인지도 모르면서 그 애의 뒤를 쫓았다. 도욱이는 아무것도 없는 깜깜한 벽 바로 앞에 다가가서 쪼그려 앉더니 작은 손으로 벽의 아랫부분을 더듬기 시작했다. 30초 정도 뭔가를 찾는 듯 슥슥 훑던 손바닥이 이내 버튼을 발견했다. 도욱이가 그 부분을 꾹 누르자 벽돌 하나 크기만 한 공간이 뒤로 쭉 밀리면서 곧 검은 문이 열렸다.
- 이게, 뭐, 야……?
내가 말을 더듬었다.
“저, 저게, 무슨?”
현재의 나도 말을 더듬었다.
문이 열린 그곳에는 끔찍한 괴물이 존재했다. 살점을 저며 내기라도 한 듯 신체 부위 곳곳에 썩은 근육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손가락 몇 개는 잘렸으며 머리통도 반쯤 파괴되어 검게 녹은 장기들이 텅 빈 두개골 안에서 출렁거렸다. 어린아이들이 보기에 정서에 좋지 않은 건 분명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가까이 다가가다 말고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도욱이는 겁도 없는지 그 괴물의 앞에 당당하게 서서 고개를 바짝 치켜들며 말하는 것이다.
- 가서 저 나쁜 아저씨 때려 줘.
참 야무진 소원이다. 어린 도욱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저 문을 연 건지 대충 알 법도 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가장 흉측하고 무서운 괴물이 사랑하는 삼촌을 괴롭히는 나쁜 악당을 혼내 줬으면 싶을 것이다. 그냥 그게 다일 것이다. 쟤는 자기가 풀어 놓은 게 무엇인지, 그게 어떤 참상을 일으킬지 아무것도 모른다. 저게 무엇인지 대충 알고 있는 현재의 나만 막을 수 없는 재난을 지켜보며 침음을 흘릴 뿐.
- “도욱아!”
그 흉측하게 솟아오른 거대한 손톱이 황도욱의 목으로 향하는 걸 지켜보면서 말이다.
작은 불씨로 시작했던 불행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초가삼간을 불태우고는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엄마와 황청진이 만난 순간부터? 그들이 함께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부터? 한겨울에 아버지가 엄마의 뒤를 밟아 실험실에 쳐들어온 건? 아니, 애초에 어른들이 애들만 두고 나가지만 않았다면. 아니, 아니다. 엄마 말씀대로 내가 도욱이의 손을 꼭 잡고 있으면 모든 게 괜찮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에서 말하듯 때늦은 후회는 의미 없다. 어쩌면 무슨 짓을 했어도 결국은 벌어지고 말 참상이었을지도 모른다. 막을 수 없는 재난과도 같은 재앙.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예견된 형벌. 인간의 시련이란 느닷없이 찾아오고 때로는 버티기 힘들 정도로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신? 이제 와서 신의 존재를 찾아 용서를 구한다 한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가?
나는 몇 년 전에 지나가 흔적만 남은 잔상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도욱이가 멀쩡하게 살아 내 옆에 붙어 있으니 결말이 짐작 가는데도 불구하고 묵의 손톱이 그 작은 아이의 목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기란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참을 수 없던 것은 화면 속, 몇 년 전의 어린 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린 강채승이 잽싸게 뛰어들며 도욱이를 안고 냅다 옆으로 굴렀다. 간발의 차로 묵의 손톱은 도욱이에게 닿지 못했다. 그러나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 아악!
얇고 가느다란 비명이 가냘프게 공간을 찢었다. 차가운 바닥을 구른 내가 손을 벌벌 떨며 엎드린 채 일어나지를 못했다. 도욱이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르고 내 품에 안겨 있다가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듯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 형아!
쟤 처음으로 나 불러준 거 아니냐? 도욱이의 새된 비명 소리를 들으면서 그 와중에도 난 그런 생각이나 했다.
- 형아, 형아. 괜찮아?
- 으, 으응……. 혀, 형은, 괘, 괜찮, 으니까 가, 가서 어, 어른들 모, 모셔와…….
괜찮긴 지랄……. 꽤 아픈지 이미 눈물이 범벅이다. 주륵주륵 흘러내린 눈물이 작은 두 뺨을 흠뻑 적셨다. 내가 저렇게 용감했나. 그런데 왜 아무 기억도 없지. 저건 잊으려고 해도 잊지 못할 것 같은데. 생전 처음 본 괴물이 날뛰고 아버지와 엄마가 싸우고 심지어 다치기까지 했는데도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내 기억력을 도통 납득할 수가 없었다. 트라우마가 심해서 다 잊어 버렸나?
- 형아아…….
말꼬리를 늘이면서 내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도욱이는 꽤 귀여웠다. 저렇게 애교 섞인 말을 할 줄도 알았단 말이야. 영락없이 미취학아동이다. 병원에서는 그렇게 새침 도도 앙큼하게 굴더니.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태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움직이지 못하는 도욱이의 등을 자꾸 밀었다. 얼른, 얼른 어른들! 묵이 천천히 돌아서며 쓰러진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행인 건 실험을 겪는 동안 양쪽 발목이 박살이 났는지 기우뚱거리면서 제대로 된 거동을 하지 못했다. 속도는 현저히 느렸다. 그러나 느린 것은 아이들 쪽도 마찬가지였다.
- 크아아!
묵이 소리를 냈다. 도욱이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어느새 성큼 가까워진 그것이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현재의 내가 비명을 질렀다. 검은 그림자가 두 아이를 잡아먹을 듯했다. 이번에는 어떤 요행도 따라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른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고 어린 강채승은 등을 다쳤다. 옷이 찢어지고 피가 뚝뚝 흐르는 게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더 이상의 행운은 없었다. 그렇게 보였다.
내가, 그러니까 화면 속의 어린 내가 마지막 힘을 짜냈다. 도욱이를 품에 안고 감싸며 몸을 웅크렸다.
푹.
아주 긴 손톱이 강채승의 날개뼈 사이의 얇은 살갗을 뚫었다. 살과 근육이 찢어지면서 흉측한 손톱이 아이의 몸을 깊숙이 관통했다. 그것은 강채승의 작은 심장을 뚫고 가슴에서 살짝 삐져나오게 할 정도의, 딱 그 정도의 깊이였다. 삐죽 솟은 손톱에서 흐르는 피가 도욱이의 가슴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도욱이의 가슴 부근이 삽시간에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잠시 정적. 묵의 으르릉거리는 신음 소리만 날 뿐이었다. 한 차례 부르르 떨었을 뿐, 그 이후로 미동조차 없는 내 몸에서 천천히 손톱이 빠졌다. 손톱이 완전히 빠진 내 몸은 힘을 잃더니 맥없이 옆으로 털썩 쓰러졌다. 눈을 감지 못한 채 입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나. 죽어 버린 내가 모니터에 고스란히 담겼다.
죽었어? 내가?
나는 전개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의문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저기서 내가 죽었다면 현재 살아있는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복제 인간인가? 나는 복제 되었는가?
- 채승아!
다시 한번 비명. 여성의 목소리. 뒤늦게 실험실 안으로 들어온 엄마였다. 엄마는 실험실 한가운데 서 있는 묵과 이미 죽은 나와 멀거니 주저앉아 있는 도욱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엄마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금방이라도 실신해 버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 도욱아!
그 뒤를 따라 황청진이 들어왔다. 그가 조카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그러나 여전히 기적은 없었다. 혼란에 빠진 둘보다 묵의 공격이 더 빨랐다. 아이 한 명을 죽인 묵이 곧장 그다음 타겟을 향해 손을 뻗었다. 피와 살점이 묻은 손톱이 도욱이의 가슴을 정확하게 찔렀다.
그러자 누구의 것인지 모를 비명들이 섞이며 실험실을 크게 흔들었다.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기적이 그제야 기상했다. 묵의 손톱이 도욱이의 가슴을 가르고 심장에 닿는 순간 불꽃이 크게 피어올랐다. 발화점은 아마도 황도욱의 심장. 어린 환이 자신의 심장을 노리는 부정에게 격렬히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 키야악!
묵의 괴로운 비명이 퍼졌다. 불꽃이 묵을 머리부터 산 채로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었다. 처음에 일어나자마자 본 바로 그 장면이었다. 그렇구나, 저게 그 장면이구나. 환이 묵을 삼키는 장면이 바로 저거구나. 나는 홀린 듯 그 난폭하고 파괴적이면서도 아름답게 넘실거리는 불꽃을 홀린 듯 쳐다보았다.
도욱이가 묵을 삼키는 동안 엄마와 황청진은 죽은 내게 다가왔다. 엄마가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을 내 육체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그가 펑펑 울며 연신 내 뺨을 쓰다듬었다. 피 묻은 입술에 입맞춤을 하며 마치 자는 아이를 깨우듯 등을 토닥거렸다.
- 채승아, 일어나 봐. 응? 엄마 왔어. 채승아. 우리 아가, 우리 아기 어떡하지. 우리 아기 지금 자면 안 되는데. 벌써 자면 안 되는데. 엄마 두고 이렇게 잠들면 안 되는데.
목소리는 거의 눈물에 삼켜져 제대로 발성되지 못했다. 끊임없이 두 손으로 내 얼굴의 눈물과 피를 닦아주며 당신의 손을 오염시키는 엄마의 모습은 처절하고 애절했다. 비록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인 데다가 먼 시간이 흘러 고작 모니터와 스피커로 지나간 장면을 관람하고 있을 뿐인데도 가슴이 아파 콧잔등을 씰룩거렸다. 엄마가 나를 저렇게 사랑했구나. 나도 내가 죽으면 울어주는 사람이 있긴 했구나.
- 청진, 청진 씨. 우리 애 어떡하지. 응? 우리 애 어떡하지. 이대로 눈감게 둘 수 없는데.
- 자경 씨…….
- 우리 애 좀 살려 주세요……. 응? 청진 씨, 당신 똑똑하잖아. 응? 우리 애 좀, 우, 우리 애 좀. 응? 제발, 제발.
엄마는 마치 이성을 잃은 듯 두서없이 중얼거리며 황청진의 팔을 붙잡고 애원했다. 혼란스러웠다. 비명과 절규와 비탄에 젖은 중얼거림과 불꽃이 타오르는 소리가 앞다투어 스피커를 통해 쏟아졌다. 문득 사지를 묶은 쇠사슬이 거슬렸다. 살갗을 차갑게 파고드는 철의 감촉이 섬뜩하다.
불꽃이 잦아들면서 엄마의 울음소리는 커졌다. 자식의 주검을 끌어안은 여자는 울다 못해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황청진은 엄마의 어깨를 끌어안으면서 멍한 눈으로 도욱이를 응시하고 있다. 영원할 것처럼 지속되는 순간이었다.
어느 순간 묵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실험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크게 타올랐던 불꽃도 장미꽃 크기만큼 줄어들었다. 잠든 것처럼 눈을 감은 도욱이의 갈라진 가슴에서 남은 불꽃이 일렁거렸다. 그 불꽃은 잔열처럼 남아 도욱이의 전신으로 퍼졌다. 더 놀라운 것은 그때부터였다. 불꽃이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찢어진 옷깃 속에서 붉게 벌어졌던 속살 위에서 뭉글거리는 것이다. 그러자 갈라진 가슴이 봉합되는 것처럼 상처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고 아주 천천히.
경이로운 순간이다. 나는 그제야 황청진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어렴풋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흐느끼는 엄마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가만히 있던 화면 속의 황청진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뭔가가 생각난 것처럼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자경 씨. 우리가 생각했던 가상의 이론 생각납니까?
- 채승아, 채승아…….
- 자가 재생력을 극대화시키는 환의 불꽃이 타인에게도 영향을 끼치는지?
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황청진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우느라 빨갛게 변한 얼굴을 보고 있으니까 속이 메이는 것 같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어렴풋하게 형체만 보였던 기억의 안개가 아주 샅샅이 걷혔다.
‘엄마?’
무서운 욕설과 고성이 들렸다.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엄마는 만신창이였다. 나는 작은 방에서 문을 조금 열었다가 그 광경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맞다, 옷장이 아니라 작은 방이었다. 새파랗게 부은 눈과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단호하고 엄한 목소리로, 그러나 희미하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채승아, 문 닫아. 이런 거, 보지 마.’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깨닫기 전까지 내가 새까맣게 잊어 버렸던 기억. 집에 강도가 들어 엄마를 죽였다는 거짓된 기억으로 송두리째 뒤집어씌운. 나는 비로소 껍질을 온전히 벗겨내고 엄마의 마지막을 기억해냈다.
황청진은 엄마의 품에 안긴 나를 조심스럽게 안아들었다. 엄마는 그를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하고 텅 빈 눈으로 멀거니 쳐다보기만 했다. 나를 안은 그는 빠르게 움직여 도욱이 옆에 나를 눕혔다. 머리통 하나 정도의 신장 차이가 나는 두 아이가 나란히 누웠다. 한 명은 죽었고 한 명은 살아나는 중이다. 불꽃은 여전히 조금씩 움직이면서 도욱이의 갈라진 가슴을 붙여 놓고 새살을 돋우고 있었다.
황청진이 책상에서 메스 하나를 꺼내 왔다. 얇고 날카로운 칼이었다. 그는 메스를 들고 도욱이 앞에 앉아서 잠시 지켜보다가 곧 망설임 없이 손을 움직였다. 메스가 겨우 붙기 시작하는 도욱이의 가슴 속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새된 비명을 질렀다. 삼촌이라는 작자가 지금 조카 가슴에 뭘 대는 거야? 가만히 놔두라고! 불안해서 몸이 꿈틀거렸다. 그러자 황청진, 그러니까 현재의 황청진이 입을 열었다.
“잘 봐라. 네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줄곧 스피커를 통해 듣던 담백한 목소리와 정반대의 목소리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소름 끼쳤다.
다시 화면 속 황청진. 그 남자는 도욱이의 가슴에 메스를 넣고 조금 움직이더니 곧 아주 작은 살덩어리를 잘라냈다. 빨갛고 날것이다. 불꽃도 함께 옮겨 붙은 그것은 마치 심장 조각처럼 콩닥콩닥 박동하고 있었다.
지금 도욱이 심장을 잘라낸 거야?
충격은 갈수록 거듭됐다. 황청진은 불꽃이 담긴 그 심장 조각을 벌어진 내 가슴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그게 끝이었다. 황청진이 메스를 손에서 떨구고 말없이 잠자코 눈을 감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몇 초가 지났을까. 채 30초도 되지 않았을 아주 짧은 시간.
내 가슴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도욱이와 꼭 닮아 맹렬하게 산화하는 불꽃이.
인간들은 간혹 부활을 꿈꾼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내가 아는 모든 것들로부터 영원히 이별해야만 한다는 죽음이 두려워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고 이치를 역행하는 소원을 염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오랜 숙원이었다. 수많은 야사와 역사를 보면 그들이 불멸과 부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돈과 권력과 피를 쏟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결말은 매번 처참했다. 갖은 수를 써봤자 결국 시체 훼손에 불과한 짓이다.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낸다니. 참 기가 막힌 자신감이다. 인간의 자아도취라는 표현 말고 설명할 수 있는 수식이 없다. 모든 부활에 대한 일화는 미신 혹은 설화로 치부되고는 했다. 대표적으로 예수의 3일 부활이 그렇다.
신도 부활하는 데 무려 3일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한낱 자연에 종속된 인간이 뭐라고 무슨 수로 죽은 사람을 살려낸다는 말인가? 그게 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통 사이비나 악마 숭배자로 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그 정도로 부활이란 건 그냥 현실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말이다.
“부정을 정화하는 묵의 심장에서 발산하는 불꽃은 강한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지.”
“…….”
“죽은 사람마저 다시 살릴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는 지금 그게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몽환에 빠진 황청진의 목소리가 고막 겉에서 맴돌았다. 나는 멀거니 반쯤 빠진 정신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도욱이의 불꽃을 이어받은 내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던 그 육체 위로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도욱이의 심장 조각을 잘라 네 가슴에 넣었다. 구멍 난 항아리의 밑 둑을 막듯 관통된 심장의 상처를 막았지.”
정확히 그 작은 가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보이지는 않았다. 화면은 전체적인 장면을 비추고 있을 뿐 클로즈업하는 기능 같은 건 없었으니까. 황청진도 엄마도 나도 그리고 도욱이도 모두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작은 불꽃으로부터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빛이 공간을 꽉 메우고 있었다. 신비할 정도로 황홀한 광경이다. 불꽃이 내 가슴을 봉합하고 죽은 육체를 되살리고 있었다.
“너희 엄마랑 우스갯소리로 하던 말이었다. 묵에게 죽어 각성할 때 환의 육체는 엄청난 재생력으로 재구성되는데 그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면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 않겠냐고.”
기괴하고 음침하게 갈라지는 목소리. 지옥에 있는 듯 축축하고 서늘한 어조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듣기 좋은 목소리가 아닌데 그의 독백은 알 듯 말 듯 한 그리움이 담겨 있어 해괴했다. 다시 그의 시간이 궁금해졌다. 황청진은 왜 저런 꼴이 되었는가. 혹은 되어야만 했는가.
그들의 가설은 틀리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가던 내 육체의 피부 위에 온기가 돌며 혈색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망연자실한 채 앉아 있던 엄마의 눈이 번쩍 뜨였다. 황청진의 눈 밑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나란히 누운 도욱이와 내가 같은 불꽃을 공유하며 전신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냈다. 곧 두 아이는 언제 다쳤던 것마냥 상처 하나 없는 말끔한 모습이 되었다. 옷에 묻은 피가 아니었다면 그저 낮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들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도욱이가 먼저 눈을 떴다. 그 뒤를 이어 곧바로 내가 눈을 떴다.
- 채승아!
- 엄마?
두 모자의 감격적인 상봉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뚝. 돌연 화면이 까맣게 점멸했다.
단숨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들리는 거라곤 나의 숨소리와 나지막하게 웅웅거리며 돌아가는 기계의 소음뿐이었다.
“이제 알겠지.”
황청진이 말했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다. 눈마저 썩어 버린 건지 검은 물이 출렁거리는 그 두 눈깔이 섬뜩하고도 광기에 차 있다. 종일 화면 속에 모습을 보이던 그 황청진과는 생판 다른 사람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휠체어의 두 바퀴가 굴렀다. 그가 가까이 다가오더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철창문을 열었다. 낡고 녹슨 경첩이 끼이익 불쾌한 소리를 냈다. 나는 여전히 사지가 묶인 채고 구속된 몸뚱어리로 사람이 아닌 것의 형태가 다가올 때 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을 익히지 못했다.
공포가 돋아났다. 그가 내게 저 화면을 보여 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지금까지 수많은 실험체를 공수했지만 실패했다. 이미 각성한 환은 어린아이처럼 폭발적인 생명력을 가지지 못했어.”
“…….”
“일부러 사람을 납치해 묵의 먹이로 주기도 했지. 그러나 그들은 각성하지 못했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저 자식이 지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형용할 수 없는 불쾌한 감정으로 번들거리는 눈깔이 흉흉하다. 황청진이 내뱉는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사람들을 죽였다는 거야?”
“대의를 위한 희생이다.”
비명과도 같은 내 고함에 황청진이 눈도 깜박하지 않고 말했다. 그는 어느새 내 머리 바로 위에 있었다.
“그날과 똑같은 상황을 만들고 싶었다. 어린아이가 가장 좋았지만 도욱이가 특이 케이스였던 건지 미성년자들은 각성 도중에 힘의 부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죽어나갔어. 성인들은 각성은커녕 그대로 묵이 돼 버리기 일쑤였고…….”
뭐가 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조차 할 수 없군. 황청진이 음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쳤군. 저 남자는 정상이 아니다. 한때는 조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삼촌이었을지 몰라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린아이마저 희생하는 그가 제정신일 리가 없다.
그가 내게 손을 뻗었다. 살점이 녹아 뚝뚝 떨어지는 새파랗고 검은 손.
문득
나는 그에게서
썩은 우유 냄새를 맡았다.
“네가 내 마지막 희망이다.”
“…….”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이면서 도욱이의 심장 또한 가지고 있지.”
“…….”
황청진의 담백하고 낮은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게다가 자경 씨의 아들이다. 엄마를 위해,”
“…….”
남은 것은 칠판을 긁듯 성대를 긁는 소름 끼치는 목소리 그거 하나.
“한 번쯤은 죽어 줄 수 있지, 아들?”
이 씨발 새끼가.
이제 무서운 게 문제가 아니다. 난 황당한 얼굴로 그 새끼를 꼴아봤다. 되겠냐? 되겠냐고!
“엄마는 이미 죽었어!”
내가 발악처럼 소리를 질렀다. 황청진은 나를 묶은 밧줄을 쥐고 그대로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도르륵도르륵 굴러가는 휠체어의 바퀴를 따라 내 몸뚱어리도 천천히 그리고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내년이면 벌써 10년째 기일이다!”
“살아날 수 있다.”
“그때는 기적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시체는 이미 썩어 문드러져 뼈밖에 안 남았을 텐데 그게 정말 된다고 생각해?”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나?”
황청진이 음산하게 웃었다. 뭘 믿고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까? 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이유조차도.
나는 끌려가는 내내 발버둥을 쳤지만 꽉 묶인 밧줄은 절대 풀리지 않았다. 씨발, 씨발, 씨발. 욕설을 퍼붓고 또 퍼부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내 의지와 다르게 점점 방 중앙의 하얀 기계와 가까워졌다. 그 옆에는 철제 침대가 있었는데 군데군데 묻어 있는 붉은 혈흔과 말라붙은 살점들이 등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도욱아, 대체 언제 오는 거냐. 날 잊은 건 아니겠지?
“저기요, 잠깐만요. 아저씨. 이러면 우리 엄마가 싫어해요. 절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아까 그 화면 보시면 알잖아요. 저 죽는다고 그렇게 슬퍼하셨는데 당신 살리겠다고 절 이렇게 희생하면.”
마음이 급해진 나는 공손해졌다.
“걱정 마라. 너도 안 죽는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세요. 아까는 한 번쯤 죽어도 어쩌고 하셨잖아요.”
“각성하겠지, 너도.”
“네?”
“묵한테 죽는 거니까. 자경 씨의 아들이고 도욱이의 심장마저 나눠 가졌는데 각성하지 못할 리가 있나?”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세요. 임상실험은 다 실패하셨잖아요.”
“자, 올라가자.”
아니, 이 새끼가 내 질문에 대답은 안 해 주고 말을 돌리네.
“아니, 잠깐, 놔 봐요. 아니, 아저씨. 악! 잠시만!”
황청진은 나의 발악은 들은 척 만 척하며 내 몸뚱어리를 끌어다 침대 위에 올려놨다. 차갑고 싸늘한 온기가 등부터 시작해서 전신으로 퍼졌다. 춥다. 온몸이 한 차례 부르르 떨렸다.
그는 심지어 나의 몸을 침대와 연결된 쇠사슬로 꽁꽁 묶기 시작했다. 밧줄로 묶은 걸로도 모자라 쇠사슬까지. 무겁고 기분 나쁜 감촉이 내 몸을 얽자 나는 정말로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도욱아, 아직도 멀었냐? 형 죽는다…….
“이건 냉동 기계다.”
황청진의 말과 함께 옆에 있던 하얀 기계의 뚜껑이 서서히 위로 올라갔다. 나는 그제야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던 건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투명한 유리 돔 안에 누워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사람. 얼어서 새파랗게 질린 피부와 이마의 한쪽이 함몰되어 있는 걸 보지 못했다면 인형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처럼 완벽하게 보존된 형태. 그럴 것 같다고 예상은 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본 충격은 가히 더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엄마. 엄마다.
“자경 씨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돈을 주고 시체를 가져왔다.”
역시. 엄마를 빼돌린 건 이 남자였다. 그는 어느새 손에 주사기를 들고 엄마를 감싼 유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약한 조명 아래 반사되는 얼굴 피부 밑으로 두개골의 뼈가 노출됐다. 어떻게 저 꼴로 살아있는 걸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그저 살리고 싶었다. 이 여자를 죽인 강도를 잡아 찢어 죽이고 싶다가도 살리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서 오랜 시간 동안 실험에 몰두했지.”
황청진이 기계의 버튼을 눌렀다. 유리가 천천히 걷히면서 엄마의 시신이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얼굴 근육이 굳어 무슨 표정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남자는 엄마의 뺨을 쓰다듬었다. 검은 손은 새파랄 정도로 창백한 얼굴과 기괴하게 대조되었다.
“너는 알고 있나? 그를 죽인 게 강재형이라는 것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알고 있다. 불과 한 시간 전에 살아난 기억이다. 잊고 살던 엄마의 얼굴을 마주하면서 묻어 놨던 시간들이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잊고 살 수 있었을까. 아무것도 모른 척 외면하고 지냈던 그 시간들이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표정 보니까 알고 있는 눈치네.”
“…….”
“이제 기꺼이 심장 정도는 내 줄 수 있겠지?”
아니, 그거랑 이건 다르지, 인마……!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해 각성 상태의 네 피를 뽑아 자경 씨에게 주입할 거다. 이미 죽은 지 시간도 많이 지났고 대상이 성인이니 생명력도 그만큼 많이 필요하겠지……. 그렇다면 잘라낼 심장의 크기는…….”
웅얼거리는 황청진에게 나는 이제 하나의 실험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큰일났다. 이대로 진짜 심장이 반 쪼개져 죽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왜 아무도 안 오는 거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메스를 들고 다가오는 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을 꿈틀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씨발, 씨발! 이 개새끼야!”
나는 두서없이 욕을 뱉어내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황청진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내가 폭격하는 욕설에도 불구하고 무덤덤한 얼굴로 내 티셔츠를 반으로 찢었다. 황청진은 멈출 기세가 아니었다. 아무리 발악해도 그건 변하지 않을 사실처럼 보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눈알만 굴리면서 내 심장과 피가 엄마한테 넘어가는 걸 보고 있어야만 했다. ……엄마, 불효자를 용서하세요.
다가오는 메스를 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람이 죽을 때면 주마등이 스쳐간다는데 지금 주마등은커녕 한 명밖에 생각이 안 난다. 나 아직 삶 포기 안 했다. 도욱아, 알고 있냐. 네가 진짜 내 인생의 남자 주인공이면 나타날 때는 지금이다. 더 늦으면 안 돼. 더 늦으면 나 죽어……. 이렇게 죽을 줄 알았으면 진작 고백부터 하고 오는 건데. 진짜 억울해 죽겠다.
그때다. 실험실 전체를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위잉위잉 울리는 그 사이렌은 깜박거리는 붉은 조명을 동반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는 눈을 떴다. 황청진도 쥐고 있던 메스를 거두고 고개를 쳐올렸다. 그가 다른 쪽 손으로 리모컨 버튼을 하나 눌렀다. 과거를 재생해 주고 작동을 멈췄던 모니터가 다시 켜지면서
“그 애가 왔나 보군.”
현재를 보여 주기 시작했다.
캄캄한 어둠이 고즈넉하게 가라앉았다. 빛이라고는 하늘을 쏘다니는 보름달이 빌려주는 달빛이 전부다. 다섯 개의 모니터는 마치 하나처럼 이어져서 어슴푸레하게 드러나는 형체를 보여 주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모니터를 응시했다. 황청진이 말한 그 애가 누구인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도욱이, 도욱이가 보고 싶었다.
집 앞 마당이다. 관리하지 않은 잔디가 삐죽삐죽하게 솟아 있고 뒤집어진 흙더미들이 빨갛게 널브러졌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공간. 마당을 감싼 잿빛 담벼락과 오른쪽 구석에 놓여 있는 특이한 모양의 돌. 내 짐작이 맞다. 이곳은 옛날에 우리 가족이 살던 바로 그 집이었다. 그러나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화면을 꽉 채우는 어떤 인영들이 곧바로 내 시야를 점거했다. 그들은 무려 열 명이 넘는 듯했다. 취한 듯 몸을 흔들거리면서 사방에서 등장한 그 검은 인영들이 중앙에 서 있는 한 명의 인간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황도욱이 손에 망치를 쥔 채 고요하게 서 있다.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망치 머리의 끝이 섬뜩하다. 선연한 빛 아래 드러난 걔 얼굴 위에는 어떤 표정도 없었다. 눈만 굴리면서 묵의 수를 세는 듯한 행위로 고개를 몇 번 까딱거렸을 뿐이다.
“내 조카지만 참 잘 컸구나.”
황청진이 태평하게 중얼거렸다. 그 어조는 당연한 수순으로 내 신경을 긁었다. 내 조카? 참 잘 커? 애가 지금 저기 서 있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조카인데 저대로 둘 거예요?”
참지 못한 내가 쏘아붙였다. 황청진은 돌아보지 않았다. 도욱이가 막 망치 든 팔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착한 아이야.”
“…….”
“그때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 새끼가 지금 진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도 도욱이 삼촌이라고 일말의 예의를 갖추려고 했던 나의 다짐은 온 데 간 데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리 도욱이가 자기 일에 방해꾼 노릇을 한다고 해도 그렇지, 죽는 게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심보는 도대체 뭐라는 말인가? 삼촌 맞아? 삼촌 맞냐고.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심보가 단단히 꼬였다. 나는 남자를 샐쭉하게 꼴아보며 한 소리 덧붙이려다가 시작되는 화면 속 전투에 입을 다물었다.
도욱이가 팔을 커다랗게 휘두르며 갈긴 망치에 묵 한 마리가 관자놀이를 정통으로 맞았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터지면서 도욱이의 뺨을 흠뻑 적셨다. 나는 놀랐는데 걔는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눈꺼풀을 덮은 핏물이 거슬릴 법도 한데 걔는 소매로 혈흔을 닦는 대신 뒤이어 덤벼드는 묵을 향해 다시 한번 망치를 휘둘렀다.
두개골 터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묵이 음산한 비명을 질렀다. 그것들은 영화에서 보이는 적들이 주로 그러듯 순서를 기다렸다가 차례대로 덤비는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동시다발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지가 없는 그것들은 같은 편의 가슴에 손톱을 찔러 넣었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돌려 도욱이를 찾아 다시 들이박았다. 막무가내의 무지막지한 공격들이었다.
황도욱의 망치가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이 새끼의 어깨를 갈겼다가 저 새끼의 뒤통수를 후렸다. 뭉툭한 쇠붙이가 달빛에 한 번 번쩍일 때마다 뼛조각과 유혈이 난무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분쇄됐다. 도욱이는 신음 한 번 없이 착실하게 한 마리씩 처부수고 있었으나 그 속도는 이상할 정도로 더뎠다. 가끔 봤던 전투들 속에서 봤던 날렵하고 날카로운 망치질이 아니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도욱이의 몸에도 상처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다리가 불편한 모양이구나.”
한참을 보고 있던 황청진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그제야 도욱이의 움직임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걔는 최대한 한 자리에 서서 몸을 고정한 채 왼쪽 다리를 축으로 상체만 움직이고 있었다. 전투가 길어지는 것은 그런 이유인 듯했다. 도욱이의 오른쪽 다리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아마도 아까 그 깡패 새끼들이 진짜로 부러트려 놓은 탓인 모양이었다.
“진짜 이대로 둘 거냐고!”
보다 못한 내가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욱이가 잠깐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는 사이 묵 한 마리의 손톱이 그 애의 뺨을 찢어 놨을 때였다. 나는 차마 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온몸을 들썩이며 쇠사슬을 풀기 위해 애썼으나 턱도 없었다. 나는 그저 눈물을 삼키며 바락바락 소리만 질러댈 뿐이었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던 황청진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그리고 그 남자의 두 눈이 오롯이 나를 향해 박혔을 때,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눈이 까맣게 물들어 있었다. 동공은 새빨갛다. 피부가 눅눅하게 젖어 들고 어깨의 살점이 뚝뚝 떨어졌다. 메스를 쥔 손의 손톱은 어느새 쑥 자라나 인간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썩은 우유 냄새가 짙어졌다. 나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지독한 냄새에서 도피하기 위해 숨을 잠깐 멈췄다.
“그러게, 왜 내 일을 방해하는 거지?”
“황청진!”
“내 목표는 하나야…….”
황청진이 손에서 메스를 떨어트렸다. 차갑고 짧은 날붙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굴렀다. 그가 손톱을 길게 뻗으며 내게 다가왔다. 광기로 번들거리는 그 눈깔, 온몸을 죄어 오는 지독한 냄새, 썩어가는 외관. 나는 그가 더 이상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자경 씨를 살리는 것.”
묵. 살아있는 묵. 아니,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한 채 애매한 경계선에 서 있는 존재. 그의 몸을 잠식한 부정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만나 본 모든 묵 중에서도 단연코 압도적인 새까만 기운이 나를 짓눌렀다.
죽음이 목전에 도래했다. 눈앞에서 까딱거리는 저 검은 손톱이 곧 내 심장을 찌를 것이다. 나는 내가 환으로 각성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각성할 여지가 있었다면 진작 어릴 때 도욱이의 심장을 넘겨받기 전에 스스로 각성했을 것이다. 내가 묵의 냄새를 맡는 것도 도욱이의 심장과 피로 몸이 재구성되었기 때문일 뿐이지, 환으로 각성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불확실한 이론에 기대어서 죽고 싶지 않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당신께서는 이미 죽었다.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은 망자에게도 무례다. 이것은 시체 훼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황청진은 이미 잘못된 망상에 사로잡혔다. 그는 지금 앞뒤를 볼 줄 모른다.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 바라보고 달리는 경주마나 다름이 없다. 마치 묵이 심장만 보고 환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몸에 남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처럼. 그는 미쳤다. 황청진이 아니다. 마치 박강수의 마지막이 박강수가 아니었던 것처럼.
“부정은 뭐지?”
불현듯 어떤 결론에 이르렀다. 등골이 오싹하게 소름이 돋는 결론. 죽음 앞에서 도리어 침착해진 내가 물었다.
“부정?”
“너는 누구지?”
황청진의 몸은 아직 남아 있다. 기억도 살아있다. 그의 육체에 박힌 습관과 버릇도 여전히 황청진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황청진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속에 박힌 것은 누구인가? 무엇이지?
내 가슴을 찌르려던 손톱이 움직임을 멈췄다. 황청진이 한참을 무서운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입을 꾹 다물고 아무 표정도 없이 한 곳만 쳐다보는 황청진의 얼굴은 온몸을 얼어붙게 했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았다. 눈 똑바로 뜨고 그의 눈을 맞받아쳤다. 저 썩어 버린 눈 뒤에 우리 엄마를 사랑하고 사람을 죽이지 못해 죽어가는 환을 위한 연구를 지속하던 남자의 진실된 영혼이 여전히 남아 있기를 바라면서.
“나?”
느리게 튀어나온 음성은 한층 더 낮아졌다. 더욱 쉬었고 더욱 갈라졌다. 이제 입을 열 때마다 지독한 냄새가 쏟아졌다. 황청진의 입꼬리가 징그러울 정도로 길게 가로로 찢어졌다. 그 새끼는 눈을 희번뜩 뜨며 미친놈처럼 웃었다.
“나는 모든 ‘부정’이다.”
자신을 ‘부정’이라고 칭했다.
“인간들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가 겨우 수면 위로 올라와서 눈을 떴지.”
“황청진은 어디 있어?”
“내 안에 있지. 내가 먹었으니까.”
그것이 낄낄거리면서 웃었다. 씨발, 부정한테 이지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지금까지 본 묵들도 그렇고 그것들은 마치 좀비처럼 오로지 인간의 심장을 탐하는 본능밖에 남지 않은 괴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황청진의 육신을 먹은 저것은 뭐라는 말인가?
“거짓말하지 마. 부정은 너처럼 고차원적인 의식 같은 거 가질 수 없어.”
내가 반박하자 황청진, 아니, 그것의 눈이 가느다랗게 길어졌다. 나를 비웃고 있는 게 확연한 표정으로.
“네가 우리에 대해 뭘 알지?”
“…….”
“우리도 영과 혼이다. 비록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깜깜한 동굴 속에 파묻혀 따뜻한 온기를 품은 심장만을 갈망했지만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는, 나는 달라졌다.”
대꾸하지 않았다. 맞장구 쳐 줄 기력도 없다. 다행히 그것은 자신을 알아봐준 나라는 존재에 대해 신이 났는지 알아서 떠들어댔다.
“우리가 하나로 뭉쳤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과정 속에서…… 우리끼리 육체를 타고 넘나들며 서로를 먹고 먹으며 덩치를 불렸다. 찌꺼기였던 우리가 영혼이라는 거대한 몸집이 될 때까지 그렇게 계속. 채울 수 없는 허기를 채우고 싶어 먹을 수 있는 것들을 먹고 또 먹고.”
나는 그것의 말을 해석하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서로를 죽고 죽이는 과정. 하나로 뭉쳤다고? 문득 황청진의 컨테이너들이 떠올랐다. 서로를 죽인 채 널브러져 있던 시체들. 인간 혹은 묵이었을지도 모르는 것들. 그들은 살아생전 황청진에게 죽어 묵이 되었다가 스스로를 죽여 강한 부정이 된 것이다. 언젠가 협회장이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부정 또한 근본은 영혼이기 때문에 찌꺼기의 크기가 크다면 영혼을 잡아먹고 살아있는 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황청진이다. 드디어 깨닫는다. 저것은 그 지옥 속에서 배를 채워 급기야 ‘모든 부정’이 된 것이라고.
“마지막이 이 인간의 몸이었지. 그러나 아무리 우리라고 하더라도 환의 영혼을 먹는 것은 어렵더군. 다행히 그의 하반신이 거의 죽은 상태라 우리는 거기서부터 시작했다. 아래서부터 시작해서 아주 천천히 기어올라가 결국 그의 마음을 먹기까지……. 심지어 그의 영혼에는 이미 다수의 살인으로 새까맣게 변해 있어서 한층 먹기 수월했지!”
거기까지 말한 그것은 뭐가 그렇게 기쁜 건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깍깍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그것은 괴이하고 기괴한 장면이었다. 나는 침묵했다. 머릿속으로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으면서 눈으로는 모니터를 계속 힐끔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절대로 죽을 수 없게 됐다. 실험의 주최자가 황청진도 아니고 황청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이라면 내가 각성하여 살아날 수 있다는 희망은 그저 0%다. 저건 내 가슴을 가르자마자 심장을 파먹어 버릴 것이다. 그럴 놈이다. 눈깔을 보고 입가를 봐라. 침을 줄줄 흘리고 있지 않은가?
“자, 이야기 다 끝났다.”
한참을 웃던 그 괴물이 돌연 얼굴을 굳히고 다시 손을 들어 올렸다.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도욱이가 남은 한 마리의 두개골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을 때였다. 씨발, 진짜 한 끗만 더 버티면 되는데. 씨발, 씨발.
“잘 먹겠습니다.”
황청진의 얼굴을 한 그것이 새까만 아가리를 크게 벌리면서 손톱으로 내 가슴을 쿡 찔렀다. 나는 몸을 움찔거리며 억세게 비명을 질렀다.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사지는 밧줄과 쇠사슬에 꽁꽁 묶여서 움직이지도 않는데도 최선을 다해 발악했다.
그리고 마치 내 몸이 큰 진동을 일으킨 것마냥 거대한 굉음이 들이닥쳤다.
콰콰쾅!
나도 놀라서 눈을 번쩍 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뭔가가 터지는 소리였다. 폭탄인가? 갑자기 어디서? 그것의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그 자식도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잠시 소강상태였다. 그러나 다음 파트로 전환되기까지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먼저 보인 건 그림자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벽면을 꽉 채우면서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를 냈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흔들거리는 걸음걸이의 그 익숙한 실루엣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
곧
그 애의 모습이 형광등 아래에 온전하게 드러났다.
가끔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있다. 지금 나한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거짓말이고 눈 감았다가 뜨면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이 있을 거라고. 사이좋은 부모님이 있고 내 교우관계는 원만하며 가끔가다 생기는 고민이라고는 좋아하는 애 앞에서 뚝딱거리느라 말 한마디 못 건다는 것 정도인 그런 일상이 말이다. 그러나 잠들 때마다 했던 기도와 소원은 다음 날 눈을 뜨면서 개같이 박살 나고는 했다. 날이 갈수록 신을 불신했고 타인에게서 나를 배제했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 혼자 좆대로 잘 살아 보겠다고 대한민국의 유일한 신분 상승 제도인 수능에 모든 시간을 꼴아박았다. 내 마음대로 되는 거라곤 성적밖에 없었다. 공부의 결과는 오로지 내 의지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시니컬해질 무렵, 황도욱을 만났다. 괴물이 된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고 할 때였다. 걔는 무서운 표정으로 망치를 휘두르더니 나를 구하고서는 얼빠진 얼굴이 됐다. 온몸에 피를 흠뻑 적신, 심지어 내 아버지를 죽인 남자애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애를 따라 괴이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다. 기껏해야 반년 조금 더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채승.”
나는.
“나 왔는데.”
너를.
“왜 울어.”
기다렸다.
***
걔는 만신창이였다. 왼쪽 뺨을 가로로 길게 찢은 상처는 꽤 상처가 깊어 흉이 질 것 같았다. 뚝뚝 흘러내리는 피는 턱을 따라 흘러내리며 옷을 적셨다. 걸치고 있는 옷도 하도 찢겨 거의 넝마였다. 그 안에 다수의 공격을 허용해 피범벅인 속살이 고스란히 내비쳤다.
“기어이 여기까지 내려왔구나.”
황청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그 부정이 얼굴을 굳히고 도욱이에게로 돌아섰다. 그것이 이를 드러내며 폭발적인 적개심을 불태웠다. 나를 보던 것과 전혀 다른 얼굴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분노의 대상이 걱정될 만큼 격렬한 감정. 그는 마치 도욱이를 증오하는 듯 보였다.
“삼촌, 왜 그렇게 됐어?”
도욱이가 피곤한 듯 축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나는 그 애한테 말해 주고 싶었다. 저건 황청진이 아니라고. 조카를 사랑해서 손에 피까지 묻힐 생각을 했던 그 삼촌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상처받지 말라고. 그 말이 목 끝까지 치솟았으나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그걸 알려준다고 해서 도욱이에게 뭔가가 다르게 와 닿을까?
“삼촌한테서 썩은 우유 냄새가 나.”
읊조리듯 낮은 목소리. 걔는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슨 감정을 품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두 눈이 황청진의 얼굴 위로 고스란히 직격했다. 그가 자신에게 왜 이토록 날을 세우고 있는 건지, 왜 자신을 죽이려고 한 건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이미 자신이 사랑하던 삼촌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처럼.
“삼촌.”
“……크으으.”
“날 이기는 부정은 없어.”
황도욱이 울었는지 울지 않았는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사막처럼 메말라 퍼석거리는 얼굴이었다가 물기 젖어 번들거리는 눈을 잠깐 본 것 같았다가. 이 축축한 공기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이 나의 판단을 잔뜩 흩트려 놓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듯 몸을 부들부들 떨던 황청진이 휠체어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박살 난 하체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솟구친 상체는 거세게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날카로운 손톱은 맹렬하게 허공을 가르며 한 곳을 향해 쏘아졌다. 황도욱은 다시 망치를 꽉 쥐었다. 피와 살점이 달라붙어 흉측해진 망치의 머리가 크게 허공을 갈랐다.
두 사람이 맞붙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어떤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황청진의 날카로운 손톱이 황도욱의 옆구리를 가르고 황도욱의 망치가 황청진의 어깨를 강하게 내리쳤다. 절규 섞인 비명과 도욱이의 거친 숨소리가 뒤엉키며 실험실 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들의 처절하고 잔혹한 싸움을 지켜보며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원망했다. 개새끼, 진짜 꽁꽁도 묶어 놨다.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고는 목과 손가락, 발가락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없나? 정녕? 분하다. 분해 죽겠다. 나보다 어린 도욱이는 날 구하겠다고 저렇게 목숨까지 걸고 제 삼촌의 탈을 쓴 괴물과 싸우는데 나는 몸 성한 채 여기 이렇게 누워 있다. 차라리 8년 전에 도욱이를 끌어안고 대신 심장이 뚫린 어린 내가 더 용감할 지경이다. 물론 내가 여기 이렇게 누워 있고 싶어서 누워 있는 게 아니긴 한데. 이, 씨발. 하여튼 지금은 욕밖에 안 나온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그냥 저 전투를 직관하며 우리 편 이겨라 응원하는 수밖에. 어렸을 때는 또 학교 축구팀 응원부로 제법 이름을 날렸던 전적이 있으니 그 경험을 살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황도욱, 이겨라. 오오. 필승 황도욱!
마침 내 응원이 먹힌 건지 황도욱의 망치가 황청진의 턱을 가격했다. 흉측할 정도로 무서운 뻑 소리가 강하게 났다. 아무리 부정이 좀먹었다고 할지라도 그 근본은 피와 살 그리고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육신이다. 주먹만 한 쇳덩이를 정통으로 맞으면 그 세 가지 성분이 분쇄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으어…….”
턱의 반이 날아갔다. 검붉은 피는 마치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아래로 콸콸 쏟아졌다. 순식간에 피 웅덩이가 그들의 발밑에 고였다. 입을 닫지 못하는 황청진이 화가 난 미간으로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구강 구조가 고장 난 입은 제대로 된 발음을 내뱉지 못했다.
그 의미 불명의 어으어는 그것의 마지막 발성이 되었다. 황청진이 타격의 충격에 빠져 아주 잠깐 정신을 놓은 순간 황도욱이 빠르게 망치를 두어 번 더 갈겼다. 관자놀이 한 번, 뒤통수 한 번이었다. 체중이 실린 가격에 황청진의 두개골도 턱과 비슷한 상태가 됐다. 검붉은 피로 덮인 새하얀 두개골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거푸 타격을 허용한 황청진은, 그 괴물의 몸은 크게 휘청거렸다. 갑자기 전원을 끈 것처럼 눈의 안광이 점차 사라졌다. ‘부정’의 다리가 풀리면서 황청진의 육체가 내려앉았다.
황도욱이 망치를 치켜들며 무릎 꿇은 황청진의 앞에 섰다.
“삼촌.”
아, 이번에는 확실히 알겠다.
“잘 가.”
그 아이는 울고 있었다.
퍽, 퍽, 퍼억.
피와 살과 뼈를 분해하는 소리다. 두개골을 박살 내어 황청진의 육신이 더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일련의 절차다. 단 세 번의 망치질 만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그것은 스르륵 옆으로 쓰러졌다.
“…….”
침묵이 감돌았다. 황도욱은 고개를 떨군 채 자신의 발밑에 쓰러져 있는 황청진의 육체를 한참 동안 응시했다. 나는 저 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냥…… 덜 슬프기만을 바랄 뿐이다.
가만히 서 있던 걔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다섯 개의 손가락을 펼쳐 손바닥을 그것의 머리에서 한 뼘쯤 떨어진 허공에 두었다. 익히 알고 있는 도욱이의 기도문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모든 것들의 부정에서 태어나 불경과 불온을 일삼고 심장을 탐하는 존재들이여. 죽은 것을 일으켜 세우고 자행한 살(殺)의 죄가 묵시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우니 당신을 환옥으로 거두겠습니다.”
문장이 끝나자마자 그 어느 때보다 새까맣고 진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머리뿐만이 아니라 전신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도욱이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기가 질렸다. 얼마나 지독한 부정이었으면 머리가 아니라 온몸에 기생하고 있었을까. 황청진의 육체는 애초에 그것에게 모든 부위를 먹힌 것이다. 머리뿐만이 아니라 정말 전신이. 그 심장마저도.
나는 그 애의 의식을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러나 동시에 점점 살을 파고드는 이 밧줄과 쇠사슬의 고통은 견디기 힘겨워 땀이 삐질삐질 날 때쯤이었다.
“형, 괜찮아요?”
정화를 끝낸 걔가 그제야 날 눈치챈 듯 허겁지겁 달려왔다. 핏물로 범벅인 손가락이 다급하게 내 몸을 묶은 족쇄들을 풀어 주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날 얽어맸던 구속구들은 도욱이의 손길 몇 번에 쉽게 풀렸다. 쇠사슬이 챙그랑 소리를 내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밧줄에 쓸린 손목을 문지르면서 어색하게 웃었다. 걔가 보기에는 상당히 미묘한 표정이었을 거다. 당연하다. 나는 지금 웃어야 되는 건지 울어야 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울고 싶기도 하고 웃고 싶기도 한 이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한다는 말인가?
“우네.”
걔가 손을 뻗어 내 눈가를 문질러 주며 말했다. 그런가. 웃는다고 생각했는데 나 지금 울고 있나. 어쩐지 두 뺨이 축축하더라…….
“……너도 울잖아.”
나는 눈을 끔벅이면서 삐죽 맞받아쳤다. 자기도 눈시울이 빨갛게 번져 놓고. 황도욱은 대꾸하지 않았다. 가만히 내 두 손을 끌어다가 손목에 남은 새빨간 자국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아파요?”
“네가 할 소리냐…….”
황도욱의 뺨을 깊게 그어 놓은 상처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애가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이 자상에 피범벅이다. 힐끗 훔쳐본 오른쪽 다리는 퉁퉁 부어 검붉었다. 상태가 제법 심각해 보였다. 지금까지 도대체 어떻게 서 있었던 건지 그 고통이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걱정으로 얼굴 근육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그 애의 다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다리는.”
“아.”
“빨리 119 부르자. 사람 불러서 병원 가자.”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걔가 말릴 새도 없이 차가운 침대 위에서 내려왔다. 한참을 묶여 있던 탓인지 잠깐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질 뻔했으나 도욱이가 팔을 잡아준 탓에 꼴사납게 넘어지는 꼴은 면했다. 나는 재빨리 주변을 훑으며 전화기를 찾았다. 어디든 바로 연락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만 했다.
“참, 누나!”
그 와중에 아직 차가운 철창 안에 갇혀 누워 있는 청하 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나도 꽤 긴 수난을 겪었는지 그 난리가 일어났는데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황청진이 납치한 환들이 족족 심장이 사라진 시체로 발견된 것을 보면 누나도 금방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지금 선생님도 한 팔을 잃고 병원에 누워 있는 판국에 누나까지 어떻게 됐으면 진짜…… 그 이후가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 도욱이한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렇게 부산스럽게 굴 것 없어요. 밖에 협회 사람도 와 있으니까.”
“뭐? 언제부터?”
당장에라도 누나를 가둔 철창을 깰 것처럼 움직이던 나는 도욱이의 말에 걸음을 멈췄다.
“아까부터. 아까 폭발 소리 못 들었어요? 그 사람들이 입구에 폭탄 던져 준 건데.”
뭐? 그랬단 말이야?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입구와 황도욱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너 그 다리로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야?”
문득 든 의문이었다. 우리는 허허벌판의 공터에서 헤어졌다. 핸드폰이 없으니 협회 사람들한테 연락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어떤 운송 수단도 부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다리로 그 먼 곳을 걸어 시내까지 나왔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히 컨테이너 박스들 안에서는 작동되는 어떤 통신 기기도 발견하지 못했었는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내가 어정쩡하게 서서 그 애를 바라보고 있자 황도욱이 조용히 오른손을 뻗었다. 다리가 아프긴 아픈 건지 철제 침대 위에 걸터앉아서 말이다.
“잡아 줘요.”
참나. 내 손이 지 것도 아니고 소유권 주장 당당하게 하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애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었다. 슬쩍 손을 뻗어 황도욱의 손가락 사이로 내 손가락을 얽었다. 찐득하게 달라붙은 피가 내 손에도 옮겨 붙었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옮겨 붙은 것이 피뿐만은 아닌 탓이다.
“어떻게 온 거야.”
“형 핸드폰.”
“응.”
“충전했어요.”
아.
“거기 아직 전기가 돌아?”
“그렇던데요.”
“시내로 나온 다음 구급차에서 탈출하느라 거기서 시간이 좀 걸렸어.”
그랬구나. 그 엉망인 다리를 하고도 구급차에서 탈출하는 도욱이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진짜 이 답도 없는 멍청이.
“미안해.”
그러면서 나를 위로하는 이 애를 나는 정말로.
“그만 울어.”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한참을 도욱이 손을 붙잡고 펑펑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각막이 뻐근해질 정도였다. 황도욱은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내 손을 붙잡고 안절부절하다가 조심스럽게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럼에도 내가 울음을 멈추지 않자 급기야 나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여 주기까지 했다. 달래주려는 의도는 확실했는데 웃긴 건 걔의 스킨십 단계가 높아질수록 나는 더욱 설움이 북받쳐 눈물을 쏟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황도욱의 당황은 커지기만 하고…… 하여튼 우리는 협회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그렇게 당황을 거듭하며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이웅 요원님을 앞세운 검은 옷을 입은 일단의 무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상황이 종료된 공간을 훑더니 빠르게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우선 철창을 열어 쓰러진 누나를 들것에 싣고 나가는 한편 다른 의료진들이 다가와 엉겨 붙어 있는 나와 도욱이의 상태를 살폈다. 이웅 요원님이 옆에 서 있다가 질겁한 얼굴로 말을 붙였다.
“이런 상태로 지금 바깥의 것들을 죄다 죽인 겁니까?”
바깥의 것들은 필시 열 마리가 넘는 묵을 말하는 것일 테다. 질문은 도욱이에게 향한 것이었으나 걔는 딱히 대꾸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한 듯 입을 꾹 다문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대답해 줄 수밖에 없겠군.
“그렇다니까요. 제 속이 다 터질 뻔했어요.”
도욱이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부러진 다리로 계속 움직였기 때문에 퉁퉁 붓다 못해 피부가 검게 변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다 다리 못 쓰게 되는 거 아니냐며 안달을 내는 나와는 다르게 걔는 앓는 소리 한 번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내 손등을 두드려 주며 차분하게 들것 위에 제 몸을 눕히는 것이다. 미친놈 진짜. 나는 얘가 고작 십칠 년밖에 살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이렇게까지 무던할 수 있는 걸까.
“환의 특성상 재생력이 빨라서 그나마 이렇게까지 움직일 수 있었던 겁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아무리 환이라고 하더라도 어떻게 됐을지 장담할 수 없어요. 앞으로 이런 무모한 활동은 엄히 제재하겠습니다. 채승 학생은 괜찮습니까? 다친 곳 보여 주세요.”
“아, 전 괜찮은데…….”
반면 나는 민망할 정도로 건강했다. 손목과 발목 그리고 등, 허리에 약간의 찰과상밖에 입지 않았다. 가슴에 그것의 손톱이 찌른 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으나 후시딘과 밴드의 협공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크기의 상처였다. 혹시 모르니 안정을 위해 자꾸만 수액을 주입하려는 의료진과 요원님을 말리느라 진땀을 빼야만 했다.
“그건 그렇고 그렇게 갑자기 멋대로 사라지면 어떡합니까?”
대충 상황을 파악한 요원님이 대뜸 얼굴을 굳히며 언성을 높였다. 내 죄를 내가 알렸다라고 병원에서 말도 없이 탈주했던 전날 밤이 생생하게 기억나 버렸다. 나는 찔끔하며 고개를 움츠러트리고 요원님의 눈치만 힐끔거렸다.
“병원이 얼마나 뒤집어졌는지 아십니까? CCTV로 추적하는 것도 시간이 한참 걸려서 너무 늦어 버릴까 봐 다들 걱정했단 말입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렇지만 누나가…….”
“청하 씨뿐만이 아니라 셋 다 죽을 뻔했습니다! 운이 좋아서 망정이지, 진짜로 위험한 상황이었다고요! 말이라도 하고 갔어야 할 거 아닙니까!”
나는 개미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나마 항변하려고 입을 뗐으나 한껏 눈썹을 치켜뜬 요원님의 호통에 그냥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무모하기는 했지……. 황청진(나는 아직도 이 자를 뭐라고 호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이 사람을 쓸 줄도 몰랐고 열 마리가 넘는 묵을 마당에 깔아두고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요원님의 말대로 운이 좋았다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한껏 열을 내다가 진정한 요원님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는 우리가 정리할 테니 얼른 병원으로 가세요. 밖에 구급차는 이미 와 있을 겁니다.”
“네…….”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나는 실려 가는 도욱이의 뒤를 따라 도망치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도욱이는 구급차에 실리면서 내게 괜찮냐는 눈길을 던졌다. 혼난 내가 걱정이 되는 듯 손을 살짝 뻗어 내 손등을 건드리기까지 했다. 귀여운 놈. 나는 씩 웃으면서 걔 손을 덥석 잡아주었다. 그리고 태평하게 대꾸해 주는 것이다.
“괜찮아. 한 귀로 듣고 흘렸어.”
이깟 말에 주눅 들 멘탈이었으면 애초에 그 험난한 학교생활도 못 버텼다. 얼굴 위에 깐 철판이 내 장점 중의 장점이지 않겠는가.
실험실을 나와 흙과 구덩이로 파헤쳐진 마당을 거슬렀다. 나오고 나서 보니까 아주 확실히 알겠다. 옛날에 내가 뛰어 놀았던 이 집의 기억이 빠르게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날의 시간들이 머릿속에 그렇게 많거나 선명한 건 아니지만 마음씨 좋은 주인의 허락 아래 정원에서 종종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던 기억만은 아직도 또렷했다. 그때는 그랬었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해맑기만 했던 나날들.
문득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에는 도욱이가 머리를 깨 놓은 묵의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급하게 내려오느라 미처 정화까지는 하지 못한 탓인지 그것들은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는데 요원들이 일사천리로 묵의 사지를 잘라 아예 위험 가능성을 봉쇄해 버렸다. 같이 가던 다른 요원에게 이제 저것들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슬쩍 물어보자 추후 다른 환이 와서 못다 한 정화를 완성할 거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다시 온전한 안식을 취하며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어둠에 사로잡혀 으스스했던 마당은 어느새 조명과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부산스럽게 움직였고 현장은 착실하고 빠르게 정리되었다. 나는 소란스러운 공간을 보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도욱이가 문 바깥에 세워둔 구급차에 탑승하는 순간 난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마당 딸린 집을 돌아보았다.
아직 많은 것에 의구심이 든다. 황청진과 우리 엄마 사이의 이야기라든가, 엄마를 죽인 사람이 아버지라는 것을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을 ‘모든 부정’이라고 칭한 존재는 영원히 사라진 게 맞는 것이며 황청진의 영혼은 정말로 단 한 점도 남지 않았는가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쩌면 영영 미궁 속에 빠져서 밝히지 못할 이야기들이 저 집 아래 영원히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 필요가 있을까? 어떤 실타래는 엉킨 것을 풀기보다 오히려 잘라내는 게 해답일 때도 있는 법이다. 어떤 이야기는 들추기보다 그대로 덮어두는 게 최선일 때도 있는 법이다.
“형.”
“응, 가.”
마치 지금 내게 중요한 건 도욱이의 손을 꼭 잡아 주는 게 전부인 것처럼.
***
우리는 다시 병원으로 이송됐다. 황도욱은 곧장 수술실로 인도되었고 나는 잔뜩 성이 난 선생님 앞에서 고개도 못 들고 된통 혼이 나야만 했다. 주변에서 말려도 길길이 날뛰던 선생님은 마지막에 눈물을 글썽이며 남은 한 팔로 나를 꼬옥 안아 주었는데 나도 그의 허전한 한쪽 팔이 속상해 덩달아 훌쩍거리는 바람에 졸지에 병실은 울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도욱이의 수술은 잘 끝났다. 걔는 환이라는 개체들의 특성인 건지, 도욱이의 개인 특성인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복하더니 불과 보름이 지났을 때는 말리는 간호사들을 뿌리치고 펄펄 뛰어다녔다. 심지어 멀쩡해진 다리로 내가 어디를 가든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통에 걔의 안정을 위해 멀쩡한 나마저도 거의 병실에 감금되어 있다시피 해야만 했다.
“이제 탈주할 목적도 없는데 감시만 심해졌어.”
내가 소파에 덜렁 누우며 한 소리였다. 우리가 또 언제 야반도주를 할까 걱정스러운 건지 선생님은 물론이고 간호사 선생님들까지 한 시간에 한 번씩 우리의 소재를 확인하는 게 아닌가. 얌전히 굴겠다고 선서에 맹세까지 했는데도 어른들은 우리를 영 못 믿는 눈치였다. 하긴 나 같아도 안 믿겠다. 저쪽이나 이쪽이나 얌전히라는 단어와는 영 맞지 않는 인물상이긴 하다.
나는 소파에 누워 뒹굴거리다가 문득 옆에 걸려 있던 자켓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황청진의 집에서 가져온 나와 도욱이의 셀카였다. 그 비극의 참상이 있기 직전에 찍었던 그 사진. 나는 그걸 손에 쥐고 뚫어져라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도욱아, 너는 그 실험실에서 있었던 일 기억나?”
“네?”
“그거 말이야. 네가 네 심장으로 나 살렸던 날. 기억나? 나는 기억이 몽땅 휘발됐는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엄마를 죽인 게 아버지였다는 사실도 기억났는데 그날 일은 기억 안 나.”
그렇다. 그런 영상을 봤으면 충격 요법으로라도 기억이 살아날 법한데 내 머릿속은 여전히 백지였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맞는 건지 나조차도 의심스러웠다.
“저도 기억 안 나요.”
“안 나?”
“네. 그런데 환은 원래 각성하면서 몸을 재구성할 때 기억을 일부 잃기도 하니까……. 그런 이유 아닐까요. 형은 아예 죽었다가 살아난 거고 나는 심장을 조금 나눠줬으니까.”
그런가. 그것도 일리는 있다.
“저는 그 이후로 삼촌한테 그런 실험실이 있다는 걸 아예 잊었던 것 같아요. 삼촌도 더 이상은 절 거기 데려간 적이 없었고.”
“음.”
“아마 실험실이 두 개였을지도 모르죠. 컨테이너는 형의 어머니와 둘이서 사용하던 곳이고 제가 발견했던 곳은…… 좀 더 처참했거든요.
도욱이는 생각하기 싫은 기억을 떠올리는 듯 미간을 한껏 찡그렸다.
“절벽에서 떨어지고 우여곡절로 살아난 끝에 그 숨겨뒀던 실험실에서 지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응.”
“다 추정이죠. 삼촌이 어떤 시간과 하루를 보내 왔는지 이제 와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그 말이 맞다. 아직 찝찝한 의문들이 남아 있지만 그 주범은 이미 불꽃 속으로 사라졌다. 더 캐물을 사람도 캐물어야 할 이유도 없다. 나는 도욱이의 말에 동의하면서 사진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그 괴이한 시간들을 겪고 나서 나에게 남은 것은 이 귀여운 사진 한 장이 전부다.
“병원 냄새 싫다.”
“나갈까요.”
내가 칭얼거리자 도욱이가 툭 내뱉었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말고 눈을 이마로 뜨며 내 머리맡에 앉은 걔를 쳐다보았다. 황도욱의 따뜻한 손이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있었다. 걔는 여전히 나를 끌어안고 내 체향을 맡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예전처럼 발작적으로 달라붙는 짓은 덜했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황도욱이 내 몸의 냄새를 좋아하는 건 내가 자신의 심장을 나눠 가진 탓이 아닐까 하는 생각. 내 몸에 흐르는 피에는 황도욱의 피도 섞여 있을 테니 결국 자기 자신과 가장 친숙한 향일 테니까 말이다.
“나가자고?”
“2층이면 뛰어 내릴 법한데.”
황도욱이 창문 밖을 슬그머니 곁눈질하며 말했다. 이게 미쳤나!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번에는 두 다리가 박살 날 일 있어?”
“이 정도는…….”
“안 돼, 무조건 안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금지.”
얘는 자기가 무슨 슈퍼맨인 줄 안다. 특히 혼자서 묵과 10:1의 맞짱을 뜨고 난 이후 그 자신감은 끝도 없이 고공행진 중이었다. 자꾸 얼치기 같은 짓을 입에 담으면서 수명 단축의 길로 들어서려고 하니 옆에 있는 나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병원 냄새 싫다면서요.”
“그게 2층에서 뛰어 내리자는 소리는 아니란다.”
“나도 싫은데, 냄새.”
“……선생님한테 읍소해 볼게.”
나는 정말이지, 시무룩하게 가라앉는 황도욱의 눈썹을 이길 자신이 없다.
우리는 결국 선생님에게 주의하고 또 주의하겠으며 옆에 감시인이 붙어도 괜찮다라는 허락을 하고서야 병원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진한 현타가 몰려 왔으나 오랜만에 나와 싱글벙글한 황도욱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나 또한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을이 훌쩍 지나갔다. 붉게 물든 낙엽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계절이었다. 또 금방 겨울도 올 것이다. 다수의 사망 사건으로 아직도 흉흉한 학교는 휴교를 하니 마니 시끄러운 듯했다. 수능은 코앞이었고 나는 잠깐 일상에서 일탈하여 괴이의 세상 속에 처박혀 있다. 몇 달 전부터 문제집은 한 장도 펼쳐 보지 못했다. 수능은 말아 먹을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걱정이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왜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지 않을까. 언젠가부터 일분일초마다 나를 억압하던 미래였는데.
왜겠냐? 나는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나와 나란히 걸음을 맞추며 걷는 도욱이를 올려다보았다. 그저 밖에 나와 즐거워 보이는 천진난만한 얼굴이다. 요목조목 잘 조성된 이목구비는 볼 때마다 감탄을 자아냈다. 햇빛에 반사되면서 투명할 정도로 밝게 반짝거리는 연한 갈색 눈동자가 나를 응시할 때면 아예 숨이 멈춰 버릴 것 같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걔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들리지도 않는다.
쿵. 쿵. 쿵. 쿵.
심장 소리가 너무 컸다. 그 애 얼굴을 볼 때마다 하고 싶은 말 한마디가 혓바닥 위에서 맴돌며 춤을 췄다. 나는 도욱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할까 말까. 고민은 길지 않다. 충동은 성인을 앞둔 열아홉 살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변명이다.
“좋아해.”
좋아해, 너를. 그 말을 겨우 내뱉었다. 내 목숨을 구해 준 너를 좋아해. 나를 계속 지켜 준 너를 좋아해. 내 옆에 꼭 붙어 있는 너를 좋아해. 나를 좋아해 주는 너를 좋아해. 나를 혼자 놔두지 않은 너를 좋아해. 나는 너를, 나는 너를 정말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많다. 내가 너를 좋아할 이유는 많다. 그러나 황도욱도 그럴까? 고백은 하자마자 불안이 되어 되돌아왔다. 걔는 나 때문에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겼다. 걔는 나 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사서 했다. 나 때문에 가족 같은 선생님이 팔을 잃었고 나 때문에 청하 누나가 죽을 뻔했다.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고백하지 말 걸 그랬나. 뒤늦게 후회하지만 이미 늦었다. 어느새 걸음을 멈춘 도욱이는 답이 없다. 좆됐다. 고백 망했나 봐. 속으로 쌍욕을 씹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꼬셔 보는 건데. 그런 생각이 자꾸 맴돌았다. 침묵이 길면 길어질수록 내 불안은 극에 달했다. 그러자 이제 나중에는 이 자식이 괘씸해지는 거다. 아니, 형이 있는 용기 없는 용기 참기름 짜듯이 쥐어짜내서 고백을 했는데 이 자식이 대꾸도 안 해?
창피함이 객기가 되어 멱살이라도 잡을 셈으로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을 때다.
한 차례 바람이 불었다. 살랑살랑 서늘한 가을바람이 도욱이의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미형으로 조성된 얼굴이 선연하게 드러났다. 시야를 가득 채웠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직면하고 나서야 몇 초의 공백 후 나지막하게 한 마디를 덧붙일 수 있었다.
“바보. 나도라는 그 한 마디를 못 하냐.”
나를 보며 바보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었다.
<묵의 환 完>